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Mr.Fortune

by 두더지 posted Dec 0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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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죄가 있다면 지독히 불행한 죄밖에 없습니다.]



사건 파일을 책상 위에 던져 놨다. 파일이 책상을 타고 미끄러졌다. 안경을 벗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등 뒤로, 블라인드 사이 쏟아지는 햇빛이 느껴졌다.

그 탄원서는 나에게로 쏘아진 탄창 같았다. 나에게 내민 도전장. 그러나 그는 죽었으니 나에게는 붙잡고 싸울 적도 없는 셈이었다. 단 하나의 아군도 없이 전장에 홀로 남겨진 장군처럼. 나에게는 아무런 명예도 없이 치욕만이 있을 뿐이었다.



[박유정 판사님 드림.]



그는 피부과 의사였다. 이제 막 자신의 이름을 건 개인 피부과를 차린. 37살의 남성. 병원을 차릴 자금을 대부분 처가에서 대주었다고 한다. 만삭인 그의 아내가 사망하기 전 날 그녀와 다툰 이유를 그는 아내가 의부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간호사를 뽑아야 하는데 자신보다 어린 여자를 들이는 것은 싫다며 아내가 억지를 부렸다고 했다.


그러나 옆집 이웃은 남편이 윽박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남편은 순순히 이를 인정했다. 그녀를 너무 사랑했지만 그녀는 화가 날 때면 이따금씩 자신이 고아임을 들추어 모욕을 했다고. 너무나도 비참했지만 사랑했기에 참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사람들에겐 ‘비참해서 죽였다.’라고 밖에 들리지 않았다.


침대 시트에선 그의 정액이 검출됐다. 검사는 강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결단코 아니라며 부인했다. 그렇지만 출산을 코앞에 둔 아내와의 성관계라니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납득하기는 어려운 행위였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내가 매우 불안해했다고 했다. 의부증의 연장선이라고. 임신을 한 후 나날이 증세가 악화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증명할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검찰이 부부가 주고받은 메신저 기록을 낱낱이 살피고, 통화 빈도도 따져보았지만 그녀가 의부증인 것을 입증할 만한 단서는 없었다. 


외려 진료를 받으러 오는 여성 손님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한 쪽은 남편이었다. 그는 휴대폰 메신저를 통해 여성 환자의 주거지, 말투, 옷차림, 환자의 가족 관계에 대한 추측성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아내에게 전달했다. ‘강남 ㅇㅇ동 오피스텔에 사는 걸 보니 화류계 쪽인 것 같은데.’, ‘홀복을 입고 다리를 꼬는 모습을 봐도 안 꼴린다. 이런 X이랑은 돈 받아도 안한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남편의 진술만을 믿어왔던 변호인 측은 증거로 채택된 메신저 내용을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은 이에 대해 자신의 아내가 의부증이 심하여 진료를 받으러 오는 여성 환자들을 비하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아내가 먼저 물어보기 전에 자신이 먼저 말해주면 아내의 의심이 사라질 것 같았다고. 그것 또한 그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검사는 잠시 비웃음을 참더니 그게 정말 아내를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라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고, 변호인은 어떻게든 정신감정 신청을 하고 싶어 하는 눈초리였다. 


이 사건은 메스컴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만삭인 아내를 살해 한 인면수심의 남편”이라는 타이틀이 그에게 붙여졌다. 또한, 그가 주고받은 메신저 일부 내용이 기사화되었고 의학계를 향한 논란이 이어졌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모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환자를 향한 성희롱을 일삼는 의사들에 대한 고발이 이어져 나갔다.


보수적인 의학계는 자신들을 향한 논란을 잠식시키기 위해 이 사건의 조속한 판결을 원하는 듯 했다. 수석 부장은 언론에서 주목하는 사안이니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줄 것을 부탁해왔다. 의학계는 하루라도 빨리 그를 범죄자로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의사 면허를 취소해버릴 계획이었다. 일명 꼬리자르기식 해법이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그 야식집이요. 어머니가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어서 내놓으면 아버지가 랩 포장지로 포장을 하셨습니다. 식당 의자는 어린 제게 너무 커서 아버지가 붙들어 주셔야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화재사고를 겪은 다른 사람들은 불에 타서 사진 앨범이 없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의 경우는 부모님이 있던 가게가 불에 탔고, 제가 있던 집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사진 앨범들이 그대로 있어요. 제가 어렸을 적에 공룡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한 사진에 제가 공룡 헬륨 풍선을 가지고 가게에서 활짝 웃으며 찍힌 사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사진에는 아주 조그맣게 어머니가 웃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모종삽을 들고 뒷산에 그 앨범들을 묻었습니다. 다신 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끝내 그 사진이 제 기억 속에서 묻히진 않았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불안장애를 앓았습니다. 저는 친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는데 할머니와 떨어지기 싫어 학교에도 가지 못했어요. 언제 어떻게 할머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저를 지배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성적도 좋지 않았고 지진아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말도 어눌했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복지관에 나가시는 걸 인생의 낙으로 삼으시던 할머니가. 그리고는 외숙모와 이혼하시고 홀로 사시는 외삼촌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외삼촌이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저는 아직도 육개장을 먹지 못합니다. 같은 장례식장에서 세 번의 장례를 치른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는 걸요.


그래도 저는 외삼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외고에 턱걸이 할 수 있는 성적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고등학교에서 제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고 알았습니다. 가장 믿음에 의존하는 사람은 가장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요. 자신의 의심을 채우기 위하여 스스로를 끊임없이 세뇌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요. 그런 의미에서 아내는 저에게 많은 믿음을 준 사람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의심을 했더라도 말이죠. 자신은 저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라고 끊임없이 이야기 해주던 사람입니다.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마법에 걸린 것 같았거든요. 누군가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저에겐 마법이었습니다.


아마 불행을 이겨낸 사람들 중에 이 불행에 준하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잃고 그 불행에 준하는 행복이 아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내를 잃어버렸습니다. 더 좋은 일을 상상해보려 했지만 저는 더 이상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검사님의 말씀이 맞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내를 죽인거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지는 거였는데, 그런 불운을 태초부터 타고났던 거였는데.]



나의 부모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겸손해 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설령 집 안에서는 성적이 나쁜 아들을 장우산으로 때리는 부모님일지라도 밖에서는 자신의 아들이 성적과는 상관없이 반듯하게만 자라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런 류의 부모님이었다. 혹시라도 일등을 놓치면 아버지는 십자가 걸어진 안방에 들어가서 어김없이 검은 장우산을 가지고 나오셨다. 


이웃 아주머니가 나의 성적에 대해 칭찬할 때면 어머니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걸요.”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부모님은 치열해 보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다. 어머니는 집에선 거의 절식하면서 몸매를 유지하지만 밖에서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찌는 체질’의 품위를 유지하고 싶어 했고, 아버지는 거래처 사장들과 끊임없이 2차 술자리를 해야 했지만 고개 숙이는 건 못하는 청렴한 큰손으로 보이고 싶어 하셨다. 아마 자신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 빛 좋은 허울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만 하는 걸 본 나는 세상에 운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노량진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 항상 내 옆에 앉아 공부를 하던 녀석은 징크스에 심취에 있는 녀석이었다. 밤 11시에 늘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들으며 양치질을 해야 하고 양말은 형광색으로 신어야 했으며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하루에 4번 화장실을 가야했다. 손톱은 자르지 않되 손톱이 부러지지 않게 늘 가꾸어야 했다. 


그는 늘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그의 징크스가 강력해질수록 그의 행동이나 외모는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졌다. 형광색 양말을 신고 다리를 떨며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고 네일 클리퍼로 손톱을 다듬는 그의 모습은 광적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사실 고시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제 정신인 것 같은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고시원 방에 가면 빠진 겨드랑이 털을 수집해서 진열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소문까지 떠도는 사람은 그가 유일무이했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내가 판사로 임명받았을 그 무렵이었다. 연수원 동기들과 모임을 가지는 자리에서 한 동기가 노량진 그 사람 기억나냐며 운을 뗐다. 다들 그의 광적인 모습을 묘사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는 아직도 노량진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합격을 하고 싶어 머무르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머리도 자르지 않고 수염도 길렀다고. 노량진에선 “노량진 신선”으로 불린다고 했다.


공부도 운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만든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운이 아니다. 완벽한 성과이다. 나는 그때 노량진 신선이 된 그가 공부는 운이라는 저 말을 너무 맹신한 것은 아닐까 하고 가끔 생각했다. 비합리적인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비합리적인 행동을 이어나갔던 것이라고.


“퇴근 안하세요?”


외투를 왼 손에 얹은 실무관이 문을 열고 물어왔다. 짐 정리를 좀 해야 해서. 나는 말끝을 흐렸고, 그가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예정된 해외연수 출국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 것에 비해 이런 호소문에 가까운 탄원서야 가벼운 헤프닝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말하는 불행이 자꾸 신경 쓰였다.



죽은 아내를 처음 발견한 것은 남편이었다. 점심시간에 집에 들른 남편이 거실 쪽 욕실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아내를 발견한 남편이 119에 전화했고 욕조에 머리를 부딪쳐 죽은 것 같다고 거듭 말했다고 한다. 증인으로 나온 구급대원은 당시 남편이 섬뜩할 정도로 침착했다고 증언했다.


아내의 사망 추정 날짜는 남편이 시체를 발견한 당일이 아니라 그 전날이었다. 그들이 부부싸움을 한 날. 부부가 살았던 아파트 4층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씨씨티비를 확인해 보았지만 남편이 부부싸움을 하고 난 후 외출한 흔적이나 외부인이 출입한 흔적은 없었다. 남편은 부부싸움을 하고 자신은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고, 아내는 아기방을 꾸미다가 자주 그곳에서 잠이 들곤 했기 때문에 그날도 대수롭지 않게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은 안방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했기 때문에 출근할 때도 아내를 찾지 않고 나갔다고 했다.


이에 이어 남편 측 변호인은 아내의 죽음을 우연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아내의 사인은 후두부 외상으로 인한 뇌출혈로 판명 났다. 변호인은 거동이 불편한 만삭의 아내가 욕실에서 혼자 미끄러져 욕조에 머리를 부딪쳐 끝내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사는 아내의 볼 쪽에 위치한 상해들과 충혈된 눈자위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다. 증인으로 채택된 국과수 관계자는 그 증거를 보며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었지만 입과 코가 압박받으면서 질식하였을 정황이 있었을 것이라고 첨언했다. 남편은 이러한 정황에 대해 인정했다. 아내와 다툴 당시 자신의 폭력적인 행위가 있었고 끝내 아내의 입에서 “이래서 근본 없는 고아랑 만나지 말아야 했는데.”라는 말이 나오자 참지 못하고 자신의 손으로 아내의 코와 입을 압박했다고 진술했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만삭인 아내를 무릎 꿇게 했고, 닥치라고 여러 차례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남편이 설명한 시간대는 이웃 주민이 남편의 윽박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 시간과 일치했다. 


결론적으로 검사는 아내의 의부증을 증명할 단서가 없으며 그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주장했지만 타 여성들을 향한 성희롱에 가까운 언행들과 아내를 향한 폭력적 행위를 일삼은 남편의 행동은 그의 진술들과는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변호인 측의 주장대로 아내가 죽은 것이 우연한 사고사였다면 욕실에서 만삭인 아내가 넘어지는 소리를 텔레비전도 켜두지 않은 집에서 함께 있었던 남편이 듣지 못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검안 결과에 따르면 척추나 둔부에는 상흔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 따라  만삭인 아내가 욕실에서 넘어지면서 정확히 머리만 부딪히기란 정황상 힘들어 보인다고 검사는 주장했다. 결국 정황과 증거를 종합해봤을 때 검사는 부부싸움을 하던 도중 화가 난 남편이 아내의 얼굴을 붙잡고 욕조에 일부러 가격했다는 판단이 적절하다고 했다.


그는 유죄였다.



하얀 접시 위에 마름모꼴로 놓인 냅킨. 그리고 그 위에 포춘쿠키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내가 멍하니 젓가락을 들어 포춘쿠키에 갖다 대는 순간, 등 뒤에서 미닫이문이 열렸다. 나는 무엇을 들킨 듯 황급히 일어나 인사를 했다. 들어온 것은 수석 판사였다. 그는 왼손을 들어 올리면서 아냐, 앉아. 앉아. 라고 말했다. 


그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고 양복 단추를 풀었다. 그는 남색 넥타이를 정리하고 물티슈로 손을 닦았다. 그의 반짝이는 은색 넥타이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는 박판사는 짜장면 좋아해? 내가 이 집 간짜장을 좋아하거든. 점심으로는 짜장면만한 게 없는 것 같아. 그렇지? 라고 말하며 넉살 좋은 척 웃어보였다. 나는 최대한 그의 장단에 맞춰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익숙한 듯 자신의 앞에 놓인 포춘쿠키를 쪼개었다. 그는 왼손, 오른손 차례로 쿠키를 입에 집어넣고 안에 들어있는 종이를 짧게 응시했다. 종이를 읽은 그는 오, 하고 외마디 탄성을 내더니 옆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쓰레기통에 종이를 버렸다. 나는 문득 그가 무슨 종이를 받았는지 궁금해졌다.


다시 미닫이문이 열리고 이번엔 주문한 요리가 들어왔다. 그는 많이 배가 고팠는지 요리에서 눈도 떼지 못했다. 요리가 식탁에 내려오지 않았음에도 젓가락을 들고 비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짜장면을 반 정도 먹을 때까지 말없이 음식에 집중했다. 음식을 거의 다 먹은 그가 드디어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냅킨으로 자신의 입가를 닦았다. 짜장면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하는 사람이라니. 나는 뭔가 천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그저 단순한 걸까.


“입맛이 없나? 아니면 짜장면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가?”


 그가 자신의 짜장면을 다 먹고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늘따라 입맛이 별로 없네요.”


그는 내 반쯤 남은 짜장면을 응시했다. 나는 그가 설마 내 남은 음식까지 가져가서 먹겠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래 오랫동안 비행할 건데 탈이라도 나면 안 되지. 하며 마무리 했다.


“몇 시 비행기지?”


나는 그의 말에 4시 비행기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왼팔을 들어 양복을 살짝 걷고 시계를 봤다. 그래 이제 곧 출발해야겠군. 좋은 기회니 잘 다녀오게, 라고 말하며 그는 계산서를 들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했다. 이번엔 특히 해외연수 가겠다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법원장님이 박판사를 아주 훌륭하게 생각하시더군.


“운이 좋았어.”


그는 격려하듯 내 어깨를 한번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는 미닫이문을 열고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왠지 비참한 기분이 들어 의자에서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내 반쯤 남은 짜장면 그릇 옆에 포춘쿠키가 놓여 있었다. 나는 포춘쿠키를 쓰레기통에 넣고 방을 빠져나왔다.


<형 11시에 도착 맞죠? 공항에서 기다릴게요. - 최현우 PM 1:25>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래, 라고 짤막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는 내 대학 후배였다. 그는 다니던 한국의 대학을 중퇴하고 스탠포드 대학으로 새로 입학했다. 내 해외연수가 확정되고 나서 나는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자신의 대학과 내 대학이 가깝다며 같이 살자고 권해왔다. 그는 재밌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고 나는 그러는 편이  좀 더 경제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냈다. 공항의 장엄한 공기가 콧속을 자극했다. 나는 택시 기사님께 인사를 하고 공항 안으로 향했다. 안으로 향하는 동안 캐리어는 계속 갸우뚱거렸다. 나는 공항 의자에 앉아 캐리어를 살폈다. 캐리어 안쪽 바퀴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이 바퀴가 어디서 빠진 건지 생각했다. 택시일까. 집에서일까. 아니면 작년에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일까.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나는 미국에 도착하면 캐리어를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체크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캐리어가 절뚝이며 나를 따라왔다. 나는 레일 위에 캐리어를 올려두었다. 1년 동안 사는 것치고는 간단한 짐이었다. 나는 이어 보안검색대로 향했다. 보안 요원이 내 티켓을 확인했다.


나는 장시간 비행이 처음이었다. 비행기 창문으로 몇 번씩 하늘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금세 지겨워져 시트에 몸을 기대고만 있었다. 내 옆의 사내아이는 이어폰을 꽂고 비행기의 영화를 섭렵하고 있었다. 아이는 갈색 바지에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남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집중하느라 아이의 입이 움찔거렸다. 그에 반해 그의 어머니는 검은색 안대를 쓰고 잠에 들어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으앙, 하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적막한 기내를 가로지르는 울음소리였다. 승무원들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어수선한 기내 분위기 속에서 나는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입양이라고?”


아이를 달래고 있는 승무원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이는 한국인이고 미국인 부부가 자신이 입양한 아이와 함께 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낯선 외국인 부모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자지러져 어쩔 수 없이 돌아가면서 달래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를 달래는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자신의 얼굴 쪽으로 아이를 꼭 껴안았다. 괜찮아. 너는 괜찮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생각했다. 저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문득 자신이 불행해서 고아가 됐다는 탄원서의 그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가게 되는 저 아이는 고아가 돼도 행복할까 혹은 고아가 돼서 행복할 수 있는 걸까. 불행했다던 그와는 다를 수 있을까.


나는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축축한 손을 바지에 슥 닦고 보니 어느새 그의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나는 짐칸에서 가방을 빼내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책에 끼워져 있는 흰 봉투를 꺼내 다시 가방에 넣었다. 


내 옆의 사내아이도 분주히 움직였다. 부스럭거리며 이어폰을 정리했다. 엄마, 아빠가 디즈니랜드 가도 된다고 했어. 아이는 신난 듯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는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인 듯 그래. 꼭 가자. 라고 시트에 기대 건성으로 대답했다. 


<착륙 상황에 이상이 생겨 작은 충돌이 있을 예정입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충돌에 대비해 주십시오.>


그 때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성이 들린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기체가 급격히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승무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승객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머리를 숙여주십시오.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승무원들이 비틀거리며 돌아다녔다. 여러분 머리를 숙여주십시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선가 배운 대로 머리를 숙이고 손을 깍지 꼈다. 사내아이가 궁금한 듯이 두리번거렸다. 나는 아이의 팔을 붙잡고 끌어 내렸다. 그러자 아이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머리를 숙였다.


기체는 더욱더 크게 흔들렸고, 산소마스크가 위에서 내려왔다.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커졌다. 어디선가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전부 공황 상태였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애초에 현실감이 없었다. 나는 거대한 비행기 안에 있는 작은 인간일 뿐이었다. 이 거대한 비행기가 겪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닌지 기체가 흔들리는 건 멈췄다. 비행기의 문이 열렸다. 승무원들이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다급하게 이야기 했다. 옆문으로 이동해 주세요! 승무원의 말에 모든 승객들이 벌떡 일어나서 짐칸의 짐을 빼려고 했다. 아비규환이었다. 그에 반해 침착한 승무원들은 짐이 아니라 모든 승객이 먼저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니 빨리 이동해달라고 했다. 사람들이 많으니 승무원의 말은 거의 절규에 가까워졌다. 그제야 사람들이 줄지어 이동했다. 


밖으로 나오니 공항 직원들이 분주히 비행기로 향했다. 앰뷸런스도 있었다. 그 순간, 내 뒤로 폭발음이 들려왔다. 폭발음과 비명 소리가 뒤섞였다. 승무원들은 충돌의 충격으로 비행기의 날개가 폭발했으나 모두 다 빠져나왔으니 무사하다고 이야기했다. 승무원들과 기장이 승객들을 인솔했다. 나는 비행기와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가벼운 부상자는 있는 것 같았지만 사상자는 없어 보였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맑았다. 그런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햇빛은 내 목을 조르는 듯 했다.


“형! 괜찮아요?”


저 멀리서 현우가 보였다. 그는 날 보고 반가운 듯이 뛰쳐나왔다. 지친 나와는 다르게 생기 있어 보였다. 그는 빨간 체크무늬 남방에 연한 청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비행기 얘기를 계속 했다. 형, 착륙하는 거 봤어요.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바퀴 없이 비행기가 착륙하더라구요. 그래서 어? 어?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그때 펑! 폭발했어요. 형 진짜 죽을 뻔했어요.


“형, 운이 진짜 좋았네요.”


그의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공항 안의 공기는 덥지 않았지만 내 손에선 아직도 땀이 흘렀다. 나는 가방 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공항 안에 있는 쓰레기통에 그 봉투를 버렸다. 그럼에도 귓가에서 그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래도 제 인생에도 행운은 있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행운은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갈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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