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자,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가족을 위해 지금까지 누구보다 살아왔다. 가족은 나에게 전부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시계가 8시에 울리며 나를 깨웠다.
출근 시간이다, 8시에 일어나서 간단히 씻고 아내와 딸이 잠들고 있는 시간에 간단히 우유와 빵을 먹고 나간다. 그리고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며 늦지 않았는지 시간을 체크한다. 이제 곧 버스가 올 시간이니 일어서서 기다려야겠다.
그렇게 5분 후, 나는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 곳에 있는 거지’
나는 두리번거리면서 내가 옷을 다 입고, 가방까지 가지고 난 어디로 갈려고 했던 거지.. 음, 나 지금 퇴근하고 돌아오는 중 이었나보군. 그래서 여기서 잠깐 잠이 든 거였어.. 요즘 따라 피곤하더라니 이젠 아무데서나 잠을 자네.
난 그렇게 내 앞에 멈춰서고 문을 연 버스에 별 관심 없는 듯 뒤돌아 다시 집에 가기 시작했다. 집에는 아내와 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같이 밥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채 들어갔다.
‘여보, 딸.. 나왔어’
문을 열고 나는 아내와 사랑스런 딸을 불렀다. 퇴근했다는 즐거움과 가족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리고 안방에서 문이 열리며 피곤하다는 듯이 눈을 비비며 아내가 나왔다.
‘음.. 자기야 뭐 놓고 갔어? 왜 다시 왔어?’
‘무슨 소리야, 나 퇴근 하고 온 건데, 여보 잠 덜 깼구나?’
‘자기야.. 지금 오전 9시야, 일 끝날려면 한참 멀었어’
무슨 소리를... 나는 다시 시계를 바라봤다, 시계의 침은 정확히 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난 정류장에서 잠에서 깨서 왔으니 퇴근 시간이 맞을 텐데..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아내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기에 잠깐 머리를 식히기 위해 물을 마시기 위해 잔을 꺼냈다. 그래.. 꺼냈는데, 내가 왜 꺼냈지?
내가 왜 이 잔을 들고 있지?, ‘여보 거기서 뭐하고 있어?’‘
내 말에 아내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기야, 지금 뭐하는 거야? 장난 하는거야? 아까 나랑 대화했던 거 기억 않나?’
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것도 단지 지금 물 잔을 든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아내의 표정이 내 뇌리 속에 박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자주 잠이 들었다. 요즘 따라 길을 걷다가, 버스를 타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앞이 캄캄해지기에 그저 피곤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이젠 느낀다, 나의 머릿속에서 이젠 점점 모든 기억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곧 아내의 존재도, 딸의 존재도, 마지막엔 나마저도 사라지겠지.
나 알츠하이머에 걸린 걸까? 하지만 속단하기는 이르다, 먼저 병원에 가봐서 지금 내 상태를 알아야 겠지.
그저 건망증일수도 있다, 요즘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잠깐 기억이 가물 가물한 걸 수도 있다. 그래, 그런 걸 거야.
시원한 물이 넘어가면서 모든 생각이 정리되면서 내 머릿속은 정리 되면서, 내 앞에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가 있다는 것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보, 나 잠깐 밖에 나갔다 올게’
아내는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남편을 믿고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잘 갔다와.. 저녁은 자기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준비해놓을게’
‘그래.. 빨리 들어와야 겠네..’
후우.. 기억이 잃기 전에, 내 손에 신경 병원 꼭 가기라고 써놨다. 언제 기억을 잃을지 모른다.
택시를 타고, 병원 앞에 내려 신경 병원에 가서 다행히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환자 분 무슨 일로 오셨죠?’
난 알 수 있었다. 점점 내 눈 앞이 캄캄해 진다는 것을.. 안되는데..
‘제가 여길 왜왔죠?, 여긴 어디죠?’
‘여긴 신경에 대해 진찰하는 병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의사구요.’
이상하다, 내가 왜 또 이 곳에 왜왔지, 이 곳을 박차기 위해 의자를 잡고 가기 위해 나가는 순간 손을 본 순간 한마디의 문장을 봤다.
‘신경병원을 꼭 가야해, 당신은 기억에 문제가 있어’
이 글씨, 내가 쓴 거 같은데 하지만 내가 쓴 기억이 없는데..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 앞의 의사, 내 손에 써 있는 글씨,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지만 이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제가 이 곳에 와서 선생님께 무슨 말을 했나요?’
‘아니요, 의자에 앉고, 제가 말을 하자마자 환자분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눈이 되어서 왜 왔는 지 말했어요.’
‘그렇군요, 그럼 전 무엇을 검사하러 온 건가요?’
‘당신은 기억에 문제 있다고, 혹시 알츠하이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저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검사할 겁니다. 이제부터 제가 묻는 질문에 대답해주시면 됍니다.’
내가 알츠하이머? 말도 안돼, 이렇게 기억이 멀쩡한데.. 난 이렇게 내 이름도 기억나고 내 아내, 내 딸을 모든 걸 기억하고 있어.
그 때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이가 없군, 자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가.. 당연히 당연히.. 박.. 뭐였지?
‘박.. 박..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럼 당신이 사는 곳은 어디입니까?’
‘경기도.. 선생님, 꼭 자세히 알 필요 없잔아요. 잘 만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당신의 아내 이름이 뭔가요?’
제발.. 희미하게 보인다, 나에게 항상 웃으며 반겨주고 날 안아주는 그 여자. 여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이 나지 않아요..’
‘검사는 끝났습니다.’
난 느꼈다, 아니 확신하게 되었다.
이 순간, 내 이름조차 내가 사랑하는 내 기억속에 있는 희미하게 보이는 그 여자의 존재가 기억나지 않는다.
난 모든 기억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환자분이 말한 걸 검사한 결과, 간단한 건망증이 아닌, 99프로 알츠하이머일 가능성으로 판정되었습니다.
기억은 사라진 게 아니야, 멀리 여행 갔다가 돌아온 것 뿐이야.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후 남자는 절망에 빠졌다. 아니 왜 절망에 빠진지도, 가족의 존재가 있는 지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남자는 조금이라도 기억이 있었을 때 병원에 자신을 가뒀다. 누구도 자신을 찾지 못하게, 그저 하루가 처음처럼 느끼며 마지막으로 느끼는 삶을 살기 위해..
어느 때와 같이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내가 입원하고 있는 문을 열고 어떤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깨 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머리카락과, 언제라도 눈물이 나올 듯이 슬퍼보이는 눈동자를 가진 여자였다. 나를 보자마자 그 여자는 한 방울의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 모르는 여자는 왜 날 보고 우는 걸까? 그리고 난 왜 울고 있는 걸까?
이 여자가 누구 길래, 울음이 멈추지 않는 내가 희한했다.
여자는 내 앞에 다가오더니 울음을 꾹 참더니, 인사를 꾸벅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제가 누군지 모르겠죠.. 어쩌면 지금 처음 본 여자가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린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어요.’
‘그렇군요.. 하지만 전 당신이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을 본 순간 눈물이 났어요. 이상하네요.’
‘내일 또 올게요, 물론 당신은 곧 저를 잊겠지만 제 이름을 알려드릴게요. 제 이름은..’
이상한 여자가 나갔다. 그리고 오늘 꾼 꿈이 생각났다. 내가 일이 끝나고, 사랑 하는 아내와 딸이 문 앞에서 반겨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가 식탁에 준비되어 있었고, 우린 같이 밥을 먹으며 웃고 떠들며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상을 얘기를 했다. 그런데 꿈 속의 여자의 얼굴이 누구였지.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머리카락, 왠지 모를 슬픈 눈동자.. 그리고 그리고.. 이름이
‘물론 당신은 곧 저를 잊겠지만 제 이름을 알려 드릴께요, 제 이름은 최은경이에요..’
내 아내 이름이.. 최은경이었어..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발 이 기억이 없어지기 전에 아내가 돌아오길 간절히 바랬다.
그 때 아내가 문을 열고 다시 돌아왔다.
‘아, 제가 가방을 놓고 갔어요.’ 가방을 들고 갈려는 아내의 손을 나는 잡았다.
아내는 내 눈을 바라봤다.
‘무슨 할 말이 있나요?’
‘아니요.. 내일 또 보자고요..’
이 기억이 언제까지 내 마음속에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너를 기억하기에 제일 소중한 존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이 삶이 찬란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이 또 다시 사라진다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눈앞의 아내를 내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잠깐 어딘가에 멀리 여행 갔다가 돌아온 것 뿐이다.
박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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