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1
어제:
25
전체:
305,707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66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4.08.21 21:40

산티아고의 눈물.

조회 수 476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 : 단편소설>

 

1. 성명: 백동흠.

2. 주소: 20 Mandeville Place Albany Auckland Newzealand 0632.

3. 성별:. 나이: 57.(생년월일:1958.12.5)

4. 연락처: 뉴질랜드

,직장: 64-9-443-2233.

휴대폰: 64-27-289-2992.

E-mail: francisb@hanmail.net

5. 현재 직업 :뉴질랜드 택시 운전 (자영업)

300-3000 Taxi (주주)

6. 약력

전북 임실 출생.

전라고 졸. 국민대 공대 졸. 기아자동차 연구소근무(13).

뉴질랜드 교민(19년차). 교민 신문 뉴질랜드 타임즈 칼럼 연재중(13년째).

칼럼명: 택시창에서 바라본 뉴질랜드 풍경. 현재 오클랜드 300-3000 택시 운전.

뉴질랜드 오클랜드 문학회 창립 회원으로 현재 활동중.

7. 응모 단편소설

1). 산티아고의 눈물... (200 X 76).

8. 얼굴 사진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 : 단편소설>

 

 

산티아고의 눈물

 

 

                                                                                                                                                                                                                                                                                                                                                                                                                                                                                                    백동흠( 뉴질랜드)

 

가파른 언덕을 넘으며 간신히 걷던 남자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고지가 바로 눈앞인데 이렇게 무너지다니. 엉금엉금 기었다. 그 때였다.

"-!"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눈을 들어보니 드디어 성당이 보였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 길의 목적지인 산티아노 시가지가 나타난 것이다. 먼발치에서 고딕 양식의 건물이 들어왔다. 지난 한 달간의 고단함과 뿌듯함이 소용돌이 속에 용해되었다. 남자는 가슴이 울컥했다. 눈썹 아래로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올랐다. 땅에 무릎을 짚고 겨우 일어서려는 순간, 세찬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발 앞에 무엇인가 탁 튀겨나가 비스듬히 박힌 돌덩이에 착 엉겨 붙었다. 검붉은 핏덩이였다. 순간 움찔했다. 의사가 담배를 줄이라고 한 조언을 못 지켜 혹시 폐에 이상이라도 온 걸까. 손끝에서 타 들어 가던 담배에 덴 적도 얼마나 많았던가. 지나친 흡연과 감기가 문제였나. 그 돌덩이에서 뭔가 어른거리는 글씨가 흘러내렸다.

"ㅍㅡㅇㅖㅇㅣㄴ!"

아내와 갈라서기 직전, 아이들의 양육권을 놓고 옥신각신하던 날 밤. 큰아들 녀석이 동생에게 토해냈던 말이었다.

"폐ㅡ인!"

가뭇없이 흐려지는 시야를 걷잡을 수 없었다.

 

뉴질랜드 땅에 이민 와서 처음엔 낯선 타국생활의 긴장감에 불편함도 참으며 적응해 나갔다.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으로 견뎌나갔다. 하지만 초반의 느릿한 진전이 성에 차지 않은지 남자는 자꾸 조바심이 났다. 의욕은 앞서 가는데 실제 일들은 더디었다. 어눌한 영어만큼이나 하는 일도 허덕거렸다. 고국의 부모와 친지들에게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곧 성공할 거라는 희망으로 부풀었다가 금 새 풀이 죽었다. 부부가 하루 종일 함께 했던 건강 식품점이나 학교 청소도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둘 다 감정이 얼어붙어 헤어지기로 독하게 마음먹을 무렵도 불안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남자와 아내의 얼굴에 그늘을 담아갈 때였다. 결국 갈라서기로 결정하고 애들을 누가 키울 것인지에 대해 팽팽하게 대립했다. 아내는 지금 사는 대로, 집에서 애들을 키우겠다고 했다. 남자도 같은 의견이었다. 집과 아이들은 학업 중이라 갈라놓을 수 없었다. 양육하는 쪽이 집을 맡고, 나가는 쪽이 집 담보로 융자를 받아 독립하기로 합의했다. 고등학생이 되고서도 조용한 성격의 큰 아들은 더욱 말수가 줄어들었다. 둘째 아들 역시 어찌할 줄 모른 채 방황하였다. 언성을 높여 싸우다 결론은 애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어 결정하기로 했다. 모처럼의 일치였다.

 

한 여름이었다. 남태평양의 작열하는 태양이 녹 푸른 초원을 남자의 황폐해진 가슴처럼 누렇게 태워갔다. 한 밤 중인데도 남자는 고민에 쌓여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목이 타는 갈증이 느껴져 물을 마시러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다가 큰아들 방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았다. 조심스레 냉수 한 컵을 벌컥벌컥 마시고 들어오려는 데 아이들의 다투는 말소리가 들렸다.

 

", 나는 엄마 따라갈래."

"이 바보야! 몇 번을 말해야 알겠냐? 아빠 혼자 내버려 두면 폐인이 된단 말이야!"

"폐인이 뭔데?"

"사람이 망가져 버린다고!"

"그러면 어떡해?"

"결국 죽게 되는 거야. 아빠가 죽어도 괜찮아? "

"무슨 소리야?"

"우리가 아빠 옆에 있어야 해. 엄마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

"그래?"

"그러다 나중에 우리가 잘 되면 합칠 수도 있잖아."

"알았어! 형 말대로 할게."

"잘 생각했어. 아빠가 엄마보다 더 힘들어. 지금은 아빠 편에 있어야 해."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곳에 정착한 후 애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일 때문에도 바빴다. 새로운 환경은 남자의 신경을 온통 생존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가까스로 이불 속에 기어 들어가서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언제 저렇게 철이 들어버렸는지. ‘너희 공부 마치고 결혼해 독립할 때까지는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악착같이 살아가겠다.’ 이를 물었다. 뜨거운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아내와 헤어지고 애들과 어렵게 살아갔다. 남자가 어쩌다 의식이 바닥을 치달을 때도 ‘폐인’이란 단어는 그를 채찍질하는 언어였다. 속 깊은 큰아들을 봐서라도 절대 쓰러져 폐인이 될 수 없었다. 이국에서의 고단한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내자. 아내에게는 실망을 줘서 헤어졌다. 아이들에게까지 실망을 준다면 남자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포 동안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거의 끝나갔다. 순례자 여권에 빼곡하게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머물렀던 여행자 숙소, 알베르게 스탬프가 추억과 기념으로 남았다. 그리고 산티아고 완주증명서가 발급됐다. 한 달간의 여정이 한편의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마지막 의식이 남았다.

 

산티아고 성당 근처 알베르게에 배낭을 풀어놓고 샤워를 마쳤다. 반바지와 반팔 셔츠 차림으로 저녁을 먹으러 카페에 나갔다. 종착지에 도착하여 산티아고 성당 광장에 발을 디딘 몇 시간 전의 감동이 아직도 선명했다. 저녁 식사하러 나선 발걸음이 가벼웠다. 카페 안에서 프랭크 할아버지와 글라라 할머니를 만났다. 반가웠다. 프랭크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에 여유가 배어 있었다.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글라라 할머니 얼굴에서도 여정을 무사히 마친 뿌듯한 감회가 묻어났다. 탄탄해 보이는 남자의 팔뚝과 장딴지를 바라보며 프랭크 할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셨다.

"건장한 그 몸이면 이제 세상에 두려울 게 없겠구먼."

두 사람과 저녁을 먹는 내내 마신 포도주가 마지막 여정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모처럼 지난날의 어려움을 잠재우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온 세상을 삼킬 듯 주홍빛 석양이 현실과 꿈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포도주 잔을 들고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무너져가던 몸과 마음이었다. 근력이 붙어 다부진 몸매에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나니 뭔가 큰 일을 해낸 느낌이 들었다. 이천 리길 한 달 여 산티아고 순례 길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

한 남자가 터벅터벅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산티아고로 가는 스페인 북서부 지역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다는 메세타 고원을 눈앞에 두고 걸었다. 축 늘어진 배낭을 들썩여 보며 배낭 앞에 달린 버클을 당겨 더 깊이 조였다. 챙이 긴 검정색 모자를 벗고 이마를 들어 멀리 펼쳐진 지평선을 올려다봤다. 간간이 깔린 안개구름이 몰려오면서 앞뒤 좌우가 조금도 구별되지 않는 막막한 고원이 이어졌다. 심연의 깊은 고독을 벗 삼아 한 걸음씩 걸었다. 지나온 날들이 발아래 밟혔다.

땀이 찬 채로 걷는 무거운 배낭처럼 그의 지난 생활이 버거웠다. 꺾인 삶의 틈으로 한기가 엄습해 왔다. 자신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나선 산티아고 순례 길에 한 점이 되어 개미처럼 쉬지 않고 걸었다. 월의 봄날. 아직 추위가 남아있어 쌀쌀했다. 군데군데 잔설이 흰곰처럼 남아있는 산등성이 경치가 맑았다. 산등성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한 풍력 발전기의 은빛 삼각 날개가 반짝이며 돌아갔다. 밀밭에서 들려오는 종달새와 뻐꾸기의 고향 소리가 어린 시절 추억을 아지랑이처럼 피어 올렸다. 지난 시절이 그리워졌다.  

 

처음 시작한 일은 교민을 상대로 하는 건강 식품점이었다. 뉴질랜드의 청정 이미지 덕분에 건강식품 사업은 제법 잘 되어갔다. 한때 해외여행 붐을 타고 고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청정지역의 건강식품이 좋다는 소문 때문인지 여기저기에 건강식품점이 우후죽순 격으로 문을 열었다. 가격 경쟁이 시작되었다. 서로가 출혈경쟁이었다. 저가의 칠레 산 물건을 사다가 비싸게 파는 편법 장사까지 성행했다. 다른 업소에선 칠레 산 알파카 제품을 뉴질랜드 알파카 제품으로 둔갑시켜 많은 이익을 챙겼다. 남자는 고민했다. 이렇게 살려고 이민 온 것은 아닌데, 그렇게 남들처럼 살아야 하나 싶었다. 가격 경쟁을 하다 보니 판매에 있어 별별 수단과 방법이 다 나왔다. 외향적인 아내는 달랐다. 우리가 먼저 시작한 사업인데, 늦게 한 남들에게 뒤쳐져서야 되겠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다른 업소처럼 하자고 우겼다. 그러나 남자는 그런 일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사업을 대하는 견해차가 커지면서, 부부는 사사건건 부딪치고 갈등을 겪었다. 날이 갈수록 교민 건강 식품점은 더 늘어만 갔다. 계속 제살 깎아먹기 경쟁이나 편법 영업으로 이어졌다. 급기야는 비리가 폭로되고, 투서를 하기에 이르렀다.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이어져 된서리를 맞고 말았다. 같은 업종 사람들과도 자주 얼굴을 붉히게 되면서 이내 서로 얼굴을 보지 않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민 와서 이게 뭔가 싶었다.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결국 건강 식품점을 정리했다. 다른 나라에 와서 네 차례의 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침 일찍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를 출발하여 걷고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메마른 길을 지나자,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펼쳐졌다. 이베리아 반도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메세타 고원지대는 걷는 이들을 침묵으로 이끄는 광야였다. 간간이 밀 경작지대와 포도밭이 눈에 들어왔다. 허공을 활공하는 들새들이 이따금 푸른 하늘에 그림을 그렸다. 세상 곳곳에서 모여든 나그네들이 걷고 있었다. 저마다의 남은 생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찾아 나선 산티아고 여정. 원래 이 길은 예수 제자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스페인 북서부지방까지 와서 복음을 전파한 길을 기려 만든 순례 길이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집착과 경쟁과 욕심을 하나씩 길 위에 내려놓는다 했다. 남자는 그저 말없이 걸었다. 세상이 말을 걸어왔다.

 

"올라! (안녕!)"

"뷰엔카미노! (즐거운 순례되기를!)"

 

옆 사람이 보였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걷고 있었다. 셋째 날 같은 여행 순례자 숙소에서 처음 만났던 이들이었다. 남자가 이층 침대를 배정받았을 때 나이든 두 사람은 침대 아래 칸에 자리를 잡았었다. 저녁 식사를 같이한 두 사람은 스페인에서 온, 팔십 대 즈음의 프랭크 할아버지와 글라라 할머니였다. 그 뒤로도 종종 만나 걸으며 친근감을 갖게 되었다. 두 사람은 그 지역 유래를 그들의 오랜 경륜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아주 다양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고 할아버지가 귀띔해 주었다. 방랑자, 여행자, 순례자, 큰일을 앞둔 자, 부도난 자, 암 선고 받은 자, 이혼한 자, 노부부 등. 공통점은 최소의 짐을 꾸려서 누구의 도움 없이 온 종일 걷고 마음을 다져가는 여정이었다. 한 달여 걸으며 무너진 인생을 다시 찾는 홀로서기 순례길이었다.

남자는 자신만이 이렇게 힘들고 아픈가 하고 살아왔다. 자신의 고통만이 커 보였고 특별해 보였다. 이 길을 걷다 보니 그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 있었다. 자기주장이 컸던 지난 날이었다. 세상에 살면서 남자보다 더 힘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겨울 녘 황량한 벌판에 쓸쓸한 나무로 같이 서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듯이 힘을 얻었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걸으면서 삶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다지고 또 다졌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자신 내면의 혼란과 무질서를 이 고원을 걸으며 토해냈다. 그런 고독 속에서 힘을 얻고 희망의 에너지를 찾아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길은 한 방향이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문비 조개 모양의 노란 화살표 방향을 따라서 걸었다. 오전 무렵에는 긴 그림자가 변함없이 앞장섰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짧은 그림자가 줄곧 뒤를 따랐다. 묵묵히 걸으면서 그림자놀이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림자 드리운 자신을 찾아 나선 길에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여교장 로사의 그림자가 가끔씩 어른거렸다. 고마운 사람. 하루 걷기가 끝날 쯤 되면 지역 숙소인 알베르게를 찾았다. 겨우 눈만 붙이는 허름한 집단 숙소였다. 잠자리에 들 때면 다닥다닥 붙은 이층 나무 침대 방은 특유의 고약한 냄새와 코고는 소리로 진동했다. 처음 며칠은 적응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코도 귀도 무디어 갔다. 묵묵히 걷는 것에 몸과 마음을 쏟다보니 다소 불편한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비켜갔다.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순리가 몸에 체득되어 갔다. 하룻밤 몸을 붙이고 쉬면서 다음날을 준비해 나갔다. 먹을 것을 최소화하고, 입는 것도 간단히 했다. 쉬는 것도 단순했다. 필요한 모든 것이 담긴 배낭 짐이라고 해야 달랑 10킬로그램 정도였다.

 

갈라시아 지방에 들어가기 전 파르돈(Pardon,용서) 돌무더기 고개를 오르자 철탑십자가가 반겼다. 순례자들이 자신의 지난날 잘못을 되돌아보며 소원을 빈 흔적들이 역력히 남아있었다. 온갖 편지들이 덕지덕지 겹쳐져 붙어 있었고, 철탑에 손을 갖다 댄 남자의 눈에서 회한의 빛이 어렸다. 가정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용서를 청하며 작은 바램을 염원하는 그의 가슴에 새로운 볕이 들었다. 아내와 십칠 년을 함께 했던 아늑한 침실과 따뜻했던 부엌이 그리웠다. 온 식구 함께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먹고 싶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느라 서둘러 가다 보니 아차 싶었다. 그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농가 나무 숲길쯤 들어섰을 때 시꺼먼 개 한 마리가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기겁을 하며 등산용 지팡이로 개를 막았다. 지팡이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다. 실랑이를 한참 벌이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손이 땅을 짚는 순간, 왼쪽 장딴지 옆으로 깊숙이 찢어지는 동통이 느껴졌다. 통증이 그의 다리를 후벼 팠다. 흙탕물에 젖은 바지를 걷어보니 빨간 이빨 자국이 선연했다. 줄곧 비를 맞으며 잘못 들어선 길을 돌아 나왔다. 지나가던 주민이 시골 동네 작은 진료소까지 안내를 해주어 힘을 얻었다. 광견병 해독 주사를 맞고, 치료를 마친 후에야 불안감이 희미해졌다. 비에 젖은 생쥐 꼴로 뒤처진 길을 절룩거리며 간신히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잘 곳이 동이나 없었다. 개에 물린 장딴지를 보여주며 꼭 쉬고 가야 한다고 사정을 하자, 알베르게 주인이 숙소 모퉁이 바닥에 눈 붙일 자리를 내 주었다. 임시 매트리스를 깔고 탈진 상태의 몸을 씻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옷만 갈아입고 속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남자는 건강 식품점을 그만두고 두 번째의 직업인 학교 청소 일을 하였다. 중학교 교실 40개짜리 청소 권을 계약해 부부가 함께 힘을 쏟았다. 사람을 상대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강 식품점과 일 성격이 확연히 달랐다. 그저 묵묵히 일하는 청소라 남자는 쉽게 적응했다. 땀 흘리고 정당한 대가를 얻게 되어 머리가 복잡하지 않았다. 속고 속이는 일없이 조금 덜 벌고 적게 먹어도 우선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다 보면 가끔 씩 속이 구토하듯 울렁거렸다. 이민 와서 이런 일이나 하고 있나 싶었다. 고국에서 여행을 온 친구라도 만나면, 예전 건강 식품점 일할 때처럼 쉽게 이야기를 못했다. 자신의 현 주소를 밝히기가 꺼려졌다. 아내는 일하며 쌓이는 스트레스로 남자와 의견충돌을 하고 우울해지는 일이 잦아졌다. 남자는 진공청소기를 메고 온 교실 카펫과 바닥을 청소해갔다. 아내는 걸레로 책상을 닦고 카페트가 아닌 바닥을 걸레질 했다. 세면장과 화장실 청소도 했다. 각자 하는 일 외에 서로 협력해서 하는 일도 있었다.

한번은 남자가 계단에서 진공청소기를 돌리며 일하다가 전선줄에 걸려 넘어졌다. 땀을 많이 흘리고 일하다 나둥그러지고 보니 난감했다. 등에 멘 청소기 덮개가 분리되어 청소 통에 쌓인 쓰레기가 쏟아졌다. 먼지가 날리고 땀투성이에 엉망이었다. 도움이 필요해 아내를 불렀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 봐도 오지 않았다.

"뭐하고 있어! 나와 보라니까?"

아내가 일하는 화장실을 향하여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벌컥 화가 났다. 남자는 화장실로 들어서다 말고 움칫 발걸음이 얼어버렸다.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의 상황은 그와 비교할 수 조차 없었다. 대변과 이물질이 엉켜 꽉 막혔는지 변기는 똥물로 넘치고 있었다. 극성스러운 아이들이 변기에 무얼 빠뜨려 막힌 모양이었다. 일하다 미끄러져 등과 머리에 오물 찌꺼기가 묻은 채였다. 변기를 붙들고 계속 진공 고무 막대로 펌프질하며 뚫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툭 건드리면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입안에 삼킨 채 굳게 다문 입술이었다. 한없는 서글픔이 오물처럼 요동쳐 밀려왔다.

그 일 후로 아내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둘 사이에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나 서로 갈등하며 청소하는 내내 삐걱거리며 보냈다. 아내는 종종 남편을 무능력하고 좀스럽고 실망스러운 듯 쳐다보았다. 그런 시선을 받을 때마다 남자는 자신이 왜소해지는 걸 느끼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밑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분풀이를 아내에게 쏟아냈다. 퍼부은 화살이 다시 남자에게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돌아왔다. 이혼서류가 남자 앞에 놓여 있었다. 겉으론 당당한 체하면서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 일줄 몰랐다. 손이 거칠게 떨렸다. 드라마에서나 보아오던 이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가족 친지 곁을 떠나 오로지 아이들과 아내만을 생각하고,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 이민 온 일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지금껏 아내를 의지한다는 생각을 조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내 없이 이민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생각하니 온 세상이 막막하게만 보였다. 자신이 가족을 이끌어왔다 생각했던 자신감이 어디로 다 사라진 걸까. 아내를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붙잡는다고 돌아설 사람이 아니었다. 이민 와서 칠 년을 함께한 우여곡절이었다. 결혼한 지 십칠 년 째였다.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하던 고등학생 큰 아들과 세상모르는 중학생 둘째 아들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결국 남자는 이혼 후 혼자 일을 하러 나갔다. 약속과 신용을 중시 여기는 나라에서 학교 청소도 일종의 계약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돈도 벌어야 하지만 신용도 쌓아야 되는 것을 절실히 느낀 터라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갑자기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벌려놓은 일이라 학교 청소를 계속 이어 갔다. 아내의 빈자리에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 아르바이트생의 일솜씨는 염려대로 서툴렀다. 남자가 일하는 속도에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익숙해지면 나아지려니 기다렸지만 몇 주가 지나도 별 진전이 없었다. 손놀림이 익숙한 부부가 해야 할 청소 일을 억지 맞춤으로 계속 할 수 없었다. 아내와 일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던 일이었다. 화장실 청소가 잘못 됐다는 불만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다. 급기야는 교사 책상 물건이 분실된 일까지 터져 학교측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은 학교 청소 일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이 헛헛했다. 녹색의 자연 선진국이라는 뉴질랜드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보였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가정 상황과 내면의 황폐함을 계속 직면할 수만은 없었다. 쉬고도 싶고 멀리 혼자 터덜터덜 걷고도 싶었다. 이 일을 접으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데…… . 어디서부터 인생이 이렇게 꼬이게 된 걸까. 절대로 후회하지 않겠노라 인천공항을 떠나며 다짐했었는데 이민 온 일이 후회스럽기 조차 했다. 인생도 흐트러지면 치우고 닦고 다시 손 봐 주어야 할 때. 생각이 여기에 머물자 남자의 입가에 씁쓸한 고뇌가 흘렀다. 정상적인 가정생활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었다. 처음 희망을 안고 이 땅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누가 희망은 믿는 자의 행복이라 했던가.

 

마지막 청소를 끝내던 날, 인사도 할 겸 교장실에 들렀다. 교장 책상 뒤에 낯익은 흑백 사진에 시선이 쏠렸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교장이 옆으로 다가와 함께 바라봤다. 교장의 젊은 시절 산행 사진 이었다. 학교 청소 상황을 알고 있던 터라 교장도 말이 없었다. 부부가 힘든 고비마다 격려를 해주었던 여 교장 로사였다. 남자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며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아내와 헤어진 이야기를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힘들겠다며 이럴 때 일수록 자신을 챙기라고 염려해 주었다. 로사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잠시 남자 눈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입안에 쓴 커피를 꿀꺽 삼켰다. 젖어 든 목을 추스르고 나자 로사가 예전에 남자에게 했던 말을 꺼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한 달만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보라 간곡히 말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으며 자신과 자연을 대면하는 시간, 한 달을 보내고 오면 세상일이 달리 보일 거라고 말했다. 어려운 인생길에 때로는 결단도 필요하다고 했다. 비용과 시간이 여의치 않겠지만 위험에 처한 인생에 단 한번은 과감히 자신을 위해 투자해 볼 가치가 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하듯 권유하였다.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인생 수행이라고 강조하였다. 한 달간 묵묵히 걷고 나면 푸석한 몸도 튼튼하게 체질이 바뀔 것이고, 나약해진 마음도 굳건해질 거라고 했다. 다녀오면 자신이 아는 곳에 일거리도 알아봐 주겠다고 약속했다. 중견기업 택시사업자를 잘 아는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운전하는 것이 적성이 맞으면 소개시켜주겠다고 몸과 마음을 먼저 다져 오라고 제안하였다.

 

교장 로사의 진정 어린 위로와 격려가 차가운 가슴을 녹였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울려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 격려와 제안이 온 몸을 데워주었다. 젊은 날, 자신이 방황했을 때 누군가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그곳을 다녀오고서 생의 의미를 찾았다 했다. 평생 교육에 몸담게 된 인생의 기회였으며 자신을 살리는 시간이었음을 강조했다. 책상 뒤 벽에 걸린 사진이 그 때 찍은 것으로 힘들 때 바라보면 무언의 힘을 준다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진심이란 사람을 통하게 해주는 명약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의 거친 두 손을 꼭 잡으며 두 눈에 가득 따듯한 힘을 실어 주었다. 아울러 순례길 떠나기 전에 기초 체력이 되어야 하고 등산 걷기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도 말해 주었다. 다행이 남자는 매주 토요일 오전 네 시간 정도씩 땀 흘리며 등산을 해왔던 터라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말 그대로 비용과 시간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스페인까지 왕복 비행기 표 값과 한 달간 걷고 머무를 비용 그리고 한 달간의 공백…… . 망설여지면서도 딱히 그만 둘 일이 아니어서 곰곰이 되씹어 보게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한달 여정은 절제와 단순한 생활을 하는 터라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이면 된다는 말에 끌려들어갔다. 총 거리 팔백 킬로미터를 하루에 약 이삼십 킬로미터씩 걷는데 킬로미터당 일 달러 정도면 되니 천 달러면 된다? 비행기표 값도 가장 저렴하게 갈 수 있는 저가 항공을 찾아보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순례 길을 하루 종일, 한 달 간 걷는다? 한 달 뒤면 자신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바뀐다? 그리고 적성에도 맞고 혼자 할 수 택시 운전을 한다? 고단한 인생경기에 위기가 왔다. 작전 타임을 가질 때이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자신을 위해 떼어둔 시간, 딱 한번이라면 지금이 아닐까? 결단이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두 아들과 함께 교민이 운영하는 삼겹살 음식점으로 갔다. 두 아들이 삼겹살 요리를 무척 좋아해서 잘 먹이고 싶었다. 단골로 찾던 이곳도, 아내와 헤어진 후 한동안 오지 않았었는데, 술 한 잔도 간절했다. 두 아들에게도 산티아고 얘기를 꺼내고 싶었다. 배가 어느 정도 불러 올 때쯤, 로사의 조언을 애들에게 털어 놓았다. 큰 아들이 내심 반기듯이 적극 호응을 하였다.

"아빠, 그 동안 고생한 것 다 잊고 갔다 오세요. 저희 잘 할 수 있어요."

둘째도 덩달아 형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빠, 잘 다녀와. 힘내!"

 

마음은 몹시 허기지고 몸은 퍽 고단한 날이었다. 남자의 몸과 마음이 모두 땅에 다 내려앉은 채 겨우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며칠 전에 자주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미리 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프랭크 할아버지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은퇴하신 분이었다. 중후한 풍채에서 인품이 풍겨 나오는 듯 했다. 글라라 할머니는 체코 프라하에서 온 보헤미안 후예였다. 보기에도 온후한 연륜이 느껴지는 큰 나무였다.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마친 뒤 야외 탁자에 앉아 곱게 물들어가는 석양 노을을 바라다봤다.

오월 십오일, 마침 그 날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결혼기념일이라고 했다. 결혼 오십 주년을 맞아 산티아고 순례 길을 세 번째 들어섰던 것이다. 남자가 두 분께 포도주 잔을 건네면서 함께 건배를 외쳤다. 건배를 하는 남자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지나갔다. 속이 깊은 글라라 할머니께서 이를 눈치 채고, 남자에게 와인 잔을 다시 한 번 더 부딪쳤다. 기쁜 날 좋은 술에 무슨 일이냐 물었다. 얼굴에 그늘이 있어 보인다며 남자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여러 날을 걸으며 몸과 함께 마음도 약해졌던 터라 남자의 시선이 발 아래로 떨어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글라라 할머니는 남자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이 결혼 십팔 주년인데 이혼한 상태라며 말끝을 내렸다. 두 분은 조용히 남자의 빈 잔에 포도주를 가득 따라 주었다.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며 자신들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삼십 년 전 자신들이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간 걸으면서 극복한 이야기였다. 그 뒤 부부는 십 년마다 산티아고 길을 다시 걸어왔다는 것이다. 프랭크 할아버지의 은근한 눈빛과 글라라 할머니의 다소곳한 손길이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노부부 모습이었다. 노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만날 때마다 가끔씩 스페인 역사 이야기로 인생을 비유해서 해주는 말이 인상 깊었다. 글라라 할머니가 남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는지 남자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한마디 했다. ‘헤어진 아내와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 말이 남자 마음속에 실낱 같은 희망으로 다가 왔다.

 

아침이 되자 둔탁한 기침소리가 가슴이 아프게 울렸다. 몸살 기운이 올라왔다. 목적지까지 갈 길은 아직 까마득했다. 몸에 이상신호가 느껴졌다. 몸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목을 얇은 수건으로 감쌌다. 감기약도 미리 먹어두었다. 삔 곳에 물파스도 바르고 밴드도 붙였다. 힘들 땐 쉬어갔다. 욕심을 버리니 몸의 피로가 한결 가벼워졌다. 드넓은 포도밭을 뒤로 거느린 이레체 수도원을 지나가는 길이었다. 수도원 밖의 순례자들을 위한 자선의 손길에 발길을 멈췄다. 건물 벽면에 설치한 아치형 판에 수도꼭지 두 개가 마련되어 있었다. 오른쪽 것을 트니 시원한 물이 나왔다. 병에 받아 마시고 또 한 병 가득 채웠다. 왼쪽 꼭지에서는 붉은 포도주가 나왔다. 한 컵을 받아 마셨다. 인생길 앞에 놓인 술과 물이었다. 오른쪽 물은 콸콸 나왔다. 물이 목을 축이며 시원스레 넘어갔다. 온 몸이 상쾌해졌다. 왼쪽 포도주는 찔찔 나왔다. 그래도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넘기니 몸이 뜨거워졌다. 왼쪽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포도주는 짙지만 양이 적었다. 그 속성이 진국이라 친구들이 말하는 남자를 닮은 듯했다. 남에게는 진국이었지만 가족에게는 실속이 적은 남자에게 아내는 늘 불만이었다. 오른쪽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묽지만 양이 많았다. 마치 누구를 보는 듯했다. 남자의 아내는 통이 커서 남에게 퍼주기를 좋아했다. 오지랖이 넓어 동네방네 크고 작은 모든 일에 관여 하려 드는 아내였다. 순례하는 모든 나그네들에게 두 수도꼭지가 각각의 역할을 하며 나란히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높고 푸른 하늘을 담은 녹청색 포도밭을 휘둘러봤다. 배낭을 내려놓고 포도나무 그늘 아래 앉아 휴식을 취했다. 숨죽인 대지 위에 자신의 온몸을 드러낸 채 서있는 포도나무들이 얽히고 꼬여 있었다. 진한 향취의 붉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나무는 서로의 몸을 꼬아 몰입하고 있었다. 서로의 줄기가 꼬이며 굵어가는 포도 덩굴에서 갈등과 존속과 생명의 합창이 울려 퍼져 나왔다. 남자는 얽힌 포도나무를 가만히 만져 보았다. 불현듯 생각이 스쳤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가정도 많은 갈등이 얽힐수록 더 곡진한 인생 맛이 배어가는 것. 삽상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포도나무 사이로 내려 비추는 석양의 기운이 어깨 위를 감쌌다. 한참을 멍하니 포도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줄곧 걷자 세상 끝이라는 ‘피네스테레! 0km’ 안내 표지 석이 눈에 들어왔다. 묵묵히 방향 안내에 따라 걸었다. 스페인 이베리아반도 끝 단, 피네스테레 바닷가 절벽이다. 절벽 아래는 망망대해, 대서양이다. 등대 아래 바위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순례길 마지막 의식을 치렀다. 남자는 순례 여정 내내 입었던 하얀색 티셔츠를 벗었다. 땀에 절이고 얼룩이 배인 분신과도 같은 옷을 태웠다. 나그네 순례 길을 마치며 남자의 작은 소망을 적은 편지가 훨훨 타 들어 갔다. 미래를 거는 희망과 함께 희나리는 공중에서 뱅그르르 날아올랐다. 헤어진 아내에게 이 길을 홀로서라도 걸을 기회를 주십사 하는 바램도 함께 실어 보냈다. 남자를 지켜준 큰아들의 ‘폐인’이란 단어도 ㅍㅡㅇㅖㅇㅣㄴ 한 운모씩 희나리와 함께 사라져갔다. 희나리는 하늘을 향해 오르다 절벽 아래로 날아 흘렀다. 세상의 어떤 영광이나 성공도 가정의 불화를 정당화시켜주지 못했다. 한 가정의 수준은 아버지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었다. 회복을 염원하는 노래가 가슴을 흥건히 적셨다. 땅을 디딘 남자의 발끝에 강한 삶의 의지가 묵직하게 실렸다. 이제 새로 시작이다. 한 달 여 걸으며 마주한 땅과 하늘이 주는 기운이 가슴 속에서 사물거렸다. ‘더 이상 당신은 외롭고 약한 남자가 아니다. 홀로도 묵묵히 걷는 가장이다.’ 스러지는 해는 수평선 너머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대서양의 붉은 저녁노을이 남자의 두 눈가에 물들며 이슬처럼 맺혔다.

-- (200 x 76 )

 

 

 

 

  • profile
    korean 2014.10.14 20:40
    저 멀리 뉴질랜드에서 응모하셨군요.
    분위기로 보아 열의가 대단하십니다.
    좋은 결과가 있길 기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16 file korean 2014.07.16 3327
724 네 멋대로 해라 1 귀축시대 2014.07.21 2372
723 탈출 1 Hyeoung 2014.08.01 72
722 제주도 4.•3 사건 1 만득이 2014.08.16 262
» 산티아고의 눈물. 1 지금여기 2014.08.21 476
720 까치야 날아라 아륜 2014.08.22 261
719 구룡마을에도 해는 떠오릅니다 외 1편 종삐 2014.08.24 474
718 지난 여름은 악몽이었다 file 카마수트라 2014.08.24 44
717 단편소설 공모 - 그녀를 여행하다 (1편) predio 2014.08.25 109
716 이어폰 1 loscatal 2014.08.25 50
715 소설 공모 - 난적지도(亂賊之道) 1 일념통암 2014.08.27 294
714 그래서 그들이 좋다. 나야모어 2014.09.01 308
713 유효기간 신세계1손무 2014.09.01 278
712 미로 nogod27 2014.09.05 32
711 오빠 강가람 2014.09.07 36
710 산성 강물 2014.09.09 25
709 A이야기 뎌니 2014.09.10 34
708 네[내ː] 연정 이택준 2014.09.10 25
707 완전한 공간 다름이 2014.09.10 35
706 봄의 냄새 김은서 2014.09.10 19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