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당신이 말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어요.
궁금해, 당신이 내 말을 들을 수 있는지
눈이 떠지고, 익숙한 하얀 천장, 그리고 뚝 뚝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들.. 그리고 내 몸에 느껴지는 통증들, 아프다, 온 몸이 따끔거린다.
하지만 난 움직일 수가 없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아파서 눈에서 뭔가가 떨어진다고 느꼈지만 아무것도 흐르지도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느낄 뿐이었다. 단지 상상 속에서 눈물이 흐른 거였다. 왠지 모를 자괴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괜찮다, 한 두 번 겪는 상황도 아니니까..
그래, 난 지금 3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생각도 하고, 귀도 잘 들리고 무엇 보다 앞이 잘 보인다. 내 눈은 분명 앞을 보고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내 손과발은 어느 순간부터 굳어져 있어서 사람들은 내 손발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길, 또는 심장박동이 뭔가 변화를 일으키는 기적을 바란다. 그래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난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고, 숨만 쉬는 시체처럼 보이지만 모든 게 정상이다. 단지 말을 못하고, 눈의 초점이 없을 뿐이다. 다른 사람과 뭔가 다르다고 이렇게 차별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이런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중에, 문이 열리며 내 친구들이 들어왔다.
참고로 내 친구들은 남자들 밖에 없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시끄러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처음에 혼수상태라는 소리를 듣고 친구들은 정말 눈물범벅이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날 예전처럼 대하고 있다. 차라리 지금이 났다. 매일 우는 친구들은 왠지 낯설다.
2명이 왔는 데 그 중 통통한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녀석은 마음이 여린 녀석이다. 누구보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슬퍼했고, 지금도 웃고 있지만, 벌써 눈물이 고여 있다.
‘얌마 아직도 이렇게 있으면 어떻 하냐, 빨리 일어나.. 너답지 않게 누워있네, 빨리 일어나서 한잔 해야지!!’
그래, 임마 곧 일어날게 좀만 기다려라, 그리고 눈물 좀 그치고 에휴 덩치에 맞지 않게 눈물만 많아가지고..
이번엔 또 다른 녀석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키가 작고, 귀엽게 생긴 남자였다. 희태였다.
‘중원아, 우리랑 한 약속 잊지 않았지? 같이 아일랜드 가기로 했잔아. 니가 멋대로 깨면.. 그러면 내가 용서 못해.. 그러니까 일어나’
약속 잊지 않았지, 그 약속 만큼은 지킬게. 희태야 조금만 기다려줘, 1년? 아니 조금만 더 시간 줄래? 우리 꼭 아일랜드 가자..
슬프다, 어떤 말도, 나의 어떤 생각도 이 녀석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한다고 하지만, 지금 와서 뭐가 소용이 있을까? 과연 내 친구들이 내 마음을 알아줄까? 이렇게 내가 크게 소리치고, 말하고 있다고 한들, 알아줄까?
다 개소리다, 내가 마음 속에서 울어도, 웃어도 누가 알아줄까.. 다 개소리다.
친구들은 밤이 돼서야 돌아갔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은 나 이외에 없는 정적만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오로지 창문 틈사이에 은은한 공기가 불고, 내가 몇 초마다 간간히 내쉬는 숨들이 모든 소리였다.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공간에 난 무엇도 하지 않았고, 누구도 내 공간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짝이는 별도, 달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내 공간에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문이 딸깍하며 문이 열리며 툭툭 하는 발이 아닌 봉으로 바닥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당신은 누구지, 내가 보기에 당신은 내 손님이 아니야, 딱 봐도 당황한 표정과 이리저리 보며 뭔가 낯선 공간에 서있는 듯한 사람의 표정은 날 보러 온 사람이 아니겠지. 당신은 누구지?
‘저..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여기가 몇 호실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금 301호실을 찾아가야 하는데, 왠지 제가 잘못 찾아온 거 같아서요.’
가만히 보니, 한 쪽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와 눈동자는 날 보는 게 아닌 창문을 보고 말하고 있는 모습이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 인 거 같았다.
‘저.. 혹시 주무시고 계신가요, 제가 그럼 실례했군요.. 누군지 모르지만 아무튼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그럼..’
좀 더 얘기해도 되는데.. 아쉽네, 다시 지팡이에 의지 한 채 문을 열고 가는 그녀는 라벤더 향을 가진 향수를 뿌렸는 지 내 병실에는 은은한 라벤더의 향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생각하며, 어느 순간부터 입꼬리가 올라간 것도 모른 채 오늘의 끝을 맺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올리며,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며 내 눈 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눈에 눈물을 머금는 사람,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내 얼굴을 따스하게 쓰다듬는 사람, 어머니였다.
‘아가, 난 믿는다. 너가 내일이라도 아니 오늘이라도 내 손을 잡으며 엄마라고 말할 거라고.. 너의 눈은 분명 지금 날 바라보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고 난 믿어.’
엄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엄마의 손, 곧 잡아드릴게요, 엄마의 눈물 곧 닦아드릴게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난 엄마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내 눈은 그저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엄마는 날 믿었고, 나도 내 자신을 믿으니까,
드르륵 소리를 내며, 흰 색 가운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나를 담당하는 의사선생님이었다. 엄마는 눈물을 닦고 의자에서 일어나 의사선생님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의사선생님 또 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님, 아직 분명 희망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저 또 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중원이도 분명 저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거에요.
중원아, 우리 말 듣고 있지? 선생님은, 널 포기하지 않을 거란다, 너가 깨어날 거란 걸 믿거든..’
선생님은 그 말을 하며 내 손을 잡았다.
의사선생님, 저 절대 포기 하지 않을게요, 이렇게 모두를 보고 들을 수 있잔아요.
그리고 의사선생님은 어머님께 인사하고 나갔다. 모두가 날 포기하지 않는다, 왠지 모를 희망이, 기적이 일어날 듯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됐다.
어머니는 잠깐 화장실을 간다면서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갔다. 그리고 내 심장소리만 들리는 이 순간이 왠지 모를 긴장감을 준다.
그 때 이 긴장감을 깨듯이, 문이 열리며 주사 바늘을 든 간호사가 들어왔다.
‘실례할게요, 중원씨!’ 씨익 웃으며 왠지 모를 활발한 말투와 함께 나에게 다가왔다.
이틀에 한 번씩 들어오는 이 활발한 간호사는 나에게 주사를 넣으면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는 재밌는 여성이다.
‘하아 중원씨, 제 얘기좀 들어보세요.. 제가 어제 소개팅을 했는데.. 그 남자가 맘에 들었는데 이러쿵 저러쿵..’
모든 고민의 처음과 끝은 남자로 끝난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롭다. 모든 게 하나 같이 색달랐다.
그래서 이 간호사가 문을 열고 올 때, 마음속에서 웃음이 나고, 이번엔 어떤 얘기를 갔고 왔을지 기대되고 궁금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할 만큼 흥미로운 에피소드였고, 간호사는 자신의 모든 얘기를 다 털어놓고 나서 마음이 홀가분한 듯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중원씨 오늘도 고마워요, 제 고민 들어줘서, 나중에도 또 들어줘요’
나야말로 고마워요, 당신 덕에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었네요.
갑자기 어제의 라벤더 향을 지닌 여자가 생각났다. 오늘은 오지 않을려나, 눈이 보이지 않으니 또 올 수도 있을 텐데..
뭐 오지 않아도 나야 상관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를 또 보고 싶은 마음이 든 건 뭘까.. 툭툭 소리를 내며 지팡이로 바닥을 때리며 눈은 허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설레임을 준 여자.. 한 번더 잘못 찾아오길 바라는 건 헛된 기대 인걸까?
이젠 더 이상 잘못 찾아 올 리가 없으니까.. 그래, 이젠 올 리가 없다.
그래, 이제 그녀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이 곳에 올 이유도 없고, 찾아올 수도 없다.
왠지 우울한 마음에 복잡한 생각이 끝없이 물고 또 물었다.
그 때 누군가가 툭툭 하며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귀는 코는 문을 열고 들어온 발걸음, 향기에 초점을 맞췄다.
누굴까, 라벤더 향기?, 지팡이 소리..
들리지 않아, 아무 것도 그 여자가 아닌가?
그 때 은은하게 라벤더 향기가 콧속에 들어온다. 설마 그 여자인가?
그리고 툭툭하며 지팡이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근..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왜 또 온거지?, 또 잘못 찾아온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어서..
그때 그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기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제가 처음에 왔을 때 이 곳에 왔을 때 몇 번을 걸어서 왔는 지 수없이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왔거든요, 물론 시행 착오가 있긴 했지만요.. 다른 입원실도 갔다가 왔어요.
매일 처음 있는 곳에서 시작해서 이 곳을 찾을려고 했어요. 아 왜 이곳을 올려고 했냐구요? 음.. 글쎄요, 왠지 이 곳에 있으면 저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과 말이 없어서 편안해요. 저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느껴져요, 저를 안쓰럽고 불쌍하게 대하는 태도, 최대한 잘해줄려고 하는 말들 모든 것들이 보여요. 그래서 전 더 무섭고, 더 피하게 돼요. 왜 사람들이 제가 눈이 보이지 않다고 불쌍하다고 느끼죠? 전 단지 앞이 보이지 않을 뿐이에요, 그 뿐이에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절 대하고 그 사람들 기준에서 왜 날 바라 볼려고 하는 거죠?
사람들은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고, 슬프다고 자기 멋대로 생각해요. 하지만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까지 그렇게 바라보니까 난 더 이상 누구와도 말을 하지 못해요. 내 스스로도 불행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지니까요. 내 눈이 불행의 원인이라도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처음 여기 왔을 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아무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 당신이 있는 이 곳이 편안했어요. 이 곳만이 내 안식처 같았고, 나를 유일하게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번더 오고 싶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행복했다. 아니 내가 말을 하지 못한 이유가 지금 혼수상태인 지금 내가 처음으로 보람 있었다. 그녀에게 도움이 되어서, 기뻤다. 난 당신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이렇게 손도 발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허공을 바라본 채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을 뿐이었는데, 당신은 그렇게 느꼈다니..
그녀는 눈이 그대로 허공을 바라본 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전 당신을 볼 수 없어요, 아니 지금 당신은 웃으며 날 보고 있어도 난 당신의 표정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난 느낄 수 있어요, 당신은 왠지 그저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들어줄 거 같아요. 당신만큼은 날 편견 없이 대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물론 이게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요. 하아, 오늘 제 마음속 얘기를 다하고 싶지만 많이 늦었으니까, 다음에 또 올게요. 그럼 잘자요’
조심히 가요, 다음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기다릴게요.. 문이 닫히며 라벤더 향기가 코 끝에 맴돌기 시작했다.
오늘은 왠지 기분 좋은 꿈을 꿀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꿈을 꿨다, 나는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다. 분명 초록등이 깜빡이고 있었고, 양 옆에는 어떤 차도 오지 않는다는 안전함에 핸드폰을 보며 지나갔다. 하지만 그 안일함이 문제였을까? 내가 핸드폰을 본 순간에 왼쪽에서 빵빵 거리며 달려오는 트럭을 나는 눈 앞에 왔을 때서야 바라봤다.
젠장, 하필 이 꿈을 꾸다니 매일 같이 같은 꿈을 꾼다. 내가 이런 혼수상태가 된 사고였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서 지웠다고 믿었다. 하지만 잠을 자면 꿈 속에서는 이런 나에게 그 때의 사고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꿈을 꾸고 나면 왠지 찝찝하고, 느낌이 쌔 하다. 물론 느낌일 뿐이지만..
그렇게 악몽을 시작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악몽 때문이었을까, 오늘은 두꺼운 비가 왔다. 툭 툭 거리며 한 방울씩 떨어지는 기분 좋은 비가 아닌 우산을 써도 옷을 다 젖게 하는 기분 나쁘게 하는 비가 오고 있다.
이런 날씨에는 파전에 막걸리인데, 슬프게도 나는 어떤 음식도, 술도 먹을 수도 없는 신체가 되었다. 단지 내 머리 위에 떨어지는 기분 나쁜 액체만이 내가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내가 입원한 205호실을 처음으로 두들긴 사람은 다름 아닌 의사선생님이다.
선생님이 왠일로 이른 아침에 오셨지, 왠지 슬픈 표정과 고개를 떨군채 내 앞에 다가왔다.
‘중원아, 난 지금 까지 너의 상태를 희망적으로 바라봤어. 분명 눈을 뜨고, 느리지만 왼쪽에서 오른쪽을 바라본다는 건 분명 아직 너가 살아있다는 신호겠지. 눈의 시선은 곧 뇌와 연결되어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 때부터 너의 상태는 나아지는 기미가 없어. 물론 사람마다 몇 년후에 기적적으로 나아질 수도 있지만, 너는 달라. 지금 뇌의 신경이 점점 죽어가고 있어.
2주 후까지 일어나지 않는다면 너의 모든 신경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될 거야. 그러니 제발 그전에 일어나줘, 손이라도 발이라도 움직여줘
부탁이야 중원아..’
무슨 말을 하시는 거에요, 선생님 저 포기 하지 않는 다고 말하셨잔아요. 그런데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에요.. 지금.. 제 뇌가 죽어가고 있다는 건 무슨 소리에요.. 이렇게 선생님을 보고, 듣고 있는데.. 전 살아있어요.. 살아있다구요..
난 손을 움직여봤다, 제발.. 움직여.. 손가락 하나 하나의 신경에 힘을 줬다. 이마에 땀이 나는 착각이 날 정도로 힘을 줬다. 하지만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래? 이번엔 발을 움직여 보자, 으으으으., 아니 어떻게 내 몸이 내 말을 안 들어, 이게 말이 돼? 조금이라도 움직여 줄 수 있잔아?
난 이렇게 죽기 싫어, 이렇게는 죽을 수 없다고.. 순간 가늠할 수 없는 슬픔에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 눈물 난 거 같은데, 저기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저 눈물났어요!!
제발 제가 눈물 흘린 것 좀 봐주세요, 나 살아 있다구요, 당신들처럼 살아있다고!!
하지만 내 외침은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눈물이 다 그친 2시간 후에야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어왔다. 그리고 뒤에는 내 동생도 들어왔다.
동생은 오랜만에 얼굴을 비쳤다. 내가 처음에 혼수상태 이었을 때 오고 큰 충격을 받았는 지 그 이후로 오지 않았다가 지금 오랜만에 왔다.
여동생은 아직 내가 낯설은 지 부모님 뒤에 숨어서 다가왔다.
지은아 오빠가 너 좀 자세히 보게 일루 좀 와봐, 왜 뒤에 숨어있어, 왜 이렇게 겁쟁이가 됐대?
‘지은아, 오빠한테 인사해야지?’
엄마의 말에 지은이는 숨을 꿀꺽 삼키며 다가왔다.
‘오빠 오랜만이지, 나왔어.. 잘 지냈어? 난 지금 대학교 다니면서 지내고 있어. 물론 공부는 여전히 못해.. 오빠, 지금 많이 아프지? 매일 아픈 주사 맞고.. 의사선생님이 말하시는 데 곧 편안해질 수 있대 그러니까 조금만 견뎌’
지은아 무슨 말 하는 거야.. 내가 편안해 지다니, 너 설마.. 내가 낫지 않길 바라는 건 아니지?
‘지은아 너 지금 무슨 말하는 거야? 오빠가 지금 당장 나을 수도 있길 바래야지!! 오빠 앞에서 그런 말 왜 하는 거야’
엄마는 지은이를 나무라하는 말을 하며 혼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되려 화를 냈다.
‘이제 그만해, 할 만큼 우린 했어.. 분명 중원이도 지금 많이 아플거야, 얼마나 고통스러울 거야? 우리가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게 더 이 아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걸 수도 있어. 이제 놓아줄 때가 된 걸 수도 있어..’
아버지.. 무슨 말을 하시는 거에요, 나 들린다구요.. 보인다구요, 아직 절 포기하시면 안돼요.. 그래. 아까처럼 눈물을 흘리면 날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하아.. 제일 슬펐던 게 뭐였지.. 아 그래, 그 때 사고를 당했을 때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며 울었을 때 제일 슬펐어.
마음이 슬퍼오고, 곧 눈물샘에 눈물이 가득 찬다. 하지만 그 땐 모두가 문을 열고 나간 이 후였다.
엄마,아빠,지은아 어디갔어.. 나 아직 살아있어, 이렇게 난 살아있다고..
하지만 아무도 없는 허공에 무언의 외침이었다. 누구도 듣지 않았고, 들어주지 않았다.
날 포기하지마, 왜 다들 날 포기할려고 하는거야, 왜 날 버릴려고 하는 거야.. 마음이 쓰리다, 슬프다.
살아있음을 느끼지만, 난 지금도 말을 하고 있고, 감정을 느끼고 있지만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고, 단지 자신만의 기준으로 날 판단하려한다. 그저 혼수상태에 놓여있는 뇌세포가 사라져가는 죽어가는 사람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인간 일뿐이다.
희망도 기적도 이젠 모든 게 사라졌다. 이젠 나에겐 뭘 기대하는 건 쓸데없는 기대일 뿐이다. 나에게 희망을 준 기적을 줬던 사람들이 나에게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로인해 불행이 찾아왔다.
그 때 문을 톡톡 하며 라벤더 향기가 물씬 나며 그 여자가 들어왔다.
바닥을 툭툭 치는 지팡이와 느린 발걸음, 그녀만의 향기가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녀에게 위로를 해줄 수 없었다.
나는 이제 곧 죽는다, 모두가 포기했고 오늘이 지나면 당신 앞에 누워 있는 말 못하는 나는 없을 지도 모르지..
당신과 다르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야, 당신은 세상의 편견을 맞서 싸우기 위해 그래도 걷고 또 걸었고, 끊임없이 말했어.
하지만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 할 수 있는 게 뭐지? 내가 이렇게 외쳐봤자,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하는 것과 다른 게 무엇일까..
난 당신과 달라.. 당신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다르기에 난 당신을 이제 위로 해줄 자격이 없어..
그 때 그녀의 입이 움직였다.
‘저.. 실례가 아니라면 당신한테 가까이 가도 될까요? 싫다면 지금 말씀하세요.. 하지만 괜찮다면 지금처럼 말하지 마세요.’
오지마.. 제발 오지마.. 당신이 날 만져서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지 않았으면 해.. 부탁이야, 다가오지마
하지만 이런 나의 절박한 부탁은 그녀에게 들리지 않았나보다, 그녀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긍정의 표시라고 생각했는지 점점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툭 툭 툭하며 지팡이 소리가 나에게 점점 가까워 지기 시작했다.
난 그녀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곧 다가올 그녀의 반응과 표정이 그려짐과 동시에 실망감이 예상됐다.
제발.. 제발,, 돌아가..
후우,, 그녀는 내 침대 옆에 까지 다가왔고, 어느 새 내 뻣뻣해진 손과 발을 만지기 시작했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내 신체는 점점 굳어졌다. 그런 내 손과 발이 이상했는지 얼굴을 만졌고. 코에 꽂아져 있는 산소호흡기의 정체를 느꼈는 지 나에게 말을 했다.
‘저 혹시 지금 말 못하는 상태에요?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인가요?’
내 손을 만지며 말했다. 순간 따스한 감촉에 당황하면서도 두근거렸다. 지금 당신을 보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이 말은 그저 내 마음속에서 맴돌 뿐이겠지.
순간 심장 박동수가 삐-익 하며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여자는 다시 묻기 시작했다.
‘전 당신을 볼 수 없어요, 그러니까 말해줘요.. 지금 당신은 혼수상태인가요?’
난 눈 앞의 여자에게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물론 그 여자에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겠지만, 그래요, 전 곧 죽을 거에요, 아니 내일 당장이라도 죽을 수도 있겠죠, 이런 쓸데없는 질문 하지마요. 어차피 당신은 내 말 들을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짜증이 났다. 어차피 내 말은 빈 허공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런 질문에 답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그 때 내 심장 박동은 누구보다 빨리 뛰기 시작했고, 그에 반응 하듯이 나의 심장을 체크하는 심장박동수는 기준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여자는 갑자기 소리치 듯 말했다.
‘당신 지금 내 말이 들렸죠? 심장박동수가 갑자기 기준치에서 벗어났어요. 신기해요.. 진짜 제 말이 들리다니, 무슨 말을 했는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느껴져요. 당신이 얼마나 절박한 마음인지..’
그녀의 말에 난 신기했다. 어떤 말에도, 누구의 말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심장박동수가 그녀로 인해 움직이고, 답한 것이.. 그로 인해 나는 다시 살 수 있다는 기적이란 희망을 품어봤다.
아침을 알리듯 밝은 햇살이 내 눈가를 적셨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눈가에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보일 뿐이겠지.
하지만 난 누구보다 지금의 따스한 햇살을 느끼고 있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얀 구름을 보고 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의사선생님과 그 밑의 후배들처럼 보이는 많은 의사들이 우르르 왔다.
뭔 저글링도 아니고, 왜케 떼거지로 오는 거야, 사람 불안하게..
그리고 화장실을 갔다 오셨는지, 곧이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바지에 닦으며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머님, 음.. 뇌세포의 악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어요. 더 이상 중원군을 이렇게 잡고 있는 것도 중원이한테 더 큰 아픔을 주는 걸 수도 있어요, 이제는 더 이상의 기적을 바라는 건 무리일 수도 있어요’
어머니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그대로 발에 힘을 잃고 쓰러져,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 뭐라고 말해봐.. 그래도 날 포기하지 않겠다고, 내일이라도 내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엄마가 그랬잔아, 날 믿는다고 했잔아..
하지만 어머니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은채 눈물을 흘리다가 힘없이 일어서서는 한마디를 하셨다.
‘선생님, 저희 모두 중원이를 이제 보낼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 무슨 말을.. 설마 날 포기하는거야? 날 믿지 않는거야?
한 번만 믿어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하고 싶은게 얼마나 많은데, 아일랜드도 가야 하고.. 그 여자한테 하고 싶은 말도 있단 말야..
그렇게 어머니와 선생님은 그 말을 끝으로 나갔다. 진심으로 날 포기한 순간이었다.
꿈을 꾸었다.
가족과 친구들,그리고 의사선생님,간호사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슬픔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왜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는 거지? 왜 슬퍼하는거야?
그 때 의사선생님의 말이 들려왔다.
‘중원이를 이제 보내줄 때가 됐습니다, 모두 작별인사를 하세요’
그렇구나, 모두가 나에게 작별인사를 할려고 모인거구나. 이젠 끝이구나, 그 때 문을 박차며 라벤더 향기가 내 코 끝을 맴돌기 시작한다.
그녀다.. 한 쪽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가 바닥을 치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슬프게 들려온다.
이젠 안녕...
그 순간 꿈에서 깼다.
꿈이었지만, 그녀를 본 것만으로 행복했다. 이제 곧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난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제 그녀의 라벤더 향을 맡을 수 없겠지, 이젠 간호사의 남자 고민도 듣지 못하고, 친구와 아일랜드를 간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겠네.. 모든 게 아쉽고, 나를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의사선생님과 하얀 가운을 걸친 다른 선생님들과 간호사들이 들어오고, 내 친구들과 가족들이 내 주변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정말 꿈이 현실로 실현되는 건가?
그리고 의사선생님의 말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이제 중원이를 보내줄 때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작별인사 하세요’
그래, 이제 정말 끝이구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눈에 맞추기 시작했다.
왜케 다들 슬퍼하는 거야, 그렇게 슬퍼하면 내가 가는 길이 즐거울 수가 없잔아. 다들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먼저 친구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지금 널 보내지만 넌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있는거야, 그러니까 너는 언제까지나 살고 있는거야’
그래, 너희들이랑 친구여서 정말 행복했다. 아 참고로, 아일랜드는 언제 갈꺼냐, 빨리 좀 가자.. 그 곳 풍경 보고 싶으니까..
그리고 뒤이어 부모님이 내 눈을 맞추며 말했다.
‘이제 그만 쉬렴, 그래도 넌 언제까지나 우리 아들이고, 죽어서도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아들이야.. 우린 아직도 믿어, 너가 지금 우리의 말을 듣고 있다는 걸’
네.. 지금 듣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저 때문에 그만 슬퍼하세요. 제가 너무 못난 아들이라 죄송해요.
한 명 한 명이 나에게 못 다한 말을 했고, 나 또한 그에 대해 답을 했다. 이젠 정말 난 이 사람들한테 떠날 때가 됐다.
안녕..
의사선생님은 사람들을 스윽 쳐다보고 말했다.
‘모두 작별인사를 다 끝냈으면 산소호흡기를 빼겠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손이 내 코에 닿아져 있는 산소호흡기에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잘 지내.. 아쉽네, 그녀를 한 번만 더 봤으면 했는데..
그 때 문을 박차며 한 여자가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 곳으로 향했다.
라벤더 향기가 내 코에 맴돌았고, 특유의 지팡이 소리가 툭툭하며 다가왔다. 그녀였다..
‘잠시만요’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의사선생님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아 저는 이 남자와 3번 만났던 사이입니다. 그런데 지금 뭐하시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이제 중원군을 보내드릴려고 할 참이었습니다.’
‘당신 미쳤군요, 저 남자 살아있어요. 제 말에 알아듣고 심장박동이 뛰는 사람이라구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중원군을 진단하는 동안 어떤 변화도 없었고, 도리어 악화만 되었어요. 만약 그런 변화가 일어났으면 당연히 이렇게 할 리가 없죠’
‘그럼..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잠깐만 제가 저 남자 옆에 가게 도와주세요’
의사선생님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어차피 마지막이라 생각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기로 했다.
‘만약 당신의 어떤 말에도 심장박동이 변화가 없다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네.. 전 이 남자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요.’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제가 왔어요, 모두에게 들려줘요. 당신의 말을. 당신의 생각을,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당신은 살아있잔아요..’
그녀의 말에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던걸까, 심장박동수에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제발.. 부탁이야, 모두에게 내 말을 들려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그녀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
하지만 내 노력은 심장박동수에는 미치지 못했다.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고, 모두가 숨죽이며 바라봤음에도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녀는 좌절한 채 나를 바라봤고, 나 또한 허망했다. 마지막 희망이 기적이 사라졌다. 내 팔에 고개를 숙이던 그녀가 갑자기 천천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나 누군가가 각막이식을 해준대요, 그런데 제일 처음보고 싶은 사람이 당신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죽게 되면 내가 눈을 뜨는 이유가 없어지잔아요. 당신으로 인해 앞을 보고 싶은 이유가 생겼는데..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지 매일 꿈 속에서 그려봐요. 웃으면서 바라볼까, 아니면 슬픈 눈으로 쳐다볼까..
이제야 눈을 뜨게 되는데, 왜 당신은 죽을려고 해요.. 제발 살아요..
저를 위해서라도 살아줘요.. 난 당신을 보고 싶어요, 지금 제 말을 듣고 있다면 이 사람들에게 말을 해달라구요..’
그 말을 끝으로 내 굳어진 팔에 기댄 채 울었다. 보이지 않는 눈에서 나오는 눈물은 한없이 슬퍼보였다.
난.. 당신이 보여, 당신의 말이 들려, 난 뭐라 해도 살아 있어..
그 때 내 심장이 어느 때보다 크게 소리를 냈다.
쿵..쿵.. 두근 거리는 심장소리는 멈출 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산소호흡기를 뺄려는 선생님의 손길이 멈췄다.
모두가 하나 같이 경악에 눈빛으로 심장박동수 기계를 바라봤다.
삐-삐-삐삐삐삐.. 기준치에서 벗어난 박동수는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내 목소리 들려요? 나 살아있어요.. 지금 이 곳에 이 세상에..
그러니까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세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만 들리게 말했다.
‘당신 목소리가 들려요’
나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난 그 말을 끝으로 잠이 들었다. 어떤 날보다 행복한 꿈을 꿀 거 같은 느낌을 가지며..
박중원
010-4743-7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