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떨기의 꽃을 보니 또 끔찍한 모습이 일렁인다. 꽃이 땅의 정기를 빨아들여 피어낸 집약의 극한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꽃을 열매를 맺기 위한,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다. 찬란하고 아리따운 위선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꽃이라는 것에 꼭 알맞았다. 도무지 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싫었다. 할아버지는 그녀에게만 잘 대우해 줬다. 그리고 도리어 그녀가 있을 때는 나에게도 잘 대해 줬다. 그런고로 할아버지도 꽃만 같다.
때는 내 나이 네 살 무렵이다. 어머니는 큰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 기억이 아니다. 남이 하는 이야기로 재구성 된 기억일 뿐이다. 나의 엄마는 할머니였다. 그리고 아빠가 되어 줄 할아버지는―아니 그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다. 도리어 악마였다. 어린 나의 생각으로는 악마란 것이 실재 하는 줄 알았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
술은 악마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쓰고 차가운 불을 목으로 삼킬 일이 없다. 술을 마시는 자가 악마인가 마시는 자가 악마인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린 나는 술을 마시는 자가 악마라고 굳게 믿었다.
붉은 악마? 우습지도 않다. 악마는 흰색이다. 주글주글한 손에 오래된 면발마냥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은 머리칼을 가진, 그것이 악마다.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꼴깍대다가 눈을 홉뜨면 그것이 각성한 악마였다.
그때의 나는 노망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망령이 들렸다는 표현은 더욱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느낌만은 확실히 알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의 행동은 이른바 망령―실존한다면―이 들린 것이었다. 부스는 건 예삿일이요 심한 날에는 나를 때리기 까지 했다.
그때로부터 일 년 이 년 삼 년이 지나더니 이미 십 몇 년이 지나가 있다. 그 기억도 돌이켜 생각하면 추억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추억이라는 말로 포장하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 깊다. 흉터랄 건 없었으니 내상인 것이다.
그때 나에겐 동생이 있었던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잡히는 것은 하얗게 사라질 악마뿐이다. 나는 그렇게 자란 것이다.
비 오지 않는 그렇다고 밝지는 않은 날, 나는 편의점에 있다. 그것은 물건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물건을 팔기 위함이다. 시급이 오르길 기대하지만, 시급이 올라가면 나는, 하지만 회의감에 휘몰린다. 이 나이가 되도록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남들이 말하는 이른바 실패한 인생인 것이다. 실패에 대한 정의를 누가 내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똑똑하다는 현 시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후 여섯시다. 손님 하나가 들어온다. 검은 야구모자에 흰 셔츠, 그리고 청바지를 입은 그는 내게 붉은 색이다. 붉은 신호등― 멈춤 표지판― 피― 열정― 빨간 것들을 나열해 봐도 그가 해당하는 것은 알 수 없다. 나는 그의 이마 굴곡을 따라 번진 땀과 손에 들린 축구공으로 열정이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5시 6시 7시는 같다. 10시 11시 12시 1시는 또 같다. 그것들은 따로 하나인 것이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5, 6, 7은 빨간 이가 많다. 10,11 ,12는 파란 이가 많다. 그렇다면 빨간 것은 열정이며 파란 것은 피로일까. 내가 그들의 얼굴에서 보는 것을 나는 모른다.
10시가 되서―정확히는 10시 34분―온 그녀는 하얗다. 하양은 색이 없다. 하지만 빛으로 보자면 꽉 찬,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다. 나는 역시 그녀의 내력을 알지 못한다. 어림짐작하는 일 또한 불가능하다.
그녀가 떠난 후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십 년 만에 보는 나 외의 흰색이요 한 치의 때조차 없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틀 후 찾아왔고 그 이틀 후 또 찾아왔다. 이틀째에는 아름드리 벚나무를 안는 듯 했고 나흘째에는 민들레 한 아름이 잡히는 듯했다. 어릴 적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 아찔하리만큼 기묘한 기시감이 아니었다면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리라.
때는 해가 서로 조금 기울어진 오후다. 나는 봉투에 우유며 라면을 담으며 말한다.
“우리 언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내게 봉투를 건네받은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춘다. 눈이 깊은 것이 호수나 거울을 보는 듯하다.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어쩌면 작업을 거는 줄 아는지 그녀는 대답 없이 문을 나설 뿐이다. 손님이 가게를 나서면 대게 잠깐의 적막이 인다. 하지만 그녀가 가게를 떠나니 적막은 아닌 것이 내 속을 꽉― 채운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좋은 글감이 생각나면 필기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그녀가 다시 이 편의점에 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해는 다시 뜬다. 이 해가 어제의 해와 다르겠느냐만 다만 세간에서 말하는 다음날이며 이제는 오늘인 것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현재 시각은 중요치 않다. 일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끼니다. 나는 매 끼니를 챙겨먹는 사람이다. 첫 끼니는 1시에 먹는다. 계란 프라이, 김, 밥. 5시간 밀린 그러나 나에겐 정시인 아침 식단이다. 생각을 하니 아침 식사란 말이 어울린 적이 없었다. 그것은 필히 점심인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아침 겸 점심이라는 용어까지 생기지 않았는가.
식사를 끝마친 나는 수저를 내려놓는다.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한쪽 벽면의 달력이 눈에 띈다. 그것은 좁은 집이기에 반드시 보이는 것이다. 중요한 이를테면 월급 받는 날, 발표 날에는 숫자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오늘은 2일 내일은 3일 그리고 4일 다음은 5일 6일을 거치고 7일 8일 언젠간 9일 결국은 10일.
이렇듯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확실히 길지 않다.
달력 중 10일에는 동그라미는커녕 도리어 엑스다. 하지 말자고 기록한 것이다. 잊었다면 하지 않으려 하지 않으려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그래도 잊지 못한 까닭이 있다. 나는 고약한 기억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나는 집전화가 없으나 휴대폰이 있다. 휴대폰은 많은 것을 안다. 지인들이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낮에 전화가 울릴 일을 없다. 그 이전에 나는 전화기가 울 수 있게 해두지 않는다. 멀―게 느껴지던 통근 시간도 어느덧 눈앞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난 편의점으로 간다. 어쩌면 그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기대감이 마음속에 피어나고 있는 지도 나는 모르겠다. 확실히 마음속에서 피어난다고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10일이 오는 것에 대한 짜증이다. 아아, 영감에 대한 생각이―뚝. 나는 그곳에 가기가 싫기에 여태껏 간 적이 없다. 하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반드시 가야한다는 것이다.
다리가 떨려온다. 내 몸이 떠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슨 일인지 파악하는데 3초를 쓴다. 전화가 온 것이다.
“야, 열심히 하고 있어? 내가 매상 좀 올려 주러 갈까?”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없는 친구로부터의 전화는 온다.
“이 좁은 가게 매상은 무슨. 애초에 내가 버는 돈도 아니고 말이야.”
“매정하네? 그렇게 일하다가 잘린다?”
이 따위 편의점 잘리든 말든 나는 상관없다. 나 스스로도 몇 번이고 그만 둘 생각을 했었다. 이 가게 젊은 사장님―그가 이렇게 부르라고 하였다―은 스스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 아는 체 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지를 뽐내기에 돌연 나까지 부끄럽다. 그 자신이 말하는 자신의 것이 아닌 정보는 어디 인터넷을 뒤지다가 가져 온 정보 일 터이다. 이를테면 누구나가 천재인 시대가 온 것이다. 참된 천재는 고개를 감춘다.
내 생각건대 요즘 사람들은 모두 달팽이다. 그것도 그냥 달팽이가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 이를테면 껍질을 벗어 그 속 까지 낱낱이 뽐내는 달팽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정작 껍질을 벗으면 죽는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촌철살인의 검은 양날인 것이다. 나는 껍질 속 내장을 봐주지 못하겠다. 이 일을 그만둔다고 하리라. 그래서 다음 날 난 “이 일 그만 합니다.” 라고 말했다.
젊은 사장은 눈이 동그랗게 뜬다. 가끔씩 자신의 편의점에 들르는 그이다. 자신의 편의점에 들른다는 행위는 상당히 괴기한데 여기서 라면을 사간다는 사실이 그 괴기함을 한 층 더한다.
“네? 왜요? 일 잘하시잖아요.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이 있던가. 글쎄. 그래도―
“조금 일이 있어요. 알바 새로 구할 때 까지는 일할 태니까 걱정 말고요.”
젊은 사장은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인다. 곤란한 눈치다. 호통이 쏟아질 줄 알았더니, 그는 미소 짓는다. 검지를 치켜세우며 “그럼 이러면 어때요?” 한다. 그 모습이 퍽 유식해 보이기도 한다. 그가 말을 잇는다.
“그 일이 끝날 때 까지 시간을 드릴게요. 음, 삼일? 아니, 이주일이면 되죠?”
나는 어릴 적부터 얽매임 없이 살아왔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방황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얽매일 성 싶으면 꼭 무엇인가 방해 한다. 직접적인 방해는 아니다. 따지자면 신경이 쓰이게 하는 것이다. 방해하는 것이나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이나 다를 바는 없다.
이번엔 젊은 사장에게 얽매인 줄 알았다. 하나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 경우에는 분명 하얀 색을 가진 여자의 방해다.
사장의 끈질긴 권유로 나에게는 일주일의 유예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일상이었던 것이 아닌 것을 하고자 함이다. 무척 새롭고 어지럽고 그리고― 귀찮다. 달력을 보니 주어진 일주일에는 공교롭게도 엑스 그려진 날이 들어가 있다.
새롭게 맞아야 했을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은 새롭게 5시에 일어나 아침을 시작했다. 오전 여섯시쯤에는 공원을 지나다 하얀색을 가진 그녀를 봤다. 하얀색은 종이의 바탕색이여서 눈에 띌 것 같지 않지만, 유색 속에서는 다분히 눈에 띈다. 그녀를 보니 기억이 난다. 나는 ‘우리 언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하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문을 나섰던 것이다. 낄낄낄. 나는 웃었다.
끝까지 따라다니며 계속 ‘우리 만난 적 있죠?’를 반복할까. 그 이상 가는 유희도 찾기 어려울 터이다. 나는 속으로 좋아, 하고 그녀의 뒤를 따른다. 사실 장난을 친다는 것은 보기 좋은―참으로 애 같은― 허울 일 뿐이다. 그녀의 뒤를 따르고자 한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녀 옆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치며 알짱거린다. 작고 하얀 것이 꼭 말티즈란 종일 것이다. 살아가다 언제 한번 사람들은 고독을 느끼지 않으려 애완견을 기른다고 들은 적 있다. 안될 일이다. 인간은 고독해야 할 동물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구성인 가족에게서도 나이가 차면 떠나야 한다. 그렇기에 그 개가 애완견이든 반려견이든 중요치 않다. 필요가 없다.
나는 그녀의 뒤를 계속해서 밞는다. 눈치 챌 법 하건만 둔한 건지 모른 척 하는 건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태양은 아직 힘겹게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아직 점심 먹을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내 뱃속은 요망하다. 꾸르륵 되는 것이 심상찮다. 필히 배가 고픈 것이리라. 그녀가 강아지를 안아들고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 인 걸까?
가게 안으로 들어오니 역시 낯이 익다싶더니 나의―아니 젊은 사장의―편의점이다. 가게 안에 있는 것은 여자와 나뿐만이 아니다. 웬 남자도 하나 서 있다. 그 남자는 산적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현대 시대로 친다면 강도 같은 모습이다. 편의점 알바생은 어떻게 구하려나, 했더니 사장이 계산대를 보고 있다. 생각해보니 낮 시간대는 직접 편의점을 돌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낮에 대해서는 모른다.
사장은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일을 쉬면서 일터에 그것도 10시간 빨리 온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퍽 이상하다. 그래도 젊은 사장은 내게 까닭을 묻지 않을 눈치다. 나는 앞으로 볼 일 없을 아침의 편의점을 쭉 둘러본다. 햇볕이 여기저기 배여 들어와 자못 아름답다.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주말의 아침 6시란 이른 시간이기에 이 모습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뭐하는 거죠?”
사장이 묻는다. 내겐 아니다. 대답하는 자는 강도 닮은 자다.
“시끄럽고, 거기 너 셔터 내려.”
그러면서 날 가리킨다. 그는 강도를 닮은 강도인 것이다.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하지만 휙휙 위협적인 칼에―그걸 뛰어넘는 위협에 나는 이기지 못한다. 나는 뒤돌아 서기 전 사장이 뭔가 하는 걸 보았다. 분명 경찰에 신호가 갔으리라. 유쾌한 바보 강도다.
나는 셔터를 내린다. 하얀 여자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멀뚱히 서 있을 따름이다.
“너, 이제 저기 엎드려. 너도.”
강도가 칼끝으로 구석진 후미를 찌를 듯 가리키고 선다. 나와 그녀는 조심히 그쪽으로 가서 바닥에 엎드린다. 그 모습이 언제 텔레비전에서 봤던 경찰 단속에 걸린 외국인 같다. 나는 엎드렸기에 작은 개가 엎드렸는지 네 발로 섰는지 알 겨를이 없다. 눈알을 굴려보니 여자가 끌어안고 있다. 반려견인 모양이다.
고개를 흘끔 들어 계산대 쪽을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강도의 불만 터진 외침이 터질 것만 같다. 강도에게 혼나는 것이다. 젊은 사장이 손을 떨며 돈을 봉투에 담고 있다. 그것을 보는 것과 동시에 무엇인가의 움직임을 느낀다. 나는 여자에게 속삭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휴대폰을 하겠다면 말리진 않지만, 뒤쪽 전면거울은 조심해야 할걸요. 혹시 이 상황을 sns에 올리려 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안 말리지만, 혹시 경찰에 신고하실 거면 그러실 필요 없어요.”
나는 고개는 숙였지만, 눈만은 홉떠 강도를 주시한다. 똑똑한 휴대폰을 나는 이 순간 사용할 수 없다.
“경찰에는 이미 신고가 완료 됐을 거거든요. 조금만 참아요.”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말한다.
“네.”
휴대폰을 넣은 그녀는 고개를 들어 힐끔 뒤를 바라보고는 급하게 다시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난 강도가 다가오는 것을 본다. 그녀가 휴대폰을 만진 것을 본 탓이리라.
터벅터벅하고 들리던 것이 어느 순간 쿵― 쿵― 한다. 혹여 눈이 마주칠까 나는 눈을 깐다. 그림자가 또렷한 것이 바로 앞에 있는 모양이다. 강도가 날 보고 있는지 여자를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개는 짖지 않는다. 개와 여자는 가족일 터이다.
짖지 않아?
역시 인간은― 고독한 동물인 것이다.
“야, 너 방금 뭐했냐?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 응?!”
여자는 처음 나를 대할 때와 비슷하지만 다르게 말이 없다. 강도가 “이년이!” 하는 순간 개가 달려든다. 제 목숨이 먼저인 것일 터인데. 어째서? 가족이니까?
조그마한 개가 강도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못했지만, 강도의 시선은 흩어놓았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강도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고등학교 무렵에는 싸움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싸움꾼은 아니었다. 그저 놀이 차원에서 싸움―그는 스포츠라고 주장했다―를 즐기는 친구였다. 그는 열정으로 가득 찬 붉은 인간이었다.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안다리후리기가 생각난다. 생각난다기보다는 몸이 안다. 한다. 강도가 옆으로 고꾸라진다. 그 순간에도 손에 잡은 칼은 놓지 않는다. 큰일이다. 강도의 발에 차였던 개는 비틀대며 일어나려 한다.
나는 강도의 얼굴을 걷어찬다.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가 내 다리를 잡고 당기자 나는 중심을 읽고 넘어져버린다. 개가 다시 얼쩡거리지만 강도에겐 귀찮은 것일 뿐이다. 나는 이 이상의 방도가 없다. 현재 시각이 무척 궁금하다.
한 오전 6시 15분? 죽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시간을 중얼 거린다. 제사는 누가 지내주나.
아아― 10일에 제사에 가야 하나, 라는 생각으로 부터도 해방이다.
퍽―
크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내 몸에서 나는 것은 아니었다. 소화기를 들고 있는 젊은 사장의 모습이 일렁인다. 그가 한 것이다. 강도를 울림통으로 쓴 것이다.
얼마 안 되는 긴 시간을 겪으니 경찰이 왔다. 다친 것은 다만 강도와 여자를 위해 싸웠던 개와 세 번째 진열대에 있던 쏟아진 컵라면뿐이다. 그 중 컵라면은 내 점심 식사거리다. 다쳐서 상품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공짜로 받았다. 낄낄낄. 강도와 거사를 치르고 대가로 컵라면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전화번호도 얻었다.
“이야. 형님 아니었으면 나 다쳤을지도 모르겠네. 고마워요. 그런데 이곳에는 웬일이세요? 쉰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잠시 일이 있다고 했죠? 그 일이 여기에도 있었네요.”
젊은 사장이 박수를 탁― 치고는 검지를 치켜세운다.
“아! 혹시 강도를 잡는 게 그 일이었어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요?”
그 말도 안 되는 발상에 나는 답한다.
“그럴 리가―” 그가 내 말을 받아서 말한다. “없겠죠? 하하하.”
사장이 “아! 그러고 보니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한다. 이럴 때면 귀를 틀어막아 버리고 싶다. 달팽이 같은 사장이다.
다음날, 나는 전날―강도가 들었던 날―오후에 전화로 약속한 대로 오늘 오후 그녀를 만나러 간다. 그녀의 이름인 ‘이주리’이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리다. 8시 20분에 잠에서 깬다. 요 며칠사이 일찍 일어났더니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나는 거울 앞에 선다. 내 눈은 호수 같은 것이 애수가 있다. 그녀와 나는 커피숍에서 만난다. 권태하게 앉아있는 우리에게 점원이 다가온다. 주리는 캐러멜 뭐시기를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어제는 정말 감사했어요. 덕분에 살았어요.”
그리고 나는 어제를 생각한다. 어제 내가 한 일이 무엇이던가. 전혀 없는 걸로 아는데.
“난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강도가 저에게 다가올 때 강도에게 달려들어서 절 구해주셨잖아요. 게다가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어요.”
“그런데 그 개는 어떻게 됐어? 괜찮아?”
“덕분에요.”
그녀는 괜찮아요, 라는 말을 생략했으리라.
“그런데 그 개는 어때? 사람들은 개를 보고 보통 반려동물이라고 하던데, 가족 같은 거야?”
“네, 저는 어릴 때부터 많이 불안해했어요. 물론 어릴 적 기억이라 흐릿하긴 하지만요. 네, 확실해요. 저는 불안했었어요.”
나는 “흐음.” 하고 고개를 한번 끄덕한다.
“저는 어릴 적에 농촌에서 살았는데 그때 친한 친구가 있었어요. 사실 저는 저희 부모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친구만은 무척 좋아했어요. 그 친구와 놀 때는 뭐랄까, 마음이 놓였거든요.”
점원이 주문한 것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는다. 나는 커피를 홀짝 마신다. 볶은 콩 즙은 무척이나 쓰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이사를 가 버렸어요. 한마디 통보도 없이.”
나는 슬쩍 미소를 띠다가 혹여 그럼 안 되는 것일까 봐 입을 가린다. 그리고 입을 연다.
“비슷한 추억이 있네. 역시 인간은 다 비슷하다, 그런 걸까? 나도 어릴 때 촌에 살았어. 뭐, 너랑 비슷하게 부모님을 무척 싫어했지만, 그리고 친한 친구도 있었었지. 그때는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그 아이를 좋아하진 않았어.”
그때의 나는 할아버지에게 화를 당하지 않는 그 아이가 부러웠다. 어린 맘에 그만 미워하기도 했다. 나는 노트를 펼쳐 머릿속에 떠오른 한 문장을 적는다. 그것은 내 시의 일부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런가요. 아차, 그런데 어제 그 이른 시간에 편의점에는 왜 간 거예요?”
너를 미행했어, 라고 말을 하려다 그것은 할 것이 못 된다 생각하고 정정한다.
“당신을 봤거든. 뭔가 낯이 익어서. 다시 말할게 우리 언제 본 적 없어?”
그녀는 웃는다.
“사실 저도 어디서 본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본 적 없을 걸요?”
―걸요. 나는 입으로 슬며시 주리의 말을 따라했다.
“확실히?”
“글쎄요. 확실히는 못하죠. 뭐 전생에 만났다거나, 언제 한번 인연이 있었을 수도 있죠.”
“아차, 그런데 성이 같은데 본관이 어디야?”
“음, 저도 몰라요.”
하하, 주리도 바보 같은 달팽이다. 나는 피식 웃는다. 나는 어릴 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것은 이를테면 공통점이다. 이야기가 계속 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둘만의 공간이 전개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단연코 아니었다. 시간만은 제 직무를 다하여 열심히 달리고 있다. 벌써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다. 주리를 보면 어제 강도의 피 흘리는 모습이 생각나서 그럴까, 피가―핏줄이?―당긴다.
그녀와 나는 핏물 뚝뚝 떨어지는 설익은 고깃덩어리 이를테면 스테이크를 먹고 헤어졌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어릴 적 부모님과 살았다. 그리고 걸어서 멀지 않은 곳에 조부모가 살았다. 유년 시절은 그곳에서 보내고 청소년 시절에 부모님과 이곳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항상 혼자인 때가 많다고 했다. 이를테면 부모님은 맞벌이요 그녀는 외동인 것이다.
그녀는 화가다. 색을 조화롭게 섞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인간이 가진 색들이 서로 잘 섞인다면 얼마나 어여쁠까. 하지만 난 아직 색들이 제대로 섞이는 것을 본 일이 없다. 할아버지의 제사까지는 4일이 남았다. 그것은 도리어 나와 섞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은 필요치 않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언젠가 했던 사랑과는 다른 느낌이다. 뭘까? 더 고차원의 사랑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제사까지 3일이 남은 날이다. 오늘도 나는 그녀와 만난다. 나는 여유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세간에서 말하는 여유는 사회악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사회악인 것이다.
“저는 그림을 자주 그려요.” 라고 그녀가 말한다. 이어서 “색을 조화롭게 표현하려 하죠.” 한다. 나는 그녀에게 그림을 보여 달라고 제안한다.
내 말에 주리는 가방을 뒤적인다. 무엇이 바리바리 들어있는지 한참을 뒤적이다 한 장의 그림을 꺼낸다. 그림 속에는 풀이 보인다. 그러나 그 모습은 퍽― 이상하다. 현실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과 동시에 현실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름답다. 동시에 허허하다. 나는 그림에서 눈을 땐다.
“무엇을 표현한 거야?”
그녀는 그림을 다시 집어넣는다. 그리고 내 눈을 응시한다.
“무엇을 표현한지는 중요치 않아요. 무엇을 느꼈나요. 무엇을 느꼈던지 그게 정답이에요. 그래서 무엇을 느꼈나요?”
나는 웃는다.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나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색이 섞여서 그림이 된다는 건 꽤나 대단한 거네. 그런 의미에서 화가는 대단하고 또 너도 대단해.”
색이 섞여서 아름답다.
“아! 그러고 보니 저 3일 뒤에 어디로 가야 해요. 그래서 그날은 보기 힘들 거예요. 애초에 그렇게 자주 만나는 것도 이상하지만.” 하고 그녀는 우리 관계에 대해 웃는다. 그리고 잇는다. “그런데 우리 사귀는 건가요?”
나는 입을 열―려고 하자 그녀가 다시 잇는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죄송하지만, 사귀기 싫어요.”
조용하다. 도리어 정적이 날뛴다. 그것을 깨고 나는 더욱 도리어 활개 친다.
“나도 너랑 사귀기 싫어,”
다시 정적이 인다. 그러다가 우리 둘은 하하 웃는다. 나는 이어 말한다.
“처음부터 사귈 생각 없었어.”
“그럼 왜 연락처를 물어봤어요?”
“뭔가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 뭐,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녀가 머리를 왼쪽으로 재치고 빗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에? 그 말 거짓말 아니었어요? 진짜에요?”
“넌 내가 아주 싫어하는 소녀랑 닮았어. 내가 할아버지한태 맞고 살았다고 말했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 소녀가 우리 집에 오면 할아버지는 거짓말같이 잘 대해줬거든. 그래서 싫었어.”
할아버지와 과거의 집과 그 소녀를 생각하면 꽃이 떠오른다. 그렇기에 나는 꽃을 싫어한다. 도무지 만지지도 않는다. 꽃이 손에 닿는다면 내 정신이 화가 나 날뛸지도 모른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리듯이 말한다.
“아! 그거 질투 아녜요? 후훗, 그렇게 안 봤는데 어릴 때는 질투쟁이셨구나. 그래서 질투 나서 저도 싫어요?”
질투란 단어에 나는 웃는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지옥이란 것을 보여주었다. 필히 질투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가 미웠다. 그 이전에 그 이상으로 부모님이 미웠다. 그들의 죽음이란 이유로 내가 악마에게 내버려졌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 앨범을 펼쳐 본 일이 있다. 언제 일인가 모를 사진들이 많이 있었다. 거기에는 흉물스러운 사진들이 많았다.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이 특히 그렇다. 행복한 사진 속에는 소녀가 있었다. 나는 앨범을 몇 번 넘기다가 생각했다. 행복한 것이 나올 때는 항상 그녀가 있구나.
“그런데 너 처음에 내가 말 걸었을 때 무시했잖아. 왜 그랬어? 작업 거는 줄 알았던 거야?”
그녀는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다. 나는 그녀가 대답하기를 기다린다. 입술을 칠하고 말한다.
“그런 것도 있지만, 뭐랄까 만나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리고 사실 저도 뭔가 낯이 익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피했어요.”
“그런데 네 어릴 적이 불안하다고 했지? 뭐 좀 물어도 될까?”
그녀는 “네,”하고 짧게 답한다. 그리고 목을 가다듬고 말을 시작한다. 그녀에 말에 따르면 그녀는 꽤 부유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꽤 축복된 일이라 생각한다만, 그녀로써는 부모에게서 뭔가 차가운 벽을 느꼈다고 한다. 주리는 “지금에서야 하는 말인데. 음, 우리 부모님은 양부모에요.” 한다. 그리고는 눈웃음 짓는다.
“비밀이지만요. 아무한태도 말하면 안돼요. 알았죠? 저는 저희 부모님한태도 비밀로 하고 있어요. 뭐, 할머니는 알고 계시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라고 해뒀으니까요.”
그녀의 내력을 알게 되었다. 그녀를 한층 깊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적당한 말을 찾다가 3일이라는 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신경이 쓰인다. 영감의 제삿날이 3일 후 이기 때문이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나는 우물쭈물 하다가 입을 연다. “양부모라고 하면 원래 부모님께서 버리거나 한 거야?”
“버린 게 아니라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다른 아기를 돌봐야 해서 저를 키울 능력이 안 됐대요. 그런데 마침 가까운 집에서 입양을 원한다고 해서 저를 그곳으로 보냈대요.”
“다른 아기? 아무리 그래도 손녀가 먼저 아니야?” 나는 검지를 치켜세운다. 내 모습에서 똑똑한 척 하는 사장이 떠올랐다.
“그 다른 아기가 제 오빠였어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는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도 자주 놀았어요. 그때 그 아기도 같이 놀았죠.”
나는 눈을 크게 떴다가 한숨을 쉬며 눈을 본래의 크기로 되돌린다.
“오빠가 혼자 떠난 너를 미워하지 않았을까?”
“그건 모르죠. 기억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확실히 기억나는 게 있어요. 오빠가 제 귀에 꽃을 하나 끼워주고 같이 놀았던 거죠. 이정도면 좋은 추억 아니에요?” 그녀는 웃는다. 나는 손에 땀이 나 죽겠다.
“그런데 3일 뒤에 어디로 간다고 했지? 어디야?”
“음, 제사에요. 하루 지나면 올 거예요. 그리고 우리 안 사귀어도 연락하고 살아요.”
제사라니 이거 참 우습다.
“연락 할 필요 없겠는데?”
나도 이번엔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제사에 가봐야겠다. 어쩌면 나는 내 껍질의 역사도 모르는 달팽이다. 나는 달팽이 같은 인간들이 싫다. 그러니 나는 내가 싫다. 하지만― 비온 후 꽃에 나앉은 달팽이는 퍽 아름답다. 비록 하얀 국화 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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