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차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엄마에게.

by 별님 posted Nov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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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한별아 엄마랑 같이 죽자"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일이었다.

감정없는 얼굴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는 문을 걸어잠궜다.

걸어잠궜다고 말하기엔 너무도 낡은 손잡이가 덜그럭거렸고, 방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이었지만.

벽에서는 찬바람이 내 살과 맞닿아있었고, 누렇게 얼룩지고도 곰팡이가 조금씩 피던 벽지는 내 마음처럼 뜯겨져 있었다.

엄마는 술을 마셨는지, 그냥 지금 엄마의 신세가 처량하다고 느꼈는지 눈가 주위가 붉은색을 띄고있었다.

나는 술을 마신 엄마도, 엄마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는 엄마도 싫었다.


태어날때부터 난 불행했다.

엄마는 아빠가 어떤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한번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빠 이야기를 입에 담지도 않았다. 어쩌면 엄마에게는 '남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곱살때였다. 저녁시간에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있다보면 

우리집과 다르게 방이 세개나 있는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라며 노래를 조잘조잘 불러댔다.

사실 노래를 배우는건 부럽지 않았다. 우리집보다 방이 세개나 더 있는 집도 크게 부럽지 않았다.

다만 놀이터에서 놀다가 퇴근길에 만난 아빠와 집에 돌아가는건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거라지만, 져도 좋으니 나도 손잡고 집으로 돌아갈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여덟시가 지나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다리 한쪽을 저는 곰돌이 상을 펴고나서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서 나온 밑반찬과 식은 밥을 실금이 가버린 접시에 옮겨담았다.

 아빠의 손을잡고 놀이터를 떠나던 여자아이가 생각나서, 엄마한테 나도 아빠가 필요해요 했다.

그땐 눈치가 없어서 엄마가 아빠를 미워하는지 잘 몰랐다.

엄마는 그 조그만 일곱살배기 등짝을 후려치면서 '아빠라는 사람은 자기자식을 챙겨야 하는거야'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울지도 못했다. 엄마는 아빠를 싫어한다. 아빠는 자식인 나를 챙기지 않았다.


그 뒤로 엄마에겐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까지 세명이서 살게 됐을때는 신이났다.

찬바람이 드는 벽이고, 손때가 묻어 아이보리색으로 변한 벽지었지만 아빠가 필요하다는 말이 필요하진 않았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바람소리가 무섭다고 하면 꼭 안아줬다.

하지만 가끔은 한없이 차가운 눈으로 아빠를 보듯 나를 바라봤다.

엄마는 그런 날엔 항상 술을 먹었다.

그럴때면 나는 신발장 앞에 앉아 아빠의 신발을 바라만보고있었다.

엄마는 울면서 무어라고 무어라고 소리쳤다. 알아들을 수 도없고, 듣고싶지도 않았지만

아마도 아빠에게 책임을 묻는 소리를 했을것이다.

나는 귀를 막고 여자아이에게 배운 노래의 한 마디만 계속 반복했다. 정말로 귀머거리가 되고싶었다.

엄마가 소리치는건 무서웠으니까. 내가 그토록 필요했던 아빠가 미워지는건 무서웠으니까.

엄마는 나를 싫어한다.


내 인생엔 물음표가 많았다. 왜 엄마는 나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할까.

왜 아빠를 그렇게 원망하면서도 나를 낳았고, 지금 같이 살고있는걸까.

왜 아빠는 엄마도, 나도 챙기지 않다가 어느날 돌아온걸까.

왜 나는 일곱살때 아빠가 없었을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나는 이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해답을 오랫동안 찾지 못했다.

엄마가 자신의 입으로 말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등학교 교복을 맞춘 날, 엄마는 나에게 외식을 하자고 했다.

내겐 외식이란 엄마가 다니는 식당의 구석에서 혼자 앉아 허리숙여 일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밥을 먹는것 뿐이었다.

그날 나랑 엄마는 콩나물국밥집에 갔다. 그곳에서 엄마는 내 평생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말해줬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며 어렵사리 입을 뗀 엄마는 말했다.

나를 낳기 하루 전날 할머니의 연락을 받고 시골로 내려갔고, 나를 낳은 후엔 딸이라는 이유로 얼굴도

마주하지 않은 채 보육원에 보내자고 했다고.


나를 낳기 전부터 아빠는 나를 지우자고 그랬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태어나면 분홍색 신발을 사야한다는 것을 알고나서 부터였다.

돈도 더 모으고 방 두칸짜리 집도 사고 아빠닮은 아들을 낳아서 행복한 가족이 되자고 아빠는 엄마에게 말했고

내가 엄마의 배를 차는것보다 엄마는 뱃속의 나를 지우라는 말이, 아빠의 무책임한 태도가 더 아팠다고 했다.

그 뒤로는 뭐 뻔하다. 엄마는 아빠에게 너무도 큰 실망감을 느꼈고, 나를 챙기지 못할것이라는 확신에 가득찼을것이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토해낸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나는 목구멍이 너무 아파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목구멍에 콩나물이 얽혀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낳을거면 같이 살 수 없다는 아빠의 말을 듣고도, 자신의 아들과 살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을

거역하고 나를 낳은거다.

그리고 아빠없는 자식 만들기엔 엄마가 흘려보낸 엄마의 청춘이 너무도 찬란했기에 나를 꽃피우려

열심히 악착같이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아빠와 셋이서 사는 건, 아빠가 필요했고 필요할 나를 위해 아빠에게 아빠의 역할을 준 것이라고.

아빠를 용서할 수도 의지 할 수도 없지만 나를 위해 한번 더 '아빠'라는 기회를 준거라고 했다.

그 뒤로 나는 말그대로 죽은듯이 공부했다.

술을 먹을때 마다 찬 벽에 기댄 채 아빠에게 원망의 소리를 하는 엄마를 보면 눈에서 무엇인가 울컥해서

내 교복 소매를 젖게 만들었다.

엄마의 잃어버린 청춘에, 엄마가 마주했을 두려움에 이를 악물었다.

벽의 어느 면에서나 바람이 들었고 항상 손발이 차가워져서 샤프 잡는것도 어려웠지만

그 벽도 내가 마주한 현실의 벽보다 차갑진 못했다.

나는 엄마가 벽이아닌 나에게 기댈 수 있을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3년동안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를 보면서 죽기 직전까지 공부만 했다.

엄마의 눈부셨던 젊은계절, 아빠가 아빠의 역할을 잘 해내서 멋진 아빠이자 엄마에게 멋진 남편이 되기를 바라면서.

3년이 훨씬 지나고, 우리에게 봄날은 찾아왔다.

나는 내가 꿈에 그리던 대학교를 입학하게되었다.

엄마는 항상 나의 아침밥을 챙기느라 꼭두새벽부터 부엌에 있었고, 아빠는 늦은 밤 돌아오는 나를 마중나왔다.

손목에서 피같은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었다.

엄마처럼 식당이 아니라 엄마가 자랑하고 다닐만큼 남부럽지 않은 회사였다.

엄마를 위해 찬 바람이 나오는 벽이 없고 난방까지 되는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을만큼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고, 한그릇에 칠천원이던 콩나물 국밥보다 배로 비싼 음식을 한달에 한번 이상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청춘은 없었다.

나는 엄마를 위해서 엄마는 나를 위해서 청춘을 바쳤으니까.


지난 밤 엄마와 같이 걸어갈 때 오랜만에 올려다 본 하늘속에 별은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달빛마저 없이 캄캄하던 엄마의 밤에 빛나는 별이었다.

엄만 지금껏 그 별을 따라 걸었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별을 따라 걷지 말고 앞을 보라고만했다.

엄마는 말했다. "엄만 내 앞을 비추는 별을 따라 걷고싶어."

엄마는 나와 같이 걷고싶었고, 나는 그와달리 내가 우선이었다.

우리의 다름을 나는 느꼈고, 나는 더이상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될 수 없었다.

내가 우선인 나는 책임감이 없던 아빠와 다를게 없었다.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를 꽃피운 엄마.

꽃처럼 아름답던 시절, 서리에 얼어버린 엄마의 청춘.

엄마는 예전부터 내 이름을 수없이 불렀다. 특별히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 동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묻지않아도 사람들은 내 이름을 꼭 알고있었다.

지금까지 불려 온 이름이 헛되지 않게 별이 되고 싶다.

밤하늘처럼 어두운 엄마의 마음을 밝게 수놓는 그런 딸이 되고 싶다.

엄마가 지어준 이름처럼 별이되서, 엄마가 힘들때 하늘을 올려보면 흐뭇하게 바라보는 별이 될까.


엄마가 보이지 않는곳에서도 빛나고 있는 별이 되고싶다. 그 별의 빛을 받고 그 주위를 도는 달은 엄마가 될것이다.

감히 내가 엄마의 희망이란 별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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