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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0 11:02

온유한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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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수용


*

나는 빈소를 빠져 나와 벤치에 주저앉았다. 검은 상복자락에 벚꽃 잎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마치 먹으로 그린 것처럼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그리고 그것들 보다 더 검은 마음을 가지고 나는 침몰하듯 앉아있었다. 먹으로 그린 그림에 실수로 떨어트린 물감 한 방울처럼 내 머리카락에 분홍빛 벚꽃 잎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벚꽃 잎의 무게는 나의 무거운 고독을 깨기에는 너무 가벼웠다. 나는 다가오고 있는 봄을 즐길 수 없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손에 들린 사진만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을 참으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아름다웠던 그녀를 이렇게나 일찍 데려간 신에 대한 분노를 참는 것이었을까. 어느 쪽이었던 나는 참는 데에는 소질이 없다. 이미 떨어지는 벚꽃처럼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던 순간도, 손님도, 친척도 없는 그녀의 텅 빈 빈소를 지키던 순간도, 그녀의 관을 이고 나가던 순간에도 나지 않던 눈물이 모든 것을 끝내고 벚꽃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지금에서야 터져 나왔다.


“아... 또 늦었네... 또 뒷북이야...”


그녀의 죽음은 빨간 장미 같았다. 그래, 딱 생일인 그녀를 위해 내가 준비했던 그런 장미 같았다. 사고가 난 순간 그녀의 피가 사방에 꽃잎처럼 흩어지고, 매일 나던 바디 미스트 향기 대신에 죽음의 냄새가 났으리라. 나는 그녀의 죽음조차 보지 못했다. 보았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담배 가게에서 말보로와 디스 중에 고민하지만 않았어야했다. 신호등이 빨간 불일 지라도 그냥 뛰어왔어야 했는데. 아니, 그놈의 꽃, 그 기분 나쁘게 빨간 장미꽃을 사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녀를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 시간에 5분 늦었고, 그 대가로 이틀 뒤에서야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커피향이 나고 따뜻한 카페가 아니라 소독약 냄새가 나고 차가운 부검실에서. 부검실에서 본 그녀의 시신은 말라버린 장미처럼 시들어 있었다. 눈, 코, 입 모든 것이 생전의 그대로여서 흡사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자는 거야...? 김오은, 일어나봐 집에 가자...”


무섭도록 긴 침묵이 흘렀다. 소름이 끼쳤다. 생일 아침만 해도 장미 한 송이 사올 줄 모른다며 나에게 잔소리를 해대던 그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서야 나는 그녀가 죽었다는 걸 실감했다. 이제 그녀는 부를 수도, 불러서도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에도 지각을 했다. 나는 항상 그녀에게 지각생이었다. 그녀를 그토록 사랑했다는 것도 그녀가 죽고 난 지금에서야 알았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지각을 한다.

후회도, 그리움도 항상 나중에 배송되어 재고로 쌓인다. 버리기도, 그렇다고 가지고 있기도 애매한 그런 것들.


뺑소니는 아직도 잡지 못했다. CCTV에 찍힌 차량은 도난차량이어서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했다. 그녀의 죽음보다 더 분한 것은 지금 내가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이 그녀에게 저지른 거대한 장난 앞에서 무능하고, 무능하고 또 무능했다.


“짝!”


내 바로 옆에서 손바닥이 마주치는 소리에 놀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옆을 보니 개나리처럼 노란 머리를 한 여자가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려고 닭처럼 퍼덕거리고 있었다. 잽싸게 파리잡듯이 짝하고 손바닥을 부딪히고, 벚꽃이 잡혔는지 확인한 후 실망하는 표정을 짓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는 이내 한 잎 잡았는지 천진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웃었다. 저렇게 벚꽃을 잡으면 손바닥은 손바닥대로 아프고, 벚꽃도 다 으깨질 것만 같다.


참 그 광경이 비현실적이고, 그럴 상황이 아닌데 비실비실 미친 사람처럼 웃음이 세어 나왔다. 소녀와 여자의 중간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저 여자가 한 순간 나에게서 오은이에 대한 생각을 잊게 했다. 어째서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샛노란 머리는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빈소를 같이 지켰던 친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너 뭐하냐? 왜 혼자 웃어?”


나는 급하게 웃음을 거두었다. 기가 막혔다. 눈은 눈물 맺힌 채 그대로인데, 내 입은 나사 빠진 것처럼 웃고 있었다.


“아니, 저기 저기에 있는 여자 말이야. 하는 짓이 너무 웃겨서..”


친구가 내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더니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있긴 누가 있다고 그래?”

“저기, 노란 머리 한 여자 있잖아.”


친구가 소름끼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야 무서운 소리 작작하고 빨리 들어와. 너 빈소 지킬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그러다 쓰러져!”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에 이끌려 식당으로 끌려갔다. 나는 끌려가면서도 황당해서 그 친구와 그 의문의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여자가 멀어지는 나에게 어슴푸레 손을 흔드는 것 같았던 것은 내 착각일까? 그때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왜 그 친구가 그 여자를 안 보인다고 하는 건지.


그 때부터였다. 내가 ‘온유’를 보게 된 것은.


**

짜증이 솟아오른다. 매일 아침 문을 열었을 때 밟히는 바닥이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였으면 좋겠다. 고운 빛깔의 수많은 꽃들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나의 현관문 앞에는 노란 개나리와 목련 그리고 이름 알 수 없는 봄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누구는 우렁각시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귀신이라고도 했다. 나를 잘 모르는 이는 여자 친구가 극성인가 본데 꽃이 바닥에 굴러다녀서 더러워진다, 면서 나를 꾸짖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주일 전에 여자 친구가 죽었다고 해명해야 했고, 그들의 동정어린 눈빛을 받으며 잊어가고 있던 그녀의 죽음을 다시 상기해야 했다. 무엇보다 싫었던 것은 딱딱한 시멘트 바닥 대신 폭신한 꽃 더미를 밟으면서 내가 서서히 오은이를 잊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죽었다는 걸 잊고 나도 몰래 피식, 웃음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죽은 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데, 나는 아직은 행복해서는 안 되는데. 그래서 여자 친구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나를 꾸짖는 아주머니들이 밉지 않았다. 그녀들은 적어도 오은이를 다시 기억하게 해주었으니까.


오은이가 죽었다.

그것만이 지금 나의 세상을 지배하는 문장이었다.


오은이가 죽었다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오은이라는 사람을 잊게 되는 것이었다. 벼랑 끝에서 위태로운 하나의 줄을 의지한 사람처럼 나는 오은이에 대한 기억의 끈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내 방에는 아직도 오은이의 칫솔, 안경, 볼펜 등이 남아 있었고 심지어 그녀가 올이 나갔다고 버렸던 스타킹 하나 마저도 남아있었다. 나는 병적으로 그녀의 흔적들에 집착했고, 어떤 때는 그녀와 나란히 앉았던 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있었다. 어느 하나 버릴 수 없었고, 어느 하나 잊고 싶지 않았다. 이 끈을 놓으면 끝도 없는 벼랑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오은이를 그리워하는 것에,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 유치한 장난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여자, 그 장례식장에서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고 있던 그 여자 일 것이다. 그 개나리처럼 노란 머리를 가진 여자가 그 뒤로 계속 나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멍하니 그녀를 생각하며 우울감에 젖어 있을 때도, 계속 음식을 못 먹다가 사흘 만에 편의점에 들러 먹을 것을 살 때도 그녀는 항상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왜 나를 따라다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쪽에서 말을 걸지 않는다면 그다지 이쪽에서도 말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다. 왠지 그 순간 그 여자에게 말을 건다면 그 여자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것 같았다.


특별하다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단 하나의 의자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 의자를 아직은 그 여자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아직 거기는 오은이의 자리여야만 한다. 떠나는 순간마저 뒷모습으로 보낸 그녀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녀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그녀에 대한 예의이다. 그 알 수 없는 여자 때문에 그녀에게 비켜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지만 나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오늘도 먼발치에서 그 노란 머리 여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고양이처럼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아파트로 들어서려고 계단을 올랐다. 경비실을 지나려고 할 때, 경비원 아저씨가 황급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아이고! 거기! 503호 맞죠?”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안 그래도 대머리인 그 경비아저씨의 얼굴이 붉게 상기 되서 마치 대친 문어 같았다. 아저씨는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경비실 키를 던져주면서 말했다.


“아, 나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그러니까 잠시 경비실 좀 지켜줘요!”

“아 저기...!”


내 대답은 들을 여유조차 없는 지 아저씨는 한손으로는 엉덩이를 움켜쥐고 뒤뚱거리면서 절박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경비실로 들어가 그가 매일 앉아있는 낡은 초록 듀오 백 의자에 앉았다. 그 때 내 눈에 CCTV 스크린이 들어왔다. 스크린으로 경비 아저씨가 뒤뚱거리면서 2층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503호, 503호... 어디 있나...”


뭐 사실 별 호기심도 없었다. 이미 범인이 누군지는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답을 이미 알고 문제 채점을 하는 것처럼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CCTV화면을 돌려서 오늘 아침 새벽 5시부터 돌리기 시작했다. 5시 2분이 되도 별 일이 없었다. 5시 5분이 되도 별일이 없었다. 5시 7분이 되도 별일이 없었다. 5시 10분이 되었을 때 복도 끝에서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그 실루엣은 점점 가까워졌고 또렷해졌다. 가슴에는 꽃들을 한 아름 안고 내 문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답을 미리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답안지를 밀려 쓴 학생이 이런 기분일까. CCTV 화면에 비친 사람은 그 노란 머리 여자가 아니었다. 그는 키가 컸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울해보였고 굉장히 말랐다. 아주 익숙한 얼굴. 매일 아침 세수하면서 보는 얼굴.


CCTV에 비친 사람의 얼굴은 나였다. 분명히 내가 꽃을 한 아름 따다가 내 현관문 앞에 가져다놓고, 꽃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여러 번 반복해서 돌려보았지만 그건 분명히 나였다. 그 때 내 옆의 유리창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경비 아저씨가 왔나 싶어서 황급하게 CCTV화면을 돌렸다. 그리고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였다. 노란 머리를 한 그 여자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천진스러운 미소가 어찌나 기묘하고 징그럽고 무섭게 느껴지는지. 나는 귀신을 본 사람처럼 얼어붙었다. 도대체 그럼 저 여자는 뭐란 말인가. 그녀는 유리창에 호호 하고 입김을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손가락으로 이렇게 글씨를 적었다.


‘안녕, 수용아? 나는 온유야.’


나는 섬뜩해졌다. 나는 황급히 CCTV를 켜서 7일 간의 5시 10분 영상을 모조리 지우고 경비실 밖으로 나왔다. 나왔을 때는 온유라는 그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혼비백산해서 계단을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 해서 내 집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었다. 떨리는 손가락은 몇 번이나 틀린 비밀 번호를 눌렸고 3번의 시도 끝의 우리 집 문이 열렸다. 나는 황급히 문을 잠그고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 문을 잠갔다. 그리고 침대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두려웠다. 알면 안 되는 사실을 직면한 사람처럼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 때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나는 빼꼼이 이불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 나의 침대위에 온유라는 여자가 앉아서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언어로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를 부르고 있었다. 알 수 없이 옹알거리는 듯 한 그 가사가 가볍게 내 귀를 타고 들어와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어머니의 양수 속에 떠다니던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편안했다. 뱃속에서 듣던 어머니의 심장 고동처럼 규칙적으로 그녀의 손이 나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문을 잠갔는데도 모르는 여자가 내 집에 들어와서 내 침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내 등을 토닥이고 있는 이 상황이 무섭고 두렵고 이상해야 하는데 너무나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일주일간 나를 괴롭히던 불면증도 잊고 깊은 잠에 빠졌다. 언뜻 온유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잘자.’


***

깊이

깊이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나는 나의 검은 심연으로 깊숙이 헤엄쳐 들어갔다. 나의 아파트 단지에는 벚꽃이 한가득 쏟아지고 있었고, 우리는 그 벚꽃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에 있었다. 그녀는 편안한 표정으로 내 무릎에 뺨을 부비고 있었다. 나의 손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토닥토닥... 내 심장고동 소리에 맞춰서 토닥이고 있었다.


“두렵지 않아?”


오은이가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두려워. 겁나”


나는 너무나도 솔직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

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사랑해. 그 외엔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아, 기억난다. 이건 그때의 기억이다. 처음으로 그녀와 정식으로 연인이 되었던 그 날. 그 누구도 사귀자느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맞닿아있는 우리의 몸이 뜨거워짐이 언약처럼 우리를 묶어놓고 있었다. 그 봄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완벽해서 잔인한 무언가를 덮고 있는 듯한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 깊이

더 깊이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만 같은 심연의 끝으로 더 깊이...

우리의 모습은 사라지고 침대가 나타난다. 누군가 누워있고,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합니다.”


나는 그렇게 그에게 끊임없이 사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벌벌 떨리는 손 등 위로 눈물인지 땀일지 모를 액체가 끊임없이 떨어졌다. 떨리는 어깨와 움츠러든 등은 나의 죄의 무게를 말해주고 있었다.


침대도, 벤치도, 벚꽃도... 차례차례 사라진다. 모든 게 사라진다. 무만이 존재하는 공간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아래도, 위도 좌우도 알 수 없는 곳. 아무리 걸어도 어디로 이어지는 지 모를 공간들만 가득했다.


아무도 없다.


정적과 이 하얀 공간이 눈사태처럼 나를 덮쳐와 덜컥 겁이 난다. 차라리 칠흙 같은 어둠이 나을 듯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 ‘무’의 상태를 메우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라도, 어떤 소리라도 들려왔으면 했다. 아무 생각없이 떠오르는 말들을 질러내기 시작했다.


“난 오은이를 사랑했어!”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말이었다. 역시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서 낙담할 때 즘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넌 김오은을 원망했어.”


먼 공간 너머에서 어렴풋이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점점 가까워져 온다. 그 남자는 나였다.


“아니야. 난 한 번도 오은이를 원망한 적이 없어.”


내가 말하면서도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또 다른 내가 그런 나의 심정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피식 비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아닐걸? 난 너라서 잘 알아. 그녀는 너한테 잔인했어.”

“아니야, 그녀는 나한테 항상 친절한 사람이었어!”


나는 필사적으로 뭔가를 숨기려는 사람처럼 발끈했다. 또 다른 나는 내가 숨기려는 모든 것을 파해칠 생각인지 계속해서 나를 자극한다.


“친절? 너는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지? 분명 그녀도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도 그녀는 널 선택하지 않았어.”

“그건.... 선택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녀는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거야.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거였고... 난 그것에 대해 전혀 서운함을 느끼지 않아. 그녀는 누구 하나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평등하게 대했어.”


또 다른 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 같은 표정을 짓는다.


“포기 할 수 없었다라.... 너는 그녀를 위해 뭘 포기했는지 잊었어? 네가 세상의 이목을 다 무시하고 그녀를 선택했을 때, 넌 엄청난 걸 포기 한 거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13살 연상의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고운 시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말도 못하게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이면 그런 마음 고생들이 녹아내렸다. 그 시간들이 그저 희생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시간동안 많이 고독하기도 했지만 아주 잠깐일지라도 행복하기도 했으니까.


“포기한 만큼 얻는 것도 있었어.”

“맞아, 그 말대로지. 포기 하면 얻는 것이 있어. 그런 측면에서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김오은은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거야.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건 그런 의미지. 두 쪽 다 포기 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건 착한 게 아니야. 그건 그냥 잔인한 거지. 그녀는 그저 둘 중에 하나를 버릴 용기가 없었을 뿐이야.”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또 다른 나가 나에게 다시 한 번 물어왔다.


“정말로 그녀가 그 사람과 너를 똑같이 대한 것이 괜찮았어?”

“아니...”


또 다른 나가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면서 다시 물어보았다.


“사실 널 선택해주기를 바랐지?”

“그녀가 날 선택해주기를 바랐어. 날 위해... 살아주길 바랐어.”

“그 사람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람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도 모르는 새에 눈물 한 방울이 뚝하고 흘러내렸다. 내가 숨기고 있던 마음의 파편이 내가슴을 찔러들어왔다. 그녀가 날 선택해주길 바랐다. 날 위해 살아주길 바랐다.

그녀가 나만의 여자이길 바랐다.


또 다른 나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런데 나에게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잘 아는 모습으로. 개나리처럼 노란 머리를 한 그 여자의 모습으로. 그리곤 내 머리에 손을 얹고 토닥토닥 쓰다듬는다.


“버리는 용기... 이제 너에게도 그게 필요한 때야.”


그녀가 어느새 그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귓속말로 그렇게 말했다. 분명 온유가 맞는데, 평소의 그 천진난만함은 없어졌다. 이브에게 선악과를 권하던 뱀의 말처럼 달콤하고 유혹적이다.


“이제 그녀를 잊어야지.”



그녀가 주는 열매를 받아먹으면 그녀를 잊게 될까. 내가 정말 그녀를 잊어도 될까.


“아니면 내가 대신 해줄까?”


그녀의 손이 내 이마를 가볍게 쓸고 내려가 내 콧잔등을 건드리고 부드럽게 내 뺨을 감싼다.


“네가 그녀를 대신해서 선택을 해주던 그 날 밤처럼... 내가 대신해줄까?”

“그 날 밤?”


나는 놀라서 황급하게 말했다. 그녀가 천진난만하게 웃는데 그 웃음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두 손이 내 머리를 감싼다. 그녀와 나의 이마가 맞닿고 그녀의 눈이 나를 지긋이 응시한다.


“응. 그 날 밤 네가 한 것처럼.”

“그건, 내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야. 그건 오은이가 괴로워하니까, 그녀를 위해서 내가 대신한 거야.”


더러운 송충이를 한 웅큼씩 뱉아내는 것처럼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온유는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 만으로도 나는 무언의 질책을 느낀다. 온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만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끝까지 넌 피해자인 척만 하는 구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어. 그건 그냥... 그런 운명 같은 거였어.”


온유는 한숨을 쉬더니 나에게서 멀어져 다시 알 수 없는 저 공간 너머로 걸어간다. 문득 또 다시 이 ‘무’ 속에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져서 멀어지는 그녀의 뒷통수에 대고 나는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디가! 돌아와!”


그녀가 잠시 돌아본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는 나를 경멸과 약간의 연민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나를 받아들이지 않다면 계속 나를 보게 될 거니까 걱정 마.”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그녀는 공간 속으로 스미듯이 사라졌다.


“도대체 너 누구야!”


울화통이 치밀어 그 공허한 공간이 쩌렁 쩌렁 울릴 만큼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어슴푸레 환청일지도 모를 미풍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야.”


****

그렇게 꿈에서 깨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온유를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분명히 아직 그의 머리에는 그녀의 감각이 남아있건만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비몽사몽한 정신에 화장실로 직행해 찬 물을 얼굴에 끼얹다. 그제야 현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감이 깨어나기 시작하자 몸에 스미는 습기와 비릿한 비 냄새가 나를 덮쳐왔다. 내가 기절하듯이 잠든 사이에 세찬 봄비가 내린 모양이었다. 나는 베란다 가까이로 가서 베란다 창에 옹기종기 맺혀있는 물방울을 보았다. 그러다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바깥에는 활짝 핀 벚꽃잎들이 비에 젖어 땅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사람들의 발에 밟힌 꽃잎들은 분홍빛을 잃고 누렇게 바래지고 있었다. 참 평범한 광경이었다. 항상 그러하듯이 누군가의 사라짐이 세상에는 그다지 큰 의미가 되지 않았다. 그 평범하고 바뀌지 않는 일상이 나에게 오은이를 잊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불쾌해져서 다시 제대로 씼기 위해서 화장실로 갔다.


나는 몸단장을 다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현관을 나섰다. 나의 발길이 닿은 현관문 앞에는 평소와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철커덕...나의 등 뒤에서는 문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없네.”


나는 멍하니 발밑을 바라보다가 이내 바보같이 짧게 중얼거렸다. 그동안의 작은 장난은 꿈이었다는 듯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서운함과 허전함이 밀려들었지만 배고픔이 그 감정들을 몰아냈고 나는 편의점을 가기위해 승강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치를 구경할 정신도, 여유도 없었다. 나는 편의점으로 연결된 외줄을 걷는 사람처럼 주변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직진했다. 그 때 편의점을 조금 지난 곳에 있는 벤치에서 젖은 벚꽃 잎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온유를 발견했다. 나는 멍하니 온유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벤치에 빗물 때문에 달라붙은 벚꽃 잎을 때어내 손에 담아 모으며 키득대고 있었다. 나는 오래 오래 그런 그녀의 천진난만한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대체 저 여자는 뭐하는 여자이길래, 이렇게 불쑥 불쑥 나타나서 나를 흔들어 놓는 걸까. 왜 나는 그녀에게 따라다니지 말라고 한 마디 조차 하지 않았나. 왜 나는 그녀를 거부 할 수 없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장난을 치고 있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벤치에 앉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자리가 나와 오은이가 앉아서 벚꽃을 구경하던 그 자리였다는 걸. 어느새 그녀와의 장소가 온유라는 존재로 덧칠 되고 있었다. 이제는 그것이 당연한 일 같기도 했다.


“뭐하는 거야?”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벚꽃을 줍는데 열중한다.


“왜 그런 쓸 때 없는 짓을 해?”


내가 다시 한 번 그녀를 향해 물었고 그제야 그녀가 고개를 들어 동그란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동문서답을 했다.


“단추.”

“뭐?”

“셔츠 단추 한 칸 씩 밀려 잠궜어.”


나는 내가 입은 셔츠를 바라보았다. 온유의 말대로 셔츠가 한 칸 씩 밀려서 잠겨 있었다. 온유가 내 쪽으로 와서 셔츠 단추를 한 칸 씩 톡 톡 풀어주었다.


“그 여자를 잊어. 밀려 잠근 단추처럼 처음부터 너와는 짝이 맞지 않은 절름발이였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나의 단추를 하나씩 하나씩 채워주는 것이었다. 나는 농락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한번 물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 그 벚꽃잎 왜 줍는 거냐고 물었어.”


나는 잡아먹을 듯이 그녀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녀는 내 화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또다시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지... 떨어져 버린 벚꽃잎을 줍는다고 벚꽃이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말야.”


그녀의 커다란 눈이 나를 계속 응시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나는 아무것도 다시 묻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나더니 벤치 위로 올라가 모았던 벚꽃잎을 훅하고 날려버린다. 분홍색 벚꽃잎이 때마침 불어온 봄 바람에 실려 두둥실 하늘 저 높이로 날아가 흩어진다.


“그냥... 다시 보고 싶어서. 빨리 져 버린 꽃일수록 더 아쉬운 법이니까. 당신도 그런 것 아니야?”


흩날려 가는 벚꽃 잎을 보니 장례식장 앞 벤치에서 온유를 처음 보던 그 순간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가 다 꿈인 것은 아닐까. 아니, 오은이가 죽은것도 아니야, 어쩌면 오은이를 만났던 그 순간부터 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 잔인한 4월의 시간이 있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평생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녀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줘야 했다. 그녀의 선택을 대신 할 자격이 나에게 있었을까. 그녀의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길 바랐을 뿐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의 시간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제 나의 시간도, 나의 세상도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이 세계는 나의 것이었을까? 이건 나의 시간이었을까?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띠로링~”


평소같으면 잠들어 있을 새벽, 아침 일찍 울린 문자 소리에 나는 잠이 깨고 말았다. 한껏 부은 얼굴로 문자를 확인했다.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각종 타이어 교체 센터, 헬스장, 언제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음식점까지. 나를 ‘고객님’이라고 부르면서 어찌 알았는지 내 생일을 축하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생일을 맞아서 돈 쓰라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는 오은이의 장례를 치뤘던 상조 회사도 있었다.


새벽공기는 우수에 찬 바다처럼 푸르고 서늘했다. 아직 빛이 세상을 밝히기 전의 이 몽롱한 푸른 여명이 나를 편안한 세계로 인도할 것만 같았다. 파란 바다에 하이얀 쪽배를 타고 멀리 멀리 나를 띄워 보내고 싶었다. 그럴 배짱도, 용기도 없었지만.


나는 일어난 김에 나갈 준비를 했다. 차라리 잘됐다. 아무도 없을 때 빨리 갔다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

에 대해서 끊임없이 설명해야 할테니까. 그리고 분명 그 설명이라는 게 남 듣기에 별로 썩 적합하게 들리지는 않을테니까.


휘적휘적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덜컹덜컹 흔들리는 버스에 온몸을 맡겼다. 나는 버스의 덜컹거림에 몸을 지탱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고 좌우로 아래로 흔들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기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가 묻혀있는 영락공원이었다.


이제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빛이 어슴푸레 그의 무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누가 다녀갔는지 무덤의 잔디는 잘 다듬어져 있었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개나리꽃이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의 무덤 앞에 나는 신문지를 깔고 비장하게 앉았다. 나는 가져온 소주를 따서 종이컵에 따라 그의 무덤 앞에 놓았다.


“마셔두세요. 맨 정신으로는 듣기 힘든 이야기 할 거니까.”


당연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참 슬프게 들렸다. 자기 의사를 밝힐 권리조차 박탈당한 가련한 영혼이 저어기 누워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 아내가 죽었습니다. 거기서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여기는 그 남자의 무덤이다.

오은이의 또 다른 남자. 오은이의 남편.


“미안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역시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새초롬한 새벽이 걷히고 그의 핏빛 절규가 베인 일출이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어떻게 내가 그녀를, 그를 잊을 수 있겠는가.

그들 사이에 끼어든 것은 나였는데.

내가 어떻게 혼자서 행복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데.


*****

김오은. 그 여자를 처음 본 것은 아파트 단지 앞이었다. 그때는 아파트 단지가 작은 소동으로 시끄러웠다. 누군가 화단 쪽에 길게 심어놓은 개나리 가지란 가지는 모조리 꺾어가는 통에 주민들이 이번 봄에는 개나리 구경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난히 잠을 뒤척이다 산책삼아 나온 새벽에 나는 그 ‘개나리 도둑’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까치발을 하고서 개나리 가지를 억세게 뚝뚝 꺾어 가지고 온 고운 포장지에 엮고 있었다. 그녀의 몸놀림은 예민하고 민첩했다. 박제된 동물처럼 무미건조한 그 표정은 절박하고 필사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여자가 개나리를 꺾어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다. 왜 그랬는지 그 때는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의 ‘미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새벽같이 일어나 30대 중반 아줌마가 개나리 꺾는 것을 훔쳐보는 미친 짓을 했던 것은 그 찰나의 순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를 옴팡지게 꺾어서 다발을 만들기를 그치면 신성한 의식처럼 그녀는 활짝 웃었다.


‘웃었다.’


그러면 나는 그 표정을 얼빠진 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뭔가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미소를 띄우는 모습을 보면 예쁘다기 보다도 경이로웠다. 말라있던 30대 아줌마는 그 순간만큼은 ‘여자’라는 이름의 꽃으로 피어났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나는 단단하게 얼어버린 겨울의 흙바닥을 뚫고 올라온 여린 새싹을 보는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지는 것이었다.


화단에 더 이상 꺾을 개나리가 남아있지 않게 될 때까지 나의 이 알 수 없는 관음증은 계속되었지만 우리 둘 사이에 그 이상의 교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직감적으로 서로를 알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그 여자도 분명 나를 알고 있었다. 낮 시간에 우연히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칠 때면 우리 둘 사이에는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분명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아는 척을 하기도 모르는 척 하기도 어색했다. 목례 정도 하는 같은 아파트 주민, 24살 대학생과 아마도 서른을 가볍게 넘겼을 것 같은 여자 사이의 관계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이상의 연결고리를 만들 생각조차 없었다. 그 해 봄이 지나고 나는 그녀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미루고 미루던 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해 병원 봉사를 갔을 때였다.


“아...”


그녀와 병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얼빠진 소리를 냈던 것 같다. 그 때도 인조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손에는 개나리 다발이 들려있었다.


“개나리... 좋아하시나보네요.”

“아... 아뇨, 제가 아니라 제 남편이 좋아하죠.”


내가 그 날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말을 건넨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용감한 짓이었지만, 가장 후회할 만한 짓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날 병원 앞 벤치에서 어두워질 때 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김오은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예전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생계 때문에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학원 선생이었고, 나이는 내 예상보다 2살 정도 많은 37살이었다. 지금 피고 있는 담배는 말보로이고 피운지는 1년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사실 이런 건 별로 내가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 분은 어디계세요?”

“아...”


왜 남편 분은 안보이세요, 남편 분은 어떤 분인가요, 개나리는 그 남편 분을 위해 꺾었던 건가요, 그 미소의 의미는 뭐였나요...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목례정도 하는 사이’에서 물을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였다. 오은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담배연기를 길게 뱉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남편이 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좀 많이 아프거든요.”


그녀의 남편은 3년 전부터 이 병원에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었다. 그에게 유일하게 살아있는 감각은 후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평소에 좋아하던 개나리를 매일 갈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해 봄에는 꽃 집에 유난히 개나리가 없어서 화단에 핀 개나리를 보고 급한 마음에 개나리 도둑질 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 분이 무척 소중하신가보네요.”


그녀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된 것 뿐이에요.”


그 웃음은 화단에서 보았던 웃음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희망의 뒷면은 항상 절망이었고, 기다림은 항상 실망의 그림자를 달고 다녔다. 내가 화단에서 본 것이 앞면이었다면, 내가 지금보고 있는 것은 뒷면이었다. 참 닮았지만 참 다른 웃음이었다. 그녀의 눈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희망, 기다림, 그 기다림 속의 지침, 불 확신, 실망 그리고 새로운 자극에 대한 열망. 그 우울한 소용돌이 속에 그녀의 손에 들린 담뱃불처럼 빠알간 열정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다 탄 담뱃재가 툭 하고 떨어졌다. 내 안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어졌다.


그녀와의 키스에서는 말보로 레드 맛이 났다.


내 손에는 그녀의 손에서 뺏어든 담배가 들려있었다. 독한 맛이었지만 그래서 더 손 놓을 수 없는 향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참 닮은 담배를 폈다. 그녀는 나를 당기지도 밀지도 않고 내가 이끄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 날은 밤 야경이 참 좋았고, 바람이 시원했고,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필요했다.


“앗, 뜨거!”


다 타들어간 담뱃불이 내 손에 닿았다. 그녀와 나의 입술이 떨어졌고 그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를 생각할 이성이 돌아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벤치에서 일어나 집을 향해 뛰어갔다. 도망가는 내 등 뒤로 그녀의 시선이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다음 봉사 시간에 내가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평소와 같이 나를 자연스럽게 대했다. 우리는 같이 병원 식당에서 밥을 사먹었고, 간단한 근황 토크를 했고, 가끔씩 그녀가 보고 싶은 영화를 같이 보러 가기도 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 사이면 이정도는 괜찮잖아, 하고 생각했지만 어딜 봐도 헛소리라는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때도 그녀는 날 밀지도, 당기지도 않고 ‘같은 아파트 주민’의 자리에 가만히 두었다.


병원 봉사 시간은 졸업을 위해 설정되어있는 30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40시간, 50시간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나는 그 병원을 계속 다녔다. 그 병원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환자들의 링거 바늘을 뽑고 다시 갈아준 뒤 피를 지혈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그녀의 남편의 방은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식물인간이라지만 그를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가 누워있는 병실 앞을 지나는 것 만으로 나는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렇게 시작한 마음이었건만, 이제 너무 먼 곳으로 와 있었다. 욕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화단에서 지었던 그 미소가 나의 것이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들끓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계절은 돌고 돌아 그녀를 만났던 봄이 돌아오고 있었고,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건축학도 였던 나는 졸업 작품으로 집을 설계했다. 그녀와 같이 살고 싶은 나의 꿈의 집. 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실. 그녀가 직접 끓인 된장찌개가 끓고 있을 주방. 그녀가 햐얀 빨래를 탁탁 털어 널 베란다. 그것을 다 완성했을 때 나는 공허하게 부서져갔다. 그 뒤 몇 일 간 병원을 나가지 않았다. 그녀에게서는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녀는 내 전화번호조차 모르니까.


“병신 새끼.”


졸업 전시 뒤풀이가 있던 날,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 놈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입이 있으나 말하지 못했고, 보고 있으나 못 본 척 해야 했고, 손이 있으나 잡지 못했다. 병신이 아니면 뭘까. 그날 나는 술에 취했고 유난히 빛나는 오렌지 빛 가로등을 따라 본능적으로 매일 향하던 병원으로 갔다. 나는 그 때 걱정이 없었다. ‘술에 취했다’라는 변명으로 무장한 상태였으니까.


저 멀리 병원 앞 벤치에 앉아있는 그녀가 보였다. 벤치 옆의 벚꽃은 검은 공기에 피어난 얼음 결정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를 기다렸던 것인지 그녀가 나를 보면서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취기는 올라가고 세상이 휘청휘청 거렸다. 그 웃음에 울화통이 치밀어 그녀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입을 맞추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큰 저항 없이 나를 받아들였다. 내 등을 감싸는 그녀의 따뜻한 손이 나를 토닥토닥 다독여주고 있었다. 1년 만에 그녀와의 키스는 따스하고 안정적이었다.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가지고 싶다.


“술 마셨어?”


그녀가 물었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술 취한 정신에도 손에 꼭 붙들고 있었던 설계도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그 설계도를 펴보더니 뜻밖의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집에서 너랑 살고 싶다, 오은아.”


그렇게 말하고 나는 응석을 부리는 어린애처럼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은 술 취한 내 얼굴보다도 더 붉었다. 그리고 이내 그 붉은 기운은 눈으로 옮겨갔다. 붉어진 그녀의 눈이 3년간 참았던 굵은 슬픔을 뚝뚝 흘렸다. 그녀의 눈물이 내 얼굴 위로 떨어졌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눈물을 훔쳤다. 그러자 그녀가 아기를 달래듯이 내 어깨를 토닥토닥하면서 물었다.


“두렵지 않아?”


나는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라는 말은 그녀는 그렇게 했다. 두렵다. 세상의 눈도, 보상을 바래서는 안 되는 나의 마음도. 그리고 항상 그를 향해 약간은 비스듬히 향해 있을 너의 마음도.


“두려워. 겁나.”


나의 솔직한 말에 그녀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사랑해. 그 말 외에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와 나의 살이 닿은 곳이 뜨거웠다. 그것이 언약처럼 우리를 묶어놓고 있었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많았다. 그의 남편이 저 병원 어딘가에서 여엿하게 살아있었고, 그녀는 그의 여자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병원 쪽에서 이제 더 이상 그가 가망이 없데. 그를 보내줘야 한데. 나 무서워...”


그녀는 어린 아이처럼 울음 터뜨렸다. 나는 그녀의 무릎에서 일어나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녀가 그와 나중에 확실히 나를 선택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함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그와 그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났던 것이다. 얼마나 어린 생각이었는지. 끼어든 것은 내 쪽이었는데. 그녀는 내 티셔츠가 흥건히 젖을 때까지 울고는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집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가, 가는 거 보고 들어갈게.”


서로를 보내기 아쉬운 사람들처럼, 무언가 할 일이 남은 사람들처럼 우리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들어가.”

“먼저가.”


서로 가라고 얘기하며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 가까이 갔다. 그녀의 어두운 문 앞, 늦은 저녁의 바람은 찐득 찐득하게 달라붙는 셔츠 속을 감질맛 나게 긁어주고 있었다. 뭔가 답답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았다.


“아...”


막상 잡은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악수....”


그렇게 얼간이처럼 말하면서 나는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오은이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웃었다. 그대가 웃으니까 나도 웃었다. 그 때 갑자기 그녀가 문을 열고 나의 손을 잡아당겼다. 무방비했던 내 몸이 그녀 쪽을 확 쏠렸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그녀의 아파트 안에 들어가 있었고 내 등 뒤에서는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하고 삼키고 말았다. 그날, 그녀의 방의 불은 평소보다 일찍 꺼졌다.

.

.

.

“얘 이름은 뭘로 할까?”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자신의 배를 만지면서 말했다.


“이 얘 이름은 뭘로 할까?”

“...”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어차피 축복 받지 못할 아이야, 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게 그녀가 원하는 답은 아닐 것 같아서.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쓸어 넘겨주자 그녀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잠들어가는 고양이처럼 눈을 감았다.


“계속해줘... 머리 쓸어주니까 잠 온다...”


그렇게 하염없이 잠든 오은을 보았다. 너는 알까. 차가운 바람이 계속 내 마음을 따라다니던 그 너무 춥던 그 봄 날 밤, 나는 잠든 너를 보며 밤새 울었다는 걸. 내가 너를 갖고 싶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도 너는 나를 사랑할까.


“이름을 ... 로 하자...”


그녀가 잠꼬대처럼 아기의 이름을 말한 것 같은데 소리가 작아서 못들은 것인지, 까먹은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아이가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할 것은 확실하다. 너는 그의 여자고 나는 항상 비스듬히 너를 숨어서 바라보아야 할 뿐이다.

나는 왜 혼자일 때보다 너와 함께 둘일 때가 더 외로운가.

.

.

.

그렇게 그녀를 재우고 나서 나는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해서 일어나 다시 병원을 향했다. 다시 찾은 병원은 너무나도 거대해 보였다. 나는 힘겹게 한발 한발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어떤 병실의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갔을 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어떤 사내가 보였다. 그는 마치 오래된 고인돌처럼 미동이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피해왔던 만남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그녀가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 그녀의 남편의 얼굴이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손을 꼭 붙들었다. 온 몸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몸이 덜덜덜 떨려왔다. 그리고 병실 바닥으로 눈물과 식은땀이 섞여 떨어졌다.


“당신의 여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나의 손이 그의 손을 놓았고, 내 손은 그의 산소 호흡기로 향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그녀의 선택을 대신 해줄 권리 따위는 없었으니까. 평생을 거쳐서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녀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 핏빛으로 물든 하늘이 파랗게 될 때까지 나는 그의 무덤 앞에서 뿌리를 내린 듯 떠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는 것 마저도 미안하게 느껴질 만큼 끔찍한 죄책감이 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울음을 집어삼켰다. 그런데 내 속에서 터져 나오지 못한 울음이 내 몸 속에 있는 산소란 산소를 전부 집어 삼킨 걸까? 평소라면 당연히 뱉어져야할 숨이 뱉어지지 않았다. 과호흡이였다. 5분 동안의 그 짧은 시간이 영원과 같았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은 그 잔인한 4월의 기억들을 견디며 받은 상처들을 건드렸다.  상처들 위에 간신히 어설프게 내려앉은 피딱지들이 뜯겨 나갔다. 그렇게 고통은 고통의 꼬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몸 안에 산소대신 상처들에서 철철 흘러나온 검붉은 피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혼자 상처를 끌어 앉고 애써 운명이 던진 돌에 맞은 피해자인 척 해왔던 시간들이 ‘죄송합니다.’ 그 사소한 말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언제 왔는지 내 등 뒤에서 온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자학한다고 그 사람은 널 용서해 주지 않아. 피해자인 척 굴지 마. 가해자는 결국 너 자신이었고, 네가 ‘운명’이라 부르던 것은 결국 네가 만들어 놓은 상황과 상황의 조합이 만든 결과 였을 뿐이야. 너는 그저 네가 나쁜 놈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것일 뿐이야.”

결국 나는 그의 무덤 앞에서 흉하게 구르면서 꺼억 꺼억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울걸 그랬나 싶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난 언젠가부터 자학을 그에 대한 그리고 그녀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아프지? 많이 괴로워?”

“크윽...커억... 괴...로워...”

“네가 죽인 그 사람도 그렇게 죽어갔을 거야.”

온유는 그렇게 잔인한 말을 하면서 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종이 봉지를 가져와서 내 입에 대 주었다.

“천천히 들이 마시고 내뱉어.”

“쓰읍....파아,.. 커억....”

“잘했어. 계속해. 조금씩 편해질거야.”

점점 호흡이 규칙적으로 변했다. 온 몸에 기운이 빠진 나는 그대로 잔디밭 위에 드러누웠다. 온유는 대자로 누운 나를 쪼그리고 앉아서 내려다보았다.

“나를 받아들여.”

“널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는데?”

“김오은을 잊게 되겠지. 그리고 점점 고통에도 무뎌질 거야. 방금 과호흡이 좋아진 것처럼.”

“.... 그다음엔?”

“그냥 살아가. 그러면 돼.”

나는 눈물을 참으려고 눈 주위를 꾹꾹 눌렀다. 하지만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설움이 온 몸을 들썩이게 하고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나의 온몸이 영혼이 대신 울고 있었다.

“난 못해. 난 그럴 자격이 없어. 그 뿐만 아니라 오은이까지 내가 죽인거야. 그가 보고 싶어서 따라 가버린 거야.”

“아니야. 그녀의 죽음은 너와 상관이 없어.”

“그녀는 결국 나보다 그를 택한 거야.”

가슴이 시큰 거렸다. 인정하기 싫어서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어쩌면 오은이는 내가 그를 죽인 것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이 모든 것이 나를 향한 오은이의 복수일지도 모른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날 사랑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을 파멸 시키면서 까지 나에게 복수를 할 만큼 날 증오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까지 해야 했을 만큼 그를 사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날 받아들여.”

그렇게 말하는 온유의 표정은 거의 울 것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안쓰러워 보이는 걸까.

“네가 뭔데. 도대체 네가 누군데.”

온유의 뺨에서 눈물 한방울이 툭 흐른다. 이 가엾고 멍청한 사람,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나는 너야. 네가 그렇게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오은이를 잊고 싶어 하는 자아’ 온유야.”

온유가 가만히 날 안아준다. 이때까지 나를 다그쳤던 그녀가 이제는 내게 애원을 하며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사람들은 간단하게 나를 ‘망각’이라고 불러.”

아, 온유가 망각이었구나. 내가 그리도... 두려워하던 망각.

“난... 네가 무서워.”

나는 그녀를 뿌리치고 뒤돌아서 걸어갔다. 오직 앞만 보고 걸어갔다. 울고 있을 온유를 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만 같아서.

“그녀는 널 사랑했어! 널 미워하지 않았어!”

영락공원 전체를 울리도록 크게 내지르는 온유의 목소리가 간절하게 갈라져있다. 감정이 메말라 버린 것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

.

.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묵직한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내 등 뒤에선 온유의 고양이 같은 발걸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어쩔 도리 없는 나를 이제는 그녀도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우편물을 한손에 몽땅 쥐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무너지듯이 소파에 누워버렸다.

‘날 받아들여.’

간절했던 온유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가 보였던 눈물이 나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정말로 온유를 받아들이면 편해지는 걸까. 내가 편해져도 되는 걸까.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해진다. 세금 계산표랑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면 좀 현실적인 감각을 찾게 될까. 지금의 나는 너무 감성적이다. 나는 아까 뽑아 온 우편물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그 때 우중충한 명세표 사이에서 분홍 빛 기다란 편지 봉투가 보였다.

“뭐지?”

아무생각 없이 뒷면으로 돌려 보낸이의 이름을 확인했을 때 나는 숨이 턱 막혔다.

‘38살의 김오은이 25번째 생일을 맞는 권수용을 축하하며.’

가늘면서도 섬세한 글씨, 그 글씨는 분명 오은의 글씨였다. 아마 그녀가 죽기 전에 미리 보내 놓은 편지가 이제야 도착한 듯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뜯었다. 툭하고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내방을 가득 매우는 것 같았다. 봉투 속에는 몇 번 접힌 긴 종이가 들어있었다. 이상하게도 눈에 참 익은 종이였다.

“아.”

그 종이를 펴 본 순간 나는 나도 모를 탄식과 함께 무덤에서부터 참고 있었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것은 예전에 내가 술 취한 상태로 오은이에게 주었던 집의 설계도였다. 밋밋한 평면도 였던 설계도는 오은이의 손길로 색이 입혀져 있었고 나와 그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캘리그라피 같은 분홍색 글씨로 각 방마다 글이 적혀 있었다.

‘너와 같이 멍청한 예능 프로를 보며 아무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거실.’

‘늦잠 자는 너를 두들겨 깨울 전쟁터 같은 침실.’

‘요리를 못하는 나를 위해 네가 대신 요리를 할 주방.’

그리고 작게 마련했던 방 안에는 여러 가지 모빌과 장난감들이 잔뜩 채워져 있고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노란색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온유가 새근새근 자고 있을 아가 방.’

설계도 사이에 검은 초음파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그녀의 자궁 속에 조그만 강낭콩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그 뒤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생일 선물이야. 우리 결혼하자.’

사람의 마음은 항상 지각을 한다.

사랑도, 설렘도 항상 나중에 배송되어 재고로 쌓인다. 버리기도, 그렇다고 가지고 있기도 애매한 그런 것들. 뒤늦게 도착한 그녀의 편지는 내 눈물에 젖어 눅눅해졌다.

*******

그 뒤로 나는 온유를 보지 못했다. 봄꽃이 문 앞에 배달되는 일도 없었고, 등 뒤에서 고양이 같은 발걸음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놓고 단추를 한 칸씩 밀려 잠그지도 않게 될 때 즘, 그러니까 그 해 겨울, 무슨 행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집 설계도로 저명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대상, 권수용.....”


단상 앞에 나가자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긴 연설과 함께 상장이 주어졌다. 그리고 빨간 장미가 함께 주어졌다. 그녀의 죽음과

아주 닮은 빨간색 장미. 그녀의 생일에 내가 전해주지 못했던 빨간 장미.


“수상자의 소감이 있겠습니다.”


호탕해 보이는 사회자는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멋대로 나를 무대위로 올렸다. 수상 소감으로 딱히 생각해 놓은 것은 없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 나온 한 마디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은 길게 이어졌다.


“이 집을 내가 사랑했던 여인에게 바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울컥 터져 나온 말은 나의 마음의 둑을 무너뜨린 것처럼 온갖 쓸 때 없는 말을 늘어놓게 했다.


“그녀가 못생겨서 좋았습니다. 그녀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마치 곱창처럼 약간 도톰한 입술이 섹시해 보여 좋았습니다.”


참관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많은 검은 군중 속에서 노오란 머리를 한 소녀가 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노란머리 소녀가 식장을 빠져나가는 문쪽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속눈썹이 짧은 것이 좋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장점으로 보일 만큼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진심어린 고백에 장내가 약간 잠잠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의 눈은 노란 머리 소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다. 소녀를 아직은 보낼 수 없었다.


“이번 4월에 그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뱃속에 있던 아이까지 함께 가지고 떠났습니다.”


장내가 물을 부은 듯이 조용하다. 문 쪽을 향해 걸어가던 소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나는 괜한 말을 했나 싶었지만 한번 터진 입은 말을 그칠 줄 몰랐다.


“한 번에 두 여인을 잃었네요.”


이런 말을 이렇게 덤덤하게 뱉을 수 있을 날이 올 지 몰랐다. 나는 시원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내가 없는 주방을 보면, 아기가 없는 아가 방을 보면 문득 문득 그녀들 생각이 날 것 같 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들을 잊기로 했습니다. 저 대신 저보다 더 행복한 가족들이 이 집에서 살아가길 바라면서 제 소감을 마치겠습니다.”


군중들의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검은 군중들 사이에서 노란 머리의 소녀가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황급하게 단상을 내려와 군중들을 헤치고 그녀를 쫓아갔다.


“온유야! 기다려, 아직 가지마!”


나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아무도 없는 호텔 로비 쪽 정문에 온유가 서있었다. 열린 문사이로 흰 눈이 소복이 쌓이고 눈송이가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다. 문득 그 눈송이가 온유를 처음 보게 되었던 봄 날의 벚꽃잎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온유가 뒤돌아 보았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가?”

“이제 가야지. 당신이 날 받아줬으니.”


온유가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티 없이 맑은 웃음에 가슴이 저려왔다. 그녀는 처음 그 봄에 왔을 때처럼 하늘하늘한 얇은 민소매 원피스에 맨발을 하고 있었다. 봄에는 몰랐었는데 이런 겨울에는 너무나도 추워보였다. 나는 종이가방에서 준비했던 것들을 꺼냈다.


“뭐... 하는 거야?”

“오은이가 입었던 옷들이야. 나머지는 다 태워버렸어.”


나는 긴 코트와 목도리를 그녀에게 둘러주었다.


“저기 앉아봐.”


온유는 아무런 대꾸 없이 고분고분 호텔 구석의 소파에 앉았다. 나는 그녀의 발에 오은이가 자주 신었던 어그 부츠를 신겨주었다.


“그녀의 마지막 유품인데 가지고 있지 그랬어.”


그렇게 말하는 온유의 목소리가 얇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발에 신겨진 어그 부츠만을 바라보면서 대꾸했다.


“이제,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들이야.”

 

똑똑... 내 손등위로 그녀의 눈물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 울먹이는 표정을 보았다가는 그녀를 보낼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생각해보니 온유 쪽에서는 나를 여러 번 안아주었지만 나는 온유를 안아준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망각이자, 또 다른 나이자,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내 딸. 온유.


“따뜻하게 입고 가서 따뜻한 곳으로 가길 바라.”

온유는 나에게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고 눈이 내리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은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먼지만큼 작아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

“권수용 씨 뭐하세요? 교수님이 한 번 뵙자고 하시는데요.”

행사 관계자가 황급하게 나와서 나를 불렀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나가셨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큰 일이라면 큰 일이고 작은 일이라면 작은 일이겠죠,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다시 행사장으로 이끌려 들어갔고 나의 설계도를 실제로 건축하고 싶다는 여러분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평범하게 웃고, 마시고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갔다. 언제나 그러하듯 누군가의 죽음이 세상에게는 큰 의미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온유가 말했던 것처럼 ‘그냥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조금은 용서 할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 이 정도라면 그냥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누가 들을까봐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직도 내 손에는 장미가 들려있다. 이 장미꽃 대신에 국화를 들고 그녀의 무덤을 찾아야 할 그날에도 내가 괜찮았으면 한다.

희미하게 온유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간다.

‘온유한 수용을 축하합니다.’

너와 만났던 4월의 순간 그건 아마도 ‘기적’이었을지도 몰라.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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