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노인의 이유

by 유지 posted Dec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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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이유


 서울시 관민동에 살고 있는 서노인은 괴팍하면서도, 심술 많은 성격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같이 아파트 화단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입은 옷을 지적하는 행동을 일삼았는데, 그가 왜 그러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노인은 하나같이 두서 없는 폭언들만 일삼은 이유였다.

 노인의 폭언에는 이유가 없었다. 노인이 지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인을 본 적도 없던 초면이었고, 노인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 역시 그에게 원한을 산 것 또한 없었다. 허나, 노인은 꼭 그들을 아는 사람처럼 대했다. 입은 옷이 어떠며, 걸음 걸이가 어떠며, 하나같이 사람들의 단점들만 꼽아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서노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나같이 괴팍하고 못된 노인이라며 험담을 하기에 바빴다. 되도록 서노인과 엮이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아파트 앞을 지나갈때마다 고개를 휙 돌린채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노인의 매서운 눈초리가 무섭긴 한건지, 욕설을 퍼붓는 노인 앞에서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이곤 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생각과 함께.

 서노인은 84세의 연세에 뱀 같은 눈과 긴 코를 가졌으며, 늘 긴 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꼬부라진 허리에 비해 지나치게 밝은 검은색 머리칼은 그의 평소 심성을 옅보이게 했다. 서노인은 나이 들어보인다는 말을 가장 참지 못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비록 80대가 넘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노인은 젊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일주일 마다 머리를 염색하는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서노인은 사람들이 노인을 노인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그 사람을 모독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서노인은 화장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자글자글한 주름살의 갯수를 셌다. 하나, 둘, 셋…, 삼십. 나이테 처럼 늘어난 주름살은 노인의 또 다른 나이였다. 84세가 아닌 30세. 아니, 실은 41세. 희미한 주름살의 갯수를 애써 모른체 하며 노인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억수같은 장대 비가 쏟아지던날 아침, 서노인은 여느때처럼 길을 나섰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중절모와 어제 밤에 닦아놓은 구두 그리고 깔끔한 차림 역시 필수였다. 관절이 좋지 않았던 그는 집에서 안정을 취해야 해야한다는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늘 집 밖을 전전했다. 집에 있는 것 보단 밖에 있는 것이 나았다. 벌써 10년째 혼자살고 있는 서노인에게 집은 휴식의 공간이 아닌 한없이 불편한 공간이였고, 그로인해 서노인은 안 보다는 밖 생활에 익숙해져있었다.

 서노인은 집을 나가기 전, 등산 스틱을 챙겼다. 얼마 전 계단을 오르면서 부러져버린 지팡이 대신이었다. 홀로 떨어져 사는 서노인은 5명의 자식들이 보내주는 용돈으로 생계를 대신했다. 무릎 관절로 인해 일을 그만둔지 오래라 돈벌이가 없던게 그 이유였다.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은 혼자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서노인은 되도록이면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다. 자식들이 힘들게 벌어 준 돈을 허투로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지팡이 역시 그대로였다. 부러진 지팡이는 쓰레기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언젠가 아들이 두고 갔던 등산 스틱이 그의 빈자리를 대신할 뿐이었다. 지팡이도 사라진 마당에 서노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굽어가는 허리와 제 명의로 남은 집이 서노인의 쓸쓸한 빈자리를 대신할 뿐이었다. 이젠 차가운 냉기만 남은 집을 바라보며 서노인은 생각했다. 그래도, 이정도면 됐다고.

 매일 같이 집을 나서는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혹시라도, 집에 찾아올 수 있는 손님을 마중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찾아올 손님이라고 해봤자 별로 없었다. 그나마 몇주마다 연락이 되던 자식들은 어느순간부터 연락이 끊겨버렸고, 몇달 전까지 찾아오던 우유배달원의 발길 역시 끊겨버린지 오래였다.

 서노인은 우유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같이 찾아오던 우유 배달원을 애타게 기다리곤 했다. 그녀가 오면, 1분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말동무가 생겼으니까.

 "쯧쯧, 옷 꼴이 그게 뭐야? 아주 세상이 말세네 말세."

 혼자말이 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품평하거나, 욕설을 던지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물론, 그 반응이 마냥 좋게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눈길이라도 주는것만해도 어딘가 싶었다.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칭찬을 하는 것 보다, 화를 내는 것에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 같은 경우도 그랬다. 서노인이 몇번이나 예쁘다고 말한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하기 일수였고, 서노인이 마구잡이로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춘채 그를 오랫동안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씩 운좋으면 왜 그런 얘기를 하냐고 말을 거는 사람도 있던 터라, 서노인은 주로 후자를 택했다.

"그렇게 걸어서 어느세월에 가겠어? 퍽퍽 걸으란말야! 다리가 짧아서 못걷는거야 뭐야?"

서노인은 아파트 앞 화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내내 떠들어댔다. 다급하게 아파트 입구를 빠져 나오던 사람들이 노인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 피해갔지만, 서노인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이구, 저 얼굴을 봐라, 어?"
"할아버지 왜 또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자꾸 이러시면 병난다니까요."
"병은 무슨, 날 뭘로 보는거야? 아직도 쌩쌩하구먼."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온 경비원이 노인의 농에 희미하게 웃었다. 흰 머리에 까만 안경을 낀 경비는 이제 막 50대에 다다른 중년 남성이었다. 서노인이 살고 있는 우산 아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 경비원은 노인의 딱 한명 뿐인 말 상대로 유일하게 노인을 피하지 않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날이 더 추워졌어요, 이러다가 감기걸리면 큰일 나세요."
"큰일은 무슨, 멀쩡하다니까!"

 버럭 성을 내는 노인을 보며 경비원은 소리내어 웃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도망쳤을테지만, 경비원은 묵묵히 노인의 곁을 지켰다. 말은 이렇게 해도 속은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워낙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 이토록 답답하게 굴긴 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걸 경비원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경비원이 이토록 노인을 믿는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전에 노인이 한 아이를 보살펴준 사실을 알고 있던 이유였다. 막 6살이 된 꼬마는 매일 같이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 몸이 바싹 마르고 늘 겁에 질린걸 보아하니 집에서 밥도 안주고, 아이에게 폭언을 일삼는 모양이었다. 그로인해 아이는 아파트 주변을 전전하며 남은 음식들로 허기를 달래기 일수였다. 아파트 주민들 역시 그 사실을 아는 듯했으나, 부모의 보복이 두려워 다들 쉬쉬하기 바빴다. 결국, 보다 못한 노인이 부모를 신고했고, 아이가 보호소로 돌아갈때까지 지극 정성으로 아이를 보살폈다.

"썩을 것, 저리 썩 가!"

 그래서 경비원은 알 수 있었다. 노인이 말과 달리 심성은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란걸 말이다. 이런 식의 말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경비원은 주머니에서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 꺼내 차갑게 얼어버린 노인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이거 드세요. 저는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볼게요."
"됐어, 안먹어."
"따뜻한거니까 품에 지니고 계세요, 가볼게요."
"안먹는다니까!"

 죽어도 안먹는다 우겼는데도, 기어코 손에 캔커피를 쥐어주고 간 경비원 덕에 서노인의 기가 한풀 꺾였다. 이런 식의 친절은 익숙하지 않았다. 매일 같이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노인의 주 일상이였기에 이런 식의 친절은 불편했다. 썩을 것. 노인은 손에 쥔 캔커피를 뚫을 듯 노려보다가, 이내 그것을 주머니 속에 깊숙히 집어넣었다. 손끝에 닿은 온기가 온 몸을 사르르 녹였다.

 할 것이 없던 서노인에게 하루란 너무도 길었고, 특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은 더더욱 길었다. 잠이 들지 못해 밤새 뒤척이는건 서노인의 일상이었다. 마땅히 일어나도 할게 없어서 멍하니 TV만 바라보며 허성세월을 보냈다. 끼니를 챙기는 역시 대충이었다. 먼저 하늘 나라로 떠난 마누라의 성화 덕에 밥은 할 수 있었지만, 관절이 좋지 않아서 근처 노인정에서 대부분의 숙식을 해결했다.

 저녁 6시, 집에 돌아온 노인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건, 현관 문을 열었을때 쯤이었다. 분명 단단히 잠궈두었던 창문이 열려있었고, 집 안에는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거실로 걸어들어온 노인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그때문이었다. 노인은 문을 열어놓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문이 열렸다는건, 좋은 기운들이 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굳게 닫힌 줄만 알았던 집안의 서랍장이 죄다 열려있었다. 거실과 방 안은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각종 서류가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도둑이 들었다고! 도둑이!"
"네, 진정하시고요. 혹시 뭐 없어진건 없으세요 어르신?"
"집 문서가 없어졌어."

 신고를 받고 나온 경찰은 노인의 집을 샅샅히 수색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집 문서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 집에 중요한 문서라고 당장 찾아야한다며 버럭버럭 소리를 치는 탓에 경찰들은 내내 진땀을 빼야만했다.

 예상치 못한 도둑 소동으로 인해 집안은 예상치 못한 활기를 되찾았다. 늘 마음을 차갑게 만들던 정적 대신 소란이라는 그리운 존재가 노인의 집 안에 끼어든 것이었다. 경찰들은 도둑을 찾기 위해 거실에 동그랗게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몇시간이 지나도 문서를 찾겠다는 말이 없어 보다못한 서노인이 혀를 차며 다가가 경찰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겼다.

"아! 어르신."
"왜 이놈아, 빨리 안찾고 모하는거여?"
"최선을 다해 찾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똑부러진 경찰의 대답에 허노인의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도둑 사건으로 인해 경찰들은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특히 이런 사건은 더더욱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CCTV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부분은 도둑을 찾지 못한채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집 안이 후끈했다. 서노인이 보일러를 튼 이유였다. 평소 혼자지낼때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보일러도 잘 키지 않던 서노인이 이정도로 온기를 베푼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노인은 이상황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거실을 꽉 채운 남정네들의 모습이 마냥 보기 싫지는 않아서 서노인은 입을 꾹 다문채 침묵을 지켰다. 제가 굳이 떠들지 않아도 집안은 시끌 벅적했다. 그 소란이 싫지 않아 서노인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

 예상치 못한 도둑으로 인해 서노인은 바쁜 나날들을 보내야만했다. 경찰들과 함께 집 정리를 막 끝냈을땐,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동안, 노인은 경찰들과, 아파트 이웃들, 그리고, 자식들까지 맞이했다. 혼자 살게 된 이후 처음으로 겪게 된 바쁜 일상이었다. 정신 없는 일주일을 보냈음에도, 노인에게선 전혀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집 안에 찾아오는 손님들 모두 너나할 것 없이 노인의 안부를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데는 없어요? 등등, 노인은 예상치 못한 질문 세례를 받았다. 이 집에서 혼자 살게된 이후로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상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이 부끄러운 질문을 던질때마다 노인은 그런 말 할꺼면 집으로 가라며 성을 냈지만, 그러면서도 속으론 내심 기뻐했다.

 노인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늘 혼자 지내던 서노인에겐 사람의 온기가 금은보화보다도 더 값진 것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들 역시 노인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소식을 듣고 내내 걱정했다며 둘째 아들은 노인의 곁에 머물기까지했다. 오랜만에 본 아들이라 할 말은 많았지만, 노인은 굳이 말을 꺼내지않았다. 혹시라도 아들이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혹여 제 말에 달아날까 싶어 노인은 입을 꾹 다문채 침묵을 지켰다.

"저 먼저 가볼게요, 아버지 무슨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하지만, 그 기대는 금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자식들은 눈코 틀새 없이 바빴고, 노인과 같이 보낼 시간 역시 없었다. 다들 바쁜 생활에 치여사느라, 자고 갈 시간도 없는 모양이었다. 서노인은 어느정도 아들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한편으로 몹시도 서운해했다. 오랜만에 본 사이임에도, 자식들은 어떻게든 빨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부터 하는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은 서노인을 불편해했다. 80대가 넘은 아버지와 말이 통하지 않았을 뿐더러 같이 있으면 괜히 마음만 무거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노인이 된 아버지는 심적으로도 물적으로도 부담이 많이 되는 존재였다. 가뜩이나 집안일로, 회사일로 바쁜 와중에 노인인 아버지까지 신경쓰고 싶지는 않아했다. 이미 산더미처럼 쌓인 짐에 더 큰 짐을 올리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또한 자식들은 왠만해서는 손주들을 데려오지 않았다. 손주들이 할아버지를 불편해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입에 담지는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손주들이 할아버지를 싫어하는건 당연했다.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온 몸이 쪼글쪼글하며, 재미없는 말들만 늘어놓을테니까.

"그래, 조심히 가."
"네, 아버지. 연락드릴게요."

 노인은 한없이 외롭고, 서러워졌다. 하지만 그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채, 서노인은 아들을 배웅했다. 난 걱정하지 말어, 하면서.

 그 후,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노인은 의문의 사고를 당했다. 아파트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차에 치인 것이었다. 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다행이게도 다친 곳은 없다고 했다. 의사는 며칠정도 안정을 취해야한다는 말을 끝으로 병실을 나섰다.

 노인이 눈을 떴을땐, 자식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었다. 몇몇 자식들은 노인이 눈을 뜬 것을 보고는 금세 자리를 비웠다. 둘째 아들인 운서만 노인의 곁에 남아 그를 간호했다. 침대에 꼼짝 없이 누워있느라 몸이 근질근질 했지만 노인은 병원생활에 금세 적응했다. 걱정했어요, 아버지. 하고 돌아온 아들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고통도, 근심도 잊게 만드는 그 목소리에 노인은 바보처럼 허허 대며 웃어댔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노인에게도 웃음이라는게 존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들이 바쁜 일이 생겼다며 얼마 안가 회사로 돌아간 탓이었다. 그로인해 노인은 금세 퇴원소속을 밟았다. 기껏 잡은 기회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는 순간이었다. 노인은 멍하니 창문을 내다보았다. 쉴새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거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자신은 늙었고, 늙은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낳은 자식들도 슬금슬금 피하는 마당에 누가 자신을 좋아할까 싶었다. 사람들 모두 그를 괴팍한 노인네라 손가락질하기 바빴으니, 이젠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 것이 뻔했다.

 나이는 아무리 노력해봐도 달라지지 않는 불변의 법칙과도 같았다. 노인은 벌써 2주일째 염색을 못한 상태였다. 그로 인해 검은색이였던 머리는 하얀 백발로 변해버렸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였지만 노인은 문득 서글퍼졌다.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를 써봐도 노인의 주름살과 나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노인이 그렇게 되도록 한것이 아님에도 그랬다.

 "집에 데려다드릴게요 아버지."
 "그래."

 첫째 아들은 노인을 집까지 데려다 준뒤, 부리나케 달아나버렸다. 불편해하는 것이 눈에 보여 노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집 문이 닫히고 노인은 혼자 남았다. 노인은 문득 서러워졌다. 자식들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사소한 행동에 서러워지곤 했다. 이럴거면 뭐하러 더 살아야하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노인은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는 밖으로 나섰다. 

 코끝을 스치는 날이 쌀쌀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청년 한명이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얼마전, 차 사고를 낸 청년이었다. 노인은 청년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도와줘서 고마웠네 하는 말과 함께.

 노인은 또 다시 혼자였다. 아파트 화단 앞에 앉은 노인이 여느때와 다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괴팍한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경비원이 화들짝 놀라 노인에게로 다가왔다. 

"어르신 좀 괜찮으세요?"
"괜찮지 그럼, 뭐 그런걸로 죽기라도 할까봐?"

 노인의 사고 소식을 들은 경비원은 내내 그를 걱정했다. 심각한 사고는 아니였지만, 연세가 있던 분이라 작은 사고에도 크게 다쳤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노인은 멀쩡했다. 아니 멀쩡해보였다. 노인의 손에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쇠꼬챙이로 된 긴 막대기가 들려있었다. 얼마전 부러진 지팡이 대신이었다. 분명 아들이 데려다준 것 같았는데, 여태껏 지팡이 하나 안사드리고 뭐했나 싶었다.

 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아파트 옥상이 보였다. 족히 18층은 넘어보이는 높이였다. 노인은 성질을 죽인채 경비원에게 나지막히 속삭였다.

"언제 사람이 가장 많이 오는줄 아나?"
"네?"
"내가 죽어서야, 내가 죽으면 그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오겠지. 허허."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웃음이났다. 경비원은 다소 놀란 얼굴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허나 노인은 시선 한번 주지 않은채 자리에서 일어나 아파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절뚝거리는 걸음에 경비원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지만, 노인은 그의 도움을 거절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노인이 살고 있던 7층을 넘어 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 그 것을 바라보고 있던 경비원은 문득 노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웃기지 않나? 산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환영 받는게."

 경비원은 다급히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어느새 노인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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