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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초대장


 20년이 흘렀다.

 어제 아침 정체 모를 초대장이 도착했다. 초대장 아래편에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연락을 끊은 지 20년이 흐른 지금에도 얼굴과 말투가 또렷하게 기억났다. 은퇴한 후 멍하니 지내며 시간을 보내는 내게 초대장은 호기심 그 자체 였다. 해야 할 일이 주어진 기분이었다. 얼굴은 어떻게 변했을까. 말투는 그대로 일까. 여전히 생각은 변하지 않았을까.

 초대장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초대장 앞면에는 하얀색 바탕화면 위에 피아노가 덩그러니 그려져 있었다. 서로 연락을 끊을 즈음에 친구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다. 뒷면을 살펴보니 독주회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몰랐던 것일까 싶어서 인터넷에 이름을 쳐보았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사람 중 그 친구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궁금증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무엇보다 많이 변했을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대화를 하고 싶었다. 말하기를 꽤나 좋아하는 친구였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하며 그저 기다릴 수밖에.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공연장은 젊었을 때 몇 번 가본적 있지만 피아노 독주회는 처음이다. 괜스레 옷이 신경 쓰였다. 더구나 혼자 가는 공연은 처음이라 불안했다. 모든 걸 챙겨준 아내가 문득 그리웠다. TV속에서 기상예보 캐스터가 오늘은 영하권이므로 옷을 단단히 챙겨 입으라고 말했다. 그 말이 왠지 빨리 출발하라는 명령 같았다. 서둘러 코트를 입고 출발했다.

 공연장은 상당히 작았다. 50명은 들어올 수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며 좌석 수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 포기를 하고 앞을 보았다. 무대 위에는 피아노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화려한 세트와 어떠한 무대 장치도 없이 그저 피아노만 있었다. 듣자하니 클래식 음악은 길고 지루하다고 했는데 졸지 않을 수 있을까. 지루함을 못 이겨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안 되는 것인가. 화장실은 미리 갔다 와야 하는 것인가.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은 앞으로 10분정도 남았다. 빠른 선택을 해야 했다.

 화장실을 나오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였다. 먼 과거에 몇 번 마주친, 어쩌면 한두 번 술자리에서 인사를 했던 사람일 것이다. 범수 였었나.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연락을 하며 지낼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공연 시간이 2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아 서둘러 가볍게 인사를 하고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왔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공연을 시작한다는 신호일 것이다. 이제 나오겠지. 어떤 모습일까. 예전 그대로일까. 많이 변한 모습을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무대 왼편에서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피아노를 몇 초간 바라본 후 무대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관객을 향하여 인사를 했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변한 건 없었다. 얼굴에 보이는 주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전보다 약간 왜소해 보이는 체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순간적으로 불편해진 것은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손가락은 부들부들, 입술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불안할 정도로 티를 내고 있었다. 손가락이 저렇게 떨리는데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갑자기 오늘 공연이 걱정되었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중년의 신사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니 너무나 보기 힘들었다. 앞좌석의 관객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한 중년의 여자가 작지만 또렷하게 걱정을 하였다. 어머, 어떡해..라고. 순간 공연장은 희미하게 웅성거렸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 모양이었다. 크게 호흡을 두 번 쉬었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피아노 건반을 닦았다. 공연은 이미 시작했기에 희미하게 웅성거리던 소리도 잦아들었다. 걱정해주던 중년의 여성도 이내 말을 멈추었다. 호흡을 하고 손수건으로 피아노를 닦는 행위가 그에게 안심을 주는 의식이길 간절하게 기도 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웃는 모습으로 인사를 했으면 했다.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은 후 다시 두 번의 한숨을 쉬었다. 손가락을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시작한다.

 

 첫 음이 흘러 나왔다. 순간 공연장이 조용해졌는데 첫 음을 내기 전의 고요함과는 달랐다. 단호했지만 부드럽고 따듯했다. 첫 소리의 울림이 피아노에서부터 시작하여 공연장 끝으로 전달되는 게 느껴졌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지만 편안한 연주가 진행됐다. 음악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지만 뭐랄까. 첫 시작에 어울리는 나이를 먹은 음악이랄까. 연주는 정중하게 나의 귀를 자극시켰다. 그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아직까지 긴장감이 얼굴에 맴도는 게 느껴지지만 시작하기 전의 창백한 얼굴 보다는 훨씬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확실하게 집중 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다 때로는 천장을 응시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짜 집중을 하고 있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사람들은 집중을 안 할까."

"뭔 소리야 그게?"

"만나면 핸드폰만 쳐다봐. 이것저것 물어봐도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아. 진짜 중요한 건 상대방의 이야기를 전혀 안 듣는다는 거야. 물어봐도 다른 소리만 해. 가지지 못한 집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아내와 남편, 자식 이야기 밖에 안 해. 이야기 하는 거보면 항상 자신이 빠져있어. 근데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거 같아.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빠져있더라고. 진짜 집중을 해보고 싶은데.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중. 집중을 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시간이 나도 모르게 지나가겠지? 성취감 같은 오르가즘이 나를 짜릿하게 만드나? 아니, 반대로 너무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초긴장이 지속될 수도 있지. 어떨까? 넌 어때? 제대로 집중이란 걸 해본 적이 있어?"

"대학 가려고 공부에 집중 했고 취업 하려고 자소서와 면접 같은 거에 집중하긴 했지."

". 그런 의무 말고. 네가 스스로 좋아서 했던 건?"

".. 아 맞다. 게임이 있네. 게임에 한참 미쳐있을 때 집중했네."

"! 있다. 연애."

"그러네. 스스로 안할 수가 없지 그건."

"근데 연애도 본능의 영역으로 생각해보면 의무 아닐까."

".. 뭔 개소리야 술이나 마셔."

 대화는 점점 또렷하게 나의 기억 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 즈음에 곡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똑같은 음이 반복되는데 멜로디는 더욱더 선명해졌다. 동일한 음은 소리가 아니라 울림으로 내 귀에 흘러 들어왔다.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전형적인 기승전결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여기가 클라이맥스라는 것을 느꼈다. 생의 끝에서 다독이는 듯한 피아노 소리. 어느새 공연장은 그에게 집중을 하고 있었다. 손짓과 표정이 만들어가는 형언 할 수 없는 멜로디는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저 그가 내는 소리를 편하게 앉아 듣기만 하면 되었다. 긴장감은 어느새 완전히 풀어졌다.

 

 두 번째 곡은 가볍게 시작됐다. 맑은 멜로디가 반복되자 공연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리고 편안했다. 마치 노인이 손녀를 바라보듯이. 첫 곡은 클래식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이 곡은 아닌 것 같았다.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여전히 피아노에 고개를 숙이고 집중을 하였지만 처음의 모습과는 달랐다. 천진난만의 단어가 딱 어울렸다. 65세의 할아버지가 어떻게 저런 표정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거북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손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감정을 참는 것과 숨기는 것. 어떤 게 더 어른스럽냐."

"도찐개찐이지. 직장에서는 참아야 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각 종 화를 숨겨야 하지. 근데 그 말이 그말 아니야? 참는 게 숨기는 거니까."

"말이 좀 이상했네.. 그러나 저러나 결혼하기 전에는 다들 힘들다더만. 어른이 된 걸 축하한다."

"근대 왜? 요즘 열 받는 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건 아니고.. 이제 더 이상 울면 추한가 싶어서. 나는 존나게 울고 싶은데 뭔가 울면 안 되는 분위기고. 웃음도 마찬가진거 같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면 안 되는 건가 모르겠다. 따져봐가면서 웃고, 분위기 피해가면서 울고.. 그래서 사람들이 술을 원하는 거겠지? 술로 일시적인 해소가 가능하긴 한데.. 사람은 잘 때 빼고 계속 감정표현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

"그게 동물이지 사람이냐? 그럼 이성은 뭔 필요가 있어."

"하하하 맞네."

 춤은 맑고 따듯한 소리와 함께 계속 진행되었다. 오른손의 멜로디는 달콤했고 통통 튀는 왼손의 반주는 가벼운 천국에 놀러운 기분을 주었다.

 연주자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으며 좋아보였다.

 

 세 번째 곡은 단숨에 공연장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빈틈없이 시작하여 시종일관 초조하고 긴박하게 진행되었다. 불안. 저토록 심각하게 불안을 노래하다니. 이전의 곡과는 다르게 한음한음 신중하게 연주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라며 외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음악은 점점 초조해졌다. 멀리서 한차례 강한 바람이 불어와 바람 한가운데서 어쩌지도 못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기면 되었다. 상심과 걱정은 나의 손이 하고 있으니 너는 그냥 몸을 맡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결혼 생각해야 하지 않아? 어머니께서 나한테 전화를 하시더라. 너 요즘 만나는 여자 있냐고. 많이 걱정하시는 거 같던데."

"우리 엄마 전화 받지마. 왜 너한테 전화를 해. .. 맨날 창피하다고 하면서 너한테는 창피한게 없나보네."

"많이 불안하신가 보지. 너도 서른은 훌쩍 뛰어넘었고 결혼을 빨리 해야 하지 않겠냐. 그런거 걱정 안 돼?"

"결혼이 때가 있는 거냐? 왜 이렇게 내 인생에서 자신들의 때를 집어넣지? 난 독립을 했고 나름대로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살고 있어. 지금 어떤 게 행복한 건지, 무엇을 하면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건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럼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닌거 아냐? 무엇보다 여자도 없고."

"가족을 꾸리면서 사는 게 어머니 입장에서는 마음 편하니까 그렇지.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 일거고. 안정적이잖아"

"어머니 편하자고 결혼을 해 그럼?"

"에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뭐가 극단적이야. 솔직히 맞는 말이잖아.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고민하고 있는지 그런건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결혼해라 여자나 만나라.. 너도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의무만 이야기 하더라. 어느 순간이 아니지. 결혼한 뒤부터는 그 소리 밖에 안하던데. 결혼하면 완벽해지냐? 그래. 너는 행복해질 수 있겠지. 근데 그 종류의 행복을 나도 똑같이 느껴야 돼?"

"네가 결혼을 안 해봤잖아. 그래서 말하는 거고. 너희 어머니나 나나 결혼해서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행복에 대해서 너에게 말해주고 싶은 거지. 결국 네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건데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냐?"

"그럼 나한테 결혼해서 행복해져라라고 말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면 될꺼 아냐. 어렸을 때 아버지랑 그렇게 싸워놓고... 너는 가장이어서 존나 힘들다며. 돈버는 것도 힘들고 애 생겨서 더 힘들고.. 내 앞에서 힘든 것만 이야기 해놓고 결혼하라고? 언제 네가 가장 행복한 모습을 나한테 보인 적 있었어? 행동으로 보여 행동으로. 그리고 그 후에 선택하는 것은 내 문제야. 니 문제가 아니고."

"사람들 다 그렇게 살잖아. 몇몇 소수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안정된 직장도 없이 왜 그걸 아직도 고민 하냐고. 한심해 보여서 그래. 한심해 보여서. 남자 나이 서른 넘어가면 안정된 직장에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게 최선이잖아. 그렇게 배웠잖아. 너나 나나. 결국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왜 아직도 방황 하냐고! 이게 최선이라니까. 더 늦으면 모든 게 힘들어 질지 몰라. 이제 그만 떠돌아다녀."

 연주는 마치 불안의 한가운데로 초대하는 것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언제 폭발할지 몰라. 그리고 그 후에는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듯. 연주자는 나를 끌어들이면서 점점 힘이 강해졌다. 거부할 수 없는 울림이 계속 이어졌다. 마침내 한가운데로 모여 불안이 폭발 했을 때 예상했건 것과는 다르게 연주자는 담담해졌다. 최고의 불안은 안정인 것인가. 마음이 진정되면서도 다시는 이런 불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다시 불안해졌다. 다행히도 불안은 거기서 끝났다. 연주는 여전히 초조했지만 긴박한 처음과는 다르게 무뎌졌다. 그렇게 곡은 계속 흘러갔고 그저 외침을 듣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네 번째 곡은 많이 들어본 멜로디였다. TV에서도 많이 흘러 나왔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들어본 것 같았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 세 번째 곡에 이어서 심연의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슬픔과 고독 사이의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존재하는 음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했다. 그리고 계속 알 수 없는 정 가운데로 나를 끌어들였다. 마치 이 고통은 영원히 끝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이.

"너나 부모님을 만나면 껍데기가 되어버리는 거 같아. 병신이 되는 느낌이야. 낙오자. 인생설계 실패자. 결혼하고 집사고 애낳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닌데.. 단지 지금 당장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궁금해서.. 결혼이 방법 중에 하나지 절대적인 건 아니잖아. 그냥 지금은 일 끝나고 몇 분이라도 피아노를 치는 것이 좋은것 뿐인데.. 주변 사람들 말을 들으면 피아노가 죄가 되어버리는 거 같아. 나는 지금 피아노를 알아가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기쁨인데. 늦게라도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좋은데 말이야."

"그렇다고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 적당히 즐겨야지. 네 말대로 일이 끝나고 피아노 치면 하루가 끝이잖아. 부모님은 네가 미래를 준비 안하는 것 같아서 걱정하시는 것뿐이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주변사람들도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너 혼자만의 삶이 아니잖아."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피아노 치는 게 아닌데. 단지 즐거워서 하는 거지. 뭐가 되려고 했다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됐을 텐데.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내가 스스로 하고 싶었던 건 별로 없었어. 연애, 게임? 아 여행가기전에 스스로 계획짜는거? 다 해야 됐기에 했을 뿐이지. 대학도 가야되니까 가고 돈벌어야 되니까 취업하고.. 늦게라도 스스로 뭔가를 해서 재밌어졌어. 그러면 안 되는 건가. 깊이 빠져들면 안 되는 거야?

이제는 한쪽을 선택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네 말대로 나이를 너무 먹었으니까. 선택을 해야 한다는 내 생각이 너무 싫다 정말."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행동은 뒤늦게 도박에 빠진 인간이랑 다를 게 없어."

"뭐라고?"

"일을 하고 있지만 안정적이지도 못하고, 전혀 얻을 것 없는 취미활동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나 하고, 주변 사람들 걱정이나 시키면서 계속 불안만 일삼고 사는 그런 한심한 인간이야.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너는. 그런데 아직 가능성은 많아. 제발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부탁이야. 나는 나의 가족이랑 너의 가족이 같이 놀러 다니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 모두를 만족시키고 그것에서 행복을 찾도록 노력해봐. 넌 할 수 있어. 어른으로 살자. 우리."

 곡의 마지막 음을 연주자는 길게 이어갔다. 눈을 감고 음이 사라질 때까지 듣고 있었다. 마치 끝내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있는 것처럼.

 

 마지막 곡이 시작되었다. 첫 음이 강하게 시작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 곡이구나. 마지막이기에 모든 걸 쏟아 붇겠구나. 모든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연주자는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진지하고 차분한 초반이지만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마치 태풍이 오기 전에 서서히 몰려드는 구름처럼. 고요했다.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초석을 확실하게 다지고 있었다.

"넌 천하의 불효자야."

장례식에 도착했을 때 친구의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친구도 도착한지 얼마 안됐는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뒤에서 아버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아끼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얼굴을 코빼기도 안 비춰?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친구는 말이 없었다. 말하기 좋아했던 친구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일자로 닫힌 입에서 굳은 의지가 보였다. 난 오늘 아무 말도 안할 것이다. 아니, 참을 것이라고.

시끄러워진 분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친구를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의외의 주인공이라니. 예상했을까. 많이 당황하고 있진 않을까.

무표정인 듯 한 그의 표정이 오히려 불안해 보였다. 어머니는 앉아 계속해서 울고 계셨다.

"마흔이 넘었지 아마?"

"그쯤 된 거 같은데."

"변변찮은 직장도 아직 없다며. 그래서 결혼을 못하고 있는 건가?"

"지 엄마가 그러던데.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고. 가끔 집에 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만 먹고 간다더만. 저런 아들 있으면 오죽 답답하겠어. 미칠 노릇이지."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 아니야? 집이 그렇게 못사는 것도 아닌데 왜 결혼을 안 하려고 그런데?"

"낸들 아나."

주인공이 됐다는 예상이 맞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계속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다시 친구를 쳐다보았다. 상주 자리에 앉아 멍하니 앞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차분하면서도 불안하게 진행되던 선율은 서서히 고조되더니 마침내 폭발했다. 공연장의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에게 집중하는 것을 느꼈다. 이토록 집중하게 만들다니. 음악의 힘인 건지 연주자의 힘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니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을 바라볼 뿐이었다. 연주자는 피아노가 부숴질 듯이 있는 힘껏 건반을 눌렀다. 묵직하고도 무거운 소리가 들렸다.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는 연주자가 보였다.

"계속 이렇게 살 꺼야?"

"나는 불만이 없어. 하루에 잠시라도 피아노를 치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게 좋아. 사는 대로 생각하는 건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불만이 없어. 불만이 있는건 주변 사람들이지 내가 아니야. 너도 불만이라면 할 수 없는 거지 뭐."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을 해."

"극단적인건 너 아냐? 계속 이렇게 살꺼냐니. 그 말뜻은 지금 내 삶이 뭔가 아니라는 거잖아. 좀 더 솔직해지지 그래? 안 그래도 불편해 하는 게 느껴져. 난 그게 너무 불편해. 네가 하는 모든 말들이 와 닿지가 않아. 진심이 뭔지 알겠는데 말이 와 닿지가 않아. 불편하다고."

"네가 좋아지길 바라는 건데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거 아니야? 난 단지 이런 행복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것뿐이라고. 이런 좆같은 사회에서 너처럼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대는지 네가 직접 들었어야 했는데. 사람 성의를 이딴 식으로 받아들이다니. 그래. 니 삶이니 알아서 해라."

 음악은 차분해지지 않았다. 고통과 절망을 애매하게 줄타기하며 끝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래. 이건 그의 외침이다. 마침내 하고 싶었던 언어인 것일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멈추기 싫은 폭주기관차였다. 온 힘을 다해 피아노를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끝이 났다.

 

 마지막 곡이 멈춘 순간 관객들은 침묵을 지켰다. 침묵은 끝없이 지켜졌다. 누구와도 상의 하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의 약속.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잠시 동안 지속됐으면 했다. 잠시 후 연주자가 일어나자 관객들은 두세 명 동시에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박수를 쳤다. 환호와 함께.

 

"앙코르 곡은 한곡 입니다. 피아노를 늦게 시작하여 많은 곡을 준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와주신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마지막 곡을 듣고 쏟아진 기립박수가 잦아 들자 그는 말을 하였다. 목소리는 세월을 비껴갈 수가 없었나보다. 하지만 조용한 그의 음성이 공연장을 다시 집중하게 만들었다. 다시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았고 첫 음을 울렸다. 고요한 가운데 시작한 첫 음은 안개 속에서 피어난 색체가 배여 있는 꽃 같았다. 달콤하다고 해야 할까. 형언할 수 없는 소리가 내 귀에 스며들었다. 오르골? 하프? 피아노의 소리가 아닌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멜로디가 있을까. 마치 꿈을 꾸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다.

 

 그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하였으나 오늘은 아닌것 같다. 오늘만큼은 어떠한 말도 하기 싫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대화를 하는 날이 오겠지. 무슨 말을 하게 될까.

 공연장을 나오니 어둠이 깔려 있었다. 문득 마지막 곡이 생각나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외롭게 홀로 달이 그려져 있었다. 어떠한 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달은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저 빛으로 공연장 주위를 조용하게 비추고 있었다.

 

작품명

1.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2악장

2. 찻잔과 도넛이 춤추는 가게 - 뉴에이지 음악

3.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3악장

4. 쇼팽 녹턴 20

5. 쇼팽 발라드 1

앙코르 곡. 드뷔시 달빛


이름 : 최민수

이메일 : fromsto@naver.com

전화번호 : 010-9402-9581

  • profile
    korean 2019.03.02 14:06
    열심히 쓰셨습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신다면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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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16 file korean 2014.07.16 3278
588 제 28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분진 1 녹매 2019.02.23 51
587 제 28 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닭살 1 해보자좀 2019.02.21 43
586 제28차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가(歌) 2 탈탈 2019.02.21 80
585 제 28 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회상 1 아이에카 2019.02.14 82
584 ▬▬▬▬▬ <창작콘테스트> 제27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28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9.02.11 102
583 제 27 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산란기의 연어는 1 리미 2019.02.10 117
582 창작 콘테스트 응모작 단편소설 루와 로 1 홍군 2019.02.10 19
581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항상 얘기하고 있었는 걸 1 leeSU 2019.02.08 20
580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아무 데도 안 가요 1 민호 2019.02.08 25
579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잠자리 1 미소 2019.02.08 16
578 제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피사체에는 진실이 비친다 1 박바다 2019.02.08 38
577 27차 창작 콘테스트 응모작품/단편소설-골절- 1 woosan6054 2019.02.07 17
576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새벽 1 김준모 2019.02.03 24
575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추녀(醜女) 1 추녀 2019.02.03 25
574 제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나는 손을 놓았다 1 Yusaha 2019.02.02 19
573 제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부문_1950, 철원 1 영화 2019.02.02 59
»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불편한 초대장 1 프롬스토 2019.01.31 19
571 1 애니 2019.01.31 17
570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이유 있는 살인 1 유지 2019.01.29 36
569 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크로노스의 시계 1 베시두즈 2019.01.2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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