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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진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벌써 두 달이나 된 일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불알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입사한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권고사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이 녀석은 인생에 굴곡이 있는 놈이다. 나처럼 흐릿한 평야를 걷는 사람은 어떠한 재미도 목적도 없이 그저 헤맬 뿐이다.

취업 준비도 공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집에 틀어박혀 허공에 흩날리는 먼지를 바라보았다. 방에 조용히 볕이 들면 먼지들이 잔잔한 호수처럼 우아하게 떠다닌다. 괴상하기 짝이 없다. 하루는 문득 집 안 청소가 하고 싶어서 청소기를 돌렸는데, 그게 또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청소기의 머리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꼴을 보고 있으면 왠지 생산적인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취직에 성공한 친형은 그런 나를 보며, “막상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으니 다른 게 재밌어지는 거야.”라며 농담을 건넸다. 아니, 농담이 아닌가?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형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오전 10시에 일어나서, 보리밥에 보리차를 말아 김치를 곁들여 허기를 달래고 있었더니, 뒤에서 엄마가 느닷없이 등짝을 때렸다. 그리고는 어디든 좋으니 허구한 날 집안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 하셨다. 하는 수 없이 중학생 때 신던 허름한 샌들을 신고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내가 없던 새에 고향은 많이 변했다. 아니,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서울시 자체가 많이 변한 것 같다. 기껏해야 3, 4년인데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아파트를 심어 넣은 덕인지, 옥상에서 보는 야경이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해졌다. 하지만 별빛은 옅어져서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날에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별똥별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내 눈이 흐려진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우리 마을에 있어, 재개발이 거론된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이미 10년 전부터 이 일로 집주인 세입자 할 것 없이 떠들썩했고, 중학생 때는 집집마다 빨간 깃발 걸어놓고 재개발 반대 시위를 한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시위는 금세 잠잠해졌지만, 아직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모양이다. 동네를 여섯 개의 구역으로 나눠, 구역마다 다른 시기에 재개발을 진행하려는 듯한데, 역과 상가가 밀집된 4구역은 재개발을 취소해야 한다느니, 제법 최근에 지어진 3구역을 허무는 건 시기상조라느니, 여하튼 말이 많다. 물론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구역도 있다. 초등학교 동창 녀석에게 들어보니, 학교 뒤편으로는 싹 다 밀렸다고 한다. 학교나 교회 같은 공공시설은 남아 있어도, 주위가 휑하니 도무지 사람이 드나드는 곳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문득 그 살풍경한 자태가 궁금해졌다.

남들에게 오해를 살 발언이기도 하지만, 난 부서진 모습을 보며 이따금 희열을 느끼고는 한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뒷산에서 비밀기지를 지으며 놀곤 했었다. 그때 마침 서울 시내 곳곳에 산사태가 일어나 그에 대한 대책으로 산마다 사방댐을 건설하고 있었다. 좁은 물줄기가 흐르던 간소한 계곡과 그 옆에 나뭇가지를 쌓아 올려 완성한 우리의 기지가 헌신짝처럼 널브러지고, 바닥에는 폭신한 낙엽을 치우고 딱딱한 콘크리트로 덮었는데, 그 잔혹한 풍경에 울먹이던 애도 있었을 정도이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나 홀로 왠지 모를 흥분을 느끼고 있었으나, 구태여 그 감정을 남들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에, 아니 대신에란 표현이 적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두운 밤의 도로에서 빠르게 지나쳐 가는 자동차들의 불빛을 보며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끼곤 한다. 차라리 아예 없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추억하고 간직하기라도 할 테지만,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오랜만에 걸었더니 다시 시장해졌다. 나와 같이 나태한 사람들은 삼보 이상 택시라는 말을 곧잘 하는 듯하지만,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 나는 버스 세 정거장 이상 버스라는 불문율을 항상 명심하고 있다. 굳이 세 보지는 않았지만, 우리집에서 초등학교까지는 버스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이다.

초등학교 주위의 거리도 많이 변해서, 분식집 자리에 밥집이 하나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와 보니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은 나 혼자였다. 면을 사랑하는 나는 4500원어치 우동을 주문했고, 10분쯤 기다렸을 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우동 한 그릇과 마주했다. 먹음직 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면발이 병약해 보일 정도로 얇았고 유부에선 알 수 없는 화장품 맛이 났다. 결국 양이 너무 적어 유부초밥을 추가로 시켰는데, 그마저도 밥과 소스가 잘 안 섞여 따로 노는 맛이었다. 사장님은 장사가 잘 안되는 탓인지, 한참은 어린 나에게도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셨다.

 

교문 앞은 소란스러웠다. 모처럼 찾아왔으니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굳이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나 때 있던 선생님은 다들 전근 가셨을 테고, 건물도 몇 해 전에 리모델링한 것인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내가 그 시절을 조금도 그리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이미 나의 기억에서 한없이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공 주위에 벌 떼처럼 몰려다니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정자에 앉아 축구 경기나 구경할 작정이었던 나에게, 경비복을 입은 보호관 한 분이 다가왔다.

 

학생, 몇 학년이여?”

 

멀찍이서 내 얼굴을 잘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난 키 170에 왜소한 체격을 갖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발육이 빠른 초등학생 정도로 생각될 수도 있었다. 더욱이 요즘 남자 초등학생 중에는 170이 훌쩍 넘는 아이들도 있다지 않은가.

나는 돌연 장난기가 발동해서, ‘6학년이라 해볼까?’ 생각했다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초등학생 동생을 기다린다고 해볼까?’, 심지어는 초등학생 자녀가 있다고 말해보자.’ 같이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뇨, 졸업생이요.”

 

그리 생각하는 와중에도, 난 사실대로 말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너무 정직해서 탈이다!

 

아무리 졸업생이라 해도 여기는 출입증 없이 못 들어오는 곳이여. 어여 나가게.”

 

나도 모르는 새에 보호관의 손짓을 따라 교문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6학년이 되었을 때 보호관 한 분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보호관이 없었다. 있다 해도 교문 앞에 상주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그분이 지금 여기 있는 보호관과 동일인인지 헷갈렸다. 처진 눈매가 닮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이대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순간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졸업생다운 감상적인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많이 변했네요, 여기는.”

 

짧고 의미 없는 한마디였다. 말을 하고서도 어딘가 엉성했다. 보호관은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인지 계속 말을 이었다.

 

여기는 말이여, ? 대통령이 온다 해도 그 전날에 허락을 받아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여. 대통령이 온다 해도 전날에 출입증을 끊는다고.”

 

이해해요. 요즘 세상이 원체 험악하니까요.’라는 말을 하려다가 하지 못한 채 꽁무니를 뺐다. 그 말마저 몹시 가식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까 내뱉었던 말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실제로는 전혀 그리워하고 있지 않음에도, 어째서 나는 지금 추억에 젖어 있다. 나의 그리움을 눈치채 달라.’의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했던 것일까? 어쩌면 나는 추억의 대상보다 추억하는 것 자체를 사랑할지도 모른다. 해놓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주제에, ‘그래도 나는 이런 인생을 살아왔다. 나에겐 찬란한 추억거리들이 있으니 상관없다.’라며 스스로에게 과시하려 드는 것이다. 아직 어린애인 주제에 꼴사납게 어른인 척하는 것이다.

 

나는 한심한 인간이다.’

 

이렇게 뇌까렸다.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졌다. 고등학생 시절, 룸메이트가 내게 말했다. 요즘 청년들의 주된 정서는 자학과 자기연민이 아니겠냐고. 나는 자학을 방패로 삼고 자기연민을 창으로 내세운, 겁에 질린 병사 하나를 떠올렸다. 룸메이트는 수능을 망치고 훌쩍 중국으로 떠나버렸다. 그 이후로는 연락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뒤편, 재개발 구역엔 교회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위쪽 구석엔 시멘트 잔해더미가 쌓여 있었고, 가운데는 갈색 흙뿐이었다. 그렇게 뻥 뚫린 네모반듯한 공간이 그 뒤로 서너 개쯤 더 있었다. 다 합쳐도 마을의 사분지 일밖에 안 되는 크기였다. 더욱이 집과 제법 먼 거리에 있는 이곳에 마땅한 추억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예전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이 사거리에는 친구 엄마가 운영하는 빵집이 있었다. 그 친구와는 서로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아 연락이 끊겼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의 근황이 궁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 포크레인이 있는 곳에는 친구 집이 하나 있었다. 이름이 가물가물 했다. 이재용이었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용재다. (이재용은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닌가.) 당연하지만, 그 친구와도 연락은 하지 않았다.

부서질 때 느껴지는 상쾌함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마을 일부분이 없어짐으로써 그 장소에 담긴 기억이나 감정, 분위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때때로는 그 따뜻한 파편을 보며 현재를 위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허황된 감상에 빠진 것이라 할지라도.

눈을 다시 감았다 떠보니 시끌벅적한 놀이터가 보였다. 그래, 저 한가운데에는 놀이터가 하나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한바탕 달리기 경주를 벌여, 제일 늦게 온 친구가 술래가 된다. 그네를 타며 바람과 맞부딪히고 미끄럼틀을 타며 달아오른 태양을 어루만진다. 어느 마을이나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모여드는 법이다. 반대로 놀이터가 없는 마을에 더는 아이들이 살지 않는다. 이 마을 어디에도 어린애는 살지 않는다.

텁텁한 바람이 불어왔다. 분진이 날라 들어와 자꾸만 눈을 괴롭혔다.


권현범

khb137@naver.com

010-4087-4084

  • profile
    korean 2019.04.30 22:03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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