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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9 23:40

보이지 않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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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계절




 연석은 양팔을 뻗으며 숨을 크게 들였다 뱉어냈다. 뻗은 팔위로 뜨끈한 공기가 감겨왔다. 10년 만에 찾아온 도시였지만   팔에 감기는 느낌이 크게 낯설지 않았다. 경상북도에 있는 김천은 소년교도소가 있는 유일한 도시이다. 연석은 이곳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연출데뷔를 했었다. 10년이 흐른 지금, 연석은 그 뒷이야기가 담길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다시 김천을 찾았다. 연석은 약도가 그려진 쪽지를 보며 골목을 걷고 있었다. 길 양쪽으로 난 담벼락은 여름의 더위를 막아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셔츠 사이로 땀이 흘러내렸다.

 주거단지에 들어서자 꽤 오래되어 보이는 연분홍색 건물이 보였다. 김천시 평화동에 있는 평화 원룸. 오는 길에도 몇 번이나 확인했었던 연석의 목적지였다.

 

 “편한데 앉으시면 됩니더. 주스라도 드릴까예?”


 “주스 말고 그냥 물 좀 줄래?”


 연석은 물을 따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반팔에 청바지를 입은 평범한 차림의 남자가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연석이 기억하는 남자의 모습은 ‘파란 옷’이 전부였다. 과거 촬영 팀은 아이들의 옷을 ‘파란 옷’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에게 ‘수의’나 ‘죄수복’이란 이름은 너무 무겁다는 것이 작가 미은의 의견이었다.


 “피디님 여기 물 있습니더."


 “고마워. 근데 석태 너 얼굴 좋아진 것 같다. 잘 지냈나 보네?”


 “그냥저냥 지냈습니더. 교도소에서 제빵 기술 배웠었다입니꺼. 요즘에는 빵집에서 빵 만들고 있습니더. 벌써 3년차라예.”


 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석태가 제빵사로 일한다는 것은 작가가 이미 전화인터뷰에서 확인했던 내용이었다. 연석은 말하는 석태 너머로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컴퓨터, 침대, 옷장 따위의 살림살이들. 협소한 공간이지만 남자 혼자 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6평 남짓한 석태의 보금자리에는 죄책감이나 무력감, 가난 따위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석태야.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


 “좀 더럽긴 한데예, 부엌 옆에 문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더.”


 ‘쏴아.’ 연석은 물이 내려가는 것을 확인 한 후, 세면대로 가 물을 틀었다. 흐르는 물 아래로 손을 대니 차가운 느낌이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물기가 묻은 손으로 뻑뻑한 눈가를 힘주어 비볐다. 서울에서부터 장시간의 운전으로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연석은 고개를 숙이고는 얼굴 위로도 물을 세게 끼얹었다.







 밥이라도 먹자며 나온 곳은 시내의 한 초밥집이었다. 어젯밤 연석은 오랜만에 만날 석태를 위해 김천에 갈만한 식당을 미리 검색해 찾아두었었다.


 “손님, 주문하신 A 세트 나왔습니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오른쪽에 벨을 눌러주세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얼마쯤 기다리자 주문한 음식을 직원이 가져다주었다. 연석은 어떤 것을 먼저 집을지 망설이는 석태를 보고는 스시와 롤 몇 개를 집어 석태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잘 먹겠습니더.”


 석태는 새우 초밥 하나를 간장에 찍어 입으로 넣었다. 초밥을 채 삼키지 않은 입에서는 살짝 뭉개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은 피디님 연락받았을 때, 참말로 고민 많이 했습니더. 뭐 잘한 게 있다꼬 두 번씩이나 얼굴을 비춥니꺼? 근데 초밥 오랜만에 먹으니까 진짜 맛있네예. 비싸서 잘 못 먹었었는데.”


 “그래? 많이 먹어. 모자라면 더 시키자. 근데 석태 너 아직도 안 좋은 건 아니지?”


 “예?”


 “아……. 화장실 갔을 때 보니까 변기 위에 약이 좀 있기에.”


 연석은 물을 내리는 와중에 변기 위에 놓인 약봉지 몇 개를 발견했었다.


 “그냥 요새 날이 더워져 가 잠이 잘 안와서예. 가끔 잠이 안 오면 먹습니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 촬영은 3개월 뒤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거 같아. 그전에는 만나서 이것저것 사전인터뷰를 좀  할 거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안부 묻는다고 생각하면 편하겠지? 조금 긴 안부가 되겠지만. 그냥 너무 부담 갖진 말라고.”


 “예전에는 억수로 부담 됐었는데예, 인자는 그런 거 없습니더.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인데예.”


 석태는 웃으며 대답했다. 연석은 석태의 웃음에서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켜켜이 쌓이는 시간 속에서도, 연석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있었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순간들이었다.








 “신분증은 이 바구니에 함께 담아 주십시오. 관련된 분들 모두 여기 서약서 좀 작성해주시고 휴대폰이나 녹음기, USB 등은 가지고 들어가 실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촬영이나 접촉은 일체 금지사항입니다. 작성이 모두 끝나면 저기 있는 교도관이 안으로 안내해 드릴 겁니다.”


 연석은 남자가 소개한 교도관을 흘끔 훑어보았다. 사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건조한 눈빛과 딱딱한 입매를 가진 남자는 다소 지쳐 보였다. 남자는 말없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얼마 되지 않아 철문이 하나 보였는데, 그 위로는 ‘꿈이 있으면 변화할 수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걸려있었다. 파란 바탕에 하얀색으로 큼지막하게 쓰여 멀리서도 한눈에 띄었다. 카메라감독은 카메라를 어깨에 얹고는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댔다. 연석은 그런 감독의 뒤로 바싹 붙어서는 뷰파인더로 촬영되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피디님! 빨리 안 오세요?”


  “응. 간다, 가!”


 연석은 그 글귀가 꽤 마음에 들었다. 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철문 하나가 나타났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문을 두 번이나 지나가야 했다.


 “여기가 그럼 마지막 입구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여기를 지나면 수감실이랑 바로 연결됩니다.”


 교도관은 문고리를 돌리려다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이들에게 민감한 말은 되도록 돌려서 말씀해주십시오. 인터뷰에는 필요하겠지만……”


 교도관이 웃음기 걸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쟤네들도 애들이잖습니까. 상처 받 습니다.”


 그 날, 교도관이 웃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본 것 같았다. 석태는 연석이 처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아이였다. ‘1686번 열일곱 최석태입니다.’ 자신을 석태라고 소개하는 아이는 또래보다 한 뼘이나 더 큰 덩치에 순박한 인상을 가진 소년이었다. 그리고 유달리 말수가 적었다. 무엇이 아이의 목을 내리누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질문할 때면 아이는 ‘모르겠습니더.’ 혹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예.’ 따위의 대답이나 침묵으로 일관하곤 했다. 아이를 침묵하게 하는 것이 자기부정인지  불신인지 아니면 다른 어떠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연석은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아이에게 믿음과 진심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석태는 카메라 감독에게 카메라를 끄라는 사인을 주고는 나머지 스태프들에게도 쉬어도 좋다고 말하였다. 스태프들이 떠난 석태의 방에는 연석과 석태만이 남았다.


 “이제 이 방엔 아저씨밖에 없어. 오래 걸려도 좋으니깐 아저씨한테 천천히 이야기해줄래?”




 촬영을 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석태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두 달 전에 지보다 한 살 많은 형을 죽여서 들어왔습니더.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더.’ 석태는 가장 죄질이 높은 살인으로 8년형을 선고받고 열일곱의 나이에 수감된 아이였다. 부모님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것, 자신의 집안에서 살인했다는 것,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자수를 했다는 것 등. 촬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석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하지만 석태는 ‘왜?’라는 질문에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연석은 다큐멘터리 팀 메인 작가 미은을 만났다. 연석은 회의를 하는 와중에도 석태가 해준 이야기가 마음에 계속 맴돌았다.








 “피디님! 사람이 설명을 하는 데 집중을 왜 이렇게 안 하실까?”


 미은은 연석의 팔목을 세게 잡으며 말했다.


 “미은아, 너도 희수가 죽은 거 알고 있었어?”


 희수는 교도소에서 만났던 아이 중 하나였다. 키가 작고 왜소했으며 까만 얼굴의 소년이었다. 다소 매서운 인상에 반항적인 눈빛이었으나, 교복을 입었다면 영락없는 중학생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아이의 죄명은 강간이었다. 인천에서 같은 반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아이의 하굣길을 미행했다가, 아이 집 바로 앞 계단에서 성폭행한 일이었다. 지나치게 대범하고 잔인했던 열여섯 소년의 범죄를 매스컴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연석도 뉴스에서 몇 번이나 보았던 사건이었다.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아내는 사과를 깎던 칼을 놓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당시 딸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아이의 범행 동기는 단순한 것이었다. ‘걔가 우리 엄마를 꼽추라고 놀렸어요. 매일 놀렸어요.’ 아이들은 상처에 익숙하지 않았고 또 취약했다. 상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연석은 턱을 괴던 손으로 오른뺨을 몇 번 두드리고 쓸었다. 뺨을 만지는 손끝 곳곳에 까칠함이 묻어났다.


 “희수가 많이 힘들어했었나 보더라고.”


 “그 얘긴 어디서 들은 거예요?”


 “며칠 전에 석태 만났었잖아. 석태가 이야기해 주더라. 여자애가 자살하고 계속 죄책감에 시달렸나 봐.”


 연석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불면증이나 식욕부진을 호소하거나 환청을 듣거나 환영이 보인다던 교도관의 말을  떠올렸다. 감았다가 떴다를 반복하여도 보이는 것은 다시 담장뿐인 아이들이었다. 그 안에서는 또래 아이들이 느낄 수  없는 소년들의 기억과 감정들이 오가고 있었다. 실제로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거나, 자살시도 혹은 자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러한 아이들을 위한 심리치료 또한 교도소 내에서 실시하고 있었다. 주로 대여섯 명의 팀으로 집단 상담이 이루어졌는데, 석태와 희수는 함께 상담을 받았었다. 미은은 가방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챙겨 나가더니, 매캐한 냄새와 함께 돌아왔다.


 “희수가 연락을 안 받기에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살했다는 건 저도 피디님한테 연락받고 알았어요. 희수가 죽은 건 진짜 안됐지만 일단 우리 집중 좀 합시다. 촬영 얼마 안 남은 거 알잖아요.”


 미은은 노트북을 꺼내서는 대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소에 따른 동선과 사전 인터뷰를 조합한 에피소드 같은 것들이었다.


 “여하튼 촬영일정 변경 없도록 잘하자고요. 저 얼마 전에 프로그램 하나 더 없어진 거 아시죠? 요즘 일주일에 세 번이 컵라면이에요. 피디님은 자존심 상하고 말 일이지만, 저는 이거까지 엎어지면 진짜 희수 따라갈지도 모른다고요.”


 연석을 쏘아보며 미은이 말했다.









 연석은 편집실에 혼자 앉아 미은이 주고 간 대본과 자신의 연출기획서, 스태프 명단을 비교하며 촬영일정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펜을 들어 ‘김희수’ 라고 적힌 글자 위로 줄을 그었다. 몇 번 반복하자 검은색 선에 가려 글자는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럴 만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연석은 발생하는 모든 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희수의 죽음 또한 그런 종류의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 리고 희수의 까만 얼굴을 떠올렸다. 십 년 전에 보았던 글귀도 떠올렸다. ‘꿈이 있으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연석은 다시 한 번 힘주어 줄을 그었다.








 연석과 미은은 석태의 원룸 앞에 와 있었다. 연석은 스마트폰을 꺼내 길 찾기에 한창이었다.


 “외진 곳이라서, 차에 내려서도 한 참 걸어가야 하겠네.”


 오늘은 석태와 함께 석태할머님 산소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석태가 소년교도소에 있을 시절, 할머니는 석태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아이는 할머니라는 단어에 눈물을 보이곤 했었다.


 “많이 걸어야 해요? 얼마나? 아, 괜히 샌들 신고 왔네. 운동화 신을걸.”


  “이삼십 분 정도 쭉 걸어 올라가야겠는데? 그나저나 석태는 왜 이렇게 안 나오냐.”


 연석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웃으며 걸어 나오는 석태가 보였다. 양손에는 무게가 꽤 나가보이는 종이가방 두 개를 든 채였다.


 “많이들 기다리셨지예? 미안합니더. 이것저것 먹을 것 좀 챙긴다고 늦었습니다.”


 “괜찮아. 석태 덕분에 누나도 담배 좀 실컷 폈다.”


 미은이 바닥에 담배를 눌러 끄며 대답했고 셋은 연석의 차로 함께 올랐다. 석태는 뒷좌석에 앉아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풍경들 하나하나가 석태의 눈에 빠르게 걸렸다가 또 지나갔다.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한 풍경들이었다. 할머니는 석태가 출소를 한 달 앞두고 돌아가셨다. 석태는 교도소 안에서 소장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뿌연 눈을 감았다 다시 떠보아도, 보이는 건 창살이었다.

 한 시간 정도를 달리니, 김천의 시내와는 다른 풍경들이 보였다.


 “석태야. 여기 맞지?”


 연석이 석태를 향해서 물었다. 석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산을 등지고 서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석태는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그리움은 항상 아픔과 함께 찾아오곤 했다.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걸어 올라가자.”


 연석은 석태의 종이가방 하나를 집어 들고는 차에서 내렸다. 산소로 향하는 길 은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이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 건지, 멋대로 돋아나 있는 주위의 풀들 때문에 허벅지며 종아리며 스치는 살이 아팠다. 석태는 군데군데 길게 뻗어난 풀들을 뽑으며 걸었다. 손에 잡히는 풀에서 부재 의 시간을 떠올렸다. 풀의 키만큼 석태도 자랐다. 제겨딛는 걸음마다 할머니 냄새가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뒤에서 ‘얼마나 더 가야 하냐며, 여긴 왜 이렇게 가파르냐며’ 말하는 미은의 짜증 섞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석태가 술을 채운 종이컵을 내려놨다. 옆에는 준비해온 음식들도 함께 놓여있었다. 셋은 일렬로 서서 함께 절을 했다. 연석은 무릎을 굽히며 어렸던 석태와 할 머니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만날 술 마시고는 어머니를 팼습니더. 때리고 밟고 어머니는 울고예 . 아, 기억나는 게 초등학생 때 일인데예. 아직도 생생합니더. 아버지가 그 날 도 술이 되가꼬 엄니 머리채를 잡고 거실부터 부엌까지 질질 끌고 갔습니더. 방 에서 문틈으로 훔쳐보고 있었는데예. 너무 무섭고 슬퍼가꼬 실수를 했습니더. 옆에 할머니 바지에 노란 얼룩이 들었는데예, 할머니는 그냥 가만히 지 손잡고 지를 안아줬어예. 바지는 찝찝하지예, 싸움은 안 끝나지예. 근데 할머니 품은 엄청 따스했다입니꺼.’ 말하는 석태의 얼굴 위로 미소가 살짝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석태는 원래 할머 니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천장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아버지의 다리를 처음 발견한 것도 어린 석태였다. 방에서는 진한 술 냄새가 났다. 교도소 안에는 석태 같은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관심과 보호라는 단어가 생소한 아이들. 가정과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했고 애초에 혼자였던 아이들도 있었다.


 “석태야 절도 했는데, 할머니한테 한 말씀 올려야지.”


 미은이 말했다.


 “할머니. 잘 계셨습니꺼? 지도 이 제 사람 구실 하러 다닌다는 핑계로 잘 오지도 몬하고……. 많이 기다리 셨지예? 보고싶으셨지예? 이제 기다리게 안하겠습니더. 그때까지 편안하게 계시소.”


 석태의 목소리가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음식들과 술 대신 쓰레기로 채워진 종이가방은 훨씬 가벼웠다. 올라갈 때 보다 는 수월했지만,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셋은 내려오는 길에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주변의 나무들을 손으로 짚고 나뭇가지를 잡아가며 밑으로 내려왔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석태는 창밖을 말없이 응시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열린 차창 사이로 후덥지근한 공기가 감겨왔다.

 석태는 팔을 창밖으로 뻗으며 생각했다. 지난 것들과 지나갈 것들, 시간과 후회라는 것들에 대해서. 석태는 범죄를 저지르고 딱 두 번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교도소에 처음 입소할 때 보았던 할머니의 눈물과 교도소 안에서 할머니의 부음을 들었던 일이었다. 후회 라는 단어를 모르던 어린 석태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잃어버린다는 두려움과 부 재의 슬픔을 느꼈고, 또 후회했다. 후회를 느꼈을 땐 이미 그것을 말할 상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석태에겐 마음 의 큰 짐이자 아픔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었다.








 촬영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연석은 미은을 포함한 몇몇 작가들과 함께 회의 실에서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몇 회 차로 구성할 지 시간대는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논의였다. 기존의 다큐멘터리들이 오 회차로 구성된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삼 회차로, 밤 열한 시부터 열 두 시 반까지, 한 회를 90분으로 편성하기로 의견이 모였다. 물론 촬영하면서 여러 변수들이 생기겠지만, 잠정적인 계획들이었다.

 그리고는 이야기의 화제는 다큐멘터리에 붙일 제목으로 옮겨갔다. 이러저러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지만, 프로그램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제목을 정하는 것이니만큼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뭔가 제목을 들었을 때, 충분히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간결한 제목이었으면 좋겠거든, 나는.”


 연석이 말했다. 연석의 회의 노트에는 빽빽하게 단어들이 있었고 그 위로 까맣게 칠이 돼 있었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하셨는데……. 사실은 피디님 저는 요즘에 우리 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말하려고 하는 게 뭔지 조금 혼란스러워서요.”


 막내 작가 민지가 꺼낸 말이었다.


 “제 동생이 고등학생인데요, 며칠 전에 교복 셔츠에 피를 엄청나게 묻히고 들어온 거예요. 얼굴이며 등, 어깨에 멍이 엄청 들어서는. 학교에서 걔를 괴롭히는 선배들이 있었나 봐요. 걔 와이셔츠를 빨려는데 갑자 기 우리 프 로그램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누구를 위한 방송일까?’ 라는 생각도 들고…….”








 매캐한 숨을 뱉어냈다. 검지에 힘을 주어 담배를 몇 번 치니 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회의를 마치고 연석은 회사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자판기에서 뽑은 밀크커피 한 잔과 담배, 그리고 햇빛. 연석에게 옥상은 최고의 휴식처였다. ‘누구를 위한 방송일까?’ 연석도 이미 몇 번이나 고민했었던 문제였다. 피해 자들에게 2차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고, 가해자들인 아이들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던 아이들이었다. 결핍은 각기 다르게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연석은 남은 커피 한 모금을 비어내곤 다 핀 담배를 안에 넣었다.

 석태는 침대에 누워 연석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요일에 시간 되면 얼굴 보고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아마 촬영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었다. 석태는 버튼을 눌러 수신메시지 창을 열었다. 최신메시지에는 연석과 미은, 그리고 빵집 사장님에게 온 문자들이 대부 분이었다. 석태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침대 옆 스탠드를 껐다. 까만 밤사이로 창 하나가 몇 번이나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헤매는 밤이었다.








 “주말인데 칙칙한 아저씨랑 데이트해서 맘이 아프지?”


 연석은 석태와 함께 김천 시내의 한 카페에 앉아있었다.


 “아닙니더. 피디님은 살이 좀 빠진 것 같네예.”


 “그래? 요새 일이 좀 많아져서 그런가 보다.”


 실제로 연석은 촬영준비와 편집업무 등이 겹쳐 며칠 동안이나 방송국에서 밤샘 작업을 했다. 피디라는 직업이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것은 늘 체감하고 있었지만, 요즘은 정신적인 피로까지 겹쳐 배로 힘들게 느껴졌다. 연석은 갈라지려는 목을 커피로 축이곤 말을 꺼냈다.


 “석태야. 근데 나 질문 하나 해도 될까?”


 “피디님은 항상 질문 하시잖아예. 뭔 질문이길래 이래 뜸을 들이십니꺼?”


 “사실 십 년 전에도 물어봤었던 건데, 아직 그 대답을 못 들었거든. 왜 그 때 그 아이를 죽인 거니?”


 겨우 입을 열게 된 아이가 한 가지 말하지 않았던 것, ‘왜’라는 질문에 관한 것이었다. 촬영 기간 내내 아이에게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연석은 결국 대답 얻기를 포기했었다. 석태는 고개를 숙이고 숨을 뱉어냈다. 십 년도 더 되었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고, 기억해내는 건 아주 쉽기도 또 무척이나 어렵기도 한 일이었다.


 “할머니를 봤었습니더. 저 말하기 전에 물 좀 떠와도 되겠습니꺼?”


 석태는 물과 컵들이 올려진 선반으로 가 물 두 잔을 떠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종이비닐 안에 담긴 약을 꺼내 물과 함께 삼켜냈다.


 “어디 안 좋은 거야?”


 “신경안정제 입니더.”


 석태는 사실 몇 년째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를 함께 복용 중이었다. 우울하거나 불안한 느낌이 밀려오면 약을 먹곤 했었다. 끊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요즘은 먹는 양과 횟수까지 늘고 있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가끔 먹습니더.”


 석태는 물을 마저 마시고는 고개를 숙였다.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연석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물어본 것을 무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 피디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열일곱 때 일이였습니더. 할머니랑 둘이서 살았다입니꺼.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항상 할무이가 나오셔서 반겨주 셨습 니더. 근데 그 날은 없었습니더. 대신에 목소리가 들렸습니더. 우는 것 같기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예.”








  석태를 만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연석은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잡으려 핸들을 더 세게 쥐었다. ‘그럴 만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혹은 ‘모든 일은 일어날 만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라는 명제들. 연석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명제들을 적용시킬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어렵사리 들을 수 있었던 석태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방에 들어갔는데 할무이 위에 어떤 남자가 올라타 있었습니더. 할머니 꽃무늬 바지는 발목까지 내려간 상태였고예.’ ‘할머니는 울면서 지를 향해 손을 저었습니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한테 나쁜 거 보지 말라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예.’ 

 행운은 모두의 것이 아니었고, 불행 역시 그러했다. 서울까지 2km라는 간판이 보였고 연석은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연석은 편집실에 앉아 녹화된 영상에 자막을 붙이고 있었다. 촬영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촬영팀 멤버들도 모두 꾸려졌고, 촬영을 위한 대본도 거의 완성 이 되어갔다. 아직 결정 나지 않은 제목에는 가제가 붙었다. 살짝 졸리려는데 순간에 도넛박스를 든 미은이 들어왔다.


 “도넛이랑 아메리카노예요. 먹으면서 하세요. 졸지 마시고.”


 “내가 졸았어?”


 “네, 피디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데, 도넛 도로 들고 가야겠어요.”


 “에이, 미은아. 내가 좋아하는 오리지널이네. 맛있겠다. 잘 먹을게.”


 “피디님 얼마 전에 김천 갔다오셨다 길래 또 얼마나 파김치가 되셨을까 궁금해서 와봤어요.”


 “파김치는 무슨. 옆에 의자 붙이고 앉아. 도넛 같이 먹게.”


 도넛 하나를 꺼내 물며 미은은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연석도 따라 도넛 하나를 꺼내 물었다.


 “피디님. 근데 며칠 전부터 석태가 연락이 계속 안 되더라고요. 촬영 스케 줄 알려주려고 연락했었는데 얘가 잠수를 타는 건지.”


 “석태? 며칠 전에 나 석태만나고 왔는데?”


 연석은 반쯤 남은 도넛을 입에 완전히 넣고는 의자 등받이에 눕듯 기댔다.


 “아, 피디님 석태 만나고 오셨었죠? 거의 그쯤인 거 같은데……. 카톡 해도 카톡도 안 받고 전화, 문자 다 안 받더라고요.”


 연석은 책상 위에 둔 휴대폰을 집어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발신인은 석태였다. 신호음만 계속 들려올 뿐, 석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후 소리 샘으로…….’


 “사정이 있겠죠. 뭐. 피디님 저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응, 도넛이랑 커피 고맙다. 잘 먹을게. 너도 농땡이 그만 부리고 얼른 원고에 집중하시길. 누군가 그렇게 말했었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연석은 미은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 주변으로 도넛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열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홉 시에 전체 소등이 된 이후로 연석의 편집실만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기지개를 켜려 팔을 위로 뻗는데, 딱딱하게 뭉쳐진 근육에 ‘아’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편집이 다 끝나도록 석태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연석은 확인하면 전화해달라는 문자를 남기고 석태의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연석은 내일 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석태의 집에 직접 찾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벨을 눌러 보아도 인기척이 없다. 연석은 답장을 기다리다가 결국 석태의 집을 직접 찾아오고 말았다. 피디들과의 회의가 남아있었지만, 석태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몇 번이나 벨을 눌러보아도 벨소리만 복도를 메울 뿐,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번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려보았다. 세게 두드려보지만 역시나 대답이 없었다. 연석은 휴대폰을 꺼내 전에 저장해 두었던 석태가 일하는 빵집으로 전화를 걸었 다.


 “저, 관리인 되시죠? 208호 남자 분 형 되는 사람인데요. 동생 집에서 보 기로 했는데 동생이 좀 늦을 것 같다고, 관리자분한테 문 열어 달라하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네요.”


 연석은 일층 관리실을 찾아가서 거짓말로 이야기했다. 평소 거짓말을 싫어하고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 석태예? 석태 이주 전에 일 그만뒀습니더. 오래 일하다 보니깐 손목에 무 리가 좀 왔나보데예. 일 잘하고 착했는데…….’ 연석은 문을 열어 준 관리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석태의 원룸 안으로 들어 갔다.


 “석태야.”


소리 내어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원룸 안의 모습도 처음 찾아왔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석태야.”


 연석은 소리를 높여 다시 한 번 불러보았다. 침대는 이불이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고, 전원이 꺼진 컴퓨터 주변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연석은 주방으로 가 보았다. 컵이며 그릇이며 건조대에 쌓여 있었고, 물기 없이 마른 상태였다. 석태의 흔적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근에 집을 계속 비웠더라면,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석태야. 최석태!”


 연석은 들려오지 않는 석태의 대답에 포기하고 신발장 앞으로 걸어왔다. 운동화를 신고 나가려는데 석태의 파란색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가지런하게 놓인 파란 운동화에는 이상하게 운동화 끈이 양쪽 모두 빠져있었다. 연석은 자신이 신고 있던 운동화를 한 번, 파란 운동화를 또 한 번,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운동화를 벗지도 않은 채,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당겨보아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고리는 돌아가는데 뭔가 묵직한 것이 걸린 것처럼 문이 잡아 당겨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연석은 양손으로 문고리를 잡은 뒤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피디님, 피디님 앞으로 온 거요.”


 사무실 자리에 앉아 인터넷 뉴스 기사들을 뒤적거리는데 FD가 무엇인가를 건네 왔다.


 “나? 누가 준 건데?” “그건 모르겠는데요. 그냥 안내실 우편함에서 가져왔어요.”


  “그래? 아무튼, 고맙다.”


 연석의 앞으로 온 편지였다. 연석은 편지 봉투 윗부분을 손으로 찢어냈다. 그 안에는 몇 번 접힌 종이 하나가 들어있었다.




 < 피디님, 안녕하세요. 저 석태입니다.

 놀라셨죠? 인터넷에 나와 있는 주소를 보 고 이쪽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피디님과의 인연이 벌써 십오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날 피디님이 절 찾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긴 인연은 없었겠지요? 죄송하고 또 고맙습니다. 그날 일은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 말을 자주 써서 피디님을 힘들게 했었는데,편지에까지도 이 말을 쓰게 되네요. 정확하게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그냥 좀 두려운 감정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나이도 먹고 돈도 벌면서 겨우겨우 도망쳐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결국 열입곱에 남아있었거든요. 잘 지낸다는 이야기 하면서도 제발 잘 지낼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피디님도 아시겠지만, 교도소에서는 겨울에는 찬물로 샤워하고 여름에는 아이 들이 한데 엉겨 붙어 땀 냄새에 묻혀 살아야 했습니다. 더 추운 겨울 더 추운 여름이었습니다. 계절은 그렇게 잘 느껴지는데 계절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출소를 하고 난 뒤에는 계절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피디님이 그 날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순간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정신이 거의 없던 상태 였는데도 아직도 그때 피디님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피디님은 울고 계셨습니 다. 할머니가 떠나가고 더는 저를 위해 울어 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이제 진짜 계절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응원해 주십시오. 그리고 피디님 부디 행복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연석은 편지를 다 읽고는 다시 접어 봉투 안으로 넣었다. 발신인도 없고 편지지가 아닌 A4용지에 쓴 투박한 글씨의 편지였다. 컴퓨터 화면으로 눈을 돌리자 자신이 읽고 있었던 인터넷 기사가 보였다. ‘소년수들은 어떻게 어른이 됐을까? 소년교도소에서 출소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 소년에게 >’


 “정피디님, 편지 누구한테 온 거예요? 옛날 여자친구는 아니죠?”


사무실 옆자리 여자 피디가 연석에게 물어왔다. 연석은 대답 대신 살며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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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지

comeonminji4@naver.com

010-2028-8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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