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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의 죽음


다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전등이 너무 밝아 침대에 누울 때마다 불을 끄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색 침대보가 덮여 있는 침대에는 6개월이나 빨지 않은 이불이 한쪽으로 구겨져 있었고 낡은 매트리스에서는 돌아누울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침대에 누우니 증상이 나아지는 듯했다. 누운 자세는 위장에게 휴식을 주는 모양이다. 얼굴에 식은땀도 덜 나는 것 같고 어지럼증도 덜하다. 메스꺼운 건 아직까지 남아 있지만 이것도 곧 나아질 것 같다.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었다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조금 전에 차디차고 꿉꿉한 냄새의 화장실에 있었다. 곳곳의 하늘색 타일은 날 정말 하늘로 데려갈 것만 같았다. 증상이 계속해서 심해져서 정신이 혼미해지기까지 했었기 때문에 극심한 공포심에 떨어야했다. 이대로 병원에 실려가기라도 한다면 가족들에게 연락이 갈 것이라는 게 그 공포심의 가장 큰 이유였다.

좁고 차가운 화장실도 감옥 같고 이 한 평 반 남짓한 좁고 더운 방도 감옥 같다. 하지만 끝없이 넓은 바깥은 지옥 같겠지.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빨리 시작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세 시간은 더 누워 있게 생겼다. 일어나자 머리를 감았고 당연히 아직 조금밖에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색바랜 분홍색 베개에 눕혔다. 어지럼증 때문인지 편안하다는 생각뿐 찜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누워 있을 수가 없는 형편이라 한 시간쯤 후에 일어나 앉아보았다. 여전히 속이 울렁거리며 속에서 뭔가가 넘어올 것 같았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울 수 밖에 없었다. 이미 황금같은 아침 시간을 두 시간이나 버리고 말았다. 이른 아침이 일의 능률이 가장 좋은 시간대였고 그렇기 때문에 초조감을 느꼈다. 이렇게 자빠져 누워 있을 때가 아닌데 말이다.

나는 오늘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났다. 웬일인지 평소보다 허리가 더 아팠던 것이다. 일어난 후에는 샤워를 하고 여느 때처럼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다 마시고 나자 갑작스레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닥친 어지럼증이 귓속과 머릿속을 뿌연 안개처럼 만들기 시작했다. 깊은 바다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런 증상은 최근 몇 년 간 없었던 일이었다. 다른 방 사람들은 거의 자고 있는지 주위는 더없이 고요하였고 나는 소란피우지 않고 조용히 이 곤란을 해결해야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증상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곧 이어 위가 미칠 듯 울렁거렸고 장이 꿈틀거렸다.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하였다. 나는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했지만 나온 것은 위액인지 침인지 모를 거품기 있는 액체 조금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에서 극심한 꿈틀거림이 느껴졌고 곧 설사까지 하였다. 그랬음에도 아직 몸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두 내장기관이 각각 구토와 설사를 할 듯 통증과 함께 시동을 걸고 있었다.

전날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난 왜 어지럼증을 동반한 구토와 설사를 했을까. 밥을 굶은 것이 위에게 그렇게 못할 짓이었나. 그렇다고 상쾌한 아침 시간에 차갑고 축축한 화장실 바닥에 앉아 구토를 할까 설사를 할까 택해야 할 정도의 문제였을까.

나는 위장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토록 믿었는데 생각보다 인내심이 없었음을 알게 되니 실망스러웠다.

물론 나는 빈 속에 고용량의 비타민C도 먹는다. 위에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사실상 빈 속이 아닌 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이놈의 위장은 도대체가 자기 마음대로 인 게, 학대를 하면 그날 증상이 안 나타나고 다음 날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당장 비타민C를 먹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다 다음 날 점심 때쯤 속이 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도 전날 먹으면 다음 날 쓰린 것도 아니고 어떤 날은 쓰리고 어떤 날은 멀쩡하다.

나의 쌓이고 쌓인 생활방식이 위장을 화나게 하고 있었던 것일까. 화가 났었으면 진작에 말할 것이지 그렇게 음침한 화장실 바닥에 홀로 외로이 앉아 청승맞게 있도록 했어야 했나. 위장은 그동안 내게 꽁하고 삐져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앞으로도 아침 한 끼만 먹는 생활을 최소한 10일에서 최대한 20일까지 할 생각이었는데, 고작 이틀 했다고 이러면 문제가 심각하다.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위장의 화를 이해하고 당장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부드러운 죽을 사서 달래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럴 여력이 없다.

문제는 위장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한 달전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던 골반까지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다. 몇 년전에 허리가 화를 내기에 고가의 허리 받침대로 화를 잠재운 적이 있었다. 그 허리 받침대는 푹신하다기보다는 딱딱함에 가까웠고 두께가 두꺼웠다.

그 다음에는 무슨 통증이 있었는지 아는가. 바로 목이었다. 전체적으로 앉은 자세가 불량했던 모양이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뼈가 틀어졌어도 금방 제자리를 찾아갔지만 이제는 고착화되어 통증으로 나타나는 나이가 된 것이고.

나의 목은 거북목 증후군을 앓고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목에게 정말 미안할 따름이다. 목만이 아니다. 목이 아프니까 머리도 아프고 등과 어깨까지 아팠다. 아프다는 말을 하는 타입이 아닌데다 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몇날며칠을 혼자서 끙끙 대었다.

나는 목을 달래줄 방도를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묻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목 보호대를 시판하고 있었다. 그걸 한다고 해서 과연 목통증이 없어질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하기에 시험삼아 구입해보았다. 하지만 웬일로, 이것은 저렴한데도 효과가 좋았다. 안에 스티로폼이 든 것 같은 가볍고 두툼한 띠를 목에 두르니 목과 머리가 그 목 보호대에 의지를 하면서 더 이상 아프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목과 머리가 정말 심각하게 어지러웠기 때문에 병원이 아니면 해결이 안 날 줄 알았으며 평생 누워 있는 때가 아니면 어질어질한 상태로 지내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목과 함께 아팠던 등과 어깨의 통증도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으며 그동안 잃었던 삶의 의욕을 다시 한 번 불태울 수 있었다. 다시 일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 달여쯤, 이제는 골반이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목부터 시작해서 척추를 따라서 다 아프게 된 것이다. 그 다음은 어딜까 겁이 나기까지 한다. 솔직히 골반이 날 골치아프게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기는 아프기 전에는 환자가 된 자신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여섯 시간 동안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엉덩이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그러나 한 달 전부터는 한 시간만 앉아 있어도 골반 뒤와 앞이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랬지만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는 것이 싫어 계속해서 앉아 있었다. 그랬더니 이젠 30분만 앉아 있어도 골반이 극심하게 아파오지 뭔가. 그 통증은 주로 오른쪽 골반과 허벅지에 더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보나마나 골반 비대칭일 것이다. 오른쪽 골반이 밑으로 더 내려와 있는 비대칭인 게 확실하다. 생각해보면, 가끔씩 의자에 앉을 때, 오른쪽 다리를 위에 얹은 자세로 꼬고 앉는 게 더 편했다. 짝다리를 짚고 서 있을 때도 오른쪽 다리로만 몸을 지탱하는 게 편하기도 했고. 나는 왼쪽 다리를 홀대하고 오른쪽 다리만 대우한 것이다. 그러니까 비대칭과 불균형이 생긴 것이고.

의자에 오래 앉지 못하게 됐을 때 나는 매우 서럽고 원통하기까지 했다. 뭐 이룬 것도 없는데 골반 비대칭이라니. 모든 것이 딱딱한 의자 탓이다. 하지만 내겐 푹신한 의자를 살 돈이 없다. 나는 할 수 없이 아픈데도 딱딱한 의자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충분하진 않지만 나름 쿠션이 있는 의자만 사용했었다. 물론 이 딱딱한 의자에도 방석은 있다. 하지만 그 방석의 쿠션감은 오래전에 꺼져버렸고 지금은 그냥 칙칙한 나무색을 가려주는 화사한 보라색 천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딱딱함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딱딱하다고 무슨 일이 있으랴 싶었던 것이다.

나는 골반 비대칭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도저히 이 딱딱한 의자에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30분 동안 앉아 있다가 30분은 매트리스에 앉았다. 스프링이 달린 침대 매트리스는 의자에 비하면 100배는 푹신했고 엉덩이를 고통과 스트레스에서 얼마나 해방시켜주었다.

문제는 흐름이 자꾸 끊긴다는 것이었다. 연달아 한 시간은 일을 하고 싶은데 30분만 지나면 골반 가장자리가 따끔거리고 그 안쪽은 둔중한 통증이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도 능률이 오르지 않아서-골반 비대칭이 없던 시절의 작업량이 100이었다면 골반 비대칭이 생기고 나서는 80, 70, 60으로 점점 줄어들었다-그 통증들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의자를 떠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러고 났더니 잘 때도 골반이 아파서 고생을 했고 심지어는 그 다음 날까지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의 통증과 피로감만 느껴도 푹신한 매트리스로 자리를 옮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들었다.

의자를 푹신하게 해줄 물건이 뭐가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이불을 두 겹으로 접어서 방석처럼 얹고 앉는 것이었다. 물론 이불을 엉덩이로 깔고 앉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는 않고 위생상 좋을 것 같지도 않지만 돈을 쓰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그것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당장에 이불 귀퉁이를 의자 시트의 사이즈에 맞게 두 번 접어서 의자 위에 얹었다. 그리고 딱딱함이 푹신함으로 대변신했기를 기대하면서 떨리는 심정으로 앉아 보았다.

골반 비대칭이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다. 이불을 깔고 앉은 느낌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는 말이 적당할 것 같다. 물론 푹신해지기는 했다. 엉덩이의 통증이 경감되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저 아래쪽의 딱딱함은 느껴지는 것이 아쉬웠다. 다행히 능률은 전보다 좋아졌다. 100에서 60까지 떨어졌던 수치는 다시 80정도쯤으로 느껴졌고 20의 회복은 다시 삶의 의욕을 꺾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괜찮아진 줄 알았던 골반 통증은 얼마 후 다시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척추를 타고 온 마디마디가 아팠다. 나는 이런 임시방편으로는 척추 통증을 달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울했고 절망했으며 화가 났다. 그러고보니 나는 내 신체기관 전반에 대해 큰 죄를 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참다못해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 이제야 알겠다. 이 모든 것들은 척추의 계략이었다. 그 길쭉하고 삐쩍 마른 뼈다귀가 시킨 것이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구토를 한 것이 이상하다 했더니 하도 혹사를 당해 화가난 척추가 위를 협박해 주인을 괴롭히라고 한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척추의 의도대로 꽤 비참함을 안겨 주었다.

약하고 부분적인 통증이었던 것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보니 이러다가는 모든 장기가 척추의 편이 될 판이다. 방석과 받침대 등으로 없는 돈을 끌어모아 척추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려 노력했는데 그것으로도 모자라단 말인가. 나보고 더 이상 뭘 어쩌란 말인가.

대책을 강구해야했다. 나의 내장 기관이 모두가 나와 등을 지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의자 대신 침대에 누워 척추를 혼내줄 방법만을 생각하였다.

긴 숙고 끝에 마침내 척추를 괴롭힐 방법을 생각해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바깥 공기는 머릿속에 다량의 산소를 공급해주었다. 그 시원한 공기를 쐬며 걸으니 척추가 이완되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래, 마음껏 좋아해라. 곧 있으면 울게 될 거니까.”

한쪽 입술을 실그러뜨리며 척추에게 말했다.

나는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척추를 혼쭐내줄 마땅한 장소를 찾아야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심장, 간, 신장 기타 장기들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한패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에는 내가 애정을 쏟아부었던 그것들도 희망없는 날 수치스러워하고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난 할 만큼 했다. 돈도 없고 챙겨먹기 귀찮은데도 꾸준히 영양제를 사서 넣어주었다. 그렇게 힘을 키워줬으면 무서운 생각을 품고 있는 척추를 말렸어야 했다. 고작 뼈다귀에게 굴복한 그들에게 남은 애정과 믿음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긴 뼈다귀에게 그동안 사다바쳤던 칼슘과 비타민D를 토해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결국 호의가 권리가 된다는 말이 맞다. 내가 뼈다귀에게 굽실대면서 영양제를 사다먹였더니 더 완벽하게 건강해도록 만들지 못하냐며 작금의 나를 탓하는 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사실 조금 전에 섭섭하게 생각했던 심장, 간, 신장과 기타 장기들은 잘못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척추를 말릴 수 있는 것은 근육이었을 게다. 근육과 힘줄이 뼈다귀만 꼿꼿하게 잡고 있었어도 제자리를 이탈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러니까 근육도 내게 화가 난 것이다.

오호라, 이제보니 척추와 근육이 합심을 해서 위장을 협박한 것이로구나.

나는 근육에 좋은 영양제는 먹어주지 않았다. 단백질 말이다. 돈이 없으니 고기를 먹을 수가 있나. 그래, 반란을 혼자 일으키기는 어렵지. 온 몸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근육이야말로 척추의 혈맹군이 틀림없다. 다른 순하고 말랑말랑한 장기들은 죄가 없다. 다만, 운명일 뿐인 것이다.

그렇게 거리를 30분쯤 걸었을 때 마침내 적당한 곳을 찾아냈다. 그곳은 높이가 20층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나는 20층까지 순식간에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이라는 걸 하고 싶었다. 좁고 음침한 계단으로 향했다.

걸을 때의 척추는 그럭저럭 온순하게 굴었다. 어쩜 자신의 위험을 감지하고는 태세를 전환하기로 한 모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늦었다. 나도 이판사판이었다.

5층쯤 올라갔을 뿐인데도 나는 야생의 짐승처럼 헥헥거렸다. 나는 계단참에 서서 손바닥을 무릎에 올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눈속에 그것이 들어온 것은.

그것은 냉기가 올라오는 바닥에 뜬금없이 놓여 있었다. 척추는 생각보다 훨씬 지능적이었다. 나는 척추의 계략에 속아넘어갈 생각이 없다.

“이것도 네 짓이냐. 이젠 이따위 것은 소용없어. 넌 날 끝까지 괴롭힐 거야. 난 들었어. 네가 이렇게 도와주지 않는데 그깟 종이쪼가리 몇 장 있으면 뭐하느냐고 말하는 소리를...... 내 친구까지 잘도 포섭했더군. 그 애가 그렇게 모진 애가 아닌데 말이야.”

나는 돈에게도 사과를 해야할 것 같다. 분명히 나는 돈을 화나게 했다. 나는 그게 그렇게까지 얻기 힘든 물건인 줄은 몰랐었다. 내 고생은 충분했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끝이 아니었다. 삶의 태도는 점점 겸손하게 바뀌었음에도 돈은 그 처음의 오만함을 마음속에 꽁하게 담아두었는지 쉽게 마음을 풀지 않았다. 돈이 말은 안 해도 내게 분명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에게 돈을 빌려야하나. 이미 엄마에게는 세 번이나 빌렸다. 다 합치면 5백만 원이나 된다. 2백만 원 두 번에 1백만 원 한 번이었다. 엄마는 처음 두 번은 흔쾌히 빌려주었다. 하지만 세 번째로 설득하는 일에는 정말 진땀을 빼야했다. 그야말로 굴욕적으로 사정사정했고, 어머니는 그런 끈질김과 질척임에 지쳐 어쩔 수 없이 입금을 해주었다. 나는 느꼈다. 네 번째는 정말 어렵겠구나. 그래서 나는 세 번째 돈을 빌리고서는 나름 최선을 다해 창작을 했다.

나는 열심히 하다보면 산을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빌어먹을 산은 끝이 어딘지 모르게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렇게까지 되고보니 연락은 거의 안 하지만 그래도 어느 때고 연락하면 받아줄 친구 한 명이 생각났다.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염치없는 인간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6개월이나 연락 한 통 없었는데, 갑자기 연락해서는 돈을 꿔달라고 말하는 인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비참하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러느니 다시 단식을 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외려 구토와 어지럼증 등의 증상은 몸의 노폐물이 빠지고 새롭고 싱싱한 면역 세포가 생겨나는 과정이라고 한다. 적응기간도 이틀이면 된다고 한다. 단식으로 인해 식은땀을 동반한 구토는 오늘 처음이니까 내일이면 좀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어쨌든 돈을 빌리긴 빌려야 한다. 열흘에서 이십일이 지난다고 해서 돈이 들어올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예 지금 빌려서 충분한 식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무기력증을 유발하는 단식을 그만둘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게 더 현명한 것이다. 그 무기력증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게 만드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한시가 급한 이 상황에 자존심 때문에 아쉬운 소리를 못한 대가치고는 너무 컸다. 그냥 시간만 흘려보낸다니. 그런 식으로 해서 지금 하나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게 된 것인데, 절대로 다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물론 그런 부탁은 수치스럽다. 현재만 수치스럽고 그만이 아니라 먼 미래에까지 돈을 빌렸었다는 사실이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수치스럽다. 돈거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좋은 일을 하고도 그 친구는 친구를 잃을지도 모른다. 물론 거절을 해도 그녀는 친구를 잃을 것이다. 거절을 하고 친구를 잃으면 실상 아무 죄도 없는 그 친구는 자책감까지 느끼면서 친구를 잃는 이상한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오랫동안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을 그 부탁을 해야만 한다. 몇날 며칠 곰곰히 생각해봐도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중간중간 한심한 생각만 떠올랐다. 어디 가서 훔쳐볼까, 어디 공돈이라도 떨어져 있지 않을까, 혹시 바지 주머니에 미처 꺼내놓지 못한 지폐가 있는 건 아닐까 뒤져보는 짓거리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행은 없었다.

친구라도 많이 만들어두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인이라도 여러 명 만들어뒀으면 성공 확률이 높았을 텐데. 잘난 척하느라 친구도 안 만들어 둔 상태였다.

난 지금 돈을 빌리려는 친구가 거절을 할 거라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그 친구는 직장에 다니고 있고 혼자 사는데다 그 집은 월세가 아니고 전세라서 매달 큰 돈이 나갈 일이 없을 것이고, 직장 생활도 10년 넘게 했으므로 모아둔 돈도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그깟 백 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빌려주지 않을 리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깟’이라는 단어는 조심스럽게 써야 할 것이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걸리는 것이 있다. 그 친구는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여행하느라 모아둔 돈이 없을 확률이 있는 것이다. 또한 만약 내심 괴물 같은 상사 때문에 직장생활에 지쳐 이제 곧 그만 둘 것이기 때문에 돈을 아껴야겠다는 식으로 경제관념을 바꾸면 돈을 꽁꽁 묶어두려 할 것이다. 또 생각난 건데 그 친구는 병원에 자주 다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진료비로 상당액이 깨졌을 것이고 그 잦은 병치레로 인해 불안함을 느껴서 앞으로의 건강까지 크게 염려되어 통장의 돈을 단단히 봉인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렇다고 해도 우린 그런 사이는 아닐 것이다. 그 친구와 10년 가까이 꽤 가깝게 지낸 데다 그 친구는 나의 진중함과 양심성과 선함을 알 것이다. 그 친구도 그렇다. 그러니까 10년 가까이 친하게 지냈으리라.

그 친구는 아마 나의 연락을 받고 꽤 놀랄 것이다. 그렇게 잘난 척하던 친구가 그런 초라한 부탁을 하다니 하고 말이다. 이건 내 생각일까. 그 친구는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결국 돈 얘기를 꺼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여간 나는 그 친구가 거절했을 때 할 수 있는 플랜이 생각해 놓고 있지 않다. 생각하기도 싫다. 그 다음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 물론 세 번이나 돈을 빌려주었던 어머니는 빼고 다른 형제자매들은 빌려줄 확률이 높았다. 그들이 형편만 좋았다면 나는 이들에게 먼저 말했을 것이다. 또한 친구가 형편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면 친구에게 또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에는 또 어머니에게 사정사정했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해서 나는 친구에게 보낼 메시지를 고심하기 시작했다. 전화로 해야 하나. 그것이 예의겠지. 하지만 난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이건 안부를 묻는 문자가 아니야. 안부를 물을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부탁을 하지도 않았겠지. 현아야, 혹시 나한테 50만 원만 빌려줄 수 있니?”

이렇게 적었다. 이왕이면 자존심을 심하게 굽히지는 않는 쪽으로. 너무 굽실대어 찌질해 보이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보다는 자존심 강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이 빌려주는 사람으로서도 체면이 서는 일이라 여긴 것이다.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길이라 생각하여 어느 정도의 자존심은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에서이다.

아직 보내지는 않았다. 경솔하게 메시지를 보내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예상이자 희망사항은 내게 그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으면서 “알았어, 빌려줄게. 계좌번호 불러줘.” 이다. 하지만 인생이 내뜻대로 되지는 않으니 다른 대답도 생각해둬야 한다. 그쪽에서 만약 돈이 필요한 이유를 묻는다면, 일단은 말도 안 되지만 좀 짜증이 날 것 같고, 그래도 부탁하는 입장이니 자세를 낮춰서 “다음 달 월세도 내야하고, 먹을 것도 사야해서.” 라고 적는 것이다. 이랬을 때 예상은, “알았어, 빌려줄게. 계좌번호 불러줘.” 이다. 아마 까다로운 성격이 아닌 그녀는 이쯤에서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좀더 철저해져야한다. 예상과는 정반대로 만약 “나도 돈이 없는데.” 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상상만으로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떻게 해야할까.

별수없이 다시 한 번 사정해야겠지. “그래, 알았어.” 라고 끝낼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런 부탁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떻게 30만 원이라도 안 될까?” 이렇게 보내보는 것이다. 30만 원이면 방세를 내고 보름 정도는 아껴서 생활할 수 있는 돈이다. 이쯤에서 상대방이 “그래, 알았어. 계좌번호 불러줘.” 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보통은 이쯤에서는 빌려주지 않을까. 더 최악의 상상은 하지 말기로 하자.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갑자기 골반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특히 오른쪽 골반이 찌른 듯이 아팠다. 다른 신체기관은 더 일을 할 수 있었는데 할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가볍게 해주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죽으로 된 그 네모난 물건을 모른 척하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옳은 일인 것만은 확실하였다. 모른척하긴 했지만 잠시동안 내게 남은 행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약해지기는 했었다.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내겐 행운조차 남아 있지 않음이 이내 밝혀지고 말았다. 잠시 후 누군가가 아래층에서 헐레벌떡 뛰어올라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얼마 후, 내가 발견한 것을 그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을 본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환해졌고 곧바로 냉큼 주워 손아귀에 넣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다시 꿋꿋하게 행진을 계속하였다. 층계참 벽에 10이라는 숫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했다. 사실 벌써부터 죽을 것 같았다. 기실, 척추를 파멸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10층쯤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해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척추의 기세만 더욱 살려주는 상황이 올 수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하니 머리가 쭈뼛 섰다.

난간을 잡고 발을 질질 끌다시피 계단을 올라갔다. 온몸이 전체적으로 무기력해져갔지만 척추는 내게 특별한 통증을 주지 않고 있었다. 의자라는 감옥에 있던 척추를 계속해서 풀어주고 있는 꼴이었다. 내 생각에 척추는 슬슬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몸이 해방되는 즐거움을 맛보자 다가올 고통이 생각난 것일 게다. 그래서 지금 날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내내 뱃속을 옥죄어오던 공복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척추가 위에게 지시를 한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여기서 그만둔다면 척추는 내게 계속해서 산책을 나가자고 조를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한가하게 지낼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척추가 미워서도 싫어서도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내 척추를 사랑했고 지금도......

이미 일은 커져버렸고 기다란 뼈다귀가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고 해도 또하나의 어려운 일이 남아 있다. 그 뼈다귀를 지탱해주는 혈맹군 근육과도 상의를 해야하는 것이다. 척추가 다급하게 근육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근육은 내가 20층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물에 빠진 휴지처럼 힘없이 풀어지고 있다.

근육에게는 척추에게만큼 강한 유감은 없다. 그것이 화가 났다고 해서 극심한 통증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 척추의 반란을 막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근육에게 면목이 없어서 화를 풀라고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원체 순한 성격이라 드러내놓고 화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척추만큼 화가 나 있을 것이다. 고기를 먹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으니까. 나는 근육을 학대한 몹쓸 주인이다.

내가 지금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근육을 단단하게 조이며 행진하려 하는 것은 척추에 대한 원한 때문일 뿐이다.

13층쯤 왔을 때, 나는 탈출하게 해달라며 내내 울렁거리는 속을 달랠 수가 없음을 알았다. 나는 계단 중간에 멈춰서서 차가운 난간을 붙잡고 왼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입밖으로 거품 같은 위액이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오물이 스멀스멀 계단을 내려오며 계단참에 안착했다. 내가 위장에 독립심을 길러주었어야 했는데, 내 부덕의 소치이다.

회유와 협박. 내 몸속의 장기들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척추는 그것들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웬만해선 남을 잘 미워하지 않지만 한번 원한을 가지면 절대로 풀지 못하는 성격이다.

18층, 그러니까 목적지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다듬다 만 막대기 같은 뼈다귀는 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반들반들한 화강암 계단을 한 발 한 발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평소 제 역할을 확실히 완수해주던 오른발이었다. 그것이 문제를 일으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은 오늘따라 무슨 일이 있는지 땅을 대하는 마음에 성의가 없이 느껴졌다. 땅도 느꼈는지 그것이 갑자기 단단한 땅으로부터 배척당하듯 급하게 튕겨져 나왔다. 그 순간 나는 고통에 못이겨 “으악!”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척추의 공격에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불의의 일격에 맥없이 당했음을 인정해야했다. 갑작스레 접질린 발목을 부여잡고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면서 나는 척추에 대한 복수심이 더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발목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힘을 주면 끔찍한 통증이 몰려왔다. 척추는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겐 남은 다리가 하나 더 있었다. 게다가 고지가 눈앞이었다. 나는 멀쩡한 왼쪽 발을 딛고 난간을 잡은 채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다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쪽 발을 질질 끌며 20층까지 올라갔다.

20층 복도에서 내려다본 땅은 너무도 까마득해서 모델하우스의 모형주택 같았다. 오히려 그런 비현실감이 나를 단숨에 실행에 옮기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전에 접질린 오른쪽 다리를 돌난간 위로 올렸다. 골반에 통증이 느껴졌다. 척추가 움찔한 것이리라. 어차피 다리도 쓸모없게 됐겠다, 더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척추의 방해공작이었을 접질린 다리는 오히려 기폭제가 된 셈이다.

“척추야. 이제 다 끝났다.”

나는 척추를 향해 비장하게 말한 후, 더 잴것도 없이 바람을 가르며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내 척추는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2초 혹은 3초쯤 되는 찰나의 시간이었을 게다.

잠시 후, 그 길고 얄상한 뼈다귀는 산산조각이 났다. 심장, 간, 신장, 근육 등의 모든 신체기관들과 함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이 름 : 민미숙

이메일 : rollbbang1@hanmail.net

전화번호 : 010-2443-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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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2019.06.30 22:44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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