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추녀(醜女)

by 추녀 posted Feb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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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醜女)

 

유지인


  택시는 낯선 사람과 짧은 만남을 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잠시 동안 내가 아닐 수 있는 곳에서 이뤄지는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택시 승강장에는 세 대의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중 맨 앞에 위치한 검은색 택시로 향했다. 대형 마트 앞 사거리에 내려달라는 말에 기사는 유려하게 차를 몰았다. 바깥 풍경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잠시 차가 신호 때문에 멈춰있는 순간, 작은 초등학교가 눈에 띄었다. 요즘은 학생 수가 얼마나 되려나. 한 반에 스무 명도 없다던데. 이런 잡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기사가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꺼냈다. 아휴.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어. 히터 좀 틀어드릴까? , 네 감사합니다. 기사는 히터를 틀며 슬쩍 나를 훑어보고 남자답게 생겼다며 운동을 하는 사람이냐 물었다. 기사의 말에 나는 방금 본 초등학교를 떠올리며 서울에서 체육 교사 일을 하고 있다 짧게 답했다. 선생 양반이시구만! 근데 지방엔 무슨 일로?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급하게 내려왔어요. 아이고. 걱정이 많겠네. 아닙니다, 그리 크게 다치시진 않으셨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기사는 이어 내게 요즘 선생일 해먹기 힘들 것 같다며 요즘 학생들에 대해 또 추락한 교권에 관해 마구 떠들기 시작했다. 요즘 애들이 학생답지 않건 선생이 맞고 다니던 내 알바가 아니었지만 난 최선을 다해 그와 말을 이어갔다. 잔돈은 됐습니다.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마트 앞에 서있었다. 굳이 그래야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게 했다. 서있는 동안 나는 택시에서 아버지에게 필요한 물품을 사러간다 했던 내 말이 자연스러웠는지 곱씹고 있었다. 누구는 이런 나를 보며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지껄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허언증 환자와 다르다. 그들이 자신의 한 말을 진짜로 믿는 것과 달리 나는 내가 한 말이 거짓말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의 거짓말은 들킬 염려가 없는 곳에서만 이뤄지니까.

일 년 전,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망보험금과 그동안 본인이 모아 두었던 돈을 합쳐 내게 호프집을 차리자고 했었다. 딱히 하고 있던 일이 없었던 나는 엄마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사망보험금을 받자마자 엄마는 아무도 모르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아들인 나조차도 엄마와 한 달 내내 연락이 닿지 않았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보험금을 받기 전부터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달란 전화가 쏟아졌다고 했다. 이렇게 가만히 있다 돈을 다 뺏기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던 엄마는 한참을 고민하다 본인 먼저 마땅한 곳에 자리를 잡은 후 나에게 연락 해야겠다 결심했다고 말했다. 왜 하필 호프집을 선택했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아버지에게 몇 십 년 동안 술안주를 바치다보니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이게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호프집 간판을 달던 날, 엄마는 내 팔을 꽉 부여잡았다. 웃기지도 않아. 노인네들 병들어서 골골 거릴 때 그 병수발 누가 다 들었는데. 나는 부끄러운 짓 한 적 없어. 네 아버지랑 그 집 식구들 종노릇하며 산 거. 그래, 그거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할거야. 어떤 인간들이건 나한테 나쁜 년이라 손가락질 못 해. 호프집은 상가가 딸린 한 빌라에 지어졌다. 이 동네는 사람들에게 빌라 거리라고 불리는 꽤 유명한 동네였다.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 빌라들이 입소문을 타 유명세를 탄 이 거리는 건물들이 일자로 쭉 서있었다. 그 밑 상가에는 대부분 음식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는 여기서 장사를 시작해 나중에 건물주가 되어 그들처럼 월세를 받아먹으며 노후걱정 없이 사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꿈이라고 했다. 작은 방이 많다보니 이곳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에 나는 가게 인테리어를 할 때 앞쪽을 단체 석으로 지정하고 그 뒤쪽으로 조용히 술을 먹을 수 있는 자리, 이른바 혼술 석을 배치해 뒀다. 혼술 석은 손님들에게 꽤 인기가 좋았다. 양옆이 막혀 혼자 술을 먹을 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도 않아도 된다는 점과 창밖에 있는 작은 호수가 조명에 은은하게 비쳐 나름 운치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우희진. 그래, 우희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여자도 이 자리를 꽤 좋아했다.

 

*

 

나는 그녀의 이름이 그녀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급스럽게 생긴 아름다운 여자가 연상되는 이름이 그녀와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못생겼다라는 말이 그녈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었다. 모나게 각진 얼굴형에 위아래가 꽉 막힌 꼬막 눈, 누가 밟고 지나간 듯 푹 꺼진 코, 뒤집어진 입술까지 그녀의 얼굴 어느 곳 하나 여성적인 매력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안면비대칭이 심각해 보였는데 특히 입술은 양쪽이 심하게 맞지 않고 비틀어져있었다. 그녀의 몸매 또한 얼굴만큼 괴이했다. 팔다리는 삐쩍 마르면서도 짧았고 그런 마른 몸에 붙어있는 톡 튀어나온 똥배가 그녈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그녀는 종종 우리 가게 와 술을 먹던 여자였는데 자리는 항상 혼술 석에서도 끝자리에 앉았었다. 그녀를 보며 엄마는 조용히 속삭이곤 했다. 아들, 저 여자 진짜 못생기지 않았니. 벌써 두 시간째 혼자 저러고 있어. 남편도 없나. 딱 봐도 아가씨는 아닌데. 한 사십대 중후반? 그치? 혼자 가게에 와 혼술 석에 앉는 손님들은 대부분 가볍게 맥주 한두 잔을 마시고 일찍 자리를 비우는 편이였다. 일주일에 못해도 두 번은 우리 가게를 찾아와 혼자 몇 시간이고 술을 먹는 그녀는 다른 손님들보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정착하게 된 곳이라 친하게 지낼만한 사람이 없었던 엄마는 자기 또래 같아 보이는 그녀에게 호기심과 친근감을 느꼈다. 엄마는 기회를 엿보다 어느 손님이 없는 날에 그녀에게 서비스 안주를 챙겨주며 말을 걸었다. 그녀 역시 적적했던지 다가오는 엄마를 막지 않았다. 그 둘은 그렇게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나도 그녀를 이모라 부르며 그녀와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호프 집 건너 편 원룸에 혼자 산다고 했다. 변변한 일자리 없이 부업을 하며 살고 있던 그녀의 사정을 듣고 엄마는 나에게 그녀를 호프집에 취직시키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저 얼굴로 홀을 맡기긴 그러니 주방을 맡기자고, 요리 솜씨도 그렇고 손도 꽤 빠르니 딱 이지 않겠냐며 나를 졸라 댔다. 엄마의 손목이 날이 갈수록 안 좋아져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와 같이 일을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콕 집어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외모가 맘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주방일이더라도 술집인데 이왕 같은 돈을 쓸 거라면 외모가 준수한 사람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챘던지 그녀는 일을 마친 내게 다가와 조용히 술을 한 잔 하자며 말을 걸어왔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그녀는 말을 꺼냈다. 남편이 바람 나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자기는 얼마 되지 않는 위자료 몇 푼 받고 이혼 당했다는 것, 그 후 먹고살기 위해 취업을 하려해도 회사에서는 그녀의 외모를 따지며 잘 받아주지 않았고 어렵게 취직한 공장에서는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이 그녀의 사정이었다. 그녀는 우는 내내 나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입술을 피가 날 때 까지 계속해서 뜯었다. 남의 불행을 달래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던 나는 그녀가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그녀는 꽤 괜찮은 인재였다. 식당일을 처음 해 봐 서툴렀던 엄마와 달랐다. 한꺼번에 들어오는 안주들을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쳐내면서도 맛을 낼 줄 알았다. 음식의 맛이 달라져서인지 그 손놀림 덕분에 가게 회전률이 높아져서인지 매출은 그녀가 주방을 맡은 이후로 점점 늘었다. 이에 나는 엄마에게 보너스라도 챙겨 줘야하는 것은 아니냐 했지만 엄마는 일자리가 없었던 그녀를 자신이 구제해준 것이라며 오히려 뭘 받으면 받았지 줄 순 없다고 내 말을 딱 잘랐다.

연말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송년회 예약이 잡혔다. 첫 눈이 내리던 그날은 한 고등학교 동창회가 저녁 여덟시부터 예약을 해왔었다. 호프 집 피크 타임에 단체손님이 잡혀 있어 우리는 꽤 애를 먹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 잠시 여유가 생겨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데 그녀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남자의 취한 목소리가 화장실 쪽에서 들렸다. 우리 호프집 화장실은 남녀 공용화장실이어서 가끔 손님들 사이에서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취한 사람들이 문을 잠그지 않고 볼 일을 봐 그들끼리 종종 못 볼꼴을 보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대충 살펴보니, 남자가 문을 잠그지 않고 볼 일을 볼 때 그녀가 노크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이 사단이 난 듯했다. 그녀는 동창회 손님들 중 한 명인 육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연신 죄송하다하며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남자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굉장히 취해보이는 남자는 비틀 비틀 거리다 움츠리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예전 아버지의 방을 지나갈 때도 나는 그렇게 했다. 아버지가 나를 성가셔 한다는 것은 이 집안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방을 지나갔다. 열린 문틈으로 아버지의 낮지만 열띤 신음소리가 들렸다. 문틈으로 아버지의 다리와 여자의 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가 엄마의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날은 엄마가 고아원 원장을 만나러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날이기도 했으니까. 남자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그녀는 잠시 가만히 있다 남자의 허리를 살며시 껴안았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에 남자는 더 자극을 받은 듯 그녀에게 몸을 바싹 붙이고 노골적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남자의 허리를 안은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거기서 뭐해?! 설거지 쌓였어! 엄마의 성질 난 목소리에 남자는 그녀에게서 손을 후다닥 땐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남자가 떠나고 그녀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 되어있었고 입은 반쯤 벌려져 있었다. 순간, 난 그녀가 그녀의 입으로 내 물건을 물고 있는 상상을 했다. 그녀에게서도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예전 여자 친구들에게서도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여자들의 붉은 얼굴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나의 아버지는 못 본 척을 참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엄마가 지독한 시집살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아버지는 그들과 아무 관련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엄마는 고아출신으로 결혼 자금을 지원해줄 친정이 없었다. 당시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엄마의 시아버지는 출신도 모르는 고아랑 자신의 장남을 결혼을 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내가 남자 아이인걸 안 이후에야 그들은 나와 엄마를 받아들였다. 가정을 꾸린 후에도 아버지는 서울에 건물이 있는 부모를 둔 덕에 별다른 직업을 가지지도 않고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인생이 백팔십도 달라진 사람은 엄마 하나였다. 엄마는 내가 친할아버지처럼 선생님이 되길 바랐다. 자식이라도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 테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자라지 못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대단한 씨가 나는 아니었다. 공부는 둘째 치고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조차 버거웠었다. 그래도 엄마는 이런 나를 자랑스러워하려 노력했다. 엄마의 기대를 져 버리기 어려웠던 나는 작은 일들을 종종 지어냈었다. 듣지도 못한 선생님의 칭찬, 받지도 못한 상장들. 엄마가 나를 위해 희생한 것처럼 나도 엄마를 위해 나를 만들어냈다. 여자 친구의 얼굴이 그녀로 점점 바뀐다. 나는 놀라는 대신 그녀의 머리칼을 더 세게 쥔다. 그녀의 입에서 그 웃긴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

 

 

사실 엄마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참 이상했다. 아니, 처음부터 엄마가 그러진 않았다. 엄마는 이상해져 갔다. 엄마는 항상 필요 이상으로 타인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싫어 내가 뭐라고 하기라도 하면 엄마는 몸에 배어서 그래, 미안해 아들하며 멋쩍은 듯 웃곤 했다. 내가 알던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다. 관계에서 자신이 밑에 있는 것이 익숙한 사람. 엄마에게 그녀는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그녀 앞에만 서면 당당해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일자리를 준 엄마에게 많이 고마워했다. 엄마처럼 그녀도 바닥이 익숙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녀를 위에서 아래로 쭉 훑으며 그녀의 외모에 대해 지적 질을 하는 것이 엄마의 하루 시작이었다. 외모지적 뿐만 아니라 엄마는 주방 일을 할 때도 사소한 것 하나까지 트집을 잡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를 다 가르치려 들었다. 엄마는 그녀가 알아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길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나는 엄마가 그녀를 주방에 들인 것을 후회하고 있다 생각했다. 엄마, 주방에 다른 사람 구할까? 갑자기 왜. 너 아직도 희진 이모 맘에 안 들어? 난 엄마가 그 이모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 내가 왜?! 나의 말에 엄마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여자들의 세계가 이런 것인지. 이 두 사람이 유독 그런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엄마는 그녀의 모든 것을 맘에 들지 않아 하면서도 그녀를 내치진 않았으며 그녀는 그런 엄마 옆에 계속해서 남아 있으려 했다.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보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기 더 어려웠다. 화가 날 법도 한 엄마의 말에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의 못남에 대해 엄마와 말을 주고받았다.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 넌 네 남편 이해해줘야 해. 예쁜 여자랑 살아도 바람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맞아. 언니. 그런 점은 고..고맙지. 나 같은 걸 누가 데려갔겠어. 그날따라 그녀의 비굴한 태도가 더욱 거슬렸다. 남자들 피부 하얀 여자 좋아하는데. 나의 갑작스런 말에 두 사람은 조용해졌다. 잠시 나도 내가 뱉은 말에 놀라고 있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던 그녀는 쑥스러운 듯 조용히 있다 연애하던 시절 자기 남편이 안 그래도 피부가 하얗던 자신을 보고 백설 공주를 애칭으로 부르곤 했었다 말했다. 엄마는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고등학생 때 잠시 만났던 여자 친구는 디즈니 공주 중에 백설 공주를 가장 좋아했었다. 자기도 세상을 그렇게 하얗게 살고 싶다며 내게 종종 떠들곤 했다. 여자 친구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난 백설 공주라는 캐릭터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백설. 백설이 아름다운 피부만큼이나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은 떠들어 댔지만 나는 그 공주가 사실은 위선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난쟁이들을 이용해 먹고 모른 척 결혼은 왕자랑 하는 순진한 척 하는 여자. 누가 백설 공주의 마음씨를 알 수 있었을까. 백설 공주의 진짜 속내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

엄마가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밖에서 받는 전화는 딱 하나. 엄마의 동창인 부동산 아저씨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그 아저씨와의 전화를 은밀하게 받았다. 엄마가 은밀해질수록 내 신경은 예민해졌다. 둘의 전화는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부터 이어졌으니까. 언니, 애인 생겼나? 그녀가 내 다리를 쓰다듬으며 다가왔다. 사실 그녀가 어딘가 달라진 것을, 그 미묘한 차이는 오직 나와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편들어준 그 이후부터 그녀는 내게 자주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내게 떨떠름한 기분을 안겨줬다. 엄마가 자리를 비울 때를 그녀는 놓치지 않고 내게 엉겨 붙었다. 애써 모른 척 그녀의 행동을 외면하며 그녀가 그녀 스스로 그만 두길 바랐지만 그녀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니긴. 척하면 척이지. 언니 남자 생긴 것 같아. 저 관계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그녀의 비뚠 입을 콱 돌려버리는 상상을 순간 했다. 그만 떠들어. 짜증나니까. 내 다리에 올라와 있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의 표정을 정확하게 보진 못했지만 그녀는 아마 멍청하게 입이나 벌리고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내가 그녀에게 어떤 확신을 준 것일까.

[100모텔 102] 그녀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리다 끊기고 바로 뜬 문자였다. 보려고 본 것은 아니었지만 신경이 쓰였다. 핸드폰을 켜 검색 창에 모텔 이름을 쳐보았다. 호프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텔은 필터를 씌었어도 심하게 낡은 것이 보였다.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 네 전화 시끄럽게 계속 울리더라. 엄마의 짜증스런 말에 그녀는 급하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녀의 손톱이 입가로 향하더니 곧 힘없이 뜯겨져 나갔다. 언니, 나 오늘 몸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조금 일찍 퇴근해도 될까. ? 갑자기 그러면 어떻게 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 대신 나는 엄마에게 손님도 없는데 우리도 오랜만에 일찍 들어가자고 말했다. 내 말에 엄마는 낮게 한숨을 쉬곤 아들이 그러자는데 그래야지 하며 간판 불을 끄러갔다.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그러는 동안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깐 몰랐는데 그녀의 입술이 평소보다 붉은 것 같기도 했다. 묶여있던 그녀의 머리칼이 흐트러지며 가슴까지 똑 떨어졌다. 조심히 잘 다녀와. 나의 말에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곧바로 움직였다. 문이 열리고 달려있던 종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녀가 나갔어도 소리는 남아 가게를 맴돌았다.

이튿날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너 속눈썹 연장했니? 속눈썹 연장. 그래서 그렇게 보였나. 그녀의 눈은 뭐랄까. 좀 징그러웠다. 그녀의 속눈썹에 지네와 같은 벌레 다리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듯 했다. 나 이렇게 까지 안 어울리는 사람 처음 봐. 보통 하면 다 예뻐지던데. 너는 어쩜 뭘 해도 안 어울리니. 엄마는 여기서 계속해서 그치지 않고 그녀를 비웃었다. 어머, 어머 너 화장도 했어? 진짜 웃기네. 어디 덜 떨어진 노인네라도 꼬시고 왔니? 엄마는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며 세상에 이만큼 웃긴 일이 또 다시 없을 것처럼 깔깔거렸다. 아무 말도 못하는 그녀의 눈이 빠르게 깜박거렸다. 그때마다 그녀의 눈에 붙어있는 다리들이 부산스레 움직였다. 일을 하는 내내 그녀는 말이 없었다. 평소에도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던 그녀였지만 그날은 눈치가 없는 엄마도 그녀가 조용하다고 느낄 만큼 그녀는 침묵을 유지했다. 아무것도 없이 들어와 살고 있으면 싹싹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 쯧. 할머니가 엄마에게 자주 하던 말버릇이었다. 저렇게 생겼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하는데 쯧. 엄마는 할머니가 했던 끝에 혀를 차는 버릇마저 똑같이 따라했다. 그러곤 자기가 아까 놀린 일 때문에 그녀가 저러는 것 같다며 마치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 귀찮지만 계속 저러면 곤란하니 달래줘야겠다며 덧붙여 말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자 그녀는 피곤한 듯 터벅거리며 생맥주 기계로 가 물 컵에 맥주를 따랐다. 그녀는 우리가게 손님이었을 때 자주 앉던 혼술 석에 가 앉아 맥주를 홀짝 거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는 그녀에게 미안했던지 술을 먹고 있던 그녀에게 다가가 청승맞게 혼자 먹지 말고 앞쪽 넓은 자리에 가 같이 먹자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우리끼리의 조촐한 회식이 시작됐다. 나는 부엌으로가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노가리를 모두 꺼내 구웠다. 그녀는 안주 중 노가리만 먹었었다. 가격이 제일 싼 안주라 그녀가 그것만 집는 것 같아 나는 그녀에게 다른 것도 그냥 막 꺼내먹어도 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호의에도 계속해서 노가리만 까댔다. 호프집에서 나오는 노가리는 약한 불에 구워져 손님상에 오른다, 사람들은 노가리의 대가리를 똑 딴 후 가시를 바르고 손으로 그들의 살을 찢어 고추장에 찍어먹는다. 노가리를 시킨 손님들이 나간 상에는 노가리 대가리가 그득하다. 한가할 때 그녀는 주방에서 나와 테이블에 남아있는 노가리 대가리를 조심스럽게 모은 후 나름 경건한 의식행사 치르듯 짧게 기도한 후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성이네. 뭘 그렇게 까지 하나 싶어서 한 말이었다. 노가리는 이 삼년 된 명태 새끼를 바싹 말린 거야.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달리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얘네들도 바다에서 잘 살고 있는 아가들이었을 텐데. 사람들한테 잡혀서 바싹 말려지고 뼈며 살이며 다 떨어져 나가서 머리만 있는 꼴이 불쌍해서.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야. 내 앞에서 노가리를 안주 삼아 먹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났다. 한쪽에 쌓여있는 대가리 모두가 그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

 

저기 멀리서 빈차가 보였다. 손을 흔들어 차를 멈춰 세우고 택시를 탔다. 기사가 단말기를 켜고 차를 몰았다. 내가 목적지를 말했던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깥 풍경이 보이질 않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나는 또 뭘 지어내야 하지. 처음으로 기사가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사는 말이 없었다. 단말기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간다. 지금 나한테 돈이 얼마나 있더라. 돈이 부족한 것 같아 초조해졌다. 그러다 나는 갑자기 기사가 내 돈을 뜯어먹으려고 날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의심이 빠르게 온 몸 곳곳을 지배했다. 나는 기사 본인조차도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 확신했다. 차를 세우고 싶었다. 지금 서있는 곳이 어디더라도 이 차 안만 아니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다른 차와 부딪혀 사고가 나건 차가 전복이 돼 폭발하건 그건 나중 일이다. 두 손으로 그의 눈을 가린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입도 같이 앙 다물었다.

 

*

 

선잠을 잔 것 같았다. 고개를 꺾고 잤는지 목뒤가 뻐근했다.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엄마는 이미 식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아 노가리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바깥은 온통 깜깜했고 우리 가게에서만 빛이 나오고 있었다. 호프집의 나른한 조명에 다시 졸음이 막 쏟아지던 참이었다. 그때, 그녀가 새는 발음으로 무어라 내뱉기 시작했다. 그녀는 술을 먹으면서 울었는지 화장이 다 번져있었다. 눈 화장과 속눈썹들이 엉켜 그녀의 눈은 벌어지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나 못생겼어. 나도 나 예쁘지 않은 거 알아. 줘도 안 먹는 년이라고 나랑 잘 바엔 호모가 될 거라고 한 새끼도 있었어. 욕 같은 건 할 줄 모른다 했던 그녀가 기억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한때 남편이 백설 공주라고 불렀었다며. 내 말에 그녀의 울먹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곤 씩 웃었다. 에라이 븅신들. 뭐가 진짜인지도 모르면서. 놀란 나를 두고 그녀는 홀 한가운데로 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은 시골 할머니들이 장터에서 추던 춤 같기도 했고 저 밑에 지방의 전통탈춤 같기도 했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간신히 이모, 그만하고 가자라고 소리 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그녀는 아랑곳 않고 아까부터 씹고 있던 노가리를 문 채로 계속해서 춤을 춰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녀의 춤을 멍하니 보는 것뿐이었다. 아까 사라졌다 생각한 취기가 점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는 어쩌면 그녀가 지금 나만을 위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 오로지 나를 위해 그녀는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입에 있던 노가리가 그녀의 입속으로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공연은 막을 내렸다. 커튼이 내려가면 무대 뒤로 사라지는 연기자처럼 그녀는 우리에게 종소리만 남겨 두고 그녀만의 백스테이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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