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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1]

 

 

 

“네? 갑자기 작가가 바뀐다고요?”

 

 도진은 아침부터 방송국 국장님이 부른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국장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들리는 소식은 바로 저거였다. 인기작가인 서작가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급하게 작가를 바꾸어야 겠다는. 도진은 비서가 내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한창 주가를 달리고 있는 인기 드라마의 메인 피디였던 도진에게 곤란한 일이 나타난 것이였다. 서작가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터라 가까워 지는데에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에 대타로 올 작가는 나름 인기를 알아주는 작가이지만 낯을 많이 가린다고 소문이 난 작가였기 때문이다. 도진의 성격상 넉살 좋게 대하기는 쉽지만, 상대방에서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굉장히 곤란한 타입이였다. 도진은 한숨과 함께 국장을 바라보았다.

 


“걱정말게. 최작가도 감이 좋은 사람이야. 분명 잘해낼 수 있을 거라네.”

“물론입니다.”

 


 도진은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자신있게 대답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조금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잘…… 할 수 있으려나. 도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깊은 걱정으로 도착한 촬영 현장은 굉장히 분주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풍경. 도진은 촬영장에 가면 새 작가가 있을 거라는 국장의 말에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낯선 얼굴을 찾아 나섰다. 도진을 만난 사람들이 다들 도진에게 다정히 인사했지만, 새로운 작가를 찾아야만 하는 도진은 그런 인사를 조금은 다급하게 받으며 새 작가인 ‘정아’를 찾는 중이였다. 두리번 거리다, 보조작가였던 지후의 옆에 낯선 얼굴 하나가 포착되었다.

 


“최작가님?”

“……아.”

 

 도진이 그들에게 다가와 곧바로 도진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묻자, 정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도진을 마주했다. 원채 사람이랑 친해지는 걸 어려워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정아라 더욱 그랬다. 지후와 대본을 분석하던 것을 내려놓고, 정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진에게 구십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당황한 도진이 정아의 행동을 제지하고서는 그대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김도진이라고 해요. 그 쪽은?”

“아… 정아… 최정아에요…….”

 


 도진이 적극적으로 웃으며 정아에게 살갑게 대하자 정아는 마음이 편해졌다. 도진의 소문은 익히 들어 나쁘게 대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전 작가인 서작가와의 친분이 두터워 자신을 조금은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는데 그런 걱정 따위 지금의 도진의 행동에 사라지고 말았다. 정말, 듣던 대로 다정한 사람이구나. 정아는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였다.

 


“언제 오셨어요? 미리 알았으면 더 빨리 와서 기다렸을텐데.”

“아, 아니에요. 제가 일부러 일찍 온거에요.”

 


 정아가 손사래를 치며 당황해하자, 도진은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소문과는 다르게 너무나 소심하고, 무어랄까…… 귀엽다고 해야하나. 도진은 문득 든 알수 없는 느낌에 아까보다 더욱 환한 미소를 정아에게 지어보였다.

 


“뭐 마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있으면 같이 사오고.”

“아… 그냥 물 마시면 돼요.”

“그래요? 내용은, 어느정도 검토해 보셨어요?”

“일찍 와서 하고 있었어요ㅡ,”

 


 다행이네요. 도진이 생긋 미소 지으며 정아를 바라보자, 정아 역시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자신에게 먼저 살갑게 구는 사람에게 쉽게 호감을 갖는 정아라 더더욱 그랬다. 정아는 괜시리 어색해서는 옆에 놓인 생수를 그대로 들이켰고, 허둥지둥 대는 모습을 보던 도진은 작게 풋, 하고 웃었다. 정아의 시선이 도진에게 닿자, 도진은 아아- 하며 손사래를 쳤다.

 


“미안해요. 너무 귀여워서.”

“…네……?!”

“촬영 준비, 할 까요?”

 

 

 도진은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서는 그대로 촬영 스태프 들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런 말, 아무렇지 않게 말하다니……. 정아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두 뺨을 가리며 도진이 간 빈자리만을 바라보았다. 뭘까, 이 감정은……

 

 

「 너무 귀여워서. 」

 


 머릿속에서 자꾸 메아리 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자꾸만.

 


* * *

 

 

“컷! 수고 하셨습니다!”

 


 도진의 경쾌한 목소리에 모두들 뒷정리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모두 지치고, 힘든 촬영이였지만 도진만큼은 힘들어도 목소리 만큼 경쾌하고 밝게 소리쳤다. 자신들 보다 더 힘들 다른 사람을 위한 일종의 도진의 방법대로의 배려였다. 그런 도진을 알기에, 도진과 함께 일하는 그들은 항상 힘들어도 묵묵히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곤 했다. 그것이 나름 리더 도진의 방법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활기찬 마무리를 지은 그들은 바삐 움직였고, 도진도 뒷정리를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는 누군가를 발견하자마자 그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최작가님, 오늘 촬영 어떠 셨어요?”

“네? 아… 어떤 분위기 인지 대충 파악 되었고, 오늘부터 대본 작성 시작하려구요.”

 


 정아에게 다가가 살갑게 웃으며 묻는 도진에 정아는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쁜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전반적인 상황은 어떻고, 앞으로 어떤식으로 전개해야 재밌을지는 지후와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였다. 정아는 생긋이 웃으며 답했고, 도진 역시 미소를 입가에 계속 머금고 있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집에 가셔야지요?”

“아, 그렇죠.”

“뭐타고 가세요? 자가용?”

 


 도진의 물음에 정아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아니요, 지하철 타고 가면 돼요- 중앙역… 하고 작게 얘기 했더니 도진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아를 바라본다.

 


“중앙역이면 여기서 3번 정도 갈아타야하는 거 아니에요?”

“에… 맞는데… 왜요……?”

 


 놀란 듯 묻는 도진에 정아는 자신이 무언갈 잘못한걸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묻자, 도진은 무언갈 깊게 고민하는 듯 했다. 울림역 부근이라고… 낮게 중얼이던 도진은 이내 박수를 짝- 한번 치더니 가뿐한 표정으로 정아를 마주했다.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네?! 아, 아니… 안 그러셔도…”

“어차피 가는 길이네요. 겸사 겸사 바래다 드릴게요.”

 


 도진이 씨익, 미소 짓자 정아는 거절하기 못한채로 어버버 거렸다. 그럼, 뒷 정리 끝나고 봅시다! 하고 능청스레 사라지는 도진에 정아는 혼자 남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것은 도진 나름대로의 배려. 정말이지… 정아는 저도 모르게 나는 웃음에 그저 마음을 터놓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멈추지 않는 웃음에 정아는, 왠지 모르게 간질 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 * *

 

 

“오늘 촬영 괜찮았어요?”

 


 도진이 부드럽게 차를 몰며 괜시리 어색해서 손을 만지작 거리던 정아에게 물었다. 촬영장과 꽤나 거리가 되는 곳이라 가는 시간이 길었고, 그 시간은 정아에게 조금 더 길게 느껴지고 있을 즈음이였다. 도진의 물음에 정아는 긴장이 풀린 듯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대로 굉장하던걸요. 역시 대단하다-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요?”

 


 정아는 말에 도진은 기분 좋다는 듯 피식 거리며 웃었다. 정말 그 말을 하면서 정아의 두 눈이 반짝 거리던걸 도진이 보았으니까. 정말로 순수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도진이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며 우회전 신호를 받고, 집에 도착해갈 즈음, 도진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아, 하는 작은 탄식을 내뱉더니 이내 정아에게 휴대폰을 건냈다. 응? 정아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도진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최작가님, 나한테 번호 따이는 거에요.”

“에?”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얼른 번호 찍어요. 도진이 정아의 손에 자신의 폰을 쥐어 주며 미소지었다. 얼떨결에 정아는 폰을 받아 꾹꾹 입력했고, 번호를 입력하면서 자신의 번호를 말하는 정아의 행동에 도진은 또 한번 웃음을 터트려야 했다. 진짜 어른 맞아? 행동이 왜 이렇게 애기 같아. 도진은 미소 지으며, 어느새 도착한 정아의 집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정아가 조심스레 차 안에서 내리고, 그와 동시에 도진은 정아 쪽 좌석의 창문을 내려 정아를 바라보았다.

 


“내일부터 꾸준히 데리러 올게요.”

“네? 아니, 안 그러셔도……”

“제가 좋아서 그러는 거니까 놔둬요. 이제부턴 제가 태워줄테니까 걱정말고.”

 


 그럼, 좋은 꿈 꿔요. 도진은 정아의 대답도채 듣지 않고서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도진이 간 뒤, 그곳을 한참이나 멍하게 보던 정아는 두근 거리는 가슴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뭘까, 이 감정? 정아는 결국 한참 동안 그곳에 가만히 서 있어야만 했다. 너무, 두근거려서.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2]

 

 

 

 


 지이잉- 지이잉-

 


“……우음… 뭐야아…….”

 


 정아는 아까부터 들려오는 진동소리에 이불을 한번 홱 하니 덮었다가 손을 뻗어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누군지 확인 할 세도 없이 정아는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건너편에서는 알 수 없는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아침부터 뭐야…….

 

 

[ 아직도 자고 있어요, 정아씨? ]

“우음… 누구세요…”

 


 정아는 두 눈을 뜨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너무, 피곤해…. 정아는 그 생각에 가만히 휴대폰을 들고 혼자 웅얼 웅얼 거리기만 했다. 누구세여… 누구…… 하는 작은 애교 섞인 목소리에 여전히 건너편에서는 기분 좋은 웃음 소리가 퍼졌고, 정아는 아직 까지도 제정신이 아닌 듯 했다.

 


[ 오늘 촬영 있는데. ]

“촬여엉…? 저 배우 아닌데요오… 우움……”

 


 정아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고, 그냥 들리는 대로 대답했다. 여전히 정신이 없다는 거다. 그에 건너편에서는 작은 웃음소리가 어느 덧 크게 번졌고, 푸하하! 하는 웃음 소리를 듣고서야 정아는 조금씩 감긴 눈을 뜨며 상대가 누군지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누구세요…”

[ 정아씨, 오늘 촬영에 늦으면 안돼요. ]

“촬영… 촬영…… 도진씨…?!”

[ 정답. ]

 


 정아는 도진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눈이 저절로 뜨여졌다. 도, 도진씨가 왜 아침에 전화를……?! 정아는 잔뜩 당황해서는 자신이 아까 무슨 말을 했는지 되새겨 보려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을 기억할 리가 없다. 정아는 스스로 절망에 빠지며 어찌할바를 모른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여전히 큭큭 거리던 도진의 웃음이 서서히 멎자, 도진이 말했다.

 


[ 정아씨는, 잠버릇이 ‘애교’인가봐요? ]

“네? 아, 아니 그게……”

[ 자주 전화해야 겠네. ]

“…네?”

[ 늦지 않게 빨리 준비해서 나와요. ]

 


 뚝ㅡ, 예고도 없이 끊긴 전화에 정아는 휴대폰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제 처음 만난 사이 인데, 전화번호도 서로 땄었더랬다. 문득 드는 도진에 대한 생각에 정아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 대더니 낮은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빨리 준비해서 나가야겠다-”

 


 정아는 상쾌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펴며 미소 지었다. 평소 같았으면 피곤한 와중의 모닝콜에는 화를 내고 짜증이 나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오늘 아침은 쾌적하니 기분 마저 상쾌했다. 이게, 도진의 모닝콜 때문이라 문득 생각이 들었으나, 정아는 아니겠거니- 하며 옷을 챙겨 샤워실로 들어갔다.

 

 

* * *

 


 정아는 가뿐한 마음으로 집에서 나섰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으니, 오늘 하루는 무엇이든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아는 집을 나서서 제대로 문이 잠겼는지 확인한 뒤, 역으로 출발하려던 그 순간, 뒤에서 빵빵 거리는 컬렉션 소리가 들린다. 응?

 


“1시간 23분.”

“…어?”

“여기서 계속 기다렸어요.”

 

 

 도진이 창문을 열어놓고 창문 밖에 나와서 말하자, 정아는 순간 제 눈을 의심해야 했다. 눈을 한번 비빅 거려도 보고, 깜빡 거려도 보면서. 그러나 여전히 정아의 앞에는 어제 봤던 도진의 차와 도진이 있었다.

 


“나 여기 있는거 맞아요.”

“아… 어… 어… 어…?!”

“늦겠다. 얼른 타요.”

 


 정아의 놀란 표정에 도진은 작게 풋, 하게 웃더니 이내 얼른 타라고 손짓했다. 그냥 사람이, 뭐라고 해야하나. 순수하고 귀여운 것 같다. 도진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머뭇거리며 천천히 자신에게 오는 정아를 바라보았다. 정아가 어색하게 조수석에 올라타자, 도진이 정아를 보며 밝게 미소 지었다.

 


“좋은 아침, 정아씨.”

“헤에… 도진씨도요.”

 


 어? 이번에도 당황해하며 우물쭈물 거릴 줄 알았던 정아가 의외로 베시시 웃으며 답하자 도진은 뭔가 가슴에 찌릿 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만 같았다. 의외성이였다. 이렇게 예상했는데 다른 반응이 나오니까, 자꾸만 가슴이. 도진은 알수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잠은 푹 잤고?”

“으음, 그냥 그럭저럭? 도진씨는요?”

“나는 푹 잤지. 어제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도진은 그리 말하면서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런 도진을 보며 정아 역시 기쁜 미소를 짓던 찰나,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그, 그러고 보니… 도진씨, 호칭…”

“응. 딱딱하게 최작가님- 하는 것 보다는 ‘정아씨’가 낫지 않아요?”

“으… 어…”

“그리고 아까 방금, 정아씨도 나보고 도진씨라 불렀잖아요.”

 


 피차 일반 인 것 같은데-, 도진이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하자 정아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보니 도진을 따라 저 역시도 호칭을 달리하고 있었다. 딱히 싫어서가 아니라, 이건. 오히려…… 그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게, 그게 너무…… 좋아서. 정아는 무의식적으로 든 그 생각에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어느덧 촬영장에 도착한 둘은 차에서 내렸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스텝들은 도진과 정아의 등장에 서로 인사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같이 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에게, 도진은 여유롭게 웃으며 ‘오늘부터 정아씨의 전용 운전기사를 자처했답니다-’하고 시원스레 말했다. 그에 스텝들은 정아를 보며 부럽다며 저들끼리 꺅꺅 거렸고, 정아 역시 왠지 모르게 수줍어 지는 것만 같았다.

 


“정아누나!”

 


 그때, 지후가 정아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들며 기쁘게 다가왔고, 지후를 발견한 정아 역시 웃으며 지후에게로 다가갔다.

 


“일찍 왔네! 지각 할 까봐 걱정했는데.”

“씨이, 아니거든? 내가 맨날 지각하는 줄 아나!”

“하하. 농담이지. 같이 원고 검토하자.”

 


 지후의 말에 정아는 싱긋 웃으며 저 멀리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온갖 서류와 종이들로 가득한 그 아래에 노트북이 있었고, 노트북을 꺼내들어 어제까지 촬영했던 씬 다음 부분부터 펼쳤다.

 


“어제 집에서 검토 해봤는데, 이 부분이 우리 드라마에서 좀 중요한 부분이거든.”

“응, 응.”

“그래서 대사같은 거 신경써서 다시 봐야 할 것 같아.”

 


 지후가 노트북 화면을 가르키며 말하자 정아는 순식간에 집중하여 그 부분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 이 씬으로 인해 모든 드라마의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니 대사 하나라도 실수 없이 정확한 복선이 되도록 만들어야겠네. 정아는 그리 생각하며 대본에 대해 조금 더 집중했다. 그리고 그런 정아를 보던 지후는 살풋 미소 지었다. 여전하네, 저 집중력.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저 멋진 순간 집중력. 그래 놓고 정신 차리면 다시 귀여워 질거지? 지후가 옆에서 작게 풋- 하니 웃자, 정아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달고서 지후를 바라보았다.

 


“왜 웃어?”

“어? 아니, 그냥-”

 


 귀여워서. 지후는 뒷말을 삼키며 다시 정아에게 대본을 살펴보라며 일렀다. 정아는 뭔지 궁금했지만, 빠르게 드라마에 적응하기 위해 다시금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런 둘을 멀리서 촬영 준비를 하다 보게 된 도진은 괜시리 자꾸 가는 시선에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박지후 작가랑 많이 친한가 보네. 아까 ‘누나’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도진은 아까부터 스텝들을 도와 촬영 준비를 하면서도 눈에 밟히는 지후와 같이 있는 정아 때문에 틈이 나면 계속 그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원고를 작업하는 도중에도 웃으며 대화하는 둘을 보며 도진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환하게 웃는 정아의 모습. 아직까지 어색한 사람일 뿐인 자신에게는 짓지 않는 미소. 당연한건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릿 거렸다.

 


“피디님! 촬영 중비 끝났는데요!”

“…어? 아. 배우들 대기 시켜줘.”

 


 조연출의 말에 도진은 시선을 거두고서 애써 웃으며 촬영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친해지면 되겠지. 시간은 많으니까. 도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참 원고에 집중하던 정아는 계속 전자파가 나오는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어서인지 눈에 피로가 오는 기분이였다. 내일이면 다크써클이 이만- 큼 생기는거 아냐?! 정아는 그 생각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주변으로 던지던 찰나, 배우들과 스텝들을 조화롭게 조율하고 있는 도진의 모습이 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피디의 모습. 멋지게 사람들을 관리하는 저 대단한 리더쉽. 정아는 계속 해서 그런 도진을 바라보았다. 역시 사람은 일에 집중할 때가 가장 멋있다던가.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인 것 같았다.

 

 두근두근 -

 

 갑자기 요동치는 심장에, 정아는 당황스러웠으나 나쁜 느낌은 아니였다.

 

 

「 너무 귀여워서. 」

 


 어제부터 계속 도진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3]

 

 


 오늘의 마지막 촬영이 진행될 즈음이였다. 다들 피곤에 지쳐 있었으나, 도진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모두의 기를 북돋으려 노력했다.

 

 

“다들 힘드시죠? 30분만 푹 좀 쉬시고, 마지막 씬 촬영 들어 갈게요!”

 


 도진의 말에 모두들 자리에 앉거나 물을 들이키는 등 지친 티를 냈다.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에, 도진은 그 모습을 보며 뭔가 가슴이 짠했다. 도진도 조금만 쉬어볼까- 하는 생각에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는데.

 


“마음에 안든다니까!”

“그래도 힘들게 얻은 배역이니까… 응?”

 


 도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쉬고 있던 여배우 ‘유지애’와 매니저가 말 다툼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주변에 스텝이 있어 시선에 예민해야 할텐데. 도진은 그녀를 걱정하며 그곳에 시선을 두었다. 매니저와 그녀는 무어라 말을 나누더니 그녀는 화가 잔뜩나는 표정을 짓고서 매니저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듯 했다. 어?

 


“이봐요, 최작가님?”

“어… 네?”

 


 정아가 있는 곳으로 간 지애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정아를 날카롭게 내려다보더니, 이내 분을 이기지 못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어이 없다는 듯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지애는 말을 이었다.

 


“마지막 씬이요. 제가 꼭 이렇게 행동 해야 하나요?”

“네? 대체 뭘……”

“이런 식으로 제가 대사를 하게 되면 제가 여태껏 쌓아온 이미지, 최작가님이 어떻게 책임지실 건데요?”

 

 

 지애의 말에 정아는 잔뜩 당황해서는 지애가 건낸 시나리오를 받아 정확히 어느 부분인지 찾으려 했으나,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시나리오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어, 어……. 하며 당황하자 지애는 어이 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씬 넘버 56이요.”

“아…”

“작가시면서, 그것도 모르면 어떡해요? 어이없어.”

 


 지애는 답답하다는 듯 정아를 째리며 손 부채질을 해댔다. 지애의 말에 정아는 56번씬이 있는 곳을 펼쳐들었고, 지애의 역할이 맡은 대사를 살펴보았다. 어…… 이 대사는 안하면 안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나름대로 신경 쓴건데…. 정아는 그 생각이 들자 화가 잔뜩 난 지애를 설득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작게 말을 꺼냈다.

 


“아… 지애씨. 음, 이 부분은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상 빠질 수 없는 부분이에요. 지애씨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서……”

“됐고. 이 씬, 저 안할래요.”

“…네?”

“제 이미지랑 너무 달라져서 안되겠어. 안해요, 나.”

 


 
 지애의 말에 주변에서 보고 있는 스텝들도 당황해하며 저들 끼리 소곤거렸다. 유지애 또 시작됐다, 저 히스테리. 그러게. 착한 최작가님만 안됐지. 소곤 거리는 그 말을 싸그리 무시하던 지애는 정아를 잔뜩 째렸지만, 정아는 어떻게든 지애를 설득 시켜야만 했다. 그 생각으로 굳은 결심을 한 뒤 다시금 말을 이었다.

 

 

“수정도, 보완도 할 수 없습니다. 지애씨가 하는 대사에 우리 드라마의 흐름이 바뀌게 됩니다. 그런 중요한 것을 지금와서 바꿀수는 없……”

“하, 어이없어. 대타 주제에 어디서 끝까지 말대꾸야? 안 한다니까?”

“지애씨, 그러니까…”

“그 유명한 서 작가님 대타로 온 걸 보면, 보통 빽은 아닌가봐?”

 


 지애의 말에 정아는 말을 멈칫하며 지애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예쁘장하게 생긴게, 서 작가님 대타 정도 되려면 그 잘난 몸 하나 팔아야하지 않겠어?”

“…….”

“왜 아무말도 안해? 아, 정곡을 찔렀나?”

 


 지애가 잔뜩 비아냥 거리며 말하자, 이건 도가 지나친 것 같다- 라고 생각하며 잔뜩 화가 난 지후가 나서려던 순간, 정아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버렸다.

 


“거기까지 하시죠, 유지애씨.”

 


 도진이였다. 가만히 지켜보다 더는 안되겠다는 듯 도진이 해결하려 나타난 것이였다. 도진이 나타나자, 지애는 조금 당황한 듯 했다.

 


“가만히 지켜보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그치만 배우는 이미지가…!!”

“네. 중요합니다. 하지만 남을 비방하면서 까지 지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도진의 말에 촬영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지애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더니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평소 티비에서 보던 유지애씨의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이번 드라마에 캐스팅을 했고, 기대 이상으로 연기를 잘 해줘서 좋았었는데.”

“…….”

“실망이네요.”

 


 도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아의 팔목을 잡고서는 촬영장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사라진 도진과 정아에 혼자남은 지애는 부끄러움에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젠장!! 지애는 매니저 앞에서 욕을 해대며 불만을 토로했고, 주변 스텝들은 그녀를 보며 적지 않은 비소를 지었다. 그러게, 애초부터 잘했어야지- 하며.

 

 

* * *

 

 

 

 도진은 주변 스텝에게 부탁해서 받은 커피를 정아에게 건냈다. 멍하게 앉아 있는 정아는 충격을 받았는지 눈에 초점이 없었다. 충격 받을 만 했지. 드라마에 합류한지 얼마나 됐다고. 도진은 낮은 한숨을 내뱉으며 정아의 옆에 앉았다. 어디서부터 어떤 말을 건내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지낸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성격상 이런거 되게 신경쓰게 생겼던데. 도진은 가만히 있는 정아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더니 이내 커피를 건냈다.

 


“진정이 좀 돼요?”

“어, 어…….”

“후… 미안해요. 진작 막았어야 했는데.”

“아? 아, 아니… 도, 도진씨가… 그……”

 


 도진이 진심으로 한숨을 내쉬며 정아에게 사과를 하자, 정아는 오히려 당황해서는 손사레를 치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도진씨한테 사과 받으려고 이렇게 멍하게 있었던거, 절대 아니에요……! 정아가 급하게 말을하자, 도진은 피식 웃으며 알아요. 하고 답한다.

 


“그런게 아니라, 미리 막지 못했던 제 잘못이야. 피디로써 책임감 없게 행동한 셈이죠.”

“아, 아니에요… 도진씨는 얼마나 멋지게 잘 해주시는데…!”

“하하, 정말요? 그 말, 듣기 좋네요.”

 


 도진은 정아에게 기분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는 정아도,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기도. 이렇게 단순하지만 그 모습이 귀여운건, 콩깍지가 벌써부터 씌인건가. 도진은 생각하며 피식 미소 지었다.

 


“커피 마셔요.”

“네? 아… 고맙습니다…….”

“여기, 굉장히 맛 좋아요. 유명한 집이라구요.”

 


 내가 사실은 커피 마니아인데, 어떤 집을 마셔봐도 여기만큼 맛있는 곳은 없더라구요. 도진이 장난스레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정아에게 속삭이자, 가까이 다가온 도진의 얼굴에 정아는 마치 얼굴이 터질 듯 빨개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뭐, 뭐, 뭐지?! 도진의 시원한 향수냄새가 코끝을 지나가서인지, 정아는 더더욱 부끄러워했다.

 

“커피 좋아해요?”

“네? 아… 카페모카…… 좋아해요.”

“어, 정말? 달달한거 좋아하나봐요?”

“으음… 네.”

 


 정아가 쑥스럽다는 듯 코를 만지작 거리며 대답하자 도진은 귀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어떻게 행동 하나하나가 다 어린애 같아요? 도진이 묻자 정아는 아, 아, 아니에요……!!! 하고 대답했다. 그 모습이 또 어찌나 귀엽던지. 당황하면서도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아니라고 대답하는 모습이란. 도진은 귀엽다는 듯 한번 더 미소 짓더니, 이내 정아의 어깨를 툭- 하니 쳤다.

 


“자, 촬영 마무리 하고 집에 가요. 데려다 줄게.”

“고,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빨리 가요. 도진이 다시한번 정아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고, 먼저 앞서 나가는 도진을 바라보던 정아는, 고개를 푹 숙여 얼굴을 붉혔다. 뭔가, 알 수 없는 기분. 자꾸만 두근두근 거리는게 딱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약 몇시간 뒤, 뒷정리가 모두 끝나고서 한 두명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장비들이 모두 사라진 촬영현장에 이제 남은 사람은 몇 없었다. 그때, 도진이 갑자기 집중하라는 듯 박수를 짝- 하니쳤고, 남아있는 스텝과 배우들은 그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우리 끝까지 힘내자구요! 조심해서들 가세요.”

 


 도진의 마지막 까지 활기찬 말에 모두들 밝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런 도진을 보며 정아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도진도 갈 준비를 다 하고서는 읏차- 하고 짐을 챙기더니 정아에게 시선을 던지며 자신 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 했다.

 


“에…?”

“빨리 타요. 더 늦게 전에 집에 도착해야지.”

“네, 네?”

“데려다 준다고 그랬잖아요. 왜 그러나? 새삼스럽게.”

 


 도진이 빨리 타라는 듯 재촉하는 손짓을 하자, 정아는 엉겁결에 도진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고, 도진도 마무리를 끝냈는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안전벨트를 맸고, 도진을 따라 정아도 안전벨트를 허겁지겁 맸다. 뭔가 잔뜩 긴장해서는 우물쭈물 거리는 정아를 보자니 도진은 그저 웃음이 풋- 하고 터졌다.

 


“내가 잡아 먹기라도 해요?”

“네, 네?”

“왜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도진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차를 출발했고, 정아는 그저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다. 내가, 많이 당황했었나……. 정아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도진을 보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자신을 속으로 계속 탓했다.

 


“아까 준 커피는, 맛있었어요?”

“네? 아… 정말 달달하고 좋았어요.”

“진짜? 다행이네. 난, 정아씨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럼, 다음번엔 같이 갈 수있겠다. 도진이 작게 중얼이자 정아는 잘못들은 듯 에……? 하며 되물었지만, 도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맛있었다니 다행이다. 도진이 혼자 생각하며 작게 휘파람을 불자, 정아는 그런 도진을 보며 풋- 하니 웃었다.

 


“기분 풀린 것 같아 다행이네.”

“아…….”

“정아씨는 몰랐을걸. 내가 정리하면서 얼마나 정아씨 걱정 많이 했는데.”

“에?”

“그래도, 이렇게 풀린 것 같아 다행이에요.”

 


 도진은 앞만 계속 응시하며 말을 이었고, 그런 도진을 보자니 아까보다 더 부끄러워진 정아는 그거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새빨갛게 익혀놓고 있었다. 우으,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정아는 민망하다는 듯 어찌할바를 몰라하는 사이, 정아네 집 앞에 도착했고, 도진은 집 앞에 바로 끼익- 차를 세우고선 정아를 바라보았다.

 


“벌써 도착이네. 너무 아쉽다.”

“내, 내일도 보는 걸요, 뭐….”

“아, 그랬지 참. 조심해서 들어가요.”

 


 태워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정아는 차 안에서 내려, 그대로 차 안에 있는 도진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했고, 도진은 그런 정아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아는 도진에게 똑같이 답인사를 하고서 들어가려고 뒤로 돌던 찰나, 갑자기 도진이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더니 얼굴을 내밀어 정아를 불렀다. 응? 하며 뒤돌아보는 정아를 향해 도진은 한번 더 미소 짓는다.

 


“웃는 게 더 예쁜거 같아, 정아씨는.”

“에, 에?”

“그럼, 푹 자고 내일 봐요.”

 


 정아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채 도진은 다시 운전석에 타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더니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혼자 남은 정아는, 사라져만 가는 도진의 차를 바라보며 가슴을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다. 두근두근.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이였다.

 


“뭐, 뭐야…….”

 


 가슴 두근거리게….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4]

 

 


“안녕하세요! 모두들 좋은 아침!”

 


 아침부터 들려오는 촬영장에서의 밝은 목소리에 촬영장에는 미소가 번졌다. 예쁘장하게 생긴 여성이 밝은 미소를 가지고 자신이 사온 음료수를 한명 한명에게 돌렸다. 그걸 받은 스텝들은 그를 매우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었다.

 


“오랜만이네, 이피디님! 김피디님은 조금 늦게 올것 같은데-”

“일부러 일찍온거에요! 놀래켜 주려고!”

 

 

 이번에 제가 담당했던 드라마가 성공리에 끝마쳐서 기분이 좋아 도진이 보러 온거에요! 은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주변 스텝들도 똑같이 기분이 좋아지는 듯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이피디님 오니까 촬영장 밝아지고 좋은데요? 그 말에 은영은 수줍게 웃었다.

 

 

“어? 김피디님 오셨어요?”

“모두들 좋은아… 어?”

“짠! 서프라이즈!”

 

 

그때 마침, 도진과 정아가 촬영장에 도착했고 환하게 웃으며 도진이 주변 스텝들을 둘러보고 있을즈음, 낯익은 얼굴에 도진은 살짝 멈칫-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같은 드라마피디이자 도진과는 알만한 사람들만 안다는 비밀 연애를 하고 있는 은영이였다. 놀란 도진이 아침인사를 하다말고 은영을 바라보았고, 도진을 발견한 은영은 생긋 미소 지으며 도진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고, 그 모습을 보던 정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긴 왠일이야. 드라마는?”

“성공리에 끝마치고 오는 길이지! 놀랐어?”

“…엄청.”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에 도진은 조금 당황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색하게 은영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같이온 정아의 눈치를 보더니 발걸음을 조금 옮겨 정아의 팔목을 남은 한 손으로 잡고 이끌었다. 그에 은영은 머리위에 물음표를 띄워 정아를 바라보았고, 작게 흐응…, 하더니 도진을 바라보았다.

 


“누구야, 이 분은? 처음보는데.”

“아아, 서작가 대신 들어온 메인 작가님.”

“아! 최정아 작가님!”

 

 

 도진에게 정아의 정체에 들은 은영은 무언가 알겠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정아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더니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정아에게 남은 한 손을 내밀었다, 도진의 팔에 팔짱을 낀 채로.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이은영 피디라고 해요.”

“아…, 안녕하세요.”

“최작가님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어요. 중간에 투입됐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스토리를 구사하고 있다고들 하더라구요.”

 

 

 은영이 호감있게 생긋- 미소지으며 악수를 권하자, 정아는 은영의 손읊 다급하게 잡고서는 똑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처음 만난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정아의 성격도 있었으나, 아무래도 도진과 너무 친해보이는 것이 신경쓰이긴 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냥 조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정아가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하자, 은영은 아까보다 더 서글서글 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 둘을 보던 도진이 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나타났고, 조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정아를 바라보았다.

 

 

“아아, 정아씨. 여기는 저랑 친한 피디 이은영이에요,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네? 네… 몇 번…”

“실은, 정아씨가 엄청 친근해 보여서 드리는 말씀인데-”

 


 은영은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려는 듯 정아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했고, 그에 자동으로 정아도 은영을 따라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그런 정아의 행동에 귀엽다는 듯 미소 짓던 은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아에게만 들릴정도로 중얼였다.

 


“나랑 도진이랑… 사귀는 사이에요.”

“네…?!”

“정아씨, 쉿. 쉿.”

 


 은영의 말에 놀란 정아가 소리치며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의외의 사실에 은영과 도진을 바라보았다. 그에 도진은 난감하다는 듯 정아에게 옅은 미소를 지었고, 은영은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가져다대며 아이를 어루달래듯 쉿, 쉿 거렸다. 그런 은영을 보며 정아가 뒤늦게 쉿…, 하며 작게 중얼였고, 정아의 반응에 재밌다는 듯 은영은 꺄르르 웃었다.

 

 

“정아씨 반응 너무 재밌다!”

“그만놀려. 작가님인데.”

“아, 죄송해요 정아씨!”

 

 

 도진의 저지에 은영은 입가에 여전히 웃음을 매달고서는 정아를 바라보며 사과를 했다. 사귀는 사이, 사귀는 사이… 애인. 정아는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맴도는 그 단어에 머리가 아파왔다. 도진씨가 누구가랑 사귄다는 게 왜 이리 신경 쓰이는건지. 가슴이 급하게 뛰어대는 기분이다.

 


“나 촬영해야 되니까 저기서 좀 기다려.”

“알겠어-”

“그리고 정아씨는, 음, 촬영준비 하고.”

“…물론이죠.”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 신경쓰이는 탓에 정아는 도진의 다정함에 그저 고개를 푹 숙인채로 지후가 있는쪽으로 달려갔다. 둘이 다정해 보이는 모습이 뭔가 보기가 싫었다. 거의 도망치듯 지후에게로 온 정아는 자신을 환하게 반기는 지후를 보자니 마음이 뭔가 힘들었다. 불청객, 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고 있었다. 솔직히 도진과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그저 사이를 정해놓자면 드라마피디와 작가-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 왜 자신은 자꾸 이상한 감정이 드는 것인지. 정아는 머릿속에 혼란을 겪으며 지후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일찍 왔네?”

“우씨, 지각 안한다니까!”

“예전에 맨날 맨날 지각해서 내가 고생했던게 기억나는데-”

 

 

 지후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자 정아는 입술을 삐쭉이며 그런적 없는데…, 했고, 그런 정아를 보던 지후는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빨리 촬영 준비를 위해 원고 검토를 하자는 정아의 다그침에 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을 표현했고, 노트북을 펼쳐 들어 원고파일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조금 어색한것 같기도 해서 수정 하고 싶은데…”

“…….”

“누나?”

“어, 어?!”

 

 

 시나리오에 대해 진지하게 회의를 하려했던 지후는 잠시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멍을 때리는 정아에 의해 그러하지 못했다. 정아가 바라보고 있는 곳이 어딘가 싶어 지후가 똑같이 바라보았더니, 그곳은 바로 도진과 은영이 있는 곳이였다.

 


“그런걸 왜 말해.”

“우리 도진이가 데려다주는 걸 보면 엄청나게 특별한 사람일것 같아서-”

“어째서?”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그런 직접적인 호의를 보인다는건 관심이 있다는 거니까.”

 


 은영이 웃으며 도진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정아는 그냥 묘한 기분이 들었던 거다. 무슨 내용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그런 정아의 시선을 눈치챈 지후는 정아를 바라보며 묘한 느낌을 받으며 애써 웃었다.

 


“누나! 얼른 검토해야지.”

“…어? 으응.”

 

 


* * *

 


어느 덧 촬영 중간 중간에 있는 쉬는 시간이 되고, 은영은 한참을 촬영현장에 있다가 바쁘게 회의가있다며 가고 난 뒤였다. 촬영을 총괄하느라 바빠보이는 도진에 은영은 인사는 하지 못하고 주변 스텝들에게 늘 그렇듯 활기찬 인사를 남겨놓고서 가버렸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오랜만의 만남이였으나 여전히 밝은 은영을 보자니 스텝들은 조금 안심된다는 마음을 느꼈다.

 


“커피 마시나봐요?”

“아…”

 


 그리고 도진도 쉬는시간을 위해 어느 정도 정리 해놓은 뒤, 다른 스텝이 단체로 사온 커피를 들고서 두리번 거리다 정아가 혼자서 쉬고 있는 것을 보고서 정아의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저번에 사준 커피.”

“응?”

“너무 맛있어서……”

 


 끝맺음이 없는 정아의 말에 도진은 알겠다는 듯 풋- 하며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먹고싶었다- 이거지? 도진은 계속 나오는 웃음에 눈가를 곱게 접으며 정아를 바라보았다.

 


“가면 갈수록 촬영 많이 힘들죠?”

“아니에요. 그만큼 인기가 있어지니까 좋은걸요.”

“탄탄한 스토리 덕분이에요. 정아씨가 매일 수고 하니까-”

 


 도진의 말에 정아는 놀란 토끼눈으로 도진을 바라보았다.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도진씨가 잘 이끌고, 배우들이 잘해주고, 그러니까…… 당황한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여웠던 도진은 그저 은은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런 도진의 미소를 보자니 정아는 마음이 복잡했다. 갑자기 다가온 도진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물론이요, 무언가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까 도진과 사귄다는 은영을 본 뒤로부터 그랬지만, 정아는 설마 하는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다음에도 커피 사줄게요.”

 


 그러나, 자꾸 자신의 옆에서 다정하게 잘해주는 도진을 보자니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질투, 라고 결론 내리기에는 뭔가 부족했지만, 그래도. 정아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도진에게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애인… 있다는 말은 한 적 없잖아요…….”

 


 정아의 말에 도진은 커피를 마시던 손을 잠시 멈칫. 응? 하는 눈빛으로 정아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서야 깨달은 정아는 놀라서 으아아……, 하는 작은 신음을 내뱉었고, 그런 정아를 보며 도진은 아까보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정아를 바라보았다.

 


“와. 정아씨 지금 나, 질투해주는 거에요?”

“…에?”

“정아씨 귀엽네.”

 


 도진의 말에 정아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그걸 보이지 않기 위해 그대로 책상위로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그런 정아를 다 안다는 듯 바라보던 도진은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향한 정아의 질투가 너무 귀엽고, 고맙고, 또…… 사랑스러워서.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5]

 

 


 모든 촬영이 끝나고, 도진이 정아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집에 들어가서 푹 쉬어요. 고생한 만큼 푹 쉬면 몸도 괜찮을거야. 하고서 정아를 걱정하는 도진의 마음씨에 한번더 두근, 정아는 그 마음을 애써 부여잡은 채로 빠르게 집에 들어서야만 했다.

 


“…이상해, 이상해.”

 


 정아는 집에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 입은 뒤, 아까 낮에 느꼈던 그 감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도진씨는 정말 좋은 사람. 그러나 그 사람에겐 애인이 있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 알 수 없는 투정부림과 질투. 복잡한 감정이 누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얽혀서 정아를 괴롭히고 있었다. 정아는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다시금 고민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질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질투’라는 건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감정…… 아냐? 정아는 그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도진씨 좋지. 좋은 사람. 그렇지만…… 연인이 있다는 것을 보고서 질투를 느꼈다는 건 즉, 나도 그 사람의 연인이 되고 싶어 하는 그런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정아는 거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스스로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래선 안돼, 최정아. 애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선 안돼, 응.”

 


 정아는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정의내려놓고서는 마음이 편하게 자러 가려고 했으나, 문득 떠오르는 도진의 모습과 미소, 그리고 다정함이 녹아내리는 그 말투에 다시금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두근두근 -

 


“…도진씨…….”

 


 정아는 도진의 생각에 가슴을 부여잡은채로 얼굴이 새빨개져야만 했다. 침착하자, 최정아…….

 

 


* * *

 

 


 그렇게 오늘 아침도 똑같이 도진이 데리고 와서는 정아와 함께 촬영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제 고민하느라 내내 잠을 자지 못했던 정아라 눈 빛이 퀭해서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채로 의자에 기대어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어제 제대로 못 잤어요?”

“네, 네? 아……”

“일찍 자라니까. 무슨 고민 있어요?”

 


 네. 있어요. 너 때문이요, 너. 정아는 차마 대답하지 못한채로 아…… 그냥 잠을 좀 뒤척였어요……. 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 말에 도진이 걱정스럽게 정아에게 대했으나, 정아는 어제의 그 결론에 어떻게든 거절해야할 것 같아 괜찮다는 듯이 최대한 도진의 손길을 피했다. 그런 정아에 의아해핬던 도진이였으나 지금 중요한 것은 운전이였기 때문에 별 수 없이 촬영현장으로 빠르게 향했다.

 


“모두들 좋은 아침입니다! 정아씨, 얼른 촬영 준비 해주세요-,”

 


 도착하자마자 도진은 밝은 아침 인사와 함께 정아에게 할 일을 주어주고, 자신도 빠르게 촬영중비를 하기위해 몸을 움직였다. 빨리, 얘기해야하는데. 정아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도진을 붙잡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엄청나게 바빠보이는 터라 그러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아는 여전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지후 쪽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피디님이랑 많이 친해졌나봐? 어색해보이지도 않고.”

“어, 어?”

“그냥. 둘이 되게 친해보여, 가만 보면.”

 


 자리에 앉자마자 뜬금없이 도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지후에 정아는 살짝 움찔 거렸다. 너, 너가 갑자기 그런 말 하니까 놀랬잖아…! 정아가 뭔가 찔리는 투로 얘기하자 지후는 그저 머리위에 물음표를 매달았다.

 


“내가 뭘?”

“아, 모, 몰라…! 빨리 검토나 하자!”

 


 정아는 혼자 찔려서 내뱉은 말을 다시 되새기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이게 아닌데. 정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억지로 시나리오에 시선을 집중하려고 했고, 그런 정아를 보며 지후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 누나는 이렇게 화내는 것도 귀엽냐- 하고 생각하면서.

 


 계속 검토하면서 정아는 집중이 되지 않는 기분을 느꼈다. 아으, 지금 이거 검토할 때가 아닌데. 빨리, 얘기 해야 하는데……. 정아는 평소에 하지 않던 깊은 생각에 미친 듯이 고민을 해야했다. 복잡한 건 싫어해서 정아는 보통 복잡하고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 도진에 관한 문제는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아가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그대로 책상위로 엎드리자, 걱정됐던 지후가 정아의 어깨를 흔든다.

 


“뭐야, 누나. 무슨 일 있어?”

“아으으……, 몰라아. 미치겠어, 지금…….”

 


 정아가 지후의 걱정에 미치겠다며 대답하자 지후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달며 물었다. 무슨 일 있는거야? 하고 묻자, 정아는 진심으로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지후를 바라보았다. 나 어떡해 지후야.

 


“내가 정말, 진지하게 도진씨에게 할 말이 있는데…”

“응, 있는데.”

“…못하겠어.”

“어?”

 


 왜 못해. 그냥 하면 되는거지. 지후가 말하자 정아는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그러고 싶은데 마음이 잘 그리 되지가 않고, 도진씨는 바빠 보이고……. 정아는 뒷말을 삼킨채로 그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떡하지, 진짜 어떡하지. 정아는 계속 고민했고, 그런 정아를 고민하던 중, 지후는 두리번 거리다 우연찮게 도진과 시선이 마주쳐 버렸다.

 


“…….”

“…….”

 

 먼저 시선을 돌린 쪽은 도진. 아까부터 고민이 있어보이는 정아가 걱정되서 감독을 하다가도 정아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런 도진의 마음을 들킨 것같아 도진은 민망해서 지후와의 시선을 계속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 도진을 보던 지후는 묘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정아를 흔들어 깨웠다.

 


“누나. 누나.”

“아, 왜에…….”

“지금 피디님 시간 있는거 같은데, 한번 가서 말해봐.”

“어어……?”

 


 지후의 말에 정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진에게 시선을 던졌고, 혼자서 물을 한모금 마시며 쉬고 있는 듯한 도진이 정아의 눈에 비춰졌다. 그에 정아는 더도덜도 말고 빠르게 도진쪽으로 다가갔고, 정아가 자신에게 왔다는 것을 눈치챈 도진은 머리위에 물음표를 달고서 정아를 바라보았다.

 


“어, 정아씨?”

“저, 저… 도진씨… 제가 도진씨한테 할 말이 있는데요……”

“아. 해봐요.”

 


 도진이 정아 쪽으로 몸과 시선을 돌렸고, 그에 정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도진이 조금 한가로워 보이는 틈을 타서 어떻게든 오늘 안에는 얘기 해야만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지체할 수가 없었다. 정아는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두 눈을 감고서 도진에게 소리쳤다.

 


“우, 우리 누나, 동생 사이…… 해요.”

“네?”

“마, 말 그대로에요….”

 


 정아가 큰맘 먹고 얘기한 것에 대해 도진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되묻자, 뭔가 자신이 잘못한 듯한 기분을 느낀 정아가 목소리를 작게 낮추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누나, 동생 사이 하자구요……. 정아가 다시 한번 말하자, 도진은 아까의 밝은 표정과는 다르게 조금 굳어 있었다. 내, 내가 정말 잘못한 건가……? 정아는 도진에게서 아무말이 없자, 무언가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며 도진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그냥. 서로 편하게 누나, 동생 하면서 지내는게……”

“싫어요.”

“…네?”

“저도 말 그대로에요.”

 


 도진의 거절의사 표현에 정아는 당황스럽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에? 하며 되물었다. 그러나 도진은 심술을 부리는 것인지 정아가 말했던 그대로 대답하고 있었고, 정아는 그저 멍- 한 표정으로 도진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게 뭐야. 내가 예상했던 대답이 아닌데……? 정아는 당황스러워 하며 도진을 바라보았고, 그런 정아의 시선을 눈치챈 도진은 낮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모두 똑같이 나보고 동생, 거리고 나도 누나, 거리고 그러는데.”

“…….”

“정아씨 한테는 누나, 거리는거 싫어요.”

“…….”

“저는 정아씨와 좀 더 특별한 사이 하고 싶다구요.”

 


 남들이랑 다 하는 ‘누나, 동생 사이’ 말고 조금 더 특별한, 그런. 도진이 뒷말까지 잇자, 정아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는 정아씨와 좀 더 특별한 사이 하고 싶다구요. 그 말이 왜 자꾸 정아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인지. 정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 했고, 그런 정아를 보던 도진은 피식 거리며 웃었다.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요. 알겠죠?”

“아, 알겠… 어요.”

“자. 촬영준비 해요, 이제.”

 


 도진이 씨익 웃으며 정아의 어깨를 살짝 툭- 쳤고, 그에 정아는 얼굴이 터질 듯 붉어져 있었다. 저는 정아씨와 좀 더 특별한 사이 하고 싶다구요.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의 목소리가.

 


“아으…… 어떡하면 좋냐, 최정아.”

 


 미친 듯이 기뻤다. 정말… 정말로.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6]

 

 


“오늘은 일찍 나와 있었네요?”

“아…….”

 


 정아는 어제 잠깐 틈이 나서 돌아다니다가 구매한 물건을 전해주기 위해 최대한 일찍 준비를 했다. 뭐라고 말하면서 줄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그 고민에 밤을 새야만 했고, 아침에는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거 빨리 준비 해서 나서자ㅡ, 하는 마음에 빠르게 나와 있었고, 그걸 보며 도진은 놀랍다는 듯 큭큭 거렸다.

 


“최작가님이 그러던데, 정아씨는 항상 지각 대장이였다고-”

“씨이…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 지각 안해요!”

“푸흐. 알았어요, 알았어요.”

 


 도진은 부드럽게 핸들을 꺾으며 미소 지었다. 그런 도진의 옆모습에도 정아는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던 이유는 자꾸만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탓이였다. 정아는 자신이 들고 있는 이 상자를 건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도중, 정아는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두 눈을 꾸욱 감고 도진에게 상자를 건냈다.

 


“응? 이건 뭐에요?”

“아… 목도리… 인데요…”

“목도리? 갑자기 이건 왜?”

“그… 지나가다가, 그냥… 생각나서 샀어요.”

“…어?”

 


 운전하다 말고 정아가 건내는 상자에 도진은 답지 않게 조금 당황을 했었더랬다. 뭐냐고 물었더니 얼굴이 새빨개 져서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채로 답하는게 조금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목도리라는 말에 도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각나서 샀어요?”

“아… 네.”

“그럼 계속 내 생각하면서 걸어다녔겠네?”

“네…… 네?!”

 


 도진의 말에 정아는 깜짝놀라 당황스럽다는 듯 손을 파닥 거리며 그런거 아니라고, 그냥 지나가고 있었는데 목도리를 보자마자 도진이 떠올랐을 뿐이라는 거다. 그런 정아를 흐응…, 하며 바라보던 도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정아는 나름대로 안심된다는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던 정아를 향해 도진은 미소 지으며 물었다.

 


“정아씨 나 좋아하나봐. 이렇게까지 생각해주고.”

“…에?”

“내 생각하고, 이렇게 사주는거 보면 나 좋아하는거 아닌가?”

“아, 아니에요… 아니… 아니에요!”

“그래요? 아쉽네. 난 정아씨가 나 좋아해줬으면 좋겠는데.”

 


 도진이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운전을 하자, 정아는 무언가 당혹스럽다는 듯 손을 파닥파닥 거리며 변명을 하려 애썼다. 그, 그렇다고 도진씨가 싫은게 아니라… 좋아…… 하는데요… 그러니까……, 잔뜩 당황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자, 도진은 그저 재밌다는 듯 씨익 미소 지을 뿐이였다.

 

 

“걱정하지마요, 장난 친거니까-.”

 

 


* * *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며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도진을 기준으로 모든 스텝들이 NG한번 없이 깔끔하게 가기 위해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었더랬다. 평소 같았으면 도진 역시 바삐 움직이며 스텝들이 해야할 일을 자신이 거두면서 빠른 준비를 했을텐데, 오늘따라 도진의 상태가 그닥 좋아보이진 않는다. 커피를 한손에 들고서는 그대로 마시지도 않고 식어가고 있는지도 모른채로 무슨 생각에 빠져있는 듯 했다. 그런 도진을 계속 보기만 하던 정아는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건가- 싶어 걱정되는 마음에 천천히 다가갔다.

 


“도진씨.”

“…어, 어? 아… 정아씨네.”

“아까부터 뭘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래요.”

“아……,”

 


 도진은 자신의 어깨를 톡톡 친 사람이 정아라는 것을 파악하고서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도진을 보자니 더더욱 걱정되는건 마찬가지고. 정아가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도진에게 지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에요?”

“어? 아… 생각 아니고, ‘상상’하고 있었어요.”

 


 응? 도진의 뜻밖의 말에 정아는 머리위에 물음표를 달고서 다시금 물었다.

 


“무슨 상상이요?”

“음… 나쁜 상상.”

“나쁜 상상이요?”

“응.”

 


 정아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도진에게 물은 건데, 오히려 궁금증이 더 생긴 것 같은 기분에 다시금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런 정아가 귀여워서 도진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정아는 도진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내 작게 입을 뗐다.

 


“얘기해줘요.”

“어? 안되는데… 진짜 나쁜 상상인데.”

“그래도…….”

 


 정아는 다급하게 도진의 말을 붙잡았다. 진짜 궁금하게 해놓고 말 안해주는거, 너무 밉잖아. 정아는 간절한 눈빛으로 도진을 바라보았고, 그 눈빛을 눈치챈 도진은 그저 푸스스,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말해요?”

“으응. 말해줘요.”

“그럼, 이거 듣고 나 나쁘게 보면 안돼요.”

“걱정마요.”

 


 나, 도진씨는 절대 못 미워 할거니까- 정아가 덧붙이자, 도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조금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혼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천천히, 입을 뗐다.

 


“음…… 아주 만약에, 지금 사귀는 사람과 헤어지만 어떨까- 하는 그런 상상.”

“에?”

“말 그대로에요.”

“……아주, 나쁜 상상이네요.”

 


 정아는 도진의 말을 되새기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였더니, 도진은 그 말을 듣고서는 푸스스, 하고 웃어버린다. 자신의 터무니 없어 보이는 말에도 이렇게 진지하게 들으며 반응하는 정아가 귀엽다고나 할까. 그냥 그랬다, 도진의 눈에는. 그런 정아를 바라보며 도진은 눈을 곱게 접으며 웃더니, 시선이 겹치며 말했다.

 


“그런데, 이 상상을 하는 이유가 아주 가까이에 있어요.”

“…에?”

“말 그대로에요ㅡ,”

 


 도진은 그 말을 한마디 던져놓고서는 다시금 푸스스,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커피 한모금을 마시며 스텝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혼자 남은 정아는 그 말을 곱씹어 보며 해석해보려 했으나,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가까이에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정아가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스텝들 사이에 끼여서 보고 있던 도진은 그저 은은한 미소를 지을 뿐이였다.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7]

 

 


“짠! 도진아!”

 

 

 은영의 두 번째 방문이였다. 이번에도 먼저 와서는 주변 스텝들에게 음료수와 먹을 것을 나눠주며 사람들을 챙기고 있던 사이, 도진과 정아가 등장했고, 그 모습을 보며 은영은 도진에게로 다가가 같이 있는 정아에게도 반갑게 미소 지었다.

 


“연락도 없이 오면 내가 당황스럽……”

“놀래켜줄려구. 그리고 요즘 바빠서 연락도 잘 못하잖아.”

 


 은영이 생긋 웃으며 도진에게 팔짱을 꼈고, 정아는 그런 둘을 보며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뭔가, 도진과 단 둘이 있을때는 은영이라는 연인이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는데, 은영과 함께 있는 도진을 보자니, 정말 제대로 마음에 박힌다는 느낌이 든달까. 정아는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지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늘상 지각하지 않는 누나를 보면, 뭔가 느낌이 이상해. 어색하달까.”

“우씨, 아니라니까!”

 


 그런 정아의 씁쓸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후는 생글생글 웃으며 정아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장난을 치고 있었고, 그런 지후의 마음을 알고 있는 정아인지라 그저 웃으며 받아주고 있었다. 지후는 빠르게 화제를 전환하며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피디님께 얘기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이 부분에서 대사가 조금 어색하다고, 수정을 부탁받았거든.”

“어? 아, 이 부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잘 됐다, 수정 시작하자.”

 


 정아와 지후는 서로 스토리 얘기를 나누며 이런저런 대사를 생각해내고 있었고, 그에 관한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그런 정아와 지후의 모습을 보던 도진은 은영과 함께 있음에도 자꾸 시선이 가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은영이 자신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도진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은영이 되물을 때 그냥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기만 할 뿐이였다.

 


“…도진아?”

“…….”

“진아, 도진아.”

“어, 어? 아… 미안. 뭐라고 했어?”

 


 그런 시선을 어느정도 눈치 채고 있었던 은영은 도진을 다급하게 불렀고, 설마- 하던 마음에 역시나가 되어버렸다. 아까부터 계속 자신과의 대화 도중에 어느 쪽을 바라보나- 싶어 똑같은 곳으로 시선을 던졌더니, 그곳에는 정아와 지후가 있었던 것이다. 은영은 설마 설마 했지만 자신의 말에 집중하지 못한 도진을 보자니 조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까부터 내가 무슨 얘기 했는지 기억은 나?”

“어, 어?”

“오랜만에 왔는데, 나는 다른 사람을 신경쓰는 김도진을 봐야 되는 거지?”

 


 은영의 다그침에, 도진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였으니까. 은영의 말이 모두 거짓없는 사실이였으니까. 도진답지 않게 조금 당황하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던 도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안되겠다는 듯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도진의 행동을 하나하나 따르는 은영의 시선이 눈에 띄었고.

 


“일단, 촬영 준비 때문에 바쁜거 같으니까 먼저 가봐.”

“…뭐?”

“우리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그만큼 더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 일단은 가라.”

 


 도진의 말에 은영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흘리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진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가버렸다. 그런 은영을 보던 도진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아아아!!! 하며 소리치더니, 혼자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낮게.

 


“후…… 미치겠네, 정말.”

 

 


* * *

 

 

“도착했어요.”

“아아…….”

 


 아까 낮의 일 때문인지, 정아는 왠지 집에 가는 이 차안에서도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두 눈을 감고 피곤한 척 하며 빨리 집에 도착하기를 바랬다. 그런 정아를 계속해서 흘끗 보던 도진이였지만, 왠지 알 것 같다는 기분에 가만히 두었다. 그렇게 도착한 정아네 집에, 정아는 다급하게 안전벨트띠를 푸르고서는 조수석에서 내렸다.

 


“데려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들어가볼게요.”

“아… 응. 좋은 꿈 꾸고.”

 


 정아는 도진의 말에 은은하게 미소 짓더니, 그대로 뒤를 돌아 집으로 들어서려고 하던 그 찰나였다. 도진은 정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안되겠다는 듯 차안에서 내려 차 문을 세게 닫았고,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본 정아의 팔목을 붙잡아 자신 쪽으로 이끌더니, 그대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으읍…?!”

 


 놀란 정아가 손과 팔을 버둥버둥 거리며 벗어나려 했으나, 도진은 그러면 그럴수록 한손으론 정아의 허리를, 남은 한 손은 정아의 뒤통수를 붙잡고서 집요하게 입을 맞췄다. 놀란 탓에 벌려져 있던 정아의 입가 사이로 혀를 다급히 집어 넣었고, 이성을 흔들어 놓을 만큼 진한 키스가 시작되었다. 잇새 사이로 흘러나오는 정아의 신음에 도진은 허리에 두르고 있던 팔을 더더욱 자신쪽으로 당겼고, 쪽쪽 거리는 소리가 도진의 귓가에 맴돌았다. 도진의 혀가 농염하게 정아의 혀를 감싸며,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입가에서 흘러내렸다. 도진은 살짝 입술을 떼며 고개를 돌렸고, 정아가 숨쉴틈을 한번 주더니 다시 재빠르게 정아의 입으로 돌진했다. 서로의 숨소리가 공유되며, 어색하게 왔다갔다 거리던 정아의 손이 도진의 두 어깨에 살포시 얹혀졌다. 그리고, 그 와 동시에 도진은 진하게 혀를 한번 섞고서, 고르게 자란 정아의 이를 한번 핥더니 그대로 쪽, 소리와 함께 입술을 뗐다.

 


“…….”

“…….”

 


 입술을 떼자마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서 도진을 바라보던 정아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키스를 할 때는 몰랐지만, 떼고나서 생각하니, 이래선 안되는 사이인데- 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던 것이다. 그런 눈빛으로 도진을 바라보았더니, 도진은 다 안다는 듯 피식- 미소 지었다.

 


“…이거, 무슨 의미에요?”

“내가 ‘누나, 동생 사이’되는 건 막았잖아요.”

“…아?”

“얼른 들어가요, 푹 쉬고.”

 


 정아가 무어라 묻기도 채 전에 도진은 정아의 이마에 다시금 쪽, 하니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멍- 하게 있는 정아를 보며 웃더니 다시 차로 돌아가 안전밸트를 맸다. 갑작스러운 도진의 행동에 정아는 한참이나 도진이 갈때까지 멍때리더니, 자신을 향해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드는 도진에 그제서야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후으……, 미쳤어, 미쳤어.”

 


 정말로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다.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8]

 

 


“여기요, 정아씨. 내가 일부러 정아씨것도 챙겼어요. 잘했죠?”

“아아…, 고, 고맙… 습니다.”

 


 다음날의 촬영장에서, 정아는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분명 어제의 그 ‘키스사건’에 의해서 정아는 머리가 복잡하고 미칠것만 같았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미 애인이 있고 연인이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키스를 하며 알 수 없는 말만 해댔다. 내가 ‘누나, 동생 사이’되는 건 막았잖아요. 라니…….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후으… 최정아. 정신차리자, 정신.”

 


 정신 바짝 차려아 돼. 그래, 저 사람은 애인이 있는 사람. 마음을 접어야 하는걸까. 아니, 접어야 하는 거야, 최정아. 정신 똑바로 차려. 어제는 그냥, 분위기… 그래! 분위기 때문이였을 거야. 정말로 좋은 분위기였잖아? 정아는 애써 그리 합리화 시키며 자신의 머리를 통통 내리쳤다. 그러나 신경쓰이는게 한가지 있다. 어제 키스는 분위기 때문에 그랬다 쳐도, 평소보다 더 자신을 신경써주는 도진의 행동은 무엇일까. 그리고, 도진은 모든 사람에게 잘해줘도 딱 한사람에게만 특별히 잘해주는 스타일이나 타입 같은건 아닌거 같은데……. 정아는 고민고민 하던 도중,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는 사람에 의해 위를 올려다 봐야 했다. ……아.

 


“어디 아픈가? 아까부터 머리 쥐어싸매고 있길래.”

“…아. 아, 아니에요. 괜… 찮아요.”

“그래요? 다행이다. 걱정했거든-.”

 


 도진이였다. 도진은 정아의 대답을 듣고서는 조금 안심된다는 한숨을 내뱉더니, 입가에 걸린 은은한 미소를 정아에게 보여주며 어깨를 톡톡 쳤다. 이제 얼마 안남았으니까 조금 더 힘내봐요, 우리. 그러고서는 다시 일을 하러 움직였고, 그런 도진이 사라지자마자 아까 언뜻 들었던 긴장이 푹-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으…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되는데……”

 


 그래, 결심했어. 이제는 출퇴근을 혼자 해야겠어.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 정아는 그런 생각과 고민을 하며, 빨리 쉬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번 쉬는 시간이 되면, 꼭 얘기 해야지! 하는 야심찬 생각을 가진채로.

 

 

* * *

 

 

“저, 도진씨.”

“어어? 정아씨가 날 다 부르고- 무슨 일이에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어?”

 


 쉬는시간. 정아는 작은 방을 가르키며 도진에게 물었고, 도진은 그래도 된다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정아를 뒤따라 정아가 가르켰던 방으로 함께 들어갔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던 정아는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자마자 긴장된다는 듯 후으……, 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중요한 일이길래 방에까지 와서……. 게다가 한숨은 뭐에요?”

“그, 그게요… 진짜 중요… 한 일이에요.”

“응? 말해봐요.”

 


 사뭇 진지해진 정아의 얼굴에 도진도 표정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런 도진을 보던 정아는 후으……, 하는 한숨을 다시금 내뱉더니,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 그대로 두 눈을 꾹 감고 소리치듯 얘기했다.

 


“이, 이제 출퇴근… 혼자 할게요!!!”

“…어?”

“혼자…… 해야 될 것 같아요.”

 

 

 정아의 뜻밖의 말에 도진은 정말 당황스럽고 황당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정아를 바라보았다. 정말 중요한 얘기네. 여기서 해야되는 거 맞네. 도진은 혼자 중얼거리며 왜 그러냐는 듯한 눈빛으로 정아를 보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하는 거에요? 내가 불편해?”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그런게 아니면, 이유를 똑바로 얘기해줘요. 그래야 정아씨 원하는 대로 해주지.”

 


 도진의 말에 정아는 다시금 고개를 푹 숙인채로 어깨를 움찔거렸다. 이유… 이유라고. 정아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엉뚱하고도 바보같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도 괜찮은걸까- 하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해야만 하는 이 감정들을, 도진에게 말해도 되는 걸까. 정아는 계속 고민하고 있었고, 그런 정아를 보던 도진은 조금은 다급한 마음으로 정아를 다그쳤다. 내가 왜 정아씨랑 출퇴근을 같이 하려고 그랬는데. 같이 있고 싶으니까. 둘이서, 그냥 같이 있고싶으니까 그랬다고. 도진은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정아가 말을 해주길 바랬고, 정아는 결국엔 두 눈을 질끈 감고 아까와 같이 소리치듯 말했다.

 


“그러면 어떡해요! 애인 있는 사람에게 감정을 가진다는 거, 정말 너무 어려운 시작이잖아요……”

“…어?”

“끝에 가서 아플 것을 생각하면… 난, 난…… 너무… 무섭다구요…….”

“…정아씨, 그러니까……”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됐던 것 같아요… 내가… 내가 바보같이 품지 말아야 할 사람을 품어서… 그래서…….”

 


 정아는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씨이…… 이게 다 도진씨 때문이야. 막, 말하라고 다그치니까… 그러니까…… 정아는 눈물을 쏟아내며 팔목으로 박박 닦아내려 했고, 그런 정아의 손목을 낚아채던 도진은 그대로 자신의 품에 정아를 안았다.

 


“……!!!”

 


 놀란 정아가 도진의 품에서 버둥버둥 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이번에도 도진은 세게 붙잡으며 정아를 자신의 품에 그대로 두었다. 자꾸 벗어나려 하지마요. 나… 지금 정말 불안하니까. 도진은 정아를 안은채로 다독여주었고, 그런 도진의 따스함에 정아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렀다. 그렇게 잘해주지 말라구요. 더 기대하게 되잖아. 정아는 그 마음이 들었지만 너무나 따스한 도진의 품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도진은 정아를 자신의 품에서 떼어내며, 천천히 고개를 드는 정아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턱을 쥐어잡고 입을 맞추려 시도했다. 그러나, 도진의 입술이 거의 자신의 입술과 닿으려던 그 순간, 정아는 얼굴을 홱 하니 피했다.

 


“이, 이러지마요, 도진씨……”

 


 정아는 입술을 꽉 깨물며 도진을 거절했고, 그런 정아가 안쓰러우면서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에, 정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아주… 조심스럽게.

 


“나, 내가… 내가 애인이 없으면, 괜찮은 거에요?”

“……네?”

“애인이 없으면, 나 피하지도 않을거고, 거절하지도 않을 거냐구요.”

“도, 도진씨… 그치만……”

“사실은요.”

 


 도진은 깊게 한숨을 내뱉더니, 정아의 눈물로 젖은 눈빛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정아씨를 만난 뒤로 자꾸 이상한 감정이 들더라구요. 정말, 이 감정 숨기느라고 힘들었어요, 나.”

“…….”

“어떻게든 표현하지 않은 채로 더욱 잘 해주고 싶었는데, 그게 너무 티가 안 났나봐요.”

“…….”

“나,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도 이렇게까지 잘해주진 않아요. 한 사람한테만 헌신적으로 잘 해주는 거, 내 스타일 아니라구요.”

 


 도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정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진심어린 눈빛으로 정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물젖은 정아의 눈두덩이에 작게 쪽- 하니 입을 맞추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정아씨는 달라. 많이, 달라요.”

“…….”

“좋아해요. 정말로, 좋아합니다… 정아씨.”

 


 도진이 그 고백을 마지막으로 정아를 품안에 안더니, 토닥여주며 달래주었다. 울지마요, 울지마. 울면 내 가슴이 아프잖아요. 했고, 정아는 낮게 거짓말…… 거짓말이야……. 하고 중얼였다. 그런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도진은 정아를 더욱 세게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자신의 진심을. 모든, 진심을 안은채로, 정아의 귓가에… 나지막히.

 


“정말로, 좋아해요. 아니.”

“…….”

“사랑해요.”

 


 그리고 정아를 품안에서 떼어내 그대로 정아를 바라보았다. 정아 역시 도진의 진실어린 눈빛을 바라보았고, 둘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서로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게, 그 어느 부드러운 것 보다도… 더 깊고, 깊게…….

 

 

 

 

 

 

마지막 시나리오(The Last Scenario) [9]

 

 


“마지막 촬영이니 만큼, 최선을 다해봅시다!”

 

 

 도진의 활기찬 말에, 모든 스텝들이 환호를 하며 평소보다 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도진이 메인 피디로 있는 이번 드라마는 대성공. 시청률 20% 아래로 떨어진 적 없는 연속극 누나식의 드라마였다. 그런 드라마인만큼 결말을 기대하기 마련이고, 그 결말을 위해 모두들 평소보다 더 신경써서 준비하고 있었던 터였다.

 


“슬슬 점심시간 이네…….”

 


 그러던 중, 시계를 잠깐 보던 도진은 시간이 곧 점심시간을 가르킨다는 것을 깨닫고서, 작게 고민을 했다. 최근에 맛있다는 집을 하나 발견했었는데, 정말 한번쯤은 꼭 가야지- 하고 생각했던, 그런 장소가 있었더랬지. 도진은 그 생각에 아까 막내 스텝을 시켜 사오라고 했던 커피들 중, 정아의 취향대로 달콤한 모카와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들고서 정아가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똑똑-

 


“어? 들어오세요!”

 


 노크소리에 정아는 깜짝놀라 대답했고, 그 말에 도진은 문을 열고서 들어섰다. 노크한 사람의 정체가 도진이라는 것을 알게된 정아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도진이 건낸 커피를 받아들었다.

 


“정아씨, 이따가 시간 되나? 같이 밥 먹고 싶은데.”

“흐음? 거절할 이유가 있나요?”

 


 정아의 말에 도진은 커피 한모금을 마시다 생긋 미소 지었다. 하여간, 매력있기는. 귀엽기 까지 하다니. 도진은 그 생각에 베시시- 웃음 지어보이는 정아를 바라보았다.

 


“그럼 같이 밥이나 한 끼 하죠.”

“…….”

“오늘 점심시간은, 좀 길게 잡아 놓을 테니까.”

 


 도진은 빙긋- 웃었고 정아도 똑같이 따라 웃었다. 그럼, 마지막 까지 열심히 해주세요, 작가님. 도진이 도진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자, 정아는 대답하듯 생긋- 미소 지었다. 그러다 도진은 정아의 왼손을 자신의 오른손으로 맞잡았고, 정아와 도진은 서로를 향해 미소지었다. 정아 뒤에서 창문을 통해 비춰오는 밝은 햇빛은 마치 도진과 정아를 비추는 듯 평소보다 더더욱 환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정아의 왼손에 끼어져 있는 반지하나. 그 반지를 보며 정아는 혼자 미소 지었다.

 

 

“어? 피디님!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지금 바쁜데!”

“어? 아아. 미안, 미안해-”

“얼른 가요!”

 


 그때, 문을 벌컥- 열고서 어떤 스텝 하나가 들어왔고, 빨리 가보아야 한다며 도진을 다그쳤다. 그런 스텝에 도진은 이제 가봐야 겠다며 잡고 있던 손을 살짝 풀었다. 정아는 도진에게 얼른 가서 마무리 잘 해달라고 입모양으로 말했고, 도진은 그에 그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자자, 빨리 가보자- 우리의 마지막 촬영을 위해서!”

“으그, 하여간 여유 넘치신다니까? 빨리 가요!”

 


 정아가 있던 방을 빨리 나서기 위해 도진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앞서가는 스텝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혔다.


 그리고, 그 와 동시에 보이는 도진의 왼손에 반짝이는 작은 반지 하나. 평소의 밝은 빛보다 더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스텝과 함께 나서는 도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아는 그저 행복하다는 듯한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러분, 이들의 마지막 시나리오는, 과연 어떤 결말일까요?

 

 

 

 

 

Fin.

 

 

응모자 이름 : 한혜령

응모자 이메일 : dhs02073@naver.com

응모자 HP : 010-5246-9183

 

 

 

  • profile
    korean 2014.10.17 16:32
    마지막이란 글짜가 크게 눈에 들어오면서 깜딱 놀랬지 뭡니까.
    하여튼 반갑습니다.
    좋은 작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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