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공모- 바나나우유

by 박승현 posted Aug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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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나나 우유




아버지는 낮부터 술을 드셨다.

아버지의 귀가시간은 저녘 8시였고, 문도 채 잘 열지못하는 아버지에게선 술냄새가 났다. 이윽고 술냄새는 코를 찔러왔다.

사실 며칠 전부터의 이야기였다.

가족 모두가 저녘식사를 하는데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와 동생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런 말을 그리 달가워하지않았다.

저녘식사를 먼저 마치곤 티비를 트는 아버지를 꽤나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작한지 며칠도 되지않은 사업이 망해버렸다는 이야기를 귓등으로 살짝 들은적은 있었다.

그때의 피해가 그렇게 클거라는 생각은 안했었지만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밤잠을 주무시는듯했다.

평소에는 눕자마자 코를 골으셨는데,오늘은 나와 엄마와 동생이 모두 잠을 자는데도

끝쪽에서 계속 뒤척이셨다.

계속 움직이시는 아버지때문에 잠을 자지못하고 있었던 아버지뿐만이 아니였다.

나는 방금 잠에서 부비는 연기를 하며 화장실을 찾아 큰방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엔 그다지 볼일은 없었지만, 잠시 그곳에서 시간을 떼우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왔을때 아버지는 도통 잠이 안오셨던건지 누워 계시던 자리에 앉아계셨다.

"아버지, 안주무세요?"

아버지는 말에 답하지 않으셨다.

내가 자리에 누우려고 이불을 뒤척이자, 아버지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들아, 아빠랑 수퍼갈래?"

첫째 아들이였던 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없었다.

그때 나이, 16살이였고 철은 들대로 들었었다.

""

 

그날 따라 아버지가 어려웠다.

아버지와 있는 시간이 어색했다.

고작 3층짜리 빌라에서 내려와 몇십걸음만 가면 나오는 동네수퍼.

친구들과 학교 끝나는 길에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날이면 항상 기분이 좋았다.

", 먹어라"

무작정 아버지를 뒤따라 왔는데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얇은 빨대가 꽂아진 바나나 우유였다.

"오랜만이지? 빠나나 우유"

5살때, 동생은 아마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을 즈음에 , 아버지 손을 잡고

동네 새로생긴 목욕탕에 갔을 였다.

목욕하고 나왔을 아버지가 손에 쥐어주었던 바나나 우유는 정말 달콤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론 전혀 먹어보지 못했다.

"어때, 맛있냐?"

달았다.

바나나 맛과 달달한 맛이 혀를 감싸안았다.

바나나 우유는 너무 맛있었지만, 옆에 있는 아버지를 보니 갑작스레 눈물이 돌았다.

"이노옴, 말이 없어."

".. 맛있어요"

"그러냐?"

아버지의 말을 끝으로 나는 숲의 귀뚜라미 소리밖에 들리지않았다.

대화가 오가지않는것을 난 사춘기를 탓했다.

하지만 나한테 사춘기가 겨를도 없었다.
아들로 짊어져야 것이 많았다.

동생은 나처럼 철이 들기엔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아버지의 건강이 좋으실때면

학교를 그만두고 일터로 나가야할지도 몰랐다.

"아..들아.. 애비가.. 미안하다.."

아버지는 조용히 말을 꺼내셨다.

"애비가 미안하다.. 아들…"

아버지는 울고계셨다.

시선이 바닥으로 있어도 나는 수있었다.

"못난 애비라 미안하다.. 돈도 없어서...우리아들 다른 애들처럼 편하게 살지도 못허고.."

아버지는 손을 잡으셨다.

오랜만에 맞닿아보는 아버지의 손이였다.

무슨 일을 하고 다니시는 건지 손은 거칠고 장난감이였다면 낡을대로 낡아있었다.

" 애비가 미안해...애들 다입고 다니는 좋은 옷도 못사주고 미안해.."

아버지의 목소리는 흐릿하게 떨려왔다.

큰소리를 많이 것도, 목을 많이 것도 아닌데 내 목은 왜 떨리고 턱 막히는건지.

애써 참고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버지께 아무 말도 해드릴수없었다.

눈물을 흘리는 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않는 것이 내겐 최선이였다.

 

그때의 바나나우유는 무척이나 달았다.

오랜만에 먹는다고 말할 있었던 바나나우유는 정말 달았다.

지금의 나는 독립을 수있다.

지금의 우리 가족을 여유롭게 만들고 도울 있다.

아버지께도 이렇게 없다는 점에 아쉬워했다.

아버지는 삶의 빛이라고 충분히 말할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수퍼에 갔던 날의 바나나우유는 무척이나 달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바나나 우유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있는 추억밖에 되지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