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by 여우네 posted Dec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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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방이 2갠데 둘 다 방이 아주 큽니다. 베란다도 넓고 또 신축건물이고... 어디를 가도 이만한 집이 없지.”

 

머리가 벗겨진 중개업자 남자는 연신 내 눈치를 살피며 떠들어댔다. 구경하는 집마다 이만한 집이 없다며 입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이 영 거슬렸다. 요령 없는 사내는 내 표정을 도통 읽을 수가 없는지 계속 집은 어떠냐? 마음에 드냐며 쉴 새 없이 나불거렸다. 사실 남자 말대로 집은 훌륭했다. 하얀 대리석이 깔린 베란다는 햇볕도 잘 들어 마음에 꼭 들었다. 안방도 커다란 옷장과 킹사이즈 침대를 들여놓아도 좋을 만큼 넉넉했다. 단지 흠이라면 너무 외진 곳에 있다는 것 정도일까. 여느 집과 달리 꼼꼼히 살피는 내 모습에 이정도의 눈치는 있는지 남자는 어느새 내 옆으로 또 바짝 들러붙었다.

 

방이 아주 크죠? 방음 시설도 아주 잘 되어 있어요. 벽지 한번 만져 봐요. 이게 친환경 재질인데, 웬만한 집에는 이런 거 잘 안 써


새하얀 벽지를 문대는 남자의 시꺼먼 손등을 찰싹 쳐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안방을 나왔다. 작은 거실을 마주한 건넛방도 꽤 쓸 만했다. 크기는 더 작았지만 오히려 안방보다 햇볕이 잘 드는 것 같았다. 눈대중으로 봐도 이 작은 방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하방보다 넓은 듯 했다. 창문을 밀었더니 탁 트인 하늘이 열렸다. 언덕길에 있는 집이라 올라 올 때는 제법 힘들었는데 경치가 그 대가를 했다. 아래로는 옆집 옥상이 보였다. 널어놓은 이불 빨래의 냄새가 여기까지 타고 오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지자 문득 내가 감히 이런 곳에 살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30여 년간 지친 몸을 뉘러 땅굴 속으로 고개를 숙였던, 그런 내가 이렇게 높은 곳에서 햇볕을 마주하며 살 자격이 주어지는 것인가? 지하로부터 기어 나올 줄 밖에 몰랐던 땅강아지 같은 인생이 아니었나. 창문을 닫고 나는 다시 한 번 집을 둘러보았다. 싱크대는 녹슨 곳 없이 깨끗했고, 튼튼한 현관문은 끼익끼익 괴상한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 넓은 창에는 햇볕이 스민다. 이 집으로 이사 오면 빨래부터 하고 싶다. 저 베란다에 빨래를 걸어 놓으면 세상에서 가장 뽀송뽀송하게 마를 것 같다. 책상은 딱딱한 철제로 된 사무용이 아닌 부드러운 체리목 책상을 갖고 싶다. 옷가게의 진열 행거가 아닌 비밀스런 하얀 옷장도 가지고 싶다. 친환경이라고 하지만 저 하얀 벽지는 은은한 파란색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그 언젠가 봤던 드라마의 여주인공 방처럼.

 

그런데 아가씨 혼자 살집을 찾는 거예요? 아니면 신혼집?”

엄마랑요

아 잘 됐네! 어머님도 보면 좋아하실 겁니다. 여기 바로 앞에 장보기 좋은 큰 마트가 있거든!”

 

대꾸 없이 화장실 안을 구경했다. 하얀 타일이 눈부시다. 노란 전구 불 밑에 쥐가 나돌아다는 하수구멍도 없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언덕길의 조용한 곳. 하얗고 단단한 대리석으로 둘러진 나의 성.

 

이것보다 훨씬 저렴한 집이 하나 더 있긴 한데 보러가겠소? 거긴 신축은 아닌데 지은 지 3년밖에 안된 새 건물이에요. 여기보다 좀 더 큰데 가격은 착해

아뇨. 남이 살던 집은 좀 그래요. 이 집으로 할게요.”

 

*

 

모두 조용! 수능이 코앞인데 떠들고 싶니?”

 

10평 남짓한 공간에 수 십 명의 아이들이 빽빽 차있는 강의실. 가끔 저 수많은 눈동자가 모두 나에게로 꽂혀 깜빡이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10시 어느새 꾸벅꾸벅 조는 녀석이 뒷자리부터 하나 둘 생겨나더니 기어코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고꾸라진 머리들이 늘어났다. 쾅쾅 교탁을 두들기는 소리에 대부분 학생들이 하나같이 죽다 살아나는 송장마냥 괴기하게 목을 틀며 몸을 일으켰다. 맨구석에 일어나지 못한 놈까지 깨우러 가기에는 강의실 안이 책상으로 빽빽했기에 나는 이 정도에 만족하고 다시 칠판으로 몸을 돌렸다. 이곳의 아이들은 약아서 잠든 친구의 등을 흔들어주지 않는다. 내가 쓴 판서가 지워지기 전에 자신들의 노트에 빠르게 옮겨 적어내는 것이 이 좀비 떼의 임무다. 그래서 아이들의 어린 손가락 사이엔 어울리지 않는 굳은살이 배겨있다. 나 또한 그랬다. 내 손가락 사이에도 이미 오래전에 자리 잡은 굳은살에 분필 때가 껴있다. 가끔 수학보다 더 정확한 세상의 공식들이 있다. 남을 많이 밟을 수록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는 것. 물론 수학의 정석 따위나 교과서에는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말이다. 저 손가락 사이의 굳은살이 얼마나 단단하고 새까만지의 따라 아이들의 등수가 결정되고, 대학이 결정되고, 지위가 결정될 것이다.

 

하루 종일 떠들어 댔더니 입안이 텁텁했다. 물 한 모금으로 해소될 것이 아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학원 강사로 일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5년째. 그렇게 미친 듯이 공부만 하더니 겨우 학원 강사냐고 대학동기들은 안타까워했다. 물론 처음부터 학원 강사를 하겠다고 죽기 살기로 대학에 온 것은 아니었다. 야자 끝나고 친구들끼리 떡볶이 하나 사먹을 돈도 없이 가난했던 고등학교 그 시절. 나는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목표 하나로 공부했다. ‘훌륭한 사람은 부자라는 나만의 공식을 만들고 눅눅한 지하방이 아닌 저 하늘공기를 들이마시며 높은 아파트에 사는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나의 10대는 지금 살고 있는 지하방과 같았다. 친구들과 떡볶이 하나 사먹을 돈이나 여유도 없었던 건 사실 핑계고 가난한 만큼 성격까지 모나고 어두워서 가벼운 인사 나눌 친구 하나 없었다. 그들 대신 몇 년 동안 내손가락 사이에서 딸깍거리던 샤프만이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스스로를 위안하며 보낸 나의 처절한 10대는 졸업식이라는 형식적인 절차와 함께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졸업식 이틀 전, 술집을 운영하던 엄마는 그날따라 손님이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귀가하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해버린 덕분에 나는 마지막까지 외톨이로 학교를 졸업했다. 그 날은 가족들의 축하를 받는 반 아이들 사이로 졸업장만 챙겨 나오는 것 밖에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인상만으로도 다정할 것 같은 부모님 사이에 서서 활짝 웃던 반장이었던 그 아이. 그리고 그 아이가 품에 안고 있던 노란 프리지아 꽃다발. 너무 크고 무거워 보여서 나는 감히 들지 못할 것 같은 그 꽃다발을 나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에게 대학교는 고등학교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가랑이가 뜯어져 세탁소에서 누빈 청바지와 함께 교복 위에 늘 입고 다녔던 낡은 모직코트는 이어서 내 이십 대의 교복이 되었다. 그 언젠가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보겠노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진학한 수학과에서는 나와 같이 재미없는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천지라 깊이 없는 고찰이라 할 수 있겠지만. 스무 살,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내가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명문대학교 수학과를 증명하는 학생증만 내밀면 큰돈을 마다 않고 척척 내미는 엄마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오로지 독학으로만 이정도로 성과를 이룬 나의 비범한 수학능력을 스스로 높이 사는 계기도 되었다. 난 주로 부잣집 아이들을 가르쳤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잣집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면 하나같이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었다. 손끝에 연필 또한 하나같이 위태롭게 걸려있었다. 내가 아무리 조리 있게 설명을 해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지우개로 몇 번이고 노트를 문질러대다가 1분이 멀다하고 시계를 힐끔거렸다. 나는 그때마다 지하방에서 스탠드 아래로 필사적으로 책을 넘겼던 나의 10대를 떠올렸다. 이 아이들은 죽을 만큼 공부해야할 목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이미 높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선생님 그래서 답은 뭔데요?”

 

뒤에서 들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늘 맨 앞줄에 앉는 학생의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실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나는 정답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풀던 문제는 이미 중간부터 엇나간 공식에 대입 되어있었다.

 

*

 

엄마가 일하는 가게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2층짜리 작은 상가건물에서 제일 평수 작은 그 곳에서 엄마는 15년을 넘게 일했다. 작은 직사각형 테이블 3개가 전부인 작은 술집. 손님이라고는 어디선가 이미 얼큰히 취해 여흥을 풀기 위해 찾아오는 아저씨들뿐. 2때 야자 끝나고 들렸다가 단골 아저씨가 엄마의 가슴을 주무르는 걸 본 이후로 엄마가게를 찾지 않았다. 엄마는 앙칼지게 몇 번 뿌리치다가 집요하게 계속 매달리는 그 손을 이내 받아들이며 술잔을 기울였었다. 그 아저씨가 가끔 용돈이라고 쥐어주던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 머리를 대견스럽다며 쓰다듬었던 그 손으로 엄마의 마른 가슴을 주물렀단 걸 알았어도 난 그 돈을 밀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내가 그런 엄마를 이해 할 수 있었던 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만 아버지에게 늘 맞고 살았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손을 올리는 날이면 나는 그 작은 단칸방에서 겨우 책상 밑에 몸을 숨기고 맞고 있는 엄마를 지켜보았다. 온순히 맞기만 하면 덜 맞았을 텐데 엄마는 아버지가 손찌검을 할 때마다 찢어지게 비명을 지르며 대들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더 심하게 화를 냈다. 무자비한 발길이 엄마의 등이며 뺨이며 머리며 안 닿는 곳이 없었고 또 그러면 질세라 엄마는 더 크게 울어댔다. 그러다 예고도 없이 아버지가 사고로 운명을 다한 날 엄마는 아버지께 맞을 때처럼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아버지가 사라지면 홀가분해할 것 같았던 엄마는 뭐가 그렇게 슬프고 억울한지 꺽꺽대며 오열했다. 그렇게 아버진 엄마에게 지울 수 없는 멍자욱을 남긴 채 영원히 집을 떠났다.

 

엄마에게 집을 계약했노라 말하려고 했다. 한집에 살면서 엄마와 마주치는 일은 일부러 만들지 않으면 힘들었다. 방과 후에 일하는 학원 강사라 비교적 늦게 출근하는 편이였지만 엄마는 새벽녘에 들어와 내가 출근하는 늦은 오후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엄마를 제대로 보려면 가게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 때 이후로 10여년 만에 찾아가는 거라 친엄마라지만 빈손으로 찾아가기에 허전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좋은 소식을 알리는데 자축 케이크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냐는 명목 하에 쉬는 시간에 미리 학원근처 빵집에서 케이크를 샀다. 후미진 동네 상가거리에 자리 잡은 엄마의 가게에는 <라스베가스>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전구가 나갔는지 몰라도 오래전부터 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언뜻 보면 <라스 가스>라는 뜻 모를 간판이 걸려있는 꼴이었다. 단골손님은 오히려 엄마가게를 라스가스라고 불렀다. 사실 엄마도 가게이름을 직접 지은 것이 아니고 가게를 그대로 인수 받은 거라 라스베가스라는 낡은 간판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초라한 동네에 라스베가스라는 화려한 미제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라스베가스라스가스든 그게 뭔 상관이냐는 엄마가 무식해보여서 싫었다. 아무튼 엄마가 가게를 인수하고 보수 한 것이라곤 가게 문에 방울을 달았다는 것뿐이었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나면 엄마는 테이블 칸막이 어디선가 고개를 내밀고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했다. 손님이 하나도 오지 않은 날에는 엄마는 테이블 구석에서 꾸벅꾸벅 쪽잠을 잤다. 그 것은 필시 보통의 사람들이 마치 점심 식사 후 나른한 졸음과 사투하는 것과 같았다. 문을 밀자 낯익은 방울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테이블 칸막이 위로 엄마의 얼굴이 솟아올라왔다. 화장한 얼굴이 오랜만이라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덧 기미가 그늘처럼 덮은 맨 얼굴만 보다보니 나이가 제법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화장한 엄마는 아직도 영락없이 잘 나가는 술집 여자였다. 엄마는 놀란 듯 꼼짝없이 서서 눈만 깜빡이다가 이내 안전부절한 걸음걸이로 칸막이서 나왔다. 또 가슴을 주무르는 아저씨와 함께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젠 괜찮다 그동안 나는 손가락에만 굳은살이 배긴 것이 아니니까.

 

갑자기 어쩐 일이야? ”

왜 못 올 사람이 온 것처럼 그래?”

 

엄마는 막장드라마의 사고 친 며느리처럼 더듬더듬 말했다. 하는 행동이 하도 수상해 칸막이로 가려져있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좁은 가게라 쭉 고개를 빼보니 앉아 있는 남자 실루엣이 보였다. 평소 찾아오는 아저씨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사내가 어딘가 불안한 눈짓으로 인사를 건냈다. 나는 어딘가 낯익지만 바로 떠오르지 않은 그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카운터 위에 올려 두려던 케이크 상자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오랫만이다. .. 잘 지내지?”

 

오빠였다. 나는 형제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간혹 받을 때면 외동이라 대답하곤 했다. 그 정도로 나에게 오빠라는 존재는 지워지고 없었다. 5살 터울이었던 오빠는 내가 15살 중2때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어느 날 갑자기 편지 한 장 없이 가출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1달 전이었다. 같은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우리 남매는 사뭇 달랐다. 내가 안으로 스스로를 가두며 어두워지는 편이였다면, 오빠는 친구들과 함께 밖으로 겉돌며 방황했다. 이따금씩 오빠의 교복주머니에서 담배가 발견됐고, 아버지처럼 술 냄새를 가득 풍기며 집에 오자마자 푹 쓰러져 잠들곤 했다. 내가 어느 정도 자라 남녀의 공간 구분이 필요할 시기가 오자 오빠는 우리들의 지하 단칸방을 더 불만스러워 했다. 이사 가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였다. 사춘기 성장통을 지독하게 앓았던 탓인지 오빠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손찌검을 해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싸움이 날 때마다 울고불고 아버지의 허리춤에 매달리던 오빠는 지겹다는 얼굴로 조용히 집을 나가 다음날에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오빠가 나가고 나면 나는 혼자남아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날도 부모님이 싸움이 났고 여느 때 처럼 집을 나간 오빠는 집에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오빠가 죽은 줄 알았다. 엄마는 때가 되어 떠나는 철새를 날려 보내듯 오빠를 찾지 않았다.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그 날에도, 혼자 맞았던 졸업식에도, 오빠는 나에게 없어도 될 사람이 되어갔다. 오빠가 집을 나서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올해로 15년째. 고등학생이었던 오빠는 서른 중반, 하지만 그 것보다 더 늙어 보이는 모습으로 가출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새삼스럽게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 느껴졌다. 훌쭉 말라 가난이 그려지던 안쓰럽던 뺨이 통통하게 살이 올라 턱 아래까지 축 늘어졌다. 어느 옷을 입어도 맵시가 안 났던 앙상한 등허리는 이제 팽팽하게 늘여진 셔츠 속에서 포장된 고기를 연상케 했다. 오직 눈 아래 찍힌 점에서만 예전의 오빠를 찾을 수 있었다. 엄마는 오빠의 저 점을 눈물점이라 했다. 사납게 굴어도 마음이 여려서 펑펑 잘 울고 쉽게 상처받는 마음씨를 가진 그런 점이라 했다. 어쩌면 오빠는 나보다 한참 여려서 못 참고 집을 나갔을까?

 

엄마가 조만간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엄마는 떨어진 케이크 상자를 수습하며 말했다. 어느새 엄마의 낯빛에선 당황한 기색은 사라졌고 다 뭉개진 케이크를 들여다보며 능청스럽게 아깝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고맙게도 오빠는 아직까진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하지만 가장 표정관리를 못 하는 사람은 나였으리라. 왜 오빠가 여기에 있을까. 엄마는 무엇을 조만간 이야기하려고 했다는 것일까. 당황할 때만큼은 사고회로가 멈추면 좋으려면 수 만 가지 생각이 뇌 속을 복잡하게 했다. 그래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자. 수학문제를 풀 듯 하나하나 알맞은 공식을 유추해 보듯 생각해보자. 15년이 지나서야 가족이 그리워져서 찾아왔을까? 아니다. 틀리다.

 

이리와 앉아! 맥주 줄까? ”

 

엄마가 멍청히 서있는 나를 끌어다가 오빠 맞은편 자리에 앉혔다. 가까이서 본 오빠는 더 낯설다. 반항 가득했던 얼굴이 후덕한 턱살 때문인지 온순해졌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테이블 위 포크를 집었다가 또 놓았다가를 반복하던 오빠는 어렵게 잘 지내냐고 물었다. 나는 짧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결혼은 했어?”

..뭐 결혼은 아니고 같이 살고 있는 여자는 있지

애는?”

? 딸이 하나

 

오빠의 결혼여부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건 아니다. 단지 오빠가 갑자기 찾아온 이유를 추론하기 위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안부를 묻는 거라 생각 했을까 오빠는 부끄럽다는 듯이 수줍은 미소까지 지으며 뒷목을 자꾸 긁었다. 내가 더 이상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자 오빠는 대화를 끊고 싶지 않았던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선생님 됐다면서? 공부는 예전부터 잘하더니 역시 잘 될 줄 알았어.”

그래봤자 학원 강사야

그건 선생님 아니니? 시내에 걸린 네 사진봤어. 잘 가르친다고 유명하던데

 

무슨 말인가 싶었다가 아주 오래 전에 학원에서 찍은 프로필 사진이 떠올랐다. 처음 강사 일을 시작 했을 때 억지로 찍었던 포스터용 사진이었다. 뿔테안경 끝을 잡고 당찬 미소를 짓는 내 모습은 훌륭한 후반 작업을 거쳐 내가 봐도 야무진 강사로서 어필하기 충분했다. 사실 시내 학원 건물에서부터 근처 버스 정류장까지 덕지덕지 붙은 그 포스터를 보는 것은 정말 나로서는 정말 민망한 일이었다. 특히 <친절한 과외 식 수업!> 이라는 문구가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다

 

아버지 돌아가신 건 알아?”

 

오빠는 대답대신 죄책감으로 얼룩진 얼굴을 떨궜다. 그래서 언제 들었니?’ 그 질문은 차마 하지 못했다. 분위기 전환이라도 하듯 엄마가 주방에서 뭉개진 케이크 한 조각과 맥주거품이 잔뜩 올라온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오빠 옆자리에 앉았다. 엄마를 위해 옆에 둔 가방을 치우려던 손이 머쓱해졌다.

 

엄마랑은 연락하기 시작한지 좀 됐어... 너한테는 미안해서 연락을 할 수 없었어.”

에이 네 동생이 그런 성격 아닌 거 알면서, 느그 오빠가 옛날부터 맘이 여려서 그치?”

 

순간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도대체 나에게 뭐가 미안해서 15년간 나타지 못했던 걸까. 그리고 엄마는 묘하게 도대체 왜 오빠 입장에서 말을 하는 거지?

 

왜 숨긴 건데?”

조만간.. 이야기 하려고 했어 시기가 좀 안 좋아서

그래 넘 쌀쌀맞게 이야기 하지 말어~. 자자 짠할까? 응 가족이 다 모였는데!”

 

변명하듯 쉴 새 없이 주절대는 엄마와 수상하게 말을 자꾸만 더듬는 오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참 닮았다고 느꼈다. 옛날부터 나는 아빠를 닮았고 오빠는 엄마를 닮았다. 가끔 엄마는 나에게 너는 꼭 네 애비 같은 소리를 한다며 진저리를 쳤다. 나에게서 지독한 아버지를 떠올리는 건 너무나 불쾌했지만 30여 년간 붙어산 나보다 오빠가 엄마랑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상황은 못 참을 만큼 참담했다.


이제야 찾아온 이유는 뭐야?”

 

나는 해답지가 필요했다.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문제는 오래 끌고 갈수록 골치만 아플 뿐이다. 내 직설적인 물음에 오빠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유라... 그냥 잘 사는지 궁금해서?”

 

그러니까 왜 이제야 온 거냐니까?’라고 되묻고 싶었다. 학생들이 자주 범하는 오답추론이다. 팩트는 찾아 온 이유가 아니다. ‘이제야. 하지만 그 것에 대한 대답이 길 것 같아 되묻진 않았다. 그간 어떻게 지냈냐고 시시콜콜하게 술잔을 기울일 사이가 아니란 걸 서로가 잘 안다. 나는 시선을 뭉개진 케이크로 돌렸다. 데코레이션이 참 예뻤던 케이크였는데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게 일그러졌다.


그나저나 집은 괜찮은데 찾았니?”

 

그제야 내가 가게에 찾아온 이유가 떠올랐다. 가방엔 부동산 계약봉투가 있다. 뭉개진 이 케이크가 어떤 의미였는지 떠오르자 왠지 모르게 민망해졌다.

 

새 집 말이야... 우리 좀 나중에 이사 가도 괜찮지 않을까?”

?”

 

능청스럽지만 그 속에는 조바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엄마가 그런다. 나는 불안한 촉을 애써 무시해 보려했다.

 

아니 그 집에서 산지도 20년이 넘는데 그렇게 이사 가기도 아쉽기도 하고,,..”

 

그제야 오빠가 왜 찾아왔느냐 문제에 대한 답을 이해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오빠가 엄마의 무릎을 테이블 아래로 툭 친다.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 모양새가 눈꼴사납다. 그보다 오빠의 신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가 낯설다. 집 장만해 온 딸보다 제멋대로 가출해버린 아들만 자식인 것처럼 구는. 그래서 저 둘은 닮은 것인가.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건데?”

아니 오빠가 하는 일이 잠깐 어렵게 됐다고 해서.. 남한테 어려운 소리 하는 것 보다 이럴 때 가족이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해서

가족이 뭔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내가 생각해도 무섭도록 냉정하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오빠는 부끄러운 듯 더이상 고개를 들지 못했고 엄마의 놀란 두 눈은 깜빡이지도 못했다. 나는 가방을 다시 어깨에 두르고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오빠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15년 만에 찾아와서 결국 하는 소리가 돈 빌려달라는 소리라니 어느 삼류 영화에서 나오는 전개 같아 코웃음도 안 나왔다. 아무래도 새로 이사 갈 집에는 역시 나 혼자 가야겠다. 그 때 깨달았다. 나는 이사를 가고 싶은 게 아니었음을. 이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집안에서 가출을 하고 싶었던 거구나!

 

*

 

오늘 회식은 가셔야죠? 또 도망가기 없습니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옆자리 국사담당 선생이 툭툭 어깨를 치며 그런다. 하지만 어제 밤잠을 설쳐서 오늘은 회식은커녕 수업 할 기분도 아니었다.

 

죄송해요. 오늘은 쉬고 싶어서요

에이 매번 쉬고 싶다 쉬고 싶다! 우리는 뭐 안 쉬고 싶어서 회식한답니까?”

 

오늘따라 끈질기게 들러붙는 통에 기어코 두 손을 들었다. 사교성도 없거니와 남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어색해 회식자리도 꼭 필요한 자리 아니면 참석하지 않았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뒤에서는 냉동인간이라고 비아냥거린다는 것쯤은 눈치 채고 있었다. 오히려 얼음공주보다 냉동인간이 나다워서 수긍했다. 어둡고 차가운 지하방에 살면서 제멋대로인 꽁꽁 얼어붙은 나 같은 사람에겐 얼음공주라는 호칭은 참 사치스럽다. 결국 시험지 채점을 다 마치지 못한 채 동료들에게 붙들려 함께 학원을 나섰다. 학원가는 새벽이 되면 유흥의 거리로 변한다. 이 거리에서 작년에 가르치던 제자 한 놈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지옥 같다던 이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

 

회식은 생각한대로 고리타분했다. 갈비 냄새가 옷과 머리카락에 완벽하게 배일 때쯤엔 술에 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구석에서 조용히 고기를 굽던 나는 집에 갈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취하면 조용히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일은 출근하기 전에 가구점이랑 가전제품을 보러 다녀야하기 때문에 일찍 자고 싶었다.

 

혜연 선생님~ 많이 드셨어요?”

 

옆 사람과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국사선생이 빨개진 얼굴로 그런다. 단정하게 맸던 넥타이는 어디다 풀러 뒀는지 사라지고 없었고 셔츠 가슴팍에는 빨간 김치 국물 자국이 튀어있었다. 말투까지 약간 흐트러져서 그가 술 냄새를 풍기지 않아도 어느 정도 취한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이만 가 보려고요.”

벌써요?”

 

옆 자리에 앉자마자 일어설 채비를 하는 얼음공주의 명성에 민망했는지 풀어졌던 국사 선생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는 개의치 않고 가방과 겉옷을 챙겨들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국사선생도 부랴부랴 자리서 일어나며 허둥지둥 풀어헤친 셔츠의 단추를 여몄다.

 

그럼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괜찮아요. 택시타면 금방이에요

요즘 택시도 위험해요. 세상 참 모르시네! 잠시 만요. 짐 좀 챙겨올게요

 

참 불쌍했다. 하필 많은 직장동료 중에서 나에게 작업이라니. 나는 여태 제대로 된 연애는커녕 남자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아니 연애할 틈이 없었다고 정정한다. 물론 남자들에게 살갑게 굴 성격도 아니거니와 그 성격마저도 용서될만한 얼굴도 아니었기에 나에게 연애는 관련 없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만큼 공부했고 여기까지 왔음이라 위로했지만 이제 내 나이 서른. 시간 때우기 잡지를 보더라도 웨딩화보에 머무르는 시선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나도 사람이었구나 싶기도 한다. 혹시라도 내가 먼저 가고 없을까 가게를 뛰쳐나온 국사 선생은 채 하지 못한 옷깃 매무새를 다듬었다. 다시금 보니 참 호남형이다. 이상하게 이 남자의 나를 향한 조바심이 묘하게 설레게 했다. 그리고 정중하게 길을 터주며 에스코드 하는데 기분이 은근히 좋은 것이었다.

 

어디 살아요? 혜연씨는?”

 

택시를 잡다가 묻는 말에 나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방을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지하로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모습은 절대 감추고 싶은 것이었다. 집에 놀러 올 만한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에게 가난이 창피하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번동이요

번동? 강북구에 있는 동네 말씀하시는 거죠? 이거 우리 집이랑 완전히 반대네 데려다 주고 갈려면 한참 걸리겠어요 하하

 

남자는 유머랍시고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잡힌 택시 문을 열어주는 국사 선생이 따라 타기 전 문을 닫았다. 당황스러워 하는 남자가 다시 문고리를 잡았으나 나는 급하게 택시를 출발시켰다. 국사 선생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창문을 두들기다 이내 포기했다. 처음으로 사람관계에서 후회스럽단 생각을 들었다. 이사 갈 집은 창피해 할 일이 없었을 텐데! 라는 멍청한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 가방 속 핸드폰에서 문자 소리가 울렸다. 나는 부랴부랴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뭐가 잘났니? 따위의 문자가 오지 않았을까?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복잡한 머릿속과 다르게 손놀림은 너무나 속결하게 메시지 확인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문자 메세지는 뜻밖의 것이 였다.

모르는 번호로 길게 장문으로 온 문자는 핸드폰 액정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처럼 보였다. 나는 왈칵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어제는 미안하다 혜연아. 우리 가족은 늘 너에게 상처만 주는 것 같구나. 오빠는 너에게 아쉬운 소리 할 생각이 전혀 없어. 오랜만에 만나서 못 보일 꼴을 보여주고 말았구나.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문자로 보내서 미안하다.>

 

열아홉 살의 오빠는 차가운 세상으로 가출을 했다. 서른의 나는 이제야 가출을 결심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오빠보다 강하고 성숙하다. 밖은 어른인 나에게 더 이상 무서운 곳이 아니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 지하방을 떠나 나는 저 하늘위로 간다. 창문을 열면 탁 트인 공기가 있는 그 곳으로. 하지만 나는 왜 이 뒤 늦은 가출이 무섭고 두려울까.


여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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