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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기의 연어는

 

  냉장고를 열어 찬거리를 찾는다. 장조림에는 메추리알이 없고, 깻잎이 담긴 통 밑바닥에는 양념만 자박하게 깔려있다. 그나마 먹을 거라곤 쉬어버린 김치와 파 한 뿌리가 전부다. 이럴 때면 부모님을 찾아뵌 지 꽤 지났음을 깨닫는다. 추석에 찬거리를 받아 온 이후로 왕래가 없었으니 꼬박 반년을 부모님 얼굴을 보지 않고 지내왔다. 취업은 언제 하냐는 친척의 말이 언짢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걸 기어코 잡아 음식을 한 보따리 손에 안겨준 어머니가 보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 얼굴 좀 보고 반찬 좀 얻어와야겠다. 냉장고 문을 닫고 선반을 열어보니 참치 캔과 햄 하나가 보인다. 몇 주를 꼬박 참치와 생선만 먹어온 터라 망설임 없이 햄을 잡는다. 종이처럼 얇은 캔 뚜껑을 뜯으며 문득 자취를 처음 시작했던 때가 떠오른다.

  난생처음 햄 김치찌개를 끓여보겠다며 캔을 뜯다 뚜껑의 날에 살이 찢겨 나갔다. 김칫국물이 아닌 시뻘건 피가 도마 위에 뚝뚝 떨어지고 피가 고인 부분의 살점은 볼품없이 덜렁거렸다. 결국, 밥도 못 먹고 수건에 손을 동여매고 병원에 갔다. 실로 찢어진 부위를 꿰매고 엉덩이에 주사를 한 대 맞고 집에 오자마자 서러워 울었다. 밥은 못 먹고 손은 다치고주사를 놔주는 간호사가 촌스러운 팬티를 보며 웃었던 것이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라. 예상외에 지출에 일주일을 굶어야 하는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엇보다 자취방에 나를 걱정해 줄 사람이 없다는 허전함에 현관에 주저앉아 엄마, 엄마.”, 장 보러 나간 엄마를 애타게 찾는 7살 꼬마가 되었다. 당시 나이 스물여섯, 다 큰 남자가 캔에 손을 베이고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울었다는 어디 가서도 말하지 못할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린다. 이제는 캔을 따며 손을 다치는 일 따위는 없다. 캔을 뜯는 일이 익숙해지기가 무섭게 안심따개가 나와 더는 알루미늄 캔의 날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털어버리며 햄이 들은 캔을 공중에 거꾸로 들고 툭툭 친다. 나올 듯 말 듯 한 햄의 대가리를 과도로 찍어 내린다. 햄은 반절 정도 나오는 듯 보이더니 이내 뚝 끊겨 덩어리가 뚝 떨어진다. 끝내 캔 안에 있는 내용물을 칼로 조각내 냉장고에서 아까 본 김치와 함께 끓는 물에 넣어버린다. 대파 한 뿌리와 고춧가루를 넣으니 그럴싸한 김치찌개로 변해있다. 시간은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여유롭게 TV를 켜 뉴스 채널에 고정한 뒤 밥과 찌개가 전부인 조촐한 식탁에 앉는다. 햄을 한 조각 떠먹으니 엄마가 해준 집밥이 먹고 싶다. 핸드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신호가 두 번이 채 울리기 전 아들?’이라며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엄마. 일어났어요? 나 오늘 첫 출근이에요.”

  출근 첫날에서야 엄마에게 취업 사실을 알린다. 엄마는 매우 기쁜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고 어머, 어머비음 섞인 탄성을 내지르며 기뻐한다. 이따금 왜 그 사실을 이제야 얘기 하냐며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더니 옆에 있을 아버지에게 나의 취업 사실을 알린다. ‘당연한 걸 두고. 누구 아들인데. 날 닮아서 어릴 때부터 뭐든 척척 잘했지수화기에서 무심한 중년 남성의 낮은 목소리가 흐리지만 또렷하게 들려온다. 말 속에 은근한 자기 자랑과 자식에 대한 대견함과 자부심이 느껴져 뒤통수를 긁는다.

이번 주 금요일에 일마치고 갈게요. 아니에요. 기차 타는데 뭐가 힘들어요. . 끊어요.” 

  엄마는 힘들게 왜 오냐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더니 맛있는 음식을 해놓겠다며 설레발을 친다. 묘한 어색함에 전화를 끊는다. 뉴스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정치인들이 다투고 있다. 찌개에서 햄 한 조각을 떠 입에 넣으며 내용에 집중한다.

<황우 식품이 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황우 식품의 대표 전준규 씨는 인터뷰를 통해 식품 가공에 있어 안전과 위생에 최선을 다하며 기대에 부응하겠다.’라며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뉴스에서 한 회사의 우수기업 선정 소식을 전한다. 표창장과 플래시 세례를 한 몸에 받는 회사의 대표와 그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가슴을 내밀고 손뼉을 치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면접에서 본 듯한 심사의원의 얼굴이 그와 겹친다. 회사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나 보다. 그를 만나 형식적인 대화를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에 괜히 실없는 웃음소리를 낸다. 남자의 얼굴에 자신을 대입하며 언젠가 내가 저 자리에 오르겠노라 야망을 끄집어내니 심장이 크게 뛴다.

TV 속 화면의 망상에 빠져 유영하던 찰나 다음 기사로 화면이 전환된다. 기사 하단에 크게 단독, 정신착란 증상. 전염 가능성 염두 해야.’라는 문구가 지나간다.

 <단독 속보입니다. 최근 정신착란 증상을 보이는 시민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불특정 다수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전염의 가능성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이 증상이 심각한 사람의 경우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범죄로 이어져 문제는 더욱 불거지고 있습니다. 학계와 연구 기관에서는 이달 내로 증상에 관한 연구에 전면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

  뜨겁게 끓던 피가 차갑게 식는다. 동시에 기분도 가라앉는다. 기자는 담담한 어조로 속보를 전하고 있다. 기자 뒤로 무기력하게 연행되는 사람의 실루엣이 지나간다. 생소한 사건이기는 하나 터무니없는 내용에 큰 감흥이 없는 표정이었다. 순간 연행되던 사람이 옆 사람을 밀치고 귀신이! 이상한 시체가!’라며 고함을 지르며 도망친다. 그러나 금방 양팔이 붙잡혀 차에 실린다. 그는 해부 직전의 개구리처럼 배를 뒤집어 까고 두어 번의 발작을 일으키더니 얼마 못 가 두 남자를 지지대 삼아 움직인다.

범죄자 놈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네. 뭐만 하면 죄다 정신병이래.”

  TV를 끈다. 꺼진 화면으로 속보를 전하던 기자와 비슷한 표정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캔에 손가락을 베였던 나이라면 저 사건에 분개하거나 동정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서른이 넘은 지금 하루걸러 기사에 실리는 잔혹 범죄와 동정표를 얻고자 하는 어쭙잖은 변명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오히려 여유를 부리느라 간당간당하게 남은 버스 시간에 몸과 마음이 더 동할 뿐이다. 밥그릇에 덕지덕지 붙은 쌀알을 긁어모아 입에 털어 넣고 손으로 입을 대충 닦는다. 외투와 가방을 품에 들고 잰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구두 앞코를 탁탁 치며 현관을 나서자 날 선 소음에 귀가 먹먹하다. 옆집 현관 앞에 어린 아이가 쪼그려 울고 있다. 늦은 와중에도 양심이란 게 있는지 아이에게 시선이 간다. 왜 아침부터 밖에서 울고 있을까.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이가 앉아있는 문 안에서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의 날 선 비명이 들린다. 아침부터 애를 내쫓고 부부싸움 중인가 보다.

엄마랑 아빠가 자주 싸우니?”

  딱히 궁금하지 않다. 그냥 뻔한 겉치레. 그저 옆집 사람에게 예의상 안부를 묻는 그 정도의 질문. 아이는 당연히 라고 할 것이고, 나는 약간의 격려를 전하고 떠나면 된다. 짧은 시간 안에 어른으로 해야 할 도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아니요.”

  계산에 어긋나는 아이의 말. 입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이런.” 하는 탄식이 절로 흐른다. 핸드폰을 확인한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출근 첫날부터 지각이다. 햇수로 오 년, 사용한 종이만 해도 숲 하나를 낭비했을 것이다. 고대했던 첫 출근부터 지각한 신입사원으로 낙인찍힐 수는 없지 않은가.

엄마가 밥을 안 먹어요. 아빠가 밥을 차렸는데, 엄마가 물건을 부수고.”

이런, 학교 갔다 오면 괜찮아질 거란다.”

  아이의 말을 끊고 시끄러우니 학교나 가라.’라는 말을 완곡하게 돌려 말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움찔거리는 아이의 입을 피해 비상구 문을 열고 도망친다. 상황은 딱하지만 별수 없다. 남의 가정사에 깊게 관여해봤자 오지랖일 뿐이다. 더군다나 아이의 말을 들어 어떤 이득도 볼 수 없지 않나. 새 구두 굽이 계단에 닿을 때마다 딱딱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책가방이 안에 있는데.”

  희미하게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발을 더욱 세게 구른다. 구두 소리에 아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일부러 무시한 게 아니다. 아이의 말은 구두소리에 묻혀 나에게 닿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따라 세 번 돌아 내려가자 아파트 입구로 햇빛이 한줄기 떨어진다. 열린 문으로 바람이 분다. 팔에 걸친 외투를 서둘러 몸에 두른다.

정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게만 느껴진다. 구둣발로 괜히 스텝을 밟는다. 놀이터, 건널목 하나하나가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회사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더 빨리. 빨리. 정류장이 보일 때쯤 뛰기 시작한다. 가방이 손아래에서 거세게 흔들린다. 마침 멀리서 버스가 보인다. 오늘은 운이 좋다. 생각할 때쯤.

저리 비켜! 비키라고!”

  한 여자가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여자를 향해 감정을 터트리고 싶었으나 타이어 쓸리는 소리에 순서를 빼앗긴다. 여자는 급정거한 버스 앞에 엎어져 있다. 몸을 떨면서도 여전히 소리를 지르는 모양이 아직 살아있나 보다. 버스기사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차에서 내린다. 그가 여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구수한 사투리를 쏟아 낸다. 출근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무리 지어 서있던 사람들이 여자와 버스기사를 둘러싼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사고는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고, 뒤늦게 온 사람들은 평소였음 말도 안 섞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며 물어본다. 그 누구도 여자의 안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차라리 죽었으면. 사람들의 표정에서 속마음이 읽힌다.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난 사고는 냄비들의 마음을 오래 달구지 못한다. 고작 컵라면 하나가 익을 시간. 사람들의 빛나던 눈이 이제는 시계를 애타게 바라본다. 버스 기사를 한 번, 여자를 한 번, 시계를 한 번, 목적지가 있을 방향을 한 번. 사람들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간다. 내 눈동자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

거 이제 출발합니다. 이러다 늦으면 댁이 책임질 거요?”

  한 남자가 버스기사에게 핀잔을 준다. 주변에서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기사는 버스에 오르고 사람들도 이어서 버스에 탄다. 죽을 뻔한 여자만이 도로 한가운데 앉아 허공을 향해 팔을 가로지른다. 버스가 출발하려는 찰나 누가 신고했는지 앰뷸런스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고 여자가 앰뷸런스에 실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구급대원들은 자기들끼리 짧게 대화를 하고 차에 오른다. 순간 찬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서둘러 창문을 닫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닫힌 창문으로 수십 개의 건물과 수백 대의 차들이 움직인다. 멈췄다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하던 버스는 다행히도 제 시간에 맞게 회사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건물. 마치 산란기의 연어 떼처럼 좁은 유리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 마리의 연어가 되어 무리에 합류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사람들의 틈에 섞여 승강기에 오른다. 승강기 벽면에 층별로 부서가 나열되어 있다. 빠르게 마케팅 부서의 층수를 눈으로 훑는다. 웬만한 아파트정도 되는 높이의 건물은 층층마다 다양한 부서가 들어 차 있었다. 위로부터 죽 안내판을 보다 중간 부분에서 마케팅부라고 적힌 문구를 발견한다. 13층이다. 승강기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하염없이 정면의 숫자가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제 층에 도착하자 높낮이가 없는 기계음이 울리며 문이 열린다. 사람들을 비집고 승강기 밖으로 나와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양 옆으로 긴 복도가 보인다. 통유리로 된 부서 사무실이 열을 지어 자리를 잡고 있다. 내부는 각 부서와 팀의 색깔을 보여주듯 사무실마다 다르게 장식되어 있다. 넋이 나가 내부를 힐끔힐끔 훔쳐보면서도 몸은 계속해 앞으로 향한다.

  그렇게 걷는 것도 잠시 복도 끝 가장 큰 사무실을 앞에 두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혹시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까 머리를 손으로 두어 번 빗질하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문을 열자 새로운 얼굴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한다. 신입이 온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으리라.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사람들은 두 유형으로 나뉘었다. 그러려니 하고 일을 하거나, 뉴 페이스에게 좋든 싫든 관심 어린 눈빛을 보낸다.

  사무실 중앙 창가 자리 앉아있던 남자가 뒷짐을 지고 다가온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을 보니 높을 사람임이 분명하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곁눈질로 그의 사원증을 본다. 마케팅부 영업 2팀 수석. 최소 부장급이다. 고개를 들자 그는 자신을 박 수석이라 칭하며 악수를 청한다. 까칠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호탕하게 웃을 줄 아는 남자였다. 그는 사원들에게 큰 소리로 이미 다 알고 있을 신입의 존재를 상기시키고는 마케팅부와 회사 자랑을 늘어놓는다. 중간 중간 회사소개와 담당업무 설명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팀의 공치사와 자랑으로 이루어진 설명이었다. 구석에선 사원 두 명이 매번 신입이 올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하는 그의 말을 외운 듯 박 수석의 성대모사를 한다.

신입은 저기, 최 주임 옆에 앉으면 돼.”

  박 수석이 가리킨 곳에 한 여자가 앉아있다. 여자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한쪽 손만 들어 자신의 위치는 알린다. 가방을 품에 안고 그녀의 옆자리로 향한다. 사람들은 지나칠 때마다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한다. 도착한 자리엔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다. 의자에 앉으며 최 주임에게 인사한다.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맞받아치고 다시 제 일을 한다. 질끈 묶은 머리하며 하반신을 둘러싼 담요,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다크서클로 인해 초췌한 인상. 어디 하나 성할 데 없는 모습인데도 그녀에게서 지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녀와 가깝게 지낼 것이라 다짐하며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회사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과 다짐을 하나씩 적어나간다.

  수첩 한바닥을 가득 채우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제 할 일을 하느라 바쁘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부러움 섞인 눈으로 바라본다. 칸막이 너머로 최 주임의 타자소리가 들린다. 의자를 뒤로 밀고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녀는 줄곧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의식이라도 했는지 나와 시선을 맞춘다. 나는 텅 빈 책상과 비어있는 양손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그제야 그녀는 나에게 일거리를 던져준다. 자료를 스크랩하는 단순 노동이었으나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활동이었다. 서류뭉치와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자르고 붙이고 메모지에 요약해 적는 행위를 반복한다. 스크랩 행위에 손이 익을 때쯤 누군가 어깨를 툭툭 친다. 최 주임이다. 그녀는 모니터 화면에 있는 시계를 가리킨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정오에 머무르고 있었다.

열두시부터 점심이에요. 밥 먹고 해요.”

  최 주임에게로 두 명의 사원이 다가온다. 그녀와 어울리는 직장 동료인 것 같다. 최 주임은 그들과 몇 마디를 나누다가 사무실을 나선다. 나는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어색하게 최 주임의 뒤를 따른다. 구내식당은 회사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식당 내부는 사무실의 모습과 상반되게 어수선하고 생기가 감돌았다. 식판을 들고 있는 최 주임 역시 언제 퀭한 모습으로 일했냐는 듯 표정이 폈다.

  구내식당의 백반은 평범한 가정식이었다. 된장국과 반찬 서너 개. 종류도 다양했으며 맛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자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반찬으로 나오는 건지 아침에도 먹었던 것 같은 익숙한 맛이 났다. 식판에 코를 박고 묵묵히 밥을 비워낼 때에도 최 주임과 그 동료들은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간간히 내게도 대화의 기회가 왔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식판을 다 비울 때쯤 다른 동료들도 식사를 마친 듯 수저를 내려놨다. 깨끗하게 비워져있는 내 식판과는 다르게 최 주임과 그 일행들의 식판엔 햄이 먹기 전의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매번 비슷한 음식이 나와 물려버린 것일까. 의문을 참지 못하고 반찬을 남긴 이유를 캐물었다.

고기를 안 좋아해서.”

  최 주임 옆의 동료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 이유를 댔다. 개중엔 매번 비슷한 음식이 나와 질린다는 이유와 다이어트 핑계를 대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똑같은 음식을 싫어할 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이러다가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근무를 하게 생겼다며 서둘러 일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오래 생각할 틈도 없이 식당을 떴다. 커피 하나씩을 손에 쥐고 각자의 자리에 앉는다. 박 수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두 번 침으로써 오후 근무의 시작을 알린다. 동시에 컴퓨터 타자소리 외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 또한 남은 자료 스크랩을 다시 시작한다. 스크랩을 마무리 할 때마다 최 주임은 내게 새로운 일거리를 건넸다. 일을 마무리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내부는 노을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피로로 찌들어 있으면서도 퇴근 생각에 기분이 좋은 것인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때 다시 박 수석이 일어난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신입이 온 기념으로 회식을 하자며 박수를 친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향한다. 그들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박 수석의 건배사가 들린다. 팀의 안녕과 신입의 입사를 환영하는 식의 식상한 멘트였다.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잔은 맞댄다. 술과 고기는 껄끄러웠던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었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경계를 풀고 어깨동무를 하거나 악수를 청하는 자들도 생겼다. 점심을 함께 먹었던 동료가 취기가 올랐는지 쌈을 싸서 내 입에 넣고는 웃는다. 쌈을 한입에 삼키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도 상추에 고기를 두 점 올려 입에 넣는다. 점심에 고기를 싫어한다고 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맛있게 먹는 모습이 의아하여 최 주임을 바라본다. 그녀 또한 불판에 잘 익힌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는다. 그들은 왜 고기를 싫어한다고 거짓말을 한 것일까. 의문이 극에 치닫는다. 그러나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소한 거짓말에 하나하나 토를 달진 않았다. 그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5권 분량의 장편 소설을 써나갈 뿐이다.

다들 생산 팀 얘기 들었어요?”

  술에 취한 사원이 조심스레 꺼낸 말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혼자 소설을 쓰는 것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다른 이들은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겠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문득 아침에 본 뉴스가 떠오른다. 우수기업 선정. 제품을 생산에 있어 청결과 안전을 준수해 받은 업적이다. 당연히 생산 팀이 가장 큰 공을 세웠을 테고 이에 따른 상여금을 두둑하게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 혼자 멀뚱히 모르는 척 한다면 회사 내부 사정도 모르는 멍청한 신입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아침에 본 뉴스 내용을 바탕으로 최대한 아는 척을 해 보인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까지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어색한 분위기와 침묵이었다. 나를 제외한 사원들이 서로 눈을 맞춘다. 박 수석이 헛기침을 하더니 잔을 들고 건배사를 외친다. 박 수석의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잔을 들고 입에 털어 넣는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시선을 주지만 연거푸 술을 들이마신다. 눈을 마주치는 사람마다 시선을 피하기 바쁘다. 최 주임이 있는 자리를 바라본다. 그 사이 한바탕 한 건지 그녀의 테이블엔 빈 소주병이 가득하다. 그때 최 주임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짐을 챙겨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뜬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용히 최 주임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얼굴에 피어있는 홍조와 반쯤 풀린 눈이 그녀가 만취 상태임을 알려준다.

생산 팀. 무슨 일 있었어요?”

  그녀의 귀에 대고 둘만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묻는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최 주임과 눈이 마주친다. 한숨을 푹 쉬더니 헤실헤실 웃다가 이내 정색하더니 잔에 있는 술을 비운다. 두어 번 다시 묻자 그녀는 테이블에 잔을 가볍게 치며 소주병을 곁눈질 한다. 빠르게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그녀의 잔을 채운다. 연거푸 소주를 들이키던 최 주임이 다가온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다 테이블에 이마를 박고 잠에 든다. 대화는 아주 짧게 뒷이야기도 듣지 못하고 끝나버렸지만 최 주임의 목소리는 강하게 머리를 울렸다. 회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 잠이 들기 직전까지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죽었죠. 많이. 아주 많이.”

  밥을 먹는 중이었는데 반찬이라곤 햄 통조림 하나가 전부였다. 젓가락조차 없다. 숟가락으로 햄을 뜬다. 통조림에 있는 찐득한 기름덩어리가 같이 올라온다. 기름덩어리까지 입에 넣고 씹는다. 햄의 짠맛이 느껴질 때면 밥을 한술 떠 삼킨다. 그렇게 밥 한 공기를 다 비울 때 쯤 햄을 다시 뜬다. 딱딱한 무언가가 숟가락 끝에 닿는다. 잘라보려고 숟가락을 든 손에 힘을 주지만 들어갈 듯 움직이다 이내 잘리지 않는다. 통조림을 들여다보지만 그림자가 져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통조림 안에 손을 넣어 휘젓는다. 무언가 손끝에 닿는 느낌을 들자 끄집어낸다. 통조림 안에서 염분에 절어 쪼그라든 손가락 하나가 나온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깬다. 꽉 쥐어진 손에 땀이 흥건하다. 시간을 확인하고자 핸드폰 화면을 켜니 그제야 알람 소리가 울린다. 꾸물거리며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고 부엌으로 향한다. 선반을 열자 꿈에서 먹었던 햄 통조림이 보인다. 올라오는 구역질에 선반 문을 닫는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런지 입맛이 없다. 입안이 텁텁하게 느껴진다. 생수 한 병을 꺼내 들이키고는 빠르게 집을 나선다.

  회사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간보다 30분정도 이른 시간이었다. 소리 내어 인사 했으나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그저 첫 출근이라 힘들어서 그런 꿈을 꾼 것이라 자위한다. 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최 주임이다. 그녀는 양손에 각각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있었다. 최 주임은 나를 보고 가볍게 인사하더니 자리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서류를 훑는다. 샌드위치 속 야채 씹히는 소리에 침을 삼킨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사무실을 울린다. 소리를 들었는지 그녀의 시선이 관자놀이에 꽂힌다. 민망하여 일부러 소리 내 헛기침을 하다 그녀의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아침을 먹지 않고 와 속이 허하다고 이실직고 한다. 최 주임은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샌드위치 한 쪽을 넘겨준다. 나는 샌드위치를 받아먹으며 어색하게 회식 자리 얘기를 꺼낸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어제 얘기, 내가 했다고 하지 말아요.”

  최 주임은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경고한다. 복잡한 일에 깊게 엮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마음은 이해하나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자세히 설명해 달라며 잡고 매달린다. 그녀는 술이 원수라며 한탄하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연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생산 팀에서 사람이 죽은 사건은 작년 한해만 4번이 일어났다. 모두 근무 중 기계에 끼어 사망한 산업 재해였다. 그러나 식품 생산 과정에서의 사고는 기업의 이미지를 망친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사고를 은폐했다. 목격자들에겐 거액의 상여금을 지급했으며 이를 거부한 사람들은 대부분 정리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녀는 회사 사람들이 햄을 먹지 않는 이유가 사람이 끼어 죽었던 기계로 만든 음식이 찝찝해서 그런 거라 덧붙였다. 회사 구성원 모두가 알고 있지만 쉬쉬하는 이유가 있는 거라며 내 입단속을 한다.

  점심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회사다. 강산이 변할 시간동안 준비하고 노력해서 얻은 결실이었다. 그렇게 노력해 들어온 회사가 거짓된 명성을 쌓아 성장한 곳이었다니. 자부심엔 금이 갔고, 실망감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두피가 아파올 때쯤 손에 힘을 푼다. 누구나 선망하던 대기업이다. 고작 이런 일로 그만 둘 수 없다. 이 나라 어디에도 완전히 깨끗한 곳은 없다. 꼬박 30이 넘도록 경험한 사실이지 않은가. 산업 재해라고는 하나 개인 과실이었다. 실제로 햄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이 갈려 들어간 것도 아니니 크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합리화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입맛이 돈다.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다.

  입사 후 첫 일주일은 빠르게 그리고 단조롭게 흘러갔다. 구내식당의 식단은 매번 달랐지만, 햄은 다양한 식재료가 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나왔다. 근무 또한 식단과 같았다 최 주임이 주는 일거리는 매번 조금씩 달랐으나 단순 노동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었다. 최 주임은 업무 전반에 대한 교육을 완전히 마칠 때까지 제대로 된 일거리는 받기 어렵다고 했다. 나쁘지 않았다. 첫날 악몽을 꾼 이후에도 몇 번이고 꿈에서 나는 햄을 먹었고, 햄에선 사람 신체의 일부가 나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입사 스트레스는 누구나 겪는 일이니 참는 게 맞다. 지속되는 악몽으로 잠을 설쳐 누적된 피로에 눈이 빠질 듯 아려왔다. 글이 통 읽히지 않아 일처리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신입. 잠깐 보지.”

  고개를 들자 박 수석의 따가운 시선이 얼굴에 박힌다. 그를 따라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문이 닫히자 박 수석은 설교를 시작한다. 첫날보다 느려진 일처리가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처리부터 태도, 심지어 사소한 습관까지 지적을 한다. 직원 하나가 문을 열고 퇴근시간을 알리지 않았다면 밤을 꼴딱 넘겼을 것이다. 박 수석은 이만 퇴근하고 다음부터 잘하라는 경고성 멘트를 날리고 자릴 뜬다. 자리로 돌아가 일거리를 가방에 욱여넣고 회사를 뜬다.

  금요일 저녁의 기차역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합실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앉은 노인이 TV를 보며 혀를 찬다. TV에선 얼마 전 서울에서 발생한 인육사건의 가해자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가해자는 왜 인육을 먹었냐는 질문에 사람도 결국 고기라며, 햄을 먹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답한다. 그때,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마케팅부 채팅방이었다. ‘인육사건 가해자 황우식품 생산 팀 조장이었대요.’ 사원 하나가 보낸 메시지 하나에 채팅방이 소란스럽다. 메시지가 올 때마다 진동이 울리고 핸드폰 화면이 켜진다. 신경이 곤두서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해 주머니에 넣고 TV에 집중한다.

  대합실 밖이 한순간 시끄러워진다. 사람들은 기웃거리며 상황을 살핀다. 대합실 문 앞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일어나 군중들 틈에 섞인다. 대합실 밖에서 노숙자가 과도를 들고 역무원 서너 명과 대치중이었다. 그는 허공과 사람이 있는 곳을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두른다. 젊은 역무원 하나가 제압하는 도중 팔을 다쳤다.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은 남자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놀라 소리를 지르거나 뒷걸음질 치면서도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숙자는 역무원들에 의해 제압된다. 뒤늦게 온 경찰이 그를 인솔해 간다. 미친 노숙자의 모습이 마치 인육사건의 가해자와 오버랩 되며 혐오감이 밀려온다. 군중들의 틈을 벗어나 서둘러 기차에 오른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앉으니 긴장감이 풀려 눈을 감는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리에 쥐가 나 잠에서 깬다. 잠이 덜 깨 게슴츠레 눈을 뜨니 무릎 위에 사람 머리가 올려져있다. 비명을 겨우 삼키고 다리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머리는 사라지고 없다. 잠에서 덜 깨 헛것을 본 모양이다.

  현관문을 열자 부모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엄마는 얼굴을 붙잡고 야위었다며 걱정을 쏟아낸다. 아버지도 옆에서 잘 챙겨 먹고 다니라며 맞장구친다.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던 동생이 유난떨지 말라며 핀잔을 준다. 닫혀있는 방문을 연다. 방은 대학을 작년 추석 때의 모습 그대로 먼지 하나 없이 정돈되어 있다. 아마 오랜만에 오는 아들이 편히 쉬다 갔으면 하는 엄마의 배려일 것이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는다. 방문 밖으로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 초침소리, 싱크대 물 떨어지는 소리. 여러 소리가 밤을 틈타 귀에 맴돈다.

뱉어내. 내 몸. 뱉어내.”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버지가 TV를 켜놓고 잠들었나 싶어 거실에 가보지만 TV는 꺼져있다. 동생 방에 귀를 대보지만 숨소리만 들린다. 잘못 들었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자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는 멀리서 들리는가 싶더니 점점 가까워져 귀 속을 파고든다. 오늘 밤도 잠을 잘 수 없다. 결국 뜬 눈으로 해를 보고 나서야 잠이 든다.

청소기 소리에 눈을 뜬다. 부엌으로 나가니 엄마가 밥을 하고 있다. 식탁에 앉자 흰 쌀밥과 찌개가 상에 올라온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외침에 아버지는 뉴스를 틀고, 동생은 청소기를 치울 생각도 하지 않고 뛰어와 자리에 앉는다. 가족들은 말없이 뉴스를 보며 밥을 먹는다. 엄마가 뉴스를 보다말고 내 팔을 툭 친다. 엄마의 눈은 여전히 TV에 고정되어 있다. 다시 밥을 먹으려 고개를 숙이다 앵커의 목소리에 고개를 다시 든다.

 <올해의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황우식품에서 수차례에 사망사고가 있다는 사실이 내부고발을 통하여 밝혀져 검찰이 오늘 오전 전면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에 대표 전씨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며 은폐 혐의를 부인하고.>

 회사 직원들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났다. 햄을 만드는 기계에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육하원칙으로 정리해 말하는 앵커. 그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회사 메신저는 내부 고발자를 찾아내겠다며 불붙은 듯 알람을 울린다. 동생은 밥을 먹다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닫힌 화장실 문 안에서 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는 뒷목을 잡고 신음하더니 더 이상 피지 않는 담배를 찾았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본인이 더 서럽게 통곡한다. 나는 TV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정확히는 TV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본다. 뭉개지고 피로 물들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의 가슴팍의 회사 로고가 유독 선명히 보인다.

  산란기의 연어는 천적에게 잡아먹혀 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난 주말이 끝나도 회사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 profile
    korean 2019.03.02 20:40
    열심히 쓰셨습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신다면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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