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별을 밟는 아이

by 재이0803 posted Dec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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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밟는 아이



  깊고 짧은 잠에서 깨어나니 푸른 노을이 보였다. 창문에 성긴 성에에 번진 빛처럼 둥근 태양의 형체 위로 푸른 먼지들이 춤을 추며 반짝였다.


  “어휴, 벌써 저녁이네. 그만 집에 가야겠다.”


  푸른 노을이 기울자 T는 별 부스러기가 담긴 바구니를 부산스레 정리했다. 아직은 지구가 만들어놓은 것들에 익숙한 M은 푸른 노을에도 태평한 T의 행동이 의아했다.


  “여기는 왜 노을이 파란색이야?”


  T가 푸스스 웃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이 바다 속 미역줄기 마냥 흔들렸다. 영문도 모른 채 M의 입에서는 침이 고였다. 쓰다듬고 싶은 건 M이었는데 도리에 TM의 머리를 도담도담 쓰다듬었다.


  “여기에서 는 필요 없어. 그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뿐이야.”

  “그치만…….”

  “그래도 궁금하다면 대답해줄게. 화성의 노을이 파란 건 말이지. 화성의 대기가 지구와 다르기 때문인데 대기에 섞인 먼지가 빛의 산란에…….”

  “, 아니야. 됐어, 됐어. 돌아가자.”


  다급하게 손사래를 친 M이 별 부스러기가 반쯤 담긴 바구니를 어깨에 멨다. 살짝 벌어진 바구니의 틈새로 부스러기의 부스러기가 졸졸 새어나왔다. 더 이상 듣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사 표현에 T가 환하게 웃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모든 일의 뿌리를 알 필요는 없다니까? ‘보다 중요한 게 우주에는 널리고 널렸어. 예를 들어 다음 주로 다가온 별 밟기 대회처럼.”

 

  MT를 만난 건 불과 며칠 전이었다. 지구의 시간 단위로 치자면 며칠이지만 무한한 우주에서 그간의 시간은 찰나보다 더 찰나일지도 모른다. 찰나만치 짧게 지구에서 살다온 M이 눈을 떴을 때 가장 처음 마주친 것은 푸른 노을을 등지고 있는 T였다.


  “안녕? T. 오늘부터 너를 M이라고 부를게. 그리고 이제 우리는 가족이야.”


  그리고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M에게 다가왔다. 나는 P. 나는 Y-21이야. 앞 다투어 M에게 통성명을 하지만 넘치는 새로운 정보는 금세 흩어졌다.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T의 뒤를 따라다니며 쟤는 누구랬지? 쟤는 이름이 13이었나, 23이었나? 라며 묻게 될 것을 그곳의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왜 아무 것도 안 물어봐?”

  “?”

  “보통은 일어나면 그러더라고. 여기는 어디야? 너는 누구야?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는 이렇게 물어봐. 나는 누구야?”


  언제 이곳에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언제까지 있을 것인지를 아는 아이들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T도 마찬가지였다. T가 깊고 짧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전에 있었던 모든 기억의 행방은 묘연했다. 먼저 와있던 아이들에게 별 부스러기를 줍고, 별 부스러기를 밟고, 별 부스러기를 던지는 일을 배울 뿐이었다.

  M이 아무 것도 묻지 않은 건 궁금하지 않아서 묻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엇부터 물어봐야할지 몰라서였다. 시험 범위가 너무 넓으면 어디부터 공부해야할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별 부스러기를 주워. 별도 태어나고, 자라고, 나이가 들면 죽어버리거든. 죽어버린 별이 펑하고 터져서 우주 곳곳으로 흩어지면 그걸 줍는 거야.”

  “그걸 주워서 뭘 해?”

  “부스러기를 밟아서 뭉치지.”

  “뭉쳐서 다음에는?”

  “던져버려.”

  “어디로?”


  하하하! 우주에 빛나는 별처럼 수많아지는 M의 질문에 T가 목청을 드러냈다. 드넓은 우주에는 아무리 커다랗게 웃어도 돌아오는 메아리가 없었다. M은 메아리 없이 쾌활하게 웃는 T를 보면서 자그마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네 입에서 나오는 물음표가 전부 별이 된다면 금세 은하수가 생길 거야.”


  T는 나이답지 않게 퍽 철학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아이들은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할지, 부스러기를 얼마나 주워야 할지, 모아놓은 별 부스러기는 언제 밟을지 많은 것들을 T에게 물었다. T가 하는 말도 어차피 이전의 누군가에게 배운 산물이겠지만 아이들은 T의 말을 매일 새로운 지식이라도 습득하듯 흡수하려 안간힘을 썼다. M 역시 마찬가지였다. 궁금한 게 생기니 절로 T에게 눈길이 갔다.


  “별 부스러기를 뭉친 다음에 어디로 던진다는 거야?”

  “지구로 던져. 일주일에 한 번씩. 잘 안 뭉쳐진 것들은 날아가다 사라지지만 꼼꼼하게 잘 뭉쳐진 것들은 지구에서 별똥별이 돼.”

  “별똥별?”

  “열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좋다고 했어. 원래 오늘은 던지는 날이 아니지만 연습 삼아 해볼래?”


  어른들이 쓰는 어려운 말을 의기양양하게 내뱉은 T가 편편한 바닥에 납작한 엿처럼 뭉쳐진 별 부스러기를 한 움큼 떼었다.


  “이제 이걸 잘 뭉쳐서 던지면 되는 거야. 양 조절을 잘못하면 파편이 떨어지니까 조심해. 엉뚱한 행성이나 항성에 부딪히면 큰일 난다고.”


  정보의 간격이 텅 빈 T의 설명에도 M은 곧잘 따라했다. 놀이터에서 자주 뭉치던 모래 주먹밥처럼 만들면 되는 거구나. M은 빠르게 자기 식대로의 방법을 터득했다. 손 안에서 단단하게 뭉쳐진 별 부스러기가 야구공처럼 완만해졌다. 그리고 뭉쳐질수록 무지갯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비슷한 모양으로 태어났어도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서 다른 색이 되거든. 빨간 별도, 노란별도, 초록별도 있어. 너랑 나도 그렇잖아. 나이도 키도 비슷하지만 다르게 생겼어. 나는 T고 너는 M이니까.”


  철학책에 나올 법한 문장을 줄줄 읊은 T가 던지는 제 모습을 잘 관찰해보라며 채근했다. 그러고는 누구와 신호를 주고받는 건지 아니, 스트라이크 말고. 변화구로. 그래, 그거야.’ 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가 끄덕이더니 이내 투수처럼 폼을 잡았다. 모아진 왼손, 오른손을 머리 뒤로 넘기고, 왼쪽 다리를 슬쩍 올렸다가 내리며 도움닫기를 한 뒤 무지갯빛 덩어리를 허공으로 힘껏 던졌다. 덩어리는 빠르고 일정한 속도로 지구를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이제 네 차례야.”


  채근하는 T 때문에 얼떨결에 M도 투수 폼으로 덩어리를 던졌다. 하지만 어설픈 폼으로 던진 덩어리는 T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던진 건 내일이면 도착하겠지만 M 네가 던진 건 한참 뒤겠다.”

  “이게 정말 별똥별이 된다고? 별똥별을 왜 던지는 거야?”

  “정말, ‘는 필요 없다니까.”

  “그치만…….”

  “하하하. 장난이야. 삐치지 마, 설명해줄게. 이 부스러기가 지구에 떨어지면 소원의 꼬리가 되거든. 그 꼬리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소원을 비는 아이, 그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에너지를 주는 역할을 하는 거야. 의미 있는 일이지?”

  “그치만 소원이 선착순이라니. 좀 이상해.”

  “아니, 이상하지 않아. 원래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 소원의 꼬리를 가장 먼저 잡게 돼있어.”


  사람들 모르게 우주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구로 쏘아 보냈다. 오늘은 그것이 소원의 꼬리였지만 어제는 해가 달을 가리는 거였고, 그 전에는 나무에서 사과를 떨어뜨리는 식이었다.


  “네가 던진 꼬리를 잡은 사람이 소원을 이루면 그게 켜켜이 쌓여. 네 키만큼 쌓이면 너는 돌아갈 수 있어.”

  “돌아가다니 어디로?”

  “어디로 돌아가는지 그건 아무도 몰라.”


  M은 비틀대며 지구를 향해 흐르는, 제가 던진 무지갯빛 덩어리를 뒤좇았다. 비록 실패한 첫 시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성공적인 소원의 꼬리가 되길 바라는 시선은 선명하게 반짝였다.


* * * * * * *

 

  조금만 움직여도 나무로 된 프레임이 비명을 지르는 침대라 빠르고 격렬한 동작은 금지였다. 바로 아래층에 잠귀 예민한 원장 엄마의 방이 있으니까. 하지만 성호는 참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우면 바로 보이는 창밖의 풍경 때문이었다. 끼기긱! 벌떡 일어나자마자 들려오는 비틀린 소리에 성호의 어깨가 귀까지 오그라들었다. 사위로 눈치를 보며 인기척을 살피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성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까치발로 띄엄띄엄 걸어 창가에 가서 섰다. 분명히 빠르고 밝은 무언가가 포물선을 그리며 뚝 떨어졌다.


  “별똥별이다…….”


  하나가 떨어지면 연속으로 떨어진다는 걸 TV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도 덧붙여서. 소원이라면 지금 당장 초시계를 들고 누군가 시작을 외치면 10초 안에 10개를 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제 별똥별만 떨어지면 된다. 다음에 이어질 별똥별을 기다리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방의 일렬로 쭉 늘어선 다섯 개의 오래된 침대, 그 중 한 가운데 누운 가장 작은 지민이가 마음에 걸렸다. 깨워서 같이 보고 싶었지만 지민이를 깨우러 눈을 뗀 사이에 별똥별 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져 사라져버릴 까봐 성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성호의 눈에 묘한 장면이 목격됐다. 유독 힘이 없어 보이는 비실비실한 불빛 하나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별똥별인가? 비행기인가?”


  공항에서 멀지 않아 가끔 먼 하늘을 지나가는 비행기를 본 적 있지만 이 시간대 다니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소음 때문인지 늦은 밤부터 이른 아침까지는 비행기도 하늘을 비워주었거든. 그렇다면 별똥별이 맞는 건데. 성호는 긴가 민가 하는 표정으로 두 손바닥을 마주잡을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다 비실대는 불빛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에야 손바닥을 마주 잡았다. 10개는 고사하고 딱 하나 빌고 나니 꼬리는 산 너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성호의 소원 Top 1은 돈을 많이 벌어서 사고 싶은 걸 다 사는 것도, 아빠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커서 유명한 연예인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박성호, 똑바로 얘기해. 거짓말하면 3일 동안 밥 없어.”


  이 정도의 말은 이제 성호의 마음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아니라고 해야 할까, 잘못했다고 해야 할까. 성호는 어떤 말을 해야 이 시간이 빨리 끝날 수 있는지 이실직고해야 할 문장의 중량을 재고 있을 뿐이었다.


  “친구 지갑에 손댔다는 게 진짜냐고 묻고 있잖아!”


  얼마 전 종례 시간에 지갑에 있던 2만원이 없어졌다며 같은 반 정수가 울먹이며 손을 들었다. 일주일 용돈을 오늘 아침 막 받은 참이라 집에 가면서 PC 방에 들를 단꿈에 젖어 있었는데 웬 쌈짓돈 도둑이 그 꿈을 와장창 깨버렸다. 이전에는 청소 시간, 체육 시간, 과학 수업이 과학실 이동 수업이 있었다. 아이들의 지갑이 위험에 노출된 시간이 3시간 이상이라는 말이다. 그동안 성호네 반 교실에 침범할 수 있었던 용의자는 지목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졌다는 정수의 울먹임은 벼락처럼 성호를 향해 곧장 떨어졌다. 몰려드는 시선에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명예퇴직을 앞두고 있는 담임선생님도 있었다. 오늘은 선생님과 똑같은 시선으로 원장 엄마가 성호를 쏘아붙였다. 그러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는 성호에게 성큼 다가갔다.


  “!”


  성호가 뱉은 짧은 비명이 지나가자 곧장 왼쪽 팔뚝에 피가 맺혔다. 꼬집힌 자국에 오른쪽 손바닥을 덮기도 전에 정수리로 무겁고 질 나쁜 꿀밤 몇 대가 날아들었다. 아픈 곳이 사방팔방이라 성호는 어떤 손으로 어디를 위로해줘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씩씩거리는 원장의 콧김 아래에 작은 초식 동물처럼 오그라든 성호가 꾸물꾸물 한 마디를 꺼냈다.


  “…… 했어요.”

  “?”

  “제가 안 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믿니?”


  진짜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진실이 언제나 진실일 수는 없는 거였다. ‘별빛의 집 보육 원장 황명숙원장 엄마의 가슴에 달린 명찰에 적힌 문구처럼 그녀의 앞에서 모든 진실은 금세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 됐다.


  “그동안 네가 믿음직하게 처신을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더듬어지지도 않는 어린 시절에 주방에서 사과를 하나 훔쳐 먹은 이후로 성호는 쭉 믿음직하지 못한 아이였다.


  “만에 하나 네가 아니어도 네가 범인이게 돼 있어. 네가 부모도 돈도 없다는 게 그 이유야. 세상이 원래 이런 곳이야. 알아?”


  아빠도 그렇고, 원장 엄마도 그렇고 어른들은 늘 세상은 원래 그렇고 저런 곳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세상을 이렇게 또는 그렇게 만든 것은 어른들이면서 상처는 왜 제가 받아야하는지 억울했다. 재차 이어지는 원장 엄마의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라는 격노에도 성호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부어오른 왼쪽 팔뚝을 쓰다듬으며 콧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을 훌쩍이며 삼키기만 했다.


  “왜 대답 안 해. , 억울해? 주제에?”

  “…….”

  “억울하면 너희 아빠 찾아 가든가.”


  찾아갈 수 있다면 한참도 전에 갔겠지만 7년간 수많은 아이들이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떠나는 동안 성호는 붙박이 인형처럼 별빛의 집을 지켰다. 지켰다기보다는 아빠를 기다렸다고 하는 맞겠다. 엄마가 떠나고 혼자 성호를 키우던 아빠는 성호가 5살이 되던 해, 뚱뚱한 가방 하나와 성호를 보육원에 남겨두고 돈을 벌러 떠났다. 매달 양육비를 낼 테니 다른 데 보내지 말고 잘 좀 봐달라며 원장님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거친 손바닥으로 코밑을 비비던 아빠는 약속대로 23개월 동안 바지런히 양육비를 붙였다. 하지만 바다에 몇 달 나갔다오면 이제 같이 살 수 있다며 기대에 차있던 아빠를 바다가 삼켜버렸다. 성호는 혼자 남는다는 것, 그 민낯의 공포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원장 엄마는 바다가 아빠를 삼킨 게 아니라 네가 삼킨 거라며 양육비 없는 성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차라리 좋겠다. 그렇다면 밤마다 토악질하는 외로움과 함께 아빠도 뱉어낼 수 있잖아.


  “언제까지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줘야 돼, 정말. 염치없는 건 아빠나 아들이나. 하여간, 쯧쯧! 너 같은 건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돼.”


  마음껏 성호를 몰아세운 원장 엄마가 돌아섰다. 시멘트 바닥에 부딪힌 하이힐이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또각또각 거리는 소리가 멀어졌지만 고개는 여전히 떨구어져 있었다.

  성호의 소원은 악마가 되는 거였다. 거세고 시뻘건 불길을 입에서 내뿜는 악마. 천사가 되어 천당에 가는 게 아니라 붉게 충혈 된 눈동자에 우락부락한 뿔이 달린, 손톱 발톱도 천년은 안 씻고 안 자른 것처럼 지저분한 악마가 되고 싶었다. 사람이 착하면 복을 받는 게 아니라 복을 발로 차는 거라고. 나쁘고 요령이 좋아야 원하는 걸 얻는 게 이 세상이라고 염불처럼 외던 아빠의 말처럼 나쁘고 요령 좋은 악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 다음 성호가 원하는 거라고는 단 하나뿐이었다. 1365일 내내 화가 나있는 원장 엄마가 내뱉는 나쁘고, 아프고, 날카로운 것들을 불로 태워 모조리 녹여 없애는 거였다.

하지만 이러다 성호가 먼저 녹아 사라질 판이었다. 완벽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들켜 버리다니. 성호는 불쑥 튀어나오는 입술을 말아 물며 책상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뽑아 콧물과 눈물을 대충 닦았다. 급하게 증거 인멸의 시간이 마무리 되고 큰 숨을 서너 번 들이마시고 내쉬자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머리 하나가 배꼼 나타났다.


  “형아 괜찮아?”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처럼 성호를 쫓아다니는 지민이었다. 인천 어느 잘사는 동네에 가장 잘사는 집 앞에 정지민이라는 이름표와 함께 버려진 지민이는 잘사는 동네에 섞이지 못하고 별빛의 집으로 흘러왔다.


  “형아 울었어?”


  하이힐 소리 대신 짝이 맞지 않는 운동화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귀엽고 싹싹한 지민이 여태 새로운 부모를 찾지 못한 이유는 나사가 하나 빠진 다리 때문이었다. 전시회에 그림을 사러온 사람들처럼 별빛의 집을 투어 하는 어른들은 연신 방긋거리는 지민을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비틀어져있던 지민이의 오른쪽 다리를 보고는 매번 아쉬운 눈초리로 다른 그림을 찾아 떠났다. 부재의 공허함에 대해 절절하게 겪어온 성호는 지민의 아픈 다리가 마치 제 아빠 같았다. 그렇게 자꾸 챙겨주고, 업어주다 보니 지민은 성호를 내내 따라다녔다.

  아빠를 막 잃은 7살의 성호가 만난 갓난 아이 지민은 어느 덧 7살이 됐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아직 제 이름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지민에 성호는 다급해졌다. 절뚝이는 다리에 바보처럼 웃고 다니니 놀림 받기 딱 좋은 지민이 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일 텐데 원장 엄마는 지민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돈 때문인지, 몸이 불편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신경 쓸 일이 많아져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원장 엄마한테 많이 혼났어?”

  “아니야, 괜찮아. 별로 안 혼났어. 지민이, 형이 준 선물 잘 가지고 있지?”

  “. 이것 봐, 여기. 침대 밑에 숨겨놨어.”


  오랫동안 바뀐 적 없는 낡은 매트리스를 작은 몸이 낑낑대며 올리자 한글 첫걸음이라 적힌 빳빳한 문제지 한 권이 나태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그래, 이따가 원장 엄마 외출하시면 형이랑 같이 공부하자.”

  “지금하면 안 돼? 나 지금 공부하고 싶어.”

  “이건 형이랑 지민이 둘만의 비밀작전이라서 누구한테도 들키면 안 되는 거야. 원장 엄마도 알면 안 돼. 알겠어?”

  “. 형아, 비밀 작전! 비밀 작전!”


  지민이 양 팔을 벌리고 비행기 자세를 한 채 신나게 쿵-콩 거리며 방을 뛰어나갔다. 아주 느릿한 시간 뒤에 보육원 작은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낸 지민은 공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근처로 다가갔다. 이쪽 골대에서 저쪽 골대로 정신없이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따라 지민의 고개가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였다. 이 선 넘어가면 볼 아웃이야! 라며 그려놓은 경계선 밖에서 지민은 물끄러미 아이들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러다 뒤통수가 따가운 걸 느꼈는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성호와 눈이 마주치자 헤실, 웃으며 입술로 자음과 모음을 그렸다.


  ‘...


  성호는 방방 뛰는 지민에게 손바닥을 흔들어주고는 뒤돌았다. 그러고는 진짜 비밀 작전을 펼치는 스파이처럼 침대 뒤편, 접착력이 다해 말려 올라간 벽지 사이에서 작고 빳빳한 종이 하나를 꺼냈다.


  “1, 7, 14, 25…….”


  이미 외워버린 숫자를 읊조리며 손가락을 엄지부터 검지, 중지, 약지 순으로 하나씩 접었다.


  “히히. 네 개나 맞았어. 네 개면 5만원이라고 했는데.”


  정수의 지갑에서 나온 2만원은 성호의 손에서 5만원이 되었다. ‘한글 첫걸음13800원에 사고 남은 6200원으로 처음에는 먹고 싶었던 햄버거 세트를 사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햄버거 세트의 가격에서 딱 300원이 부족한 바람에 빈 속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돈에 맞춰 햄버거랑 콜라만 먹는 것도 방법이었겠지만 햄버거 가게에 오는 동안 길게 줄을 선 편의점을 보고는 햄버거를 향한 열망이 살짝 꺾인 탓이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고 꼬리 길게 늘어선 줄에 성호가 슬쩍 끼어들었다.


  “이건 어른들만 살 수 있는 거야.”


  큰 맘 먹고 왔건만 편의점 아줌마는 성호가 건넨 5천원을 되돌려 주었다. 불공평했다. 부자가 되는데 어른이고, 어린이고 무슨 상관이야. 일확천금의 기회는 왜 어른들에게만 주어지냐고. 나도 가난하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닌데. 성호는 5천원을 되돌려주려는 아줌마의 손에 다시 5천원을 쥐어주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거 우리 아빠 심부름인데 그냥 주시면 안 돼요? 저희 아빠가 다리가 불편해서 제가 대신 사러 왔어요.”


  딱한 사연에 뒤에 줄을 서 있던 아저씨가 내가 보호자해 줄 테니 한 장 팔라며 편을 들었다. 아줌마는 못이긴 척 5천 원짜리 복권을 성호에게 건넸다. 앞의 아줌마와 뒤의 아저씨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돌리고 편의점을 나온 성호는 가방 제일 아래에 복권을 숨기고 별빛의 집으로 돌아왔다. 복권을 산 첫날은 1등 당첨이 돼 지민이와 큰 집을 짓고 함께 사는 꿈을 꿨다. 단꿈을 꾼 다음날에는 1등에 당첨됐지만 원장 엄마에게 빼앗기는 악몽을 꿨다. 식은땀에 절어 일어난 성호는 가방에서 복권을 꺼내 원장 엄마에게 들키지 않도록 벽지 틈새에 깊숙이 숨겨놓았다. 그 다음날, 남겨둔 1200원으로 간 PC 방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당첨 번호를 검색했다. 1, 7, 14, 25……. 달게 꿈꾼 1등은 아니지만 5만 원이 어디인가. 검색창에서 복권을 샀던 곳에 가면 돈으로 바꿔준다는 정보까지 입수했다. 가슴을 졸이며 다시 벽지 틈새에 복권을 넣어둔 뒤 오늘만을 기다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원장 엄마가 외출해서 돌아오지 않는 토요일 말이다. 원장 엄마가 외출을 하면 복권과 돈을 바꿔서 지민이를 데리고 나와 햄버거 세트를 먹고, 오락실에도 가고, 돌아오는 길에는 비싼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부자처럼 방자하게 즐겨볼 계획이었다. 만 원짜리를 계산대 앞에서 턱턱 내는 내 모습이라니. 성호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근대는 표정으로 달려간 편의점에서 살 때보다 더 당당하게 복권을 내밀었다. 기계에 복권을 넣자 영수증이 인쇄돼 나올 때처럼 지잉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고, 5만원이나 됐네?”


  성호의 얼굴을 알아본 아줌마가 캐시 박스에서 만 원짜리 여러 장을 꺼냈다. 하나, , 서이, 너이…… 다섯 개를 세는 동안 행복이 다섯 배만큼 커지는 기분이었다. 아주 배고픈 강아지가 맛있는 먹이를 앞에 둔 것처럼 성호는 안절부절 했다. 어서, 다섯 배만큼 커진 행복을 받아내고 싶었거든. 아주머니는 조급하게 발을 동동거리는 성호를 보고 웃으며 만 원짜리 5장을 꼼꼼하게 개어 건네주었다. 그리고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던 소시지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아빠랑 하나씩 나눠 먹으라고 주는 거야.”


  고개를 꾸벅 숙이고 편의점을 나왔다. 1등이 자주 나온다는 편의점에는 성호보다 더 성대한 꿈에 부푼 어른들이 여전히 줄을 서 있었다. 나는 이거면 됐어. 성호는 5개의 행복을 작은 주먹 안에 꼭 쥐고 편의점 맞은 편, 노란색 간판의 햄버거 가게를 보며 연신 킥킥거렸다. 입 꼬리가 절로 날아갈 듯 펄럭였다. 이제 운동장에서 남들 공놀이만 구경하고 있는 지민이만 데려오면 된다. 맛있게 먹고, 새로운 문제집으로 한글 공부를 하면 그게 우리의 작은 행복일 테다. 편의점에서부터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별빛의 집근처까지 달려왔다. 빨간 노을 아래에 이글이글 끓고 있는 황량한 운동장의 끄트머리가 볼록하게 드러났다. 마치 생애 첫 일출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성호는 황홀한 눈빛이었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조금만 더 달려가면. 작은 행복을 향해.


  “너 이 시간에 어딜 갔다 오는 거야?”


  행복을 향한 달음질이 멈추었다. 성호가 멈춘 자리에는 급브레이크를 밟은 듯 뜨겁고 긴장 넘치는 열기가 감돌았다.


  “원장 엄마…….”


  깜박 잊은 휴대폰을 가지러 돌아온 원장 엄마였다. 여전한 빨간 하이힐이 위압적으로 서성였다. 그녀는 빛나는 안광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호를 훑었다. 까만 피부에 단출한 어깨, 아마 어제도 입었을 철 지난 회색 티셔츠, 끝내는 5개의 행복을 끌어모은 작은 주먹에까지 다 달았다.


  “손에 쥔 거 뭐야.”


  주먹 바깥으로 튀어 나온 초록색 귀퉁이에 원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불 같은 화를 느꼈다. 그쪽 보육원 애가 돈을 훔쳤으니 제대로 타일러서 보내라는 무시 섞인 늙은 남자 선생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이리 내.”


  원장의 손바닥을 피해 작은 주먹이 등 뒤로 잽싸게 사라졌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소소한 행복을 원장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게 하고 싶었으리라.


  “이리 내라니까!”


  비명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주춤 주춤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것 말고는 성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걸까.

날카로운 그녀는 모든 걸 빼앗아갔다. 빼앗음으로써 이 작은 왕국을 통제하고 다스린다고 느끼겠지. 성호는 폐쇄된 작은 왕국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디를 가도 이보다는 행복하지 않을까. 불확실한 확신이 서자 성호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불호령처럼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이를 악물고 달음질쳤다. 여기는 밀폐된 원장실도 아니었고, 숨 막히는 침대 다섯 개의 방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별빛 보육원창살 바깥이었다.


  “너 이리 안 와?!”


  빨간 하이힐 소리가 머리채를 잡을 듯 따라왔다. 어쩌면 너 같은 건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며 입버릇 섞인 불만을 되뇌고 있겠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성호는 그저 겨우 얻어낸 생애 최고의 행복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주먹을 꽉 쥐고 속도를 올렸다. 빨간 노을과 빨간 하이힐을 등지고 달렸다. 새로운 어둠이라도 괜찮으니까 계속, 그리고 계속.

 

* * * * * * *


  어둠 속을 쉼 없이 달렸다. 이상하게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다. 어디로 달려 가야할지 발이 아는 듯 굴기에 성호는 알아서 움직이는 발을 따라갔다. 이대로 어둠을 달리다보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악마가 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악마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할까. 당신처럼 강한 악마가 되게 해주세요. 강해져서 원장 엄마가 나쁜 짓을 못하게 해주세요. 며칠 전 새벽, 별똥별을 기다리며 읊조린 것보다 더욱 다급하게 소원을 외웠다. 또 무슨 소원을 빌었더라. , 맞다. 지민이 괴롭힌 아이들 혼내주세요. 또 그 다음에는. , ……. 분명히, 분명히 가장 중요한 소원이 있었는데……. 악마를 만나기 전, 그날 밤의 소원을 잊지 않도록 되뇌어 보려는 성호의 눈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빛이 보였다. 처음에는 아주 조그만 점이었다가 그날 밤 보았던 별똥별만 하게, 야구공만 하게, 축구공만 하게 점점 커졌다. 종국에는 성호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다래졌다. 성호는 이번에도 무섭지 않았다. 발이 달려가는 곳은 따뜻하고 커다란 빛 덩어리니까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빛 안으로 온 몸이 쏟아지기 직전, 별똥별에 내던진 소원 하나가 떠올랐다. 부자가 되는 일보다, 원장 엄마를 혼내주는 일보다 먼저 툭 튀어나가 버린 소원이었다. 혼자……. 혼자인 게 싫어요.

  깊고 짧은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한 발자국 몸을 담갔다. 헉헉. 이제야 기나긴 달리기의 피로가 몰려왔다. 무릎에 손바닥을 짚고 허리를 숙인 채 가만히 숨을 골랐다. 바닥에 닿은 시선에 희한한 색의 흙이 포착됐다. 초록색? 노란색? 저기는 주황색도 있어. 색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문득 멈춘 자리에 하얗고 자그마한 발 한 쌍과 갈색 피부의 발 한 쌍이 보였다. 발등에서 무릎, 허리, 가슴 그리고 얼굴로 시선이 올라갔다. 갈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아이와 그 뒤에 수줍게 숨은 아이 하나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렸는지 아이들은 참았던 인사를 재빨리 내던졌다.


  “안녕? 나는 T고 얘는 M이. 너는 오늘부터 K라고 부를게.”

  “, 안녕? 나는 M이.”

  “M이 부끄러워하는 건 절대 네가 싫어서가 아니야. 처음 맞이하는 새로운 친구라서 그래.”

  “…… 친구?”


  어리둥절하고 멀뚱하게 서 있다가 처음 대답을 해준 게 신이 났는지 T와 M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 친구! 오늘부터 너는 우리의 친구이자 가족이야.”


  당황스러운 상황에 다리가 풀렸는지 두 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맨 발바닥에 부드러운 알갱이가 밟혔다. 간지러운 느낌에 내려다보니 여러 가지 색으로 반질거리는 모래가 발밑에서 배꼼이 인사했다.


  “네가 밟고 있는 건 별 부스러기야. 별 밟기 대회 하는 날 여기로 온 아이는 네가 처음이야. 아주 특별한 아이였나 봐, .”


  특별한 아이? 내가 특별한 아이였다고? 조금 전에 빠져나온 어둠을 돌아봤다.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어둠은 어디론가 흡수되는 듯 물렁거리며 축구공만 하게, 야구공만 하게 줄어들다가 마침내 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자 자신이 특별한 아이였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어졌다.


  “내가 특별하다고? ?”

  “여기서는 이유가 필요 없어. 왜냐하면 여기서는 우리 모두가 특별하거든.”


  철학적인 말을 끝낸 T가 환하게 웃었고, 따라 웃던 M이 보들보들해 보이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새로운 집을 소개해 줄게. 그렇게 말하는 듯 느껴져 K는 어영부영 고민하다 손을 맞잡았다.


  “이걸 이렇게 뭉쳐서 던지면 되는 거야.”


  부드러운 손이 별 부스러기로 주먹밥 모양을 만들었다. 너무 열심히 시범을 보이는 탓에 K는 별로 흥미 없다는 솔직한 감상도 뱉지 못했다.


  “오늘은 던지는 날이 아니지만 너는 특별하니까 던지게 해줄게.”


  갈매기 모양으로 눈을 휘며 M이 엉성하게 뭉쳐진 무지갯빛 주먹밥 덩어리를 내밀었다. K가 우물쭈물 거리자 M이 무지갯빛 주먹밥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던지지 않으면 여기서 평생 주먹밥을 만들고 있어야 할 것 같아 K는 더 이상 우물대기를 포기하고 주먹밥을 받아 들었다.


  “야구 선수처럼 던지면 된다고 그랬어. 그치, T?”


  한 발 뒤에서 두 아이를 바라보던 T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떡였다. 어디서 봤는지 모르지만 몸이 기억하는대로 움직였다. 두 팔을 머리 뒤로 넘기고, 왼쪽 다리를 가슴까지 올렸다. 올린 다리를 내리면서 바닥을 짚고, 그 반동을 온몸으로 받아 오른쪽 어깨를 움직여 무지갯빛 주먹밥을 던졌다.


  “우와! 처음인데 너 엄청 잘 던진다!”


  방방 뛰며 박수를 치는 T와 M의 환호성이 무지갯빛 주먹밥을 더욱 멀리, 강하게 밀어주었다.


  “저건 지구에서 별똥별이 될 거야! 소원을 들어주러 달려가고 있어!”


  점점 작아지는 주먹밥 너머로 푸른 노을이 보였다. 창문에 성긴 성에에 번진 빛처럼 둥근 태양의 형체 위로 푸른 먼지들이 춤을 추며 반짝였다.


* * * * * * *


  모나미 볼펜을 입에 문 태평은 올해 3년차 레지던트였다. 병원의 바깥은 밤이 짙어졌다. 짙어진 어둠만큼 생의 시그널도 짙어지면 좋으련만 병원은 옅어진 생의 시그널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으로 연신 바빴다. 몇 시간 전에 119에 실려 온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소독약 냄새나는, 생과 사의 단 두 가지 길에서 밀어내어지고 끌어당겨지는 비정한 곳에서 아이는 한동안 안간힘으로 버텼다. 병원의 이름이 잔뜩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생의 시그널을 붙들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 익숙한 일이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름과 사망 시각, 사망 사유, 보호자가 적힌 차트를 쭉 훑어보던 태평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보호자 별빛의 집황명숙 원장이라. 별빛 좋아하시네, 참나.


  “경찰에 신고했죠?”

  “, 10분 안에 온다고 했어요. 아유, 어쩜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래. 불쌍해 죽겠네, 정말.”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말조심하세요.”


  경력 20년차의 수간호사가 민망한 미소를 띠우며 주름진 손으로 화들짝 입을 가렸다. 태평이 장담컨대 병원에 떠도는 소문의 발원지는 대부분 수간호사가 담당하는 1층 데스크일 테다.


  “그런데 강 선생님 용케 그걸 발견하셨네요.”

  “흔적이 다르니까요.”


  여전히 모나미 볼펜을 입에 문 태평이 뭉개진 발음으로 답하며 무심하게 돌아섰다. 무심한 척하는 태평이 발견한 건 교통사고로 아이의 몸을 할퀸 선명한 흔적 밑에 고여 있는 오래된 폭행으로 축적된 상처였다. 상처를 떠올리자 2주 전부터 끊은 담배가 간절해졌다. 담배 대신 물었던 볼펜을 자근자근 씹었다. 담배 연기 대신 시원한 밤바람이나 흡입해 볼까 싶어 인적이 드문 5층 복도 구석, 아지트에 들어선 태평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가을이 존재를 강하게 알리며 복도 안으로 앞 다투어 쏟아졌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별빛 하나 없는 하늘을 바라봤다.


  “, 별똥별이다!”


  별똥별이다! 하며 입술이 벌어지자 방출당한 볼펜이 떼구르르 바닥을 굴렀다. 허리를 굽혀 볼펜을 줍다가 번뜩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소원 빈다는 걸 깜박했네. 이런.”


  이미 하늘에서 꼬리를 감춘 별똥별의 흔적을 더듬으며 태평이 다시 허리를 굽혔다. 그제야 주운 볼펜을 툭툭 털었다. 볼펜의 끄트머리 군데군데 치아가 만들어놓은 패인 흔적이 만져졌다. 볼펜을 주머니에 넣은 태평은 별똥별이 떨어졌을 거라 짐작되는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했다. 저것도 무엇의 흔적이겠지. 만들어졌다, 사라진 생의 흔적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할퀴어져 조각난 별의 상처라든가. 무어라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나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모나미한텐 좀 미안하네. 담배 대타로 쓰이려고 태어나진 않았을 텐데.”


  주머니의 모나미 볼펜을 위로해주려 주머니를 툭툭 쓰다듬는데 우우웅 하고 진동이 울렸다. 응급실 데스크에 경찰이 도착했다는 호출이었다. 재촉하듯 울리는 진동에 태평은 위로해주려던 볼펜을 꺼내 저도 모르게 입에 다시 물었다. 쓴 웃음이 피식,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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