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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7 19:03

린넨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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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넨의 정원


 

프롤로그

2014년, 어느 화창한 날, 한 남자가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 그는 아주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화분을 꼭 쥐고 익숙한 듯이 그의 발이 향하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한 폐교가 있었다. 그 폐교는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듯이 넝쿨에 뒤덮여 있었고, 아이들이 사용하던 운동기구들은 모두 세월이 비껴간 듯이 녹슬어 있었다. 그 남자는 추억을 회상하듯이 폐교를 바라보고, 자신의 발밑에 있는 파란 물망초에 눈길을 주었다. 파란 물망초는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더 파랗게 보였고, 그 남자는 물망초 옆에 있었던 벤치에 앉아 그냥 하염없이 폐교와 물망초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에는 고풍적인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서 빛나고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멋스러운 건물에 그는 발을 멈추었다. 건물 간판에는 '린넨의 정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건물이 멋져서 그랬던 건지, 아는 집이라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향기에 홀린 듯 그 건물 안에 들어갔다. 잠시 후, 그 남자가 그 건물을 나왔을 때 좁은 골목길을 걸었을 때부터 들고 다녔던 그 작은 화분을 다시 들고 나오지 않은 채 나왔다. 그 대신 아주 큰 화분에 연보라색 라일락 나무가 심어진 화분을 들고 왔다. 그는 그 화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씁쓸한 듯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라일락……. 젊은 날의 추억……. 나는 아직 너를 잊지 못했어."

 

 

 

chapter1. 첫 만남

2001년, 새 학기이다. 좁은 골목길은 학생들로 인해 분주해졌고, 아이들은 새 학기로 인한 설렘을 느끼며 삼삼오오 모여서 장난을 치고, 또는 수다를 떨며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골목길에 위치한 한 멋스러운 건물에서 나온 한 여자아이는 새 학기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지, 그저 나뭇잎을 만지며 혼자 중얼거리면서 그 좁은 골목길을 통해 학교로 갔다. 그 여자아이는 한국인 같지 않았다. 얼굴은 한국인 같았지만, 머리카락과 눈이 아주 엷은 갈색이라서 꼭 외국인 같았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 여자아이 주변에는 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는 개의치 않았다.

그 여자아이는 아주 작은 반에 들어갔다. 2학년 1반. 2학년 2반은 없었고, 그저 1반이 끝이었다. 학교 종이 치고, 아주 키가 크고 젊은 한 여 선생님이 반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안녕 얘들아. 내 이름은 이은영이다. 앞으로 1년 잘 지내자. 전교 1등, 꼴찌는 끝나고 교무실로 와라. 시간표는 여기 있다. 내일부터 수업 시작이다. 오늘은 이만하고 마친다."

선생님은 구두 소리를 내며 교실을 나왔고, 그 뒤로 검은 머리의 남자아이와, 아침에 혼자 학교에 갔던 그 엷은 갈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교실 문을 나왔다.

선생님은 자신의 책상에 앉고 두 아이에게 말했다.

"전교 1등, 이름. 오현? 외자네. 이제부터 2학년 반장은 너다. 내일 아침에 이 프린터 모두에게 나눠주도록. 그리고 신청서 다 받아서 나한테 주도록. 그래 넌 이제 가 보아도 좋아. 전교 꼴찌, 이름. 윤린넨? 외국 이름인가? 뭐, 상관은 없어. 너는 보충수업 들어야 한다. 국, 수, 사, 과, 영 모두다. 시험을 안 친 건가? 다 빵점이네."

그때, 여자아이, 아니 린넨이 말했다.

"시험을 안 친 거면 보충수업 안 들어도 되나요? "

선생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 너 날라리니? 다른 시험도 다 빠졌네. 꼴은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네가 듣기 싫으면 듣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네 장래는 어쩌려고. 지금 꽃집 장사하는 건 아는데, 별로 잘 안 되는 것 같던데. 이제는 그나마 같이 살던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이제 장사는 접어야 할 것 같던데. 어쩌려고 그래? 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 보충수업은 안 들어도 된다. 이제 가봐 장사하러."

린넨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린넨은 교문을 나섰다. 그리고 빠르게 걸으며 중얼거렸다.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멋스러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린넨의 정원이라고 적혀져 있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검은 머리의 남자아이, 아니, 교무실에서 린넨 보다 빨리 나왔던 그 전교 1등 남자아이, 오현이 그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 그는 생각했다.

‘엄마 생일 선물을 어떤 걸 드리지. 역시 카네이션이 제일 났나? 하긴, 어버이날도 다가오고 있고. 그게 제일 낫긴 하지. 좋아, 카네이션을 사 드리자. 근데 여기 근처에 꽃집은 있나?’

그는 길을 걸었다. 그때, 그의 눈에 린넨의 정원이라고 적혀져 있는 간판이 들어왔다. 그는 중얼거렸다.

"있긴 있네."

그리고 그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 했다.

그가 갔을 때, 한 여자아이가 혼자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던 여자아이, 린넨은 그제야 남자아이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오현의 손을 부여잡고 부탁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줘, 제발!"

오현은 당황했다.

'자기가 혼자 미친 듯이 뛰어다녔던 것을 말하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다른 게 있는 건가?' 오현은 최대한 웃으며 대답했다.

"뭘?"

린넨은 부여잡았던 손을 놓고 말했다.

"내가 식물하고 대화한 거."

오현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판타지야? 식물하고 말하게?'

그리고 말했다.

"난 네가 식물하고 말한 것도 본 적이 없고, 네가 왜 그런 일을 비밀로 부치는 지도 알지 못하겠는걸."

그러자 린넨이 말했다.

"아, 어, 그게…….좋아. 그럼 말해줄게. 비밀로 해준다면."

오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러자 린넨이 한 소나무 옆에 가서 말했다.

"좋아, 그렇지, 흠흠. 내 발음이 웃기진 않지? 할아버지한테 배워서 아무래도 사투리 억양이 좀 들어가서 말이야. 그래, 이럴 줄 알았어. 한 명한테는 들킬 줄 알았다니까. 흠. 사람도 말을 하는데, 동물도 소리를 내는데, 왜 식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차라리 동물보단 식물이 더 똑똑한걸. 식물은 보통 사람만 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말도 할 줄 알아. 하지만 사람이 식물을 자르고, 물건으로 쓰고 그렇기 시작하니까, 식물이 너무 무서워서 말문을 닫는 거야. 누가 살인범하고 얘기하고 싶겠어? 더군다나 어린아이들도 식물을 꺾고, 가지고 노는데, 식물이 말을 하겠어? 그래서 요즘 작은 나무나 한 초등학생 1학년 만한 나무도 말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 나 같이 식물을 가꾸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중 몇 사람한테만 식물이 말을 하지. 자 봐봐. 아저씨! 이제 말해도 돼요!"

그러자 아주 낮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역시, 린넨 이라니까. 네 할아버지가 아무한테도 들키지 말라고 했잖아. 이봐, 검은 머리 친구. 여기로 와봐. 그래, 무서워하지 말고. 나는 소나무야. 이름은 아니고 종족이지. 너희들한테도 고려인, 바이킹족이 있는 것처럼. 내 이름은 한목이야. 한국나무라고 이 아이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지. 진짜 못 지었지? 나는 100살은 넘었어. 그 뒤로 세지를 않아서. 나는 이 마을 식물 족장이야. 우두머리라고. 얘네 할아버지가 내가 있는 곳에 건물을 지어서 내가 계속 자라는 거야.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하지 말라니까!"

그러면서 한목은 가지를 움직여 오현 어깨를 토닥여 줬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그렇지. 우리도 너희랑 똑같아. 조직이 있고, 말도 할 수 있고, 사회생활도 하지. 네가 린넨의 비밀을 말 안 할 거라는 건 알아. 누가 믿어주겠어? 안 그래? 그리고, 좀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한목은 오현을 끌어 올려 속삭였다.

"우리 린넨 좀 부탁할게. 애가 학교에 적응을 못해. 알겠지?" 그리고는 오현을 제자리에 다시 놔두었다. 오현은 린넨 에게 말했다.

"어, 나는 이만 가볼게. 어, 그러니까, 내일 보자."

린넨은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말했다. 오현은 그 꽃집은 나와서 집을 향해 걸었다.

'아, 무슨 그런, 식물이 말을……. 우와……. 한목이 아저씨라고 해야 되나. 할아버지인가? 아, 몰라 완전……. 어, 근데 나, 뭐 잊어버린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찜찜하지? 아! 카네이션!'

그리고 오현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밤새도록 그 꽃집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또, 린넨은 자신의 친구인 데이지한테 오늘 일어난 일을 모두 다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설렘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한테도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chapter2. 제라늄

학교를 마치고 좁은 골목길을 내려오는 오현. 눈에 린넨의 정원이라고 적혀져있는 간판이 들어오자, 냅다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는 엷은 갈색머리의 여자아이, 린넨이 소나무, 한목과 같이 얘기 하고 있었다. 오현은 소리쳤다.

"여기 카네이션 있어?"

그러자 린넨이 소나무 위에서 내려와서 오현을 맞이했다.

"안녕? 카네이션은 왜? 어버이날도 많이 남았고, 그때까지 돌볼 수 있겠어?"

그러자 오현이 말했다.

"아니, 어버이날 때문이 아니고, 엄마 생일이라서 그래. 있긴 있어?"

그러자 린넨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는 엄마 생신선물 계속 카네이션으로 드렸지?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야? 그냥 선물만 챙기면 된다는 듯이?"

그러자 오현이 말했다.

"그러면 뭘 드려야 되는데? 나는 카네이션 말고는 아는 꽃이 없어. 그렇다고 민들레나 개나리를 꺾어서 드릴 수는 없잖아?"

그리고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린넨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좋아 그러면 이 꽃 줄게. 어때? 예쁘지?"

오현이 꽃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네. 근데 왜 하필 이면 이거야? 이름은 뭐고?"

린넨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이 꽃 이름은 제라늄이야. 되게 예쁘지 않니? 네가 카네이션 생화 사가지고 가는 거 보니까, 너희 엄마 꽃 돌보는 거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이 건 정말 잘 키우면 계속 꽃이 폈다 졌다 하거든. 그리고 이 거 꽃말이 그대가 있어 행복합니다. 당신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습니다. 거든. 카네이션은 존경, 사랑이잖아. 물론 이것은 좀 더 연인 끼리 주고받는 꽃이기도 하고, 그런 꽃말이기도 한데, 그래도 엄마한테는 아들이 그런 말 하면 되게 좋아할 걸? “

그러자 오현이 말했다.

”그래 그럼 그냥 이걸로 줘. 얼마야? “

화분을 갈고 있던 린넨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말했다.

”이걸 돈 주고 살 생각이었어? “

그러자 오현이 말했다.

”여긴 꽃집이잖아. 꽃 파는 데 아니야? “

그러자 린넨이 다시 화분을 갈며 말했다.

”물론 그렇기는 한데, 여긴 1년 전부터 장사를 안 하고 있거든.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장사꾼이라고 부르긴 했어. 선생님도 그렇고. 우리 할아버지는 장사를 했을지 몰라도 나는 안 해. 솔직히, 살아있는 생명을 사고판다는 것 자체가 너무하잖아? “

그리고는 오현에게 예쁜 화분에 담긴 제라늄을 건넸다.

”자, 여기. “

오현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여기는 화분도 같이 파…….아니, 주네. 원래 갈색 화분에다 주잖아? 아주 얇은. “

그러자 린넨이 웃으며 대답했다.

”장사꾼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아니, 물론 장사꾼일지도 모르지만, 팔진 않아. 물물교환은 해. 네가 해바라기 씨앗을 주면 나는 해바라기를 그 대신 주는 것처럼. 그리고 이 화분은 기념으로 주는 거야. 너와 내가 친구가 된 기념. “

그러자 오현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어,……. 그래. 친구. 어,……. 난 이만 가볼게. “

린넨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그래, 잘 가! “

린넨의 정원을 나온 오현은 머리가 복잡했다.

‘나에게도 친구가 생긴 건가? 뭐……. 물론 평범한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는 친구…….’

그러고서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그래, 친구야 친구. 걔와 나는 친구. 근데, 나는 걔 이름도 모르는데……. 내일 물으러 가야겠다. 린넨의 정원에.’

그리고는 휘파람을 불으며 즐겁게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날 밤 린넨은 다른 식물들의 화분을 모두 간 다음에 한목의 가지에 누어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는 맨 위 두 번째 창문이 열리더니 다시 바람에 의해 닫혔는지, 누가 밀어서 닫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닫혀졌다. 그리고 린넨의 정원에서 다시 심한 바람이 불었다. 린넨은 익숙한 듯이 계속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갑자기 바람이 멈추었다. 무언가가 린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린넨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오셨어요? “

그리고 린넨의 뒤에는 흐릿하지만 형체는 있는 한 노인이 린넨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리고는 품위 있는 낮은 중저음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 할아버지가 왔다. 그때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게냐? “

 

 

 

chapter3. 데이지

학교가 끝난 뒤, 오현은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린넨의 정원으로 뛰어갔다. 경쾌한 방울소리가 나고 양 갈래 머리의 소녀가 뒤를 돌아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

오현은 숨을 헉헉 거리며 린넨에게 인사했다.

“어……. 안녕…….”

그러자 린넨이 웃으며 말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갔다 온 거야? 그렇다가 숨 막혀 죽겠다! 여기 앉아. 마침 차를 마시려던 참이었어.”

그러자 윤현이 린넨이 가져온 의자에 앉아서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말했다.

“너 이름이 뭐야?”

그러니 린넨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내 이름은 린넨이야. 윤린넨. 모두 받침에 ‘ㄴ‘이 들어가서 발음하기 힘들 거야. 그냥 넨이나 린으로 불러도 돼. 네 이름은 뭐야?”

그러자 오현이 대답했다. “오현 이야 오현. 성이 오, 이름이 현. 외자야. 네 이름도 신기하다. 외국 이름이네? 부모님이 외국에서 사셨나봐? “

그러자 린넨이 대답했다.

”아니, 그냥 엄마가 혼혈이라서 그래. 그래서 옛날부터 딸 이름을 린넨이라고 짓고 싶어 해서, 그렇게 지었는데, 하필 아빠 성이 윤이라서 되게 발음이 안 돼. 네 이름은 예쁘다. 오현. 현? 현아, 이렇게 불러야 돼? “ 오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냥 보통 애들은 이름처럼 오현아 라고 불러. 굳이 부르고 싶으면 현이라고 불러도 되고. 나는 그냥 린넨이라고 부를게. “

”좋아, 그럼 나는 현이라고 불러야지! “ 린넨이 웃으며 말했다.

오현도 린넨을 따라서 웃었다. 그때, 오현이 하얀 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갑자기 오현이 하얀 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는 무슨 꽃이야? 되게 계란같이 생겼다. 노른자하고 흰자. 저 꽃도 말 할 수 있어? 네가 준 제라늄은 말을 하지 않던데. “

그러자 린넨이 대답했다.

”너한테 준 제라늄은 말을 배우지도 않았고, 약간 아이큐가 낮은? 그러니까, 그리 좋은 품질은 아니라서 말은 못할 거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라늄이 그렇게 많이 분양받지 못했거든. 그래서 품질이 낮은 것 밖에 없어. 그래도 계속 잘 키우면 말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저 계란 같은 꽃은 데이지야, 데이지. 꽃말은 천진난만. 그래서 내 꽃 중에서도 아주 친한 단짝이야. 내가 매일 얘한테 별거 다 얘기해 주거든. 뭐, 자기 말을 더 많이 하지만. 되게 순수해 보이지? 근데 별로 그렇진 않아. 약간 천방지축 소년? 그런 느낌이야. 지금 말을 할지는 모르겠다. 얘들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야. 내가 씨를 뿌리고, 내가 말을 가르쳐 준 거거든. 한목 아저씨하고 같이. 한번 말 걸어 볼래? “

그러자 오현이 망설이며 대답했다.

“어? 음……. 응. 데이지야. 나는 오현이라고 해.”

그러자 데이지가 대답했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아주 명랑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어, 그래 안녕. 나는 데이지. 이름도 데이지. 하하하 웃기지? 웃겨야 하는데. 나는 산지 별로 안 됐어. 너는 되게 커 보인다. 린넨 보다 더 크네! 린넨 보다 큰 사람은 린넨의 할아버지 말고는 본 적이 없는데! 아, 내가 본 사람이 3명밖에 없구나! 그럼 너도 더 클 수도 있는 거지? 린넨은 망했어. 중1때부터 저 키 이었다니까~! 물론 나보다 더 크긴 하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 하잖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일 작다니. 분발 좀 해! 린넨!”

그 뒤로 데이지는 더욱더 쫑알거리며 말을 했다. 그러자 린넨이 말했다.

“데이지, 말 좀 그만해. 진짜 시끄럽네! 미안해, 현아. 얘가 조금 모자라고 무식해. 키 얘기만 하는 거는 요즘 자기가 잘 자라서 그런 거야. 일종의 사춘기랄까? 맞지? 천방지축 소년. 자기 얘기만 다하고, 하지만 저러다 다시 네가 말을 시작하면 잘 들어 줄 거야. 애가 저래보여도 착해. 조금 무식하기는 하지만. 데이지, 조용히 하라니까! 입이 없으니까 입을 막을 수도 없고! 한목 아저씨! 얘 입 좀 막아줘요.”

한목은 가지를 흔들며 말했다.

“얘 입을 말리는 것보다 저기 선반에다가 놓아두는 게 더 빠를 거다. 그럼 조금 조용해질 거니까. 나는 늙어서 너무 젊은 것 하고는 같이 못 있겠어. 특히 저렇게 말 많은 꽃들하고는 말이다. 아휴, 저번에 네 할아버지가 왔을 때 저 데이지를 말리는 법 좀 물어볼 거 그랬다.”

린넨이 대답했다.

“그러게요. 하지만 할아버지도 알지 못할걸요? 데이지처럼 말 많은 꽃도 없을 거니까요. 어? 한목 아저씨 물드실 시간이세요. 현아, 밖에 나가 있을래? 아니면 홀딱 젖고 말거야. 여기가 하도 큰데 나무도 많아서, 그냥 호스를 들고 막 돌릴 수밖에 없거든.”

그러자 오현이 말했다.

“뭐, 괜찮아. 오늘은 금요일이고, 내일은 노는 토요일이니까. 요즘 날씨가 더워지기도 하고.”

린넨이 호스를 끌고 오며 대답했다.

“좋아, 그러면 그냥 막 뿌린다? 옷이 젖는 대신에 내가 정말 예쁜걸 보여줄게. 저기 수도꼭지 좀 틀고 입구 쪽에 서 있어봐. 시작한다!”

오현이 수도꼭지를 튼 다음에 입구 쪽에 서 있자, 린넨의 정원에는 정말 엄청난 물 쇼가 시작된 듯 했다. 할머니나 입는 꽃 바지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양 갈래 소녀가 미친 듯이 돌아가는 것이 조금 웃기기는 했으나, 물과 햇빛이 만나 무지개가 생겼고, 그런 반짝반짝한 무지개가 천장에 족히 3개는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물맛을 본 나무들의 잎에는 물방울이 맺혀 수천 개의 잎들이 반짝거렸다. 꽃도, 땅도, 천장도 린넨의 정원의 모든 곳이 반짝반짝 거렸다. 꼭 밤의 별 같이 예쁘고 환상적이었다. 그랬던 것도 잠시, 린넨이 소리쳤다.

“빨리 수도꼭지 잠가. 아아아. 빨리 빨리!”

오현은 수도꼭지로 달려가서 수도꼭지를 잠갔다. 린넨은 호스를 든 채 주저앉아있었다. 오현은 린넨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미안, 미안. 잠시 넋이 나가서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린넨은 옷을 털고서 한목의 기둥에 기대며 말했다.

“난 괜찮아. 원래 가뭄 때만 이러는데, 저번에는 할아버지가 다 해주셨거든. 어깨너머로 봐서 한 건데, 역시 할아버지야.”

오현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키가 크셨나봐.” 린넨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한국인 보다는 클라나. 우리 할아버지는 유럽사람 이거든. 외할아버지. 우리 할머니가 유학가면서 만난거래.”

오현은 그 뒤로 린넨과 또래 친구들 끼리 나눌 만한 자잘한 것들을 얘기했다.

갑자기 오현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난 이제 가봐야겠다. 많이 늦었는걸. 주말에 도 꼭 올게. 저기 저 데이지 보러. 아, 그리고 엄마가 그 꽃, 좋아하셨어. 잘 있어!”

린넨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 그리고 이거, 가져가.”

린넨은 봉지를 오현에게 건넸다. 씨앗이었다.

“그거, 요번에 새로 수입한 씨앗이야. 너희 집에 가서 뿌려도 좋고, 여기에서 뿌려도 좋아. 너희 엄마 드려도 좋고. 화분 필요하면 나중에 나한테 달라고 그래! 잘 가!”

오현은 린넨의 정원의 문을 닫고, 집으로 뛰어갔다. 씨앗을 손에 꼭 쥔 채.

 

 

 

chapter4. 에델바이스

지옥 같은 일주일이 끝나가는 토요일 아침이다. 린넨은 침대에서 일어나 여느 때와 같이 식물을 돌보고 있다. 한 가지 다르다면, 원래 입던 일 바지가 아닌 그 작은 몸에 어울리는 주름진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남색 리본이 달린.

그때, 오현이 문을 열며 들어왔다.

린넨이 일어나서반기며 말했다.

“안녕! 일찍 왔네! 예정시간 보다 한 20분 정도 일찍 왔구나! 좋아! 앞으로도 이렇게 오면 돼! 돈도 갖고 왔지? 버스타고 가야 된단 말이야.”

오현이 말했다.

“어. 돈도 갖고 왔지. 근데. 너 그 원피스는 뭐야?”

린넨이 한 바퀴 돈후 말했다.

“예쁘지? 좀 짧긴 하지만. 어울리기만 하면 되지 뭐! 이거 저번에 할아버지가 사준거야!”

그러고는 린넨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목 아저씨! 저 갔다 올게요! 배고프면 저기 비료 봉지 있으니까 부으면 되고요, 데이지 깨면 저 시내 갔다고 말해 주시고요, 그리고 다른 애들은…….”

한목 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숨 떨어지겠다. 걱정하지 말고 갔다 와라. 이런 적이 어디 한 두 번이 아닌데 뭐. 그때는 언제나 너희 할아버지가 있긴 했지만, 일단은.”

그런데 갑자기 한목 아저씨가 린넨을 들어 올리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그래, 근데 괜찮겠니? 갑자기 몸이라도 변하면……. 학교에서도 위험한 일이 많은데.”

린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제껏 몸이 한 번도 변한 적 없었잖아요.”

그리고 한목의 가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린넨이 문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조심 할게요! 다녀오겠습니다.”

오현도 같이 문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저씨.”

두 사람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거의 뛰듯이 걸어갔다. 버스를 탄 뒤에, 사람이 없는 뒤쪽에 가서 같이 앉았다.

오현이 말했다.

“있잖아. 너희 할아버지 돌…….”

그러자 린넨이 말문을 막았다.

“우리, 어디 가야 되지? 일단 민트 꽃집하고, 화분도 사야 되고, 점심은 언제 먹지? 점심은 네가 내라! 내가 화분 사주기로 했으니까!”

오현이 한숨을 쉰 뒤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오전에는 꽃집 둘러보다가 점심 먹고 좀 구경하다가 집에 가자.”

버스가 시내 정류장을 알리고 난 다음 이 두 사람은 버스에서 내린 다음 꽃집으로 갔다. 거기서 린넨이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그리고 린넨이 행복해해서 그런 건지, 그냥 꽃이 많아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건지, 오현의 입가에도 살며시 미소가 베여있었다.

꽃집을 나간 뒤, 린넨이 행복해하며 말했다.

“우와, 역시 시내가 다르긴 다르네! 꽃씨도 많이 사고, 화분도 많이 사고, 이 네모난 갈색 화분은 내가 너 줄게. 내가 준 씨앗 있지? 그거 심으면 되겠다!”

오현이 물었다.

“근데, 그거 무슨 꽃이야? 아니, 나무인가? 잘 모르겠어. 씨앗만 봐서는. 뭐야, 그거?”

린넨이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갖다 대며 말했다.

“그건 비밀이야 나중에, 우리가 헤어질 때쯤 가르쳐 줄게. 꽃말과 함께.”

오현은 생각했다.

‘헤어질 때? 그때가 언제지? 완전히 헤어질 때? 아니면 잠깐 한 몇 시간 헤어질 때? 언제지. 그런 건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그냥 생각하지를 말자. ‘

그러고는 말을 돌렸다.

“우리 떡볶이 먹자. 저기 저 집에서 먹으면 되겠다. 너 순대랑 허파 먹어?”

그러자 린넨이 다시 되물었다.

“그게 뭔데? 떡볶이? 순대? 허파는 왜 먹고?”

오현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진짜 몰라? 우와. 저기 저 빨간색 떡이 떡볶이고, 저기 밥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순대고, 허파는 저거야. 나는 허파 진짜 좋아하는데. 되게 야들야들하고 말랑말랑해.”

린넨이 감탄하며 말했다.

“우와! 신기하게 생겼다. 허파를 저기 떡볶이라는 거 국물에 찍어먹으면 맛있겠다!”

그렇게 청춘 둘은 정말 많은 양의 떡볶이와 허파, 순대를 가볍게 해치운 후, 떡볶이 집을 나와, 상점이 즐비한 거리로 나왔다.

사실, 오현은 시내에 온 적이 없었다. 학업과 자신의 집안 사정에 열중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래 친구들도 몇 사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린넨은 할아버지를 따라 비료나 꽃을 사러 많이 와보긴 하였지만, 또래와 같이 시내에 와서 목적 없이 놀아 본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년과 소녀는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시내를 거닌 적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다 새로운 것이었다. 봄을 맞아 꽃단장을 한 사람들과 하얀 벚꽃 잎이 땅을 아름답게 장식했고, 하늘에는 벚꽃이 펴있는 벚꽃 나무들이 하늘색과 구름과 조화를 이루어 꼭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소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감탄을 했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은 커져 있었으며, 얇은 두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꼭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이.

소년의 눈은 그림 같은 풍경을 향했다가 다시 소녀를 향했다. 소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림만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소년의 입 꼬리는 살며시 올라갔다. 꼭 그는 소녀를 매우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년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린넨이 고개를 돌려 오현을 쳐다본 뒤, 아주 신나게 얘기했다. 오현은 흠칫 놀라며 괜히 고개를 돌렸다.

“신기해. 할아버지랑 왔을 때 시내는 이렇지 않았는데. 꼭 버려진 땅 같달 까? 여기가 바로 진정한 시내구나. 정말 활기찬데!”

오현은 다시 린넨의 눈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응, 그러네. 나는 시내를 처음 와 봐서. 이런 데인 줄은 몰랐어. “

그리고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지 린넨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린넨은 오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상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한번 가보자!”

액세서리 가게였다. 여러 종류의 액세서리가 있었다. 린넨은 머리핀 종류에 눈길을 주었다. 오현이 말했다.

“이거 사고 싶어?”

린넨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 아니야. 그냥 구경 한 거야.”

오현이 핀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음……. 어디보자. 어, 이게 예쁘겠다.”

오현이 고른 것은 큐빅으로 만든 검정색 리본 핀이었다. 오현은 린넨의 양 갈래에 묶여져있는 검은 고무줄을 뺐다. 린넨은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졌다. 오현이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린넨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너무 놀랐는지 린넨의 몸이 떨렸다. 오현은 린넨의 머리에 핀을 꽂아 주었다. 린넨은 안정이 되었는지 몸을 그만 떨고 거울을 본 뒤, 오현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예쁘다.”

둘은 상점 밖으로 나왔다. 오현은 린넨이 머리를 푼 게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린넨의 머리는 연한 갈색에 긴 웨이브 머리였다. 거기에 검은색 리본 핀을 꽂아 놓으니 꼭 시내에서 본 멋진 사람들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오현이 린넨에게 말했다.

“아까 전에는 왜 그렇게 몸을 떨었어? 어떻게 보면, 너는 나한테 너에 대한 얘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너희 할아버지도 그렇고, 그래도……. 우리가 친구인데 너는 너에 대한 얘기는 조금도 하지 않아서 나는 좀 속상한 감정이 있어.”

린넨이 머뭇거렸다.

“어……. 그게…….”

오현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됐어. 네가 말하기 싫으면 말 하지 마. 하지만, 나는 언젠가 네가 나에게 너에 관한 얘기를 해 줬으면 좋겠어.”

린넨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오현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는지 린넨을 위로해 주려고 했으나, 때마침 버스가 왔다.

린넨이 일어나며 말했다.

“가자. 버스 왔다.”

그러고선 오현에게 미소를 보였다. 자신은 괜찮다는 듯이. 둘은 버스를 탔다. 오현은 버스를 탄 뒤 힘들었는지 잠이 들었다. 린넨은 잠이 든 오현을 바라보았다. 그때, 린넨의 옆에 약간 투명한 할아버지 형체의 무언가가 앉아서 린넨에게 말을 걸었다.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겠니?”

그러자 린넨이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chapter5. 주황색 장미

시내에 갔다 온 다음날, 오현이 린넨의 정원에 들렸다. 오늘은 린넨이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오현을 본 린넨은 손을 흔들며 인사하며 말했다.

“어제 집에 잘 들어갔지? 나는 잘 들어갔어. 어제 완전 잠에 푹 젖었던데. 오늘 아침 힘들진 않았어?”

오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말하더라. 술 마셨냐고. 그건 그렇고 내가 준 핀 안 했네?”

린넨이 대답했다.

“어. 그게. 좀 비싸보여서, 어디 나갈 데에만 하려고.”

“그래? 아, 다름 아니라,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린넨이 오현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내 얘기 들으러 온 거지? 우리 할아버지 얘기랑, 뭐, 내 가족사도 궁금할 테고, 왜 내 부모님은 없는지, 난 어디에서 왔는지. 얘기해줄게”

오현이 웃으며 말했다.

“아닌데. 나는 내 얘기 해주려고 온 거야. 일단 내 얘기를 해주면, 네가 얘기해줄 마음이라도 들 것 같아서.”

린넨은 멋쩍은 듯이 말했다.

“아, 그래…….”

오현이 말을 이었다.

“그것도 그거고, 나야말로 너에게 내 얘기 하나 안 해준 것 같아서 그래. 그래서 오늘은 내 얘기 해주려고 온 거야. 나한텐, 지금까지 친구 하나 없었어. 네가 첫 친구야. 왜냐하면, 나한테는 아빠가 없거든. 우리 엄마는 미혼모고. 여태까지 나를 혼자 키우신 아주 대단한 여자지. 나의 이상형이기도 하고. 우리엄마는 회사를 다녀. 그래서 나는 솔직히 엄마를 많이 보지 못했어. 그리고 엄마를 원망해. 물론 사랑도 하지만, 사랑하는 것보다는 원망이 더 큰 것 같아.”

오현이 고개를 숙였다. 이때 까지 보지 못했던 무거운 표정이었다.

“엄마가 미혼모니까, 다른 아이들의 엄마는 아이들에게 나랑 놀지 말라고 하시고,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나를 이상하고 못된, 나쁜 아이로 봐. 그걸 엄마한테 말하니까, 엄마는 그냥 무시하라고만 하더라. 학교 가니까 그런 게 더 심해졌고. 나는 한 부모 자녀니까, 교무실에도 많이 불려가고, 이름도 외자라서 애들이 놀리기도 했어. 그래서 더 노력했어. 그리고 중1때 전교1등을 했지. 정말 웃으면서 엄마한테 말했는데, 엄마는 그냥 무시하더라고. 엄마랑 말 몇 마디 해본 적 없어. 내가 인사하면 엄마는 무시해. 그래서 이제 엄마를 그냥 원망해. 누가 날 불효자라고해도, 엄마가 나를 아들로 봐주시지를 않는데, 내가 어떻게 엄마를 원망하지 않겠어. 정말, 정말 원망스러워.”

오현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말로는, 입으로는 엄마를 원망한다고 했는데, 표정은 꼭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정적이 흘렀다. 오현의 눈에는 눈물이 사라졌다.

린넨은 말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국어시간에 배운 내용들일 텐데. 수업 좀 들을걸.

오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쓸쓸한 눈동자로 린넨을 바라봤다.

“이게 바로 내 얘기야. 별거 아닌 거 같지만, 하지만 나는, 이 얘기 때문에 내 인생 15년을 오직 엄마한테만 바쳤어. 이젠 아니야. 이젠 나한테 엄마는 없어.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나 혼자 서울 가서 살 거야. 비 온다. 우산 좀 빌려줘. 이런 기분인데, 비까지 맞으면, 정말, 안 좋으니까.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리고…….”

오현이 문을 열고 우산을 피며 말했다.

“이 이야기는 비밀로 해줘.”

오현이 린넨의 정원을 나왔다. 린넨은 물방울이 맺힌 창문을 통해

오현의 뒷모습을 봤다. 조금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밝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현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간다. 멀어져 갈수록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불쌍해보이지는 않는다. 오현이 싫어할 테니까. 아니, 쓸쓸해 보이는 것조차 싫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현의 뒷모습은 무척 쓸쓸해 보였다.

린넨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일 어떻게 오현의 얼굴을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밖에서는 비 내리는 소리로 시끄럽기 까지 한다. 저번 주만 해도 가뭄이었는데. 원래 고마워해야 되는 비지만, 왜 이제 내렸는지, 왜 하필 오늘인지.

오늘은 비가 꼭 불청객 같다.

 

 

 

chapter6. 하얀색 장미

오현이 자신의 이야기를 린넨에게 말 해 준 뒤로 린넨과 오현은 학교에서 말 한마디, 아니 인사조차 하지 않았고, 그 뒤로 일주일이 지났다. 장마라도 온 건지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고, 둘의 기분은 아주 안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린넨이 오현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린넨은 덜컥 겁이 났다. 오현이 문전박대를 하면 어쩌나. 아니면 엄마가 나올지도 몰라. 그때, 오현이 대문을 열며 나왔다.

“어, 안녕?”

린넨은 버벅대며 말했다.

“그래, 아, 안녕? 아니, 난 다름이 아니라”

오현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들어와, 우산 이리주고.”

둘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오현의 집은 넓어 보였다. 둘이 살기에는 정말 차갑고, 넓었다. 오현은 간식을 내놓고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그래, 오랜만이네. 내가 요즘에 바빴어. 엄마가 회사일 때문에 집에 안 와서 돈도 없고, 요리는 못하고, 아주 난장판이었다니까. 그래서 린넨의 정원에 들르지 못했어. 미안해. 아, 그건 그렇고, 여기는 왜 왔어?” 린넨이 머뭇거리자 오현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난, 엄마를 원망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아무래도 내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그냥, 그때, 비가 와서 갑자기 감성이 폭발 했나봐. 평소에는 잘 지내는 편이야. 물론 몇 마디만 하는 거지만, 그냥 나는 우리 엄마가 다른 엄마들에 비해 무뚝뚝한 게 조금 섭섭해서 그렇게 하소연을 한 거야. 물론 조금은 아니지만, 일단, 옛날에는 정말 말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요즘에는 엄마한테 밥 차려주면 고맙다는 말 정도는 들어. 어, 왜 그래!”

린넨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 너는 말하기 힘든 것도 나한테 다 말해주는데, 나는 너를 못 믿었어. 친구라고 먼저 그랬으면서, 선물까지 해 줬는데, 너를 못 믿었어. 너는 내가 친구라고, 첫 친구라고 그렇게 까지 믿었는데. 미안해. 정말.”

오현은 린넨의 앞으로 다가가 린넨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그래서 온 거 아니야? 미안해서. 너는 네 얘기 못해줬는데, 나는 너한테 모든 것을 다 말해서. 그럼, 나한테 말해줘. 너의 이야기를.”

린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그래. 알겠어. 우리 엄마는 유럽인과 한국인 혼혈이고, 우리 아빠는 한국인이야. 그러니까, 그 말은 우리 외할아버지는 유럽인이고, 외할머니는 한국인인데, 할머니가 유럽으로 유학 와서 할아버지랑 결혼도 하고, 엄마도 낳으면서 잘 지냈어. 근데, 우리 엄마는 혼혈인이잖아.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게 많이 따돌림을 당했어. 강도도 당했고, 일단, 혼혈이어서,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그렇게 많이 차별을 당했대. 그래서 할머니는 엄마가 아빠와 결혼하겠다고 한 것을 반대했어. 할머니는 유럽인을 원했거든. 하지만, 엄마가 한국인인 아빠를 데리고 오자 난리가 난 거지. 그래도 일단 엄마랑 아빠는 결혼을 하고 나를 낳고 유럽에서 잘 살려고 했지만 엄마가 큰 병에 걸렸어. 암이었던가. 엄마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걱정하실까봐 그 사실을 숨기고, 나랑 아빠한테만 말 했어. 그리고 얼마 못 가 엄마는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아빠보고 한국에 가서 살라고 하셨어. 우리 할머니 아빠가 엄청 높은 사람이어서, 돈도 많았거든. 그래서 아빠한테 집도 사주고, 차도 사준 다음에 한국에 가서 살라고 그러셨어. 사실, 우리 할머니는 나를 별로 귀여워하진 않으셨어. 좀. 뭐랄까. 무뚝뚝하고, 언제나 엄마만 맞아주고, 나랑 아빠는 투명인간처럼. 그렇게.”

린넨은 애써 웃으면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현도 애써 미소를 지었다. 린넨이 말을 이었다.

“일단, 뭐, 그렇게 아빠랑 한국에 와서, 이제 정말 잘 살 줄 알았는데,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 출근길에. 추락사고. 근데, 차는 찾았는데, 아빠의 시신은 못 찾아서 실종으로 처리됐어. 다른 사람들은 아빠가 죽었대. 근데, 나는 실종일 것 같아. 아빠가 그랬어. 아빠 가문은 뭔가 이상한 원리가 있어서, 운명의 실로 이어진 한 사람이 있대. 그러니까 그 사람의 마음이 죽으면 자신도 죽는, 그런 이상한 원리가 있대. 예를 들면 그 사람의 마음이 15살이면 15살로 사는 거고, 그 사람의 마음이 100살에서 1살로 바뀌면 자신도 100살에서 1살로 몸이 바뀐데. 신기하지 않아? 근데 나는 한 번도 내 몸이 바뀐 적이 없거든. 나는 아빠 쪽보다는 엄마 쪽을 더 많이 닮았나봐. 근데 사람마음이 죽었다는 것은, 사람이 죽었다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그날, 그 시간에 죽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어. 물론 마음만 죽었던 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믿으려고 실종이라고. 뭐, 일단, 아빠가 그렇게 되자 할아버지가 한국에 오셨어. 할머니는 안 오셨고. 한국에 오셔서 이 린넨의 정원을 차리시고, 나를 키우시다가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어.”

린넨이 말을 이으려 할 때, 오현이 소리쳤다.

“돌아가셨어? 할아버지는 린넨의 정원에서 살고 계신 거 아니셨어?”

린넨이 대답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한 거야? 아니야. 돌아가셨어. 그냥. 나랑 여기 있는 이 식물들은 할아버지가 보여. 물론 불완전하게 보이긴 하지만, 아직 할아버지는 황천길에 오르진 못했나봐. 그렇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내 가족은 할머니 한명 뿐인데, 그게, 할머니는 차라리 나랑 연을 끊고 싶어 하실 거 같아서 아직 말 하지 않았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차라리 모르고 계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린넨이 말을 끝내고 난 뒤 오현을 바라봤다. 오현이 말했다.

“그래, 그랬구나. 어,……. 솔직히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근데, 내가 생각해보니까, 할머니가 너를 싫어하신 건 아닌 것 같아. 좀……. 불쌍히 여겼달 까? 그런 거 같던데. 너희 엄마가 당했던 거처럼, 너도 그렇게 따돌림 당하고 나쁜 일을 당하며 살지 모르니까. 그래서 그랬던 거 아닐까? 그리고 다 말 해 줘서 고마워. 이젠 모든 게 다 믿음이 간다. 식물들이 말을 하고 하니까, 귀신도 믿게 되고. 아, 귀신은 아니신가? 일단, 그 이상한 원리 좀 더 자세히 말 해 줄 수 있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비슷한 걸 나한테 말해준 사람이 있었거든.”

린넨이 신기한 눈으로 오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진짜? 우리 가문과 운명의 실의 상대. 물론 우리 가문과 만나야만 알 수 있지만. 혹시 다른 가문이 더 있는 건가? 뭐, 나도 아빠한테만 들은 얘기야. 운명의 실이란 게 있대. 그게 우리가 태어날 때 결정하는 거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건 사랑의 의미보다는 우정의 의미가 더 강하대. 아빠도 아빠의 운명의 실의 상대를 모른댔어. 그리고 나는 내가 운명의 실로 묶여있는지 조차 몰라. 한 번도 몸이 바뀌어본 적이 없거든. 아빠는 한번 바뀌어 봤대. 9살 때, 학교에 갈려고 했는데. 갑자기 어른으로 바뀐 거야. 그러다가 다시 9살로 돌아왔대. 진짜 9살인지도 모르겠지만. 운명의 실의 상대는 동갑이고, 성별이 다르대. 그리고 운명의 실의 상대와 이상한 공통된 특징이 있대. 그게 내면적인건지 외면적인건지는 모르지만.”

오현이 대답했다.

“어. 그렇구나. 흠. 나는 그냥 그 아저씨가 나한테도 운명의 실이란 게 있을지도 모른대. 그게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 의미는 같은데, 뭔가 그 아저씨가 얘기하는 거 하고, 네가 얘기하는 건 다fms 것 같아. 근데,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르잖아. 근데 어떻게 나 자신만의 15살의 슬픔을 알고, 20살의 슬픔을 안대? 그리고 15살이 20살의 슬픔을 어떻게 알아?”

린넨이 대답했다.

“그게, 운명의 실의 상대는 자신의 이름이 정해지자마자 이름과 걸맞게 인생이 짜여져. 꼭 퍼즐처럼. 근데, 그 인생에서 한번은 운명의 실이 걸려있는 사람을 만난대.”

그리고선 린넨이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맞아! 맞아! 이게 핵심이야. 그러니까, 이 운명의 실도 대를 이는 것처럼, 그 운명의 상대도 대를 잇는데. 우리 가문이 그 가문을 무척이나 좋아 하는 것 같다고 했어. 하나같이 꼭 그 가문을 뽑는다고. 그럼 그 가문을 찾으면 된다고 했어. 근데 친할아버지가 말도 못 하시고 돌아가셔서.”

오현이 대답하려고 했을 때, 전화가 울렸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둘은 멍하니 가만히 있었다. 무언가 받으면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현은 전화기 쪽으로 다가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chapter7. 안개꽃

“여보세요?”

수화기를 든 오현의 손이 떨렸다. 그는 수화기를 전화기 위에 올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겉옷과 바지를 챙겨 입은 뒤에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린넨도 오현을 뒤따라 나왔다.

둘은 우산도 없이 밖에 나와 택시를 탔다. 오현이 말했다.

“파티오 병원으로 가주세요. 린넨 너도 타.”

린넨도 오현을 따라서 택시에 탔다. 오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택시에서는 정적만 흘렀다. 린넨은 생각했다

‘병원? 그것도 이렇게 먼? 뭐지?’

둘은 병원에 도착했다. 오현은 어떤 한 의사한테 뛰어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의사는 안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근데 워낙 많이 다치셔서. 일단 수술을 시작해야 되는데 친자 분밖에 보호자가 없어서. 여기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네. 일단 수술을 하면 일반 환자실로 옮기게 될 것 같습니다.”

의사는 오현에게 잔인하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잔인하게 그는 떠나갔다. 오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린넨은 무언가 아주 심상치 않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현은 울고 있었다. 린넨의 눈에 비친 오현의 모습이 점점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린넨은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기절했다.

린넨이 눈을 떠 보니, 오현이 옆에서 빨개진 눈으로 린넨을 바라보고 있었다.

린넨이 물었다.

“어? 뭐지? 어떻게 된 거야? 아, 너희 엄마는 괜찮아? 왜 여기 있어? 엄마한테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오현이 대답했다.

“괜찮아. 잠깐 들른 거야. 너야말로 왜 왔어 병원에 오면 안 되는지 알았잖아.”

린넨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와달라고 했잖아. 그리고 이제 괜찮은 줄 알았지 어떻게 알았어?”

오현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아저씨가.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무슨 트라우마야?”

린넨이 한숨을 쉰 뒤 말했다.

“하. 그게, 별거 아닌데 우리엄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그때 너무 충격을 먹어서 그래. 처음으로 시신을 본 거였으니까, 그리고, 그때, 엄마가, 내 땋은 머리를 풀었어. 꼭, 같이 가자고. 나 혼자는 죽을 수 없다는 듯이. 그래서 시내 갔을 때, 네가 머리를 풀었을 때 조금 놀라서 넘어진 거야. 미안해.”

오현이 린넨의 손을 잡았다.

“내일, 내가 할 얘기가 있으니까 병원 앞 공원으로 나와. 그리고 미안해하지 마. 나도 이제부터 미안해 안 할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 말할게. 미안해.”

오현은 린넨이 손을 흔드는 것 도 지켜보지 않은 채 문 밖으로 나왔다.

린넨은 오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주 힘들어 보였다. 그때, 린넨은 자신의 옷이 조금 헐렁해진 것을 느꼈다. 머리도 조금 짧아졌고 발과 손도 작아진 것 같았다. 린넨은 신발을 신어봤다. 딱 맞았던 신발이었는데, 발을 들고 신발을 신은 발을 흔들어 보니 헐렁거린다. 린넨은 양말을 신고 다시 신발을 신어보았다. 그리고 신발을 신은 발을 흔들었다. 다름없이 신발은 흔들거렸다. 꼭 린넨의 마음을 조롱하듯이.

린넨은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운명의 실의 상대라.”

 

 

 

chapter8. 카사블랑카

린넨은 병원 공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오현을 기다렸다. 공원은 병원 공원 치고는 아주 아름다웠다. 여러 색의 장미도 많았고, 안개꽃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옆을 꾸며주고 있었다. 그리고 카사블랑카라는 꽃도 있었다. 린넨은 이 꽃을 처음 봤기 때문에 아주 신기해했다. 그때, 오현이 카사블랑카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린넨에게 말을 걸었다.

“뭘 보고 있는 거야?”

린넨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어. 그게, 아니, 저 꽃이.”

오현은 큰 소리로 웃었다. 린넨은 오현의 기분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현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린넨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더 작아진 듯한 느낌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오현이 웃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린넨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 린넨, 우리 이제 그만 친구하자. 나는 너랑 친구할 자격이 없어.”

린넨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왜 갑자기 오현이 또 우울해지는지는 알지 못했다.

오현이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 서울로 갈 거야. 내가 원하는 대로. 엄마가 나한테 지금까지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대. 그러니까, 이제 우리 그만 친구하자. 나를 잊어줘. 제발. 나는 지금까지 내 멋대로 했어. 친구는 둘이서 하는 건데, 나 혼자서 들키고 싶지 않을 너의 비밀을 들으려고 너를 계속 쪼아댔고, 그리고 이제 너하고는 친구를 못할 것 같아. 미안해. 정말.”

오현은 그 말 만 남기고 떠났다. 린넨은 이게 무슨 일인지 멍했다. 린넨은 오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정말, 내가 너를 잊기를 원하는 건가. 정말 너를 잊을지도 모르는 대. 마음이 가는대로 몸이 가면 뭐해. 정말 세세한 거는 알지 못하잖아.”

그리고는 뒤에서 눈물을 훔쳤다.

 

 

 

chapter9. 물망초

오늘은 오현네집 이삿날이다. 둘이서 사는 집이라 짐은 별로 없었다. 오현은 유년기와 조금의 청소년기를 보낸 이집을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불행을 주고, 행복을 주고 추억을 주고, 또, 첫 친구를 준 이 마을. 정들었던 이 마을을 이제 떠난다. 오현은 마지막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학교도 가보고, 염치없지만 린넨의 정원에도 들렀다. 한목 아저씨와 데이지는 아주 아쉬워했다. 하지만 거기에 린넨은 없었다. 오현은 이렇게 보니 자신의 동네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린넨을 보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 보니 편지와 함께 화분이 와 있었다. 아주 작은 화분이었다. 편지를 보니 린넨이 보낸 거였다. 편지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To. 현

안녕? 하하. 이렇게 하니까 조금 어색하네. 이걸 보고 있다면, 지금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거겠지? 나는 유럽에 잠시 갔다 올 거야. 할머니를 만나서 모든 이야기를 전하기로 마음먹었어. 그리고 엄마의 묘에도 갔다 오려고. 또, 여행도 할 거야. 네덜란드로 가서 튤립도 볼 거고, 프랑스에 가서 치즈도 먹어볼 거야. 재밌겠지? 뭐, 몇 달밖에 안 됐지만, 너랑 같이 지내서 참 재밌었어. 시내도 가보고, 물 쇼도 하고, 물론 끝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하지만 나는 너랑 같이 지내서 후회하는 일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것 같아. 어쩌면 그때 네가 우리 정원에 들어온 것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지. 나는 중학교를 자퇴했어. 어차피 중학교도 나와 봤자 할 일도 없는걸. 그냥 이대로 여행을 하면서 다른 여러 나라의 꽃을 배워보려고. 한약도 한번 배워보고. 네가 있었다면, 너에게 정원을 맡겼을 텐데, 네가 이제 서울로 간다니!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정말 간절했나 보지? 하하. 뭐, 할 얘기가 없네. 다 얘기 해줘서 그런가봐.

이 화분에 심어진 꽃은 파란 물망초야. 열심히 잘 길러봐. 그리고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야. 네가 나보고 너를 잊으라고 했지? 정말 네가 원한다면, 나는 잊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리가 쌓아온 추억이 너무 많잖아. 물론, 나는 잊기 싫지만, 네가 잊으라고 하라면, 너는 절대 잊지 마. 이 꽃을 볼 때마다, 우리의 추억과 이야기, 그리고 나 린넨을 기억해줘. 이건 부탁이자, 친구로서의 나의 명령이야. 또, 내가 준 씨앗 꽃말은 나중에 만나면 알려줄게. 계속 미루게 되네. 그리고 내가 말해준다면, 친구란 건 두 사람이 마음으로 하는 거지, 말로 하는 게 아니야. 너는, 나와 친구가 되기를 아직도 원하잖아. 나도야. 그러니까, 우리는 누가 뭐래도 친구야. 서로의 첫 친구. 나중에 미래에, 내가 너를 못 알아보면, 네가 나를 먼저 불러 줘야 돼! 알겠지! 약속이다. 그럼 몇 년, 아니 몇 십 년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미래에서 봐! 나의 운명의 실 상대!

2001년, 15살에 만난 너의 첫 친구, 린넨이 파란 물망초와 함께…….

오현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리고 놀라웠다. 설마 했지만 자신이 린넨의 운명의 실 상대라니. 그의 눈에 눈물이 떨어지려고 매달린다. 하지만 그는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옷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혼잣말로 속삭였다.

“그래. 나의 운명의 실 상대이자 나의 첫 친구. 너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내 나이와 똑같이 유지하도록 노력 할게. 나중에 봐. 너를 잊지 않을게. 나의 친구!”

 

오현은 하늘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엄마와 함께 서울로 떠났다.

‘안녕. 나의 친구, 린넨‘

 

 

에필로그

2014년, 어느 화창한 날, 한 남자가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 그는 아주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화분을 꼭 쥐고 익숙한 듯이 그의 발이 향하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한 폐교가 있었다. 그 폐교는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듯이 넝쿨에 뒤 덮여 있었고, 아이들이 사용하던 운동기구들은 모두 세월이 비껴간 듯이 녹슬어 있었다. 그 남자는 추억을 회상하듯이 폐교를 바라보고, 자신의 발밑에 있는 파란 물망초에 눈길을 주었다. 파란 물망초는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더 파랗게 보였고, 그 남자는 물망초 옆에 있었던 벤치에 앉아 그냥 하염없이 폐교와 물망초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에는 고풍적인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서 빛나고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멋스러운 건물에 그는 발을 멈추었다. 건물 간판에는 '린넨의 정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한 연갈색머리에 웨이브가 진 긴 머리 여자아이가 검은색 큐빅으로 된 핀을 머리에 꼽고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를 반기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근데, 그게, 여기는 꽃집이 아니라서 돈을 주고 꽃을 사고팔지 않거든요. 꽃을 사시려면 시내에 나가셔서 사야 되요.”

그러니까, 남자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작은 화분을 여자아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씨앗을 꺼내 여자아이의 손에 놓아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괜찮아요. 이걸 주려고 온 거예요."

여자아이가 든 화분에는 파란 물망초가 예쁘게 펴 있었다. 여자아이는 좋아하며 물었다.

“와! 감사합니다! 물망초 진짜 예쁘네요. 이건 에델바이스 씨앗이죠? 우와. 되게 꽃말이 이어지는 걸 주셨네요.”

남자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물어보자, 여자아이는 대답했다.

“파란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 에델바이스의 꽃말은 추억이니까요.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그럼 저는 이 라일락 나무를 드릴게요. 예쁘죠? 이 나무의 꽃말은 젊은 날의 추억 이니까 뭔가 어울리시거든요.” 남자는 화분을 든 다음 문을 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린넨.”

여자아이도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린넨의 정원’에서 나온 그는 씁쓸한 듯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 라일락……. 젊은 날의 추억……. 나는 아직 너를 잊지 못했어."

 

 

 

숨겨진 이야기1. 해바라기

한 남자가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상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자, 그의 상사는 남자를 불렀다.

“현 대리, 이리로 좀 와보게나.” 오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상사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선 공손한 자세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부장님.” 부장은 서류철을 오현에게 내 보이며 일어나서 말했다.

“이거, 좀 오류가 있는 건 같은데, 다시 정리하고,”

그러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너희 집에 같이 가자.”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오현은 서류철을 들고 다시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는 턱을 괴고, 다시 한 번 부장의 자리에 있는 이름표를 보았다. 이름표에는 김한성 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고, 오현은 눈살을 찌푸린 뒤 서류철을 열어보았다.

저녁이 되었고, 오현은 회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차를 타려고 할 때, 누군가 오현을 불렀다.

“이봐! 현 대리!”

바로 오현의 상사였다. 그는 주차장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차를 타려는 오현의 손을 잡았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도 헉헉 거리며.

오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죠. 아까는 근무 중이라서 말하지 못했지만, 제가 아저씨하고 차를 같이 탈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저희 엄마 집에 가지 않고, 제 집으로 갈 거라 서요.”

오현의 상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고, 오랜만에 현이랑 이야기나 좀 하게. 이제 어른이 됐으니까! 술 마시면서!”

오현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렸다.

“술 안 마셔요. 아저씨랑 이야기 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오현의 상사는 오현의 차 조수석 문을 열고는 웃으며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는 창문을 열고 오현에게 말했다.

“차 안타나? 빨리 가야지 많이 이야기 할 거 아닌가!”

오현은 한숨을 쉬고는 운전석으로 가 의자에 앉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말했다.

“근처 카페 갑니다. 그리고 많이 이야기는 안 할 겁니다!”

그렇게 차가 카페에 도착하고, 남자 둘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부장이 말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현이는?”

오현은 마지못해 대답하는 투로 대답했다.

“카페라떼 휘핑크림 많이 올려서요.”

그렇게 상사는 주문을 하고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래, 한 10년 전인가? 운명의 실. 어때? 자네도 묶여 있던가?”

오현은 휴지를 빼 손을 닦으며 말했다.

“14년 정도입니다. 그리고 운명의 실. 제가 묶여있든 말든 아저씨하고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어떻게 아저씨는…….”

커피가 나왔다. 오현은 일어나서 커피를 가져왔다. 뜨거운 커피가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것 같았다.

오현의 상사가, 아니, 아저씨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대답했다.

“나도 뜨거운 걸 먹을걸 그랬나보다. 흠. 알겠어. 네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무엇을 묻고 싶은지 그리고 왜 너희 엄마와 결혼을 하지 않는지.”

오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잘 알고 계시네요. 아저씨. 그렇다면 제가 무엇을 물을지도 알고 계시겠죠.”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묻지 않으면 말 해 주지 않을 거야. 알고 싶으면 스스로가 찾아야지, 남이 찾아주기를 바라면 안 되지.”

오현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상사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한꺼번에 묻죠. 당신은 왜 운명의 실에 대해서 알며, 본명은 무엇이며, 왜 우리 엄마하고 결혼하지 않죠? 그리고 만약 당신이 내가 아는 그 아이의 아빠이면 왜 그 아이를 찾지 않은 거죠?”

아저씨는 한참을 커피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음. 나도 운명의 실에 엮여있으니까 운명의 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고, 만약 내가 너희 엄마와 결혼하면 여러 가지 현상이 생기니까 그리고 내 본명은 윤성한이야. 네가 아는 린넨의 실종된 아빠이기도 하고. 린넨을 찾지 않는 거는, 내가 돈이 없기도 했고, 솔직히 린넨을 잘 돌볼 수 없을 것 같아서야. 린넨의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오현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그의 상사를 쳐다봤다.

“역시 아저씨였군요. 근데 그 현상이란 거는 뭐예요? 그리고 왜 아직도 린넨은 어린아이인 거죠?” 아저씨는 대답했다.

“일단 너희 둘이 남매가 되는 거.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절대로 이 운명의 실이 끝나지 않는다는 거지. 린넨과 네가 결혼을 해야지만 이 운명의 실이 끝나.”

오현은 물었다.

“왜죠?”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플러스적 요인과 마이너스적 요인이 합쳐지면 0이 되지 않는가?”

오현이 말했다.

“그러네요. 음. 그러면 린넨은 왜 아직 어린아이죠?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는 이해해요. 하지만 왜 아직.”

아저씨가 대답했다.

“그거야 자네가 아직 어린아이의 마음을 많이 소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과거의 기억에 잡혀 살고 있거나 그렇겠지. 뭐, 일단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 운명의 실이 끝나길 원하지 않나? 나는 끝나길 원하네. 이 운명의 실 때문에 자네의 가문은 언제나 인생이 짜여 있어. 그리고 우리 가문도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고. 나는 이 역순환을 끊고 싶네. 그리고 그러려면 현이 자네와 린넨이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어. 물론 결혼도 자네의 인생에 짜여 있겠지만.”

그러고 나서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세. 그리고 자네가 원치 않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린넨은 기억을 잃지 않았을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게 다네. 그리고 자네가 린넨과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자네 어머니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나한테는 아직 불쌍하게 돌아간 린넨 엄마가 있으니까.”

그러고 나서 아저씨는 카페 밖으로 나갔다.

오현은 곰곰이 생각했다. 린넨과의 결혼이라. 오현은 미소를 지었고, 남은 커피를 들고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숨겨진 이야기2. 개나리

프랑스 공항, 한 한국인 여자아이가 내렸다. 풀은 머리에 검은 리본 핀을 꼽은. 그리고 그에 맞게 남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택시를 불러서 한 주택으로 향했고, 그 주택 대문 옆의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누르고 몇 초 있다가, 한 시녀가 대문 밖으로 나왔다.

“누구세요?”

그녀는 머리를 넘기면서 어물쩍하게 말했다.

“아, 그게 이 집 주인 할머니 손녀, 린넨인데요.”

그러자 그녀의 시녀는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린넨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네요. 여기 주인님은 할머니도 아니고 팔팔한 유부남이신데요. 손녀도 없고.”

린넨은 주소가 적혀있는 종이를 다시 한 번 보고 주소지를 확인했다.

“여기가 맞는데요. 어? 이상하다.”

그때, 집 주인처럼 보이는 한 여인이 대문 쪽으로 나왔다.

“누구신데 여기에서……. 어? 혹시?”

그 여인은 집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왔다. 손에는 사진이 들려있다. 그녀는 사진과 린넨을 자세히 비교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 여기 예전 주인 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 손녀시죠? 안 그래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만약 손녀분이 오시면 문서를 주라고 하셨는데. 아! 문서!”

그녀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뒤 한 봉투를 린넨에게 건네주었다.

“할머니 유언장 이예요. 이 집은 남은 시녀들이랑 집사 살라고 남기고 가신 거고요. 나머지 재산은 모두다 손녀분 지명으로 되어있어요. 너무 반갑네요. 이제는 우리 주인분이시잖아요! 물론 저희 살라고 남겨놓은 집이지만, 명의는 손녀분 이름으로 되어있거든요.”

시녀는 갸웃거리며 말했다.

“주인마님, 주인님은 우리 주인님 아니에요?”

여인은 린넨에게 말했다.

“얘는 새로 온 아이라. 일손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들어와 보실래요? 며칠 묵으셔도 괜찮고요.”

린넨은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져온 꽃 화분 중 백합을 선물로 주고 나왔다. 린넨은 자신의 할머니의 묘에 가보았다. 그녀는 그저 할머니의 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국화와 자신과 할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을 같이 묘위에 올려놓고 작은 돌로 고정시켰다. 사진속의 할머니의 표정이 경직되어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꼭 자신을 걱정하듯이 보인다.

린넨은 몽마르트 언덕과 루브르 박물관에 가보고 야경의 에펠탑도 보았다. 그리고 밤기차를 탔다. 기차는 네덜란드를 향했다. 린넨은 조금 허전했다.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았던, 그래서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할머니가 소문도 없이 돌아가 버리셨다. 남편의 생사도 모른 채. 린넨은 여인이 준 봉투를 열어보았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린넨에게 남긴다는 말이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뒤에는 할머니의 장편의 편지가 있었다.

린넨은 그저 밤하늘에 별빛을 배경삼아 울 수밖에 없었다. 

adodo5@naver.com

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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