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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0 16:08

시지프스의 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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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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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지프 신화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신들은 시지프에게 끊임없이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올리는 형벌을 과하였다. 그러나 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로 말미암아 다시 산꼭대기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이었다. 무익하고도 희망없는 일보다도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신들이 생각한 것은 일리있는 것이었다.”

 

  후두둑, 후두둑, 가을걷이가 끝난 후의 황량한 들판같은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복날을 예감한 개처럼 컹컹거렸다. 순식간에 소금밭의 뻘보다 암울한 구름이 복병처럼 하늘을 점령하고 올가미에 옭죄인 듯 답답하던 동네는 드디어 잠에서 깨어나 갑자기 활기에 휩싸였다.

  마루에 납작 엎드려 책에 박힌 글자를 빼내 곱씹다 지쳤음인지 명현은 슬그머니 책을 외면하고 사타구니에 손을 쑤셔 박은 채 몸을 웅크리며 눈꺼풀을 내려버렸다.

명현은 고개를 외로 돌려 실눈을 떠 마당의 멍석에 널린 말라비틀어져가는 고구마깡이며, 고추 등속을 흘깃 보다가 이내 봉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눈알이 빠질새라 질끈거리도록 눈을 꼭 감는다. 명현의 뚫린 귓구멍 속이 활짝 열리는가 싶더니 멀리서 파도가 몸살을 앓는 소리며 언덕빼기 돌담으로 둘러쳐진 마당 한 귀퉁이에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홍시될 감을 떨구지 않으려는 나무가 심하게 뻗대느라 지청구하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쏠려든다.

명현은 귀멀은 어머니가 예민해진 후각으로 노릇하게 익을 무렵 재빨리 뒤집는 자반 고등어인 양 몸을 뒤집으며 째진 눈을 치켜 떠 시끄러운 양철 지붕의 처마를 윽박지른다.

  “지랄, 오랄 때는 안 오고 ...”

  게릴라들의 쿠테타는 산신령 지팡이의 지지를 받는 절름발이 걸음의 아버지가 마당에 나타나기도 전에 공을 이루고 자취를 감출 것이다. 명현의 대응은 늘 어머니의 귀보다는 빠르고 아버지의 걸음보다는 느렸지만 이번만큼은 아버지의 지팡이도 맥을 못 출 것이었다. 명현은 씨익 웃으며 봉창문을 확 열었다. 게릴라들은 틀림없이 어머니의 머리채를 쥐어 흔들 것이고 그러면 어머니는 쫓겨 나와 마당에 널부러진 저 말라깽이들을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필사 항전할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메, 으째야쓰까이, 저 아까운 것들을...” 소리와 함께, 명현은 어느새 마루 기둥에 고개를 기댄 채, 느긋하게, 언젠가 흑백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의 명칭과는 영 딴판으로, 작열하는 햇살에 발이 탈까 두려워 영점일초 간격으로 왼발 오른발을 들었다 놓았다하는 사하라 사막의 도마뱀이 된 듯한 어머니가 마당에서 화들짝거리며, 초토화된 지 오래여서 다시는 원래의 싱싱한 고구마나 붉은 고추로는 돌아갈 가망이라고는 없는 말라깽이들과 씨름하는 모습을 풍경으로 바라보았다. 명현의 예상은 다행하게도 한 번도 빗나가질 않았다. 이번 역시 재주 넘은 곰을 대신하여 구전을 챙기는 왕서방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듣지 못하는 머저리는 말하지도 않는다.

  명현은 리모콘이 없어 귀찮게스리 직접 채널을 돌려야 하는 흑백 텔레비전이 또 짜증스러워 거북스럽게 인상을 찌푸리며 마당의 사태를 방관한 채, 억지로 언덕 아래로 난 꼬인 길들이며 아무렇게나 함부로 널려 짜깁기 해 논 듯 무질서하게 색칠된 마을의 지붕들이며 도배하듯 빙 둘러 때려 잡자! 공산당! 찢어죽이자! 김일성!’이라는 반공방첩 표어가 선명한 낡은 마을회관이며 토끼 눈이 된 마을 사람들이 너나없이 조심성 없게스리 며루치나 승냥이들처럼 날뛰고 널뛰는 꼬락서니들, 그 참말로 에미 맛도 애비 맛도 없는, 더욱이 멋대가리라고는 쥐뿔도 없는, 차라리 손가락으로 장을 지져 먹을지언정 끓여 먹을 재미라고는 죽어도 없는 광경들이 난무하는 채널을 지겹도록 재빨리 휘휘 돌렸다.

명현의 채널은 다시 멀리 바다 끝자락에 병풍처럼 둘러 선 섬들 너머의 동녘 하늘에 머물렀다가, 비바람에 눈물로 범벅된 모래밭을 서성이다가, 동쪽으로부터 빠르게 먹구름을 추격하는 흰구름을 따르다가 마을 한 복판에 자리잡은 용궁같은 기와집에 이르러 멈추었다. 명현의 집 뒤에 숨어있던 빗살들이 느닷없이 그리로 빗금치며 쏟아져 들어갔기 때문인지 눈이 부셨다. 어쩌면 명현의 눈 속 깊이, 동공에 암자를 짓고 숨어있던 눈깔사탕만한 광채들이 그리로 몰려가기를 한사코 고집한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명현의 동자가 우물우물 깊어져갔다. 거기, 바닷속보다 푸른, 거기에 명현의 어지러운 꿈이 샘 솟고 있었다.

  토끼는 거북이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거북이는 차라리 인어여서 영원히 바닷속을 유영하는 슬픈 운명을 짐 지는 숙명으로 남았어야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따위를 위안삼아 삼단같은 머릿결이나 다듬을 일이었고, 그도 아니면, 허리 아래에서 반짝이는 비늘이 떨어져 나와 뭍을 향해 바닷가로 밀려오지 않게 밀납으로 봉하는 일이나 했어야 옳았다.

  “젠장 맞을 것!”

  명현은 아슴아슴해지는 눈길을 거두었다. 양철 지붕에 쏟아졌던 게릴라들은 승전보를 알리려는 듯, 드럼을 쳐 대며 양철 지붕의 골골이 패인 홈으로 고랑져 내리느라 한동안 시끄럽게 드르륵거렸다. 자살 테러를 감행하여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려는 빗줄기는 마당가의 흙 알갱이를 신경질적으로 후벼 파더니, 어느덧 무혈입성이 싱거워졌는지 이제는 제법 차분해진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 허망하게, 속절없이 알알지며 스러져가는 오후의 습기 속으로 벼락을 예고하느라 비에 젖어 부들부들 떨리는 아버지의 산신령 지팡이가 이내, 느닷없이 나타났다. 명현은 스팩트럼 된 색깔들을 단숨에 추슬러야했기에 현기증으로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나 이미 한 대양을 삼켜 해일이 되고 모래무지까지 삼켜 배 부른 명현의 눈탱시는 자못 의기양양하여 호기로웠다. 토끼는 눈을 감고 나면 촘촘하게 직조된 철사망에 쫑긋 세운 귀가 잘릴까 두려워 한사코 눈꺼풀을 내리지 않은 까닭에 눈이 벌개졌다. 아니, 어쩌면, 특히 꼬리털을 포함하여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하다못해 똥구멍에까지라도 돋은, 수염보다 더 부드러운, 온몸을 뒤덮은 털들이 바람에 꺾여 온통 부러져서는 눈뿐만 아니라 통째로 발가벗겨져 왜소한 몸통이 탄로날까 염려스러워 차라리 눈이 빨개지는 편을 택했는지도 몰랐다. 냉큼 귀를 내리지 못하는 만용을 부렸으니, 눈알을 뽑든가, 간은 못 내놓을지언정 쓸모없는 털들일랑 싸그리 뽑아 하다못해 용왕의 목도리 하나라도 만들어주었으면 되었을 것이련만, 어리석은 토끼같으니라구.

  “이 오살헐 잡놈이 뭐 허느라 당아 자빠졌어. 싸게 소금밭에 안 나가 보고!”

  아니나다를까, ! 소리와 동시에 천둥치듯 불불거리는 고함에 불이 일어, 억지 죽비로 변신하여 한 치의 비끄러짐도 없이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절름발이 아버지의 분신, 어머니의 귓구멍이나 쑤셔 닫힌 귀나 열반해 주면 좋았을, 아버지의 유일한 도깨비 방망이에 명현은 오차없이 오늘도 억지 득도에 감개무량하였더랬다. 이럴 때 정수리 주변을 삐쭉거리며 희번덕거리는 시커먼 머리털들은 비굴하기 짝이 없어, 토끼 똥구멍에 난 털보다 더 무력하게 주눅이 들어, 방어진을 치기는커녕 부풀어 오르는 혹을 덮어주지도 못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그 불벼락 속에서 번뜩이는 정적이 다가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소리를 통째로 삼켜, 온 내장을 빠짐없이 달구며 내리닫아 위벽에서 소용돌이쳐 오르는 바람에 쓰리고 아려 나뒹굴며 소리치고 싶은 명현에게 들이닥친 망할 놈의 고요는 잔인하고 무도하였다. 그러나 어쩌랴, 소리없는 세상에서는 소리 내어 우는 것이야말로 아이 엠 쏘리인 것을. 정수리에 매달린 혹부리 영감은 정해진 수순대로 명현 금 내달리게 하였다. 비야, 삼백예순닷새가 넘도록 내려 소금인지 앙금인지에 초를 치거라. 매번 절규에게 혹을 떼이러 나서는 길은 눈을 감고도 훤하였다. 그 덕에 명현은 달리기를 밥 먹기보다 좋아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학교 운동회 때나 소풍 때 했던 백사장 달리기 대회에서 일등을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명현이 예상했던 그대로, 어김없이, 거기, 시묵섬에서는 대여섯 척의 배들이 물살에 들러붙어 철썩이는 파도와 화음을 맞추느라 분주하였다. 명현은 목까지 차오른 억눌린 소리를 팔고 새로운 소리를 사기 위해서 흥정을 해야 했으므로 서둘러 섬의 주인을 찾아야 했다. 물론 그 섬의 주인은 바위를 집어삼키고 절벽을 물어뜯어서라도 섬을 헤치우고야 말겠노라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려쌌는 파도 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명현은 악 소리를 치며 포효하였으나 언감생심이었더랬다. 세상 구석구석을 굽이굽이 돌며 안 삼킨 소리가 없을 바다는 명현의 소리쯤은 어머니의 말 수 만큼이나 부족한 것이었는지 여전히 목이 마른 듯, 포세이돈보다 사납게 울부짖었다. 하긴, 바다란 놈은 명현이 한 시간 여나 걸어다니는 읍내 중학교의 전체 학생과 선생님들을 합하고 거기에 무한대를 곱해도 답이 안 나올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그들은 천천히 물러날 것이었으므로 기다려야 했다. 불가항력의 철옹성 앞에서 명현은 절규를 불러 파도에 묻고 꺼억꺼억 곡을 한 뒤, 한숨을 불어내고는 곧장 지름길로 시선을 몰아 작살을 던졌다. 거기, 바다가, 조용히 품을 열어 비에 젖지 않았다. 비는 갑자기 명현의 울부짖음처럼 삽시간에 뚝 그쳤다.

  명현이 글자를 읽고 쓸 줄 알게 된 것은 국민학교 삼학년 때부터였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거대 군단을 일명 바다라고 이름 짓고 쓴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바다[바다]로 불린다는 사실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어머니는 명현이 자기의 뱃속에 들어앉기도 전부터 그 후로도 지금까지 낙지를 잡고, 소라를 따고, 굴을 따러 이 시묵섬을 둘러싼 바다밭을 찾았을 것이었고 앞으로도 쭈욱 여기를 찾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간혹 조개를 줍느라, 바위틈에 박힌 고동을 따느라 정신이 팔려 미쳐 밀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모르는 어느 때쯤에는 이 시묵섬에 올라와 방심한 눈과 물 때를 놓친 정신을 원망하며 썰물지도록 홀로 고요하였을 것이었다. 물의 군단이 펼치는 무궁무진한 전략과 전술 중에서도 매복과 기습 작전에는 특공대 실력 못지 않게 날쌔기로 소문난 명현도 몇 번이나 당해서 혼쭐이 난 터였다.

  물의 기습 작전은 발목이나 종아리에 스멀스멀 달라붙는 물거품으로부터 시작된다. 국어 시간엔가 사회 시간에 미의 여신으로 불리는 비너스가 하필이면 하고 많은 것들 중에 물거품에서 탄생했다는 말을 듣고는 기겁을 했더랬다. 바다란 놈은 틀림없이 용왕 뺨 치는 힘을 갖고 있을 거라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더랬다. 그렇지 않고서라면 그 많은 물방울을 하나로 모았다가 흐트렸다가 숨겼다가 내놓았다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 놈은 푸르기나 검기 말고는 가진 재주가 없어 늘 그 모양 그대로 굽은 채, 기껏 구름이나 흘려보낼 뿐, 가끔 존재감이 없을 양이면 천둥이나 번개나 벼락 따위들로나 무력한 위협이나 해쌌는 하늘과는 달리 천지 조화를 어찌 다 거머쥘 수 있을 거냐고, 그러니 물거품으로 비너스도 만들고 한 대양의 물을 마시고도 기갈로 숨넘어간다는 신 따위는 너끈히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낚시대를 드리운 화창한 어느 날들에는 까닭없이 실실 웃으며 비굴하게 굴비라도 낚여 오르기를 바랐더랬다. 더 과학적으로 따져볼작시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명현이 자신은 틀림없이 바다가 오류를 범해 낳은 자식일 것이라고 종주먹을 들이대며 골을 내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더랬다. 옛말에 고기는 씹어야, 님은 품어야, 말은 해야 맛이라 했거늘 과학은 심장을 꺼내 현미경으로도 안 보이는 것일지라도 하다 못해 혜안이라도 만들어 심장에 박힌 마음의 구성 성분을 호르몬으로라도 인쇄해내야 맛인 것 아니겠느냐고 원망을 질료 삼아 분석해보기도 했더랬다.

  햇볕이 강렬해질수록 소금 알갱이는 순도 백퍼센트의 희디 흰 육각의 결정체를 이루며 짠 맛 끝에 단 맛으로 단련되어 가며 소금창고의 널빤지가 검을수록 소금 알갱이는 그 밝은 햇살을 품은 채 세상의 고름을 짜내고 부패를 막아내는 동의보감으로 인구에 회자되어질 수 있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대대로 소금밭에 목숨 줄을 댄 소금쟁이로 절어 살았다. 어려서부터 짠 소금물에 발을 담군 탓에 머슴 주제에 세상은 너무 싱거웠고, 햇볕이 좋아 증발한 돈은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쓸수록 투명하게 종적을 감추어 갈 뿐이었다. 그럼에도 배운 도둑질 탓에 그것이 만용인 줄도 모른 채, 배추밭에 소금을 뿌려서라도 세상을 천일염으로 가득 찬 소금창고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가당치도 않을, 돼지 멱이나 따면 좋았을 궁리밖에 할 줄 모르는 위인으로 살아 왔다 했다. 그러다보니 된장, 간장, 고추장에 섞어서는 안 될 불순물인 제길헐로 범벅을 만들기 일쑤였고, ‘이나 으로 젠장을 버무려 젓갈을 만드느라 날로 달로 쓰디 쓰게 곰삭아지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비극은 소금에 목말라했으나 소금일 수 없는 데 있었다. 아버지가 소금으로 심장을 절였기에 세상이 어두워졌는지, 세상이 어두워졌기에 아버지가 소금으로 심장을 절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아버지의 안팎에서는 헤일 수 없는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어둠 알갱이들이 싸그락싸그락, 절그럭절그럭거렸다는 것이었다. 그렇기로서니 누구에게나 닭 모가지라도 비틀어서 맞이하고픈 푸른 새벽은 있게 마련이었고 곰팡이를 피워 올리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루한 장마의 틈바구니를 찾아 찢어발겨서라도 한줄기 햇살을 들이고픈 한낮은 있어야 했다. 더욱이 그 때의 아버지는 삼손의 머리털보다 막강한 젊음이 피를 토하고 거꾸러질 데를 찾고 있었으니 그깟 어슴프레한 여명을 새끼발가락으로 휘저어 당장 아침을 잡아 주리를 틀고도 남았을 것이며, 그깟 지리멸렬한 장마를 눈빛 한방으로 건조시켜 그 즉시 푸른 하늘을 끄집어 내리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자신도 있노라고 호기로웠을 것이었다.

  그러한 탓으로 아버지는 육이오의 모가지를 비틀어 새벽을 악수하고 인민군 대장의 깃발을 심장에 꽂았다. 비에 젖지 않는 바다와는 달리 이무기는 비에 젖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었다. 허나 때가 가물어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데 필요한 비는 끝내 내리지 않았다. 무릇, 인내심이 없어 성마른 아수라 백작이 천지분간을 못하고 날뛰며 수리수리 마하수리를 주문하고, 변신의 지팡이를 휘둘러 선무당이 되고, 걸판진 굿을 어벌쩍하게 벌인답시고 작두날을 타다 보면 발이 잘리기가 다반사일 것은 물론이요, 행여 바람 난 여편네가 당한 망신살을 막아주겠다고 액막이살이라도 던질 양이면 액막이는 커녕 망신살이 촉을 돌려 부메랑으로 날아와 양 미간에 박힐 것임은 소금보다 훤한 이치일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가지까지 댕강 잘리기 전에, 무엇보다도 양 미간은 물론 골통을 빠개버릴지도 모르는 망신살을 피하려면 삼십육계 중 상책은 마지막 계책인 줄행랑을 놓는 것임을 동서와 고금에 불변하는 진리를 추구하는 소금들이 양지바른 곳에 모여 앉았다하면 항용하는 말이었다.

아버지의 깃발은 공시적으로는 옆으로밖에 기어다닐 줄 모르는 게들이 파 놓은 모래 구덩이에 묻혀 횡대할 뻔하였고, 통시적으로는 뒷걸음질밖에 칠 줄 모르는 광대가 내걸어놓은 백일천하로 수직 하강하여 종대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공통의 십자가의 교차점을 막 지나려는 순간, 그 언저리 어드메 쯤에서 불쌍한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구세주 예수가 십자가를 쥐고 나미아미타불 관세음보살로 손을 합장한 채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기다렸던 탓에 아버지는 다리 하나 잃고 구사(求死)되어 불행으로 일생(一生)하였다.

  물에 빠진 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아버지에게 내밀어진 십자가를 쥔 여래의 손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것이었다. 물에서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 놓으라며 꼴값을 떤다는 말마따나,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임에 틀림없는, 나중에 아버지가 속임수에 놀아났다고, 얼토당토않게, 툭 하면 터트리는 그 지랄맞은 분통의 불씨는 군인의 총에 날아간 왼쪽 다리 허벅지에 박혀있었던지, 날씨가 궂을라치면, 심지어 바람 없는 날조차도 씨를 불어 사방으로 불똥을 튀기며 활화산처럼 솟아 올라 식을 줄을 몰랐다.

  내 탓을 모르는 아버지의 뻔뻔함은 물레를 돌려 소금을 만드느라 국민학교 근처에도 못 가 본 까닭이라기에는 지나쳤다. 어쩌면 동네에 절이나 성당 대신 예배당이 자리잡은 탓이었을지도 몰랐다. 아버지께 성당의 신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이방인이었고, 자비를 구하러 절에 찾아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변함없이 아버지는 여편네도 아닌 것이 볼썽사납게 치마나 치렁치렁 끌고 다니며 남자 망신은 다 시킨다고, 저런 것들은 불알을 떼버려야 한다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교황이나 신부님께 소금을 바가지째 뿌릴 기세였고, 어쩌다 시주승이 탁발을 오면 없는 대문을 걸어잠글 수 없는 것이 한인지, 봉창문을 꼭꼭 닫으며 우리 집구석은 당장 먹고 죽을 좁쌀 한 톨 없노라며, 중이 거지같이 구걸이나 하러 다니냐며, 자비가 넘치믄 밥 안 먹어도 배부르지 않느냐는 둥, 오래 계속되는 목탁 소리에 맞춰 목청을 높였다. 어머니가 내어주는 얼마 안 되는 곡식이며, 소금 등속이 아까워서였을 것이었다. 딱 한 번, 명현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축원을 해 준 스님께 어머니가 제법 두둑하게 건넨 곡식과 돈을 모른 척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절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고,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목사가 사는 예배당조차도 고무신 운운하며 가지 않았음은 물론이며, 행여 어머니나 명현이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내 주먹을 믿으라며 눈을 부라렸다. 교회당 종소리보다 먼저 일어나면서도 종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새벽부터 잠도 못 자게 지랄한다고 성을 내고 그 젊은 목사 놈이 동네 물을 다 흐려 놓고, 조상을 모시는 신성한 제사를 지내지 말라니, 그런 정신 빠진 소리가 어디 있냐며, 그러니 여편네들이 하늘같은 남편 알기를 똥 친 막대기로 아는 것 아니냐며 말없는 하느님을 구박하였다.

  아버지의 믿음은 언제나 의심이 많고 믿음의 대상이 모호한 데다 엉뚱하여 신통력을 갖지 못한 탓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꼭 어그러지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세상에 믿을 것 하나 없다는 굳은 믿음 하나를 거머쥐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공염불을 교리 삼아 사이비 교주가 되었더라면 아수라 백작 부럽지 않을 권세라도 누렸을 것이었거늘, 어려서부터 고달픈 삶을 좀 풀어본답시고 꽹과리깨나 두들겼다고는 하나, 그래서 그 삶이 덜 고달퍼지는 것은 아니었던지, 풍악을 울려도 슬픔은 풀리지 않아, 고달픔만 곱으로, 아니 기하급수로 커져만 갔던 모양이었으니, 그 쇳가락의 무거움이 극에 달아 마루 밑에 오뉴월의 팔자로 누워 있는 개의 심기마저도 불편하게 하여 개를 끙앓거리게 했다. 풍악으로 온 세상을 흥으로 넘쳐나게는 못할지언정, 하다못해 집 안마당의 감나무라도 신명으로 어깨춤을 덩실덩실 흔들어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그 신명으로 제 풀에 감이 빨갛게 익어가게 했어야지, 세상 만물이 그 소리에 절어 감기나 관절염이나 풍에 걸려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그 대단치도 않은 악기 연주 솜씨로는, 바람난 마누라를 잡아 족치고 싶어 슬퍼서라도 감동을 줄 리라를 무기 삼아 살아있는 주제에 저승길 문턱을 넘어보겠다고 나선 오르페우스까지는 아니라도, 아버지의 연주 솜씨는 황폐함으로 가을 낙엽으로 쌓이고 마르고 저물어 갈 따름이었으니, 그러한 지지리 궁상으로는 저승의 왕 하데슨 물론, 지하 세계의 문지기 개인 케르베로스의 새끼발가락에 낀 먼지 한 톨 못 움직일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필연적으로 악연이었을 것이 분명한 의심만 많은 오르페우스 흉내를 내어설랑 에우리뒤케를 두 번이나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영원토록 복수할 기회마저 잃어버렸던,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깨소금 맛일 것이 분명한, 쌤통이라고 침이라도 퉤 뱉어주었을 소금 기둥으로 삶을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렇걸랑, 두 손 번쩍 들고 백치 수준의 꼬라지를 항복하고 그 놈의 꽹과리와 함께 이글거리는 불구덩이에 걸어 들어가 보시나 하였던들, 맑은 소리로 온 세상을 깨우치는 종까지는 아니라도 그 못된 소리에 심기가 불편했던 마루 밑 개에게라도 인육을 먹일 수 있었을 것이었고, 몸뚱아리가 결코 기름지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 재라도 감나무 밑에 뿌리면 밤낮으로 치를 떠느라 한 번도 평안한 적 없었던 감나무 잎사귀라도 푸르게 할 것이었다. 아니면, 서당개도 삼 년만에 풍월을 읊는다더라고 불철주야, 그 놈의 쇳덩어리가 항복을 하여 득음 한 토막이라도 뱉어 낼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어루달래 그 안팎을 성찰하고 가부좌라도 틀었어야 할 것이었다.

  아버지의 삶은 일관하여 가령, 흥부전으로 치면 놀부의 제비 다리 부러뜨리기이거나, 혹부리 영감으로 치면 도깨비한테 자신의 혹을 주려다 죽도록 쳐 맞고 혹이나 하나 더 달아매기라거나 하는 쪽으로만 흘렀다. 엉덩이에 뿔난 못 된 송아지는 황소가 되어서도 뿔이 취소되지 않았고, 뿔이 똥구멍을 찔러 땀도 못 낼 지경이 되어 개도 안 먹을 똥도 못 싸는 바람에 똥 마려운 개 새끼, 지랄 발광을 하며 싸돌아다니다가 잘코사니로 돌부리에 채여 불알을 떼이고도, 그 꼽슬하기까지 한 터럭들까지도 똥으로 물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죽어 자빠지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그 놈의 개 새끼, 내버려 둘 것이지, 처자의 그 고운 손을 자선 남비를 앞에 두고 사랑을 파는 구세군의 꽁꽁 언 손이라도 잡아주었더라면 그 당장 소돔과 고모라는 눈꽃으로 뒤덮여 소금소금 푸근해졌을 것이며, 엄동설한에 우담바라꽃이 피어 세상이 훈훈한 봄바람이었을 것이었다. 뭐 말라비틀어질 참견으로다가, 그 처자는 금지옥엽, 삼단같이 부드러운 섬섬옥수로 그 개 새끼의 아가리를 닥쳐보겠다고 덥썩 넣어설랑은 화를 자초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처자는 그랬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한숨과 눈물 바람과 진저리를 섞어 띄엄띄엄, 설렁설렁 말하는 바람에, 예배당의 방언도 아니면서 시보다 어려워 자세한 기억은 아니라도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중에서도 수사반장이라든, ‘형사라든, 추리물이라면 밥은 굶어도 보았으며, 지금도 책이라면 홀딱 벗은 미끈하게 빠진 여자들로 도배된 잡지는 한 눈으로 보아 넘길지라도 명탐정 홈즈와 괴도 루팡 이야기는 두 눈알을 다 뽑아서라도 보고야마는 추리력을 발동시켜 볼작시면, 봄 바람이 치마 말기를 걷어 올리고 그믐으로 저물어 갈 초생달이 동산 언덕을 슬프디 슬프게 오르던 어느 저녁, 목 넘김도 수월한 육질 좋은 소갈비를 실컷 뜯어 먹고, 소화라도 시킬 양으로 산책이나 나왔는지, 아니면, 심심해진 선녀가 재미삼아 소금으로 양치질을 해 볼까 해서 내려왔다가 봄바람이 하 부드러워 심호흡이라도 할까 해서 옷고름을 풀어헤치다 내친 김에 별빛 곱게 쏟아지는 바닷물에 멱을 감는 것은 아니라도 발이라도 담그려고, 나무꾼의 응큼한 속내를 알 리 없어, 하늘도 덮고 남을 오지랖도 넓은 선녀 옷을, 하늘하늘 벗어 두고 마악 새끼발가락으로 물을 간지럽히려는 순간, 아이고 맙소사, 달나라를 여행할 때 보았던 떡방아를 찧는 뿔난 옥토끼보다 더 기가 막히고 코가 먹히고 눈이 간지럽기도 모자라 심지어 털구멍까지도 막힐 희한 뻑쩍지근한 광경에 하늘에 구멍이 나게 쭈뼛 세워진 귀를 묶이고 뒤집힌 입에 재갈이 물렸던 것이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독일 속담을 몰랐던, 그 처자, 그만, 벌거벗은 채로, 어디에 무엇으로 쓰는 물건인지 요모조모 살펴서 기네스북에라도 올릴 심산으로, 살금살금 다가간 것이었다. 어쩌면, 그저 뿔이라도 힘써 뽑아 방구라도 뀌면 뱃속이 편해질 뿐만 아니라, 저 수컷의 불알을 조물락거려 양기도 쐬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되겠다 싶어 야금야금 다가섰는지 어쨌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그 처자, 안성맞춤으로 비탈진 코를 벌름거려 평수를 넓히다 두 손으로 쥐어 싸는 것과 동시에, 태양 신 아폴론과 키스한 입술로 심장의 요동을 덮어 단숨, 단박으로 멈추게 하는 것과 동시에, 서시만큼이나 둥그스름한 이마에 주름살을 긋는 것과 동시에, 양미간을 찡그리는 것과 동시에, 순하디 순한 소 눈에 호수가 강물 되어 흐르는 것과 동시에, 뒤돌아 서서 도망가려다 그만, 그 처자, 그 수컷 놈이 불쌍해서, 하도 안되었길래, 그러다 그 처자, 목불인견인지라,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는 그, 똥개 새끼 쪽으로 허리까지 굽히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맙소사, 맙소사, 제발, 손이 발이 되게 빌어서라도 맙소사, 피를 뚝뚝 흘리며 긁어대는, 그 차마 못 볼 터럭들이 불쌍해서, 가려운 곳이 어디냐고 묻고는 답을 들으려고 손을 소라 고동으로 해서 그 개 놈의 턱쪼가리에 갔다 대었더니, 그 개 새끼, 은혜를 웬수로 갚는 까마귀도 아닌 그 요물, 그 처자의 귀가 죽은 자도 살려낸다는 화타가 약숫물로 제조한 변비약인 줄 알았는지, 아니면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인데다 둥그렇기가 보름달만한 그 처자의 귓볼을, 돌부리에 채여 떨어져나갔으나, 가려움이 송충이로 스멀거려 미처 줍지 못한, 떨어져 나간 지놈의 불알로 착각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단단한 데다가 뾰족하기까지 한 송곳니로도 모자라 똥구멍을 찌르는 뿔도 네 발굽으로 뽑아서 그 처자의 귀때기를 무자비하게 물어뜯어 가져가 버리더니, 그 썪을 놈이, 염병, 삼복에 땀도 못낼, 히말라야를 헤매는 굶주린 하이에나도 고개를 내두를, 그 잡것이, 천 년 묵은 여우가 윗목에 서리서리 사려 두었다가 만 년 넘게 묵히고도 잘못 발효되는 통에 세상을 마구리로 들끓게 했던 한보다 비루하고, 그 마구리가 싸갈긴 오줌에, 매독에 걸리고도 갈보짓을 그만두지 못하는 창녀가 독주를 퍼마시고 내지른 오줌을 섞어 만들어낸 엑기스보다도 농염한 오줌발을, 그 오살 육실헐 놈이,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처먹었는지, 그 처자의 귀에다 그 오물을 솔래솔래 오대양 육대주로 갈겨대며 그악을 떠는 바람에 그만, 그 처자를 여편네로 둔갑시키고 그것도 부족했음인지 미로스가 만든 미궁보다 깊은 나락으로 그 처자를 떨어뜨렸음은 물론 용궁까지도 어둠으로 귀멀어 갔으며, 구린내가 염라국까지 진동을 하며 퍼져나갔다.

  그 무렵에, 때마침 불어닥친 시베리아 마작 노름에 대갓집 판정승은 벼슬이라도 있지, 빛 좋은 개살구여서 개도 안 물어갈 용왕의 관 따위는 소용되는 데가 없어, 안 마당은 물론 안방 마님까지 보쌈으로 넘기고, 혼이 뉘엿뉘엿 넘어가느라, 깔딱깔딱 숨이 넘어가느라, 해갈든 용왕에게는 구정물이 명약이라 들이켤 판에, 그 잘 난 여덟이나 되는 언니들을 대신하여, 지 에비를 살리는 일이라면 삼수갑산을 마다 않고 길 떠날 채비로 분주해진 바라데기가 주워온, 불알 두 쪽은 니밀헐, 동산 가운데 번드름하여, 독사의 혀보다 부드럽고 선악과보다 달콤하여,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였으므로 꼴깍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눈 먼 소녀가 잘못 꾼 꿈이었을, 미친 바람을 눈동자에 모두어 뽑아 낼 줄 아는, 영리한 화가였던지, 붓 질 한 번에 화룡점정하여 시종을 자초하였더랬다. 거래는 훌륭하게 성사되는 듯 했으나, 눈을 떠보겠다고 공양미에 딸을 팔아치운 뻔뻔한 심봉사 놈에게나, 볼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밖에 없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될 처자를 얻느라, 다리를 절며 짜게 모아놓은 알토란보다 미끈한 소금 가마니를 시주미로 넘긴 아버지에게나 밑진 거래였던 모양이어서, 양다리 걸친 바리데기 심청이만 사지를 찢어발기는 고통에 시달리느라 죽살이를 쳐 댔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릴랑은 이빨이나 쑤실 전봇대로나 써야 했기에, 그 후로도 오래도록, 그 처자, 여편네가 되어 아들이라고 시원찮은 것 하나 얻었으니, 그 천지분간도 못하는 쭉정이는 그 처자를 나락보다 캄캄한 미궁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게 할 깃털 하나만큼의 위안도 되지 못했으니, 그 처자, 언젠가부터 어처구니없는 솥뚜껑은 뒤집어 돼지 삼겹살이라도 구워먹는다지만, 이 년의 팔자는 어떻게 뒤집어도 오뚜기여서 도로 원래의 제 팔자로 돌아오는 것임을 알고 그 아들 놈의 덕을 개뿔따구만큼이라도 볼 생각일랑은 계륵보다 아쉬워 할 것이 못된다고 예저녁부터 한숨으로 밤을 지새우며 곱씹었더랬다. 그러니, 인어도 아닌 것이 그물에 걸려 코뚜레를 뚫리고 고삐에 묶이고 멍에를 짐져 왔기에 여편네가 된 그 처자, 허리뼈가 활처럼 굽어갔을 것이며, 코를 박을 접싯물도 없기에 재수에 옴이나 토실토실 붙을 팔자가 삭신을 쑤셔대는 통에 못 살겠어서 모진 목숨, 바다에 버리기를 몇 번, 쥐약에 후식으로 구정물까지 들이켜도 보았으니, 죽지도 못해 죽은 목숨으로 더덕더덕 살아오고 있다 했다.

  누구나의 죽음에든, 단 한 번 지나가는 훈풍이었을지라도, 봄볕 좋은 한 나절은 있게 마련이었고, 또 누구나의 삶에든, 찰나를 스치려는 눈 깜짝임이었을지라도, 영겁을 동결하여 눈물에 익사할 겨울 바다가 있게 마련이었다.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 혀 끝을 간지럽혔던 단맛은, 태생부터 소금에 담궈져 짠 맛에 길들여진 아버지에게는, 죽음보다 더 달콤하였으나 처음으로 본 맛이라 어떨떨한데다, 번데기 앞에 주름 한 점보다 작아, 혀끝을 대는 순간 절망적으로 녹아없어지고야 말았으니, 일장춘몽보다 덧없어 다시 깬 짠 맛에 새롭게 절어서 더 쓰리고 아팠을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젓갈 담기에도 모자라, 소금 한 가마니는 더 뿌려야 간이 좀 들어 잡젓으로라도 쓸 수 있을랑가는 몰라도,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라고 속 모르는 소리나 찌끄러대는, 배불러 창시가 쏙 빠진 어느 시러베 아들뇜의 혓바닥일랑은, 소금 석 섬이나 더 들이부어 젓갈이나 담가 잡수면 그 짠 맛에 혀가 굳어, 그런 흰 소리는 다시는 못 하도록 혀를 뽑아낼 일이로되, 박을 터트려 쪽박을 대박으로 역전시킨 흥부네 집이 소설적으로다가 가세가 기울어 짠 맛이라도 팔아 호구지책을 삼아야 할 일이 있어 그 혓바닥이 덜 짜가와졌는지 주절거리는 바람에 들었을지도 모르는 인심을 쓰다가, 인생을 싸잡아 단 한 번 미망에 자빠뜨려진 어머니는, 언덕진, 빙판으로 꽁꽁 언, 얼음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더랬는데, 날씨가 오살나게 추워서 연탄 재라도 뿌려주는 머슴놈은 얼어 죽었다손치더라도, 짹 하다 죽은 참새 한 마리도 없어 끝 간 데 모르게 엉덩이에 퍼렇게 멍이 들어, 가슴뼈를 도려내고 뼛속까지 피가 맺혀, 추락하는 중이었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어서 이카루스보다 끔찍했을 것이었다.

  신화는 신화일 따름이어서 금슬 좋기로 소문난 케네스와 알퀴오네의 애틋함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만큼이나 현실적이지 못해 자못 현실적이었다. 명현은 그 비현실과 현실을 모호하고 애매하게 전도시키는 역할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였을 것이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음에 분명하여, 누구의 편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누구의 편에도 꼭 있어야만 하는 게임에서의 룰이란, 그 둘을 공정하게 거꾸러뜨리는 데에만 목적을 두어야만 했기에 명현은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이를테면, 가파른 산꼭대기는 신포도만이 주렁주렁 열려 먹어보았자 혀나 꼬부릴 것이므로 아예 쳐다볼 생각일랑은 하지를 말고, 절어서라도, 쩔어서라도, 짤랑거려서라도, 자기 곁에서 평생 털레털레, 절레절레, 혀를 내두르면서라도 짠 맛에 길들여, 쓸개까지라도 짜게 만들고, 혼이라든, 영이라든, 넋이라든 하는 것들은 소금밭 깊이깊이 묻어 돈으로 다발지게 할 궁리를 해야 쓰는 것이라고, 사내 새끼의 힘을 종용하는 애비가 꼴 보기 싫어 바득바득 학교엘 갔으면서도, 잃어버린 영화의 필름 한 조각이라도 대신 주워다 주기를 바라 한사코 대처로 떠미는 에미가 미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워털루 전쟁에서 지고 추위에 얼어 죽었어야 할, 나폴레옹이 그 작은 체구로 말 잔등에 올라 수탉의 벼슬보다 못한 모자를 휘날리며 한 손은 위장병으로 쓰린 속을 부여잡느라 눈알만한 단추 구멍 속에 집어 넣고 짤막한 손모가지로 말 고삐를 움켜쥔 채 정복이 요원한 알프스산맥을 가리키고 있었던가 말았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낡은 표지 위에 영웅보다 늠름하고도 씩씩하게 가로새겨진 완전정복, 쫓기던 나폴레옹이 귀 먼 여편네에게 헐값에 팔아넘기려고 꿈속이든, 잠속이든 따라와 강간해 버린 그 어줍잖은 꿈을, 허접한 꿈을 신주 단지로 알아, 알라딘의 요술램프도 아닌 것을 앞에 두고 어머니가 정한수 떠놓고 발에 물집을 저당잡히고, 손의 지문을 닳게 하며 일없이 퐁당퐁당 던졌을, 간이든, 염통이든, 귀든, 혼이든, 기도하고 갈구한 보람이 있었던지라, 호미질로, 갈퀴질로, 삽질로 긁어 모았음에 틀림없는, 그 돈으로 명현은, 참고서 대신, 점보 공책 대신, 필기구 대신, 액션은 화려하나 의리는 모습을 감춘 협객만화들, 고입 시험을 앞 둔 이즈음에는 부쩍, 페이지마다에서 홀리는 몸매 미끈한 알몸의, 파우스트의 영혼을 사려는 메피스토펠레스보다 더 끈적거리는, 젖빛보다 뿌옇고 벌꿀보다 달콤한, 잡지 속 색녀에게 눈과 손을 팔고 침과 정액을 흘려 죄값으로 갈음하며 천년설화를 만들고 있었더랬다.

 

  쿠르릉, 콰아앙, 철얼썩, 처얼썩, 촤르르르, 촤아악, 쏴아아...

오래도록 시묵섬에 살고 있었던 듯한 그렇게나 기세 좋던 소리의 주인들이 시나브로 멀어져 가고 있는 듯 했다. 용왕의 파수병임에 분명했을 용트림의 포말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끌어당기는 힘에 밀려 고개를 젖히며 머리채를 절레절레 흔들리며 끌려가는 듯 했고, 절벽 바위에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채신머리없이 시린 발톱을 오므리며 백사장 모래밭으로 사각사각 스며들면서 종적을 감추는 듯 했다. 언제나 그렇듯, 물귀신 작전 중에 으뜸은 뒤에서 머리채를 끄셔내는 것인지라, 아무리 미친 년 널 뛰듯 치맛바람을 뿡뿡거려보았자 대세는 이미 기울어 머리끄뎅이는 벌써 미역처럼 줄거리를 퍼덕이고 있었고, 몸뚱아리는 톳처럼 불어터져 속살을 끈적거리며 흐느적거렸고 다리는 볼썽사납게 쿨럭쿨럭 절뚝이며 밭은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그 바람에 들어난 바다의 속내는 참으로 처참하여, 용왕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꼬리를 사려 변신한 지 오래였고, 물러가면서도 결사항전에 몸을 내맡긴 파도가 쏘아 던진,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검은 물살만 패잔병의 비애로 빚어진 먹구름으로 분탕질치는 바람에 뻘밭은 이전투구 그대로였다.

  명현은 어슬렁어슬렁 물러나는 발칙한 것들의 꼬락서니를 핏발 선 곁눈질로 흘끔거렸다. 명현에게 어머니는, 물귀신이 할퀴는 대로, 소금쟁이들이 사타구니를 노려 덤벼 들며 물어뜯어, 피가 절절 나도록이나 꼼짝도 않는, 절벽 바위보다도, 바위 틈에 납작 엎드려 누가 건드리면, 픽 물이나 쏘아내며 고작 촉수들이나 오므리고 마는 그 환장하고 자빠질 말미잘보다도, 바위에 납작 엎드려 부리 무서운 독수리에게 입을 벌리는 순간, 수줍은 속살이 드러날까 염려하여 물 속 깊이에서 조심스럽게 목욕할 때 말고는 눈귀 닫고 안으로 안으로만 또록또록 속살이 여물었을 어느 날,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귀 하나에 몸통 하나에 다리 하나 밖에 없는 천하에 불상놈임에 틀림없을, 조새에 탁탁 찍혀 옷을 홀라당 빼앗기고, 외다리에 박힌 코에 귀가 잡혀 올라채이는 바람에, 그것도 백주 대낮에, 광주리 안으로 짠 눈물과 함께 진주보다 영롱한, 그 허연 몸뚱어리가 알몸인 채로 끌려들어가 내동댕치쳐지는데도, 꿈쩍도 못하고, 그저 쩍이나 몇 개 달고, 무채에 버무려져 누군가의 아가리에 들어갈 양이면, 그 볼따구니 안 살을 따금하게 찌르겠노라고 자못 비장한 비분강개에 젠장할, 눈물만 메말리는, 석화라 불리는 굴보다도, 천 배 만 배 답답하였다.

  이제는 지쳐 제법 짧아진, 긴긴 여름을 지새느라 타들어가던 해가, 그 살에 맞아 날개를 태우며 헛지랄에 쌈치기나 하며 먼지를 풀풀 날리는 삼라만상의 미물들이 곡조없이 내지르는 비명 횡사에 지겨워졌는지, 잠시 소낙비를 보내 눈을 감추었던 해가, 소득 없는 하루에 넌덜머리를 치며, 피곤으로 충혈된 황망한 눈길을 거두어가는 중이었다. 이제 곧 이슬 젖은 밤이 눈물처럼 올 것이었고, 물새들조차도 물을 떠나 한뎃잠에 깃을 털며, 내일이면 꼭 밝은 햇살 아래 집을 지으리라는 헛된 꿈을 또 꿀 모양이었다. 윤동주는 에서 다시는, 절대로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불을 훔쳐 인류를 구원한 불쌍한, 프로메테우스의 와신상담을 이야기한다. 명현은 열두가지 난사를 모두 이겨 내고 신으로 등극한, 인간의 영광, 헤라클레스도,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찜 쪄 먹고 집으로 귀환하는 우리들의 영웅, 오디세우스도 될 수 없었다. 그저 패배자의 그늘에 가리운 늪에 빠져 있는 듯한, 이 더러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필시, 어머니는 몸 주고 마음 주고 글을 가르치며, 아버지가 무한 우주의 이치까지는 아니라도 당장의 답답한 까막눈이라도 면하길 바라, 하다 못해 우주의 무한한 수를 헤아려 셈 속이라도 잘 해서 호구지책이나마 연명하길 바랐으나, 끝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울 안에 갇힌 짐승이기를 자처하는 성질 급한 밴댕이, 귓구멍에 못이라도 박아 기둥으로 굳은 아버지의 귀이지를 게워내려다, 짐짓 어머니의 귀에 말뚝을 박아버리고는, 말 수를 줄여 가면서도, 행여 명현이, 아버지 따라지로, 소금 기둥이 될까 노심초사하여 혜안을 떠 감시하느라 한 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더랬다. 그리하여, 아이고나, 아파라, 어머니의 눈초리 끝에서 시작되어, 종아리를 파고 드는 어머니의 회초리는 정수리를 내려치는 아버지의 지팡이보다 늘씬늘씬하였거늘, 명현은 기어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판정승으로 보답하겠다는 대답을 게워내고야 말았다. 그런 밤으로는 어머니는 심장을 꺼내 굵은 소금으로 알맞춤하게 간을 해 떡으로 빚어내느라 반질거리는 손으로, 피눈물 섞어 바늘로 콕콕 찔러 기름을 짜 내어 울궈내고 눈물 바람으로 쪄 냈을 정성까지 한 상 가득 차리고 들어와 명현의 창시가 노글노글해지도록 바라보았더랬다. 인내의 열매가 쓸 지, 달 지는 아직 홍시가 덜 된 감이라 먹어봐야 알 것이로되, 명현이 어머니의 무르팍에서 익혀가는 감은 아직 푸르른 안개에 젖어 떫을 것이었다. 그 끝에 가로 박힌 서늘한 느낌 하나는, 배때기를 깔고 잠든 명현의 귀를 잡아당겨 아프도록 후벼 팠던 것이었거늘, 거기엔 늘 바람꽃이 한가득이었더랬다. 그리고 그 바람꽃에 어머니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게, 마을 한 복판에 자리잡은 용궁 집에, 오래 전에 눈알이며, 심장을 뽑아 심어 두었던, 감꽃 필 무렵부터 낳아 놓은 인어 한 마리, 지금은 숟가락질을 하고 있을, 하여 언젠가는 푸르게 푸르게, 오대양 육대주를 합해 삼십 양과 주를 헤엄쳐 거슬러 오르고야 말, 꿈 알 하나가, 꽃 봉우리 한 송이가, 함초롬 졸린 눈으로 어둠을 부를 것이었다.

  퉷, , 퉤엣!

  명현은 단 물이 다 빠져, 이제는 질기디 질겨져 떫음으로 혓바닥에 앙금이라도 앉았는지, 서둘러 떫음을 뱉어야겠다는 듯, 씹다 만 껍이라도 뱉으려는 듯, 볼따구니가 미어지도록 침을 뱉고는 일어섰다. 명현은 흐물흐물 웃은 후, 토끼처럼 귀를 쫑긋거리더니, 바람 좋은 날 얼레를 돌리며 연을 따라 날아가듯, 바다의 배때기를 달리고 있었더랬다.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 문단은 이러하였다.

  “나는 시지프를 산기슭에 내버려 둔다! 우리는 언제나 그의 짐을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인하고 바위를 들어 올리는 뛰어난 성실성을 가르쳐 준다. 그도 역시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 그 후부터 주인 없는 이 우주는 그에게 불모의 것도 하찮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돌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산의 금속적인 빛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로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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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이 환 임

 

이메일주소: windsea@hanmail.net

 

연락처: 010-2005-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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