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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9 01:52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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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山城) 

 

   “뭐야? 자꾸 얼쩡거리지 말고 저리 비키슈.”

   이건 뭐, 자기가 빚쟁이라도 되는 줄 아나. 하수인 주제에 아까부터 반말을 섞어 툭툭 던지는 게 여간 꼴 보기 싫은 게 아니었다. 고물이라고 해도 10년을 동고동락한 녀석이다. 3년을 함께 산 마누라보다 7년을 더 지냈다. 그런데 이제 빨간 딱지 한 장에 주인이 바뀔 노릇이니 분통이 안 터진다면 거짓말이겠지.

   이걸로 저당 잡으면 못 받아도 200만 원은 족히 되겠다, 방 보증금 뺀 2,000을 합하면 자금은 두둑하겠다, 어디 도박이 진짜 운칠기삼이더냐? 있는 놈 먹고 없는 놈 잃는 게 도박판 아니더냐. 오냐, 이제 갈 데까지 갔다. 회사는 진작 잘렸고, 마누라는 이혼 도장까지 찍었다. 돌볼 새끼도 없으니 거추장스러울 것도 없다. 난 내가 잃은 걸 모조리 다시 거두어들이겠다. 기필코 권토중래하리라! 저걸 타고 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지……. 이젠 뭘 타고 돌아가야 하나. 돌아갈 곳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 돌아갈 마음이 있기라도 한 걸까. 무심코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만 원짜리 두 장 사이로 동전 몇 개가 손가락 끝에서 짤랑거릴 뿐이었다.

   “형씨, 혹시 개새끼한테 돈 꾸었수?”

   내 옆에 앉아 바카라를 하던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보아하니 그쪽도 개털이었다.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었지만, 평생을 경마장과 도박장에서 굴러 왔음을 구김살 얹힌 이마가 말해주고 있었다.

   “개새끼라뇨?”

   “거 왜 있잖아. 똥개 새끼마냥 꼬리 흔들고 다니다가 돈 잃은 사람한테 꿔 주는 사채업자 말이요. 조봉필이!”

   그가 ‘조봉필이!’라고 말할 때, 약간 화가 난 사람처럼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그러나 그의 불투명한 눈동자에는 두려움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아, 아아! 네, 그 사람한테 빌렸지요. 그런데 왜요?”

   “그럼 저 차가 그 치한테 넘어간 게요?”

    “아뇨, 저 차는 황 씨 전당포로 넘어갔죠. 근데 왜 자꾸 물어대요. 안 그래도 복장 터질 노릇이구만.”

   그는 내 쪽으로 슬쩍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귓속말을 하는 시늉을 했다.

   “얼른 줄행랑 놓는 게 좋을 게요. 개새끼한테 물리기 전에.”

   도망치라고 말하던 그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예? 왜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빚지고, 빚 떼먹고, 그러다가 돈 따면 갚고, 잃으면 또 빌리는 게 이 바닥 물정 아닌가. 그런데 도망을 치라니. 그러면 다시는 내 본전을 찾을 기회를 잃는 꼴이 된다. 카지노 출입금지 서약에 사인하고 차비를 받아가는 것과 진배없는 짓이다.

   “자네는 비싸니까…….”

   이 노인이 무슨 벌써 치매가 들었나. 비싸다니! 다 잃고 빈털터리인 내가 비싸다고? 혹시 일일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내 출생에도 비밀이 있나? 내가 어느 재벌집의 숨겨둔 아들인가? 저 영감은 그 사실을 알고서 내게 접근을 한 건가? 노인의 말이 워낙 엉뚱했기에 나 역시 허황된 상상에 잠시 빠졌었다. 난 그의 말의 진의가 궁금했다.

   “비싸다니, 내가 왜 비싸요?”

   “혈액형이 뭔가?”

   “O형인데요.”

   “개새끼가 횡재했군.”

   그는 계속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놨다. 그러더니 와이셔츠 아래쪽의 단추를 풀어 배꼽 아래를 드러냈다. 맹장수술이라도 받았는지 지렁이처럼 거무끄름하고 길쭉한 흉터가 앙상한 뱃가죽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새끼한테 뺏긴 거야.”

   노인은 빚을 갚지 못해 몸을 팔았다고 했다. 물론 신체포기각서를 쓴 건 아니었다. 그따위 불법적인 각서를 썼다한들 애초에 법적인 효력이 있을 리 없었다. 조봉필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면 그게 곧 신장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내게 도망치라고 일러주었다.

   “저는 천만 원을 빌렸는데요.”

   나는 혼잣말을 하듯 묻지도 않은 말에 순순히 답하고 있었다.

   “천만 원 빌려주고, 삼천만 원짜리 싱싱한 장기라니……. 개새끼가 제대로 건졌군. 얼른 도망 쳐.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말게. 여기 목 매 죽은 귀신 중에 신장 두 짝이 온전히 붙어 있는 사람 드물 거야.”

   노인은 마지막으로 내게 호의를 베풀고 사라졌다. 늦가을이었으므로 말라비틀어진 가로수 아래로 낙엽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그 낙엽을 따라 무료급식을 베푸는 교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는 그가 안 보일 때까지 멍하게 서 있었다. 내 차를 넘겨받던 녀석은 기어이 시동을 걸어대고,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히죽거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직 오백만 원을 덜 입금한 위자료 때문에 전처의 닦달이 심하던 차였다. 또 그 여자겠지 예상했지만,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 네, 그런데요…… 네? …… 뭐요?”

   전화를 걸어온 자는 자신이 조봉필임을 밝혔다. 그는 이 바닥 일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내가 차를 넘긴 것도, 밑천이 다 떨어진 것도, 그에게 빌린 돈을 몽땅 다 잃은 것도 알고 있었다. 얼마나 빠삭했던지 내 주머니 속의 동전 개수까지 맞히지나 않을까 싶었다. 그는 지금 한번 만나자고 말했다.

   그 노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래서 조봉필의 장사수완을 듣지 못했더라면 난 조봉필을 순순히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배꼽 밑에는 분명 할복 자국이 있지 않았던가. 그가 꿇려진 패장처럼 스스로 배를 갈랐던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모든 게 그의 탓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남의 손을 빌려 제 배를 횡으로 갈라놓은 셈이다.

   하지만 신장 따위가 뭐가 대수라고. 하나를 잃어도 하나가 남는 게 신장 아닌가. 그러니 구석으로 몰린 사람들이 의지할 데라곤 신장이 제격이지. 가진 걸 다 정리하고, 정리한 걸 다 잃고, 얻은 거라곤 빚밖에 없는 처지에 신장을 걱정해야 하나. 이 몰골로 몸 아까운 줄 안다면 그게 오히려 우스운 일 아닐까. 어차피 난 내 인생을 이미 망쳤는걸. 그것도 내 손으로. 저 노인처럼…….

   그러나 나는 이미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멀리서 낯익은 얼굴 여럿이 몰려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 안면 트고 사는 이들은 옆에 앉아 같이 도박을 하는 노름꾼들, 패를 나눠주는 딜러 그리고 돈 꿔준 빚쟁이들밖에 없다. 카지노에 처박혀 있을 딜러나 노름꾼이 날 찾을 리는 없다. 도망쳐야 했다.

   급하게 택시를 찾았지만, 오늘따라 그 흔해빠진 빈 차도 없다.

   ‘신장이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냐. 빚 진 게 천만 원이니까 벌써 이 탱탱한 놈을 잘라주기엔 이르단 말씀이지. 어차피 잘려나갈 팔자라면 삼천은 땡기고 건네줘야 하지 않겠어?’

   이런 생각이 들자 내 콩팥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콩팥을 지켜줄 택시는 몽땅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어이, 어디 가?”

   조봉필이다! 돈을 꿀 땐 귀여운 강아지처럼 느껴지던 그였지만, 이제는 미친개처럼 강파른 눈깔 두 알을 눈두덩에 꽂아두고 있었다.

   “이런 씨팔!”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뿜어져 나왔지만, 그의 입가엔 여유로운 웃음이 묻어있음이 멀리서도 보였다.

나는 무작정 뛰어야 했다. 집보다 더 자주 들락거린 정선이었지만, 막상 카지노 주변 외에는 아는 길이 없었다. 뒤에서는 조봉필 패거리가 날 쫓았다. 나는 얼떨결에 산으로 난 오솔길로 방향을 잡고 뒤도 안 보고 내달렸다.

   그렇게 한 20분을 뛰었을까. 이제는 신장 두 쪽을 다 떼어간다 해도 더는 달리지 못할 지경이 됐다. 조봉필 일당은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간 듯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해서 한참을 더 달렸다. 그 자에게 돈 빌릴 때만 해도 잃을 거 없다고 호기부리던 걸 생각하니 내 꼴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늘한 가을 날씨임에도 한여름 비지땀이 온 몸을 적셔 놓았다. 산중이라 해는 벌써 산등성 뒤로 넘어갔고, 기온은 순식간에 떨어졌다. 헉헉대는 거친 숨을 따라 입김이 유령처럼 너울거리다 사라졌다.

   숨을 고를 겸 천천히 걸으며 여길 어찌 빠져나갈까를 궁리했다. 하지만 답이 안 나왔다. 첩첩산중 강원도, 그 강원도에서도 벌어먹을 것 없던 정선이었다. 광산이 폐쇄되면서 사람들은 정선을 버렸고, 정선도 사람을 버렸다. 남은 건 산과 계절뿐이었고, 그 속에서 죽고 살기를 거듭하는 초목이 전부였다. 오죽하면 내국인의 출입을 허용하는 카지노를 지었을까. 그러니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출구는 그 카지노를 통하지 않고서는 있을 리 만무했다.

   조봉필로부터 도망치는 일은 둘째치더라도, 이 산중에서 어떻게 밤을 지새울까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군대라도 제대로 된 데를 나오면 생존전략이라도 배웠겠지만, 그마저도 방위를 했는지라 산악생존능력은 애당초 없다.

   해가 졌지만 산마루로부터 미끄러져 나온 햇살이 단풍나무에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얕은 계곡을 따라 무작정 걷고 있었기에 세상이 온통 누렇게 보였다. 광원이 꺼진 후에도 빛의 잔상이 남듯이 계곡에는 누리끼리한 잔광이 남아 계곡물에 적셔진 채 반사되고 있었다. 이따금 싸늘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놓으면 때가 된 단풍은 낙엽이 되어 계곡물 위로 떨어졌다. 그것들은 갈 곳을 정해두지도 않은 채 그저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곳에 멈춰 정착을 하고 퇴비가 되어 다음 봄을 기약할 수 있겠지.

   수중에 2만 원 남짓, 그마저도 산중에서는 폐지에 불과하다. 산토끼를 잡든, 멧돼지를 때려눕히든 먹을 걸 준비하지 못하면 난 미라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도 산경(山景)을 눈에 담는 내 꼴이 퍽 우스웠다.

   해가 떨어진 지 한참이 지났기에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하늘을 봤지만 가느다란 초승달 하나가 간신히 걸려 있었다. 젠장! 보름달이었으면 한결 수월했으련만, 노름판에서도 통하지 않는 끗발이 산중에서 통할 리가 없다.

   나는 지쳤기에 바위에 걸터앉았다. 정말 이대로 얼어 죽든, 굶어 죽든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이 자꾸 나를 괴롭혔다. 차라리 신장 하나 떼어주더라도 카지노로 돌아갈까…. 그 치들도 잠은 잘 테니 야음을 틈타 몰래 빠져나간다면 날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비로소 살 길이 보인 듯했다. 그래, 이곳에 있으면 무조건 죽는다, 하지만 돌아가면 무조건 산다, 최악의 경우는 신장을 떼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사는 게 좋지 않겠어? 나는 작심을 한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것도 희망이라면 희망이므로 다리에 힘이 실렸다. 나는 왔던 길을 되짚기 시작했다.

   거참, 더럽게도 멀리 왔군!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산길을 되짚어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바닷가 출신인 나로서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 않은가. 멀리 산짐승 우는 소리 희미하게 들리고, 그 소리가 더러 가까이에서 들리면 털이 쭈뼛 서곤 했다. 그럴수록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리라는 마음을 더 애타게 먹었다.

   확신도 서지 않은 채 한참을 걸었다. 지금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는지조차 의구해하면서 계속 걸어야 했다. 등산로가 아니기에 이정표도 없었다. 초행길이므로 길을 머리에 담아둘 수도 없었다. 산중이란, 다 비슷한 나무와 바위들로만 채워진 게 아닌가. 난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고, 그럴수록 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 조봉필에게 쫓겨 20분을 달린 후에 먹었던 그 마음, ‘될 대로 되라!’가 다시 스멀스멀 내 머릿속을 기어 다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이라도 먹어두는 건데……. 내 차를 뺏으러 온 전당포 하수인과 승강이를 부린 통에 점심도 먹지 못했다. 만약 의사가 지금 내 옆에 있다면, 혈당치가 급속히 떨어져 있으며,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우려가 있습니다, 라고 말해주었겠지. 하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다시 그 계곡으로 발길을 잡을 수도 없지 않은가. 호흡이 계속 가빠진다. 기운이 빠져 발이 천근만근이다. 다리도 풀려간다. 정신마저 몽롱해진다. 나는 물에 빠진 소금덩어리처럼 녹아내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참 궁지에 몰릴수록 독기를 품지 않던가.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할 때도,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 받을 때도, 빚쟁이들 등살에 치일 때도, 내 전재산을 몽땅 다 날릴 때도 난 생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었다. 물론 그 의지가 삶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구와 방기(放棄)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만으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걸어야 한다. 계속 걷지 않으면 난 정말 죽으리라. 산에서의 야행(夜行)이란 참 사람 사는 것과 똑같군. 어떻게든 걸어가야 하니까, 포기하면 죽으니까.

   침침한 눈도 어느새 밤길에 익숙해졌다. 산이 넓다한들 작은 나라에 품어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쭉 가다보면 민가도 나오고, 도로도 나올 것이다.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내 마음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단풍나무 사이에 걸린 초승달에 찬바람이 스칠 때마다 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문자 쓰길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노자의 말을 빌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봐, 천지불인이라잖아. 자연이 아름답다고 해도 결국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자연은 아름다울 수도, 척박할 수도 있는 거야. 인생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거라고.”

   내 인생이 그래도 정상적인 생활인 축에 속했을 때, 저 친구와 등산을 자주 했었다. 그는 산에 오를 때마다 저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다. 아는 게 저것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정말 『老子』를 제대로 이해하고 한 말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풀어내는 의미가 그럴싸했으므로 수긍하며 넘어가곤 했었다. 그 불인(不仁)하다는 천지가 초겨울의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이 산과 자연이, 심지어 저 초승달과 바람까지 모조리 원망스럽다. 온통 나를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야차와 같다. 혹은 내가 죽은 후에 눈알을 파먹으려 기다리는 대머리 독수리 같았다. 사람이 죽을 때 죽더라도 이름 있는 고봉에 오르다 죽어야 기억에도 남는 법이다. 이 불인한 산, 이름 모를 산 어느 기슭에서 죽는다 한들 산짐승 밥밖에 더 되겠는가. 난 살아야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길동무 삼아 걷다보니 옛날 생각도 더러 났다. 내가 왜 지경까지 몰렸는지, 회사는 왜 날 버렸는지, 아내는 왜 날 떠났는지에 대해 생각도 해보았다. 그들 모두를 원망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정말 나에게 아무런 책망할 사유가 없었던 걸까. 내가 제대로 살았었더라도 그들이 날 버렸을까. 하지만 지나간 인생은, 밤중에 지나온 산길과 같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이런 제길! 엉뚱한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조봉필에게 쫓겨 계곡까지 내달리는 동안 난 계속 오솔길 위에 있었다. 그 오솔길을 정확히 되짚고 있는 것이라면 길이 막혀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내 앞을 막는 건 키 큰 소나무 숲이 아닌가. 길을 잘못 든 게 틀림없다. 이제 길까지 잃었다.

   난 어떻게 해야 살아나갈 수 있을지 궁리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등산객으로 붐비는 산이라면 어떻게든 하룻밤만 버티면 될 일이다. 날이 밝아 행인의 말소리를 들리면 소리를 쳐서 구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산은 등산객조차 드물다. 카지노에서 인생과 재산을 허비하는 파락호들이 붐비는 바닥이다. 등산객들이 올 턱이 없다.

   답답한 마음에 산불이라도 질러볼까 생각했다. 산불이 나면 소방헬기가 뜰 것이고, 불을 끄러 소방관과 공무원들이 총출동할 것이다. 게다가 산불 덕분에 언 몸도 녹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간 조봉필 같은 인간들로 꽉 들어찬 교도소에서 평생을 썩어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동사하는 게 낫다.

   아껴두었던 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담뱃불이 타들어갈수록 머리가 몽롱해졌다. 이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난 뒤에는 악몽에서 깨어났으면 했다. 지금 이 상황이, 이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던 나의 인생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온 모든 선택들이 차라리 하나의 악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인생이란 악몽보다 더 끔찍하군. 죽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으니.

   이제 쓸모없게 된 라이터 부싯돌을 주머니 속에서 문질러 손을 따뜻하게 데워 보았다. 시렸던 손이 한결 나아졌다.

   “거기 누구요!”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이제는 머리가 멍해져 헛것까지 들리나…….

   “거기 누구냐니까!”

   분명 사람 소리였다. 혹시 조봉필? 그럴 리가! 나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기 담배 피는 사람 누구요!”

   정확히 날 지목하고 있었다. 이 야밤의 산중에 나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혹시 산귀신인가. 난 불안한 마음에 대꾸하지 못했다.

   그는 손전등을 내 쪽으로 돌렸다. 난 눈이 부셔 손차양을 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길을 잃은 거요?”

   그는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가 나에게 가까워올수록 심장이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장기를 떼어내 팔아먹는 놈이 대한민국에 조봉필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이 시간에 산중을 거니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길 잃은 자를 낚아다가 어디 팔아먹는 놈일 수도 있다. 산이 내 기운을 빼놓아 저항할 수 없게 만든 다음에, 저 치가 마무리는 하는 방식이겠지.

   “아닙니다. 산책하는 중입니다.”

   그는 손전등을 이용해 나를 볼 수 있었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산책중이라고 둘러댔다.

   “산책 좋아하시네.”

   바보가 아닌 이상 내 말을 믿진 않겠지. 그와의 거리가 점점 더 좁아졌다. 나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로 라이터를 꼭 쥐고 있었다. 여차하면 라이터 쥔 손으로 관자놀이를 후려갈길 요량이었다.

   마침내 그는 전등의 반사광으로도 얼굴이 식별될 만큼 내게 가까워졌다. 그는… 귀신……이다……. 사람이라고 해도 귀신이라고 봐야 옳을 생김새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올 만큼 삐쩍 마른 얼굴에는 여기저기 흉터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매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보아 한때는 험악한 바닥에서 제대로 뒹굴었음이 분명했다. 이발은 언제 하고 안 했는지 빗자루로나 쓰일 법한 댑싸리가 머리통 위에 얹혀 있었다. 게다가 목에는 칼로 베인 듯한 깊은 상흔이 둥글게 자리 잡고 있었다. 혹시 목 매 죽은 귀신인가? 카지노에서 모든 걸 잃고 목을 맨 자를 수없이 보아 왔다. 혹시 이 자도 그 중의 하나인가? 그렇다면 살아생전 오다가다 한 번쯤 마주친 적이 있을 터.

   “혹시 저를 아십니까?”

   나는 얼떨결에 바보 같은 질문을 해버렸다. 정말 그 사람이 목을 매 죽은 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뭔 소리 하는 거야!”

   그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길 잃은 거라면 따라오슈. 하루 정도는 재워드릴 수 있으니.”

   그는 내가 따라가든 말든 어느새 앞장을 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으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 가지였다. 산중에서 얼어 죽으나, 산중에서 낯선 이를 따라 가다가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더욱이 저 사람이 악인이라고 단정 지을 확실한 근거도 없다. 일단 따라가기로 했다.

   “이봐요, 저기 말 좀 물읍시다.”

  “…….”

   “그러는 당신은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는 중입니까? 당신도 혹시 카지노 빚쟁이…….”

   나는 그가 빚을 지고 쫓겨 다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러면 어떤 동류의식이란 게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대꾸도 않은 채 계속 걷기만 했다. 그는 이 산이 익숙한지 잘도 길을 찾아냈다.

   그를 따라 한 20분쯤 걸었을까.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여럿이 더불어 사는 작은 군락이었다. 이 사람 혼자 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또 다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불빛을 보고 멈칫하며 그를 따라가길 망설이고 있었다.

   “젊은 사람이 겁도 많군.”

   그는 내게 핀잔을 주고는 사람을 불렀다.

   “어이, 나 왔어요.”

   그러자 몇 명이 밖으로 나와 그를 맞아 주었다.

   “저 남자는 누구야?”

   나이가 가장 많이 보이는 노파가 나를 힐끗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

   “길을 잃은 거 같아서 데리고 왔어요.”

   “잘 했어. 하마터면 산짐승 밥이 될 뻔했군.”

   노파는 허리가 완전히 굽어져 겨우 땅만 보고 걸어 다닐 정도였다. 그녀는 내게 어느 방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잠을 자라고 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시키는 대로 했다.

   방은 따뜻하고 깨끗했다. 이미 한 남자가 코를 걸고 있었지만, 그를 깨울 이유가 없으므로 조용히 그의 옆에 누웠다. 채 가시지 않은 불안감 때문에 잠들어선 안 된다고 나를 다그쳤지만, 그대로 곯아떨어져버렸다.

   30분쯤 잤을까. 난 불현듯 눈을 떴다. 밖에서는 아까 그 노파와 남자가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락은 해봤어?”

   “네, 단단히 잡아놓으라던데요. 내일 날 밝는 대로 온다고…….”

   “이번에 잡히면 꼼짝 못할 거야. 도망 못 치게 잘 감시해.”

   둘의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럼 그렇지, 세상에 돈 안 받고 남을 재워주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저들은 조봉필과 한통속이 틀림없다. 나는 이제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갈까를 궁리해야했다. 어차피 조봉필은 아침이 돼서야 올 것이다. 그 전에만 빠져나가면 된다. 하지만 나를 데려온 사내의 인상과 덩치를 떠올려보니 정면충돌만은 피해야 할 듯싶었다. 일단 자는 척을 하고 있다가 그가 조는 틈을 타 이곳을 빠져나야겠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왔다. 나는 냉큼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혹시 나를 포박하러 온 것일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덤볐다간 나가떨어지는 쪽은 분명 내 쪽일 텐데……. 방에 들어온 사람이 혼잣말로 뭔가 구시렁거렸다. 목소리로 보아하니 그 사내였다. 그는 나를 구석으로 살짝 밀더니 먼저 자고 있던 남자와 내 사이에 비집고 들어왔다. 좁은 방에 세 명이 누우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자는 척을 해야 했으므로 잠자코 있어야 했다.

   사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하긴, 그 큰 덩치로 왜소한 나를 제압하는 건 별 것도 아니리라. 굳이 귀찮게 포박을 할 이유가 없겠지. 그는 피곤했던지 임무를 까맣게 잊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의 코 고는 소리가 격해지자 나는 비로소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와 어깨를 맞대고 있었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그리고는 방문을 살짝 열었다.

   “어디 가?”

   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가 누운 채로 눈을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 화……화장실 조……좀…….”

   “나가서 오른쪽으로 도슈.”

   “아, 예. 예.”

   도망가기도 글러먹었군! 나는 포기하고 잠이나 자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한 발짝 옮겨 디딜 기운도 없다. 이 상황에서도 단잠을 청하는 내가 미련스러워보였지만, 난 그대로 고꾸라졌다.

   날이 밝았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신조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정말 이제는 될 대로 되는 수밖에 없다.

   노파는 이미 부엌에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 몇 명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아침밥을 하고 있었다. 노파가 밖으로 나오다가 나와 마주쳤다.

   “벌써 깼어? 더 자지 않고…….”

   더 자면 뭘 어쩌게? 조봉필에게 팔아넘기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만 두었다. 그 사내가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으므로.

   “할 일 없으면 가서 물이나 길러 와. 어이, 자네가 이 친구랑 같이 가.”

   “예! 이봐, 물지게 들고 따라 와.”

   그 사내는 노파의 말이라면 고분고분 잘 따랐다. 나는 그 사내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어스름한 냇가엔 벌써 살얼음이 얇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살얼음 하나를 입에 넣고서 아침 냉수로 삼았다. 요즘 세상에도 물지게 쓰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지만, 이곳까지 상수도가 들어올 리 없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물지게를 이고서 끙끙거리며 돌아왔다. 그는 일감을 덜어 신이 났는지 흥얼거리며 빈손으로 내 뒤를 감시하듯 따라왔다. 만약 내가 쓸모 있다고 느껴진다면 조봉필에게 팔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하며 기운 센 척 너끈히 걷는 시늉을 했다.

   “일 잘 하네? 밑에서 뭐하다 왔어?”

   “뭐…… 그냥…….”

   “뭐 그냥 뭐?”

   “뭐…… 그냥…….”

   “카지노로 패가망신했군.”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낄낄 웃어댔다. 나는 슬쩍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뭐 어쩌겠는가. 무정부의 산중에서는 힘 센 수컷이 법인 것을. 그나저나 저 남자의 목에 난 상처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당의 넓은 평상엔 이미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 고추, 가지가 소쿠리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고, 된장찌개가 그 가운데에서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밥이라고 해봐야 잡곡 9할에 밤이 섞인 거친 것이었다. 노파, 중년 여성 셋, 예닐곱 살 전후의 아이들 두 명 그리고 어제 내 옆에서 자던 어느 중년 남성이 밥상 앞에 앉았다. 아이들은 아토피를 앓고 있는지 얼굴에 온통 붉은 흉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날 더러 앉으라는 소리가 없었기에 민망하게 서성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어야 했다.

   “뭐해? 밥 안 먹을 거야!”

   노파가 된장에 고추를 찍으며 말했다. 나는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을 정도로 시장했기에 걸신들린 듯 이것저것 입에 욱여넣었다.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밥 한 사발, 강냉이 몇 알이 이렇게 고맙기는 처음이었다. 어제 이맘때만 해도 한 판에 수백, 수천을 주무르던 게 한참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밥상을 물릴 때까지 조봉필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봉필 대신 중년 여성 한 명과 건장한 사내 둘이 나타났다. 난 불안해서 변소로 숨어 가만히 동정을 살폈다.

   그들은 내가 아니라 어젯밤에 내 옆에 자던 남자를 찾으러 왔다. 이럴 거면 하산을 해서 병원에 가자는 둥, 싫다는 둥의 소란스런 실랑이가 오갔다.

   “자형, 같이 내려가십시다. 술 끊으러 들어와 놓고는 여기서 다시 입에 술을 대면 어쩝니까! 알콜중독치료원을 가든, 집으로 가든 일단 가십시다!”

   그를 자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처남들인 듯싶었다. 그들은 한사코 뿌리치는 사내를 붙잡고서 사라졌다. 그렇다면 어젯밤에 노파가 기다린다는 사람들은 조봉필 일당이 아니었던 것인가.

   “에이, 망할 놈의 새끼. 그러게 술이 웬수지!”

   노파는 코를 흥 풀며 내뱉었다.

   “야, 이놈아! 어디 갔어! 밥 먹었으면 장작 팰 생각 안 하고 어딜 또 도망간 거야!”

   노파는 날 찾는 듯했다. 나는 일부러 바지춤을 올리는 척하며 변소에서 나갔다.

   “아침 처먹자마자 한 무더기로 쏟았냐? 뭘 그리 오래 앉아 있는 거야! 삼봉이랑 가서 장작이나 패. 겨울 날 준비해야지.”

   겨울 날 준비라니? 누가 여기서 겨울을 난다고? 내가?

   “따라 와.”

   사내의 이름은 삼봉이었다. 삼봉은 어깨에 도끼를 얹은 채 내 등을 툭툭 쳤다. 현대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삼국지에서 튀어 나온 장비였다. 그가 2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필시 오랑캐를 막아낼 장수가 됐음이 분명했다. 나는 잠자코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산중이라 공기가 더없이 맑았다. 수령이 족히 수백 년은 됨직한 아름드리나무 위에는 산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새가 푸드덕 날아갈 때마다 단풍이 요란스레 흔들렸다. 들리는 거라곤 냇물 졸졸졸 흘러가는 소리와 멀리 산 꿩이 꿩꿩하며 멀어져가는 것밖에 없었다. 삼봉은 아무 말도 않고 도끼질을 했다.

   “어이, 도끼질 그렇게 하면 손 다쳐. 이거 일 좀 하나 싶었더니, 영 맹추구만!”

   그는 잘 보고 배우라는 듯이 도끼를 다시 잡고 천천히 내리찍는 시늉을 했다. 난 그를 흉내 냈지만 그가 팬 장작의 반의반도 장만하지 못했다.

   “어이!”

   나무밑동에 앉아 있던 삼봉은 날 부르더니 날고구마 하나를 던졌다. 날것을 질겅질겅 씹다보니 어릴 적 추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남자들은 통통배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았고, 아낙들은 뒷산 언저리에서 텃밭을 일구어 새끼들을 먹였다. 엄마는 동생을 밴 만삭으로 논이며, 밭이며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일했었다. 혼자 집을 보며 간식 삼아 먹던 게 날고구마였다. 동네 아이들끼리 비밀기지라고 불렀던 버려진 텐트에 놀러갔을 때도 내 주머니에는 늘 날고구마가 꽂혀 있었다. 난 그것을 비상식량이라고 불렀다. 회사를 때려 친 후론 집에도 내려가지 못했다. 내가 혼자 집을 지킬 땐 엄마가 늘 바쁘고 힘겨워 보였다. 이제 그 분도 늙어 집에만 머무르시지만, 이젠 정작 내가 찾아가질 않는다. 내가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취업에 실패해서 백수로 지낼 때도, 어렵게 구한 회사에서 잘릴 때조차도 엄마는 아들을 믿는다고 했다. 그런 엄마가 만들어준 신장을 어제 잃을 뻔했다.

    “고구마가 참 콩팥처럼 생겼단 말이야.”

   삼봉이 고구마 씹다말고 입을 열었다.

   “네…… 그러고 보니 좀 그러네요.”

   삼봉은 더웠던지 웃통을 벗고 있었다. 그의 배꼽 밑에는 어제 만난 그 노인과 똑같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이만 가자고. 할머니가 기다리겠어.”

   삼봉은 장작을 지게에 올리고선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그런 식으로 열흘을 보냈다.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은 몰랐지만, 산을 빠져나가봐야 조봉필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게 뻔했다. 시간이 더 흘러도 그의 장부에서 내 이름이 지워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곳에 더 머물러보는 수밖에 없다. 새벽에 일어나 물을 길러오고, 밥을 먹고, 장작을 패고, 다시 밥을 먹고, 청소를 하는 사이에 하루는 훌쩍 지나갔다. TV나 컴퓨터가 있을 턱이 없기에 산의 밤은 퍽 지루했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수밖에.

   나는 삼봉과 방을 같이 썼다. 원래 그의 방이므로 나는 불청객이었으나 그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친절을 베푼 것도 아니었다. 그는 말수가 참 적었다.

   그와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으므로 주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 시선은 영사기처럼 카지노의 활기를 천장에 쏘아댔다. 바카라, 블랙잭, 다이스, 포커, 키노, 빅휠, 까우, 판탄, 조커, 세븐, 라운드, 크랩스, 트란타, 콰란타, 프렌치 볼……. 횡재를 하는 날은 호텔을 잡아두고 콜걸을 불러 욕정을 풀곤 했다. 잃는 날에도 무작정 여자를 불러 외상을 청해봤지만, 괜히 택시비만 줘야 했다. 난 그렇게 살아왔다. 따는 날은 늘 딸 것처럼…… 잃는 날은 내일은 반드시 딸 것처럼……. 파스칼이 말했던가. 도박이란 불확실한 것을 위해 확실한 것을 거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어쭙잖게나마 대학을 나온 게 불행인지도 모른다. 저런 말 따위나 기억해내며 내 자신을 괴롭혀야 하니까.

   전처는 어디 가서 뭘 하고 사는 걸까. 벌써 다른 남자를 만난 걸까. 기왕 갈라선 마당에 그걸 궁금해 해야 하나. 그래도 대학 다닐 때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6년을 사귀고 3년 만에 이혼이라니……. 문득 삼봉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낮에 봤던 그의 상처가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차였다.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형님은…….”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형님은 뭘 하다 여기까지 오게 됐소? 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 불쾌해 하지 않을까. 형님은 왜 여기서 삽니까? 라고 할까. 그러면 무시하는 투로 들리지 않을까. 다행히 그가 내 의도를 짐작하고 대꾸해주었다.

   “자네랑 같아.”

   “아, 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삼봉은 몇 번 뒤척이더니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일상은 늘 똑같았다. 삼봉과 어울려 다니며 일을 했고, 집에서는 아낙들이 집안일을 했다. 아이들은 주로 책을 읽거나 집 부근에서 뛰어놀았다. 난 이들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졌다. 혹시 이상한 종교집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파를 교주로 하는 신흥집단! 그러나 아직 교세가 작아 산중에 웅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리가…… 그런 집단은 보통 초기에는 극진한 친절을 베푼다. 하지만 이들은 날 머슴처럼 부리고 있지 않은가. 어찌됐든 밥을 주고, 재워주니 더 바랄 건 없다.

   이런 식으로 얹혀 지내는 것도 벌써 보름째에 접어들었다. 이제 조봉필도 슬슬 날 잊었을까. 산으로 도망친 놈이 다시 나타나지 않으니 어디 가서 뒈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산을 해볼까. 안 그래도 어설픈 도끼질에 슬슬 싫증이 나던 차였다.

   “형님,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 카지노 외에 또 있나요?”

   “왜? 가게? 길은 거기밖에 없어. 산길에 훤하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꼼짝없지. 어설프게 나갔다가는 조봉필한테 잡힐걸?”

   이게 무슨 소린가. 그렇다면 삼봉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난 너스레를 떨며 잡아뗐다.

   “조봉필이 누굽니까?”

   “누구긴 누구야. 콩밭 물어가는 개새끼지.”

   그는 아랫배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가 조봉필을 알고 있는 걸로 봐서, 삼봉의 배에 난 상처의 내력을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더는 조봉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궁금한 걸 물었다.

   “그런데 여긴 뭐하는 곳입니까? 요양원은 아닌 것 같고…….”

   “있어봐서 알잖아. 그냥 쉬는 곳이야. 아는 사람 입소문을 통해 하나 둘 찾아와서 쉬다가 내려가지. 상처 받은 사람들이 주로 와. 요즘은 아토피 때문에 애들도 찾아오더군.”

   “아, 그럼 일종의 요양원이군요.”

   “그건 아니고……. 돈 받고 장사하지는 않아. 할머니가 주인인데, 왜 여기다가 이런 곳을 지었는지는 나도 몰라. 오는 사람 안 물리고, 간다는 사람 안 잡아. 그냥 그런 곳이야. 대신 자기 먹는 만큼은 일을 해야 하지.”

   “아, 네…….”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삼봉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 가까이에 오니 여러 명이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왠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풀섶에 몸을 숨기고 동정을 살폈다. 삼봉도 나와 같은 자세로 집 쪽을 노려봤다. 여차 하면 뛰쳐나갈 모양새였다.

   “여기 안 왔다고! 야 이놈아! 거긴 왜 뒤져!”

   “거참, 할망구 되게 앙칼지네. 좀 닥치고 있어.”

   목소리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조봉필이 틀림없다. 그럴 만도 하다. 산으로 도망친 놈이 죽었으면 진작 발견됐을 일이다. 그런데 내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날 찾아 나설 이유가 충분했다. 그에게 있어 나는 천만 원을 꿔주고, 삼천만 원이 되어 돌아올 횡재가 아닌가.

   “이놈의 새끼가 에미, 애비도 없나! 어디다 대고 할망구야! 네가 찾는 놈이 어느 놈인지는 몰라도 이 산속에서 어떻게 살아. 벌써 뒈져서 산짐승 밥이 됐겠지.”

   “아, 거참 시끄럽네. 야! 여기 안 왔나 보다. 가자!”

   조봉필 일당은 노파가 거슬렸는지 포기하고 산을 내려갔다. 그러는 중에 삼봉은 몇 번이나 주먹을 불끈 쥐고 꿈틀거렸지만, 내가 어깨를 꼭 잡고 있었다. 삼봉의 덩치로도 조봉필 일당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마당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아낙들이 아이들을 달랬고, 노파는 구시렁대며 욕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나는 노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노파는 피식 웃을 뿐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저 새끼들이 어디 한두 번 온 줄 알아? 삼봉이가 여기 갓 왔을 때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몇 번이나 왔었어. 원, 짐승 같은 놈들.”

   이 말은 들은 삼봉은 쑥스러워하며 헛기침을 했다.

   “얼른 밥이나 처먹어. 아직 장작 팰 게 많이 남았으니까.”

   노파 덕분에 나는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봉필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그 날 밤, 나는 삼봉에게 이곳을 뜰 것임을 말했다.

   “아냐, 안 그래도 돼. 조봉필이가 그렇게 한가한 놈이 아냐. 너 하나 잡으려다 다른 채무자 다 놓치게? 이제 다시는 안 올 거야. 더군다나 이제 곧 겨울이잖아.”

   그는 날 안심시켜 주었다. 그의 말처럼 어느새 겨울의 초입이 성큼 다가왔다. 내가 머무르는 동안 단풍은 바싹 말라 거의 다 떨어졌고, 시냇물은 낙엽 천지가 돼 있었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를 궁리하던 차에 방문이 들썩거리며 열렸다. 찬바람이 세차게 방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벌써 추워지는군요.”

   “삭풍인 게지.”

   “장작 좀 더 넣고 올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겨울 지나고 내려가는 게 좋을 거야. 하산하다가 갑자기 눈이라도 만나면 그대로 얼어붙거든. 산은 변덕이 심하니까.”

   “그렇군요. 형님은 어쩌시게요?”

   그는 뒤돌아 누우며 끙- 소리를 낼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그로서는 굳이 내려갈 이유도 없었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지낼 만 한듯 보였으니까.

   나는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엔 포커 대신 어머니의 얼굴이 물들어 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은 더 거세졌으나 방은 따뜻했다.

   “내년 봄엔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겠어요.”

   “그래……. 봄이 되면 나와 할머니만 남겠군. 또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다 잃고 빚밖에 없다고 해도, 은행권 빚은 없어요. 몽땅 카지노 깡패들한테 빌린 거지. 그러니까 빚은 없는 거나 마찬가진 거죠. 저… 다시 시작할 수 있겠죠, 고향에서……?”

   그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잠결에 실실 웃는 표정이 순박해 보였다. 나는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글자가 떠오르다 사라졌다. 불인(不仁)……. 인(仁)하지 않으므로 불의(不義)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모든 걸 받아들이고 묵묵히 견뎌낸다. 한 계절을 더 버텨낼 산(山)은 그런 모습이었다.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렸다고 생각한 나도, 조봉필도, 삼봉도 모두 이 산을 오르내리며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도시에서 실패하고 상처 받은 이도, 앓는 이도 산에서는 그저 산(山)사람이다. 산은 사람을 분간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 친절을 베풀지도, 무조건 혹독하지도 않지만 인간은 그런 산에 수용되어 안긴다. 나 같은 파락호에 오입쟁이조차도……. 그러고 보니 산다는 건 산(山)에 다름 아니군. 숱한 일을 겪으면서도 절대 무너지거나 뽑혀선 안 되니까.

   삼봉은 조금 더웠는지 잠결에 이불을 차버렸다. 산중의 밤은 깊어갔고, 옹골찬 담벼락이 성채처럼 삭풍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마 내년 봄에는 고향 바다의 샛바람을 맞으며 이곳을 떠올리곤 하겠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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