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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에도 해는 떠오릅니다-

    



알람이 울린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내 잠잠해졌다가, 다시금 멜로디가 울린다. 귓가에 흐르는 토가의 멜로디가 이토록 지독할 수 있을까. 종현은 가까스로 무겁게 누르고 있던 눈꺼풀을 힘들게 치켜 올린다. 이윽고 상체를 일으켜 기지개를 켜본다. 늘 그렇듯 종현의 몸은 주인의 의사를 거부한 채로 피로의 파도들이 그의 의식 속을 헤집어놓고는 당최 떠나 갈 줄 모른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긴 채, 방문을 열고 아침 해가 채 뜨지 않은 어둑한 새벽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본다. 몇 번의 심호흡 후에 수돗가로 가 두 눈가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눈곱들을 대충 비비고는 청결과 무관한 의미 없는 고양이 세수를 한다. 운동화를 대충 구겨 신고 배급소로 향한다.

 

 할당량의 신문 뭉치더미들을 받아들고 근처에 위치한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로 발길을 돌린다. 끝없이 이어진, 피라미드 같은 연속된 계단의 산을 올라간다. 얼마 전부터 증가하는 전기세로 인해 신문과 우유 배달부들은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 당했다. 몇 번 경비에게 항의를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들 역시 이렇다 할 권한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기에 그저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23층을 몇 번씩 오르내리기란 쉽지 않았으나, 적응이란 참으로 무섭듯이 종현은 이제 두어 번의 휴식만으로도 할당량의 배달을 마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생각하던 차였다

 

 핏줄을 타고 오르내리는 적혈구처럼 거대한 마천루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배급을 끝마치고 난 뒤 몇 개의 차도를 지나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어느새 해는 시나브로 떠올라 빛이 반사되는 지면을 바라보니 약간의 어지럼증이 온다. 오늘은 지각을 걱정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배급소로 향하느라 용변 볼 시간도 없었다. 종현은 지름길을 지나 공용 화장실로 들어선다. 하나 둘총 여섯 명이 각자 휴지나 칫솔 등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배급소를 가기 전에 화장실부터 들려 볼 일을 보면 좋았으리라내심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제와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저 야단난 배를 움켜쥐며 본인의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마찬가지로 바로 앞에 서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희선이 어머니께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연신 하품을 내쉰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찍 일어나셨네요.”

 

종현이구나. 오늘은 배달 늦지 않았니?”

 

에이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저야 뭐 늘 똑같죠.”

 

그래. 우리 희선이도 종현이만큼만 바지런하면 좋을 텐데.”

 

 매일 똑같은 대화 주제지만, 희선이 어머니는 질리지도 않으신 모양이다.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딸에 대한 걱정거리를 줄곧 쏟아 내고 있다. 학교는 제대로 다니고 있는지, 만날 늦잠만 자서 골치 아프다느니, 성적이 바닥을 긴다느니, 집은 또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지 매번 같은 레퍼토리지만 종현에게 그러한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 희선 어머니 나름대로의 배출구였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늘 그렇듯 한귀로 흘려듣고는 어서 자신의 차례가 오길 간절히 바란다. 며칠 동안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아무래도 속에서 탈이 난 모양이다. 배를 움켜쥐고 발을 동동 구르는 종현이었다. 희선 어머니와 몇 차례 말을 주고받은 후에 간신히 자신의 차례가 되어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왔다. 숨을 참으며 서둘러 용변을 처리하고는 다른 이들과 바통을 터치한다.   종현은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뒤 할머니 당신께서 잡수실 아침을 부랴부랴 준비하기 시작한다. 쇠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미역국과, 간장, 콩나물 무침, 건너 집에서 받아온 무김치동사무소에서 타온 정부미로 밥을 지은 뒤 상을 차려 아직 색색 숨을 내쉬며 곤히 주무시고 계신 할머니를 깨운다.

 

할머니, 이제 일어나셔야지. 아침 잡수야 돼.”

 

 어르신들은 아침잠이 없으시다고 하던데, 새벽 늦게까지 파지를 주우셨는지 종현의 할머니는 아직 한 밤중인 모양이다. 이럴 때마다 종현은 늘 할머니 당신께서 천천히 깨어나시도록 두 다리를 주무른다. 곧 눈을 뜨신 할머니는 종현이의 얼굴부터 쓰다듬으시고는 치아를 찾아 볼 수 없는 커다란 입을 벌려 방긋 웃으신다.

 

우리 종현이, 언제 이리 다 컸누.”

 

 매일 똑같은 인사말이지만, 뭉클해지는 가슴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종현의 할머니는 구부정한 등을 일으킨다. 수저를 챙겨오는 종현이를 보며 소녀같은 미소를 지으신다.

 

우리 종현이가 할미 때문에 매일 고생이네. 내가 빨리 죽어 없어져야 종현이가 편하게 살낀데

 

아이구 할머니. 그런 말씀 마시라니까식기 전에 어서 식사부터 하세요.”

 

 종현은 틀니조차 없는 할머니께서 드시기 편하시도록, 무김치를 가위로 써걱써걱 얇게 자른다. 숟가락 위에 밥과 콩나물을 얹고 할머니의 입을 향해 손을 놀린다.

 

. 아 하세요.”

 

 

 유일하게 남은 어금니로 힘겹게 한입 한입 삼키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종현은 늘 마음이 무겁다. 틀니라도 하나 해드려야 할 텐데, 지금 모아놓은 돈으로는 벅찰 듯하다. 할머니의 식사 모습을 볼 때마다 벌이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곤 한다. 할머니께서는 몇 입 드시다 마시곤 배가 부르다며 이내 자리에 누워 다시 잠을 청하신다.  할머니. 바로 누우시면 소화 안돼요. 운동하셔야지.”

 

 

 피곤하셨는지 곧장 꿈속으로 향하시는 종현의 할머니다. 그런 할머니의 굽은 등을 보며 종현은 한숨을 내쉬곤 방에 딸린 부엌으로 가 어제 편의점에서 얻어온, 유통기한 지난 삼각깁밥을 우악스럽게 씹어 먹는다. 참치를 좋아했던 종현이에게 운 좋게도, 마요네즈와 참치가 섞인 삼각깁밥이었다.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끝마치곤 설거지를 한 뒤, 어저께 빨래를 한 뒤 집 밖에 널어놓은 옷들을 들쳐보았으나,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아직 덜 말라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어제 입었던 땀에 절어 있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집 밖을 나선다. 일을 하려 나가는 종현이 연탄 가는 일을 깜빡했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얼마 남지 않은 연탄 무더기에서 한 덩이를 꺼내 난방을 땐다. 아직 찬바람이 사라지지 않은 계절이어서 혹여 할머니께서 고뿔이라도 걸리실까, 종현은 난방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얼마 전 마을 근처 터널 공사로 인해 물이 나오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때문에 종현은 제대로 씻지 못하고 모자를 눌러 쓴 채로 집을 나섰다. 마을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종현은 시청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빈 집에 나무판자로 집을 봉인 하는 풍경을 무심히 지나쳤다. 요즘 들어 집을 버리고 이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빈 집에 자칫 비행 청소년들이나 다른 이주자들이 들어와 살림을 차릴까봐 시청에서 나온 이들은 이렇게 비어버린 집의 출입구를 막는 작업을 하는 때가 잦았다.

 

 마을 입구에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이 차린 2층짜리 컨테이너 사무소와, 그 건너편에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이들이 세운 컨테이너 사무소가 마주 본채로 위태하게 서로의 경계를 갈라놓고 있었다.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좁다란 마을에서 이토록 서로 싸워대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종현은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한 시간 가량을 걸어가 인력 사무소의 문을 연다.

 

소장님 저 왔습니다.”

 

어 그래. 종현이 왔구나. 할머니는 건강하시고?”

 

. 엊그제는 몸이 많이 쑤신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오늘은 괜찮으세요.”

 

그래 네가 항상 고생이구나.”

 

오늘은 현장 일 없나요?”

 

글쎄조금 더 기다려보자꾸나. 오후에 비가 많이 온다는데 일이 들어올 지 모르겠구나.”

 

며칠 째 일거리가 별로 없네요. 오늘은 들어와야 될텐데.”  종현은 삼촌이라 부르는 아저씨들과 함께 소파에 앉아 무심히 벽에 붙어있는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며 전화가 울리기를 기다린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고, 소장은 통화를 마친 뒤 모두에게 말했다.

 

매봉역 주택 단지 철거 작업 4!”

 

 다행이다. 아직 비는 오지 않았고 며칠 만에야 건수가 들어왔다. 종현은 삼촌들과 함께 봉고 차를 타고 현장으로 향한다. 목적지에 도착해 목장갑을 끼고 망치질을 해대며 석면 가루의 세례를 받는다. 처음에는 목이 매캐하게 아파왔지만 이제는 그도 익숙해 진지 오래다. 삼촌들도 잔뼈가 굵은 베테랑답게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고 있었다. 장정 넷이 덤벼 들어 작업을 시작했으나 해가 져 어둑어둑 해져서야 철거 작업이 겨우 끝났다.

 

 돌아가는 봉고차 창문을 통해 종현은 고층 빌딩의 숲을 지나며 창문 밖의 풍경을 감상한다. 한 손엔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든 채로, 여기저기 바삐 전화를 거는 양복 차림의 신사들. 깔깔대며 웃기 바쁜, 종현과 같은 또래로 보이는 교복 차림의 소녀들. 화려한 네온사인과 불야성을 이루는 향락의 거리. 그와 마주 보고 있는 마천루의 웅장한 모습들이미 여러 차례 봐왔지만, 아직 종현은 이 풍경들이 낯설고 별천지마냥 신기하다. 저 치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나와 다른 점은 무얼까. 행복이란 것이 실체를 드러내 질량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저 모습이 행복이라 말하는 걸까? 생각은 꼬리를 물어가며 종현의 상념 속에 투영된다.   사무소로 돌아가 소장에게 흰 봉투를 받아 들고는 미소를 띠며 집으로 향한다. 마을로 돌아가는 동안 근처 구멍가게에 들려 변비로 고생 중이신 할머니께 드릴 요구르트를 샀다. 먹구름이 낀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아직 마을에 도착하기까진 30분 가량을 걸어가야 한다. 종현은 기왕지사 내리는 이 폭우를 즐기기로 한다.

 

으아!”

 

 호젓한 울음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양말까지 젖은 발로 괜히 전봇대에 발차기도 해보며 장난꾸러기 마냥 마을로 향한다. 어느새 마을 입구 언저리에 도착해, 봉고차에서 봤던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인 슬레이터와 나무판자의 숲을 지나간다. 오는 동안 신나게 비를 맞아 괜스레 즐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막상 집에 도착하니, 내리는 비로 인해 집 천장에 낀 곰팡이가 더욱 늘어날까봐 걱정이다. 문을 열고 할머니께 요구르트를 전해드리려 했지만 어디에도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화장실에 가신건가 하고 몇 분을 기다려 봤지만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종현은 하는 수 없이 대가 몇 군데 부러진 우산을 들고 마당이라 하기도 우스운 공간에서 할머니의 리어카를 찾아본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왜

 

 없어진 리어카가 할머니의 행방을 알려주었다. 종현은 마을 밖까지 나와 리어카를 끌고 사라진 할머니를 기다린다. 저 멀리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등이 굽은 형태를 보니 어떻게 봐도 종현의 할머니다. 뜀박질로 할머니께 다가간다.

 

할머니, 이렇게나 비오는 데 왜 나가셨어요. 오늘 하루쯤은 쉬시지.”

 

우리 손주 고생하는데 할미가 뭐라도 해야잖겄니.”

 

그러시다가 허리 또 다치시면 어떡해요. 리어카 제가 밀테니까 할머니는 어서 우산 쓰세요.”

 

나둬. 우비 입고 나와서 괜찮여.”

 

아이 참. 제 말 좀 들으세요.”

 

오늘 노다지 캐서 2천원이나 벌었어야. 우리 종현이 맛난 거 사주고 싶어서 할미가 이렇게 나온 게야.”      

 비 덕분에 종현은 마음껏 울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마을을 지나 둘 만의 안식처로 향했다. 수건으로 할머니의 몸을 닦아 드리고는 아까 사온 요구르트를 꺼내 드렸다.

 

뭘 이런 걸 사와. 할미는 괜찮은디.”

 

일하다 소장님이 주셨어요. 할머니 가져다 드리라고.”

 

아이고야. 잘 마시겠다고 꼭 전해 주어.”

 

 할머니는 요구르트가 금싸라기라도 되는 듯 조금씩 홀짝이셨다. 종현은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롭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아니, 내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어도 할머니께서 이런 고생을 하실까. 생각하지 말자. 이미 너무나도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나. 어서 저녁이나 준비하자.

 

 비를 맞으신 탓인지, 할머니께서 기침을 하신다. 종현은 전기장판을 켜고 할머니께 이불을 덮어 주었다. 본인도 바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 고개를 올려 저 높은 빌딩들을 바라본다. 커다란 백열 전구처럼 여전히 눈부시게 빛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인생을 알아버린 건 아닐까. 서글펐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 다만 아까 생각했던 행복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볼 따름이다. 가슴이 먹먹해온다.

 

 다음날 뜬 눈으로 밤을 새운 탓인지 피곤하지만, 할머니의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고뿔에 걸리신 것 같지 않아 다행이다. 다시 어제와 같은 하루를 반복하지만, 종현에게는 할머니가 무사하신 것만으로도 온전히 기쁜 일이다. 비가 개고, 새벽 신문을 돌리고 돌아오니 어느새 햇볕이 마을을 품에 안고 있었다. 종현은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살아가자.” 

 

 

 

 

 

 

 

 

 

 

 

 

 

 

 

 

 

 

 

 

 

 

-천사-

 

 

 

최만선은 태어날 때부터 염색체의 돌연변이로 인해 앞을 볼 수 없었다. 만선이의 아버지 상욱은 의사와 면담 끝에 딸아이의 회복 불가능한 시력에 대해서만 의학적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아버지 상욱은 집안에 있는 모든 가구들에 모서리 보호대를 부착했으며, 장애를 가진 아이의 앞날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월 80만원 납입의 적금을 들었다. 장래에 걸쳐 만선이에게 그 비싸다는 점자책을 사주기 위해서였다. 빠듯한 생활비에서 그만큼 목돈이 매달 빠져나갔으나 아내 명자의 걱정 어린 말들에 상욱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고작 돈 몇 푼이 문제여? 괜한 걱정 말어. 내가 다 알아봤으니께,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그리도 훌륭하게 컸는디. 시방 만선이야 고작 앞 못 보는 것뿐인데, 요즘 세상에 그건 장애도 아녀. 만선이 생긴 것 좀 보오. 지어미 똑 닮아 빼다 박은 것 같잖여. 어미 닮아 분명 똑똑허니께. 잘 극복할 것이여. 걱정하덜 말어. 요즘에는 맹인들이 죄다 마사지만 하는 세상이 아니여. 두고 보드라고. 만선이는 남들 맨키로 대학도 가고, 분명 훌륭한 그 머시냐그렇지 커리어우먼이 될거랑께.”

 

 상욱과 명자는 그저 힘들게 태어난 늦둥이를 세상 어떠한 보물보다 소중히 키웠다. 허나 희망이라는 것은 때때로 꿈꾸는 이의 구원을 바라는 손길을 내치며, 정반대의 결과와 커다란 시련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다른 이들의 자녀들이 하나둘씩 단순한 울음과 옹알이에서 발전해, 비로소 언어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엄마’, ‘아빠등의 첫마디를 야물거리며 내뱉는 숭고한 장면들의 파노라마들 속에서도 만선이는 도통 첫마디를 떼지 못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늦으려니 하고 있었지만, 3년이 지나도록 만선이의 입에서 나오는 음파들은 다른 아이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몇 번의 정신감정 끝에 만선이의 부모, 상욱과 명자는 그들의 딸이 심각한 지적장애를 앓고 있어 IQ25, 두 살배기 아기의 지능에서 성장이 멈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진비 28천원을 3분가량의 상담과 맞바꿨다. 얻은 결과는 딱히 이렇다 할 치료 방법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그 날 이후로, 상욱은 몸을 생각해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 시작했다. 아내 명자는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연방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오징어 다리를 씹어가며 소주를 들이 붓던 상욱은 한동안 못난 자신을 탓했다. 자학의 시간이 지나자 부정의 단계에 접어들 즈음에, 이제는 자신이 아닌 아내에게 모든 탓을 돌려버렸다.

 

야이 샹년아. 네년이 내 몰래 다른 놈팡이랑 눈맞아가 배꼽 맞춘 것 아녀? 얘기를 해보라고! 만선이가 진정 내 딸이었으면, 저렇게 될 리가 없당께! , 그렇고말고. 내 딸이었으면 말여! 분명 네년이 어디 가서 못난 놈 씨 받아온 것이여!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라고! 이 시벌년이 어디서 눈을 희번덕 거리는겨. 이 쳐 죽일 년, 에라이 이 화냥년아!”

 

 상욱은 명자에게 빈 소주병을 던졌다. 술기운에 잔뜩 취해 던진 소주병은 애먼 창문을 깨뜨리고는 마치 현재 상욱의 정신세계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명자는 대꾸 없이 그저 머리를 베게에 파묻고는 오열했다.

 

 상욱은 매일 같이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점차 피폐해지는 몸에 어렵게 구했던 용역업체 철거현장 십장 노릇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퇴직을 권고 받았다. 일을 하지 않으니 낮에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딸아이를 위했던 적금도 채 만기가 되기 전에 해약 하고는, 포장마차로 발길을 향해 질펀하게 취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매일이었다.

 

 의사의 오진이었기를 누구보다 바라왔던 상욱의 마음과는 반대로, 딸아이의 멈춰있는 정신상태는 늘 제자리였다. 똥오줌 못 가리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을 뿐더러, 주위 사물에 대한 주의나 흥미도 없었으며, 모방과 유희의 욕구도 전연 찾아 볼 수 없었고 단순히 씹는 일과 부수는 일 정도만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초 감각기관은 정상인 데도 청각과 촉각의 분화 발달은 극히 미미하고 막연한 지각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강아지 마냥 후각이 극도로 발달한 모양이었다. 그러한 만선의 정신적 미성숙과는 별개로 육체의 발달은 어느덧 2차 성징의 증거를 보이고 있었다.

 

 근 십년간, 명자는 술에 찌든 남편을 대신해 빌딩 화장실 청소부 일을 했고, 상욱은 취한 상태를 줄곧 유지하거나, 침대위로 쓰러져 잠들 뿐이었다. 양육하는 부모가 없다시피 한 만선이는 아무도 그녀의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았기에 엉덩이에 수 많은 종기와 피부염이 생겼다.

 

 봄이 가고, 여름의 태양볕에 얼굴이 거무죽죽 해지는 어느 날이었다. 웬일로 술을 마시지 않은 상욱은, 만선이를 집에 내팽긴 채, 종묘사로 발길을 옮겼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찾으십니까?”

 

독한 농약 좀 없소?”

 

독한 농약이요? 선생님, 어떤 작물을 키우시는지요?”

 

농사생활을 해본 적 없던 상욱 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그 왜사과나무도 키우고, 고추도 키우고 그럽니다

 

 가게 주인은 순간 경계의 눈빛을 띄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희 가게에 선생님 같은 분이 달마다 몇 번 꼴로 오십니다. 저희는 농작물에 쓸 농약을 취급하지, 자살 기도하는 인간들을 위해 독약을 판매 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무슨 청부살인업자입니까? 어서 나가세요. 허튼 생각 하지 마시고.”

 

 

 상욱은 말 없이 뒤돌아 선채 선반에 놓여져 있는 농약 통을 몇 개 집어 들고는 어마 뜨거워라 냅다 달렸다. 메아리처럼 가게 주인의 욕설이 등 뒤로 흘러들어 왔으나, 상욱은 무심히 무단 행단으로 차도를 가로질러 갔다. 셔츠가 땀으로 흥건히 젖을 정도로 달리고 나서야 단골 국밥집에 도착했다. 늘 그랬듯 3천원 짜리 싸구려 국밥과 소주 몇 병을 주문했다. 품에서 꺼낸 농약병에는 주의라는 해골마크와 함께 매치온’, ‘수프라사이드라 적혀있었다. 얼큰히 취해 집으로 돌아오자, 일을 나갔던 명자가 어느새 집 거실에서 만선이의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만선이 내비두고, 또 술을 자셨소?”

 

맹자야. 내는 이제 지쳤다. 그냥 우리모두 다 같이 편하게 떠나자.”

 

그게 무슨 소리대요?”

 

명자는 상욱이 들고 온 농약병을 응시 하고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이고왜 그러시오. 그리 못된 생각하시지 마오

 

아니다. 이젠 다 끝내고 싶다 내는.”

 

 명자의 커다란 눈에서 또다시 수도꼭지가 터진 듯 연신 짠 물이 나왔다. 상욱은 그러한 명자의 오열을  뒤로 한 채 만선이에게 다가갔다. 다리를 잡고 늘어지는 명자를 걷어차고는, 농약 뚜껑을 열어 만선이의 목을 뒤로 제쳤다. 냄새에 민감한 만선이는 이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상욱의 품에서 달아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런 씨벌! 들이 마시랑께! 만선아! 니 이래 살아봐야 뭔 의미가 있다고 이러는겨!"

 

 눈물을 흘리며 상욱은 만선이의 뒷목을 잡다가 그만 농약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투명한 액체가 꼴꼴 거리며 마룻바닥을 적셔 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구속에서 벗어난 만선이는 기분이 좋은 지 8자 모양으로 스텝을 밟아가며 연신 박수를 쳐댔다. 마치 꽃에서 꿀을 발견한 일벌이 다른 동료들에게 춤을 추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 같았다.

 

 그 모습을 시뻘개진 눈으로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상욱은 딸의 행동에서 여태껏 보지 못했던 특별한 무언가를 보고야 말았다. 취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발작하던 폭주에서 다시금 제정신으로 돌아온 탓일까. 상욱은 만선의 등에서 한 쌍의 날개가 돋아나오는 환상을 보았다. 만선이는 웃는 얼굴로 날개를 펄럭거리며 아까와 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종교라고는 관심 없던 상욱이었지만 상욱의 눈에는 그 모습이 13평짜리 빌라에 강림한 천사를 보는 듯했다.

 

 상욱은 여전히 천사로 변한 딸의 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쓰러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술기운이 싹 가셨다. 쓰러졌던 명자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만선에게 다가가 통곡하며 그녀를 안았다.

 

아이고. 불쌍한 내 딸. 만선아. 어찌하누어째야쓸까

 

 

 생에 있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던 상욱은 딸의 모습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눈물방울이 뭉쳐 희뿌옇게 시야를 방해하는 와중에도 만선은 깔깔 거리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상욱은 딸을 꼭 끌어안은 명자에게 다가가 조용히 읊조렸다.

 

여보미안허이나가 잘못 했구먼미안허이

 

 몇 달 뒤, 가을이 가고 이윽고 겨울의 쌀쌀한 바람이 폐부를 찌를 때. 상욱은 중고 트럭을 장만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파지와 고철들을 실어 날랐다.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삼만원 남짓이었다. 허리디스크로 인해 종이 박스들을 옮길 때마다 몸이 시큰 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다음 노다지를 찾고는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욱은 생각했다.

 

또 어찌 보면 장님인게 복이제. 이 더러운 세상 안 봐도 되니까네. 참말로 순수한 아이잉께. 그날 내가 본 것이 내 딸의 진짜 모습일지도 몰러. 하여간 천사여 천사. 우리 집에 천사가 살고 있는 것이여.’

 

상욱의 오른손에는 만선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가 든 시커먼 봉다리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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