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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에는 진실이 비친다.

1

가끔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은가? 원래 사람은 메타인지라는 게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누군가 날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나의 생김새에 대해 회의감도 들고, 난 역시 생각하는 사람인건가 하고 남모를 자부심에 젖어 있었을 뿐,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흙탕물을 밟은 것 같은 이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이 존재에 대해 확신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눈치를 챈 건, 아직도 내가 미친 건가 싶다 며칠 전. 아주 잠깐이었다. 장을 보던 중 금속 기둥에 비친 내 모습이, 분명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두들 피곤해서 헛것을 보았다고 말하겠지. 그런데 그 날 이후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가 아니었다. 나랑 같은 행동을 취하고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고, 변함없이 나의 모습과 같았지만 내가 아니었다. 똑같이 생겼지만 내가 아니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싶다. 나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오직 거울뿐인데,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내가 맞는지 아닌지 판단이 된다니. 다시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만 거울에 비치는 는 내가 아닌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머리는 매일 얼마나 자랐는지 눈치 챌 수 없다. 대개 몇 달 뒤 혹은 몇 주 뒤 언제 이렇게 많이 길었지?’라며 그제야 자라난 머리를 자각하곤 한다. ‘도 그랬다.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을 때 자라나는 검은 머리처럼 묘하게 변해가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교묘하게 나의 피사체는 자신을 바꾸고 있었다.

 

2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학교 가는 길에서 힘없이 축 늘어져있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털도 진득한 액체로 범벅되어있고 뭉텅이 채로 엉겨 붙어 있어 도무지 지나칠 수 없었다. 순수한 마음에 실내화주머니에 넣어 학교에 가져갔는데, 아이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을 수 있었다. 내 자리로 모두가 몰려들었고, 그날의 스타는 나였다. 선생님들도 걱정과는 달리 착하다며 머릴 쓰다듬으시고 손에 사탕을 쥐어주셨다. 고양이를 키우는 아이들은 사료를 가져와 먹이기도 하였다. 결국 고양이는 약 이틀간의 요양 끝에 길거리로 무사히 귀환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숫기 없고 집에서나 입을 열곤 했던 나에게 많은 아이들의 관심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맘속으로 좋아했던 아이도 고양이를 키운다며 관심을 보였고, 그걸 빌미로 한 마디나마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런데 원래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금방 타오른 건 금방 식는다고. 고양이로 인해 잠깐 동안이지만 아이들의 손때를 탔던 내 책상은 다시 본연의 깨끗한 멋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았고, 그냥 반 구석자리를 맡았던 한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았다. 매일 하교 길 길거리에 나앉은 동물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곳곳을 뒤지고, 상가로 가서 골목길을 하나하나 들어가서 살피고, 아파트 단지 뒤쪽에 있던 야산으로 가서 찾기도 했다. 날 둘러싼 아이들이 내뱉는 숨은 나에게 새로운 맛이었고, 난 그것을 마시고자 하는 욕구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가져간 건 비둘기였다. 우연치 않게 집 실외기 위에 둥지를 튼 비둘기를 잡아온 것이다. 더럽게 보이기 위해 집에 있던 숯도 뿌렸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비둘기는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이들이 보내는 비둘기에 대한 경멸의 눈빛과 두려움의 눈빛 사이에서 난 꼼짝없이 서있어야 했다. 그 순간 느낀 아이들의 눈빛은 날 메스껍게 만들었다. 혼자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고, 이윽고 난 화장실에 가서 먹은 것을 자그마치 네 번이나 뱉어내야 했다.

사실, 그 비둘기를 가져가기 전 몇 마리의 동물을 잡았었다. 우리 집이 땅으로부터 높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새 둥지에 손을 쭉 뻗으면 간신히 닿을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새끼 참새 한 마리를 잡아온 것이다. 그런데 너무 약했던 건지, 손을 몇 번 타자마자 딱히 세게 누르지도 않았는데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기보단, 불쌍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전에 길 가다 본 것처럼 흙에다가 묻어주었다. 내 머릿속은 한 가지를 깨달은 상태였다.

그래, 이런 걸 불쌍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

이렇게 말이다.

 

3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뒤 집에 가는 길이었나?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흰 교복 와이셔츠의 어깻죽지에 툭, 투둑 소리와 함께 축축한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문을 닫은 골동품가게의 처마 아래 섰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는 아니었기에 땅에 하나 둘 떨어지는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 거리가 흉흉하다고 기피해서 잘 가지 않는 곳이지만, 이상하게 난 그 으슥함에 매료되었고, 그곳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던 나는 그 거리로 곧장 잘 다니곤 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무서워해야 하는 건가?

그 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골동품 가게는 문을 연지 2년 정도 됐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밤에 집에 돌아오는 나는 사실 그 가게가 문 여는 것을 잘 본적은 없다. 가게 주인인 50대 아저씨가 불친절하고 간사하게 생겼다는 것밖에는 뭘 파는지, 손님이 얼마나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 가게 안에 있는 오르골이 돌아가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을 뿐이었다. 오르골은 팔지 않는다고 써져 있었는데 반 아이들 말에 의하면 그게 비싼 거라나 뭐라나.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처마에 서있는 와중, 가게 안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음침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누군가 날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때였다. 누군가 나를 온몸으로 밀쳤고, 유리창이 깨졌다. 큰 돌멩이로 깬 것 같았다. 눈코 뜰 새 없이 골동품 가게 의 진열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오르골을 가져간 듯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싼 거라더니 이렇게 쉽게 뚫리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골동품 가게 안 옛날 텔레비전의 화면 속 를 말이다. 나의 뒤 어딘가 서 있던 는 날 보며 씩 웃었다. 통쾌한 비소였다. 다시 눈을 비비고 봤지만 그냥 나였을 뿐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너였냐고 물어봤으면 좋겠다. 나는 아니다. 수수께끼 같다. 쫓기듯이, 아니 보이지 않는 그것에 쫓기며 도망쳐왔다. 아침이 되고서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4

나 요즘 이상한 게 보이는 것 같아.”

처음으로 이 일에 대해 꺼낸 첫 마디다. 미친 것처럼 보이겠지?

뭐가 보이는데?”

장난스럽게 앞에서 급식을 먹던 친구가 되물었다.

그냥. 거울 속에 내가 아닌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 요즘 살 빠졌어? 좀 얼굴이 폈니? 잘 모르겠는데.”

말을 듣자마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까지도 역시나 장난스럽게 웃어 넘겼다. 넉살 좋게 웃는 친구들의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없고. 여기서 더 진지하게 갔다가는 이상한 애로 도장 찍힐 게 뻔하다. 좌절감이 드러나는 입 꼬리를 애써 올리며 함께 웃어 넘겼다.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긴, 거울 속에 이상한 사람이 보인다고 한들, 누가 알아주겠어, 그치?

 

5

그 날 밤은 꿈을 꿨다. 요즘 들어 꿈이란 걸 꿔본 적이 없는데, 꽤나 낯설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근데 꿈에서는 평소랑 똑같은데 다른 게 있지 않는가. 예를 들면 갑자기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던지, 사람들이 말하는 게 이상하던가, 누군가에게 피 터지게 맞아도 아프지 않거나 말이다. 그 날 이상한 일이 있었던 골동품 가게도 지나치고, 늘 걷던 보도블럭도 지나갔고, 얼룩진 벽의 경비실도 지나쳤다. 엘리베이터도 늘 그렇듯이 웅웅-소릴 내며 올라갔고 말이다. 그런 께름칙한 꿈을 꾸지 않기 위해서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았어야 한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허한 맘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도중 뒤를 돌아보았다. 난 거울 안에 있었고, 무척 추워보였다. 거울에 비친 것은 였지만, ‘는 온통 흰 곳에 있었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흐를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살려달라고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샌지 난 그 세계 안에 도착해있었다. 무작정 걸었다. 걸었다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닥도 없었고, 하늘도 없었고,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었다. 그냥 발이 가는대로 갔고,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냥 그 순간에는 거울 속 떨던 를 부정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아이는 내가 아니야.’

평소의 걱정 때문이었을까? 거울 속의 그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몸이 향하는 대로 가다보니, 저 멀리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계속해서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문득 불안감이 생겼다.

저게 진짜 나라면 어떡하지?’

곧장 향하던 손이 멈췄다.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얼 걱정하는 건지도 그때로선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나인데, 어떻게 저게 나겠는가? 머릿속 생각이 엉켜나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은 나를 향해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일 무렵, 난 잠에서 깼다.

일어나자마자 청심환을 3알이나 손바닥에 덜었다. 많이 먹으면 효과가 없다는 건 누누이 들었지만 핍박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이상한 꿈이나 꾸고 말이야. 생각에 잠겨 있느라 컵에 물이 넘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6

교실 뒷문 쪽, 거울이 하나 생겼다. 쉬는 시간 틈틈이 거울 앞에 딱 붙어 립스틱을 바르는 무리 중 누군가 가져온 모양이다. 하필 이럴 때 이런 게 생길게 뭐람. 괜히 뻐근한 마음에 옆 짝꿍에게 동의를 구하려고 말을 걸었다.

화장실에도 있는 걸 뭘 굳이 가져온 건지 모르겠지 않아?”

?”

별 심각한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나보다. 하긴, 괜히 내가 예민하게 구는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저거, 거울.”

그런가, 근데 더 편하지 않나?”

어깨를 으쓱하며 건성으로 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환각을 본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기 싫은 건 여전했다. 노트북을 켜고 채팅 프로그램을 열었다. 랜덤채팅에 접속하여 상대방 찾기 버튼을 누르자마자 몇 초 이내 채팅 상대가 등장했다.

26’

이름 없는 상대방이 밑도 끝도 없이 자기소개를 해 온다. 분명 검은 목적이 있으리라. 대답하기 싫은 마음에 그냥 내 얘기를 꺼냈다.

요즘 좀 이상한 것 같아.’

내가 보내놓고도 뜬금없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내 얘기를 꺼내는 것이 비참하기도 하고. 분명 이 사람 금방 채팅방을 나가고 말 것이다.

무슨 일?’

뜻밖에도 내 얘기를 듣는 척이라도 해주는 건지.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인데, 그냥 이야기 해 보자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자판을 쳐 한 마디를 보냈다.

그냥. 거울 속에 내가 있는데, 내가 아니야.’

미친 것 같다.

무슨 근거로?’

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상대가 답을 보내왔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말이야, 무슨 근거로? 한번 얘기하기 시작하니 하고 싶은 말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러게, 내가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어. 근데 거울로 보는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나. 모든 거울에 비치는 내가 나가 아니라니. 나를 볼 수 있는 건 거울 뿐인데. 사실 어느 날은 나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날 봤어,’

상대방은 읽은 눈치였지만 몇 초 동안 채팅창에 침묵이 일었다. 채팅방을 나가려던 와중,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해 줄 말이 없다. 환각을 보는 게 아닐까? 아니라면 거울 속 널 잘 봐봐. 뭔가 다른 점이 있을 지도.’

내가 채팅창을 다 읽기도 전에 상대방이 채팅방에서 퇴장했다는 문구가 내 눈 앞을 가렸다. 그래, 믿든 말든 알아서 해라. 이젠 별 생각이 없다. 불과 며칠 전 일이지만, 몇 달 전 일처럼 까마득해지기 시작했다.

 

7

체육 시간이었다. 몇 명의 아이들과 물을 마시러 들어왔을 때쯤, 교실 뒤편에 걸려 있던 거울에 눈이 들어왔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모두가 웃고 있는 와중, 그 거울 속 비친 는 혼자 울고 있었다. 등골부터 시작하여 머리끝까지 닭살이 돋았다. 역시나 다시 보니 그 무엇도 비치지 않았다. 그 속에는 다른 내가 날 보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8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미래를 보여주는 걸까? 그 아인 도대체 누군데 내 얼굴을 하고 그런 일을 겪는 거지? 어릴 적 TV를 돌리다가 한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만화 주인공의 엄마가 주인공에게 집안일을 시켰는데, 거울 속 똑같이 생긴 아이가 나타나 주인공 몰래 집안일을 하고 간식도 먹었다. 그 이야기는 거울 속의 그 아이가 음흉하게 미소를 지으며 음산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그 당시 그 만화는 큰 충격이었다. 사실 나는 거울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거울 자체의 기능을 싫어하기보다는, 거울에 관련된 여러 괴담들 때문에 혼자 거울을 보는 걸 좀 꺼려하는 것이었다. 이를 테면, 엘리베이터의 마주 보고 있는 거울 사이로 계속해서 비춰지는 거울의 모습 중 13번째 거울에는 귀신이 살고 있다는 것이던지, 현관문과 마주 보는 거울은 집에 악귀를 불러온다는 것이라던가, 집에 거울을 주워 오면 저주를 함께 끌어들인다거나 거울을 보고 자신과 가위 바위 보를 하다가 거울에 있는 자신이 이겼다는, 뭐 그런 거 말이다. 미신이라고 생각해서 피식 웃고 말았지만, 가끔씩 머릿속에 떠올라 팔을 오돌토돌하게 만들곤 하였다.

며칠 전이었다. 방 안에 있던 거울에 금이 가있던 것은. 누가 오금을 툭 친 것처럼 다리가 풀렸다. 원래 그런 말이 있다. 거울이 깨지면 복이 달아난다고. 금 간 거울 표면에 비치는 나의 얼굴은 울퉁불퉁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 당장이라도 깨트릴 듯이, 툭 치면 무너질 것만 같았다. 황급히 엄마한테 달려가 물었다. 그래, 혹시 청소하다가 잘못 건드리셨을지도 몰라.

엄마, 혹시 제 방 거울에 금간 거 왜 이렇게 됐는지 아세요?”

엄마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말 뿐이었다.

아니, 금갔니? 잘 모르겠는데?”

, 그게. 아니에요, 별로 깨지지도 않았어요.”

아참,

그럼 오늘 청소하시지도 않으셨어요?”

, 오늘 너 방 근처도 안 갔어,”

납득될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특별히 심각한 일도, 큰일도 아니었다. 거울에 금이 갈만한 요인은 무수히 많고 그 변수 또한 무수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불안함이 떨칠 수 없는 것일 뿐이었다.

 

9

유치원 때였다. 엄마와 함께 시내를 걷던 중이었다. 그 날은 오랜만에 돈가스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나는 무척 신나있었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직장인이며 학생이며 평일치고는 꽤 분주한 곳이었다. 엄마가 날 보고 내가 신나서 깡충깡충 발을 딛는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지으셨다.

 

오늘 식당에 가서 뭐 시키고 싶어? 먹고 싶은 거 있어?”

나는 그냥 신나서 대답하고 있었을 것이다.

돈가스에다 우동도 먹고, 이것저것 먹고 싶어요!”

이내 우리는 웅성거리는 인파에 의해 가던 길을 가로막히고 말았다. 마치 서커스라도 보는 듯이 사람들이 어느 한 쪽을 둘러싸고 있었다. 공연자에 움직임에 따라 환호성이 일어나듯이 사람들의 환호성도 일었다 사그라졌다 반복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재미에 겨워 환호성을 지르는 표정은 아니었다. 내가 그 당시 할 수 있는 표현으로썬 쉽게 형용할 수 없었으나 마치 맛없는 음식을 먹었던지 집안에서 기어 다니는 벌레를 봤더라고 할 때나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 몰려들었던 군중이 끊임없이 퍼지고 움직이며 난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도록 만든 그 대상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TV에서 봤던 광견병의 증상과 흡사했다. 군중의 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던 한 사람은 무척 초조해보였다. 덜덜 떨며 한 손은 주먹을 꽉 쥐고, 한 손은 날카로운 무언가를 지닌 채.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윽고 흐느끼더니 뾰족하고 날카로운 그것-을 손목 어귀에 갖다 댔다. 누군가 소리쳤다.

안 됩니다! 진정하세요.”

옆을 돌아보니 초록색 조끼를 입은 경찰관이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 경찰관이 입은 경찰복이 너무 멋져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이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이 무어라 악을 쓰는 것이 들렸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자마자 바닥에 검붉은 액체가 흩뿌려졌다. 군중들 사이,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날카로운 그것이 손목 위를 다시 빠르게 지나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팔이 피투성이가 되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내 눈을 손으로 가렸다. 나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기에 가만히 순응했다. 엄마의 손은 땀에 젖어 축축했다. 난 엄마가 가자는 대로 따라갔기 때문에, 그 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밖에 없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집으로 향했고, 난 집에 돌아가 며칠 동안 몸살에 시달려야 했다.

 

10

가끔씩 생각이 나곤 한다. 그렇게 많은 양의 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 사람이 끝내 어떻게 됐는지 모르기 때문일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내 마음 속 쾌쾌한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놓아져있다가도 가끔씩 나도 모르는 새 내 머릿속에 꺼내졌다. 갑자기 으슬으슬한 느낌이 들었다. 불안한 느낌이 연거푸 들었고, 속이 울렁거렸다. 누군가 날 세상에서 분리하는 듯 황홀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든 느낌이 모순됐지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한정되어 있기에 여기까지 설명할 수밖에 없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피사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 모습이 비추었다. 충동적으로 갔지만 불안한 맘은 씻을 수 없었기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아닌 나의 피사체는 괴기하게 미소를 띠우고 있었고, 내 오랜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 날카로운 것을 들고 있었다. 거울 속 방은 엉망이 되어 있었으며, 그 날카로운 것의 표면에는 누군가의 몸에 먼저 들어갔다 나왔던 것인지 점성이 있고 검붉은 물이 뚝뚝 흘러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때와 똑같았다. 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고, 무슨 사연이 있는지도 알 겨를이 없었다.

순식간이었다. 거울 속 피사체의 온몸이 검붉은 빛깔로 물들여졌다. 공포심이 엄습하여 나를 휘감았다. 내 머리는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았고 난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서서히 앞으로 향했다.

 

여기까지가 지극히 주관적인 보탬 없이 내가 말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난 아직도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과장 없이 투명한 나의 이야기는 이만큼이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되길 바라는가?

α

=피사체에는 진실이 비친다.

앞으로 향했다. 이내 정신이 말끔해지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다시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의 어지러움과는 좀 달랐다. 찢어지는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거울에 손을 가져갔다. 검붉은 색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바닥에는 액체가 흥건했다. 이윽고 나는 실성하고 말았다.

꺼져가는 정신 속에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다시 찬찬히 살펴본다. 그 골동품 가게 앞에 서 있었던 날, 내 손등에는 생채기가 났다. 이상하게도, 가게 주인이 장사에 능통하지 않았던 탓인지 가게 앞에는 CCTV라곤 전혀 없었다. 방범 시스템을 설치할 법도 한데, 전혀 없었다. 골동품 가게라고 옛날처럼 하고 싶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유리를 깨트린 것은 돌이었지만 잡고 있던 손에 유리가 박히지 않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엄마 손에 이끌려 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과 엄마 사이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오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다지 좋은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날 엄마는 방에서 울었다. 엄마는 나에게 아주 조금 설명해주었는데, 가끔씩 변하는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사흘에 한 번씩 두 알의 알약을 먹었다. 처음엔 하루에 한 알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돌아오는 기간이 늦춰졌다. 무슨 약인지 궁금하진 않았다. 하얀색 통만 있었고, 물어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엄마 몰래 약을 안 먹기 시작한 이후, 다른 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난 그 아이의 행동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도 내 주변에는 없었다. 형식상 반에서 누군가 혼자 다니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있기 때문인지 밥을 같이 먹을 뿐이었고,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모두 난 알고 있었다. 실제로 날 정말 친구로 생각했던 것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변함없이 조용한 아이었고 내가 말을 걸면 탐탁치 않아하는 것이 보였다. 체육 시간 물을 마시러 갈 때 말을 걸어보자는 마음에 뒤를 따라갔지만, 내가 잠깐 교실 좀 갔다 온다며 돌아온 후에는 모두가 가버린 후였다.

꿈에서 본 사람? 난 그날 그 뒷모습이 누구인지 다 보았다. 그 사람과 나는 눈을 마주쳤고 내가 하는 행동을 다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른손을 들면 그 사람은 나와 마주한 손을 들고, 내가 뒷걸음질 치면 똑같이 뒷걸음질을 쳤다. ‘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꿈을 꾼 이후 은밀히 예감해왔던 것 같다. 거울 속의 아닌 는 고작 피폐해진 나 그대로였다.

 

 

β

=피사체는 진실이 비치는가?

앞으로 향했다. ‘는 날 강하게 끌어당겼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온통 하얀 빛이 눈을 찔렀기에 질끈 감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고요했다.

정말 내가 피폐해졌나보다.’

머리가 하얘졌다.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 , 해결됐네.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싶으면서도 더 이상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숨 막히는 갈증이 느껴졌다. 쓰러질 듯 비틀비틀 일어서서 방문을 찾았다. 피곤한 육체에 눈꺼풀까지도 제 힘을 발휘 못 하고 자꾸만 아래로 내려왔다.

-

원래대로라면 문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이상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주위를 둘러본 후에야 상황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반대가 됐다. 다만, 나는 그때까지도 이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거울로 휙 고개를 돌렸다. ‘가 또 비소를 흘렸다. 아무 말을 하진 않았지만 가 아주 재미있는 게임을 끝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는 사라졌고 다시 거울 속 내가 나타났다. 벙찐 표정.

오랜만이네.’

황당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입가에 피는 헛웃음에 그 동안의 헛됨이 녹아내렸다. 그때까지도 난 현실에 있지 않았다. 문득, 가슴팍에 나타난 변화가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보탬 없는 진실뿐이었다. 난 아직도 골동품 가게에서 누가 오르골을 훔친 건지 모르고 있고, 거울 속 누군가 보였던 것도 사실이며, 다른 사람들과 한 대화, 설명 모두 사실이었다.

---

몸속에서 울려오는 소리였다. 밖에서 엄마가 설거지하며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나의 심장은 분명 오른쪽에 있었다.

 

ri(실수와 허수)

내가 궁금한 것은 과연 진실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피사체와 나의 세계가 공존한다면 와 나는 도대체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내가 설령 피사체가 되어버린다고 하더라도 나는 진실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직도 나 그 자체다. 진실은 내가 자각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또한 내가 자각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내가 피사체가 되더라도, 내가 진실이라면, 더 이상 피사체는 피사체로 남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피사체가 아닌, 나와 ,’ 혹은 나와 ’ - 그 사람을 존중해준다면 로 남게 되는 건 아닌가? 단지 작은 의문을 품어본다.

 

 

해설

α에 대한 해설

거울 속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모습은 모두 자신이 맞았다. ‘는 가끔씩 이상 행동을 보이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고, 약을 챙겨먹지 않았기 때문에 허상과 이상한 공포심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그 동안 느꼈던 스트레스와 환각에 가족을 죽이고 끝내 자신까지 파괴하고 삶을 마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의 두 개의 정신 중 한 정신이 저지른 일이 다른 정신에게도 진실이 될 수 있는 것인가?

β에 대한 해설

거울 속의 피사체와 는 끝내 바뀌고 만다. 피사체는 그 동안 를 피폐하기 만들기 위해 나타났고, ‘를 거울 속으로 끌어들이고 현실로 유유히 떠난다. ‘가 옮겨진 세계는 모든 물건과 공간의 위치가 좌우로 바뀌어있고, 심장이 거울의 시점처럼 오른쪽에 있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피사체가 주인공의 원래 세계로 가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 걸까? 또한 는 정신질환이 있는 것도, 미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 과거 느꼈던 감정들은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또한 생각해보아야 한다. ‘는 그대로고 모든 것들의 존재도 그대로인데, 거울 세계는 현실 세계가 될 수 없는가? 이 세계는 거짓이라고 해야 하는가?

  • profile
    korean 2019.03.02 20:31
    열심히 쓰셨습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신다면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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