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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성 신부, 그는 104위 순교 성인 집안의 후손이다 집안 어른들이 어려서부터 신부님 되라고 세뇌 아닌 세뇌로 그는 당연히 신부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자랐다 자신의 인간적인 소망보다 집안 분위기로 얼떨결에 신부가 되어야 했다 그 자신도 천주교 문화가 몸에 밴 탓에 그렇게 되는 것에 자부심 자긍심이 대단했지만 늘 욕망의 자기 자신과 부딪혀야 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 또는 유혹이지만 모범적인 척하는 사제생활을 하다가 안식년을 신청해 개인적인 즐거움 또는 신앙에 대한 오체투지적인 색다른 학습을, 거룩한 성당이 아니라 현장의 밑바닥에서 삶을 배우는 것으로 일 년의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는 늘 존중 받았다 어려서는 신학교 간다고 하기에 집안에서 사랑 받았고 성당에서는 신학교 다닐 때부터 신자들에게 존중 받았고 사제가 되어 본당 신부가 되었을 때 더더욱 존경받는 사제였다 그래서 그는 은근히 거만하거나 거드름피우는 것이다 흔히 성당에서 신부의 말은 곧 법이나 다름없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감히 항의 하는 신자도 없다 그것은 교황 주교와 일치 되어 있고 곧 예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아 성당에서 특별히 봉사하는 사제이기 때문이다

헌데 어느 날 그는 신자들에게 거룩한 말을 번지르 하게 잘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다 세상의 좋은 말로 거침없이 신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빈껍데기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세상의 거친 파도에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턱없이 하고 있지 않는 자신, 성당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깨끗하고 잘 다림질 된 수단을 입고 거룩한 척 하는 자신, 온실에서 부귀영화를 즐기고 있는 못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쩌면 하느님께서 하였는지 모른다 김 신부를 하느님은 새롭게 훈련과 학습을 시키려고 그런 자기 자신을 보게 하였는지 정녕 모를 일이지만, 하여튼 김 신부는 자기 자신의 브르조아적인 태도와 자신은 선행을 게을리 하면서 신자들에겐 성서 말씀을 빌려 야단치거나 훈계하는 자신의 악함을 발견하고 인간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착할뻔한 신부였거나 착한 신부였다 그는 그래서 안식년에는 신부라는 계급장을 떼고 거룩한 척하는 학습된 태도를 숨긴 채 세상살이를 알몸으로 부딪쳐 보기로 하였다 안식년 일 년 동안 날나리인척 하며 세상의 소금과 고추에 버무려지는 배추 같은 것이고 싶었다 세상과 섞였을 때 짜고 매운 맛에 고민하고 후회가 있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숙성되는 배추처럼 자신도 인간적인 사람으로 성장되어 신앙은 고결한 것만 지향하기보다 참인간 되는 것이 참 신앙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싶어졌다 하여 그는 안식년이 시작되자마자 서둘러 주변정리를 하고 잽싸게 현장으로 나갔다

 

첫 번째 직장-룸살롱 웨이터

 

삼사 일은 숙달이 되지 않아 야단맞기 일쑤였으나 일주일 지나자 적응력을 보였다 나름 잘생긴 김 대성이다 아직 사십이 않되었지만 얍쌉하게 머리와 옷을 정리하니 제법 제비족 웨이터 냄새가 난다 영화배우 같다면 쉽게 연상이 될 것이다 그는 거기서 술심부름을 한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웨이터들이 먼저 들어 왔다고 잔심부름까지 시킨다 성당에서 거룩한 척 하다가 야, , 얀마, 이자식, 개쉑끼....소리를 냉수 마시듯이 듣는다 좀 굼뜨거나 못 알아 들으면 막바로 쌩욕이 뺨을 때린다 심지어 구둣발로 걷어차이거나 등짝과 궁둥이 툭툭 얻어맞는 것이 상례이다 한국의 밤술문화를 적나나하게 체험 한다 경제성이 없는 사람 또는 눈치코치 없는 사람은 살아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어디든 악한 사람 한둘은 있듯이 착한 사람 한둘은 꼭 있다 맹한 그를 눈여겨보는 신은경은 간간히 그를 두둔하거나 격려하거나 코치를 한다 하여튼 그는 거기서 생전 처음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한다 신부이었을 때에는 듣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야 한다 손님들 앞에선 베스트 매너를 보이지만 자기들끼리의 생존 투쟁은 가히 전쟁터나 다름없다 그러면서 열심히 살아 가족 걱정하거나 건전한 장래를 고민도 하는 풍경이 가끔은 그에게 고민거리였다

때로는 선배 웨이터들보다 잽싸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자기 자신을 보고 놀라기도 하지만 본래 그런 끼가 숨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그를 보고 신은경은 뒤에서 대견해 하거나 흡족히 관망하면서 은근히 마음에 두면서 계속 걱정하거나 염려를 하는 것이다 몰래 그를 따라다니면서 훔처 보기도 한다

그는 룸살롱에서 석 달 근무하기로 했다 어차피 석 달 만 참으면 계획된 목적은 달성되거나 세상을 체험한 것이다 석 달은 갖가지 모욕과 수치를 견딜만한 시간이라 여겼는데,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운 것도 있지만 빠르게 적응해서 보름은 금세 지나갔다 오히려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날 적에는 즐겁거나 즐기고 있는 자신을 보고 은근히 자랑하거나 자부심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얼굴과 옷맵시에 만족해하며 족제비스런 웃음까지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 속에 숨어 있는 끼도 어떤 환경이 조성되면 생기발랄하게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두 달째 지나가자 환경에 완전히 적응 한 것 같았다 점잖은 척 하면서 복도를 걷거나 뒤에 들어온 초보자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친절하게 가르치자 사람들이 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제 때에 배운 자비롭거나 인자한 예절과 태도에 신은경은 급격하게 그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을 새침하게 보이거나 노련하게 숨긴다 김 대성도 남자인지라 그런 그녀를 싫지 않게 여기거나 경계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돌부리에 넘어지는 것은 늘 돌발적이다 즉 함정을 미리 알았다면 넘어지지 않겠지만 술은 특히 예기치 않은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것이다 석 달이 다 되어가는 날 김 대성은 평소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몇 사람을 불러 신세진 것 값는다며 술을 마시다가 만취 했다 폭탄주를 멋있게 돌려 먹으며 즐겁게 취해 사제인 것을 잃어버리거나 잃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나고 신은경과 둘만 남은 시간이 길어지면서 둘은 아담과 이브가 되어가는 것을 밀거나 붙잡거나 하다가 어느 순간 끈을 놓쳐버린 것이다

 

두 번째 직장-대관령

 

사실 김 대성도 신은경의 외모에 감탄해 있었다 늘씬한 허리 풍만한 가슴과 귀엽거나 깜찍한 얼굴, 웃을 때마다 우물처럼 들어가는 보조개에 허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솔직 담백한 말투나 약간의 교양 있는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보는 자기 자신을 알아채거나 들키곤 하였다

자신이 사제인 것을 자신에게 주문을 걸거나 아침 저녁 남몰래 기도 할 때에 자신을 지켜 달라고 주님께 기도 하였지만, 누군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 할 때 주님도 그를 지켜주는 것이지만, 아니 술에다 핑계를 대고 싶었거나 알면서 넘어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여성의 굴곡진 곡선을 궁금해 하거나 경험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술집에선 자신이 신부인 것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직 하느님과 자신뿐이다 아무도 모르니 슬쩍 담장을 넘어 손을 넣었다가 도루 빼면 감쪽같은 것이다 신은경도 단지 자신을 착한 남자로만 알고 있고 소문나거나 들킬 염려가 전혀 없어 그날 남자로서 신 은경을 보았는지 모른다 여하튼 즐거웠고 황홀했다 그가 그녀를 더듬을 때 남자로서의 즐거움이 가지마다 꽃이 활짝 피었지만, 꽃이 질 때에 가지마다 열매 맺는다 그 열매가 여름의 시절이라면 탐스럽게 익겠지만 계절을 어긴 것이라면 죄의 증거물로 자랄 것이고 그래서 후회는 늘 늦게 온다

그는 허름한 개인 방에서 몇 날 며칠을 굶으며 자신에게 질문을 해야 했다 그녀에 대한 애정과 즐거움 그리고 신분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술로 마비시키거나 술로 자신을 위로해야 했다 쓴 소주로 책하려 하지만 구름은 비웃는다 하늘은 유난히 밝고 깨끗해서 자신의 허물이 하늘과 땅에 적나나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술을 마시지만 죄는 아무것도 가려주지 않고 그를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이다 아무리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어느 날 코피마저 쏟았다 다만 그를 망연히 내려다보는 십자고상을 피하려는 듯이 짐을 싸는 김 대성, 정처 없이 나서는 곳이 대관령 친구 송 민수 집이다

송 민수는 어렸을 때부터 김 대성의 불알 친구였다 당연히 그가 신부인 것을 알고 있고 천주교 신자인 그는 친구라도 꼭꼭 신부님이라 부른다 아니 천주교의 관례가 그렇다 송 민수는 그의 몰골을 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아침저녁 소나 몰고 다니라고 한다 그는 거기서 자연인 김 대성을 만난다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하느님께도 멀어진, 신자들에게 존경받는 시절도 아득히 멀어진 그저 단지 김 대성이라는 남자 또는 인간을 마주하는 동안, 외로움과 고독은 인간을 병들게 하거나 눈멀게 하지만 거꾸로 강해지거나 단단하게 한다 그를 안식년은 자신이 결심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그는 송 민수에게 새벽에 간단히 인사 하고 나와 저녁 무렵 불암산 밑에 있는 천주교 요셉 수도원에서 하루 피정을 했다 그 수도원은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농사를 직접 지으며 수도 생활을 하는 특징 있는 수도원이다 수도자들은 하루 종일 땀 흘리며 보낸다 김 대성은 안식년에 해야 할 것을 거기서 다시 정한다 그것은 그들처럼 땀 흘리는 것이다

 

세 번째 직장-막노동

 

주먹들이 수두룩하다 룸살롱의 간지러움과 쾌락은 없지만 굵직굵직한 주먹들이 대신한다 굵직굵직 이래봤자 동네 뒷골목 반건달 반양아치들이지만 소시민적인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다 강 사장은 어려서부터 막노동판에서 자라 지금은 통나무로 집을 짓고 있다 산속이지만 여름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김 대성은 사실 노동을 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마당 쓸고 부모님이 배추 절이면 날라다 주는 것이다 그 흔한 농촌 봉사활동도 해보지 않고 양노원 방문해서 할머니들 어깨 주물러 준적도 없다 신부 된다고 집안에서 애지중지 자란 탓에 굵은 땀방울 흘리는 즐거움을 배우거나 억지로라도 익힌 적이 없다

막노동은 아침 일찍 시작 된다 보통은 아침 일곱 시나 여덟시에 시작 되어 저녁 다섯시 쯤 끝나, 나머지 시간은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 푸는 것이 일반사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하루살이들이 그들이다 그래서 막노동해서 집사거나 번듯한 가게 마련한 사람은 거의 없다 절반은 마누라가 바람나서 집 나갔거나 흔히 말하는 성격차이로 헤어졌거나 돈 벌어 생활비 벌어 주지 않는다고 툭하면 싸우다 빈집이 된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 중에 작업반장 박씨는 강 사장 따라다니면서 근근히 집안 꾸려나가는데 아내가 병들어 누었다

무거운 통나무를 일일이 들어 올려 집짓는 일은 힘들고 위험하기 까지 하다 김 대성은 여기서 석 달 일하기로 하였으나 작업반장 박씨 때문에 한 달이나 견딜지 걱정했다 마누라가 병석에 누웠으나 병원비가 없어 늘 불안했는지 모든 일에 짜증내듯이 일을 시키거나 뒷골목 폭력배에서 손 씻은지 십년 넘었지만 제버릇 개주지 못한다고 옛 근성이 화를 낼 때 툭툭 튀어 나오는 것이다 중학교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년에게 제 어미 간호를 부탁했지만 툭하면 같은 또래 애들과 집나가 노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딸들에게 전화를 해서 집안 단속하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하기 일쑤 인데, 강 사장은 그런 그를 못마땅해 하지만 같이 일한지 십년이 넘고 아내가 병들어 누운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는 잔소리 해봤자 건들건들 듣기 때문에 보통은 내버려 두었다

박 반장은 이래저래 만만한 김 대성에게 잔심부름을 시켰다 콘크리트나 벽돌로 집짓는 것은 일의 순서가 확연하지만 통나무집은 목수들이 서까래에 올라타서 일일이 깎고 다듬는 일이라 자칫 사고 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망치 한 번 쥔 적이 없는 김 대성임으로 소소한 잔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막걸리 사오기 담배 사오기 물 떠오기 등등을 제왕처럼 부리는 것이다 장난끼도 심해서 몰래 뒤에서 불알 움켜쥐거나 똥침을 놓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김 대성은 죽을 맛이었다 똥개 부리듯이 이것저것을 시킬 때마다 울화가 치밀지만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라 중도에 그만두지 못하였고 이대로 때려치우면 자기 자신에게 너무 초라 한 것 같았다 박 반장은 집안 문제로 잔뜩 짜증 난 것을 김 대성에게 화풀이 하는 것 이해하다가 가끔 머리를 툭 치며 욕설까지 하며 일을 시킬때는 대뜸 맞장을 뜨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집안을 챙기려는 그가 가엽기도 하였다

 

네 번째 직장-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술 때문에 사고가 났다 서로 친해질 수 있는 한 달이 지나자 김 대성이 박 반장에게 툭하면 대들었다 알고 보니 나이도 김 대성이 한 살 많은 것이다 처음엔 너댓 살 많은 줄 알았는데 저녁에 일 끝내고 술 한 잔 하다가 박 반장이 제 나이를 숨기지 못하고 띠를 말해 버린 것이다 호랑이 띠?”김 대성이 되묻는 순간 박 반장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은 것이다 나는 소띠 인데...”김 대성이 잽싸게 말해 버리자 박 반장은 상황을 정리 하려 일부러 화를 버럭 내며 니 장가 간냐? 장가도 못간놈이!” 하면서 방어진을 먼저 단단히 치는 것이다 김 대성도 이번에 지금까지 당한 모욕과 수치를 한꺼번에 만회하려고 내심 결심하고 술도 얼큰하게 취했겠다 아니 하루 볕이 얼마인데 나이도 한참 어린놈이 까불어오만방자하게 일어서며 큰소리 치는 순간 갑자기 앞이 캄캄해지며 개울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졌다 박 반장이 이단 옆차기 한 것이다 술에 취했기에 김 대성은 힘없이 몇 바퀴 굴러 풀섶에 처박힌 것이다

그는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누군가 흔들어 눈을 뜨니 방이었다

많이 아퍼?” 귀에 익은 목소리 박 반장이었다 한참이나 깨어나지 못하자 그도 버럭 겁이 난 것이다 헌데 걱정 해주는 척 다시 하는 말이아니 그러게 왜 까불어라며, 은근히 분위기를 잡는 것이다 반항하는 척하며 김 대성이 일어나려 하는 순간,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은 통증에 도루 눕고 마는 김 대성, 속으로 우라질 놈하고 싶었지만 그의 큰 주먹이 눈에 들어와 꾹 참고 말았다

결국 석 달은 채우지 못하고 말았다 가슴이 하도 아파서 병원에 가보니 정말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이다 겨우 한 달 넘었다 짐을 싸자 강 사장이 병가를 내라며 잡고 박 반장도 미안하니 숙소에서 쉬라고 적극 권유해 일주일 쯤 쉬었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 미안해서 한 달 받은 월급을 박 반장 작업복에 몰래 넣고, 강 사장과 박 반장에게 여러 가지 구실을 열심히 대고 현장을 떠났다

배에 오르자 가슴이 뻥 뜷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의 시름과 고생이 보상이라도 받는 것 같았는데 그것도 불과 몇 시간 지나 끝이었다 배를 타본 적이 없는 그는 배 멀미에 위장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비릿한 바닷내음과 배 바닥에 올라오는 썩은 듯한 고기 냄새는 뱃속의 모든 것을 홀라당 토하게 하였다 장 선장은 에이 빙신 같은 놈하며 위로는커녕 매우 억울한 듯이 핀잔을 주는 것이다 갑판장 정씨는 그나마 위로해 주었다 처음엔 그러다가 얼마 지나면 괞찮아져하며 등을 토닥여 주었는데 과연 저녁 무렵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징어 잡는 배라 해가 지자 여기저기 배들이 전등을 켜기 시작 했다 수십 척의 배에서 전등이 켜지자 바다가 환해져 즐겁기까지 하였다 TV에서만 보던 오징어 잡이, 여기저기 상처가 났지만 아픈 줄 모르고 하는 일을 했는데 역시오래가지 못하였다 밤에 일한 적 없는 그는 낮에 자고 밤이면 꼬박 밤새워 오징어 잡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파도가 좀 심하게 치는 날에는 중심을 잡지 못해 배 여기저기 구석으로 처박히기 일쑤였고 그럴때마다 선장은 션 찮은 놈하며 구박하였다 한 달은 그에게 가장 힘들게 지나 간 것 같고, 그 한 달 월급도 소중히 간직하였다가 리어커에 박스를 실고 산비알 올라가는 할머니 주머니에 넣었다

 

다섯 번 째 직장-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그의 일터이다 애초에 자원한 곳이다 그는 혹시나 누가 알아볼까봐 일부러 수염을 기르고 머리도 더벅머리에 모자를 눌러 썼기 때문에 아무리 친했던 친구나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그에게 말을 걸어 알려고 하기 전에는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놀랍게도 그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으니 신 미경 이다

화장실 청소는 겸손한척 하기 적당한 직업 같았다 고속도로 휴게소라 사람들은 보통 생각 없이 배설을 하곤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단히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하다가 휴지 버리듯이 떠나는 곳이다 때로 그들은 화장실 청소부들을 자기 종업원이나 하인 부리듯이 이것저것 지시나 부탁을 한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작업복도 세련되지 못하거나 누추한 용모가 대부분이라 서로 그러려니 한다 그는 사람들이 배설한 변기를 닦을 때마다 신미경과의 허물된 관계를 뉘우치듯이 닦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사람 저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불쌍한 듯이 여기는 것을 오히려 당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뱀이 허물 벗듯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아니 뱀이 허물을 벗어도 다시 벗어야 되는 것처럼 이렇게라도 하면 조금이나마 하느님께 용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설령 하느님께 용서 받기 이전에, 인간으로 그렇게라도 자기 자신을 가혹하게 밀어 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근무한지라 알게 모르게 칭찬이 생겼고 도로휴게소에서 소문이 잔잔히 퍼지고 있었다

근무한지 한 달이 넘은 오후 저녁 무렵 그날도 열심히 화장실 청소를 한뒤 퇴근하려 세수를 하고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나오다가 구두끈이 풀린 것을 보고 허리 굽혀 구두끈을 매는데 갑자기 세련된 여자 구두가 정면에서 서는 것이다 그는 으레 지나가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구두끈을 매고 바지를 툭툭 털며 일어서는데 아뿔싸! 신 미경이다

그는 기절할 뻔 했다 놀라서 돌기둥처럼 온몸이 뻣뻣해져서 몸이 마비 된 듯이 굳어졌고 머릿속이 하해져 도무지 무슨 말과 행동을 해야 할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여기를?” 다 죽어가는 목소리고 겨우 말했다 세상 좁은 것 모르셨어요? 신미경은 여전히 솔직 담백한 미모와 여유 있는 태도로 말했다 그러면서 대담하게 팔짱을 끼곤 차 한 잔 하시죠?“하는게 아닌가 난감했다 지금의 문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야 할지 짧은 순간에 번개같이 머리를 굴렸다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려요신미경은 그의 뱃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말했다

퇴근길이라 이래저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차를 한적한 찻집에 세우곤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잘 지내 셨나요그는 위로하거나 걱정했다는 듯이 질문했지만 사실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용모를 훑어보니 여전히 명랑한 눈망울에 환한 얼굴이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허나 곧 당연히 못 지냈죠하는 말을 안으로 삼키면서 예전처럼 다시 지내고 싶다는 다소 간절한 얼굴로 요조숙녀 같은 자세를 취하는 그녀였다 그 짧은 말이 그녀의 몸과 일치해 있었다

 

여섯 번 째 직장-양노원

 

김 대성은 그녀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좋아 했다고 보고 싶었다고 라는 등등의 겉치레 말이라도 친절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무엇인가에 목이 턱턱 막혔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말하고 있는 태도를 그녀에게 읽히고 만다 하룻밤 잤다고 붙잡고 싶지는 않네요담담한 그녀의 말에 안심했지만 솔직히 속은 복잡했다 성당에서는 성서의 말씀으로 신자들에게 큰소리로 훈계하거나 쉽사리 가르쳤지만 어린 여자 신 미경에게 도대체 무슨 말로 용서를 청하거나 위로하고 위로 받아야 할지 앞뒤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꾸 눈길이 남몰래 그녀의 용모에 한편으로는 쏠리었다 아무도 모르는 산길을 남자와 여자로서 산길을 걷고 싶은 욕망이 찰싹찰싹 볼태기를 치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땅바닥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는데 불편하신가 보네요신 미경이 불쑥 일어나며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섭섭하거나 아쉽거나 다행스러우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저기 저...”라며 속으로는 무언가 라며 말하고 싶었지만 왠지 도통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양노원이라기보다 요양원이다 닭이 알을 낳지 못하면 폐계닭이라 하여 헐값에 시골 장터로 판매되거나 사료용으로 분리수거 되는 것처럼 요양원에 온 노인들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이성과 오성의 기능이 상실되고 단지 짐승처럼 식욕만 남은 짐승이거나 동물이다 장씨 노인은 군대에서 소장으로 예편한 사람이다 흔히 군대에서 별의 명령은 곧 법이요 진리이지만 그가 군대에서 제대하는 순간, 그는 평범한 노인네에 불과하다 일반 사회에서 만나면 장군님이라 호칭은 불러 주겠지만 정작 사회적인 이해관계에 얽히면 병사 일만 명 움직이기보다 짜장면 배달원 한 두명 통솔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 속설인데, 치매에 걸린 장 씨는 아직도 소장이다 그가 군대를 사열하던 시절은 남았는지 툭하면 김 대성에게 이런 병신같은 놈! 하며 거드름 피우는 것이 다반사다 이미 일반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인지라 똥을 김 대성에게 던지기라도 할라치면, 분노가 치밀기도 하는데 그런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단지 예예 하거나 잠시 피했다가 다시 상냥하게 웃는 것 뿐이다

충청도 진천에서 올라온 정씨 할머니는 팔순이 넘었지만 자식이 사남 이녀인데도 아무도 병문안 오지 않은지가 삼년이 넘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션찮은 아들딸이 왔다 가도 남몰래 뒤뜰에 나와 종일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노라면 김 대성은 제 부모님인양 오랫동안 정씨 할머니 근처에 머물며 단지 가만히 머물러 주는 것인데, 간호사 한 근영도 마치 딸처럼 나란히 김 대성과 가끔 저녁 노을을 맞는 것이다 정씨 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요양원에는 부지기수다 구씨 할머니는 장가 못간 외아들이 어쩌다 오면 자기 자신보다 장가 가야 할텐데...”라며 거꾸로 걱정한다

요양원 일은 하루 종일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할머니 할아버지 대소변 치우는 일이거나 그들의 이브자리 청소하는 것이다 지저귀를 채워도 이브자리에 듬뿍듬뿍 싸 놓으면 뒷정리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도 분뇨 냄새가 풀풀 나는 것이다

 

일곱 번째 -템풀 스테이

 

한적한 절이다 깊은 산속 작은 절이라지만 주지승은 산두목처럼 우락부락하다 천주교에도 피정 할 수 있는 수도원이 있지만 김 대성은 불교문화에 잠시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비포장도로가 족히 십리는 된다 사람하나 겨우 다닐 정도의 산길을 할딱거리며 오르면 대뜸 대들 듯이 크나큰 바위 밑에 암자가 있다 암자라기보다 좀 크다 대웅전 일주문 산신각도 있고 크나큰 강의실도 있고 열 명 정도의 스님들이 거쳐하는 수행처도 있다

가을이라 단풍이 아름답고 새벽이면 무서리가 내리는 탓에 개울물은 차고 맑다 흰구름은 으레히 높고 높다 다람쥐들은 알밤을 줍느라 가끔씩 나무에서 내려와 산비탈을 뒤지지만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다 절간 앞마당의 감나무는 이파리가 모두 떨어졌지만 스님들이 그냥 둔 탓에 빨갛게 익은 홍시에 가지마다 부러질 듯이 휘어져 있다

김 대성은 지쳤다 그냥 집에서 몇날 며칠 자는 것도 좋겠지만 일주일 정도 절밥 먹어보기로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막상 절집에 오니 절집의 규율이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 화두 참구 한다고 일제히 참선에 들어가면 머리카락하나 떨어지는 것조차 들릴 만큼의 기나긴 침묵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물론 천주교에도 대침묵의 시간이 신학교에서 있었지만 본당 신부로 나간 후엔 대침묵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절집 참선은 그에겐 색다른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조는 눈치가 보이면 산두목 같은 주지의 죽비는 거의 폭력처럼 내리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은 가을이라 약간 춥기도 하지만 산비탈로 번지고 있는 단풍을 구경하며 참선하는척 하면 지루함은 좀 달래졌는데, 그러나 삼사일 남겨두고 철야 정진하는 때에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철야 용맹정진은 그야말로 굳은 의지가 필요 했다 잔꾀나 꼼수가 통하지 않고 사람의 무의식을 온통 뒤집어 놓는 시간이었다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삼사일 화두참구를 하는 것을 처음 경험한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수면욕이 쏟아져 괴로운 시간이었고 주지 스님의 죽비는 언제나 인정사정이 없어 때로는 야속하기까지 하였다 헌데 마지막 철야정진 날에는 비몽사몽 지나갔지만 그에겐 놀랍게도 하느님께 대한 가장 절절히 회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안식년을 현장 체험의 시간으로 보내기로 하였지만 제대로 되돌아보는 시간 없이 하였는데, 절집에서의 그 시간은 김 대성에게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심을 하게 하였다 그것은 좀 더 낮은 곳에서의 현장학습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적당히 즐기며 현장 학습을 한 것에 대한 반성의 시간, 신부로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 대한 후회가 절절했다 무엇보다 신 미경과의 허물을 어떻게 용서받아야 할지의 괴로움에 마지막 날에는 이를 악물고 용맹정진을 하자, 그제야 주지 스님도 무언가 눈치 채고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약간 쌀쌀했는데도 땀이 흠뻑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했다 깊은 바다를 만난 것 같은 어둠의 체험은 그에게 깊은 어떤 평화를 맛보게도 하였다 마지막 날 아침 철야정진을 끝내는 죽비 소리는 그에게 새로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키자 자신도 모르게 그는 주지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절을 하였다.

 

여덟 번째 직장_쓰레기장

 

한겨울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쓰레기 분리수거장, 속옷을 몇 겹 껴입고 장갑을 꼈지만 손과 발에 동상이 걸릴지경이다 이미 푸르딩딩한 손등과 발등, 명 사장은 김씨, 들어와서 쉬었다 해! 라고 큰소리로 말하지만 그는 펑펑 내리는 눈이 좋았다 그의 죄를 다아 덮어주는 하느님의 선물 같았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그는 여기서 한겨울을 날 참이다 안식년 휴가도 봄이 오는 2월이면 끝난다 부부가 운영하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외국인 근로자 네 명도 같이 일하는 곳이다 피티병 깡통 비니루와 종이를 구분하는 작업인데 썩어 가는 음식물도 섞여 있어 매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허나 그들은 이미 만성이 되어 있는지 간단한 마스크를 쓰고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다 깡통도 알미늄과 쇠로 된 것을 구분하는 것은 만만치 않지만 그들은 역시 쉽사리 구분해서 척척 담는 것이다

헌데 외국인 근로자 네 명에서 네팔인 카투만두가 고향인 구릉씨가 수상했다 방글라데시아 두 명은 하루 종일 끼리끼리 다니며 한마디 말없이 일만 했지만 구릉씨는 하루에 열통씩 걸려오는 전화에 늘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한씨 부부는 그런 것을 알면서도 굳이 묻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적인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고 설령 안다고 해도 부부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김 대성이 취직 한지 한 달 보름이 지날 때였다 세 명의 남자가 찾아와 구릉씨와 밖으로 나간 뒤 담배 필 정도의 시간에서야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왔는데 몸을 간간히 떨고 있는 눈치였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김 대성은 자신도 모르게 질문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요그는 등을 돌리며 말했지만 무언가 도와 달라는 눈치이기도 했다 도와 드릴께 있나요?” 그는 다시 정말 돕고 싶다는 듯이 말했지만 구릉씨는 작업장으로 향하고 말았다

나중에 그의 동료에게 물어버니 그는 깡패조직원의 일원이란다 자기나라 국민들을 등쳐먹고 마약까지 손대는 모양이었다 구릉 씨는 조직의 돈을 일부 떼어 카투만두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것이었다 왜 그랬지는 그만 아는 일, 역시 일을 끝내고 토요일이라 한씨 부부가 삼겹살을 사와 밤늦도록 고기를 구워 먹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밖에는 함박눈이 마구 쏟아져 쓰레기장과 도시의 거리가 유난히 멀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갑자기 먼저 번에 왔던 두 명이 눈 속을 헤치며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간, 한씨 부부는 무언가 눈치 채고 뒷문으로 빠져 나가고,외국인 근로자 네 명과 김 대성만 남았다 고기는 불판에서 타기 시작할 때 쯤 구릉 씨가 본능적으로 각목을 잡고 방어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두 명은 가볍게 웃으면서 다짜고짜 구릉씨를 조지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두 명은 이 일에 참견하지 않겠다는 듯이 뒤로 물러나 고기 타는 것을 은근히 걱정하는 눈초리였다 같은 네팔인도 매우 두려웠는지 슬슬 도망치는 자세를 보였다 김 대성도 처음엔 무서웠지만 점점 심해지는 폭행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만 하시오하도 소리가 커서 그들도 놀란 것 같았다 헌데 잠시 서 있다가 김 대성에게 달려들어 구릉씨보다 가혹하가 두들겼다 저항하려 발버둥 쳤지만 갑자기 옆구리를 파고드는 뜨끔한 것 때문에 기절하고 말았다

 

아홉 번째-등산행

 

뒤로 넘어질 때 철근이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더 이상 현장학습은 못할 것 같았다 병원에서 열흘정도 치료받고 그는 모든 작업복을 헌옷 수거함에 넣었다 용모를 단정히 하니 제법 옛날 모양세가 나왔다 값비싼 등산복을 종로에 나가 구입하곤 아직 눈이 쌓여 있는 설악산으로 향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었다 일월 말임으로 추위가 가장 심한 절기였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아직 회복되지 않는 몸으로 산 밑에 있는 여관에 들어 여장을 풀고 등산 계획을 세웠는데 마침 대설주위보가 내려 등산이 금지되었다는 소식을 설악산에 와서야 들었다 할 수 없이 이틀 뒤에 푹푹 빠지는 설악산에 올랐다

눈이 쌓이 풍경은 장관이었다 일 년의 안식년이 아득하게 덮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반짝이거나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찬 것 같았다 산에 오르면 누구나 느끼는 인간의 초라함 또는 인색하거나 소심했던 자기 자신을 마주보게 된다 주위에 아무도 없고 오직 김 대성 자기 자신을 만나는 시간은 그가 발바닥으로 흙을 딛고 살아야 하는 경험을 한 것 같았다 마침내 성당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 했지만 모든 죄를 흰눈으로 하느님은 덮어주시는 것 같았다 사제로서 살아 온 날들이 정리되고 다시 사제로서 살아야 할 새로운 자세를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았다 그는 일부러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또 걸어갔다 하얀 눈이 그를 어머니처럼 맞아주거나 미안 할 정도로 깨끗해지는 발자국이 그를 따라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추기경으로부터 신당동 성당으로 발령한다는 통지서가 배달되었다 그는 난감했다 아직 고백성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밤새워 고민했지만 정답이 떠오르지 않아 선배 신부인 박 바오로 신부를 찾아가 상담을 하기로 했다 창피하거나 쑥쓰러워서 이틀을 고민하다가 곧바로 찾아갔다 이대로 성당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속죄의 표시로 환속을 해야 할지의 고민을, 바오로 신부와 안식년 보낸 시간을 이런일저런일 섞어가며 몇 시간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밖을 바라보는 바오로 신부님의 뒷통수에 대고 신 미경과의 실수를 은근슬쩍 불어 넣었다 바오로 신부는 그 말을 듣고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느티나무를 한참이나 보며 침묵하더니 아무렇지 않거나 또는 듣지 못했다는 듯이 베드로 신부님 차 식었죠? 한 잔 더 합시다라면 잔잔히 말했다 그러곤 신당동 성당 좋습니다 바로 남산이 옆이라 산책길이 아주 좋죠라며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는 실수를 하지 말라는 것이요 앞으로 더 잘해 보속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면서 죄를 사한다는 표시인지 편히 쉬세요라며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등을 덤으로 툭툭 두드리는 것이었다 사실 박 바오로 신부는 김 대성이 돌아간 뒤 성당으로 들어가 거기서 오랫동안 아프도록 무릎 꿇고 있어야 했다

신당동 성당 신자수는 6,000명 가까이 되지만 성당은 오래 되어 소박하기까지 했다 추기경으로부터 임명장 밭고 부임하는 날 신당동 성당 사목회 회장단들이 아침 열시쯤 삐까번쩍한 승용차로 모시러 왔다 신부님 환영합니다사목회 회장단들은 정중히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김 대성 신부는 깨끗이 다린 신부복을 입고 승용차에 올랐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솟았다 개나리꽃은 일찍 피기 시작하였고 성당 입구 왼쪽 담벼락에는 김 신부를 환영하듯이 진달래꽃이 만발했다 주차장 앞에는 김 대성 신부님을 환영합니다신당동 성당 신자 일동 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헌데 그가 기절초풍한 것은 첫 부임 후 새벽미사 때였다 맨 앞줄에는 어린 복사단과 어른 성체 분배자들이 나란히 먼저 서 있고, 뒤에서 주교님과 로비에서 미사 준비를 하고 드디어 성당에서 다시 미사를 할 수 있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눈을 감고 거룩한 척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남몰래 엉덩이를 꼬집는 것이었다 아니, 누가 감히 정말 누가 감히 거룩한 미사 시간에 신부 엉덩이를 꼬집는 짓을 하는가 하며, 혼내주려 눈을 잔뜩 부릅떴는데, 아뿔사! 글쎄 신 미경이 아닌가!

그때 마악 시작 성가가 성당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복사단은 십자가를 높이 처들고 출발을 시작했다 김 대성은 이 기막힌 상황에 거의 기절할 뻔 했다 주교님은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는지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헌데 더 놀라운 것은 갑자기 신 미경이 검지손가락을 자기 입에 대는 것이었다 비밀을 지키겠다는 것이었고 약올라 죽겠다는 듯이 먼저 성당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profile
    korean 2019.03.02 20:30
    열심히 쓰셨습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신다면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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