제25회 창작콘테스트 아름답게 잇닿다

by 김day posted Oct 03,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름답게 잇닿다

 

Written by day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오기 전에 분명 힘든 결정을 했을 것이다. 그건 나와 어머니의 얘기를 듣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름이 아니라 나와 련은 쌍둥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우리가 없을 때까지만 해도 홀로 살아가는 과부이기 때문이었다.

차분하게 우리의 이름을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나는 아직도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 마냥 귓가에 맴돌았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우리의 이름을 감싸 안을 때, 나는 그때 가장 우리의 이름이 예쁘다고 종종 생각했다. , 미하고 나를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런 목소리가 안고 있는 내 이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가 지어준 이 이름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그건 아마 너도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꼭 그럴 것이다. 왜냐면 우리의 이름은 쌍둥이여서 더 아름답기 때문이니까.

나는 우리가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쌍둥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네가 그날의 간식을 더 먹고 싶어 할 때, 나는 네가 내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간식을 덜어준다든가, 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말없이 옆에 있어준다든가 등을 생각해보면 너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왜 갑자기 되던 게 안 되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내가 너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되었는지. 내 머리에도, 네 머리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을 뚫어서 마구잡이로 늘어나는 실을 연결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언제부터 들기 시작했는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나는 그냥 네가 사라진 그 날, 네가 너의 이름을 가지고 사라졌던 그 날부터 실이 끊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내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거라고, 이제는 내 옆에 없는 너를 떠올리고 싶어도 떠올릴 수 없는 나를 원망했다.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들은 너무 가벼워 숨을 멈추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집 안이 너무나 고요했다.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도, 너도, 그 누구도 이 집안에 없었다. 세 사람이 살던 집안에는 이제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심지어 나도 언젠간 그들처럼 사라져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빈 공간을 채우는 외로움이 허공 위로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우리를 입양한 건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일곱 살 때였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맡겨지듯이 버려졌고, 거기서 일곱 살 때까지 쭉 자랐다. 계속 붙어 다녀서 그런 건지, 우리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너는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어머니가 우리를 처음 봤던 그 날. 어머니의 눈에 우리가 띄었고, 우리 눈이 처음으로 어머니를 보게 된 그 날. 너는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 그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 발걸음 하나하나와 뒤로 했던 풍경 하나하나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보육원을 둘러싼 철장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순간에 보육원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시선은 다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물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철장 문이 녹슨 소리를 내는 순간에 바로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아름다웠다. 처음 만난 사람이 어머니를 지나치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뒤로 돌려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하지만 넋을 놓고 보는 것도 잠시였다. 우리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어 땅을 바라봤다. 우리는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가 그 이유였다. 보육원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한, 높은 확률로 아이들은 한 명씩 사라져갔다. 나는 아직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물론 너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왜냐면 그때 당시의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보육원 안에 있는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우리에게로 어머니는 다가왔다. 너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녀를 보다가 나와 맞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네 손을 꽉 쥐었다. 맞잡은 손에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우리는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것은 우리 중에 한 명을 데리고 간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걸 그녀도 눈치 챘는지 그녀는 우리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우리는 맞잡은 두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힘을 풀면 금방이라도 그녀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보육원 선생님께 이 아이로 데려갈래요.’같은 말을 내뱉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금껏 우리 보육원 아이들을 물건마냥 산다는 듯 말했던 사람들과 달랐다. 아마 그것 때문에 나는 너와 맞잡은 손에 힘을 풀었던 걸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우리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혀서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어머니의 눈동자 속에 우리가 비춰져 있었다. 나는 또 다시 어머니를 넋 놓고 바라봤다. 물론 너도 나와 같았다. 하지만 너는 나보다 조금 더 어머니한테서 시선을 빨리 거두었다. 어머니한테 눈을 떼지 않아도 네가 고개를 돌린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너는 아직도 넋 놓고 바라보는 내 손을 살짝 잡아 네 쪽으로 끌었다.

그만 봐.

그때 당시 아직 이름이 없어서 서로를 뭐라고 불러야만 했는지 몰랐던 우리는 말에 서로의 이름을 넣지도 못하고, 그 말이 전달되기만을 바랐다. 다행히도 너의 행동은 내게 잘 전달되었다. 나는 아직도 너의 그런 면모에 대해 생각한다. 너는 어떻게 나보다 더 빨리 어머니한테서 시선을 거둘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그때 당시 우리는 서로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이름을 붙이면 편하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 몰랐던 걸까.

어머니가 다시 보육원에 온 건 이틀이 지난 후였다. 철장 문이 열리는 녹슨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은 또 다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하고서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던 우리한테로. 어머니는 무릎을 굽혀 우리와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살며시 미소 짓고 있던 입술을 열었다.

 

나와 같이 가자.”

 

이 아이로 할래.’와 같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와 같이 갈래?’와 같은 질문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남을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나는 거기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우리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너한테도 한 손, 나한테도 한 손. 나는 내민 손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잡았다. 그러나 나와 달리 너는 조금 망설이는지 어머니의 손을 한참동안이나 빤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네가 고민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손을 잡는 걸 기다려주고 있었다. 사실은 나는 아직도 네가 왜 그 순간에 손을 잡는 걸 고민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건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은 채 떠난 네 잘못도, 너를 잘 알지 못한 내 잘못도 아니었다.

보육원 사무실 안으로 두 명의 아이가 들어간 건, 너와 내가 보육원에 있는 동안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껏 보육원으로 들어왔던 모든 사람들은 한 명씩만 입양을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보육원 원장님을 올려다봤다. 어머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둘을 입양하겠다고 말했다. 원장님은 그녀의 말에 한쪽 미간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혼자이신데 괜찮으신가요?”

 

어머니는 원장님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녀의 휘어진 눈꼬리를 보며, 원장님은 아무 말 없이 서류 두 장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어머니는 서류 두 장을 받아 작성했고, 우리는 그렇게 입양되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싱크대 안에는 설거지거리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싱크대 옆 가스레인지 위에는 차게 식어버린 보리차를 가지고 있는 주전자가 있었다. 나는 주전자를 들었다. 안에서 찰랑이는 물들로 인해 주전자가 기우뚱 거리고 있었다. 나는 도로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부엌에서 나와 이층으로 올라갔다. 나와 련의 방이 보였다. 쌍둥이라서 어머니가 배려해 준 것인지 아니면 원래 집 자체가 모든 문은 다 똑같게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련과 나의 방문은 더 낡거나 페인트칠이 벗겨졌거나 그런 거 없이 똑같았다. 나는 련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빛이 잘 들어오는 방에는 더 이상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비 때문인지 련이 빛조차 다 가져가 버렸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울 집을 근사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집 안에 계단이 있는 복층구조는 처음 봤다고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방 하나씩 갖게 되었다. 보육원 때와 달리 여러 명에서 하나가 아니라, 한 명이서 하나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너랑 떨어져 지낸다는 게 쓸쓸하긴 했지만, 쓸쓸함도 잠시뿐이었고 우리는 곧 떨어져 잔다는 것에 적응했다. 그래도 이 집으로 왔을 당시 초반에는 아직 떨어져 자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하루는 네 방에서 자고 또 하루는 내 방에서 자고를 반복했다. 너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의 방이 어떻다느니, 이 집이 마음에 든다느니 같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는 걸. 아직까지도 맞잡을 수 있는 손을 당연시하며, 그렇게 잠들었다는 걸.

어머니는 매일 아침마다 우리에게 밥을 만들어줬다. 귀찮을 때도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밥을 만들어줬다. 어떤 때는 계란 토스트일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함박스테이크일 때도 있었다. 나는 계란 토스트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계란 토스트에 바르는 어머니의 특제 소스를 좋아했다. 그리고 너는 나와 달리 함박스테이크 위에 나오는 특제 소스를 좋아했다. 그래서 아침에 계란 토스트가 나올 때면 너는 항상 삐져서 아침 먹는 내내 입을 다물곤 했다.

이제는 아침마다 나 스스로 계란 토스트를 해먹는다. 어머니가 만들었던 레시피 그대로 계란 토스트에 바를 소스를 해먹는다.

그런데 이상하지,

계란 토스트를 만드는 것마다 거기서 함박스테이크 소스 맛이 났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만든 건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레시피가 잘못된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란 토스트의 특제 소스와 함박스테이크의 특제 소스 색이 비슷해서 뭐가 잘못 되었는지 몰랐다. 더구나 이제는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평생 어머니가 해줬던 그 계란 토스트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나는 또 너를 찾았다. 네가 계란 토스트의 특제 소스 레시피를 함박스테이크의 특제 소스 레시피로 바꿔버리고 도망친 거라고. 그리고 계란 토스트의 레시피를 나도 모르고 숨긴 너조차도 모르는 곳에 놓고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지?

요즘에는 아침마다 함박스테이크를 먹었다. 도망치기 전에 네가 만들어서 냉장고 안에 넣어 둔 함박스테이크였다. 늦은 새벽까지 안자고 부엌에서 덜그럭 소리를 내며, 며칠씩이나 먹을 수 있는 양을 너는 만들었다. 번갈아 가며 만드는 게 귀찮아서 그날 그렇게 대량으로 만든 건지, 아니면 네가 떠날 거라는 걸 예상하고 만든 건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혹여 함박스테이크에서 계란 토스트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 먹고 싶은 계란 토스트를 먹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함박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함박스테이크는 어머니가 있고, 네가 도망가지 않았을 때 먹었던 그 맛과 똑같았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함박스테이크 만드는 방법을 어머니께 배운 적도 없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나도 계란 토스트보다 함박스테이크를 더 좋아했던 거였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계란 토스트 맛이 나지 않는데도 계속 함박스테이크를 먹을리 없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련의 방 안으로 빗물이 들어왔다. 창문을 닫지 않았다. 혹여 네가 몰래 들어오고 싶은 것일 수도 있기에 창문을 열어두기로 했다. 나는 네 책상 쪽으로 갔다. 가지런히 정리 되어 있는 물건 위로 먼지 또한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나는 검지로 책상을 한 번 쓸다가 손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련의 침대로 가 그 위에 앉았다. 련이 보고 싶었다.

 

네가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우리 둘이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조용한 거리 위에 서있던 수 십 개의 가로등을 머리 위로 지나쳐왔던 날. 처음 보는 낯선 거리가 좋아서 우리는 두 팔을 벌리고 차례차례 가로등을 하나씩 지나쳐왔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너무 자유로워서 몸이 없는 것 같은 느낌. 무서운데도 그만둘 수 없는 기분.

우리는 어머니의 양옆에 서서 그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어머니 오른손에 있던 휴대폰에서는 오늘 비가 올 거라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휴대폰에 이미 GPS가 설정 되어 있어서 그런 걸까. 비가 올 장소가 어디라고 말해주지 않는 게 우습다고 나는 네게 말했다.

 

한 번 생각해봐. 우습잖아. 만약 휴대폰에 위치 추적하는 앱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고 해봐. 그럼 날씨를 듣는 사람은 그날 비가 올 거라는 걸 예상해서 우산을 들고 갔지만, 정작 그날이 최고로 쨍쨍한 날인 거야. 그렇게 되면 우산을 들고 간 사람은 한순간에 바보가 되는 거지. 반대로 나처럼 어디에 비가 올 거라는 걸 알려주지 않은 것에 이상함을 느껴 우산을 놓고 외출을 한 사람이 있어. 근데 그날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 거야. 그렇게 되면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사람은 낭패를 보게 되지?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며 길 위를 누비는 모습을 생각해봐. 그러니까 내말은. 비가 올 장소가 어디라고 말해주지 않는 게 정말 바보 같다는 거야.’

너는 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더 웃겨서 입 밖으로 더 큰 웃음을 내던졌다. 다행히 우리가 걷는 곳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우리는 꽤나 긴 시간을 산책할 수 있었다. 낯설다고 생각한 곳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이 뒤바뀌는 건 한순간 이었다. 그건 아마 너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발걸음이 점점 느려져갔다. 기어코 이게 걷는 것인지 아니면 멈춰 선 것인지 헷갈릴 때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나 할 것 없이 잔뜩 겁먹은 얼굴이었다.

어머니 혼자 우리를 앞서 걷고 있었다.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발걸음을 조금씩 옮겼다. 눈에 언 것인지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걸으니 성당 보육원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이 아닌데도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는 곳에 우리는 기어코 발걸음을 멈췄다. 꾸미려고 여러 색을 겹쳐 놓은 듯 했지만, 오히려 곰팡이가 낀 것 같은 표지판에 우리는 겁을 먹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우리를 보지도 않고, 점점 표지판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웃기게도 그 표지판을 휙 하고 지나쳤다. 걸음을 멈춘 우리는 또 다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머니 옆으로 뛰어갔다. 나는 어머니 옆에 딱 달라붙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나는 곧 깜짝 놀라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얼룩덜룩한 표지판이 아쉽다는 듯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잠깐이라도 어머니를 못 믿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너는 갑자기 어머니 손을 세게 잡았다. 어머니의 몸이 네 쪽으로 잠깐 쏠렸다. 반대쪽 손을 잡고 있던 나는 그게 느껴졌다. 또 다시 셋이서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걷다가 문득 너는 어머니를 향해 한 가지 질문을 내뱉었다.

 

우리의 이름은 왜 미와 련인가요?”

 

어머니는 너의 질문에 평소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리고 우리와 맞잡은 소에 살짝 힘을 주다가 도로 힘을 뺐다. 나는 어머니를 올려다봤다. 어머니는 마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내 입술을 열었다.

 

너희들은 내 미련이야.”

 

어머니의 입에서 우리의 이름이 하나가 되어 흘러나왔다. 이상했다. 그때 어머니가 내뱉은 우리의 이름은 어딘가 느낌이 달랐다. 어머니의 가늘게 뜬 눈웃음이 그녀의 기분이 괜찮은 건지 아닌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어머니를 올려다봤다. 어머니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입을 열었다.

 

아름다울 미와 잇닿을 련을 써서 아름답게 잇닿다는 뜻이야. 너희와 엄마의 만남을 담은 이름이지.”

 

그 말을 내뱉은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아까처럼 나는 어머니의 미소에서 아무런 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너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밑으로 숙였다. 볼이 발그스름해진 것을 숨기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숨길 수 없었는지, 너는 갑자기 어머니의 손을 놓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리다가 멈춰 서서 어머니와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빨리와요!”

 

볼은 달려서 빨개진 것이다 라고 말하는 네 행동은 귀여웠다. 너는 아마 모를 것이다. 네가 그렇게 앞에서 어머니와 나를 기다리고 있고, 어머니와 내가 약간은 빨라진 걸음으로 네게 다가가고 있을 때. 어머니가 너를 향해 소리 내서 웃은 것을.

 

나는 련의 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들어갔다. 련의 방과는 다른 냄새가 방에서 맴돌았다. 분명 내 냄새인데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순간 이 방이 내 방이 아닌가 하고 착각이 됐다. 그러나 책상 위에 놓인 공책에 새겨진 내 이름을 보고 여기가 내 방이구나 하고 인정했다. 나는 침대에 가서 누웠다. 련의 침대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우리의 이름을 작게 읊조렸다. 조용한 공간에서 내 목소리는 울리지도 못하고 곧바로 침식됐다.

 

왜 우리는 보육원에 있을 때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네가 붉어진 볼을 감추려고 앞으로 뛰어갔을 때, 나는 다른 의문점을 향해 한 발 내딛었다. 아마 이 의문점은 너도 한번쯤 생각해본 걸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주위 애들을 보며 점점 무뎌져갔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도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보육원에 같이 있던 애들 모두가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이름 없이도 잘 지냈고,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원장님이 누구 한 명만을 지목해서 부를 일도 없었고, 이름이 없으니 서로 싸울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싸울 일이 없었던 건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싸우면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욕을 한다든가, 더 잘난 무언가를 내세우기에 급급해야만 했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모든 아이들은 이름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모두가 다 평등했다. 싸울 일 같은 건 내가 거기에 있는 동안에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아마 그걸 안 보육원 원장님도 그래서 우리에게 이름 따위 지어주지 않았는 건지도 모른다.

이름이 없었지만 우리는 그런 것 따위 없어도 잘 살았다. 너를 어느 특정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도 너는 나를 바라봤고, 네가 나를 정해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도 나는 네 손을 맞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아 왔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우리에게 이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네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나는 네 생각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거라고. 우리는 분명 이름이 생긴 후에 서로가 서로에게서 벗어난 것이고 단절 되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네가 이름을 가지고 사라진 게 어쩌면 우리가 다시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너무 모순적이었다.

이름이 있으면 서로에게서 벗어난다는 것과 길들여지기 위해서는 이름이 없어야 한다는 것. 네가 사라진 날이 비오는 날이었던 것과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비오는 날이었던 것. 왜 그날따라 그렇게 손을 더 자주 봤는지. 정말로 사라질 때 계란 토스트 특제 소스 레시피를 가져간 건지. 생각해보면 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어째서 너를 잘 안다고 그렇게 떠들고 있었던 걸까. 지금까지 네가 날 보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가 궁금했다.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까. 아니면 나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GPS를 켜놔서 위치를 설정해둔 채로 휴대폰에서는 그 날의 날씨가 흘러나왔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었다. 너는 두 손을 얌전히 배꼽 위에 올려놓은 채 소파 위에 누워있었고, 나는 힘없는 널 대신해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아침을 만든다고 말해봤자, 그날은 네가 새벽에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 놓은 함박스테이크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게 다였다. 이상한 것은 네가 아침밥이 함박스테이크인데도 좋다고 방방 뛰거나, 자신이 만든 것인데도 마치 내가 만든 것 마냥 나를 격하게 껴안지 않았다. 나는 그런 너를 보며 그냥 웬일이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만큼 너에 대한 내 마음이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그날따라 네가 너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심히 행동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 아침밥 먹어.”

 

내 말에 너는 갑자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가냐는 내 말에 너는 그저 현관 구석에 놓여있던 장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싸.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을 보고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해가 저물기 전에는 돌아오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밥을 계란 토스트로 할 걸과 같은 태평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나 그날 밤 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비는 점점 거세져가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갑작스러운 날과 똑같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손끝이 점점 떨려왔다. 너도 갑작스럽게 내게서 떠나가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혼자가 되는 건데. 그날 너으 행동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보였던 행동과 너무나 똑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일층에 있는 거실 소파로 가 앉았다. 거실에 있는 창 너머로 거세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날 련이 떠난 이후로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새벽에 잠시 그칠 듯 하더니 여전히 그치지 않고 쭉 내렸다. 장마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더 이상 의미 따위 붙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시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였다. 어머니는 정말 갑작스럽게 련과 내게 이병을 통보했다. 그것도 그녀가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고 련도 모르고 그리고 어머니도 모르는 타인에게서 이별의 말을 들었다. 그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마 초기였다. 어머니는 소파에 누워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나와 련은 부엌에서 서로 앞 다투며 계란 토스트와 함박스테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말만 다투는 거지 나는 너와 함께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그건 너도 그랬을 거라고, 웃고 있던 너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건이 터진 건, 이제 막 계란 토스트에 바를 특제 소스를 다 만들어가던 중이었다. 엄청난 소음이 집 안 가득 울렸다.

소파에 누워있던 어머니가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 것이었다. 우리가 말릴 틈도 없이. 우리는 곧바로 어머니를 따라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우산 하나 가져가지 않은 어머니는 거센 비를 온몸에 때려 박으며 터덜터덜 길을 걷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해보였다. 나와 너는 어머니한테로 뛰어가 각각 그녀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곧바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가늘게 웃는 눈. 평소에도 그렇게 웃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날따라 그 웃음이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너는 갑자기 어머니의 팔을 놓은 나를 바라보며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네가 어머니의 눈을 보지 않게 막으려했지만, 너는 내 행동보다 빨랐다. 어머니의 웃음을 보고 만 것이었다.

너는 나보다 더 크게 어머니의 웃음에 동요했다. 흠칫 놀라는 게 내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잡고 있던 손을 놓치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손 놓을 타이밍을 놓친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건 너는 끝까지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네가 왜 손을 놓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어머니를 너는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내가 아는 어머니를 네가 모르는 걸까. 무엇이 사실이든 외롭다는 감정은 늘 솔직하게 내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참 이상한 분이었던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홀로 창문 밖을 응시한다든가, 꼭 산책 때 우리가 무서워하는 보육원 근처를 휙 지나친다든가. 아니면 우리의 이름을 미련으로 지었다든가 하는 것들을 보면, 어쩌면 어머니한테 정말로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니라 미련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정말로 우리를 필요로 했던 걸까. 왜 우리를 입양한 걸까. 그렇게 먼저 떠나버릴 거면서.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까지도 어머니의 친척들 중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어머니가 왜 과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너는 알고 있을까. 너도 나와 똑같이 어머니에 대해 모르고 있을까. 가끔씩 혼자 방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거실로 내려가면 어머니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널 봤었다. 두 사람 다 목소리가 잔잔하고 작아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너의 눈이 진지한 걸로 봐선 둘이 나누고 있던 대화도 중요한 말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너는 나보다 어머니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일까.

네가 우리의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냐고 물어봤을 때, 부끄러워 앞서 뛰어가던 너를 보며 웃는 어머니의 모습을 너는 알고 있을까. 아니면 비가 내리는 날 우산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가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네 손을 뿌리치고 아무도 잡는 사람이 없어 그대로 길 한복판으로 뛰어가던 어머니의 심정을 넌 알고 있을까. 우리들의 이름에 담긴 뜻이 어머니와 우리의 만남이라는 말을 할 때 짓던 그 가느다란 웃음이 사실은 몇 년간 단련해온 능청스러운 웃음이었다는 걸.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문 앞에 놓여있는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와서 그런지 안에 있을 때보다 비 냄새가 짙었다. 나는 여전히 지금 네가 뭐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가져간 계란 토스트 레시피를 이미 내가 모르는 장소에 버려버렸나. 아니면 네가 사라진 날 함께 사라져버린 련이라는 이름을 이미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 너를 뭐라고 불러야만 할까. 이름이 없던 시절에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불렀었지. 분명 그때는 서로에게 이름이 없어도 누구를 부르는지 잘만 알았었다. 그러나 이름이 생긴 이후로 이름이 없어도 부르는 방법을 까먹어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이름이 생긴 이후로 조금씩 서로에게서 벗어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과연 내가 생각했던 이름 없던 시절에 네가 진짜 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각각의 것이 생겼을 때부터, 서로에게 길들여지던 게 어느덧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게 될 때까지. 애초에 보육원에 버려졌을 때부터. 우리는 사실 서로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네가 사라지고, 련이 사라지고, 그로인해 잇닿는 게 끊어져 가면 이제 더 이상 남는 건 뭐가 있을까. 우산을 접었다.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그때 어머니처럼 돌아오지 않는 너처럼 비를 맞으며 나는 작게 읊조렸다.

 

너는 혹시 그 답을 알고 있니?

Who's 김day

?

성명 : 김승윤

이메일 : kim990727@naver.com

연락처 : 010 7537 1866


Articles

9 10 11 12 13 14 15 16 1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