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응모 - 지독한 대물림

by 사랑니 posted Nov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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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응모 - 지독한 대물림 



 “난 라떼로 부탁해요.” 

 “오늘도 지혜 언니가 사려고요?” 

 “뭐, 얼마 한다고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계산 좀 부탁해요.”

 아이들의 등원 후 S 카페에 앉은 네 명의 여자는 평상시와 같이 음료를 주문했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듯 하면서도 냉기가 도는 테이블이었다. 지혜가 빠지고 테이블에 앉은 세 엄마 가운데 민지는 지혜가 화장실에 완전히 들어간 것을 본 뒤에야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 들었어? 지혜 언니 말이야.”

 “네, 저 들었어요.” 

 “학교 다닐 때 유명한 왕따였다면서?” 

 “그러니깐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애는 사회성이 좋아야 한다는 둥, 따돌림 당하는 애들은 이유가 있다 했잖아. 난 그런 말 해서 학교생활 재미있게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오늘의 화두거리는 이 모임의 우두머리이자 행복 유치원의 학부모 회장 지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늘 우두머리에 서서 아이의 사회성은 어떻게 키워야 한다는 둥 또 유치원 성적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이야기를 주로 했었다. 하지만 그 말과 너무나도 다른 그녀에 대한 루머는 요 며칠 사람들의 입방아를 오르내렸다. 

 지금도 그랬다. 두 여자는 그 루머가 사실인 마냥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근데 소현이 엄마는 그거 어떻게 알았어?”

 두 사람이 한참 이야기할 때, 휴대폰으로 오늘 아침에 찍은 아이 사진을 보고 있던 윤경은 조심스레 물었다.

 “지역 맘 사이트에 올라왔어요. 윤경 언니 몰랐어요? 그 글이 어디에 있냐면… 아, 여기 있다.”

 그러자 지혜의 루머를 누군가에게 밝히는 게 즐거운 일인 양, 민지는 엇저녁 휴대폰에서 본 글 하나를 윤경에게 보여주었다. 제목부터 자극적인 글귀였다. 


 ‘꼴값 떠는 게 어이없네요.’ 

 

 이미 누군가를 비난하는 듯한 문장에 조회 수는 가히 폭발적이었고, 댓글 수 역시 지역 맘 카페 설립 아래 최고를 갱신하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왕따였어요. 그걸 비난하고 싶진 않아요. 다만 자신의 학창시절은 친구들로 둘러 쌓여있는 것처럼 유치원 모임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어이가 없어 거짓 웃음만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의사 남편 만나서 떵떵거리는데 그것도 웃겨요. 살면서 잘난 체란 잘난 체는 다 하는 데 보기가 얼마나 역겹던지.’


 익명을 가장한 한 사람을 비난한 글이었다. 그리고 그 글에 동조하여 댓글을 쓴 사람들도 하나같이 지혜를 비난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지혜의 남편 병원이 어디에 있다 이야기했고, 누구는 지혜의 얼굴을 눈 부분만 모자이크 한 채 올렸다.

 물론 원래 글에 지혜의 이름 석 자가 나온 건 아니었고, 아이의 유치원 명이나 개인 신상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지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글은 그녀를 저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윤경은 민지의 휴대폰을 유심히 보았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표정 변화는 없었다.

 “언니. 되게 웃기지 않아요?” 

 “그러네.” 

 “언니는 늘 사람들 이야기도 잘 안 하고, 너무 착해서 탈이다.” 

 “무슨. 뭐 그냥 가십거리일수도 있잖아. 그리고 왕따가 무슨 죄야.”

 이내 휴대폰을 쳐다보던 윤경의 표정이 재미없다는 식으로 바뀌자, 나머지 두 사람은 그런 그녀를 잠시 쳐다보았다. 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달랐다.

 “에이, 언니도. 지난번에 지혜 언니가 왕따 당하는 애들도 잘못은 있다, 그랬었잖아요.”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어. 동조한 적도 없고.”

 며칠 전, 아이의 왕따 문제에 이야기를 했을 적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에게도 문제가 있다’라고 이야기했던 지혜였다. 지혜가 윤경에게 그 사실을 물었을 적 윤경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을 분명하게 기억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예민한 것만 같은 윤경의 모습에, 민지는 아는 언니와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자신이 잘못 들었다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근데, 이거 지혜 언니한테 이야기하는 게 낫겠지? 언니는 지역 맘 커뮤니티 시간 낭비라고 안 한다고 했잖아.” 

 “본인 이야기인데… 상처 받지 않을까?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기엔 언니 사진도 올라왔고, 형부 병원 위치까지 너무 적나라하게 나와 있는데. 이야기해줘야지. 언니 오네.”

 화장실을 다녀온 지혜가 두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며 테이블로 오자 세 사람의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아니 세 사람이라기보다, 민지와 혜림의 만담에 가까웠고 윤경은 이들 두 사람을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해요?”

 이 상황을 모르는 지혜는 자리에 앉으며 캐시미어 코트를 의자 위에 조심스레 걸터두었다. 그러자 세 사람은 눈치를 살폈고, 하지 말라는 혜림의 말을 무시한 채 민지는 그녀의 휴대폰을 지혜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언니가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뒤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지혜는 이맛살이 구겨졌다. 그도 그럴만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자극적인 말들의 연속이었고, 주변인들마저 충격적인데 그 소문의 당사자라면 가히 놀랄만했다. 하지만 표정만 약간 구겨질 뿐, 지혜는 이내 코웃음을 쳤다.

 “너무 자극적이네요. 내 얼굴도 이렇게 나와 있고.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보면 바로 나인 줄 알겠다.”

 “언니,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난리 칠 거 없어요. 연예인들이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난다. 이런 소리 하길래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어떤 느낌인지 알겠네요.”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지혜는 처음과 같이 한없이 고고했다. 민지는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그녀를 보며, 대단하다 생각했다.

 “이런 말씀 드리면 안 되지만, 언니 행동 보니까… 진짜 이거 루머에 불과한가 봐요. 글 속에 있는 삶을 산 사람이라면 이런 여유는 없을 텐데.” 

 “민지 씨 이걸 믿은 거예요? 혜림 씨도? 뭐야. 난 우리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헛소문도 믿고. 서운하다.”

 지혜는 핸드크림을 아까 전에 발랐지만, 겨울의 건조함 탓에 또 한 번 핸드크림을 손에 발랐다. 그녀의 아무렇지 않은 표정과 화이트 코튼 향은 아까와 달리 한없이 차갑고 날카로웠던 공기를 따스하게 바꾸었다.

 “그런데 하나 거슬리는 게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따뜻했던 공기는 그녀의 말 한 마디로 인해 다시 가라앉고야 말았다. 아니 테이블 자체의 공기는 그대로였지만, 이 대화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에게만큼은 달리 느껴졌다.

 “내 얼굴은 그렇다고 치는데, 우리 애 아빠 병원이랑… 윤솔이 유치원까지는 너무하네.” 

 “그렇죠? 그렇죠? 언니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니깐요.” 

 “근데 얼마나 삶이 고되면 이런 짓을 하나 싶네요. 자기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가져다 쓰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고 하던데, 가랑이가 찢어져서 너무 아파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건가?”

 말투에는 감정이 실리지 않았고 어조 역시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휴대폰을 쳐다보며 짓는 비웃음을 보아선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게 틀림없었다. 

 “짐작 가는 사람 있는 거예요?” 

 “그냥 제 생각이에요. 그리고 민지 씨 말처럼 경찰에 신고해도 되긴 한데. 이런 사람들은 신고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어요. 안 그래요? 지선이 엄마?”

 휴대폰을 쳐다보다 그 시선은 윤경을 향했다. 미소를 짓긴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시선은 차가웠다. 이제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윤경은 세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게 어떤 의미인 줄 알았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선 메아리만이 울려 퍼졌다. 

 “유, 윤경 언니. 왜 말을 못해요.”

 “그, 그게….”

 윤경이 말을 하려는 찰나였다.

 “아. 생각해보니까 오늘 골프 레슨 받기로 한 게 있어서, 나는 먼저 가 볼게요. 라떼는 윤경 씨가 좋아하지? 언제나처럼 내꺼 대신 먹어요.”

 방금 전까지 이 자리에 앉아 티타임을 가지려고 했던 지혜는 그녀의 말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지와 혜림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고, 지혜가 자리를 비우고 나서 테이블의 분위기는 더 안 좋아졌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이 시뻘겋다 못해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윤경을 살폈다. 아까 지혜가 물었을 적 답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행동이 어떤 말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달그락!’

 두 사람의 가시가 담긴 눈초리를 받던 윤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분노는 바닥과 의자에서 나는 파찰음으로 표현되었고, 쿵쾅거리는 발소리는 이제 어떤 행동을 저지르겠다는 것을 나타냈다. 

 “어, 언니.”

 이 순간, 그녀를 막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싶어 민지와 혜림은 윤경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를 딱히 막아서진 못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듯 윤경 앞에서 주저했지만, 내심 그들은 이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나기를 바라기도 했다. 윤경은 그들이 자신 앞의 길을 막다 터주자, 발걸음을 빨리했다. 다행히 그녀가 부리나케 뛰어간 곳엔 BMW에 우아하게 올라탄 뒤, 막 운전을 하려는 지혜가 있었다.

 “최지혜!”

 윤경은 악을 지르며 보닛을 두드렸고, 그녀는 이 상황이 가소롭다는 듯 운전석의 창문을 내렸다. 

 “야, 셔틀. 너 뭐 하니?”

 지혜는 주변을 한번 살펴본 뒤 조롱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윤경이 이런 행동을 할 줄 알았기에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그녀를 부르고자 골프를 치러 간다고 했었다. 설마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방식이 먹힐까 했는데, 설마는 역시나로 펼쳐지고 있었다. 

 “뭐? 경찰에 신고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고?”

 “한심해.”

 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를 놀란 눈으로 쳐다볼 만큼 다른 목소리였다. 고고한 그녀는 어디에 갔는지, 지혜는 차에서 내리더니 가소롭다는 듯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다. 

 “넌 어떻게 15년 전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냐.”

 요 며칠 사람들이 자신을 피한다고 생각했었다. 무언가 이상한다고 생각했지만, 시집 올 때 어머니가 했던 말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평범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 끝에 늘 셔틀만 했던 윤경이 있을 줄이야. 화 나는 것도 우선이었지만, 그것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긴 하는데 그 움직임이 너무 미세해 웃음이 나왔다.

 “내가 건드릴 자신 있으면 움직여라 했지. 내 눈에 찍히면 두 배로 당한다고. 복수한다고 그렇게 외치고 다니더니, 겨우 생각한 게 이거야? 차라리 윤솔이를 납치하지 그랬어. 어?”

 조금 강경해진 어조에 윤경의 얼굴은 분노에서 슬픔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차라리 인터넷에 올릴 거면 네 이야기를 썼어야지. 그래야 저 오지라퍼들이 어머, 맘님. 너무 슬프네요. 그 가해자년 신랑이 운영하는 병원이 어딘가요? 두 번 다시 안 갈게요. 이러지. 왜 내 인생을 네 인생처럼 굴어. 흙수저 주제에 어딜 위를 쳐다봐.”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 상관없이 지혜는 윤경이 한 행동을 비아냥거렸다. 이후 비웃음은 윤경의 이마 중간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는 데에까지 이르렀고, 피해자는 자신의 의지와 달리 땅바닥만 보며 분노를 숨겼다.  

 “셔틀. 내가 인생 조언 좀 할게. 까놓고 말해서 행복 유치원 원비는 있어? 너희 신랑 벌이 이백도 안 되잖아. 뱁새가 황새 따라 가면 다리 찢어져. 흙수저 인생은 흙수저로 대물림 하는 거야. 그만 노력해. 그리고 너 학교 다니는 내내 왕따였다는 거 말 안 하고 모임에도 끼워줬는데, 이런 식으로 은혜 갚으면 안 되지.”

 저렇게 이야기하는 여자였다. 17년 전, 유명 사립학교에서 가난하다는 죄로 따돌림을 당했고 그 중심에는 지혜가 있었다. 철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일 이후 윤경의 인생은 바닥을 찍었다.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결핍을 줄 만큼 학창시절은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여 살 수는 없었고 그나마 사람답게 살아가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남들처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고, 이후 지선을 낳게 되었다. 없다는 죄로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삶을 이 아이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 사교육으로 날고 긴다는 동네에서 삶의 터전을 꾸렸다. 그래, 이렇게 노력하면 과거의 잊고 싶었던 기억들은 잊혀지겠지, 그렇게 혼자서 되뇌었건만 행복 유치원에서 지혜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 윤경아. 나야 지혜. 너도 이 동네 살았어?’

 마치 과거에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잊은 것 마냥, 미소의 가면을 썼던 악마는 진심을 숨긴 채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아니겠지. 그래 세월이 지난 만큼 지혜 역시 변했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 셔틀이 뭐야?’

 ‘그 말 누구한테 배웠어?’

 ‘윤솔이 아줌마가 나한테 엄마 닮아서 셔틀 잘할 거라는데. 그거 잘하면 윤솔이랑 놀아도 된다고 했어.’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늘 아파하는 사람만 아파해야 했고, 그 아픔이 아이에게까지 대물림 한 순간. 결국 그녀의 곪은 상처는 터지고야 말았다. 자신이 당한 만큼 아이가 당한다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고, 아프기 전 가해자를 다치게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한 뒤, 생각해낸 것이 바로 지역 맘 카페에 글을 올리는 거였다. 

 하지만 17년 전, 그 일을 인터넷에 쓸 만큼 아직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랬기에 화자를 바꾼 채 글을 올렸지만, 오히려 그 상처는 배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너… 사람들이 지금 우리 이야기 듣고 있는 거 알아?”

 다리에 힘이 풀린 윤경은 애써 힘을 다잡은 채 지혜를 향해 외쳤다. 자신이 이곳으로 왔을 때 민지와 혜림이 따라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두 사람이라면 오늘 일을 단순히 해프닝으로 두지 않음을 느꼈다.

 “응. 알아. 그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지혜의 표정이었다.

 “저 사람들이 네 편이라도 들 것 같아? 행복 유치원에도 겨우 보내는 네 말을? 웃기지 마. 내가 말했지. 머리 쓰라고. 내 말 한 마디면 유치원에서 애 위치가 달라지는데, 그럴 수 있을까?”

 지혜는 비아냥거리며 윤경을 쳐다보았다가 이내 그들 둘을 쳐다보는 혜림과 민지를 바라보았다. 이내 두 사람은 자신들을 쳐다보는 지혜의 시선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희가 오늘 너무 많은 걸 봤나 봐요.” 

 “그냥 못 본 걸로 할게요. 두 분 많은 이야기 나누세요.”

 “그럼 두 분은 영어 과외 선생님 오면 그 때 만나요.”

 지혜의 진짜 모습에 당황했다기보다, 그녀의 눈에 띄었다는 것에 놀란 표정이었다. 지혜가 고개를 까딱이자, 두 사람은 애써 웃으며 부리나케 사라졌다. 누군가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윤경은 이 순간만큼은 알 수 있었다. 17년 전과 지금,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가해자는 여전히 가해자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피해자만이 또 한 번의 아픔을 답습하고 있었다. 윤경은 가슴에 돌이 툭하니 떨어진 느낌이었다.

 “영어 과외는 뭐야?” 

 “겨우 200만 원이 생활비인 네가 알 필요는 없어. 그리고 이것 봐. 혹시 어리석게 권선징악이 있는 줄 알아? 그런 건 사라진 지 오래야.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경찰에 신고는 안 할게. 내가 의리는 있잖아. 너 이 동네에서 살 자신이나 있으면 그 글 계속 두고, 아님 알아서 해결해. 난 골프 치러 가야 해서.”

 지혜는 윤경의 표정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에 탔다. 그리곤 윤경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은 뒤 사라졌다. 물론 그 글 하나로 인해서 견고했던 지혜의 성이 완전히 무너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계란에 바위치기를 한 꼴을 직접 경험하니 심장이 아파왔다. 어떻게 해서건 그녀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함에 윤경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뒤 스마트폰의 어플을 켠 뒤 며칠 동안 고민했던 글의 삭제를 눌렀고, 이내 그녀는 메시지 하나를 누군가에게로 보냈다.


[지혜야 내가 미안해. 그 글 삭제했어. 그리고 우리 신랑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영어 과외, 우리 아이도 끼워줘. 정말로 미안하다.] 



_끝_


alack@naver.com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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