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칠석.

by 수성 posted Dec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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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


1. 꿈을 꿨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 혼자만 이질적이었다. 팔에 감긴 붕대. 천쪼가리에 스며든 푸른 액체. 그리고 무언의 눈빛들.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이 던지는, 보이지 않는 돌을 혼자서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었다. 나를 구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런 사람을, 이런, 살인자를,


도대체 누가 동정한다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째 찝찝하다 했더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있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는다. 진즉 손질했어야 했는데. 시야를 가리는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땀에 절어 드문드문 덩어리 진 그것이 뒤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관자놀이 주변을 배회한다. 짜증스러움에 몇 번이고 재차 넘겨보아도 일부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골백번 수고를 들여봐야 어차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 머리카락도, 나도.


'지나간 과오를 되돌릴 순 없어, 그렇지?'


'그렇다고 해서 네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도 아닐테고 말야.'


익숙한 환청과, 그에 반응하는 나. 정말 안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몇 년째 나를 괴롭히는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그것에 동요하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짙은 얼룩을 스스로 묻히고 있었다. 내 몸은 온통 시커먼 먹물 투성이였다. 결코 닦이지 않고, 한없이 묻어나기만 하는. 그런것들.


2. 그 날에는 비가 내렸고, 칠석이었다.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단 한 번 만남을 가진다는 그 애틋하고도 절절한 날.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우리는 그저 웃었다. 마냥 웃었다. 함께있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행복한 사람을 과연 또다시 만날 수가 있을까. 나는 당신을 놓고 싶지 않았다.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순간속에서, 이 사람이 내 인생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아니였다.


아니였나보다.



3. 몇 년이 지나도 방금 전 겪은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있다. 우리는 우산도 없이 비오는 거리를 걸었다. 어깨를 두드리는 빗줄기는 시간이 갈 수록 더욱 그 강도를 더하고 있었다. 없던 자리에 금방 웅덩이가 생기고, 근처 강가의 강물이 순식간에 불어나갔다. 워낙에 물을 좋아하는 우리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봤자 허리 언저리밖에 오지 않던 강물로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았다면 아마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것이다. 다만 주변의 시선이 어떻든, 그 날의 우리는, 나는, 그만큼 신나있었다.


펼쳐진 강물을 향해 등을 보이고 해맑게 웃던 너를 몰아붙였던 게 화근이라면 화근일 것이다. 과도하게 신이 난 나머지 나는 더 세게, 더 많이 물장구를 쳤고, 그에 맞춰 뒷걸음질 치던 몸은 갑자기 아래로 빨려들어갔다. 빗소리에 섞이던 웃음이 멈춘다. 장난치지 말라고, 얼른 나오라고. 몇 초간 그렇게 소리치니 곧 저 멀리서 허우적거리는 하얀 손이 보였다. 


우리 둘 다 수영실력은 그럭저럭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네가 아주 약간 더 좋은 축에 속해있었다. 적어도 제 몸 하나 정도는 건수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물살을 헤치고 달려가는 와중에 바라본 너는, 당신은, 살고자 하는 기미가 없어보였다. 본능적인 발악을 제외하고는, 극도의 공포심이라든가, 살아야 한다는 의지라든가, 의욕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 당신을 향해 가기 위해서 나는 쉼없이 강물을 헤치고, 발을 움직였고, 몇 번이나 강물을 마셨다. 동시에 발밑이 푹 꺼져 물이 목 끝까지 차오르고도 남았다. 나 또한 발악을 했다. 하면서도 너를 구하려 했다.


4. 손을 잡았다. 그러나 놓았다. 겨우 닿은 손끝을 그러쥐고 이제 살 길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마치 당연하다는 수순인 양 내 손을 놓아버린 너는 말갛게 웃음 지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모습이었다. 어느샌가 너는 죽음을 갈망하고 있었던가.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겨들었던 죽음에 대한 혼잣말이, 그 말소리가, 전부 너의 진심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이었나. 나는 도저히 그 순간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손을 잡았다. 끝끝내 잡고 둘 다 살아서, 나와 너로 나뉘어진 것이 아닌, 다시 '우리' 라는 관계 그 자체로 되돌리고 싶었다. 


헛된 희망이었다.


몇 번을 잡아도 몇 번을 놓았다. 젖먹던 힘까지 전부 끌어모아 너를 잡아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무어라 무어라 고함을 질렀다. 살아서 나가자고, 나를 버리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내 고함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너는 빗방울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던 그 잠시동안에 나를 버리고 더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력을 소진해버린 나는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이대로 죽는다고만 생각했고, 어차피 그럴 거라면 너와 함께하고 싶었다. 다만 그것 뿐이었다.


5.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나는 살인 용의자가 되어있었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니 너를 구하려던 나의 노력이 정반대로 보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물증이 없어 나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 두개의 음절이 커다란 바위가 되어 나의 심장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무죄가 아니다. 끝내 너를 구하지 못한 나는, 강가로 가자고 선뜻 권유했던 나는, 비오는 거리를 걷자고 제안한 나는, 


그저 살인자일 뿐인 것이다.


칠석에는 항상 네 꿈을 본다. 네 환청을 듣고, 네 환각을 보고, 네 환후를 맡는다. 비릿한 물냄새. 말간 웃음. 쏟아지는 빗소리. 그런 것들.


모든 것이 죗값이고, 많은 것이 죄책감인 와중에, 단 한가지. 풀리지 못한 의문이 있다.


대체 무엇이 너를 그리도 잡아당긴 것일까.


...그건 아마, 평생이 지나도록 모를 일이다.





성명: 최가영

이메일: jfesd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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