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나는

by 침묵 posted Dec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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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딸아이와 있을 때 아내가 있을 때와는 다른 불편한 침묵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 딸아이는 손에 들린 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TV를 켠다. 의미 없는 대화사이로 나의 시간이 묻혀 사라짐을 느낀다. 점점 창밖이 어두워져 가고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지 말지 고민하며 여러 번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본 적이 언제였더라.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니 아내와 딸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거실에 있기가 뭣하여 안방으로 들어가 휴대폰으로 영상들을 본다. 밖에서 그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영상 소리 위로 겹쳐 들리며 내가 이 방에 갇혀있으며, 나는 이 집에 사는 이물질처럼 느껴진다. 답답하다. 답답해. 목에 진한 갈증이 일면서 속이 칼칼했다. 나는 겉옷을 대충 걸치고는 밖으로 나간다.

나 산책 좀 갔다가 올게.”

, 그래.” “다녀오세요.”

 

나는 아파트에서 떨어진 편의점에서 소주 한두 병과 과자 한 봉지를 사 들고 차가운 벤치에 앉는다. , 소주 뚜껑을 열고 뜨겁고 차가운 액체가 속으로 들어간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나는 어떤 인간인가.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나에게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까.

나는 눈을 감고 술을 마시면 언제나 그랬듯이 아버지의 마지막을 상상한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한밤에 꾸는 악몽처럼 강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술에 잔뜩 취해 논두렁을 걷는 아버지의 뒤에는 달빛이 제 얼굴을 구름 뒤로 감춰 그 사악하고 깊은 물구덩이를 감췄을 것이다. 그리고 비틀비틀 걷는 아버지는 그 구덩이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는...

머릿속이 번쩍하더니 그 시커먼 구덩이 위로 내 얼굴이 생생하게 비치고 그 얼굴은 점점 아버지를 닮아간다. 점점 무감각해지고 아버지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와 내 딸아이 역시 그렇게 되어간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와 내 아내도 그렇게 되어간다.

점점 겉으로 무뎌져 가며 결국에는.....!

나는 그 영상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집에 갈 시간이 된 것 같다.


 너무 늦었나?

 내가 너무 늦은 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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