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19
어제:
37
전체:
305,515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57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5.08.08 01:22

모래 시계

조회 수 27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모래시계

 

  내가 상경한 11월의 서울은 유난히 쌀쌀했다. 나는 이러 저리 엉킨 낯선 지하철 노선도를 훑고 지하철을 몇 번을 갈아타며 서울의 한 구석진 동네에 도착했다. 원룸이 있다는 그곳은 빨간 벽돌집이 촘촘히 모여서 골목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전선이 하늘로 어지럽게 뻗어있었고 깨진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사이로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동네는 골목마다 한적함이 서려서 어쩐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나는 좁은 방에 밥상하나 가져다놓고 공부하며 용변은 공용화장실에서 처리하는 그런 고시원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진짜 고시원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딴판이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좁은 원룸 안에 화장실도 있었고 침대와 책상, 장롱이 바짝 붙어 자리하고 있었다. 책상에 남아있는 스티커 자국들, 그리고 발바닥을 자극하는 까슬까슬한 것들을 빼면 썩 괜찮아 보였다.

  얼마 없는 짐을 풀어놓고 보니 장롱과 책꽂이가 꽉 찼다. 반나절을 짐 정리하며 보내고, 나는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들어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동안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5시였는데 노란 노을이 주택가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해가 짧아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집들을 보며 서울이 참 외로운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추석 나한테 집중된 관심과 시선이 영 달갑지 않았다. 명절날 모인 가족들은 나만 보면 마치 인사하는 것처럼 직장은 구했느냐’, ‘결혼할 생각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럴 때면 나는 멋쩍은 웃음만 지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대신해 이것저것 대답해주었다. 내가 당신께 떠든 적 있었던 얕은 계획들을 엄마는 변명처럼 친척들한테 늘어놓았다. 엄마는 든든한 우군이었다. 나는 칠칠치 못한 스스로를 자책했고 엄마한테 미안하고 또 고마웠지만, 내 발언권을 무시하는 것이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처음 고시공부를 제안한 건 우리 엄마였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인가 엄마는 당신이 아는 사람이 행정고시를 붙었으니 너도 대학 졸업하기 전에 행시라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지낸 아버지만 보아도 그 길이 썩 나쁜 길은 아니고 졸업하기 전에 행정고시를 따놓고 다른 길을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란 것이 엄마의 말씀이었다. 그 말을 조금 더 일찍 들었으면 좋았으련만 그해 나는 졸업을 했다.

  그때 내가 가진 거라곤 지방 4년제 대학 졸업장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특별한 기술도 없었고 집에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한테 졸업은 가을소나기처럼 불쑥 찾아와 나를 물에 빠진 쥐 꼴로 만들어버렸다. 무엇을 할지 도무지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던 나는 막연히 9급 공무원 일반 행정직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가 바랐던 행정고시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나한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격려해주었다. 고향친구들은 너무 늦었다고 걱정을 했지만,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시험에 합격해서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겠다는 꿈도 품었다. 비록 엄마의 제안으로 시작한 시험 준비였지만 그 일은 어느새 내 꿈이자 목표가 되어있었다.

  서울에 올라와 나는 한동안 계획적인 생활을 했다. 때에 맞춰 학원과 원룸을 오가는 시계추 같은 생활을 했다. 항상 내 손에는 책이 들려있었고, 뭐라도 읽거나 외우지 않으면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아침에 학원에서 부지런히 강의를 들었고 집에 와서는 영단어를 외우고 강의에서 들은 내용들을 정리했다. 판에 박힌 하루하루가 나날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혹시 마음이 해이해질라치면 고향에 계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고해성사를 하듯 최근 무엇을 공부했고 언제 시험이 있는지 엄마한테 보고했다. 엄마한테 보고를 할 때면 엄마는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지금의 초라한 내 모습을 구체화시키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스스로를 옭아맸다.

  그렇게 고시촌과 학원을 뻔질나게 오고가던 어느 날 나는 내 옆방에 사는 A형을 만났다. 그 형하고 나는 가끔 얼굴 마주칠 때 눈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다. 그러던 것이 A형이 내 방에 불쑥 찾아와 라이터를 빌려간 일이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A형하고 서로 만나면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점점 더 친밀해졌다. A형은 나보다 나이가 세 살 위였는데 얼굴도 잘 생기고 붙임성도 좋았다. A형은 경찰고시를 준비 중이었는데 대학교에서는 패션디자인인지를 전공했다고 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본인의 전공에 만족스러워했는데, 막상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보니 이 길은 아니다 싶어서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패션디자인도 포기했단다. 일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적고 앞날은 불투명하니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결국 형은 현실의 벽과 심중의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하던 일을 그만둔 것이었다. 벌써 시험도 세 번이나 치렀으니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다고 형이 말했다.

  나는 A형을 통해 고시 준비하는 다른 사람도 여럿 만났다. 그리고 몇 명하고는 서로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왕왕 만나 같이 술도 마시고 이야기하며 지냈다. 만나서 술을 마신다고 해봤자 편의점 앞에서 맥주 마시는 게 전부였고, 하는 이야기라야 영어가 변별력이 높다느니, 단어를 얼마만큼 외웠다느니 지겹도록 떠들었던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나는 그 사람들하고 있는 게 좋았다. 하루 종일 조바심에 몸이 달아서 옴짝달싹 못하다가도 그 사람들하고 만날 때면 스스로 자기위안을 할 수 있었다.

  서울로 온지 반년이 조금 못 되어 나는 필기시험을 치렀다. 아직 공부도 미처 끝내지 못한 상황이었고,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경험상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공부도 미처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 치는 시험이라 제대로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지 않았다. 모르는 문제가 많다보니 시험시간은 시험지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시험시간은 더디게 흘러 마치 영원할 것 같았다.

  나의 하루가 오롯이 이 시험을 위해 쓰였다. 집요한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내 남은 시간들을 헤아려보았다. 결과 발표까지는 한 달 남았다. 만약 이번 필기시험에 불합격한다면 한 달이 아니라 수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수개월을 이 동네에 꼼짝없이 갇혀서 문제집 따위와 씨름하며 보내야 한다는 것이 마치 악몽 같았다. 나를 가로막은 긴 시간들이 내 남은 이십대를 옭아맨 밧줄처럼 느껴졌다.

  첫 시험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다들 얘기했지만, 초반의 내 강한 의지는 첫 시험을 치고 많이 풀어져있었다. 학원에 있을 때 나는 공부에 전념하는 척했다. 하지만 저녁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갖 핑계거리를 대며 사람들을 만났다. 비가 와서 날이 더워서 복날이라 별의별 이유를 다 들어가며 모였고, 모였다하면 술을 마셨다. 과음을 한 건 아니었지만 각자 맥주 한 캔씩을 기본으로 마셨다.

  학원에서 공부하고 밤이 되면 술을 마시는 생활 패턴이 한참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한 남자를 만났다. A형하고 둘이서 길을 가는 중이었다. 그는 때가 배인 참고서, 문제집 여러 권을 빨간 노끈에 묶어 손에 들고 가고 있었다. 딱 보아도 고시촌을 떠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하고 서로 구면이었는지 A형은 그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 오랜만이에요. 요새 통 얼굴도 안 보이고 도대체 뭐하고 지냈어요?”

  A형이 형이라고 하는 걸 보니 A형보다 나이가 위인 듯 했다. 그는 무슨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입으로는 우물쭈물하면서도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나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고 대략 어떤 말을 꺼낼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난 그만두기로 했다.”

  마침내 그가 운을 뗀 말은 포기선언이었다.

  “벌써 다섯 번이나 시험에 떨어졌다.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기로 했어.”

  그는 자기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저 결심이 서기까지 몇날며칠을 잠도 못자고 고심했는지, 그의 두 눈가에 드리운 검은 그늘에서 나는 그 고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떠나는 그의 눈을 보면서 나는 야릇한 기분을 느꼈다. 짙게 그늘 진 눈가에서 그의 두 눈동자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쾌거를 이룬 사람의 눈 같았다. 포기했다는 말도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눈을 갖고 있는지 내 상식으로는 쉽사리 납득이가지 않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던 것과는 달리 A형에게 그 남자의 모습은 다소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A형은 나한테 자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은 내가 본인 맹세의 증인이 되어주길 바란 것 같았다.

  “형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니까 아마 끝까지 해낼 거야.”

  나는 방금 전 A형이 한 다짐을 그에게 각인시켜주었다.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나는 A형이 분명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 생각은 막연한 믿음이었지만 방금 그 남자의 모습이 우리 두 사람과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날이 슬슬 더워질 무렵 필기시험 결과가 나왔다. 나무들은 가지의 꽃을 완전히 털어내고 푸른 잎을 돋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기 좋게 필기시험에 떨어졌다. 시험 준비를 했던 시간이 짧았다.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신기할 노릇이었다. 어차피 애당초 떨어질 걸 염두에 두고 친 시험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둘 필요도 없었다. 주위 사람들도 처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고시촌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 이번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불러 모아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술 마실 기분이 아니라고 거절한 사람도 있었지만 다섯 명 정도가 술자리를 함께 했다. 그날은 시험 얘기를 하지 않았다. 술기운이 오르자 우리는 정부 욕을 하고 나라 욕을 하고 그리고 여자 얘기를 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신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날따라 술이 받지 않았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건만 정신이 몽롱하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자리를 떴다.

  방에 돌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벽에 기대고 앉았다. 분명 과음을 하지도 않았는데 몸에 기운이 나질 않았다. 방은 온통 새까맸다. 핸드폰을 무심결에 꺼내어 확인해보니 이미 엄마한테서 걸려온 전화가 세 통이었다.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의 발신음이 들리는 와중에 어디에선가 낮은 데시벨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분명 남녀의 신음소리였다. 그 소리는 바닥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한쪽 귀에 댄 채 바닥에 쓰러지듯 엎드려 다른 쪽 귀는 바닥에 붙였다. 바닥에 엎드려 조용히 아랫집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나는 신음소리 높낮이에 따라 그들의 오르가슴 정도를 측정했고, 두 몸뚱이가 부딪치는 소리에 따라 그들의 체위를 상상했다. 그들의 몸뚱이는 주기적으로 마찰했고, 나는 돌멩이처럼 덩그러니 엎드려 있었다.

  “여보세요? 진성이니? 왜 전화를 안 받아?”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정신을 차렸다. 바닥의 찬 기운이 내 맨살에 느껴졌다. 내 팬티는 이미 엉덩이 밑까지 내려가 있었고 내 손은 귀두를 잡고 있었다.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자다 일어났니? 이번에 시험 본 건 어떻게 됐어? 결과 발표 여름에 나온다고 하지 않았니? 이번에 인터넷으로 확인해봤어?”

  나는 여전히 누운 자세로 남근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찬찬히 바지를 치켜 올렸다.

  “이번에 나 떨어졌어.”

  내 그 말에 엄마는 더 이상 이것저것 캐묻지 않았다. 핸드폰 너머로 한참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래. 진성아. 너 혹시 돈 모자라지는 않고?”

  그때 알 수 없는 공포심이 나를 옥죄었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내 눈앞에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우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순간 내 오른손이 끊어져 핸드폰 위에 떨어져 버렸다. 그것은 바닥에 부딪쳐 한 움큼의 모래로 산산이 부서졌다. 그제야 나는 내 몸에 붙었던 살점들이 하얀 모래가 되어 흩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왼손도 마찬가지였다. 손가락 끝마디에서 손바닥, 그리고 손목, 팔뚝에 이르기까지 내 몸을 이루었던 것들이 점차 모래가 되어 무너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얀 곰팡이처럼 내 몸에 빠르게 전이되고 있었다. 나는 바르게 누워 비명을 질러보려고 했지만 입천장과 혓바닥마저 한 움큼의 모래가 되어 내 목구멍으로 치고 들어왔다. 고운 모래를 잔뜩 머금은 내 입은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했다. 이내 모가지가 힘없이 떨어져버렸다. 머리가 몸과 완전히 분리되자 턱과 코가 모래가 되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전신이 모래로 내려앉았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내 몸을 더듬었다. 어젯밤 산산이 부서지던 내 몸이 지금은 멀쩡했다. 살도 여전히 붙어있었고 몸을 움직이는데도 지장이 없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을 확인하니 엄마한테서 온 전화만 세 통 있었다.

  그날 나는 A형을 만나서 지난 밤 아래층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부럽다. 여자 만난 게 도대체 언제인지 모르겠네. 그런데 여기도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라 여자 친구 데리고 와서 하룻밤 자는 사람들 꽤있어. 종종 있는 일이야.”

  A형은 그 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여 하는 이야기가 자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여자를 만났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여자도 못 만나고 이곳에서 꼼짝없이 시간만 보내야 한다는 게 아쉬운 듯 형은 혀를 찼다. 지금까지 내 삶은 무미건조한 생활의 연속이었는데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았던 형이 몹시 부러웠다. 곧이어 나는 꿈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형이 개꿈 취급을 할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자 나는 다시 공부모드에 돌입했다. 나는 여전히 시간에 묶여 있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바쁘게 지내다보면 시간 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내 하루하루는 다시 틀에 박힌 일정대로 흘러갔다. 학원을 가서 수업을 듣고 방에 돌아오면 공부한 것들을 복습했다. 주말에 가끔 사람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놀기도 했지만 평일에 주어진 시간은 일절 공부에만 투자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A형이 고향에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너들은 말에 따르면 부친상 때문이라고 했다. 공부할 여유도 없었지만 친한 형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걸 알고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A형을 알고 있는 고시생 네 사람하고 같이 조문을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가난한 고시생 입장에서 문상을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의금도 구해야 했고, 옷도 구해야 했다. 무엇보다 오가는 차비가 만만치 않았다. 부모님한테 전후사정을 털어놓았다면 돈 몇 푼 쯤 송금해주셨겠지만 당신들께 손을 벌리는 게 도무지 내키지가 않았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학원으로 달려갔다. 학원 원장을 붙잡고 사물함비를 돌려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문제집, 참고서가 팔만대장경이라도 짊어지고 다니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한참을 애걸복걸하고서야 나는 사용한 만큼을 제하고 사물함비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문상 갈 준비를 얼추 끝내고 우리 네 사람은 서울역에 모였다. 모두 면접을 대비해 검은색 정장은 하나씩들 가지고 있었는데, 매고 있는 넥타이 색깔은 제각각이었다. 다들 가지고 있는 넥타이가 장례식 가는 것치고 화려했다. 하지만 우리 네 사람은 서로 처지가 비슷했고, 서로 처지가 어떤지 뻔히 알고 있으니까 상대방의 옷 입은 꼴을 손가락질 하지도 않았고, 얼마씩들 준비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우리 네 사람은 가장 빠른 열차를 끊었다. 그런데도 좌석이 없어서 열차통로에 앉아갔다. 한 여름날인데 에어컨도 없는 열차통로에 양복정장을 입고 앉아가는 건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고역이었다. 우리는 가는 내내 비지땀을 흘리며 양복은 따로 준비해 빈소에 가서 갈아입을 걸 그랬다고 후회를 했다. 항상 모였다하면 야한 농담이나 시험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지만 대구인지 어디인지 지방으로 내려가는 긴 시간동안 우리는 특별히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목적지에 다다르기 직전 우리는 한 봉투에 돈을 모아 넣고 각자의 이름을 적었다.

  “, 오늘 내가 열차표를 끊을 때 발견한 건데, 나 어제 생일이었더라.”

  한 형이 자기 이름을 적다말고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형은 어제 생일이었다고 우리한테 왜 말을 안 했어? 알고 있었으면 축하라도 해주었을 거 아냐. 혹시 이번에 A형 아버지 상 당한 것 때문에 일부러 말을 안 한 거야?”

  나하고 동갑인 친구가 의아해하며 그 형한테 물었다. 나 역시도 그 형이 자기 생일인데도 불구하고 A형의 사정 때문에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짐작했다.

  “아니, 내가 까먹고 있었어. 고시촌 떠날 때 가물가물하다가 표 끊을 때 알아챘다니까.”

  생일이라던 형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 형은 자기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야 남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가족한테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싶어서 내가 집에 있는 가족들한테 전화도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가족한테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형이 꺼낸 이야기가 못 미더웠던지 주민등록증을 까보라고 요구했다. 그 형은 주민등록증까지 꺼내어 보여주며 어제가 자기 생일이었다는 걸 증명했다. 가족들도 그렇고 심지어 당사자조차도 자기 생일을 모르고 지나쳤다는 게 한심스럽고 불쌍하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그 형 한 사람을 위해 생일분위기를 내주기로 했다. 우리는 열차통로에서 손뼉도 치고 축하 노래도 불러주며 뒤늦게 형의 생일을 축해 해주었다. 조의금 봉투를 보여주며 생일 선물로 대신 받겠느냐고 농담도 했다. 그게 그 우울한 열차통로 안에서 내가 간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추억이었다.

  A형의 고향은 우리가 생전 와본 적 없는 낯선 지방이었다. 작열하는 6월의 태양 아래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며 더듬더듬 길을 찾았고, 그마저 부족해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길을 물었다. 이 버스 저 버스 갈아타고 물어물어 간 끝에 우리는 빈소가 차려진 시골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검은 양복을 입은 모습의 A형을 만났다. 장남이고 외동아들인 A형이 상주노릇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전에 뵌 적 없는 A형 아버님 앞에 정중하게 절을 올리고, A형과 맞절했다. 형은 우리한테 다른 말없이 그저 고맙다는 말만 했다. A형 어머니는 한창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여기까지 내려오느라 고생했다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일일이 잡아가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우리를 빈소 옆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은 사람들로 반쯤 차있었는데 대부분 살이 까맣게 타고 땀 냄새가 몸에 밴 아저씨들이었다. 그분들은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모여앉아 막걸리,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A형은 그 아저씨 무리를 하나하나 찾아가 술을 받아먹고 식당 아주머니를 돕고 문상객들을 받아 맞절을 하는 등 온갖 푸닥거리를 다하고 있었다. 비록 형은 우리 테이블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지만 우린 상관하지 않았고, 바쁘니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보았던 A형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고 낯설었지만 나는 그 형이 대단해보였다.

  우리는 그날 빈소에서 자고 다음날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동안 A형을 볼 수 없었다. 항상 긍정적인 형이었으니까 잘 견디겠거니, 곧 추스르고 돌아오겠거니 나는 속 깊이 A형을 믿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A형은 서울로 올라왔다. 형은 서울에 오자마자 그날 문상 갔던 사람들을 불러내 고기와 술을 사주었다. 형은 우리가 조문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당시는 상주 노릇하느라 잘 챙겨주지 못했다고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때 그 형이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A형의 모습은 그동안 보아왔던 A형의 모습하고는 딴판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부터 지친 기색이 역역했다.

  “다시 공부 시작할 거지?”

  A형은 누군가의 그 묻는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A형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실제로 약해진 것 같았다. A형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차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혹여 형이 극단적인 결정을 하지 않을까하는 괜한 노파심에 A형한테 그날 밤은 같이 자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형은 웃으며 거절했다.

  다음날 나는 노크소리에 잠에서 깼다. 문 앞에는 단정한 모습의 A형이 서있었다. 지난 밤 엄한 짓하지 않고 살아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형은 잠도 덜 깬 나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갔다. 형의 방 한 켠에 책 꾸러미가 노끈에 묶여있었고, 세일 기간에 푼 돈 주고 사왔을 몇 벌 되지도 않는 싸구려 옷들이 잘 개어있었다.

  “, 왜 갑자기 짐 정리를 한 거야?”

  “너 잠깐만 내 짐 맡아줄 수 있니? 아주 잠깐이면 돼.”

  A형은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분간 본인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나한테 짐을 맡기고 여행이라도 가려나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형이 곧 돌아올 줄 알았다. 그래서 기꺼이 맡아주겠다고 했다. 가뜩이나 공간이 부족한 내 방 한 쪽 구석을 형의 책과 옷 꾸러미가 자리를 차지하니 정말로 발 딛을 자리조차 없었다. 형은 나한테 연신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 나는 A형이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A형의 안부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더니 A형은 자기가 병원에 있다고 고백했다. 어디냐고 물어보아도 한참을 가르쳐주지 않고 망설이기에 몇 번이고 되물은 끝에 알아낸 사실이었다. 나는 그 형이 입원한 병원까지 알아내 주말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형이 이번에 서울로 올라온 목적도 어쩌면 치료에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형은 다른 환자 여섯 명하고 같은 병실을 쓰고 있었다. 그가 있는 병실은 고약한 약냄새와 악취가 가득해 마치 가축우리 같았다. 형을 빼면 전부다 미라 같은 노인들이었다. 거기 누워있기에 형은 젊다 못해 어린 축에 속했다. 그런데 이 병실 끝에 A형이 누워 있었다. 무슨 병을 앓는지 몰랐지만 형의 모습이 늙은 개 같았다. 발에 치여 일어나지 못하는 늙은 개처럼 형은 누워서 죽어가고 있었다.

  어쩌다 같이 A형하고 목욕탕에 간 날 나는 형의 잘 다져진 몸을 보고 놀란 바 있었다. 대학생 때는 헬스장에서 알렉스란 이름으로 트레이너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만큼 형은 멋진 몸을 갖고 있었다.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A형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다. 그 형은 장난으로도 우릴 친 적이 없었고 싫은 소리를 하는 걸 본 적도 없었다. 그런 형이었는데 수술을 받았는지 얼굴은 벌써 반쪽이었다. 나는 지금의 그가 많이 피폐해진 상태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A형이 입고 있는 환자복 줄무늬에서 쇠창살을 연상했다. 나는 형이 깨지 않을까 조용히 간병인 침대에 앉아 가만히 영어단어장을 꺼내 읽었다. 병문안까지 와서 유난을 떠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는 속으로 지금은 일분일초가 아까운 때라고 뻔뻔스러운 자기변호를 했다.

  “그 총각 친구예요?”

  맞은 편 간병인 침대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날 보고 웃고 있었다.

  “, 친한 형입니다.”

  “참 훌륭한 젊은이예요. 어찌나 착한지 볼 적마다 인사 꼬박꼬박하고.”

  “형이 깨면 전해주겠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형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었다.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고시촌에 똬리를 틀기 전까지 나하고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형이었다. 내가 병원에 온지 삼십분쯤 지나서 A형은 눈을 뜨고 일어났다. 머리는 까치집이 되어있었고 눈곱이 붙어있었다.

  “번번이 미안하다. 아버지 상 치룰 때도 와준 것도 미안한데······.”

  “에이, 그러지마. . 이깟 일에 마음 두지 마.”

  나는 손사래를 쳤다. 형은 그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정들을 나한테 털어놓았다. 무슨 병인지 말해주진 않았지만 병 걸린 건 부친상 당하기 전에 알았단다. 발병초기고 수술비도 아까워서 얼마간 참기로 했는데, 상 치루고 서울로 돌아오니 아파 죽을 것 같았다고 형은 털어놓았다. 우리를 만난 날도 원래 목적은 고시촌 방 빼려고 온 것이었는데, 문상 온 게 고마워서 같이 술을 마신 거라고 했다. A형은 본인도 겨누기 힘든 몸뚱이로 맞절을 하고 술을 받아 마시고 스스로 견뎌내고 있었다. 형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도 그만 포기하려고.”

  A형은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항상 굳건하게 서있었다. 그랬던 A형이었기에 A형의 이런 나약한 모습이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A형의 이 포기선언조차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 누워있으면서 생각한 거야. 형편도 안 좋고 몸도 아픈데 공부해서 뭐하냐? 아버지도 안 계신데 엄마한테 가서 양계일이라도 배우려고. 너희 방에 맡겨놓은 건 퇴원하면 가지러 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맡아줘. 그보다 형이 오늘 너한테 솔직해지고 싶다. 이 나이를 먹도록 살아왔는데, 내가 가진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는 게 이번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살에 와 닿더라.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놈인지. 더군다나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몸뚱이 하나마저 아프면 대책이 없더라.”

  그 말은 마치 형의 유언 같았다. A형은 분명 강한 형이었지만, 그 모든 일을 견디기에는 한없이 작은 존재였다. 그 한순간의 악재들이 형이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송두리째 쓸어버린 것이었고, 이제 그나마 있던 한 몸도 가누기 힘든 처지가 된 것이었다. 형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A형의 약한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서 형이 이제 그만 말했으면 하고 바랐지만, 나는 그런 모진 말을 할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이상한 꿈을 꾼 적이 있어.”

  그리고 A형은 한참 자기 꿈 얘기를 했다. 형은 꿈에서 자기 방에 앉아 있었는데, 무엇인가 집어 들려고 손을 뻗어보니까, 자기 손가락 끝에서 하얀 모래가 떨어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모래가 아니라 자기 몸에서 살점이 떨어지는 것이었다고 했다. 형은 자신의 손가락이 마치 오래되어 푸석푸석해진 빵이 부스러지듯이 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형은 너무 겁이 나서 소리라도 질러보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자기 목구멍까지 흩어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 꿈을 꾼 직후, 너무 생생해서 꿈인지 생시인지도 구분 못해서 한참 자신 몸을 더듬거렸다고 했다. 형은 부친상을 어머니께 전해들은 후 그 꿈을 꾸었다고 했다.

  나도 내가 모래가 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꿈이 어떤 꿈인지 누구보다 자세하게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A형의 말을 듣고 그것이 더 이상 악몽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실제로 내 몸이 무너져 내리던 기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A형도 서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A형의 모습이 잊혀 지지가 않았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온 방이 어쩐지 더 넓게 느껴졌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방을 쓰다듬었다. 평소 발바닥을 간질이던 까슬까슬한 것들이 피와 살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혈육의 촉감은 나나 A형 아니면 그 이전에 이 방을 썼던 사람들의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내 손에 살 냄새가 짙게 배어나는 것 같았다. 늙은 개가 낙향선고를 한 그날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숨을 트고 소생하는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열어놓은 창문 틈 사이로 더운 공기가 들어왔다. 창문을 닫으려고 보니까 어느 때보다 하늘이 파랬다. 파란 하늘이 너무 좋아서 어디론가 놀러가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자꾸만 가슴이 설렜다. 앞으로 특별한 날들만 펼쳐질 것만 같았다. 오늘은 수업이 여러 개 있는 날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영어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영어는 공무원 시험의 당락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시험이었다. 하지만 모든 난관을 헤치고서 나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 공무원이 되어 당당하게 고향에 내려갈 수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더운 바람이 싫어서 창문을 닫아버렸다.

 

 

장한별

이메일 casker_2@naver.com

H.P 010-4108-0826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16 file korean 2014.07.16 3325
585 인생희망서 진씨. 2015.06.08 225
584 범내골 호랑이 해바라기2 2015.06.08 329
583 달 아래 산 그림자 :) 2015.06.09 18
582 보이지 않는 계절 왕만두두 2015.06.09 358
581 온유한 수용 돌도끼 2015.06.10 13
580 시지프스의 돌 외 1편 장굴 2015.06.10 41
579 오늘이다 리망 2015.06.10 36
578 슬픈 농담 문정석 2015.06.10 40
577 상상 - 형상을 생각하다 베리나으 2015.06.10 291
576 ▬▬▬▬▬ <창작콘테스트> 제5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6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5.06.11 114
575 보통 루루 2015.06.29 212
574 엄마의 밥상 알로 2015.07.13 387
573 번데기 file Raina 2015.07.15 57
572 동성의 법 이야기소녀 2015.07.19 180
571 여름기억 키싸일 2015.07.27 92
570 찰나의 모든, 그 순간 히여미 2015.07.28 46
569 동거 나타샤 2015.07.28 89
568 회전목마 클리셰 여느 2015.08.01 421
567 똥개의 나날 진씨. 2015.08.02 40
» 모래 시계 casker2 2015.08.08 279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7 Next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