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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살>

 

세계지식 백과사전의 동물편에 나와 있는 닭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꿩과에 속하는 중형 조류.

 

중형조류. 특히 여기서 ‘조류’라는 단어를 눈여겨봐야한다. 조류는 날아다니는 새 같은 존재들을 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알기로 닭은 펭귄이나 타조와 함께 날개가 있되 날지 못하는 놈들에 속한다. 물론 나도 시골에 사는 신비스러운 닭들은 지붕까지도 날아오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날개가 있으면 모두 조류가 되는가? 가령 사람이 날개를 가지게 된다면 그 사람은 조류로 취급받아야 되는가?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조류가 포유류가 되던가, 포유류가 조류가 되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낡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듯한 식탁 위에 놓인 500cc 맥주잔을 짧고 굵은 손가락으로 한껏 움켜쥐었다. 유리를 뚫고 전해지는 맥주의 한기가 늘어지는 정신에 활기를 되찾아주었다. 비록 마주편 의자에 앉아 함께 건배할 상대가 없었지만 벽면에 붙어있는 영화배우 에바그린의 모습을 보니 절로 흥이 돋았다. 땅콩 한움큼을 입 안에 털어넣고 마구 씹었다. 고소하고 투박한 소리가 식탁주변으로 퍼져나갔다. 3개월 전이었다면 안주는 땅콩이 아니라 치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치킨을 먹지 않는다. 아니, 사실 나에게는 닭공포증이 있다. 3개월 전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더 이상 닭을 먹지 않는다.

 

3개월전.

그날 아침 나는 평소와 같이 7시에 울리는 알람소리에 맞춰 눈을 떴다. 찌뿌둥한 몸상태였다. 누워있는 상태로 팔과 다리를 쭈욱 뻗쳐 크게 기지개를 편 다음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 세수를 했다. 뒷머리가 약간 뻗쳐있어서 물을 살짝 묻혀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감쪽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현관문을 열자 옆에 신문이 와있었다. 신문을 흟어 보았다. 경제, 정치 쪽은 재빠르게 건너뛰고 시사, 스포츠, 영화, 푸드 쪽 코너를 주의깊게 보았다. 특히 푸드 쪽에 있는 ‘한국은 지금 치킨공화국?’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한국인 한사람이 일년간 소비하는 닭이 14마리를 넘어섰다는 기사였다. 나는 잠시 신문을 내려놓고 머릿속의 계산기를 돌렸다. 한국의 인구를 생각하면 닭이 약 7억마리라는 계산결과가 나왔다. 몇 번이고 다시 계산해보았지만 변함 없는 값이었다. 7억마리의 닭이라는 수치 앞에 나는 온 몸이 굳어버렸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돌러보며 지구 생태계에 대한 조사를 한다면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올 것이다.

 

‘이 푸른 행성을 주목하라. 자원이라고는 눈꼽만치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장난감의 모형을 띄고 있는 지구에는 생각보다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이게 많이 보이는 동물들은 감옥에 갇혀 생활을 한다. 그렇지 않은 동물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절대적인 수의 차이를 보아 감옥을 선점한 동물들이 지배계급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동약식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동물들은 닭, 돼지, 소, 인간 등이다.(숫자로 따졌을 때)’

 

7억마리의 치킨, 7억개의 생명. 만약 그 생명들이 모두 별이 된다면,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은 어쩌면 대부분이 닭을 포함한 가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서글퍼졌다. 닭을 좋아하는 애호가여서 그런던 것 같기도 하고, 내 뱃속에 들어간 닭들의 생명을 생각하면 삶의 무계가 그만큼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요새 감수성이 풍부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구직자는 별것을 다 느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감정과 마음까지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불과 일주일 전에 어느 보험회사에서 잘렸다. 갑작스레 닥친 구조조정이었다. 최근에 영업에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잘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 1년간 주변 친척들과 있는 친구, 없는 친구 모조리 끌어다보았지만 돌아오는 게 겨우 실직이라니... 어쩌면 애초에 길을 잘못 잡은 지도 모른다. 나는 신문을 구석에 치워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벽면에 붙어있는 다트핀을 집었다. 끝이 유달리 날카로운 다트핀은 목표가 무엇이라도 한방에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트핀의 목표인 다트판의 중앙에는 원형탈모의 한 중년남성의 사진이 붙어있다. 보험회사의 강팀장이다. 그는 실적이 높은 사람들만 케어 해주는 돈에 눈이 멀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아내도 애인도 친구도 없는 거다. 이미 강팀장 얼굴의 이곳저곳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이번 목표는 녀석의 이마였다. 다트를 잘 던지기 위해서는 어깨를 움직이지 않고 팔꿈치의 굽히기와 손목의 스냅만을 이용해야한다. 눈과 다트핀과 강팀장의 이마가 일직선이 되는 순간 다트핀이 내 손을 떠났다. 느낌이 좋았다. 다트핀은 강팀장의 왼쪽 이마에 꽂혔다. 정확하진 않았지만 맞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잠시 기분이 좋아졌지만, 곧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혼자 강팀장에게 다트를 던져대는 꼴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렇듯 나의 몸은 집 안에 있지만 나의 온 정신은 아직도 보험회사에 가있었다. 그래서 더 괴로운 것이다. 과연 다른 사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잘렸다고 업무가 잘 안된다거나 안타까워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잘리지 않았단 사실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험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일주일에 세 번씩은 뒷풀이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으니 도무지 살맛이 나지 않았다.

 

*************************************************************************

 

청국장에 밥을 비벼먹으며 ‘언제까지고 가만히 집에 있을 여유는 없다’, 라고 생각했다. 구직생활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내가 보내는 돈이 부모님과 여동생의 생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꽤나 자랑스러웠다. 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했다. 일자리를 찾는데에는 어떠한 지름길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있는 지인이라고 해봤자 보험회사 사람들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다. 점심을 먹고 저녁까지 채용공고를 하고 있는 여러 회사들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회사에 맞춰 이력서를 쓰고 보내는 데에 집중했다. 배달업체의 광고마케팅쪽을 알아보던 도중 전화가 왔다. 맥이 풀렸다.

“여보세요. 우도수입니다.”

“아, 저 미나에요. 강미나. 지금 집에 계시나요?”

그녀의 이름은 강미나. 보험회사에 함께 있던 사원이다. 비록 둘이서 어울린 적은 거의 없지만 회사에 들어온 시기가 엇비슷해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네, 현재는 그렇습니다.”

“그 말은 잠시 후면 집을 나간다는 건가요?”

“아니, 아마 나가지 않을 예정입니다.”

강미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나는 물었다.

“왜 전화하셨습니까?”

“음...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되세요? ”

평소에 연락 한번하지 않던 사람이 전화가 왔다. 곤란한 일이 틀림없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심심했던 참이다.

“네, 사실 시간은 넘쳐납니다.”

“저, 그러면... 이따가 한 7시쯤에 만날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잘 됐죠. 끝나고 연락주세요.”

 

7시 30분 우리 집 옆에 생긴 호프집에 강미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미나는 전에 있던 주소지를 뒤져 우리집 주변의 호프집을 온 것이 틀림없었다. 강미나는 자신이 이미 도착해 있고 호프집 간판에 ‘남다른 치킨’, 그 밑에 작은 글자로 ‘옆에 있는 양계장에서 바로 잡아 생생하게 튀겨드립니다.’라는 부연설명이 있다고 했다. 여러모로 구질구질한 마케팅이다. 나는 구질구질해 보이는 츄리닝을 벗어 던지고 하얀색 와이셔츠와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두었던 청바지를 입었다. 한국 어디를 돌아다녀도 볼 수 있는 흔해서 무난한 옷차림이다. 호프집은 집에서 나가자마자 오른쪽 방향으로 정확히 2분만에 나타났다. 저번엔 저 자리에 무슨 매장이 있었지? 떡볶이집? 이발소? 휴대폰 대리점?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은 ‘남다른 치킨’ 이라는 호프집이다. 호프집은 멀리서 보기에 어두운 분위기의 점집 같았다-물론 가본적은 없다-. 갈색의 벽지와 의자 상들이 보였는데 노란 조명이 어두워서 신비스런 느낌이 감돌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tv에서 야구중계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공기를 멤돌았고 가끔식 알코올냄새도 섞여있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한 호프집이었다. 총 3팀이었는데 한테이블 씩 자리를 비워놓고 마시고 있었다. 제일구석 자리에 앉아있던 강미나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회색가디건에 주황색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가디건 사이로 보이는 십자가 목걸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내가 걸어가 자리에 앉자 강미나는 흔들고 있던 손을 자신의 무릎으로 내려놓았다. 정적이 시작될 조짐이었다.

“일단 치킨 한 마리 시킬까요?”

“네, 저 치킨 좋아해요.”

“어떤 치킨 시킬까요?”

“음... 저는 양념 좋아해요.”

“저는 후라이드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반반으로 가면 되겠군요. 투표권은 양쪽에 하나씩 있으니까요. 저는 뼈있는 후라이드로 가겠습니다.”

강미나가 조그맣게 웃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몇초간 그녀의 입술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 저는 순살 양념으로 할게요.”

치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요즘 이슈화 되고 있는 정치인의 만행이라던가, 학생폭력사건이라든가, 요즘 뜨고 있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한창 예전에 재밌게 보았던 영화 ‘벡투더퓨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 갑자기 강나미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바닥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그 때 치킨이 왔다. 후라이드반 순살양념반의 조합이었다. 따뜻한 온기와 양념의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나는 하루종일 굶은 개처럼 입안에 침이 고였다. 강나미가 고개를 들고 “먹어요, 우리.”라고 했다. 허락을 받자마자 내 손은 후라이드 닭다리 하나를 가지고 왔다. 그대로 입에 넣으려고 했으나 눈가가 촉촉한 강나미를 의식하고 접시에 내려놔 포크로 찢기 시작했다.

‘사실은요.’ 하고 강나미가 양념치킨을 삼키며 말했다.

“이번에 또 구조조정이 온데요...”

“실적이 고민이시겠네요.”

“솔직히 말해서 잘릴 것 같아요.”

“그 기분 저도 잘 압니다.”

“제가 빛이 조금 많거든요... 사실 도수씨 간 다음에 꽤 조건이 좋은 보험이 하나가 나왔어요. 부모님들 세대 기준으로도 나쁘지 않은 가격이고 기본적으로 필요한 항목들은 다 있거든요. 질병후유장해50퍼센트까지 보장해주는데... 죄송해요.”

강나미가 자신의 양념치킨이 담겨있는 그릇에 눈물을 떨궜다. 나는 그걸 보면서 양념치킨이 짜겠다는 생각을 했다. 휴지를 건네주자 강나미는 훌쩍이면서도 천천히 눈가를 닦았다.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어 다행이었다. 솔직히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짜증났다. 이건 마치 죽어있는 귀신에게 가서 죽을 것 같아 무섭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치킨 식기 전에 일단 먹고 보자고.” 라고 하며 나는 후라이드치킨의 날개부분을 강나미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강나미가 상기된 얼굴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도수씨는 참 이상한 사람이에요. ”

“같은 회사에서 다니던 동료에게 영업을 하는 사람보다 이상하진 않죠.”

“울고 나니까 조금 해방된 기분이 들어요.”

“참 이상한 데에서 해방감을 느끼네요. 이보세요. 아가씨. 당신은 아직 보험회사의 사원이에요.”

“저도 백수가 되면 그림이나 그려볼까봐요. ”

“그림? 그 많은 빛들은 어쩌고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 ”

치킨집 사장님이 TV의 리모콘을 집어들어 채널을 바꾸었다.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한 어떤 음악채널이었다. TV 속 남자가 말했다.

 

“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음을 가진 노래는 머라이어 캐리가 부른 Emotion이죠. 이 가수는 세계적인 팝가수입니다. 하지만 최근 머라이어 캐리는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외국 기자의 소식에 따르자면 체중이 100kg가 넘어간다고 하니까요. 뭐 어쨌든 저희가 볼 건 왕년의 머리이어 캐리의 라이브니까 여러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려 5옥타의 음역대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방심하지 말아주세요. 임산부와 어린아이, 노인분들에게 하는 소리입니다. 네, 이제 직접 들어보시죠.”

 

그래서 우리는 머라이어캐리의 Emotion을 듣게 됐다. 사람들의 박수소리로 시작되는 라이브는 호프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그래봤자 3팀이지만-의 시선을 TV로 끌어냈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매끈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던 머라이어 캐리가 나왔다. 노래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돌고래 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 전까지는 분명히 평범한 팝송 중 하나였다. 돌고래 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후반부에 나는 오른 팔뚝에 닭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건 도저히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강나미가 말했다.

“저 여자 되게 화끈할 것 같은데요.”

나는 돌고래소리로 신음을 지르는 머라이어 캐리를 생각했다. 섹스가 확 깨진 않을까? 아니, 어쩌면 훨씬 흥분될 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다리사이에 있는 바지부분이 약간 위로 올라갔다. 흥분을 잠재우기 위해 지금의 머라이어 캐리를 상상했다.

“지금은 100kg가 넘어간다잖아.”

“아쉬운 일이에요. 머라이어 캐리가 100kg가 넘어가는 것도, 제가 회사에서 잘릴 것 같다는 것도.”

“아쉬운 일이지. 나는 이미 잘렸지만 말이야. ”

나는 말없이 맥주를 홀짝이며 강나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넓은 이마와 그 밑의 동그란 눈, 약간 불거져나온 광대뼈는 그녀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특히 도톰한 입술이 섹시하게 보였다. 잘하면 오늘 밤을 함께 보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치킨과 맥주,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필요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얼굴에 뭐 뭍었어요?”

“머리카락에 치킨 껍데기가 붙었네요. ”

나는 손을 뻗쳐 아무 이상 없는 강나미의 앞머리를 쓸어내렸다. 강나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것도 안 붙어있으면서...” 라고 강나미가 속삭였다.

가끔씩은 약간의 호감과 약간의 호감이 만나 매우 빠른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날이 그랬다. 우리는 그날 밤 모텔에 가서 섹스를 나눴다. 들어가자마자 별다른 애무 없이 바로 삽입을 시작했다. 사실 콘돔도 없었으니 사실 정말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둘 다 그런걸 분별할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강나미의 신음소리는 머라이어 캐리의 돌고래 소리가 아니었지만 충분히 섹시했다. 그 증거로 나는 불과 몇분만에 하얀색 액체를 쏟고 말았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라며 강나미는 내 등을 다독여주었다. 유전자적 측면에서 목표를 이룬 나는 미련 없이 구멍난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부끄러웠다.

“대신 안아줘요.”

나는 몸을 왼쪽으로 돌려누워 강나미의 등을 꼬옥 안았다. 팔이 등에 스치자 몸이 자동적으로 부르르 떨렸다. 촉감이 이상했다. 전보다 훨씬 더 민감했다. 나는 아직 팔에 닭살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다.

“왜 그래요?”

“아까 돋아났던 닭살이 아직도 남아있어.”

“내일 아침이면 괜찮아질 거에요. 이제 자요.”

나는 눈을 감았다. 세상이 어두워져갔다.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게도 강나미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우리는 어제 이후로 말을 놓기로 한 상태였다. 나는 몸을 이불 속으로 감추며 말했다.

“미안 악몽이었어.”

강나미가 다시 몸을 뒤척이며 베게에 얼굴을 묻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알몸인 상태였다.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거울을 본 나는 두손으로 입을 가렸다. 내 몸이, 아니 내 살갗에서 짜잘짜잘한 돌기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금방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를테면 모기라던가, 에일리언이라던가. 자세히 보니 몸의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몸은 상태가 덜 했지만, 오른쪽 몸은 꽤나 심각한 수준이었다. 나는 끔찍한 발상이 떠올라 오른쪽 팔을 보았다. 그건 더 이상 인간의 피부라고 부를 수가 없는 수준이다. 내가 아는 한 이와 비슷한 형태는 단 하나밖에 없다. 닭. 닭의 피부였다. 수많은 조류가 있지만 이 피부가 닭의 피부라고 생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끔씩 꿈 속에서 이미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뜨거운 물을 욕조에 받아놓으며 차가운 변기통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건 꿈인가? 아니, 꿈이 아니다. 한번도 꿈 속에서 이런 깊은 사색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어쩌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욕조에 받아놓고 있는 물이 어느 정도 차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곧장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갔다. 몸을 불릴 생각이다. 만약 여기서 내가 익는 다면 내 살갗이 꽤나 맛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나는 수건들이 들어있는 화장실 서랍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뜯지 않은 일회용 칫솔 2개, 바디타올2개, 수건 4개와 치약, 때밀이 수건이 있었다. 나는 때밀이 수건을 들고 다시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인간의 몸이었다면 때가 나올 테지만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이 닭살이 벗겨지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아, 환골탈태. 그 때 밖에서 커다란 폭발음 같은 소리가 났다. 누군가 그의 방에 침입한 것 같았다. 강나미의 짧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닦지도 않고 바디타올로 몸만 가리며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 곳에는 상하의가 합쳐져 있는 일체형 검은색 쫄쫄이를 입고 있는 거대한 남자 두명과 여자 한명이 있었다.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여자가 문을 닫았다.

“반갑습니다. ”

남자 두명이 절도 있는 자세로 나에게 다가왔다.

“저기요.”

“네, 저희와 함께 가실 테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곧 내 입에는 수건이 물려졌고 눈앞이 가려졌다. 갑자기 머리에 붙어있던 정신이 점점 멀어져가는 것이 느껴진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꺼풀이 감겨간다. 이 어둠이 눈을 감아서 보이는건지 눈을 뜨고 있어서 보이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

 

“자, 이제 일어나세요.”

영하 40도의 얼음처럼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는 냉수가 정신을 깨웠다. 나는 오돌오돌 떨면서 방금 내가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군가. 내가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던 적이 있었던가? 몸을 뒤척이자 묶여있는 팔과 다리가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도 눈을 뜨는 건 가능했다. 지금 내 머리는 축축한 흙바닥에 닿아있다. 눈 앞에 바로 철장이 보였는데, 팔과 다리가 속박된 상태라 시선에 제한이 갔다. 그 좁은 시선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이곳이 높은 슬레이트 지붕이 있는 거대한 양계장 안이라는 것과, 양 옆으로 엄청나게 많은 닭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닭들의 끔찍한 똥냄새가 이 넓은 공간을 모두 채워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저는 강사장이라고 합니다. 제 부인과 함께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지요.” 라고 정체불명의 남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봤자 나는 그의 헐거워진 구두와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다리털 위를 볼 수 없었다. 그 때 내 옆에서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어젯밤에 이미 들어본 익숙한 소리. 강나미였다. 끔찍하고 비겁하게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아주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배 고프겠다. 어떻게 해.”

이번에는 여자였다. 소녀의 명랑함을 지니고 있는 밝은 목소리였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목소리의 주인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음... 커다란 분홍색 챙모자를 쓰고 있는 풍만한 여성? 아니, 인상이 좋은 풍만한 중년의 여성이 완성되었다. 그 이미지는 뭐랄까. 길거리를 지나다니다가 광고판을 스쳐가듯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미지다. 이건 TV속에서 보았던 100kg의 머라이어 캐리가 아닌가? 머라이어 캐리가 우리를 납치했다. 라고 생각하니 모든 일이 가벼워졌다.

“이제 당신들의 육체는 저희의 재산입니다. 강사장이 말했다. ”

“웰컴 투 치킨월드. 흐히히히...” 보이지 않아도 그녀가 얼마나 끔찍한 미소를 흘리고 있는지 상상이 갔다. 나는 내 피부가 닭살이 된 것과, 이들에게 납치를 당한 것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라고 나는 말했다. 엎드린 자세인지라 말을 할 때마다 폐에 충격이 갔다.”

“저는 두 분을 살찌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처음 우리에게 물을 뿌린 것으로 추정되는 강사장이 뒤이어 말했다.

“두 분은 곧 닭이 되실 겁니다. 남자분은 수탉으로 여자분은 암탉으로 말이죠. 아, 남자분이 조금 더 좋으실 겁니다. 한 마리의 수탉은 여러마리의 암탉들을 데리고 다니거든요. 물론 마음 내키는대로 암탉의 엉덩이 위로 올라가 짝짓기를 하셔도 됩니다. 그건 참 부러운 일이지요.”

“여보, 그런 망측한 말은 하지마. 아직 적응도 안되신 분들인데 그러면 어떻게 해. 흐히히... ”라고 여자가 다시 답했다. 이 잠깐의 만남으로 나는 앞에 있는 두명이 정신병자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닭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살다가 마침내 미쳐버렸다는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하지만 곧 옆에서 훌쩍이는 강나미의 울음소리 때문에 현실로 돌아왔다.

숙녀분. 울지 마요. 여기에서는 밥만 잘 먹고 알만 잘 낳으면 모두 행복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어.

“이제 동생한테 가봐야하는 시간이야. 이따 다시 보자고. 금방 익숙해질거야. 아참, 까먹고 묶어놓고 갈 뻔했군. 부인, 나는 먼저 갈 테니까 풀어줘.”

“여보, 가기 전에 인사해야지.”

뽀뽀소리가 네다섯번 들리고 부인이 철장문을 열었다. 꽤 오래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 녹이 쓸어서 그런지 고양이의 비명소리 같은 게 났다. 그 철장은 유일하게 문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벽이었다. 그리고 위에는 눈이 빛나는 노란색 전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들어가요. 부인이 엉덩이를 걷어찼다. 반항을 할 수 없었기에 죄송합니다. 라며 온 몸을 이용해 기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강나미가 먼저 들어가고 내가 들어갔다. 대략 3평 정도의 넓이였다. 가운데에는 양변기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부인은 우리의 팔과 다리에 묶여있는 줄을 풀어주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는 정말 관대하단다. 각자의 역할만 마치면 모두에게 좋은 식사와 놀이기구,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이제는 경쟁이 아니야. 이 곳 안에서만큼은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조금만 참아. 닭이 되면 알게 될 테니까.”

 

부인은 곧 밖으로 사라졌다. 멍하니 부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부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나는 자기점검을 했다. 지금 나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와이셔츠는 물과 흙에 뒹굴러 구겨진 헝겊조각이 되었고, 청바지는 무릎부분이 커다랗게 찢어져 곧 반바지가 될 지경이었다. 당연하게도 주머니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몸이 근질거렸다. 나는 손톱을 세워 등을 벅벅 긁었다. 나는 아직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질질 짜는 강나미에게 다가갔다. 빗소리나 선풍기소리는 계속 들어도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환풍기의 소리나 울음소리 같은 경우에는 정반대였다. 울음은 주변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뿐이다. 나는 강나미의 등을 토닥여주며 두 손으로 뺨을 잡고 머리를 들어올렸다. 뺨 사이에 있는 것은 빨간 입술이 아니라 뭉툭한 노란색부리였다. 너무나 샛노래서 노란색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그런 색이다.

“말은 할 수 있어? ”

“보지 마. 제발... ” 이라고 그녀의 부리는 말했다. 발성구조가 달라서 그런지 옛되고 높은 소리였다. 이 소리 역시 오랫동안 듣고 있으면 짜증이 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우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불가항력의 힘에 의해 닭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복잡한 문제는 일단 버려두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닭이 되어가는 사람이 나와 강나미가 처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어딘가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니 벽면들에 어떠한 낙서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돌로 벽을 긁어서 쓴 것 같았다. 어쩌면 닭이 된다면 이 글씨조차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미 탈출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거나.

“이리 좀 와바. 여기 글씨가 써있어.”

“읽어줘. 가기 싫어.” 강나미가 다시 무릎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나는 벽면의 어떤 낙서부터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개중에는 ‘닭이 되기 싫어, 살려줘’ ‘꿩 대신 닭이라더니,,,’, ‘사람보다 동물이 낫다’ 같은 암울한 내용도 있었고, 일기형식으로 3일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서사시도 있었다. 그나마 참고를 할 만한 낙서는 이곳의 법칙에 대한 것이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를 댄 듯이 반듯한 글자체로 5조항까지 써져있었다.

 

닭이 되기 직전의 사람들을 위한 법칙.

1. 식사로 나오는 벌레를 먹지마라.

2. 모두 다혈질이니 조심해라.

3. 이곳의 유일한 열쇠는 아저씨가 가지고 있다.

4. 3일을 넘기면 안된다.

5. 솔직히 희망을 가지지 마라.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

 

나는 강나미에게 ‘닭이 되기 직전의 사람들을 위한 법칙’을 읽어주었다. 물론 마지막 법칙은 읽지 않았다. 저 사람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품고있다가 안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마지막 법칙을 작성했을 것이다.

“우리 나갈 수 있는 걸까?”

“나가야지. 저 미친 정신병자들에게도 분명히 허점이 있을거야.”

“나 있지, 밖에 나간다면 말이야 맛있는 것도 먹고, 남자친구도 사귈거야. ”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러려면 작전을 짜야지.”

“그런데 피부는 그렇다 치고 이 부리는 어떻게 하지? ”

“어쩌면 말이야. 서커스에 가면 단방에 유명인사가 될지도 몰라. 빛도 한번에 갚고.”

“인생역전이네. ”

“나도 그런 인생 한번 살아보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동의했다. 별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돈을 보태주기 위해서는 나가야 했고, 결국 희망이 있어야 했다. 생각과는 다르게 내 마음은 점점 어둠과 불길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시작됬는지 모를 다리의 떨림이 온 몸으로 번져나갔다.

“왜 그래? 몸 어디가 아파?”

“아니, 그건 아니고....”

그 순간 내 발가락이 들어가고 뒤에서 나오고 꺾이고, 손톱이 길어지며 신발이 찢겨나갔다. 대신 닭발이 나왔다. 강나미가 깔깔대며 내 발을 가리켰다.

“생각보다 앙증맞은데? 괜찮아. 부리보단 낫지.”

“그래, 부리는 먹지도 않잖아.”

나는 원래의 내 다리보다 닭발로 서있을 때 자신감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누구든지 이 딱딱한 발으로 작살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그 영감탱이라던지. 나는 다리 한쪽을 들고 발가락들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분명히 사람의 발과는 다른 식으로 조종해야했다. 이러한 조종하는 방법을 어떻게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생각으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는 말이다. 아직은 확실히 내 몸에 마취된 발이 붙어있는 느낌이 더 강했다. 아마 인간의 다리와 닭의 발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까닭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게 키메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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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이 벽으로 덮인 철장 안에서는 바깥을 내다볼 수 없다. 그나마 뚫려있는 쇠창살 사이로 허락된 공간은 똑같은 구조의 철장을 보여줄 뿐이다. 위에 달려있는 노란색전구와 어둠 하나 없이 빛나는 철장. 그리고 양변기. 공간을 제한 당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앞길을 막는 쇠창살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알고 있는 공간이 많을수록 고립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자유가 언제나 좋았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여기 있는 닭들은 평생 이런 것만 보고 사는 건가? 강미나는 변기통에 앉아-그냥 앉아있는 것이다- 쇠창살을 보며말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여기에 있었으면, 그러다가 밖으로 나가 도축되어 치킨이 된다면 말이야.

끔찍해.

그 닭의 기억은 이곳에 국한되어 있을 거야. 저 바깥의 세상 따위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매순간이 이 철장 안의 공간이었으니까 우리 생각만큼 끔찍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소리지.

강나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나미가 대답하지 않으니 나는 주저앉아 발톱의 때를 벗기기 시작했다. 그것 말고는 정말로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축축한 와이셔츠를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그러면 강나미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닭들은 하루 종일 철장 안에 갇혀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걸까? 별안간 닭들이 소리를 지르며 철장에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누군가 양계장에 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식사시간이에요. 부인이었다. 부인은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오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거대한 접시가 들려있었고 왼손에는 1m가량 되보이는 범상치 않은 검은색 막대를 들고 있었다. 동물원의 사육사와 동물들이 쇠창살을 경계로 서로 마주보듯이 우리는 서로의 몸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물론 우리가 동물이었다.

“어머, 벌써 부리가 달렸네. ”

부인은 검은색 막대로 강나미의 뭉툭한 부리를 두드렸다.

“아프진 않아요? 생각보단 괜찮죠?” 강나미는 그 치욕스러운 행동에 얼굴이 잔뜩 붉어진 상태로 시선을 피했다.

“부끄러워하긴. 귀여워라.”

“그런 소리는 하지 마시죠. 기분 나빠하잖아요.”

검은색 막대는 타깃을 바꿔 나에게 향했다. 저 막대의 숨겨진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전기가 방출되어 나를 통구이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뭐야, 총각은 발이 변했네. 아가씨처럼 귀엽지만은 않구나. 괜찮아. 둘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왔어.”

부인은 철장문을 열고 들어와 커다란 접시를 변기 위에 올려놓았다. 변기의 홈과 접시의 크기는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정확히 일치했다. 신선한 양상추와 사과와 귤이 들어가있는 샐러드였다.

“어서 한번 먹어봐. 먹는다고 해서 해가 되는건 없어. 어차피 둘 다 우리 식군데 내가 나쁜걸 주겠니?”

“그런데 왜 나미씨는 입이 변하고 저는 발이 변했나요?”

“처음에는 무작위로 아무데나 변하다가 마지막은 항상 머리야. 길은 달라도 목적지는 같은거지. 결국엔 닭이 되는거야. 수컷의 경우에는 덤으로 벼슬까지 쫑긋 올라오고 말이야. ”

“그것 참 영광이네요.”

부인의 뒤로 강사장이 얼굴을 비췄다. 닭들의 울음소리도 없었는데 얼마나 조용하게 왔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동안 목소리만 들었지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강사장은 평범한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농사짓는 아저씨의 얼굴이었다. 사람 참 좋아보이는군. 역시 사람은 얼굴만 봐서는 믿을 수 없다.

“비꼬지 마, 총각. 세상을 삐뚜르게 보면 모든게 삐뚤어 보인다고. 닭이 되는건 생각보다 멋진 일이야. 그 날갯짓하며, 성대에서 뻗어나오는 우렁찬 소리하며, 환상적인 성교까지... 내가 장담하지. 입이나 벌리라고. ”

이미 강사장은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고무줄로 손목을 묶어 흘러내리지 않게 세팅을 해놓았다. 그는 양상추와 귤과 사과를 하나씩 손에 담아 강나미에게 내밀었다. 강나미는 부리를 내밀어 콕콕 샐러드를 찔러보더니 사과를 하나 집어먹었다. 지금보니 그새 부리가 조금 더 나온 것 같다. 물론 나는 쓸 데도 없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먹으라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주린 배를 오른발을 올려 문지르며 벽과 한참동안 눈싸움을 했다. 모두에게 보이는 소극적 반항의 표시였다. 이미 힘의 무게추가 완전히 기운사람에게는 자신을 헤침으로서 남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사장과 부인은 샐러드통을 가지고 돌아갔다. 강나미가 말했다.

“도망치려면 싫어도 든든히 먹어둬야 해.”

하지만 부리를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강나미는 그다지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바뀌는 신체부위에 따라 나오는 행동이 달라지는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추측을 내릴 수 밖에... 어쨌거나 체력을 아껴야 된다는 건 맞는 말이다. 피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누워 눈을 감았다. 노란색전구의 환한 빛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왔다. “아, 씨발.”이라며 바닥에 깔린 볏짚을 머리 위로 덮었다. 이제야 잠이 온다.

 

피로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볏짚 때문에 머리부근이 상당히 따가웠다. 밤새 닭들이 우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이미 하루의 시작부터 화가 가득한 상태였다. 머리에 볏짚을 털고나자 자연스럽게 강나미를 찾기 시작했다. 강나미는 화장실 변기통에 아래에 기대어 멍때리고 있었다.

“잠은 잘 잤어?”

“아니, 밤샜어. 이러다 미쳐버릴 거 같아.”

“아가씨.”

“뭐?”

“‘씨’자로 시작해야지. 끝말잇기 중이잖아.”

“씨발 개새끼들.”

“안 돼. 그건 복수 단어잖아. 단어를 하나만 말해야지.”

“씨발.”

“그래. 그건 돼. ”

그 때부터였다. 우리는 생각나는 데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끝말잇기 게임, 초성 게임, 빙고게임 등으로 언어적인 능력을 요하는 게임들이었다. 빙고게임 같은 경우는 각자 벽 마주편에 6*6 빙고판을 그려 글씨를 써넣었다. 강나미는 밑에 있는 자잘한 돌들로 그렸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이 발톱으로 그렸다. 게임의 끝에는 언제나 허탈감과 침묵이 감돌았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쉬지 않고 게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게임은 진행될수록 점차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우리는 두 번의 식사를 거르고-강사장과 부인의 동정어린 눈빛도 받으며- 하루종일 게임에 몰입했다. 현재 스코어는 68대 64로 내가 지고 있는 상황이다. 종목은 역시 빙고게임. 이번에는 5점 짜리 막판게임으로 누가 이기던 이번 한 판에 하루의 승리가 갈린다. 아쉽게도 주제선택권과 선공권은 강나미의 차레였다.

“과자 이름대기, 이제 시작한다. 새우깡.”

“프링글스.”

“맛동산.”

“땅콩.”

“땅콩이 뭐야. 그건 반칙이야. 과자가 아니잖아.”

“안주로 씹어 먹잖아. 바삭하고 고소하고 사람들도 많이 먹고. 땅콩도 충분히 과자의 범위에 들어와야지.”

이런 논쟁을 하고 있을 때 강사장과 부인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도 나와 강나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양손에 포대의 끝자락을 하나씩 잡고 질질끌며 오고 있었는데, 포대의 위에는 젊은 남녀 두명이 보였다. 둘 다 간편한 옷차림을 한걸로 보아 역시 불의의 습격으로 인해 끌려온 것이 틀림 없었다. 한 여자는 키가 크고 긴 생머리며 약간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한 남자는 키가 작고 몸집이 통통했으며 파마를 해 약간 둥그런 공처럼 보였다. 둘 다 눈을 뜨고 몸부림을 치는 듯이 보였지만 재갈이 물려있고, 팔과 다리가 묶여있는 상태에서는 사실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강사장과 부인은 이미 작업을 끝낸 듯 별 말 없이 그녀들을 반대편 철장으로 밀어 넣고 사라졌다. 나와 강미나는 마주편에 보이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이 속박된 공간에서 일어난 첫 번째 변화였으며, 그 변화는 우리에게 약간의 힘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쪽이었다. 반대편의 두명은 잠시 후에 우리를 발견했다. 동그란 남자는 입도 동그랗게 벌렸는데 약간 놀란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 여자들은 철장 앞까지 다가오진 않고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우리를 견제했다. 느낌이 그랬다. 경계와 희망이 뒤섞인 냉철한 눈빛들은 처음 나와 강미나가 잡혀들어왔을 때 보였던 당황보다는 훨씬 뛰어난 자세였다. 그녀들은 우리에게 무언가의 설명을 원하고 있었다. 강미나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란 인사 한마디에 여자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어쩌면 강미나의 부리를 발견해서일 수도 있다.

“저희는 어제 들어왔어요. 마찬가지로 납치를 당했죠. 아.... 제 부리가 신경 쓰이시는군요. 아마 설명을 들으셨을 테지만 여기에 있다보면 닭이 돼요. ”

나는 발을 들어 쇠창살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나는 왠지 쇠창살에 매달리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두 발 모두 쇠창살을 잡아 ㄱ모양이 됬다. 세상이 옆으로 45도 각도 꺾여보였다.

와우. 내 능력에 놀라버린 나머지 발에 힘이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추한 모습이었겠지만 기분은 좋았다.

키가 큰 생머리의 여자가 말했다.

“그러면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저희가 좀 바쁘거든요.”

“강사장에게 열쇠가 있다고 해요.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는 상태에요.”

그 때 긴머리의 여자의 팔에서 털들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일출부터 일몰을 아주 빠른 속도로 보여주는 것처럼 한순간이었다. 이 공간과 상황을 떠나 팔이 날개로 변하는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경이로움을 선사해주었다.

“꺄아아아!”

본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혹시 날 수 있어요? ”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이 나옵니까? ”

동그란 남자가 인상을 찌뿌렸다. 역시나 동그랬다.

“궁금해서 그러죠. 어차피 적응해야 되는 겁니다. 탈출을 하기 위해서도 이 몸에 적응을 할 필요가 있고요.”

“만약 저희가 탈출한다면 해독약 같은 게 있을까요?”

“글쎄요? 그것도 탈출 이후의 문제니까 지금은 신경쓸 필요 없지 않을까 싶네요.”

“잔인한 사람들.” 여자는 양변기 뒤로 가서 흐느꼈다.

“죄송합니다. 정말 반가워서 그랬어요.” 강미나가 뒤통수에 꿀밤을 때렸다. 다행이도 제한된 공간에 갇힌 네명의 남녀는 결국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동그란 남자의 이름은 우동근. 그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며 장난감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을 해서 벌써 팀장이라고 했다. 생머리의 여자이름은 주지하. 그녀는 그다지 심하지 않은 조울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며 현재 우동근과 사귄지 1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는 같이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각자의 일터로 나갔는데 같이 잡혀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에 대해 축복했다.

“이것도 인연이죠. 여기에 맥주만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안주로는 치킨이 제 격이죠.” 겨우 진정한 주지하가 양변기로 달려가 토를 했다. 그새 그녀는 많은 부분이 바뀌어있었다. 주지하를 제외한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주지하의 온몸에서는 1cm정도의 털이 솟아나 있었고, 발도 나와 같이 변해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두렵게 했다. 내 생각이지만 조류나 파충류의 눈은 상대방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주지하의 눈은 감정이 전혀 담겨있지 않은 주황색배경에 검은색 동공이 커다랗게 팽창해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빠르게 진행시켰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가장 먼저 닭이 되리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게임이라도 같이 하실래요? ”

“아니오.” 우동근이 말했다.

눈치가 보여 강미나와 게임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나는 볏짚에 몸을 맡겨 뒹굴거렸다. 과연 이 시간의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얼음을 까먹으며 영화를 보거나, 회사에 취직해 일을 배우고 있거나, 아직도 거실에 붙어있는 강사장의 얼굴에 다트핀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강사장의 얼굴에 다트핀을 던지던 때도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어쨌든 기회는 있었던 것이다.

“죽기 전에 꼭 이루어야 할 꿈 같은 게 있었나요?” 강나미가 물었다. 다시 존잿말이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몽골에 가서 일년 정도 떠돌아다니고 싶었어요.”

“몽골은 왜요?”

“한 번도 지평선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들과 은하수도 보고 싶고...”

“저한테는 안 물어봐요?”

“뭘 하고 싶으셨어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좀 편하게 좀 살고 싶었어요. 우유랑 빵으로 아침을 시작해 책 좀 보고 영화 좀 보고 미술관도 가고... 좀 많이 보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많이 시시하네요.”

“인생이 시시하잖아요. 아마 몽골에 가 있어도 그럴걸요? ‘아, 이제 돈이 없으니까 다시 돌아가서 쇠 빠지게 일을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할걸요?”

“오랜만에 수영 좀 하고 싶어요.”

“전 수영이 아니라 샤워라도 한 번 해보고 싶네요. 이 볏짚에서만 이틀을 내리 뒹굴다보니 피부가 다... 이젠 피부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제가 신문에서 보기로 닭은 지금 지구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맡고 있는 중이랍니다. 번식 번식 그리고 또 번식. 인간의 대량생산 본능은 누구도 막을 수 없지요. 오죽하면 소의 방귀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소리가 있겠어요.

“닭 얘기는 꺼내지 마! 속이 매스껍다고... 흑흑.” 주지하의 날카로운 고함소리에 놀란 닭들이 단체로 꼬끼오 울음소리를 내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강사장과 부인이 두 손을 잡고 나타났다. 강사장은 정장차림을 부인은 챙이 높은 모자를 쓰고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저녁시간이에요.”

우동근이 총알 같이 튀어나가 쇠창살 밖으로 손을 꺼내어 강사장의 정장바지를 붙잡았다. 갑작스레 바지춤을 붙잡혔는데도 강사장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저기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희가 빨리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제발 지희만 나갈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이고, 이친구야 손떼. 이거 비싼 양복이거든. 오호라~ 저 친구 좀 보게나.”

강사장은 눈을 빛내며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저 아가씨가 가장 먼저 우리의 식구가 되겠군. 여보, 제가 내기에서 이긴 거 같죠? ”

“끄응. 당신 눈은 속일 수가 없다니까. 내일이면 되겠군. 많이 먹어두라고 친구들. 그리고 슬퍼하지마. 곧 행복한 삶이 올테니까. 너희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값어치가 있어. 자부심을 가지라고. . ”

강사장과 부인은 샐러드를 놔두고 발을 급히 놀려 밖으로 나갔다. 어딘가 가야할 곳이 있는 것 같았다. 뭐 파티나 무도회장이라거나... 강사장의 마지막 말이 강박적으로 머릿속을 침범해 들어온다.

 

밤은 길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반대편의 철장에서 나는 비음소리를 귀에 주워 담았다. 애처롭고 흥분 되는 소리였다. 내 바지가 불쑥 솓아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변화에 상당한 죄책감을 가졌는데, 그건 아마 저들이 나누는 섹스가 고결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은 인간으로 남아있을 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섹스를 하는 것이다. 건너편에 있는 나와 강나미나, 수천마리 아니, 어쩌면 수만마리의 닭들을 신경쓰지 않고 대놓고 소리를 냈다. 사실 24시간 내내 노란색 전구가 켜져있어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 쪽을 볼 수 없었다.

“사랑해... 후우.. 진심으로...”

“나도 사랑해. 아- 아-”

아마 강미나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겠지. 나는 눈을 감고 다음날이 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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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어났을 때 반대편 우동근의 품에는 완전한 닭 한 마리가 안겨있었다.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그건 인간의 몸과 같은 크기의 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강사장과 부인이 와서 우동근과 이제는 닭이 되어버린 주지희를 빼내어 갔다. 다시 철장 안에는 나와 강미나 밖에 남지 않았다. 강미나는 목에 걸려있는 십자가 목걸이를 잡고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절박해지면 신을 찾게 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과연 그녀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느님한테 기도하는 거야? 하느님은 뭐하냐. 저런 놈들 안 잡아다 놓고.”

“하느님은 언제나 사람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 믿음을 확인하셨어.”

“그래서 그 분은 뭘 얻었는데?”

“얻고 잃는 문제가 아니야.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셔. 전혀 사심 같은 게 있는 문제가 아니지.”

“그런데 그 자선사업이 잘 안되셨나봐? 우리가 이 모양인걸 보면.”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여러 가지의 고비를 넘김으로서 성장해. ”

“그런데 이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닭이 될 것 같은데? ”

강나미가 말을 멈추고 나를 째려보았다. 온 피가 눈으로 쏠리는 것처럼 눈시울이 빨개졌다.

“어쩌면 닭으로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먹이는 잘 주잖아. 우리는 값어치가 있어. 자부심을 가져야 돼. ”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닭으로 변해버렸다.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는 채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와버렸다. 이틀 전에 섹스를 하고 감금을 당했던 동료에 대한 눈물이었다.

“너는 절대 넘겨주지 않겠어.”

나는 강나미를 쓰다듬었다. 강나미가 머리를 내 머리에 가져대 비볐다. 부드럽고 매끈한 멋진 깃털들이었다. 곧 강사장과 부인이 다시 찾아왔다. 그들은 철장문을 열고 강나미의 목에 사슬을 채웠으며 내 팔을 묶었다. 왠지 모르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어 내 몸을 맡겼다. 철장 밖의 공기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강사장은 양계장 안의 지하통로로 내려갔는데 그밑에 있는 방문에는 ‘실험실’이라고 적혀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하얀색이 보였다. 하얀색벽, 하얀색천장, 하얀색바닥, 하얀색 실험기구들. 그리고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유치원 같은 아기자기한 놀이기구들과 인간 몸집을 가진 닭들이 수백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찌나 유쾌해보였는지 놀이동산에 놀러온 아이들 같았다. 어떤 닭들은 미끄럼틀을 타며 놀고 있기도 했고, 유리창 바로 앞에서 섹스를 하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 섹스를 시작부터 끝까지 구경할 수 있었는데, 불과 3초만이었다. 만약 나에게 시간이 충분하다면 아침에 끌려간 주지히를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불가능했다.

“우리가 저 닭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라스트 호프 치킨. 마지막 희망 닭이란 뜻이지. 우리는 닭도 굳이 영어를 써서 치킨이라고 하잖아. 안 그래? ”

강사장은 자기가 말해놓고 웃긴지 콜록대며 웃었다.

“저 관경을 봐. 저긴 천국이야. 저런게 자유가 아니겠나. 밖에는 민주주의다 자유다 외치지만, 그건 경쟁의 울타리 안에서지. 만약 짝짓기를 잘 하고 알만 잘 낳는다면 너희는 경쟁이 필요 없는 진짜 자유를 맛보게 될 거야. 이 알을 좀 봐.”

강사장이 쓰레기통처럼 보이는 실험기구 안에서 거대한 알을 꺼냈다. 앵간한 수박보다도 크고 윤기가 반지르르한 알이었다. 설명을 듣지 않고 보았으면 공룡알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이 알을 먹으면 암에 걸린 사람도 낳을 수 있어. 믿겨져?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소와 더불어 생명력이 전해진다고. 닭들의 행복도에 따라 달걀의 급이 갈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자네는 놀라겠군. ”

“그 달걀은 어떻게 되죠?”

아픈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특히 부자들이 많이 찾아. 이제 협찬을 받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어. 엄청 좋아하더군. 하긴 그 양반들은 평생동안 살아서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려야지.

“제 친구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버르장머리가 없군. 어른의 말을 끊고 말이야. 그래도 답해주지. 너희 친구들은 저 안에서 평생 놀고 먹으며 지낼거야. 물론 알을 낳으면서 말이지.”

“저희가 가진 인간성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외관과 생각하는 형태, 사고방식들이 변하는 거지 그렇다고 모두가 같아지는 건 아니야.”

“아니, 존중받아야할 인간성 말입니다.”

“그건 다 인간이 특별해지기 위해 만든 정의일 뿐 어떤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는 아니네. 이제 자네 친구를 안에 넣어야겠군. ”

강사장이 강나미의 목줄을 쥐고 유리문 너머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한순간 닭들의 시선이 모였지만 곧 각자의 일로 신경을 돌렸다. 강사장은 강나미의 목줄을 풀어주고 다시 실험실로 돌아왔다.

“이제 자네만 남았네.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우동근은 어떻게 됐습니까? 제 마주편에 있던 남자요. ”

“그 남자는 너랑 똑같이 여자가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지. 그리고 선택하라고 했어. 촉진제가 있거든. 비록 이렇게 하면 질이 떨어져서 피하고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부탁이라니까 뭐...”

강사장이 냉장고 안에 있는 주사들을 가리켰다. 나는 강나미가 닭으로 변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제 다시 한번 묻겠네. 어떻게 할 건가?”

나는 주위를 살폈다. 실험실 안에 있는 생명체라고는 둘 뿐이었다. 부인도 없었고, 나를 주저하게 만들 생명체도 없었다. 나는 실험실을 돌아다니는 척하며 강사장의 뒤로 접근했다. 그리고 강력한 발로 강사장의 다리를 움켜쥐었다.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쇠창살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런, 결국은 이렇게 나오는 건가. 자네, 내가 그동안 저 달걀을 몇 개나 먹었을 거라 생각하나?”

강사장이 다리에서 내 발가락들을 하나씩 떼내며 말했다.

“기상 아침 점심 간식 저녁 야식. 하루에 6번 한알 씩. 1년간을 섭취했다네. 내가 그저그런 늙은이라고 생각했다면 자네는 정말 큰 착각을 한거야.”

강사장이 주먹이 내 등을 내리쳤다. 눈 앞이 깜깜해지며 등에 감각이 사라졌다.

“이런이런, 내가 약간 흥분을 해버렸구만. 잠시만 기다려. 너도 촉진제를 놔줄 테니.”

강사장이 냉장고에서 주사기를 꺼내왔다.

“엉덩이에다 놓을거네. 어릴 때 이미 맞아본 기억 있지? 그다지 아프진 않을거야. 살이 많으니까. ”

강사장은 왼손으로 엉덩이에 솜을 가져다 대고 오른손으로 주사기를 엉덩이에 내려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는 것 뿐이었다.

제발.... 무언가가 발과 강한 충돌을 일으켰다. 강사장의 손에 있던 주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발가락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옆으로 꺽여 주사기를 쥐는데 성공했고 강사장의 팔뚝에 주사기를 꽃아넣었다. 강사장이 내 몸 위로 쓰러졌다. 그때부터는 뭐가 어떻게 돌아갔을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나는 강사장을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손목에 묶인 줄도 다리를 올려 발톱으로 뜯어낼 수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언제 부인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유리창너머에 십자가를 매고있는 강나미를 찾아 목줄을 달고 농장에서 탈출했다. 내가 달리는 데로 강나미는 잘 따라왔다. 밖은 새벽녘이었다. 달리다보니 도심가가 나왔고, 더 달리다보니 한강이 보였다. 4시간을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우리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누워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

 

3개월 전의 사건은 일상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아직도 세수를 할 때나 거울을 볼 때마다 두툴두툴한 얼굴을 보며 깜짝 놀라곤 한다. 그런다고 해서 새로운 닭살이 돋아나진 않는다. 다행인 일이다. 왠만한 물건들은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은 확실히 편리하다. 클릭 몇 번이면 모든 물건이 집 앞으로 오니, 나갈 필요도 없다. 사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피하고 있다. 이미 신발을 신을 수 없게 된 발과 우둘투둘한 피부 때문만은 아니다. 나에게는 두가지 공포증이 생긴 것이다. 닭은 혐오스럽고 사람은 무섭다. 물론 강미나는 예외다. 나는 요즘 내가 사람도 아니고 닭도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다. 인간과 닭 그사이의 어느 지점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는 옷을 입는 것도 벗는 것도 불편해졌다. 샤워를 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가끔씩 생고기나 조리하지 않은 생선을 보면 입맛을 다시는 일이 늘어났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밖으로 나가기가 무섭다. 심지어 부모님과의 관계도 끊었다. 1년 뒤에는 집을 빼고 보증금과 그 동안 모아왔던 돈을 부칠 생각이다. 나에게는 이런 방식이 편하다. 모순적이지만 나는 집 안에 나를 가둠으로서 자유를 느낀다. 내가 위안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맥주와 강나미가 있는 곳 뿐이다.

갇혀있는 생활은 자연스럽게 필요이상의 경제활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3달 동안 포토샾과 영상편집 기술을 배우고는 있지만 흥미라곤 느끼지 못한다. 집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킬 뿐이다. 올해는 집 안에서 뒹굴며 우유랑 빵으로 아침을 시작해 책이나 영화를 좀 볼 계획이다. 아쉽게도 미술관은 가기 힘들 것 같다. 이 모든 건 강나미가 바라던 것들이다.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맥주를 한모금 삼킨다. 옆에서 호시탐탐 안주를 노리던 강미나에게도 땅콩 한줌을 던져주었다. 강미나는 공중에서 땅콩을 절도 있게 받아먹었다. 사람만한 한 닭을 상상할 수 있는가? 내 옆엔 그런 강미나가 있다. 우리는 벌써 3달동안이나 동거를 했다. 지금은 내가 먹이를 구해다 주는 처지지만, 우리는 평평한 대지를 기반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이미 부부 그 이상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강미나만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해, 그녀는 내가 있음으로서 살아간다. 강미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주황색안구의 검은 눈동자. 이제는 그녀가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지금 내 인생은 그 어느때보다 찬란한 핑크색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로맨스인 것이다. 죽기 전에 한번은 강미나와 함께 몽골로 날아가고 싶다. 지평선이 보이는 허허벌판의 초원에 누워 떨어지는 유성들과 은하수를 볼 것이다. 아마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미래에 대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 아니었나? 잘 되기를 바란다.

 

“건배!”

 

 

  • profile
    korean 2019.04.30 22:02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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