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포르투나타

by 이정연 posted Feb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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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포르투나타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지하철역은 사방이 콘크리트로 덮여 있어서, 고개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해돋이가 한창인 하늘을 내 두 눈으로 봤다고 한들, 그것이 동쪽 하늘이라고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방향을 구분하지 못하니까. 걸핏하면 노선을 착각하고, 역방향 열차에 오르는 일도 허다한 방향치니까. 그래서 준의 손을 꼭 잡고 다녔는데……. 텅 빈 손을 쥐었다가 폈다. 열차를 타고 동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선, 내일 하루도 일찍 시작될 테니까.


*


   막차가 떠났다. 소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의 지하철역은 적막했다. 고요한 역에 나와 준의 숨소리만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벤치는 둘이 눕기에는 너무 비좁았다.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나는 준에게 매달리듯 몸을 밀착시켰다. 안 그래도 더운데, 이러다가 쪄 죽겠어. 준이 기함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준의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준에게서 풍기는 쾨쾨한 땀 냄새가 내 옷에 고스란히 뱄다. 손톱으로 두피에 달라붙은 비듬을 떼어냈다. 새까맣게 때 낀 손톱 끝을 물어뜯자 짭조름한 맛이 혀에 퍼졌다. 이따금 비듬 부스러기가 오도독 씹혔다. 더러워. 그만 좀 긁어. 책을 읽던 준이 투덜댔다. 커서 소설가가 되겠다는 준은 한 번 책을 펼쳤다 하면 좀처럼 덮을 줄 몰랐다. 나는 준의 손에 들린 책을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또 책이네.”

   “독서 중에는 입 좀 다물어.”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평소 같으면 사과했겠지. 지금은 그럴 기운도 없었다. 나는 여름 내내 거의 한숨도 못 잤다. 낮 동안은 소음으로 인한 불면에 시달렸다. 십 분 간격으로 반복되는 안내방송,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열차의 굉음, 스크린도어가 여닫힐 때의 마찰음이 잠을 쫓았다. 하지만 막상 밤이 되어 고요해져도 잠은 오지 않았다. 밤의 고요를 가르고 불량배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불면증 치료에 좋다는 짓을 다 해보았다. 양을 셌다. 안대를 썼으며 무작정 눈을 감고 버텼다. 역내 매점에서 훔친 소주 한 병을 한꺼번에 마신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항상 잠드는 데 실패했고, 결국 포기했다. 나는 차라리 내일의 이름을 고르며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벤치 아래 놓인 배낭을 뒤적였다. 준이 여기저기서 주운 책을 잔뜩 욱여넣어서 배낭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나는 한참을 뒤져서 성경을 꺼냈다. 앵벌이 집단에서 탈출할 때 가져온 것이라고 준이 설명했다. 도망치려고 급하게 싼 짐에 우연히 들어갔나 봐. 곰팡이로 얼룩진 겉표지를 열었다. 색이 바래고 너덜너덜한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맨 마지막 장에는 성자와 성녀의 세례명 육천여 개가 나열되어 있었다. 알파벳 순서대로 나열된 덕분에 내일의 이름을 간편하게 고를 수 있었다. 성경 따위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렇게라도 요긴하게 쓰인다니 다행이네. 준은 헛헛하게 웃곤 했다. ‘A’로 시작하는 세례명부터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내려가다가, ‘E’로 시작하는 세례명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그저께 나는 엔플레다라고 불렸고, 오늘은 엘리사라고 불렸다. 내일은 엘리사벳으로 불릴 차례였다. 내일의 이름을 여러 번 되뇌었다. 엘리사벳. 혀를 입 속에서 부드럽게 굴렸다.

   “준아.”

   나는 성경을 베고 누웠다. 성경은 쓰임새가 꽤 많았다. 두꺼워서 베개로도 제격이었다.

   “내일은 엘리사벳.”

   준이 책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요즘 들어 준은 내 말에 대꾸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기야 또 새로운 이름이라니, 지겨울 만도 했다. 나는 날마다 이름을 바꾸었다. 매일 다른 세례명으로 불리면서 그 누구에게도, 하다못해 준에게조차 진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앵벌이 집단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불량배가 지하철역에서 노숙하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앵벌이를 시킨다는 괴담이 나돌았다. 내 진짜 이름이 새어나가면, 불량배는 집요하게 신원을 조사해서 나를 붙잡고 말 것이었다.

   “무슨 소리가 들려.”

   불현듯 준이 책을 덮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불량배면 어떡해.”

   준의 옷자락을 쥐었다. 세게 쥐어서 손가락이 얼얼했다. 준은 떨고 있었다. 손가락을 통해 떨림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는 숨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매앰 맴, 하는 소리와 귀뚤, 하는 소리가 번갈아 메아리쳤다. 귀뚜라미가 운다는 것은 가을이 가까웠다는 뜻이고, 가을이 되면 매미는 죽는다. 죽기 직전까지 온 힘을 다해 우는 매미를 생각하니 나는 조금 슬퍼졌다.

   “뭐야, 벌레들 소리였잖아.”

   쥐었던 옷자락을 놓았다. 긴장이 풀리자 졸음이 쏟아지는지, 준은 까무룩 곯아떨어졌다. 매미와 귀뚜라미의 불협화음 연주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귀뚜라미 한 마리가 팔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귀뚜라미가 짓뭉개지면서 체액이 튀었다. 손에 묻은 체액을 문질러 닦았다. 귀뚜라미 사체가 보기 거북해서 시선을 돌렸다. 콘크리트 천장과 벽이 햇빛을 차단해서 지하철역은 밤이나 낮이나 어둑했다. 형광등 불빛만이 벤치 위에서 옹송그리고 잠든 준을 어슴푸레 비추었다. 진한 쌍꺼풀과 촘촘히 박힌 속눈썹, 휜 매부리코, 두꺼운 입술이 드러났다. 남자임에도 여자인 나보다 예뻤다. 군데군데 헤진 민소매 옷 위로 볼썽사납게 불거진 어깨도 눈에 들어왔다. 어깨가 더 넓어진 듯해서, 나는 손으로 어깨 너비를 쟀다. 세 뼘이었다. 원래는 두 뼘 반이었는데. 준이 신음하며 뒤척였다. 또 악몽에 시달리는 모양이었다.

   열차가 진입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역의 하루는 소음으로 시작되었다.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열차가 굉음을 내며 들이닥쳤다. 스크린도어가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 열차를 오르내리는 승객들의 발걸음 소리도 들렸다. 첫차 출발시각은 오전 다섯 시 반으로 언제나 똑같기에 굳이 시계를 보진 않았다. 우리는 주로 일곱 시 반에 출발하는 다섯 번째 열차를 탔다. 그 무렵이 출근 및 등교 시간과 겹쳐서 승객이 가장 많고, 돈도 잘 모이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 안에 서둘러 분장을 마쳐야 했다. 나는 준을 깨웠다.

   “일어나. 벌써 첫차 지나갔어.”

   살짝 흔들었을 뿐인데, 준은 귀뚜라미처럼 펄쩍 뛰었다. 준은 작은 손길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준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응시했다. 아직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나야, 엘리사벳이야.”

   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준은 눈가에 엉겨 붙은 눈곱을 떼고, 배낭에서 분장 도구를 주섬주섬 내놓았다. 분장 도구라고 해 봤자 쓰레기통을 뒤지다 찾은 사인펜과 두루마리 휴지, 스카치테이프가 전부였다. 준이 내 눈두덩에 보라색 사인펜을 몇 번 그었다. 휴지에 침을 뱉었다. 축축해진 휴지를 눈두덩에 대고 문지르자 보라색 잉크가 얼룩덜룩 번져서 멍든 것처럼 보였다. 빨간색 사인펜으로 몸 군데군데 상처를 그렸다. 머리카락도 잔뜩 헝클어뜨렸다. 자, 어때. 준이 거울을 들이밀었다. 거울 속의 나는 무척 불행해 보였다. 준의 정교한 솜씨 덕분이었다.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예전에는 얼굴만 대강 분장하면 되었는데, 가슴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봉긋 부푼 가슴을 감추는 건 복잡한 데다가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으나,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승객들은 다 큰 아이를 동정하지 않고, 돈도 주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많이 벌던 준도, 어깨가 넓어진 후 수입이 눈에 띄게 줄었다. 따라서 굶어 죽기 싫으면 승객들이 나의 성장을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 했다. 나는 옷을 들추고 손톱으로 젖꼭지를 꾹 눌렀다. 그다음엔 휴지로 가슴을 꽁꽁 싸맸다. 어째 니 젖통은 만날 커지냐. 휴지 감는 걸 도와주던 준이 툴툴댔고,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몇 겹이나 감은 휴지를 스카치테이프로 고정한 뒤 옷을 내리자 가슴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분장하는 동안, 머리를 굴렸다. 또 어떤 불행한 거짓말을 늘어놓아야 할까. 날이 갈수록 돈 벌기가 어려워졌다. 승객들은 어지간한 분장이나 거짓말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지갑을 열게 하려면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불행한 척해야 했다.

   “준아, 의붓아버지에게 맞고 산다고 거짓말하면 어때?”

   “그건 너무 식상하잖아.”

   “삼촌한테 맞았어요는?”

   분장 도구를 정리하고 배낭을 챙기던 준이 대답했다.

   “가정폭력은 승객들도 지겨워해. 다른 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더 엄청난 불행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어느 날엔 폭력 피해 아동이었다가, 또 다른 날에는 고아나 불치병 환아가 되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행을 섭렵한 기분이었다.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살을 씹어 손가락에 피가 맺힐 즈음에야 좋은 생각이 났다.

   “장애인이라고 할까? 다리를 절면 믿을 거야.”

   나는 절름발이를 봤던 기억을 되짚었다. 그의 절뚝이던 걸음걸이를 따라 했다. 한 걸음 내딛고 비틀거렸고, 두 걸음 내딛고 넘어졌다. 웬일로 타박하지 않는 것을 보니 준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다섯 번째 열차가 역으로 진입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들이 하나 둘 스크린도어 앞에 줄을 섰다. 우리도 나란히 서서 열차를 기다렸다. 나는 준의 손을 잡았다. 행여 놓칠까 봐, 손가락 사이사이 깍지를 꼈다. 울퉁불퉁한 감촉이 느껴졌다. 준은 땀 찬다고 신경질 내면서도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후끈한 공기 탓인지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얼른 에어컨이 나오는 열차에 타고 싶었다.

   열차 안은 승객들로 붐볐다. 냉방이 돼서 한결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인파에 치여 숨이 턱턱 막혔다. 승객들이 휘청거리는 나를 밀치자, 나는 일부러 과장해서 나동그라졌다. 준이 나를 일으켜주었다. 승객들을 살폈다. 교복 차림의 학생이 이어폰을 낀 채 휴대폰 게임에 열중했다. 양복 입은 남자가 연신 옷깃을 세우며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노약자석에 앉은 할머니들은 저들끼리 떠들어댔다.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을 덧칠하는 여자도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내게로 집중시켜야 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엘리사벳입니다. 옆은 친오빠구요.”

   승객 몇 명이 우리 쪽을 힐끗댔지만, 멍 자국과 상처, 엉킨 머리와 찢어진 옷을 보자마자 벌레라도 마주친 듯이 시선을 피했다. 나는 불행한 거짓말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 나지 않도록 치밀하게.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죽었고, 나도 다리를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준도 거들었다.

   “돈이 없어서 여동생 병원엘 못 가요. 저희는 춥고 배고파요.”

   눈물 몇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울기란 쉬웠다. 눈을 깜박이지 않으면 금세 눈물이 나왔다. 나는 승객들이 어린아이의 눈물에 깜빡 속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물은 동정심을 극대화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승객들이 일제히 흐느끼는 나를 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주머니를 더듬어 지갑을 찾더니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다른 승객들도 덩달아 지갑을 열었다. 그들은 희망을 잃지 말라며 나와 준을 응원했고, 불쌍하다며 혀도 쯧쯧 찼다. 우리는 동전과 지폐를 받아 배낭에 넣었다. 그때,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만 원을 흔들었다. 잡으려고 손을 뻗었더니 남자는 돈을 숨겼고, 내가 손을 뒤로 빼자 다시 꺼냈다.

   “가지고 싶지?”

   “네.”

   나는 단숨에 대답했다.

   “그럼 잡아보던가.”

   초록색 지폐가 잡힐 듯 말 듯 눈앞에서 정신없이 펄럭였다.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고 남자가 낄낄댔다. 준이 소리쳤다.

   “됐어요. 그 돈은 안 받을래요.”

   그리고는 다짜고짜 나를 이끌고 다음 칸으로 옮겨갔다. 열차의 첫 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돌며 구걸하는 동안, 준은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불행한 거짓말을 하는 건 힘들지만, 재밌기도 한데. 나는 내 거짓말에 속은 승객들의 반응을 구경하는 게 재밌었다. 그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는 것도 좋았다. 물론 그들이 주는 돈은 최고로 좋았다.


   모름지기 돈 계산은 은밀하게 처리해야 했다. 보는 눈 많은 곳에서 돈을 꺼내놓았다가는 다른 노숙자에게 뺏기거나 도둑맞기 십상이라, 우리는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변기에 앉아 지폐와 동전 수를 셌다. 수입은 총 만 오천 원으로, 평소보다 짭짤했다. 장애인이라는 거짓말이 잘 먹힌 것 같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물어뜯은 손톱 끝과 비듬 부스러기만 뱃속에서 부대꼈다. 준아, 우리 뭐라도 사 먹자. 이 돈으로 김밥이랑 컵라면을 살 수 있을 거야. 준은 대꾸가 없었다. 여전히 화가 안 풀린 듯했다.

   “엘리사벳, 너 바보지? 화도 안 나? 그 새끼가 돈으로 널 농락했어. 낄낄대는 거 봤지. 우릴 비웃은 거야. 이게 다 우리가 불행해서야. 우리가 불행해 보이기 때문에 무시한 거라니까.”

   “그 돈, 만 원이나 됐어. 그냥 참고 받았어야 하는데.”

   여태껏 그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돈을 흔드는 것쯤은 별로 대수롭지도 않았다. 욕하고 때리거나, 침을 뱉는 승객들도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우리보다 덜 불행하다는 우월감에 빠져 우리를 무시하고 깔봤다. 하지만 나는 참았다. 준 역시 돈 벌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랬던 준이 화를 내니,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준아, 우리는 불행해 보여야 하잖아. 불행한 척하는 게 우리의 일이잖아.”

   준은 나를 흘겨보다가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나도 준을 따라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지하철역은 좁아서 오래지 않아 준을 찾을 수 있었다. 준은 배낭을 껴안고 벤치에 앉아있었다. 나는 매점에 들러 김밥 두 줄과 콜라 두 캔, 컵라면 두 개를 사서 준에게 다가갔다. 김밥 쿠킹포일을 벗겼다. 콜라 캔을 땄다.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그만 화 풀고 이거나 먹자. 우리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음식만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었다. 허겁지겁 먹느라 맛을 느낄 새도 없었다.

   “준아, 승객들은 신경 쓰지 마. 그들은 겉으로야 행복해 보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몰라. 그들이 지하철역 벤치에서 먹는 음식 맛을 알겠어? 김빠진 콜라 맛은? 아마 모를 거야. 게다가 학교나 회사도 가야 하잖아. 자유라곤 없지. 아무렇게나, 멋대로 살 수 있는 우리가 부러워서 괜히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해 봐.”

컵라면 국물을 마시던 준이 캑캑댔다.

   “어차피 그들은 죽었다 깨도 우리처럼 살 수 없어. 우린 불행하니까 이렇게도 살아보는 거지.”

   그랬다. 불행은 때때로 핑계가 되었다. 나는 거짓말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불행하니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죄책감 따위에 시달릴 여유가 없다고 변명했다.

   “엘리사벳, 넌 정말 바보가 분명해.”

   준이 어이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분명 웃는 게 맞는데, 쌍꺼풀진 눈이 아래로 처지고 매부리코가 더욱 휘어져서 우는 것처럼 보였다. 엉엉 우는 것도, 그렇다고 속 시원하게 웃는 것도 아닌 그 애매한 미소를 나는 망연히 보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게 죄여왔다. 휴지 때문인 듯했다. 준이 안 보는 틈을 타서 나는 가슴에 꽁꽁 감긴 휴지를 풀었다.

   문득 준과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매일같이 방향을 잃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나는 지하철역을 헤매다가 우연히 벤치에 웅크려있던 준을 발견했다. 늙은 노숙자는 숱하게 봤지만, 내 또래를 만난 적은 없었다. 반가워서 툭 건드렸다. 안녕. 준의 작은 몸이 떨렸다. 겁내지 마. 나도 여기 살아. 준은 그때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는 듯 웃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붙어 다녔다. 준은 방향을 잘도 구분했다. 준의 손을 잡으면 노선을 착각하거나 역방향 열차에 오를 걱정이 없었다. 돈도 더 많이 벌렸다. 앵벌이 집단에서 생활했다던 준은 구걸 경험이 풍부해서인지 어떻게 해야 돈을 잘 벌 수 있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롭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종종 준은 제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불량배가 운영하는 앵벌이 집단이었지. 아이들은 낮에는 구걸을 하고, 밤에는 기도를 해야 했어. 안 하면 벌 받는다고 불량배가 으름장을 놓았거든. 나는 벌 받기 싫어서 손바닥을 싹싹 빌며 기도했지. 기도 내용은 항상 똑같았어. 불량배가 죽기를 바랐던 거야.”

   나는 준의 손바닥을 매만졌다. 손바닥 위 울퉁불퉁한 굳은살은 기도하다 생긴 것일까.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죽질 않는 거야. 오히려 그들은 점점 더 힘이 세지더라니까. 그래서 기도를 그만뒀어. 화가 난 그들이 나를 성경으로 내리쳤고, 십자가로 때렸어. 난 살기 위해 도망쳤지. 아직도 밤마다 악몽을 꿔. 꿈속에서 난 또 맞아. 누가 날 건드리기만 해도 맞던 기억이 되살아나. 불량배가 나를 쫒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무서워.”

   준은 꼭 소설가가 되어서 불량배의 악행을 폭로할 거라고도 덧붙였다. 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다짐을 되새겼다. 불량배에게 붙잡히지 않겠다고. 그토록 끔찍한 앵벌이 집단에는 절대 끌려가지 않겠다고. 준은 내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진짜 이름을 물었지만, 나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회피한 채로 몇 년이 지났다. 훌쩍 큰 준은 더 이상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진짜 이름이 뭐냐고 캐묻지도 않았다. 아예 나와 말 섞기조차 싫어했다. 참 이상한 것은, 정작 준이 묻지 않자 나는 진짜 이름을 밝히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억나지 않았다. 날마다 다른 세례명으로 불리고, 불행한 거짓말을 일삼다 보니 진짜 이름이나 준을 만나기 전의 기억이 가물거렸다. 결국 나는 이름을 바꾸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 장애인이라고 거짓말하는 습관이었다. 나는 장애인으로 분장했다. 절름발이처럼 다리를 절고, 귀머거리처럼 말을 더듬었다. 장님 흉내를 내기 위해 지팡이도 구해다 짚었다. 그 거짓말은 실로 효과적이었다. 거짓말에 속은 승객들은 동정심을 주체하지 못했고, 우리에게 돈을 주었다. 배낭 안 돈다발이 두둑해졌다. 덕분에 우리는 배를 곯지 않았다. 음식을 찾겠답시고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훔칠 필요가 없었으며, 매점에서 긴소매 옷과 담요를 구입할 수 있었다. 나는 준을 위해 공책도 사다 주었다. 여기에 글 써. 준은 고맙다고 말은 안 해도 수시로 공책을 펼쳐놓았다. 나는 배시시 퍼지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어둠이 잠식한 지하철역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나는 해가 뜨고 지며 날이 가는 것이나 계절의 변화에 무감각했다. 그래도 매미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홀로 밤의 고요를 깨뜨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때면 가을이 깊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성경에서 내일의 이름을 고르다가 몹시도 많은 날이 지났음을 깨닫고 놀라기도 했다. ‘E’로 시작하는 세례명으로 불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는 ‘F’로 시작하는 세례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전단지를 발견한 것은 내가 펠리쿨라라고 불리던 날의 일이었다.

   “펠리쿨라, 이것 좀 봐.”

   여느 때처럼 다섯 번째 열차를 기다리던 중, 준이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를 주워 내게 건넸다. 나는 엉겁결에 받아든 전단지를 훑었다. 전단지 한가운데에 실린 준의 사진, 그 사진 아래 ‘아이를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불량배 짓일 거야. 기어이 나를 쫓아 지하철역까지 왔나 봐.”

   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마 내 얼굴도 비슷했을 것이다. 준은 재빨리 배낭을 챙겼다. 돈다발, 성경과 담요, 책, 공책과 펜, 분장 도구, 음식을 닥치는 대로 집어넣었다.

   “숨자.”

   “어디에?”

   “나한테 생각이 있어.”

   준이 내 손을 아플 정도로 힘껏 움켜쥐고는, 화장실 옆에 위치한 장애인용 화장실로 끌고 갔다. 그나마 여기가 안전해.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공책 한 장을 뜯어 사인펜으로 ‘사용 안 함’이라고 적었다.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서 그 종이를 장애인용 화장실 문 앞에 붙였다. 이렇게 하면 아무도 문 열지 않을 거야. 준은 문을 굳게 잠갔다.

   “당분간 어디 가지 말고 숨어 지내야 해. 매점에 가면 안 되고, 열차도 타면 안 돼. 불량배가 지하철역을 쥐 잡듯 뒤질 테니까.”

   그렇게 은신 생활이 시작되었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일반 화장실보다 아주 조금 넓을 뿐이라서, 우리는 최대한 몸을 구겨야 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화장실 바닥에서부터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소름이 오소소 돋고,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준과 살을 맞대도 추웠다. 목이 마르면 변기 물을 마셨고, 배가 고프면 배낭에서 음식을 꺼내 먹었다. 아껴 먹었는데도 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났다. 음식을 사러 매점에 갈 수가 없었기에 우리는 굶었다. 잘 때는 배가 안 고파. 준은 배고픔을 잊기 위해 잠만 잤다.

   “너도 좀 자.”

   “못 자겠어.”

   “왜, 귀뚜라미 때문에?”

   “응.”

   귀뚜라미는 지치지도 않고 울어댔다. 귀뚤, 귀뚤, 귀뚤. 점점 더 커지는 그 소리가 불량배의 발걸음 소리 같아서 불안했다. 게다가 귀뚜라미는 화장실 문틈 사이로 들어오기도 했다. 때려죽여도 계속 들어왔다. 장애인용 화장실 구석에는 귀뚜라미 사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 잘 수 없었다. 불면증이 나날이 심해졌다. 준이 손을 들어 내 귀를 덮었다. 소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아직도 들려?”

   “아니. 안 들려.”

   붉어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준이 왜 내게 친절하게 구는지 궁금했다. 나는 준이 나를 싫어한다고 확신했었다.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툴툴대고 화를 내는 거라고. 나는 못생긴 데다가 방향치라 손을 잡고 다녀야 하고, 바보스러우니까. 내가 싫으냐고, 준에게 단도직입으로 묻고 싶은 적도 많았다. 준이 수긍할까 봐 번번이 그만두었지만. 묻지 못한 질문이 혀 아래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 쌓였던 질문이 기어이 튀어나왔다.

   “준아, 왜 나랑 같이 다녀? 넌 나를 싫어하잖아.”

   “네가 불행한 척을 잘하고, 거짓말도 잘하니까. 네 거짓말 덕분에 우린 먹고살잖아.”

   준은 잠시 머뭇대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싫은 건지 아닌 건지 아리송한 대답을 내놓고는 웃었다. 또 울 수 없어 웃는 미소였다. 가슴이 죄여왔다. 휴지를 풀어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펠리쿨라, 나도 하나만 묻자. 도대체 네 진짜 이름이 뭐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진짜 이름을 잊어버렸다고, 준에게만큼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름을 잊었다니, 바보 같아 보일 것 같아서였다. 바보처럼 굴면 준은 나를 더 싫어하게 될지도 몰랐다.

   “……내일은 포르투나타.”

   그 대답을 끝으로 우리는 말을 잇지 않았다. 다만 준은 내 귓가를 어지럽히던 모든 소음을 제 손으로 막아주었고, 나는 준이 만들어준 고요를 만끽하며 오랜만에 잠을 청했다. 어둠이 우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대로 어둠 속에 영원히 파묻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


   눈을 떴을 때, 준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배낭을 뒤집어 탈탈 털었다. 돈다발부터 성경까지, 모든 게 그대로인데 준만 없었다. 온종일 기다렸지만, 준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다음 날도, 그 다음의 다음 날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준이 없음에도 하루는 덮쳐왔다. 안내방송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거대한 열차가 지하터널을 뚫고 지나갔다. 열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승객들 중에 준이 있을까 싶어, 나는 한 명 한 명 눈이 빠져라 훑었다. 쌍꺼풀진 눈, 매부리코와 두꺼운 입술 중 비슷한 구석이 한 군데라도 있는 승객을 따라갔다가 매번 허탕 쳤다.

   온갖 불행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매점에 갔다가 불량배에게 붙잡힌 걸까. 내가 잠든 사이에 앵벌이 집단에 끌려간 건 아닐까. 여태껏 내가 어쭙잖게 흉내 냈던 불행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불행이었다. 그 엄청난 불행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졸리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목이 마르지 않았다. 돈벌이를 위한 분장이나 불행한 거짓말도 더는 필요 없었다. 심지어 불량배도 무섭지 않았다. 준이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무서운 건 존재하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오늘은 노선이나 방향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열차에 올랐다. 당연히 또 헤맸다. 텅 빈 손이 허전해서 쥐었다가 폈다. 열차는 지하터널을 통과하고 지상으로 나갔다.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빌딩, 드넓은 도로와 요란한 불빛이 빠르게 지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흩어지는 도시의 잔상을 잡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손바닥을 유리창 가까이 가져다 댔다. 유리창에 손바닥 모양의 자국이 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란 귀퉁이가 붉게 젖어들었고, 석양을 흠뻑 머금은 구름도 둥둥 떠다녔다. 준이 그려주던 멍처럼 얼룩덜룩한 하늘에 동그란 해가 걸려 있었다.

   “저 해는 어디서 뜨나요.”

   나를 외면하고 서 있던 승객에게 물었다. 승객은 당황한 듯 더듬댔다.

   “동, 동쪽이죠.”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조각나서 눈동자에 박힌 것처럼 눈이 따끔거렸다. 깜빡였더니 눈물이 흘렀다. 하도 긴 시간을 어둠 속에 머물렀던 탓에 빛이 낯설었다. 나는 도망치듯 열차에서 내렸다. 어딘지도 모르는 지하철역의 벤치에 한참 누워있었다. 비듬을 떼어내고 손톱 끝만 물어뜯었다. 어두컴컴했지만, 그편이 차라리 나았다. 막차가 떠나자 다시 고요한 밤이 왔다. 이젠 가을도 끝났는지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배낭에서 성경을 꺼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준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그 옛날 준이 그랬던 것처럼 손바닥을 싹싹 빌었다. 어서 내일을 맞고 싶었다. 해가 떠오르고, 하루도 일찍 시작되는 동쪽으로 가야겠다. 동쪽이 어느 방향인지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열차를 타고 동쪽으로 가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준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준이 내 손을 잡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준이 사라진 뒤로 바꾸지 않은, 준만이 알고 있는 나의 이름을.

   포르투나타. 나는 내일도, 모레도, 어쩌면 영원히 바꾸지 않을 이름을 혼자서 되풀이했다.


(2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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