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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0 16:19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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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처음엔 장난이었다. 별 생각 없이 한 일이였고, 별 생각 없이 마무리한 일이었다. 큰 의미를 두고 한 일이 아니였기에 딱히 말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모른척 하는게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그로인해, 왠만해서는 그 누구도 그 날의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되도록 그 일을 상기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알지도 못한채.

 

-

 

"손가락을 잘라 올거야."

 

모든 일의 시작은 시작은 서형의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 흔히 마가파로 불리는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그는 빨갛게 물들인 머리와 눈썹 사이에 끼어 넣은 피어싱이 눈에 띄는 학생이였는데, 학교에서 그는 말썽쟁이, 양아치, 전교 꼴등 등으로 불리곤 했다.

 

많은 별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형은 최상위 포식자에 속했다. 그는 주로, 반 아이들의 머리 꼭대기에 서서 그들을 조종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가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를 찬양하고 숭배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수현은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권력을 나눠먹고,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얼마나 유치한 일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그는 우두머리였고, 힘과 권력을 가진 놈이였으니까. 수현이 아무리 그들을 싫어하고 미워한다고 해도, 그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을게 뻔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놈에게 머리를 숙이기 마련이니까.

 

시간이 갈수록, 서형의 권력은 점점 더 막강해져만 갔다. 처음엔, 학교 내에서 시작했던 조직이 땅 따먹기처럼 서서히 세력을 불리더니, 이젠 타 지역의 학교까지 건드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로 인해, 선생들은 엄청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듯 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그런 서형을 더 칭송했다. 서형을 조직으로 보내야한대나 뭐래나, 아이들은 어떻게든 서형의 옆에 붙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눈에 든다면 남은 학교 생활은 탄탄대로처럼 편히 흘러갈게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서형이 점점 더 세력을 불려가고 있을때쯤, 아이들 내에서 작은 분열이 하나 일어났다. 서형의 패거리였던 정흥이 실수로, 한 아이를 때린 것이었다. 서형은 특이하게도, 양아치라는 타이틀과 다르게 아이들을 때리지 않았다. 혹시나, 때려서 얼굴에 상처라도 난다면, 나중에 수습하기가 귀찮아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딱히 좋은 이유는 아니였지만, 어쨌든 그의 밑에 납작 엎드려있는 아이들에겐 좋은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때리지만 않는다면, 서형의 존재가 큰 위협이 되지 않을테니까.

 

허나, 정흥의 실수는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었으나, 들려오는 소문을 보아하니, 서형이 실수를 한 정흥을 불러 죽사발을 만들어놓은 모양이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며칠간 정흥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한 걸 보면, 어느정도는 아이들의 소문이 맞는 듯했다. 정흥이 서형에게 죽도록 맞았다고, 그래서, 패거리에서도 쫓져났다고.

 

소문은 풍선처럼 커져 사실이 되었고, 그 사실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가뜩이나,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왔던 그의 소문이 한층 더 부각 되면서,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서형을 두려워했다. 딱히 그가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님에도, 그랬다. 아이들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듣기라도 한건지, 그때부터 서형은 점점 더 깊은 어둠속으로 스며들었다. 말을 하지도, 말을 걸지도 않은채, 쥐죽은 듯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치, 그림자처럼 말이다.

 

학교 앞에 사체가 발견된 것도 그때쯤 이었다. 운동장 한복판에 놓여진 사체는 아이들의 경악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맨 처음, 학교에 등교한 학생이 그것을 발견했고, 기절했다가 깨어났을때 쯤엔 이미, 학생의 대부분이 사체를 목격한 뒤였다. 두번째로 사체를 발견한 학생이 경찰서에 신고를 한지 얼마되지 않아, 경찰들이 달려왔지만, 빠르게 사체를 치워버릴수는 없었다. 현장 보존이라는 명목하에였다.

 

사체는 2-3반 반장인 권석희라는 것이 밝혀졌다. 어젯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을 한 모양이었다. 보통 학교는 10시까지 야자를 권장하고 있지만, 가끔씩 더 늦게까지 공부를 하길 원하는 학생 탓에 11시까지 연장할 수 있는 체제가 도입되어있었다. 그로인해, 전교 2등이였던 석희가 학교에 남아있었고, 11시 야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곧장 귀가했지만, 석희는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누군가, 석희의 뒷통수를 둔기로 내리친 것이 그 이유였다.

 

"사체가 훼손이 심각한데?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겠는걸?"

 

경찰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사체에 대해 떠들어대기 바빴다. 다들, 석희의 사체가 심하게 손상되어있는걸로 봐서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만도 한게, 석희의 사체는 차마 손을 댈수 없을 만큼 심하게 부패되어있었다. 고작 하루만에 발견된 사체라고 보기엔 이래저래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았다.

 

"갖고 싶지 않냐?"

"?"

"손가락 말이야, 쟤 손가락."

 

서형이 운동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그 손끝이 가리킨 끝엔 석희의 사체를 덮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 흰 천이 눈에 들어왔다. 수현은 너무 놀라 뒷걸음질을 쳤지만, 서형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손가락을 갖고 싶단 말이지"

", 그건 왜?"

"왜긴 왜야 갖고 싶으니까 그러는거지."

 

서형은 태연하게 덧붙였지만, 수현은 그 말 속에 담긴 의중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손가락을 갖고 싶은 이유는 예전부터 학교에 돌던 소문 때문일게 분명했다.

 

'모범생의 손가락을 가지면, 전교 1등을 할 수 있다.'

 

무려, 3년전 부터 학교에 돌기 시작했다는 그 소문은 아주 더럽고 끔찍한 것이었다.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몰라도, 소문의 깊이가 생각보다 깊고, 아이들의 대부분이 그 소문을 믿고 있는걸 보면, 우습게 넘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작년에는 2년 내내 전교 1등을 하던 '이소희'가 자살을 하고 난 후, 그녀의 손가락이 모두 다 사라졌다는 소문이 들려온 적이 있는 걸 보면, 아이들 대부분이 그 소문을 믿고 있는 듯했다. 물론, 소문일 뿐이라 그 진상을 낱낱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학교에서 흔히 양아치로 소문났던 학생 하나가 소희가 세상을 떠난 이후, 눈에 띌정도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되면서, 그 소문은 점점 사실이 되어갔다.

 

사실, 수현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믿는다는 것 자체가 기가막힌 소문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모범생의 손가락을 가진다고 1등한다는게 말이 되겠는가?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아예 그 소문을 무시할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아주 잠깐이였지만, 어느정도 그 소문의 신뢰성을 마주한 적이 있던게 바로 그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믿고 싶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난 탓에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사건의 발단은 그때부터였다. 지금으로 부터 8개월 전, 중간고사 무렵에 들어섰던 작년 가을, 전교 꼴등을 하던 '하곤수'라는 놈이 불과 몇달만에 전교 1등을 거머쥔 적이 있었다. 선생들 모두, 컨닝으로 1등을 했을거라 믿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학교의 가장 큰 문제아였던 하곤수를 학주와 함께 교무실에 가둬놓고는 시험을 치루게 한게 그 이유였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고, 너나할 것 없이 그 일에 대해 떠들어대기 바빴다. 일부는 학주가 하곤수의 편에서서 시험 정보를 제공해줬을거라 말했고, 또 다른 일부는 하곤수가 이소희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을거라고 말했다. 둘 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아이들은 후자를 더 믿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게 하곤수가 옆으로 지나가기만해도, 그에게선 시체 썩는 듯한 아주 끔찍하고, 더러운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분명, 손가락을 가진 걸거야."

"에이, 말도 안돼."

"안그러면 어떻게 저 꼴통이 1등을 했겠냐?"

 

아이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였지만, 그럴 수록 소문은 점점 사실이 되어갔다. 하곤수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일치월장해졌고, 그에게서 나는 냄새 역시 갈수록 더 역해졌다.


어느 날은 소문을 이상하게 여긴 교장이 하곤수를 불러 그의 몸을 샅샅히 뒤져봤지만, 그의 몸에서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코를 찌를 정도의 역한 냄새가 나는데도, 그의 몸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늘 하곤수의 몸에 붙어있던 담배도, 소문의 중심인 손가락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無)의 상태. 그의 몸에 있던 거라곤, 지독한 냄새와 온 몸을 축축히 적신 땀 뿐이었다.

 

"너 정말, 아무짓도 안했니?"

", 정말 제가 공부 한거라니까요!"

 

하곤수는 늘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제가 공부한거에요, 제가 노력해서 한거에요. 매일 같이 반복되는 말은 지겨울 정도로 선생들을 괴롭혔다. 선생들 모두 그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였지만, 그 말이 거짓이라고 할 증거를 찾지 못했던 탓에 결국 그 말을 믿어줄 수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하곤수는 3번의 전교 1등을 차지했고, 그 이후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버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나면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한다는게 그 이유였다. 겉보기엔 그럴싸한 이유였겠지만, 어느정도는 소문의 힘이 입김으로 미친 듯했다. 얼핏 들려오는 소문으론, 하곤수의 아버지가 직접 발령 신청을 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로 인해, 서형은 손가락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다. 그것만 손에 쥔다면, 하곤수처럼 전교 1등을 차지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수현은 그 모든 것들이 말도 안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이미 결단을 내려버린 서형을 설득시킬 수는 없었다. 심지어, 이미 석희의 손가락을 갖기 위해 시체 보관실까지 숨어 들어온 그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빨리 들어와."

"? 으응."

 

수현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뒤를 따랐다. 어쩌다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학교 끝나고 갈 곳이 있다는 서형의 말에 따라온 것이 다였다. 오기도 싫었고, 그의 말을 따르긴 더 더욱 싫었지만 서형이 코 앞까지 주먹을 들이대고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 냄새. 겁나 역하네."


삐걱 대며 열린 시체 보관실에선 쾌쾌하면서도 소름끼치는 냄새가 풍겼다. 멈칫거린 수현과 달리 서형은 코를 잡고는 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다급한 뒤태를 보아하니, 한시라도 빨리 석희의 손가락을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를 찾아낸 서형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칼을 꺼내 석희의 손가락에 가져다대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현은 그만 시선을 돌릴 수밖엔 없었다.

 

"너가 망을 봐, 내가 알아서 잘라올테니까."

 

서형은 망설임 없이 칼질을 시작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온 방안을 울리자, 서늘한 한기가 수현의 몸을 휘감았다.

 

", 서형아. 꼭 이렇게 까지 해야해?"

"?"

", 아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 너 죽고 싶냐?"

", 아니! 그게 아니라."

 

버럭 돌아온 답에 수현은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하여간, 말을 곱게 하는 법이 없었다.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어보인 수현이 꼬리를 휙 바닥으로 내렸다.

 

"죽기 싫으면 내 말 들어, 알았어?"

 

얼음장 같이 차가운 얼굴이 소리치자, 수현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눈치를 보는게 다였다.

 

눈물이 핑 돌았고, 손끝이 벌벌 떨렸다. 죽을 만큼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있겠는가? 학교 짱이라는 서형이의 명령인데. 수현은 울며 겨자먹기로 바깥을 살폈다. 퀘퀘한 냄새가 풍기는 시체보관실 안에는, 정체 모를 물건들이 잔뜩 늘어져있었는데, 방안 가운데엔 석희로 보이는 시체가 누워있었고, 침대 오른편 구석엔 캐비넷으로 된 청소 도구함이 서있었다.

 

"?"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온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란 수현이 서형을 향해 손짓하자, 그는 다급히 청소 도구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수현 역시 허겁지겁 청소 도구함 안으로 몸을 숨겼고, 문을 닫자마자, 보관실의 문이 열렸다. 석희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여보, 이제 그만 보고 돌아갑시다, ? 벌써 며칠째 잠도 못자고, 이러다가 당신 쓰러져."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여자의 팔뚝을 붙잡으며 말했다. 벌써 며칠 밤을 세운건지, 여자의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손길을 뿌리친채, 석희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는 흰천으로 덮힌 시체 위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애처롭게 말했다.

 

"우리 석희가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그래. 우리 석희가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집에 갈 수 있겠어."

"여보."

"난 못해, 나는 못해."

 

여자는 울음을 터트렸다. 세상이 떠나갈 것 같은 애절한 울음이었다. 한번도 부모가 되어본적이 없어 그 기분을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수현은 어느정도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살해당한 딸, 그리고, 그 딸을 노리고 있는 시커먼 사내 놈 두마리까지.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다 못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게 분명했다.

 

"제길."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서형은 작게 욕을 읖조렸다. 예상치 못한 방해꾼으로 인해,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져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하루 빨리 손가락을 잘라 이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데, 부모라는 인간들은 좀처럼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난 떨기는"


작게 중얼거린 서형은 매서운 눈길로 부모를 노려보았다. 심지어, 별 것도 아닌 일로 난리라며 퉁명스럽게 속삭이는 통에 수현은 내내 심장을 졸여야만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욕을 하면 어떡해! 들키고 싶어? 하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끝까지 차오른 울분은 또 다시 속으로 삼켜지고 말았다. 차마, 서형에게 대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안나가 진짜."

 

서형의 투정은 계속되었다. 아무리 그들이 오래 머문다고 해도, 우리는 이 곳에 몰래 들어온 것이 아니던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뒷 일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수현은 눈 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보, 일단 나가서 이야기해요. ? 제발."

 

남자의 애원은 갈수록 짙어져만 갔다. 그리고, 서형의 욕설 역시 갈수록 심해지는 중이었다. 조금만 더 목소리를 크게 낸다면, 들킬 지경이라 수현은 손을 뻗어 서형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화들짝 몸을 떤 서형이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쿵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청소 도구함이 크게 흔들리자, 위에 걸려있던 마대 걸레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굉음을 냈다.

 

-.

 

"잠시만."

 

그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서형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 눈치였다. 어떻게 할지 몰라 그대로 굳어버린 사이,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남자가 청소 도구함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여보?"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

 

남자의 시선이 청소도구함 쪽을 향해 꽂혔다. 작게 난 유리창 사이로, 남자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망했다! 수현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이었다. 시체 보관실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몰래 친구의 손가락을 가져가려고 했다니,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제 인생은 어떻게 될지 뻔했다. 모든 걸 다 잃고 말겠지. 여태껏 쌓아둔 자신의 학력도, 자신의 이미지도, 부모님의 기대도.

 

"여기 뭐가 있는건가?"

 

청소 도구함 앞으로 다가온 남자가 안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서형은 잔뜩 몸을 웅크린채, 숨을 참았다. 다행이게도, 청소 도구함 안이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 모양이었다. 수현 역시 마찬가지로, 몸을 최대한 바닥에 붙힌채, 남자가 하루빨리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왜그래 여보?"

"아니, 여기서 소리가 들려서."

 

하지만, 남자는 이미 청소 도구함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볼 눈치였다.

 

"여보?"

 

그때였다.

 

", 석희 부모님 되십니까?"

 

그 순간, 문이 열리고, 경찰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걸 보니, 꽤 급한 눈치였다.

 

"네 그런데요?"

 

남자는 곧장 시선을 돌렸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표정을 보아하니 좋지 않은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머지않아, 두 명의 남녀는 바깥으로 나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서형은 날쌘 다람쥐처럼 뛰쳐나갔다.

 

"제기랄, 하마터면 들킬 뻔했네."

"......"  

"야 빨리와서 망봐."

 

서형은 여유롭게 웃으며 턱짓을 했다. 하지만, 수현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가슴을 움켜쥘 수 밖에 없었다. 손가락이 사라진 딸을 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마지막까지, 석희의 곁을 떠나지 않던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렸다. 만약, 그들이 제 부모였다면? 석희가 제 동생이였다면? 생각만해도 눈 앞이 아찔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짓을 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질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형을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힘의 우위를 차지한 그를 무슨 수로 말릴 수 있겠는가? 맞아 터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왜 이렇게 안잘려."

 

서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매섭게 할퀴었다. 서형은 손가락을 자르는 일에 열중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시간이 흐른지 모를 정도로, 수현은 그 광경을 보며 한참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머리가 어질했고, 눈 앞이 흐려졌다. 한참 뒤에서야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시체 보관실을 빠져나온 뒤였다.

 

"개힘드네 진짜."

 

서형은 석희의 손가락을 손에 꽉 쥐며 말했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달리, 얼굴엔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하긴, 그토록 원하던 손가락을 얻었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기뻐하는 서형과 달리 수형은 좀처럼 맥을 차리지 못했다. 하마터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뻔했다. 제 인생도, 제 미래도, 한순간의 실수로 틀어져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현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

 

서형은 손가락을 재킷 안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씻을때도, 잘때도, 공부할때도, 절때 빼지 않을거라고 했다. 그는, 시험날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난생 해보지도 못했던 일들이었다. 상상하지 못할 만큼 위로 올라갈 성적과 그런 자신을 칭찬해줄 부모님, 그리고, 놀란 듯 저를 바라볼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훤했다. 어쩌면, 단 한번도 받지 못했던 칭찬을 받게 될지도 몰랐다. 기대감에 커다랗게 부풀어오른 마음이 하늘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날 밤 서형은 떨려오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 이게 뭐야!”

 

하지만 서형의 기대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기말고사 결과가 나오면서 부터였다. 전과 달라질 것 하나 없는 전교 꼴등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서형은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했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난 분명 손가락을 손에 쥐었는데?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아무것도 모른체 웃고 있는 수현의 얼굴을 보자, 머릿속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서형은 거칠게 수현의 멱살을 잡아챘다.

 

"너 때문이야."

"?"

"다 너때문이라고!"

 

서형은 미친 속도로 달려들었다. 얼마나 힘이 센지, 수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엔 없었다. 복도 바닥에 머리를 박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충격이 온 몸을 강타했다.

 

"네가 먼저 손가락을 만져서 효과가 떨어진거야!"

 

서형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남자 아이들 3명이 달려들어 떼어내려고 하는데도, 좀처럼 그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선생님이 찾아와 그를 떼어낼때까지 서형은 괴성을 멈추지 않았다. 수현은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

 

서형은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다. 손가락에 대한 소문도 서서히 수그라들고 있었다. 다들, 그날의 일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끔찍한 모양이었다. 서형의 부모님은 연신 고개를 숙였고, 한참 끝에서야 가봐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징계 처리 위원회라는 불편한 자리에 앉아있던 수현은 커다란 나무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닫힌 문뒤로, 웅성거리는 목소리와, 날카롭게 성을 내는 목소리, 그리고, 그를 향한 원망의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니가 그렇지 뭐."

"너 딴걸 자식이라고 내가 미쳤지, 미쳤어."

 

그는 결국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순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수현은 닫힌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토록 무섭던 그의 힘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걸까?

 

 

 

 

 

 

이름 : 최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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