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응모 - 마녀분식집

by 김효승 posted Nov 21,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녀 분식집

 

“저 회사에 돌아가야 하는데…….”

 

 회사에서 오백 미터쯤 내려오면 골목길구석 한 곳에 24시간 영업하는 분식집 하나가 있다. 새벽 세시가 넘어서 돼지 뱃살을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나, 맵다 못해 혀가 타버릴 것 같은 비빔국수를 먹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지만 24시간 불을 밝히고 굳세게 서 있는 곳이다.

 

 사람들에게 행복과 사랑을 나눠주는 곳 그러나 나는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다. 유일한 통로인 문은 열리지 않고 부엌에서는 주인아줌마의 칼 가는 소리만 섬뜩하게 들린다. 나는 무슨 이유로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일까……. 

 

 


 피나는 노력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마케팅 회사에 취업을 했다. 이곳에 오기 위해 대학교를 삼 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코피를 쏟아 내가며 문제집을 봤다. 새벽에는 자격증 취득을 위해 밤 잠을 설쳤고, 주말에는 여유로운 시간을 반납해가며 봉사활동과 대외활동을 했다. 나에게 삼 년이라는 시간은 취업 준비에 연속이었다. 당당히 사원증을 메고 전문가처럼 멋지게 일을 하는 것이 내 평생의 꿈이었다. 물론 회사에 취직한 후 내가 하는 일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서연 씨, 전화 좀 받아.”

“서연 씨, 복사 열 부만 해줘.”

“서연 씨, 디자인팀에 자료좀 메일로 보내.”

 

취직을 한 지 세 달이 됐지만 지금까지 나는 잔심부름만을 하고 있다. 나의 존재가 심부름꾼인지 마케팅 직원 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 놔도 성공한 자의 투정이라고 보았다. 나의 깊은 고뇌를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는 시끄럽게 울려대는 커피 머신과 복사기뿐이었다. 한 번은 이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평생 심부름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 시키실 일 없나요?”

“음 서연 씨 커피 좀 진하게 타 와요.”

“저 회사에 온 지 세 달째인데 아직 마케팅이랑 관련된 일은 하나도 못하고 있어요.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어요.”

“커피 타는 것도 회사 업무 중 하나에요. 이래서 내가 여자는 뽑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쯧.”

 

 


나의 첫 직장. 설렘과 기대는 팀장인 조현남을 만난 이후 깨져버렸다. 조현남은 이미 오래전부터 회사에서 나쁜 소문이란 소문은 다 가지고 있는 낙하산이었다. 사장님 아들이라는 소문도 있고, 부장님 지인이라는 소문도 있고, 회장님의 젊은 애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나쁜 소문은 다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나를 노골적으로 싫어한 것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초반에는 나를 끔찍하게 챙겨줬다.

 

“안녕하세요. 마케팅 에디터로 일하게 된 이서연입니다.”

“서연 씨, 이름도 예쁘네 나는 서연 씨 사수이자 팀장 조현남.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밤에 전화해도 되고.”

“네?”

“농담이야 농담.”

 

조현남의 관심은 끔찍했다. 주말에 개인적인 이유로 전화를 하거나 뚫어지게 내 몸매를 훑기도 했다. 가끔씩 실수인 척 내 엉덩이를 툭툭 치기도 했다.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조현남이 끔찍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오히려 좋은 동기가 있는 회사,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유일한 회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사건 하나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사건이 있던 날 회사 사람들은 평소와 다르게 까칠했다. 항상 반갑게 반겨주던 사람들이 쌀쌀맞은 말투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회사 업무가 많아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띠링’

 

옆자리에 앉아있던 유일한 동기 미화가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옥상으로!’

 

옥상으로 올라가자 미화는 표정을 찡그리며 심각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미화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너 진짜 조현남이랑 사귀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야 회사에 소문 쫙 퍼졌어. 조현남이 너랑 사귄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던데.”

 

미화의이야기를 듣고 재빨리 회사로 내려갔다. 업무에 지친 사람들 속을 뚫고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조현남의 얼굴에 커피를 쏟아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팀장님, 잠시만 옥상으로 와 주세요.’

 

조현남은 헛기침을 하면서 자리에 일어났다. 천천히 옥상으로 가는 모습을 본 뒤 나도 자리에 일어나 그를 쫓아갔다. 옥상에 올라가자 한 손에 담배를 쥐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조현남이 서 있었다.

 

“신입이 팀장 이리저리 불러도 되는 건가? 서연 씨니까 내가 참는 거야.”

“팀장님 저기 말도안 되는 이야기가 회사에 퍼져서. 저랑 팀장님이랑 사귄다는 소문이…….”

“그게 뭐 어때서? 서연 씨도 나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야? 서연 씨가 그렇게 행동했으니까 소문이 퍼졌겠지 괜히 소문이 난 거겠어?”

“저는…….”

 

조현남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담배를 발로 짓밟은 뒤 옥상에서 내려갔다. 머리가 터질 듯이 당겼다. 억울해서 눈물이 난다는 뜻을 그날 처음 이해할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나니 마음이 정리가 됐다.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빨리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회사로 내려가 자리에 앉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한순간에 멈췄다. 조현남과 옥상에 올라간것이 오히려 역 효과가 돈 거 같다. 회사 메시지 함을 열고 조현남을 제외한 팀원 사람들에게 해명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이서연입니다. 회사에서 사내 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나서 저도 많은 고민을 하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런 일로 회사 메시지를 이용한 점 죄송합니다.

 

조현남이 그 이후 쌀쌀맞게 대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내 주위에는 나를 믿어주는 팀원들이 있으니까. 오히려 몇몇 팀원들은 나를 위로해 주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고 믿었다.

 

이렇게 사건이 일 단락 되는 줄 알았다. 며칠이 지난후 점심시간 미화와 함께 커피를 들고 옥상을 올라갔다. 문을 열려고 하자 미화는 다급히 나를 막았다. 내가 미화를바라보자 미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귀에 대고 문 옆에 섰다.

 

“쉿! 조현남 목소리.”

 

미화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말했다. 나도 똑같이 두 손을 모아 귀에 대고 문 옆에섰다. 남자 직원들과 조현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서연 씨랑 사귄다고 하지 않았어요.”

“갑자기 무슨소리야?”

“서연 씨가 회사 메시지로 사내 연애하는 거 소문이니까 믿지 말라고 쫙 보냈어요.”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 어린애랑 사귀니까 피곤해지더라고.”

“아 어쩐지. 팀장님이 그러실 분이 아니죠.” 

 

나는 그때 깨달았다. 회사 생활은 조용히 나의 존재가 없어야 된다는 것을, 높은 상사의 말을 무조건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이후 조현남은 노골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일이 없는데도 야근을 시킨다던가, 갑자기 야식이 먹고 싶다며 쓸데없는 심부름을 시킨다던가 말이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지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의 존재를 사람들이 모두 안 좋게 바라볼 것 같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끊임없이 소심해지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그 날도 조현남 때문에 쓸데없는 야근을 하고 있었다. 회사 업무는 하나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야근, 특근, 주말까지 회사의 잔심부름을 위해 일을 했다. 하루 이틀은 패기롭게 조현남의 투정을 받아주자고 다짐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몸이 갈수록 망가지고 있었다. 눈이 저절로 감기고 유체이탈을 한 것 마냥 붕 떠있는 것 같았다. 영혼이 빠진 알맹이처럼 회사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주임님이 화들짝 놀라며 퇴근을 하라고 다독였다.

 

“퇴근해 서연 씨 며칠째 야근이야.”

“아 팀장님한테 말씀드려야 해서.”

“내가 말해 줄게 몸 관리는 프로한테 필수야.”

 

주임님은 손뼉을 치며 큰일이라도 난 듯 조현남에게 달려가 이야기를 했다. 키보드를 급하게 치던 조현남의 손가락이 서서히 멈추면서 이내 한 손으로 턱을 괘고 멀리서 나를 바라봤다. 한숨을 푹 쉬더니 다른 한 손으로 삿대질을 해가며 나를 불렀다. 조현남에게 가는 십 초가 메마른 사막을 걷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이서연.”

“네.”

“야근 며칠 했다고 벌써 힘들어해. 다른 사람들은 놀았어? 여자들은 툭하면 힘들다고 하더라. 힘들면 회사 때려치워.”

“죄송합니다.”

“됐고. 쓸모없으니까 야식이나 사 와. 여자니까 센스라도 있겠지.”

 

조현남은 두툼한 가죽 지갑을 열고 카드 한 장을 나에게 던졌다. 카드는 내 몸을 맞고 처량하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무릎을 꿇고 카드를 재빨리 낚아채 회사 밖으로 나갔다. 조현남과 한 공간에 더 이상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 카드를 확인하니 법인카드라고 쓰여있는 문구가 내 눈에 띄었다.

 

‘법인카드면서 자기가 돈 내는 것처럼 하고 있어!’

 

높은 산이라도 오른 것 마냥 속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속이 뻥 뚫리는 것 만 같았다. 조현남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안 쉬는것만으로도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흥얼거리면서 야식 목록을 골랐다. 치킨, 피자, 햄버거, 족발 야식 종류를 생각하니 다시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았다. 조현남이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여자니까 센스라도 있겠지.”

 

여자라서 회사 일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야식은 잘 골라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니 화끈하게 매운 음식이 당겼다. 맵다 못해 혀가 타버릴 것 같은 음식을 생각했다.

 

‘떡볶이!’

 

한 손에 법인 카드를들고 회사 근처 분식집으로 향했다. 치킨 집, 피자 집, 햄버거 집, 족발 집 모두 간판을 반짝이며 밤을 화려하게수놓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분식집은 열려있는 곳이 없었다. 회사 근처에 분식집이 없을뿐더러 새벽에 떡볶이를 하는분식집은 더욱 찾기 힘들었다. 그때 회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분식집 하나가 생각났다. <마녀 분식집> 골목길에 숨겨져 있어 사람들이 자주 가지 않지만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는 곳이었다.

 

분식집을 가기 위해 높디높은 건물들을 지나치면서 건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머리는 새가 지붕을 틀어도 될 만큼 기름에 떡이 지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기름이 번들 거렸지만 반대로 푸석푸석하고 어두워 보였다. 목이 늘어난 후드티에 무릎 튀어나온 츄리닝 그리고 슬리퍼까지 내가 생각했던 회사원의 모습과는 달랐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목에 걸린 사원 증뿐이었다.



“이렇게 졸리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면서 길을 걸었다. 긴장이 풀리니 쌓인 피로가 급격히 찾아왔다. 어디든 누워서 십 분 만이라도 잠을 자고 싶었다. 고개를 흔들기도 하고 뺨을 때리고 손등을 꼬집었다. 어느새 높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내 키만큼이나 작은 건물들만이 앞에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많은 불빛들이 눈앞을 수놓았는데 지금은 띄엄띄엄 있는 가로등만이 내 앞을 빛내주었다.

 

“아 큰일 났네. 너무 졸린데.”

 

기지개를 펴고, 달밤에 체조도 해봤지만 잠은 달아나지 않았다. 눈에 무거운 추를 달아 놓은 것처럼 계속해서 감겼다. 나는 떠져있던 눈을 조금씩 감으면서 길을 걸었다. 나를 비추던 가로등 불빛이 점점 희미해져 가다 이내 어둠만이 자리 잡았다.

 

 


‘쿵’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졸면서 걷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은 듯 머리가 쓰라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마녀 분식집> 앞에 서 있었다.

 

“어, 벌써 왔네?”

 

분식집은 옛날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맛 집 마냥 낡고 허름해 보였다. 외할머니 집같이 검은 기와지붕에 큼지막하게 마녀 분식집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보면서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반 분식집과는 다르게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었다. 분명 멀리서 보면 분식집은 무척폐가 같은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미닫이문을 열자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쇳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한 손으로는 귀를 막고 나머지 한 손은 문을 열었다. 외부와 다르게 내부는 생각보다 멀끔했다. 원목으로 된 식탁이 하나 그리고 세트 상품으로 산 것처럼 똑같은 색과 무늬의 의자들이 있었다. 형광등은 하나밖에 없는 테이블을 비춰주었고 마치 내가 올 것을 미리 예상한 듯이 숟가락과 젓가락 한 쌍이 올라가 있었다. 

 

“저기요 아무도 없나요?”

“잠시만요.”

 

부엌에서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서 어두운 불빛 아래에 한 여자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메뉴판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긴 생머리에 쌍꺼풀이 짙고 팔 다리가 길쭉한 사람, 가만히 있으면 우아함과 신비함이 공존하는 사람, 하얀 쌀떡 같은 피부와 대조되게 검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주방장은나에게 차디찬 물 한 잔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목이 많이 말랐던 탓인지 물을 보자 갈등이 솟구쳤다. 빠르게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컵에 담긴 물을 삼켰다. 그런데 갑자기 올라오는 술맛에 입안에 담긴 뭔지 모를 액체를 바닥에 뱉었다.

 

“퉤! 이게 뭐예요. 술이잖아요!”

“죄송해요! 요리에 쓰일 청주를 여기에 담아버렸네요.”

 

분식집 주인장은 호탕하게 웃은 후 새로운 컵에 물을 따라 주었다. 그리고 겨드랑이에 몰래 껴놓은 메뉴판을 줬다.

 

“저는 주방장 김주미입니다. 필요하신 것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분식집 분위기와는 다르게 메뉴판은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덮여있었다. 마치 이태원에 분위기 있는 바에서 주는 메뉴판처럼 느껴졌다. 건물과 메뉴판의 부조화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폐가 같은 건물, 하나 밖에 없는 테이블, 신비로운 주방장 그리고 고급 메뉴판까지 꼭 나를 위한 식당처럼 느껴졌다. 부드러워 보이는 가죽을 한번 쓰다듬어 보고 메뉴판을 열었다. 그런데 커다란 메뉴판에는 세 가지 메뉴만이 적혀있었다. 

 

“고추잡채, 떡볶이, 돈가스?”

“네! 음식 준비하겠습니다.”

주방장은 씩 웃으며 내 손에 들려 있던 메뉴판을 가져갔다. 메뉴를 한 번 훑어 읽어 봤을 뿐인데 벌써 메뉴 접수가 됐다. 분명 주방장은 돈 독에 오른 것이 분명했다.

 

“저기요! 저 회사 사람들 야식용이라 양이 많이 필요해서요. 다른 메뉴는또 없을까요?”

“죄송하지만 마녀 분식집은 한 사람만을 위한 분식집이에요.”

“네?”

“포장이 안 된다는 말이에요.”

 

돈 독은 올랐지만 포장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상한 주방장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 나는 회사 근처 야식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죄송한데 다음에 올게요. 저는 야식 음식을 사러 온 거라.”

“아쉽지만 한번들어오면 나갈 수 없어요.”

 

주방장은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되지 않아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미닫이문의 고리를 잡았다. 그런데 미닫이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커다란 바위가 문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 문이 잠겼는데…….”

“아까 말했잖아요. 못 나가요.”

“저 회사에 돌아가야 하는데…….”

“성격도 급해라! 음식 금방 만들어 줄게요.”

 

예전에 납치, 감금과 관련된 책을 본 적이 있다. 살고 싶으면 범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목이 나갈 때까지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나는 살고 싶었다. 책에서 나온 대로 심호흡을 하고 침착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렇지 않게 원목으로 된 식탁과 의자에 앉았다. 컵에 담긴 물을 마시며 주방장이 부엌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스윽 스윽’

 

주방에서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리더니 이내 칼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바늘처럼 박혔다. 작은 식당에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놓은 탓인지 칼 가는 소리에 민감해진 탓인지 온몸이 떨렸다.

 

“저기요…….”

“고추잡채 금방 나가요.”

 

주방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궁금하지 않은 고추잡채의 존재 여부에 대해 말한 뒤 또 칼 가는소리와 도마에 무엇인가를 자르는 소리들이 들렸다.

 

“저기요…….”

“잠시만요!”

 

그렇게 나는 이상한 분식집에 감금됐다. 

 

 


주방에는 무척 다양한 소리가 들렸다. 다양한 채소를 써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웍을 돌리는 소리, 맛있는 향기까지 퍼지니 정말 인터넷에서 극찬한 맛 집에 온 느낌이다.

 

“끝!”

 

주방장의 기운찬 목소리가 들렸다. 부엌에서는 또 덜커덩 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주방장은 한 손에 고추잡채를 들고 오더니 내가 앉은 테이블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맛있게 드세요.”

 

나는 주방장의얼굴을 한번 본 뒤 윤기나는 고추잡채를 젓가락으로 조금 집었다. 주방장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 다시 한번 크게 집어 입속으로 넣었다. 주방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이 입은 검은색 앞치마에 손을 넣어 쪽지 하나를 꺼냈다.그리고는 초등학생이 학예회 발표를 하듯 자신의 레시피를 크게 읽었다.

 

“제가 만든 고추잡채는 청피망 한 개,홍피망 한 개 그리고”

 

입속에 넣은 고추잡채 맛이 꽤 좋았다. 다양한 채소들이 소스와 한 대 어우러져 입안을황홀하게 해주었다. 이상한 분식집, 이상한 주방장만 아니라면 또 오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아 그리고 오늘고기는 원숭이의 생식기를 갈아서 만들었어요.”

 

나는 끄덕이던 고개를 멈추고 흔들리는 눈으로 주방장을 바라보았다. 주방장은 계속해서 상냥한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아까 손님이 꽃빵에 싸 드신 고기는 원숭이 생식기에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트리자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분식집 안에 퍼졌다.

 

“농담이었는데.”

 

주방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테이블 반대편에 앉았다.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

“중국집도 아니고 분식집에 왜 고추잡채를 팔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분식집에서 고추잡채를 파는 곳을 보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서 비빔국수도, 쫄면도, 오므라이스도 팔지 않는 곳, 메뉴가 세 개 밖에 없는 분식집에 고추잡채가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건 손님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에요.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살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음식이죠.”

“전 고추잡채에 대한 추억이 없는데요?”

 

주방장은 새로운 젓가락을 꺼내줬다.

 

“다 먹으면 알게 될 거예요.”

 

주방장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재빨리 그릇에 담긴 고추잡채를 먹기 시작했다. 그 많던 고추잡채는 어느새 빈 접시가 되었다.

 

“봐요. 다 먹었는데 아무 일도 안 생겼…….”

 

고추잡채가 담겼었던 빈 그릇에서 주방장의 모습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내앞에는 주방장이 아닌 익숙한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조금은젊은 모습으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의 옆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옆에는 지금 어엿한 성인이 된 동생이 아주 어렸을 적 모습을 하고 앉아 있었다.

 

“도윤이?”

 

 


옆에는 도윤이가 즐거운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고, 앞에는 할머니가 뿌듯한 표정으로 도윤이를 보고 있었다. 옛날에 살던 집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는데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고 구식 냉장고와 도윤이가 붙였던 로봇 스티커들까지 똑같았다.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자 할머니가 나를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너는 이렇게 안전부절 못하냐. 도윤이 봐라얼마나 잘 먹어잉.”

“네? 네…….”

“어른이 말할 때에는 한 번만 대답해야지!”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의 모습에 즐거움도 잠시였다. 괜스레 할머니의 기분을 맞춰 주어야 할 것 같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내 손이 아기 손처럼 작고 통통해 보였다. 나의 모습도 어린아이가 된 모양이었다.

 

“서연이는 끝나고 전 좀 부치자. 내일 제사 있잖여.”

“네.”

 

밥을 먹고 있을 때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식용유, 프라이팬, 계란, 밀가루를 꺼내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밥을 먹고 할머니를 도왔다. 옆에 앉아 있던 도윤이는눈치 없이 계속해서 밥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할머니가 주는 재료들을 프라이팬에 부쳤다.

 

“하이고, 이쁘게 잘 하네잉?”

“헤헤.”

 

오랜만에 듣는 할머니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시집가서 잘 하것네. 자고로 여자는 집안일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겨. 그래야 사랑받는거야.

 

기분이 몹시 나빴다. 하지만 다시는볼 수 없는 할머니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무의미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잉? 알겠제? 할미 말 잘 들어잉?”

 

말없이 할머니가 주는 애호박과 버섯을 계속 부쳤다. 생각해보니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일방적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좋아했지만 할머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도윤이만을 생각하고 도윤이만을 위해 살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말하길 내가 태어났을 때 엄청난 구박을 받으셨다고 한다. 단지 내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나는 사랑을 받지 못했고 엄마는 아이까지 낳은 몸으로 소박을 맞았다. 자신도 여성이면서……. 밥을 다 먹고 거실에 누워 흥얼거리는 도윤이가 괜히 미웠다.

 

“할머니, 근데 쟤는 왜 아무것도 안 해요?”

“... 쟈는 아직 어리잖어.아가 버섯 전 한번 먹어 봐라.”

 

할머니는 허리를 집고 일어나 버섯 전 하나를 도윤이 입에 넣어주고 왔다. 세 살 차이 밖에 안 나는 동생. 나는 더 어렸을 적부터 동생의 뒷바라지를 했다. 

 

많은 전을 부치다 보니 식용유가 떨어졌다.

 

“아이구 식용유가 떨어졌네.”

“제가 갔다 올게요.”

 

도윤이가 전을 먹고 신났는지 손을들고 번쩍 일어났다. 

 

“하이고 돼야 써! 어린 것이 뭘 한다고 앉아 있어야. 네가 갔다 온나.”

 

할머니는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주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나를 밀면서 바깥으로 내 몰았다.

 

“네? 제가 왜요?? 제가 간다잖아요. 제 시켜요!”

“누나가 돼가지고 그것도 못해주나!”

“퍼뜩 갔다 와!”

 

할머니손에 있는 지폐를 홱 낚아채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큰 소리가 날 만큼 문을 닫고 나가니 할머니의 욕소리가 들렸다.

 

“기지배가 승질머리 하고는!”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아니 아까부터 말도 저절로 나왔다. 머리로는 할머니를 위해 고운 말을 쓰려고 했는데 입에서는 저절로 말이 나왔다. 내 머릿속에 담긴 추억 중 하나가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더운 날 꼬깃꼬깃한 지폐를 식용유로 바꾸고 나서 집에 돌아갔다. 괜스레 화를 내고 나간 것이 부끄러워 문을 조용히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안방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퍼뜩 받어~ 네 누나 오기 전에!”

“저만요?”

“그랴! 남자는 주머니가 빵빵해야 하는 거.”

 

할머니는 도윤이의 손에 빳빳한 새 지폐를 쥐여줬다. 

 

“흠, 할머니 나 왔어!”

 

괜히 티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도윤이는 손에 담긴 지폐를 재빨리 자기 바지 주머니 속에다 넣었다.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거실로 나와 다시 전을 부치기 위해 앉았다. 식탁에는 아까 먹은 밥과 반찬들이 그대로 있었다.

 

“야! 이도윤 네가 마지막에 먹었으니까 이거 치워.”

“아이고! 내가 치울게 내비 둬. 남자는 부엌 들어가는 거 아니야.”

“왜? 왜 안되는데!남자는 부엌 들어가면 고추라도 떨어져?”

 

몸은 저절로 도윤이에게 다가가 손바닥으로 등을 내리쳤다. 도윤이는 쓰라렸던지 씩 거리며 자기의 등을 매만졌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도윤이를 안고는 나를 노려봤다. 나는 그 모습에 더 화가 나 도윤이에게 큰소리쳤다.

 

“야! 네가 치워! 고추 떨어지면 내가 주워서 붙여줄게! 들어가!”

“이 기지배가!”

 

할머니의 손바닥이 내 얼굴을 때렸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했다. 옷으로 눈을 비비고 눈물을 닦았다. 다시 빛이 보였을 때 나는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원목 테이블과 의자그리고 거기에 앉아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주방장이 있었다. 마녀 분식집에 다시 온 것이다. 주방장은 나를 보며살짝 미소를 지었다.

 

“눈물을 흘릴 만큼 음식이 맛있었나 보네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손님이 가지고 있는 큰 추억 중 하나에요. 주마등이라고 하죠?”

“주마등이요?”

 

주마등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다. 사람이 죽기 바로 직전 전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 아닌가.

 

“저… 죽은 건가요? 대체 왜 죽었죠? 나는 그냥 야식을 사러 왔을 뿐인데요?”

“죽지 않았어요. 나는 손님에게 추억을 보여 줄 뿐이죠.”

 

시원하게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단지 죽지 않았지만 주마등을 보았다는 사실만 알게 됐다. 주방장은 빈 접시가 된 고추잡채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떡볶이 금방 완성되거든요.”

“잠깐만요! 아직 알고 싶은 게 더 많은데요.”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려는 주방장의 검은 앞치마를 잡았다. 주방장은 내 손을 살짝잡고 앞치마로부터 떼어냈다.

 

“음식을 먹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 떡볶이를 먹고 난 뒤 다 이야기해 줄게요.”

 

주방장은 나를 등지고 알 수 없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내 또 물을 끓는 소리, 재료를 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다음 요리를 기다렸다. 십분 정도 기다리자 빨갛다 못해 까맣게 보이는 떡볶이하나가 나왔다.

 

“다음 음식은 아주 매운 떡볶이입니다.”

 

주방장은 아까처럼 검은 앞치마에서 쪽지 하나를꺼내 읊었다.

 

“맛있는 색감을 위해 고추장 두 스푼 그리고 까마귀의 피 한 스푼을 넣었어요.”

“또 농담이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떡볶이를 먹었다. 주방장은 어깨를 으쓱하고 계속해서 쪽지를 읽었다.

 

“이번 음식은 힘들 수 있어요.”

 

주방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괜찮다는 듯 크게 웃은 후 떡볶이를 먹어 치웠다. 그릇을 비우자 분식집이 빛으로 차기 시작했다. 주방장도, 테이블도, 의자도 빛으로 가려졌다. 모든 것이가려졌을 때쯤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건드렸다.

 

“서연아 뭐 해?”

 

 


어딘가 익숙한 얼굴을 한 여자아이가 내 어깨에 손을 대고 있었다.

 

“서연아?”

“어?”

“우리 빨리 청소 끝내고 집 가자.”

 

주위를둘러보니 책상과 의자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다. 창문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듯 노을이 들어왔고 몇몇의 아이들은 책상과 의자들을 옮기며 청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학교 풍경이었다. 교실 뒤편에 오학년 삼 반의 그림들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연아 내가 창틀 닦을게 네가 바닥좀 쓸어줘.”

 

자리에 일어나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넓은 교실을 쓸었다. 평화롭고 조용했다. 청소를 다 끝내고 친구와 함께 하교를 했다. 운동장의 흙냄새에 괜히 가슴이 뭉클했다. 친구와 인사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가려 하자 친구는 아쉬운 모양새였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 듯 친구는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어디 가?”

“떡볶이 먹으러 가자! 나 용돈 탔거든.”

 

학교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시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많은 과거가기억 난 것은 아니지만 심도 있는 대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즐길 수 있었다. 자기가 옆 반에 누구를 좋아한다는 둥,담임선생님이 싫다는 둥, 이번에 연예인 누가 잘생겼다는 둥 오랜만에 진짜 친구와 대화를 한 것 같았다. 평화롭고 따뜻한 추억이라고 생각했다. 주방장은 왜 나에게 힘들 수 있다고 말한 것일까 의아했다. 내 몸이 마녀 분식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 더 많은 이야기가 남은 듯했다.

 

“나 이제 갈게!”

“서연아 잘 가!”

 

우리는 떡볶이를 먹고 헤어졌다. 청소를 할 때에는 빨갛게 노을이 보였는데 벌써 달이 보이는 것을 보면 저녁이 된 듯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집으로 향했다. 분명 또 할머니가 여자애가 집을 늦게 들어왔다며 노발대발하실 게 뻔했다. 나는조금이라도 일찍 집으로 가기 위해 지름길로 향했다. 지름길은 가로등 하나 없었지만 십 분이나 일찍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큰일 났네. 할머니가 뭐라 하실 텐 데.’

 

지름길을 반쯤 통과하자 내 뒤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발걸음은 내 발 걸음을 맞추듯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내가 착각한것이 아닐까 싶어 속도를 조금 늦췄다. 뒤에 있던 의문의 사람도 내 발 걸음을 맞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도망가야 함을 느꼈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셋까지 세면 뛰어서 이 골목길을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반을 넘게 왔기 때문에 조금만 달리면 골목길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하나… 둘… 셋!’

“아이씨!”

 

굵직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나는 목구멍이 입으로 나올 만큼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멀리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탁!’

 

그러나 초등학생의 달리기는 어른의 달리기를 이길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인지 모를둔탁한 무기로 머리를 맞고 머리카락을 잡힌 채 빛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끌려갔다.

 

“하 이년 영악하네. 일부로 늦게 걷다가 뛴 거야?”

“아저씨! 잘못했어요. 저 경찰한테 안 말할게요. 집으로 보내주세요.”

 

잊고 있었던 기억이 생각났다. 잊고 싶었던 기억, 잊으려고 노력한 기억 그리고 충격으로 인해 잊었던 기억. 나는 열두 살 어린 나이에 길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어두운 골목길에 버려진 나는 고등학생 언니에게 발견되어 무사히 살 수 있었다. 나는 몇 년 동안 알 수 없는 약을 먹으며 심리 상담을 받았다. 경찰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나를 찾아와 범인의 모습을 물어봤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범인은 그 탐욕스러운 뱀을 꺼내 놓으며 이런 말을 했다.

 

“경찰에 신고하기만 해봐. 네 인생을 망쳐줄 테니까.”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잊고 있었던 그 새끼의 얼굴도 똑똑히 기억할수 있었다. 더러운 눈매, 돼지 같은 코, 검은 입술 옷차림새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힘썼다.

 

“뭘 노려봐.”



더러운 몸뚱이에 탐욕 당하기 전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이런 치욕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몸을 떨면서 눈을 살짝 떴다. 주방장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음식은 어땠나요?”

“최악이었어요.”

 

 


내 몸에는 식은땀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주방장은 부엌으로 들어가 깨끗한 수건 하나와 얼음물이 담긴 컵 하나를 주었다. 

 

“이제 알려주세요.”

 

주방장은 반대편에 앉아 팔짱을 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와는다르게 웃음이 마냥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쓴웃음만을 짓고 있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여기는 무의식의 세계에요. 죽기 직전 영혼이 떠도는 곳이죠. 서연 씨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그럼요?”

“이제는 서연 씨가 결정하는 거예요. 계속해서 삶을 살아갈지 새로운 인생으로 더 좋은 추억을 쌓아갈지.”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더 이상 이렇게 아픔을 견디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새 인생을 살고 싶었다.

 

“저 새 인생을 살고 싶어요.”

“알겠어요. 이제 편하게 쉬어요. 이제 분식집 문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재밌었어요 서연 씨.”

 

미닫이문 하나로 나의 인생이 걸려있음이 덧없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저는 왜 죽었나요?”

 

주방장은 아무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손 두 개를 합친 것만큼 커다란 돈가스 하나를 가지고 왔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했어요.”

 

주방장은 다시 기운을 차린 듯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주방장이 돈가스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뱃속에는 소화되지 않은 고추잡채와 떡볶이가 배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꾹 참고 돈가스를 한 조각씩 먹었다.

 

“이번에는 레시피 안 읽어 주시나요?”

 

주방장은 조금 뜸을 들이더니 검은 앞치마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음……. 망치로 여러 번 두드린 고기에 계란 물과 튀김가루를 묻혀 바삭하게 튀겨냈어요.”

“이번에는 평범하네요?”

 

마지막 한 점을 소스에 푹 찍어 먹었다. 떡볶이를 먹었을 때처럼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서연! 이서연!”

“네?”

 

내 눈앞에는 조현남이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역정을 내고있었다. 그렇게 싫었던 사람이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마냥 좋았다.

 

“뭘 웃고 있어! 여자들은 툭하면 힘들다고 하더라. 힘들면 회사 때려치워.”

 

몇 시간 전 조현남이 야식 심부름을 시킬 때와 상황이 똑같았다. 

 

“됐고. 쓸모없으니까. 야식이나 사 와. 여자….”

“여자니까 센스라도 있게 사 오겠습니다.”

 

조현남의 말을 끊었다. 조현남은 입을 벌리고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드 주셔야죠.”

 

조현남은 두툼한 가죽 지갑을열고 카드 한 장을 꺼내 던 질 준비를 했다. 나는 조현남 손에 꽉 쥐어져 있는 카드를 낚아챘다. 그리고 눈을 살짝 내리깔고 카드를 대충 훑어보면서 문으로 향했다.

 

“또 법인카드네요.”

 

마음이 상쾌했다. 평소에 하지 못하고 쌓아두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왜 조현남 같은 사람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했을까 후회했다. 

 

빠른 걸음으로 마녀 분식집을 향해 걸었다. 내가 죽은 이유를 직면하고 싶었다.

 

“똑같네.”

 

처음과 같이 높디높은 건물들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내 키만큼이나 작은 건물들 속에 도착했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죽을 것 같았던피곤함이 사라졌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꿈속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가로등이 띄엄띄엄 설치되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쯤이었는데.’

 

조금 더 생각나는 것이 있을까 싶어 천천히 길을 걸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로등만이 내가 가는 길을 밝혀 줄 뿐이었다. 너무 적막한 탓이었을까 저 멀리서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직감이 말했다 범인이다. 열두 살 때와 똑같았다. 내 발 걸음에 맞춰 그는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벗어날 곳은 없었다. 주위에는 굳게 닫힌 낮은 집들만이 보였고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창문을 열고 나를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굳게 닫힌 문들을 열어 주지 않았다. 범인은 달려와 둔탁하게 내 머리를 내리쳤다. 주방장의 레시피가 직설적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가로등하나 없는 곳에서 눈을 떴다. 보이지는 않지만 손에 만져지는 종이 상자와 쓰레기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골목길 구석에 있는 쓰레기장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왜 살려 달라고 안 하냐?”

 

범인은 의아한 듯 나를 내려 보고있었다. 더러운 눈매, 돼지 같은 코, 검은 입술 십삼 년 전 나를 겁탈한 그 사람과 똑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십삼 년 전…….”

 

범인은 의아한 듯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크게 웃었다.

 

“흐하핰하하흐헤헥 진짜 잘 컸네.”

 

기분 나쁜 손이 내 가슴을 만졌다.

 

“삶이 끝났으면 바랬던 적이 있어. 그런데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내가 죽기에는 너무 불쌍하잖아.”

 

더러운 손은 가슴에서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어디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돈이 없어서 이런 동네에 살게 돼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혼자 이 길을 걷게 돼서?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내가 뭘 잘못 한 거야.”

 

손이 멈췄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내 얼굴과 가까워지면서 말했다.

 

“나보다 약한 존재로 태어났으니까.”

 

 


꿈속에서 돌아오면 언제나주방장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장은 기다렸다는 듯 술잔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평소에 주던 쇠 컵과는 달리 와인이 담길 법한 유리잔이었다.

 

“이게 뭐예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으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돼요. 삶을 유지하고 싶으면 유리잔에 담긴 술을 마시면 되고요. 결정하셨나요?”

“네.”

 

주방장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주고 유리잔을 들었다.

 

“생각이 바뀐 이유가 있나요?”

“아직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행복해지려고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주미 씨.”

 

나는 컵에 담긴 술을 삼켰다. 강한 알코올 냄새가 내 코와 입을 때렸다. 주방장은 한 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어 가며 나를 배웅해줬다.

 

“선택의 후회가 없길 바래요.”

 

유리잔에 가득 든 술을 한꺼번에 먹으니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숙취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점점 눈이 감겼고 내 눈에는 어둠만이 존재했다.

 

“선생님! 이서연 환자 깼습니다.”

 

잠에서 깼을 때 나는 병원에 있었다. 온몸에 주사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약한 숨을 쉬고 있었다. 내 옆에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동생 도윤이가 있었다. 이틀 동안 수 천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일어났을 때 온몸이 아팠다. 나중에 일반실로 옮기고 나서 거울을 보니 온 몸이 피와 멍 투성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가슴이 아렸다. 며칠이 지난 후 경찰이 와 여러 질문을 했다.

 

“어디서 당하셨나요?”

“그날 밤 왜 밖에 있었죠?”

“평소에 원한관계를 살 만한 사람이 있었나요?”

 

경찰의 빈 껍데기 같은 질문들을 하나씩 받아줬다. 한 경찰은 녹음기를 켜서 내 목소리를 저장했고 또 다른 경찰은 조그마한 수첩에 내가 쓴 말들을 적고 있었다.

 

“골목길.”

“회사 심부름.”

“없었어요.”

 

경찰은 만족하지 못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서연 씨 마음 아픈 건 알지만 제대로 협조를 하셔야 범인을 잡을 수 있어요.”

“난 범죄자가 아니에요.취조하지 마세요.”

 

경찰들은 죄송한 마음도 없으면서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척을 했다.

 

“눈매가 쥐처럼 쫙 찢어져 있어요. 코는 둥글고 뭉뚝하고요. 얼굴형은 광대가 심하게 나왔어요. 또 눈 밑에 상처가 깊게 있어요. 어또…….”

 

꿈속에서 보여준 기억들 덕에 범인의 모습을 추리할 수 있었다. 경찰들은 내가 말하는 이야기들을 적다가 나중에는 몽타주 전문가를 불러 직접 그리기까지 했다. 내가 세세하게 범인의 얼굴을 말하니 전문가는 놀라워하며 곧 범인을 잡을 수 있겠다고 이야기했다. 삼일 만에 몽타주가 전국적으로 배부됐고 나도 그쯤 지긋한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간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가고 있었다. 회사에 소문이 퍼졌는지 내가 등장만 해도여기저기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사에 남긴 물건들을 상자에 쌓고 있을 때였다.

 

“서연 씨 괜찮아?”

 

조현남은 세상에서 제일 다정스러운 남자 마냥 나를 걱정해 주었다.

 

“네 괜찮아요.”

“아니 그게……. 내가 그때 심부름 시켰잖아. 경찰들한테 말 안 할 수 있나 싶어서…”

“네.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조현남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안쓰럽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회사 다시 들어오고 싶으면 말해.”

 

나는 조현남의 말을 무시한 채 책상에 널 부러져 있던 짐들을 상자에 계속해서 넣었다. 무거워진 상자를들고 문 밖으로 나가면서 조현남을 보고 말했다.

 

“그렇게 살지 마세요.” 

 

 


사건이 있고 이 주가 지났을 때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찰은 서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가고 싶다고 했다. 범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앞으로 두 손이 꽁꽁 묶여있는 늙은 아저씨 하나가 나를 보고 있었다. 저 아저씨가 나를 평생 옥죄어왔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형사님, 이분인가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늙은 아저씨가 나를 보고 웃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듯 해맑아 보였다.몸의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면서까지 굳이 나를 마주하는 이유가 뭐지?”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내가 뭘 잘못한 거예요? 왜 하필 나였어요.”

“태어났으니까…”

 

조그마한 목소리로 아저씨는속삭였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보다 약한 존재로.”

 

꿈속에서 들었던 그 말이었다. 현실에서 이 말을 들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침을 삼키고 떨리던 두 손을 꽉 잡았다.

 

“아저씨도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그렇지”

 

늙은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경찰들은 아저씨가 나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조용히 아저씨의 손과 발만을 보고 있었다. 경찰들이 범인에게 한 눈을 판 사이 주먹으로 아저씨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지 못할, 용서받아서는 안될 짓을 했어. 나는 내 편안을 위해 다시는 이 기억을 꺼내지 않을 테지만 남겨진 너는 감옥에서 평생 썩어. 아주 고통스럽게. 그리고 다음 생에는 꼭 나로 태어나서 살아보길 바래.”

 

경찰들은 내 팔과 다리를 들고 밖으로 내보냈다. 평생을 증오한 사람을 때려도, 심한욕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났다. 긴 재판 끝에 범인은 실형 25년을 선고받았다. 어렸을 적 당한 성폭행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조건으로 성립되지 않았다. 범인은 끝까지 모르쇠 했고 25년도 겨우 받아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갔다. 부모님은 조금 더 치안 시설이 좋은 곳으로 가자며 빚을 냈다. 물론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가족들을 더 이상 이 동네에 살 수 없게끔 만들기도 했다.

 

반년을 쉬고 새로운 회사에 취업도 했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감추기는 쉬웠다. 내 주위에도 나와 같은 피해자가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는 항상 조현남 같은 사람이 있고, 할머니, 도윤이 같은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숨어서 누군가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행복하다. 아니 행복한 척을 한다. 사람들 앞에서 더 많이 웃고, 이야기한다. 누군가 내 과거를 알까 싶어 더욱더 크게 내 감정을 숨긴다.나는 나를 더 이상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선택의 후회는 없다. 단지 내가, 여자가, 약자가 살기에 걱정 없는 곳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다른 이서연이 만들어지면 안 되니까.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