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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살인



이선은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였다. 그녀는 치매인 아버지를 틈틈이 학대해왔다고 하며,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했다. 곳곳에 뿌려진 증거 덕에 그녀는 손쉽게 경찰에게 잡혔고, 복잡한 재판 끝에 19년 형을 선고 받았다. 해당 소식이 알려진 이후 언론과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그녀를 비난했다.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인 못된 살인자라며, 이선을 향해 날계란이나 울퉁불퉁한 돌을 던지기도 했다.

 

은혜도 모르는 것, 괴물 등등 가슴을 찌르는 말들은 많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좋아서 웃음이 터졌다. 이선은 경찰들에게 연행되어 끌려가는 내내 계란 세례를 받으면서도 웃었고, 교도소 바닥에 누워있으면서도 웃었다. 다들 미쳤다며 손가락질 했지만, 좀처럼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를 죽인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 그녀가 가장 잘한 짓이었다. 누군가 후회 하냐고 묻는다면 당당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당당했다. 미친 사람처럼 큭큭 거리며 웃던 이선이 눈 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긴 숨을 내쉬었다. 행복해서 흘린 눈물인지, 슬퍼서 흘린 눈물인지 이제 그녀도 알 턱이 없었다.

 

이선이 아버지를 죽인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환갑을 코앞에 둔 이선의 아버지는 가정 폭력이 일상화된 사람이었다. 매일 같이 술을 먹고 들어와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고리타분하면서도, 무책임한 가장으로 이선이 가장 혐오하는 인간 중 한명이었다. 흔히 말해, 한심한 사람, 질 떨어지는 사람. 이웃들은 아버지를 그렇게 불렀다. 웬만해서는 아버지랑 마주치려하지도 않았고, 복잡한 가정사가 얽힌 집안엔 참견도 하지 않았다.

 

이웃들이 아버지를 피한 것도 어찌 보자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매일 술을 먹지 않으면 손이 벌벌 떨렸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헛것을 봤으며 이상한 환영을 보고는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차라리, 술을 먹고 취해있는 것이 더 나을 지경이여서 어머니는 단 하루도 술을 빼먹지 않고 사왔다. 다른 길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파멸의 길에 들어선 것이었다.

 

억지로 사온 초록 병에 아버지가 취할 때면 어머니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를 말릴 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다. 주먹질은 일상이었다. 악마로 변한 그는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내리쳤다. 얼굴에 피멍이 드는 것은 당연했고, 코피가 뚝뚝 흐르는 것은 일상이었다. 제대로 된 끼니도 먹지 않아서 뼈 밖에 안남은 인간이 어쩜 그렇게 힘이 센지, 엄마와 이선은 좀처럼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라고 해봤자 별게 없었다. 일어나면 맞았고, 학교 갔다 오면 맞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또 맞았다. 매시간을 빼먹지 않고 맞는데도, 다행이게 잘 때는 맞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사지를 쭉 뻗고 잠들어버리는 탓이었다. 술과 잠에 취한 아빠는 입을 크게 벌리고 코를 벌렁거리며 잠꼬대를 했다.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그리고 다 죽여 버려야 한다고. 두서없이 늘어지던 잠꼬대는 늘 그렇게 끝이 났다. 다 죽여 버려, 다 죽어.

 

상처가 깊어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이선은 몰래 일어나 아버지의 입을 틀어막고는 줄줄이 이어지던 잠꼬대를 억눌렀다. 혹시나 들킬까 싶어, 검은 봉지를 쓴 채 숨소리 까지 죽였다. 아버지의 잠꼬대는 몇 시간씩 이어졌다. 차라리 코골이를 하거나 이를 가는 것이 나았다. 아버지의 잠꼬대는 그만큼이나 끔찍했다.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에게 죽어라고 저주를 퍼붓는 아버지가 오히려 죽어 버렸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제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청개구리 같던 아버지는 죽기는 커녕 오히려 더 멀쩡하게 살아났다.

 

"알콜 중독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금방 죽어요."

 

동네 약방의 의사는 늘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매일 같이 술만 퍼마시다간 정말 죽는다고, 하지만, 약방 의사는 틀렸다.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질기도록 오래 살아서 이선과 엄마의 피를 쪽쪽 빨아먹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폭정을 일삼는 아버지가 밉지도 않은지, 어머니는 동네 약방에서 약을 사와 아버지에게 바쳤다. 간에 좋다는 약이나 비타민제 같은 것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아버지는 엄마가 주는 약을 먹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버지가 먹는 밥이나 안주에 몰래 약을 타서 억지로라도 먹였다.

 

"왜 엄마는 아버지한테 그렇게 까지 해?"

 

이선은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왜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살리려고 하는지 엄마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물어 본 것이었다. 왜 아버지를 살리려고 하냐고, 왜 그렇게 까지 하는 거냐고. 이선이 이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엄마는 꼭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짊어진 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널 아비 없는 딸로 키우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래도 너는 아버지가 있어야지."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홀로 자랐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엄마가 10살이 되던 해 할머니와 이혼을 하면서 연을 끊고 산 모양이었다. 엄마는 늘 혼자였다. 아버지 없이 자란 한이 늘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고 엄마는 습관처럼 덧붙였다. 어린 시절엔 그나마 할머니를 보며 버텼지만, 할머니는 엄마가 20살이 되던 해 돌아가셨다. 그로 인해 엄마는 줄줄이 딸린 동생 3명을 먹여살려야만했다. 남의 집 일에서 밭일, 가정부, 식당일까지 엄마는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죽어라 일해서 먹여 살린 동생들은 엄마가 결혼 한지 5년이 되던 해 연락을 끊었다. 엄마가 가족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폭정을 알아차린 동생들은 계속해서 엄마에게 이혼을 강요했다. 더 이상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랑 살지 말라면서 엄마를 뜯어말리고, 소리를 지르며,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하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들에게 화를 내면서 이선의 아빠를 욕하지 말라고 했다.

 

"언니 마음대로 해, 다신 연락안할 거니까."

 

어머니의 고집은 가족 간의 단절까지 만들어냈다. 엄마를 제일 사랑하던 막내 여동생은 언니와의 교류를 끊었다. 나머지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춘천 구석에 위치한 시골에 박힌 채 엄마는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죽어라 일해 번 돈도, 동생들에게 연민으로 받았던 돈도 아버지의 사치로 인해 모두 다 날려버렸다. 그나마 남아있는 밭이라곤 쓰레기장과 다름없었고, 그나마 간신히 지켜낸 집은 아버지의 폭정으로 인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는 매일 같이 시장에 나가 나물을 팔았다.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흙 맛이 나는 냉이나, 취나물 같은 것들이었다. 쓰레기 장 같은 밭에서 캔 나물들은 며칠을 안가 시들어버리기 일수였다.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음에도, 어머니는 매일 같이 나물을 캐서 시장으로 팔러 나갔다.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는 것이 속편하다는 이유였다.

 

덕분에 이선은 집에 혼자 있는 일이 많았다. 가끔씩 어머니가 일하는 시장에 따라 나갔다가, 같은 반 아이들의 눈에 띄는 경우가 있던 터라 웬만해서는 집에 있는 것을 택했다. 물론, 그 집이라는 공간이 아버지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자리한 지옥 같은 곳이었지만 어린 나이의 이선에겐 수치심 보다는 지옥이 더 나았다.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느니, 아버지에게 실컷 두드려 맞는 게 오히려 속이 편했으니까.

 

"엄마 우리 도망가면 안 돼?"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이 든 밤마다, 이선은 엄마에게 그렇게 물었다. 우리끼리 새로 시작하면 안 되는 거냐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퉁퉁 부은 코에서 피가 솟구치는데도,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자신은 이미 늦었다는 듯 한 표정이 마음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황소고집보다도 더 한 엄마의 고집은 상대방의 속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이선은 엄마가 애써 발라준 연고를 손등으로 벅벅 닦아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잔인한 아빠보다 답답한 엄마가 더 싫고, 미웠다.

 

아버지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엄마는 소주 한 박스를 사와 아버지의 방 안에 밀어두었다. 차라리, 술을 진창 마시고 죽은 사람처럼 잠들어버리는 게 나았기 때문이었다. 술은 갈수록 늘어갔고, 주정뱅이의 술주정 역시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갔다. 오랜만에 외출을 한 아버지가 동네 사람과 시비가 붙어 돌아온 그날, 아버지는 엄마의 이빨 두개를 박살냈다. 입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엄마는 묵묵히 아버지가 먹을 밥을 했다.

 

"엄마는 왜 이렇게 바보 같아? 왜 아빠한테서 도망치지 못하냐고!"

 

17살이 될 무렵, 이선은 처음으로 엄마에게 반기를 들었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온 그날 밤, 싱크대 위에 올라가 있던 이빨 두개를 마주한 것이었다. 엄마의 두 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퉁퉁 부은 손을 옷에 대충 닦아내더니, 냉장고 위에 올려두었던 회초리를 집고 달려들었다.

 

"너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

 

엄마가 화낸 것은 처음이었다. 또한 엄마한테 매를 맞은 것도 처음이었다. 엄마는 미친 사람처럼 이선을 때렸다. 아빠에게 맞은 자리가 부풀어 오르다 못해 피가 흐르는데도, 엄마는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선은 그 자리에 서서 아버지에게 속수무책으로 맞았던 것처럼 매질을 감내했다.

 

"엄마한테 그런 말 하면 못써!"

", 잘못했어요."

 

날카로운 소리를 내던 회초리가 두 동강이 나고 나서야 엄마는 매질을 멈추었다. 텁텁한 방 안에선 피비린내가 풍겼다. 그제야 이선은 다리를 감싼 채 주저앉았다. 서러움에 구역질까지 치밀어 올랐다. 자리에 주저앉은 엄마는 이선보다 더 아픈 표정으로 울었다. 두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는데도, 늘 폭정을 일삼던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방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몸이 자라면서 아버지의 관심이 이상한 곳에 옮겨 붙었다. 이선이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목욕을 하고 나올 때마다 아버지의 시선이 온 몸을 훑어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진득한 시선에 이선은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서 야자를 하고 돌아오거나,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우면서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다. 어머니 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술 3병을 먹고 쓰러진 날 밤, 어머니가 먼저 탈출을 제의했다. 네 아버지 없는 곳에 가서 살자고, 이선을 설득한 것이었다.

 

도망은 어렵지 않았다. 연락을 끊었던 이모가 도와주기로 했다. 언니와 싸우고 난 이후로 내내 마음이 좋질 않았다며 이모는 미안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선은 엄마와 함께 집을 나와 이모네 집으로 도망갔다. 서울에 위치한 이모네 집에서 이선과 엄마는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날만큼은 아버지에게 맞게 될 거라는 불안도, 두려움도 없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편안함에 늘 일찍 일어나던 어머니 역시 늦잠을 잘 정도였다.

 

"몰라요. 언니랑 연락 끊긴지 오래에요."

 

아버지에게 연락이 온건, 그 다음날 오후였다. 아버지는 귀신같이 엄마의 흔적을 알고는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 이모는 엄마와 연을 끊었다며 딱 잘라 말했지만, 머지않아 아버지가 집을 찾아 쳐들어올 것이라는 불안에 떨었다. 결국 엄마는 이모네 집에서 지낸지 3일도 안되어서 떠나자고 했다. 이모에게 더 이상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말 갈 거야?"

"가야지, 이젠 우리끼리 알아서 할게. 고마워."

 

이모는 반대했지만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덕분에 이선과 엄마는 <마주도>라는 섬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라는 짐승 같은 인간 하나 때문에 아무도 찾지 못할 외딴 곳으로 떠난 것이었다. <마주도>는 인구가 20명밖에 안 돼는 작은 섬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와본 적이 있었다고 엄마는 덧붙였다. 그곳에서 이선과 엄마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섬 생활은 생각보다 더 적성에 맞았다. 서해안 끝에 위치한 작은 섬사람들은 인심도 좋아서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행복해보였다. 이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틈틈이 글을 써왔던 이선은 섬 생활에 대한 소설을 출판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생계 역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임 졌다. 그 때가 이선이 28살이 되던 무렵이었다. 서서히 엄마와 이선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잊어가고 있었다. 아니 잊어버렸다. 악마는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몇 년이라는 시간동안 술독에 빠져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빌었다.

 

"미선씨, 혹시 호진이라는 사람 알아? 당신 찾아왔다는데?"

 

하지만 불행은 너무도 쉽게 두 사람을 덮쳤다. 이웃집에 사는 형이 엄마가 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알렸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놀란 엄마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아버지에게 걸려 미친 듯이 얻어맞고는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갔다. 그 당시 이선은 서준네 집에서 글을 쓰느라 그 소식을 알지 못했다. 이웃들이 달려와 그를 뜯어말리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아버지가 칼을 들고 휘두르는 바람에 근처에 다가갈 수도 없었다.

 

섬이 안 좋은 이유는 경찰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마주도>는 인구수가 적은 탓에 바로 옆에 있는 <원이도>에서 경찰들을 불러와야했다. 아무리 경찰에 신고해봤자, 파도가 세거나, 일이 있으면 족히 1시간은 넘게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배를 타고 출동하는 1시간 동안 어머니는 비 오는 날 먼지가 날 정도로 맞았다. 몇 번이나 도망가려 발버둥을 쳐봤지만, 헛수고였다.

 

"네가 감히 도망을 쳐?"

 

폭정을 일삼는 아버지에게선 익숙한 약냄새가 났다. 언젠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주기 위해 샀던 비타민제와 간에 좋은 약들이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몸에 좋은 약을 먹어가며 체력을 키워왔다. 뼈만 남았던 몸뚱이는 물에 불어버린 것처럼 불어나있었고, 파르르 떨리던 손 역시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딸과 아내를 잡아 죽이려는 일념하나로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빌려둔 배에 반쯤 기절한 어머니를 실고 섬을 떠났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선이 마주한 것은 손에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고 있던 배 한 척 뿐이었다.

 

"하미선씨, 행방 혹시 아세요?"

"몰라, 연락 안 된지 오래야."

 

그 이후 어머니의 행방은 묘연했다. 아버지의 행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모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뒤, 어딘가에 다가 암매장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남의 얘기하듯 떠들어댔다.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예 작정하고 숨은 사람을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다. 이선은 섬을 빠져나온 이후 내내 어머니를 찾아다녔다.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고, 언론사에 틈틈이 얼굴을 비추면서 어머니를 본 사람은 연락 달라며 동정에 호소했다.

 

전화는 수십 통이 넘게 왔지만 다들 장난 전화나, 돈을 노린 전화뿐이었다. 그사이 어머니의 흔적은 점점 더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경찰들은 이만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기분이었다. 사건을 종결해버린 경찰들과 달리, 이선은 절대로 엄마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버지를 찾아내야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엄마의 흔적을 따라가던 이선은 우연히 <트루 라이프>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실 된 삶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매일 같이 엄마와 저를 때렸고, 결국 참지 못한 저희 모녀는 섬으로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안 건지 아버지가 찾아와 엄마를 데리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엄마가 아버지에게 맞아 죽었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가 살아있을 거라 믿습니다. 제발, 더 늦기 전에 엄마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TV 출연은 예상 밖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관심과 후원들이 몰려들었다.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 가족들에게도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그렇게 되었는데 왜 말을 안했냐며 가식을 떠는 탓에 이선은 억지로 성질을 억눌러야만했다. 아버지의 가족들은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었다. 소름끼치도록 이기적이었고, 지들밖에 모르는 나쁜 놈들. 이번 역시 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전화한 것이었다. 어머니 찾는 일을 도와줄 테니,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

 

", 이선씨. 더 자극적으로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볼 것 같아서요."

"더 자극적이요?"

", 많은 사람들이 보면 어머니도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청률이 오르자 PD는 그 이상의 것을 요구했다. 더 자극적인 것, 더 색다른 것. 그 말에 이선은 혹했다. 엄마를 찾을 수 있다면 뭔 짓이든 못할까 싶었다. 그래서 이선은 거짓말로 꾸며진 방송 대본을 읽었다. 아버지가 성폭행했다. 아버지가 매일 같이 찾아와 협박을 했다 등등 사실과 다른 말들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거짓말로 탑을 쌓는다면, 하늘 끝까지도 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D는 흡족해했고 그날 방송은 역대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어떻게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니? \네 아버지가 널 그렇게 키웠니?"

 

가족들이 찾아온 건 그로부터 꼬박 2틀이 지난 후였다. 방송 잘 봤다며 비아냥거리는 탓에 이선은 골머리를 썩어야만했다. 대뜸 그녀를 찾아와 고소장을 내민 가족들은 총 4명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사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라, 이선은 처음에 가족이라는 말도 믿지 못했다. 고소장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욕심을 덕지덕지 붙인 가족들이 이선을 찾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거짓말을 했다는 것.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소문들 때문에 자신들 역시 피해를 입었으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루라는 것.

 

"네 맞아요. 아버지가 이렇게 키웠어요."

"……."

"보고 배운 게 이런 더러운 짓 밖에 없어서 하는 짓도 이래요. 뭐 잘못되었어요?"

 

감정에 욱해 던진 말은 다음 날 아침 기사에 대문짝하게 실렸다. 가족들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 날 찾아온 4명의 가족들 중에는 박광석 이라는 언론사 직원도 끼어있었다. 가족들에 비해 유달리 덩치가 크고, 코가 작았던 남자였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에게는 남동생이 없었다. 언젠가 엄마가 아버지는 외동아들이었다고 말했던 게, 이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나길 시작했다.

 

아차 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광석과 가족들은 이선이 한 말은 모두 거짓이며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말로 언론을 선동했다. 광석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흔들렸다. 기자의 말에다가 명백한 증거까지 있으니, 사람들이 뒤집히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엄마에 그 딸이네, 아버지를 팔아먹은 패륜아 등등, 날카로운 화살이 된 말들은 이선의 과녁에 가차 없이 꽂혔다. 부정도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이미 언론에게 세뇌된 그들에게 변명이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도 같았다. 이선은 그날로 <트루 라이프>에서 하차 통지를 받았다.

 

거리에 굴러다니는 쓰레기가 된 것 같았다.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존재. 다들 쓰레기를 피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루에 수십 통씩 떨어지는 언론의 물매를 맞느라, 밖에는 나가지도 못했다. 방안에 쳐박혀 있는 동안, 이선은 울분에 받친 글을 썼다. 아버지의 폭정을 알아달라는 제 상처를 알아달라는 글이었다. 틈틈이 썼던 글은 장편 소설 뺨치는 분량을 얻었다. 몇 번이나 출판사에 투고해봤지만, 다들 미안하다는 대답만 돌아 올 뿐이었다. 결국, 이선은 본인의 이름을 숨긴 채, 하루라는 가명으로 출판사에 글을 접수했다.

 

그로부터 꼬박 한 달이 지난 후였다. 거의 포기상로 지내던 이선은 뜻밖에도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다. 원고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이선은 한 카페에서 출판사 직원을 만났다. 늘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귀염상의 남자였다. 그는 맞은편에 앉은 이선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원고의 작가가 논란의 중심에 선 여자일거라 생각도 못한 모양이었다.

 

"안되나요?"

"?"

"논란에 선 여자라서 안 되는 거냐고요."

 

이선의 질문에 그는 무척이나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표정에 다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올해 첫 신입사원이라며, 허술해도 너그럽게 이해해달라는 대리의 말이 아직까지도 귓가에 남아있었다. 그에 걸맞은 깔끔한 정장은 그의 성격과 무척이나 잘 맞아들었다.

 

", 아뇨. 됩니다. 사람이 아닌 글이 평가받는 거니까요."

"정말요?"

", 그럼요 분명 많은 사랑을 받을 겁니다. 제가 장담할게요."

 

이윽고 그의 말은 곧 사실이 되었다. 절대 팔리지 않을 거라 믿었던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온통 자극적인 내용들로 꽉 찬 이유 때문이었다. 책을 읽은 몇몇 독자들은 이선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녀가 작가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구설수에 휘말리는 건 끔찍했으니까.

 

인세가 나오자마자 이선은 차를 샀다. 그리곤, 엄마가 사계절을 날 수 있는 옷들 역시 구매했다. 혹시나 엄마를 만났을 때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을 구매해놓은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온 신입사원은 내내 이선의 곁을 맴돌았다. 그런 게 마냥 싫지는 않아서 이선은 그의 호의를 못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준호는 착하면서도, 듬직했고, 그러면서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앉아있을 땐 몰랐는데 일어서서 보니 키가 꽤 컸다. 키가 얼마냐는 질문에 그는 수줍게 웃으며 188라고 답했다. 158인 이선과 무려 30cm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키 차이만큼이나, 그는 이선과 차이 나는 것들이 꽤 많았다. 나이도 그랬고, 생각도 그랬으며, 가정환경도 그랬다. 그는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다. 받은 사랑을 돌려줄 줄 아는 사람, 그 누구보다 이선의 상처를 이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면서 이선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어머니 성함이 하미선씨 라고 했죠?"

"."

"공주에서 닮은 사람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가볼래요?"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건, 겨울밤이었다. 얼마 전 출장을 떠났던 준호는 소식과 함께 돌아왔다. 그가 내민 사진을 보자마자, 이선은 엄마라는 걸 알았다. 더 쇄약하고 힘이 없어 보였지만 어머니가 맞았다. 이선은 무작정 시동을 걸다가, 준호에게 끌려났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 난다면서 하면서 준호는 이선을 조수석에 태웠다. 가는 길 내내 어찌나 초조했는지 마음이 다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그날 밤, 이선은 시장에서 나물을 팔고 있던 어머니를 마주했다.

 

"엄마!"

 

이선은 무작정 달려가 엄마를 끌어안았다. 밖에 오랜 시간 동안 있던 건지 엄마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넋을 놓고 멍하니 서 있던 엄마가 아이처럼 울며 이선을 힘주어 안았다. 왜 연락을 안했어 하며 이선이 소리를 치자, 엄마는 대답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탈진할 정도로 울었다. 날이 어둑해지고, 엄마의 두 뺨이 시리도록 차가워졌을 때 이선은 엄마를 근처 카페로 이끌었다.

 

"네 아버지가 치매래."

"?"

"그래서 기억을 못해, 그때 일을."

 

엄마는 곧장 본론부터 꺼내들었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으니 용서해달라는 것이었다. 치매라니, 그토록 혐오하던 인간이 치매라니, 너무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이선아."

"치매라고 예전의 죄가 사라질 것 같아? 아버지 말고도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 많아."

"아버지 예전 같지 않아. 예전이랑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네 마음은 알지만 아버지 좀 불쌍하게 생각해줘."

 

엄마는 유독 예전을 강조해서 말했다. 이선이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접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 듯 보였다. 이윽고 엄마는 방송 이야기를 꺼냈다. 이선이 나오는 방송은 모두 챙겨 봤지만, 혹시라도 연락을 하면 피해를 줄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은 이선의 귀를 스쳐나갔다. 아버지가 치매라니,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하늘이 그에 맡는 벌을 준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섬에서 끌려나온 이후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밭을 팔아, 대구에 위치한 지금 집을 산 모양이었다. 과거에 진 빚까지 떠안고 나서 말이다. 엄마는 도망가려고 했지만, 아버지에게 또 다시 잡혀올까 두려워 도망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알코올을 달고 살던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다. 약도 통하지 않는 말기라고 했다. 아버지는 제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선이 누군지도, 엄마가 누군지도.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이선아."

"난 그 인간 싫어, 죽도록 싫다고."

 

그 말을 끝으로 이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카페를 나가 뛰어가는 내내, 엄마의 부름 소리가 들려왔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제가 뭘 그렇게 잘못 했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신이 있다면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뛰어가는 내내, 몇 명의 사람들과 부딪쳤지만 이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몇 명 사람들이 싸가지 없다, 예의가 없다며 손가락질을 할 때 마다 이선은 차갑게 웃으며 받아쳤다.

 

"부모한테 보고배운게 이런 짓 밖에 없어서 그래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그런 일이 줄비 하니까 그런 말도 생긴 것이었다. 미쳐버린 아버지를 심은 곳에서 미친 딸이 태어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진리였다. 그로 인해, 이선은 아버지가 심은 싹이 어떻게 자랐는지 톡톡히 보여줄 예정이었다. 새싹 같던 분노는 원망이 되고, 복수가 되어 피어났다. 복수를 만든 아버지를 만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누구에요?"

", 나 몰라요?"

"누군데요?"

 

엄마의 말대로 아버지는 이선을 몰라봤다. 의사의 말로는 이미 치매가 말기까지 진행된 상태라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손을 쓸 수 있다고 했어도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이선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춤을 췄다. 엄마와 연애하던 시절, 아버지가 종종 보여주곤 했다는 춤사위였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잊은 사람처럼 해맑게 웃었다. 아이 같은 웃음에 순간 머릿속 어딘가에서 폭발이 일었다. 이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버지의 멱살을 잡아챘다.

 

"나쁜 인간."

", 왜이래!"

"차라리 죽어버리지. 차라리, 어디 가서 콱 하고 죽어버리지 왜 살아가지고 난리야?"

"이선아!"

 

곁에 서있던 엄마가 이선을 뜯어말렸다. 이러지 말라고, 그래도 아버지이지 않냐며.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이토록 혐오스럽게 느껴진 것도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이선은 결국 아버지를 바닥에 힘껏 내팽겨 쳤다. 종이인형처럼 마른 아버지가 손길 한방에 바닥을 놔 뒹굴었다.

 

"누가 내 아버지야, 난 아버지 같은 거 없어."

 

어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었다. 이선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섰다. 모든 것을 지워버린 아버지가 멍하니 앉아있던 그 날, 그 날은 이선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른 마지막 날이었다.

 

*

 

엄마는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돈을 버는 일도, 아버지를 챙기는 일도, 이선을 챙기는 일도. 혼자서 모든 걸 다 책임지려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몇 번이나 아버지를 보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마음속에 자리한 원망을 지우는 게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이선은 아버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의 병색이 심상치 않다며 엄마가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폐렴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이선은 아무 말 없이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그때부터였다. 아버지가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악몽이라도 꾸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고 있는 게 아니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눈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이선은 어느새 눈을 뜨고 있는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다 죽어버려."

"거짓말이었구나."

"다 죽여야 해."

 

그 한마디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치매가 아니었다. 그의 연기에 모두가 속아난 것이었다. 그 말을 할 때 만큼 아버지의 눈빛이 또렸 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이선에게 주었던 굴욕과 설움 그리고 상처가 그의 눈빛과 말투 속에 담겨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선은 충동적으로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날이 갈수록 쇄약해진 아버지의 목은 한손에 다 들어올 만큼 작았다. 이선은 양손에 힘을 주어 누르며 그처럼 말했다. 다 죽어버리라고.

 

*

 

교도소에서 지낸지도 벌써 몇 년 째였다. 어느 날 하루는 고모가 찾아왔다. 예상치도 못한 방문이었다. 언젠가 돈을 놓고 싸운 적이 있던 그녀는 핏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에 눈이 부시도록 하얀 백발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선은 그녀를 마주보고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날의 일을 기억하니?"

 

아버지의 여동생, 그러니까 고모는 대뜸 그 날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이미, 19년도 더 지난 일이였지만 그 날은 이선의 기억 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이 흐리던 그날, 이선은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정신을 멀쩡히 차린 모습을 보고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치매 환자는 가끔씩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가 있었다. 이선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예전과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죽어버려!'

 

아버지는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눈은 핏줄이 다 튀어나올 것처럼 충열 되었고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신없이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자, 어느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그토록 죽이고 싶던 인간이 그토록 살리고 싶은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결국, 이선은 결국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감기에 걸린 것처럼 쿨럭 대던 아버지가 이내 팔을 뻗어 이선의 손을 쥐었다. 그리곤 억지로 자신의 목을 조르게 시켰다. 이선은 몇 번이나 그 손길을 뿌리쳤지만 아버지는 강경했다. 억지로 손을 빼내던 이선이 왜 이러냐며 소리치자, 아버지가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난 이미 다 죽여 버렸으니, 이제 네 차례라고. 네가 날 죽일 차례라고. 한참동안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던 이선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아버지의 일은 그 이후에 들었다. 어린 시절 고아가 된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입양해 키웠다고,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했다. 고아원을 전전하며 지내던 걸, 할아버지가 거둬 키운 모양이었다. 고모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꼭 남의 자식처럼 대했다고, 조금만 잘못해도 화를 내고 때리기 일 수였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선은 더 이상 듣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해서, 그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으니, 더 이상 흔해 빠진 진부한 스토리를 듣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시간은 비행기보다도 빠르게 지나갔다. 이선에게 19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도 짧고, 싱거웠다. 그동안 이선을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선의 어머니도, 준호도 더 이상 이선을 찾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굴조차 보지 않으려고 했다.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모양이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 불편해하는 것보다는 혼자 남는 것이 오히려 나았다.

 

19년의 형을 마치고 이선은 출소를 했다. 감옥을 벗어나던 그날, 하늘은 미치도록 파랗고 시렸다. 이선은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마주섰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교도소 주변을 빙빙 돌던 이선이 한참 끝에서야 가야할 목적지를 정하고는 길을 나섰다. 눈에 익지 않은 길을 지나, 상처가 가득 묻어있는 그 집으로 향했을 때, 이선은 뜻밖의 남자를 마주했다.

 

"이제야 만났네요."

 

말을 건넨 남자는 19년 전보다 더 늙었고, 더 인지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머리스타일과 옷 스타일 역시 바뀌어있었지만, 이선은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에 자신이 먼저 헤어짐을 고한 남자였으니까. 처음으로 사랑했던 남자였고, 처음으로 지켜주고 싶던 남자였으니 몰라보려고 해도 몰라 볼 수가 없었다. 이선은 그 자리에 멍하닌 서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머리 위로 파란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

"기다렸어요, 이선씨."

 

눈부시게 파란 희망이 상처를 보며 웃었다.




+


이름 : 최유지

핸드폰번호 : 010-5467-3942

이메일주소 : hellosky82@naver.com

  • profile
    korean 2019.03.02 14:04
    열심히 쓰셨습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신다면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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