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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8 19:00

아귀가 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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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가 사는 집


  내 앞집에 아귀가 산다. 언제부터 살았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냥 어느 날 그게 앞집에 나타났다.

  

  제주도 산 아귀는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제주 바다에서 태어나 내 앞집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제주도를 벗어 난 적이 없다던 아귀가 서울말을 똑 부러지게 쓰다니, 참으로 이상했다.

  “사투리?”

  “응. 사투리.”

  “제주도 사투리라…….”

  박군에게 그렇게 물은 건, 몇 주 만에 만나 뽀얀 국물이 깊게 우러나 특별히 간을 하지 않아도 감칠맛이 나는 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을 때였다. 탕에 밥을 말아 맛나게 몇 술을 뜨던 박군은 내 질문에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곧 제주도 사투리를 술술 꺼냈다.

  “혼저옵서, 편안 하우꽈, 제주도엔 오난 어떵 아우꽈, 혼저 왕 먹읍서, 맨도롱 홀 때 호로록 들여 싸붑서, 제주엔 참 종거 만쑤다양. 전복죽 쒀줍서양. 내가 아는 건 이정도.”

  짧지만 나름 유창한 그의 실력에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제주도 사투리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 발음도 완벽한 것 같았다.

  “우와, 마치 외계어 같아. 근데 무슨 뜻이야?”

  “그냥 뭐. 어서 오세요, 편안 하십니까, 제주도에 오니 어떠하십니까. 어서 와서 먹으십시오, 따뜻할 때 후루룩 마셔 버리십 시오. 제주엔 참 좋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전복죽을 쒀주세요. 뭐 이런 뜻이야.”

  “근데 뭔가 의무적인 말들뿐이네.”

  “응. 사실 제주도에서 칼국수 집을 하고 싶었거든.”

  박군이 안 어울리게 수줍어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내가 아는 박군은 칼국수를 싫어했기에 칼국수 집을 하고 싶었다던 그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칼국수?”

  “응. 3년 전에 내가 제주도에서 지낸 적 있었잖아. 그때 거기가 진짜 좋아서 눌러 앉고 싶었어. 바지락 칼국수를 만들면서.”

  “왜?”

  “그땐 바지락 칼국수를 좋아했으니까.”

  지금은 아니야- 하고 묻자 박군은 피식하고 웃었다. 나로썬 피식 웃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기에 궁금했다. 박군이 갑자기 대구와 아귀 중 뭐가 더 맛있냐는 엉뚱한 질문을 해댔다. 둘 다 별로란 내 대답에 박군은 아귀의 살이 더 쫀득쫀득하다며 아귀에 대해 예찬하기 시작했다. 박군은 유명한 대구탕 집에서 대구의 살을 발라먹으며 아귀가 더 맛있다는, 대구가 들으면 분명히 기분 나빠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난 혹시나 식당 주인이 듣진 않을까 눈치가 보였다.

  

  박군은 대학 동기로 남자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성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대학 동기라 해서 같은 과였던 건 아니고 같은 동아리였다. 등산동아리를 가장한 술 퍼마시는, 얼마든지 몸이 만신창이가 될 수 있는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를 하는 날, 나는 알바 때문에 남들보다 늦게 도착했다. 신입생들은 한 명씩 일어나 동아리에 들어온 포부에 대해 힘차게 말하고 있었다. 신입생 중 유일한 여학생이었던 나는 내 차례가 되자 선배들을 포함한 남자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몸에 받았다.

  “산이라면 아직 서울대 근처에 있는 관악산 밖에 안 가봤어요. 그래서 전국에 있는 모든 산에 가보고 싶어요. 특히 한라산에 꼭 가보고 싶어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국방색비니를 눌러 쓰고 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그래서 난 박군이 선배인 줄 알았다. 모든 신입생들은 경직된 모습이었는데 그는 선배들 사이에 앉아 농담 따먹기를 하며 거침없이 술잔을 기울였으니까- 박군이 여전히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포부는 네가 처음이다.”

  박군의 그 말에 와- 하고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창피한 것보다 왜 웃는지에 -물론 나중에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날 웃음거리로 만든 박군이 괘씸했다- 의문이 들었다. 등산동아리라며?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실체가 밝혀졌다. 여름엔 덥다고, 겨울엔 춥다고, 봄엔 벚꽃놀이가 더 좋다고, 가을엔 갈대숲이 더 운치 있다고, 동아리 사람들은 그렇게 산을 피해 다녔다. 대신 그 시간들을 술로 채워갔다.

  그래도 사람들은 등산동아리라는 걸 잊지 않으려는지 등산복을 입고 술을 마셨다. kx, 블xx크, x레, x팔x, xxx인, 몽x등 죄다 외국 브랜드만 쳐 입고는 막걸리를 마셨다. 그렇게 모여 있는 것을 볼 때면 등산동아리가 아니라 등산인 코스프레를 하는 술꾼들 같았다. 하지만 곧 나도 그 속에 껴들었다. 살을 빼기 위해 마음먹고 가입한 동아리에서 난 노x를 입고 마음 놓고 살을 찌웠다.

  “너 보기보다 소심하구나.”

  소심한 나는 신입생환영회 이후로 박군을 철저히 무시했다. 남들과는 웃어도 박군과는 절대 웃지 않았고,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자리가 없어 서서 먹을지언정 박군의 옆엔 앉지도 않았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내가 아니었고 내가 그를 불러야 할 때면 다른 사람을 시켰다. 박군은 나와 화해를 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나에게 야유를 보냈던 그날이 선명하게 떠올라 짜증이 났다. 

  그랬던 우리가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던 건 그 해 여름 방학 때 박군이 한라산은 정말 좋은 곳이네- 라는 간단한 쪽지와 함께 보낸 제주도 한라봉 때문이었다. 굵고 알찬 한라봉의 비주얼에 마음이 흔들렸고 새콤달콤한 한라봉의 맛에 나는 그를 용서했다. 그 다음 날, 나는 박군에게 전화를 걸어 한라산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박군과 나를 화해의 장으로 이끌었던 그 한라봉이 직접 제주도까지 가서 산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주문한 거라는 걸 한참 뒤에 알았지만 그땐 박군과 너무 친해진 뒤였다. 화를 내기엔 삶의 반을 차지한 친구였기에 소주 세병과 족발 한 접시와 화를 바꿨다.


  “갑자기 제주도 사투리는 왜?”

  아귀가 더 맛있다던 박군이 대구탕을 싹싹 긁어 먹으며 말했다. 나는 반도 안 먹은 내 대구탕을 박군에게 밀어주며 내 집 앞에 살고 있는 아귀에 대해 신나게 말해 주었다. 아귀에 대한 이야기가 박군에겐 별다른 감흥을 주진 않았는지 그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박군은 역시나 건성으로 물었다.

  “근데 왜 그 할머니를 아귀라 불러?”

  그러게, 난 왜 그녀를 아귀라 부르는 거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 질문에 나는 입이 막혔다. 아귀 같이 생겼냐는 물음에 나는 폰으로 아귀를 검색했다. 아귀의 사진은 죄다 참 거시기 했다. 음… 아귀를 간단한 도형으로 치면 ▽ 이런 느낌이었다. 그 여자도 ▽ 이런 느낌이니 아귀라 불러도 되겠지. 아 마?

  “입이 커?”

  “그런 것 같아. 아니, 확실히 그래. 축구공도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이 박군의 흥미를 잡아끌었는지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눈을 빛냈다.

  “와……. 쩐다. 사진 찍어 보내. 해외 토픽에 보내게.”

  나는 수저를 들어 박군의 이마를 강타했다. 수저에 묻어 있던 고춧가루가 박군의 이마 중앙에 들러붙었다. 내가 먹은 흔적을 바라보려니 민망해져 살짝 눈을 내리 깔았다.

  “야. 뭐 하러 해외토픽까지 가냐? 우리나라에도 세상에 이럴 수가 가 있는데. 꼭 없는 것들이 외국 브랜드 따지지.”

  나는 다시 한 번 수저로 박군의 이마를 강타했다. 그건 박군 이마위의 내 흔적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었다. 다행이 흔적은 발자취를 감췄고 난 마음 놓고 박군을 바라 볼 수 있었다. 박군이 벌게진 이마를 양 손으로 벅벅 문지르며 말했다.

  “안 돼. 꼭 해외토픽에 보내야해. 이건 우리나라에만 머물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커.”

  꼭 사진을 보내란 박군의 당부를 안고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불 속을 헤맸다.


  아귀가 멀리 제주도에서 흘러 왔다는 건, 제주도 은갈치 때문에 알게 됐다. 앞집에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택배 좀 맡아 달라는 택배 기사의 말에 은갈치는 내 집 거실에 들어앉았다.

  처음엔 내용물에 관심이 없었지만 ‘즉시 냉동요망’이라고 굵게 쓰여 있는 글씨를 보자 호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테이프를 조심히 뜯어 스티로폼상자의 뚜껑을 열자 굵고 통통한 갈치들이 일렬로 누워 있었다. 은빛 비늘은 냉동 상태였는데도 아름다웠고 우아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생선은 싫어했지만 갈치만큼은 엄청 사랑했던 나였기에 그 갈치가 보통 갈치는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특중에서도 특특상품인 녀석들. 비록 내 것은 아니었지만 내 집으로 이런 것들이 들어오다니, 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눈물이 났다.

  나는 상자 구석에 놓여 있는 갈치토막팩을 하나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조심히 비닐을 걷어 냈다. 비닐이 구겨지지 않게 하려면 고도의 기술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한 면을 떼고 다른 한 면을 떼어내니 손은 땀으로 금세 축축해졌다. 옷에 땀을 닦은 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큰 토막을 꺼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 부분의 비닐이 푹 꺼져 들통이 나므로 제일 작은 토막을 골라 들었다. 비닐을 덮고 토막의 빈자리가 티가 나는지 여러 번 확인을 한 뒤, 스티로폼의 뚜껑을 닫았다.

  아귀가 갈치를 찾으러 오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당당하게 상자를 건넸다. 아귀가 집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뒤 갈치토막을 구웠다. 갈치가 다 구워지자 저녁때는 아니었지만 나는 상을 차렸다. 김치와 무장아찌뿐인 초라한 밥상에 특특상품의 갈치가 올라와 있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드디어 갈치의 살을 발라 쌀밥위에 얹었다. 하지만 한지 오래돼 살짝 누리끼리해진 밥 때문에 모양이 나지 않았다. 얼른 밥을 할까, 그러면 갈치가 식을 텐데. 그냥 갈치만 발라 먹을까, 그래도 고슬고슬한 밥이랑 함께 먹는 게 최고인데. 아 어쩌지- 고민을 하는데 초인종 소리가 났다.

  아귀는 쟁반을 들고 문밖에 서 있었다. 갈치를 대신 받아줘 고맙다며 내민 것은 통갈치 두 마리였다. 입 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려는 걸 억지로 눌러 앉혔다. 이럴 필요 없는데, 부담스러워요 비싼 것 같은데- 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이 멋대로 튀어나왔다. 나는 잠시 놀랐지만 이미 한 말이라 주워 담을 수 없어 안 받겠다는 의미로 두 손을 뒤로 했다. 산 게 아니라 제주도에 있는 지인이 보내 준 거니까 부담스러워 할 필요 없어요. 실은 내가 쭉 제주도에서 살아서 제주도에 아는 사람이 많거든. 그래도 내가 쭈뼛거리자 아귀는 갈치가 든 쟁반을 내게 떠넘기듯 문 앞에 두고 돌아섰다.

  작게 고맙다고 말한 뒤, 문을 닫으려는 순간 아귀가 큰소리로 말했다. 갈치에 밀가루를 입히지 말아요. 그냥 굽는 게 훨씬 맛있으니까- 내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실종된 한 토막의 갈치가 내 집에 있다는 걸 눈치 챈 건 아닐까. 밀가루를 입힌 상위의 갈치가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밀가루를 벗겨 갈치를 하수구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갈치 두 마리를 냉동실에 처박아 버렸다.


  아귀를 처음 마주한 건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 여름엔 방송에서 백년 만에 찾아오는 무더위라며 하루를 멀다하고 난리를 쳤었다. 하지만 그 전에도 그 전전에도 몇 년째 계속 백년만의 무더위는 우리 곁에 있었다. 개뿔. 이제 그 백년만의 더위, 그만 좀 우려먹어라 쫌.

  첫 직장을 그만 두고,

  실은 잘렸다. 취직이 안 돼 빌빌대던 나는 결국 원하는 일을 포기하고 다소 늦은 나이에 ‘회사 돈을 내 돈처럼 아껴 쓰자’란 포부를 안고 경리 계에 입성했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나와 사장을 포함해 직원이 열다섯 명뿐이었던 중소중 소에 가까웠던 그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너무 가족 같은 분위기가 문제였을까. 그래 그랬던 것 같다. 손버릇이 나쁜 직원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 그의 손이 내 등에 닿았을 땐 단순한 실수로 여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더러운 손은 엉덩이를 슬쩍, 허벅지를 슬쩍하더니 끝내는 허리춤으로 과감하게 들어왔다. 창피함과 수치심에 혼자서 끙끙대던 나는, 손버릇이 갈수록 심해져가자 나보다 먼저 들어온 언니에게 일러 바쳤다. 평소에 언니 동생하며 잘 지내던 사이였기에 그게 아니더라도 같은 여자이니까 편을 들어줄 주 알았는데 언니는 자신도 다 겪었다며 코웃음을 쳤다. 기가 막혔지만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언니도 나처럼 힘이 없었으니까. ‘을’중에서도 제일 말단인 ‘을’들끼리 뭉쳐 봤자니까. 그래서 난 그 보다 힘 있는 사람을 찾기로 했다.

  다이렉트로 사장을 찾아가 낱낱이 고발했다.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던 사장은 여동생 같아서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뭘 그렇게 화를 내냐며 오히려 나를 꾸짖었다. 결국 난 회사와 그 직원을 고소하고 당당하게 잘렸다.

  아무튼 그래서 백수가 된 나는 틈만 나면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집 앞 편의점에서 팔백 원짜리 쭈쭈바를 먹으며 더위를 피했다. 아귀를 처음 만난 그날도 쭈쭈바를 먹으며 편의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때마침 키 작은 노부인이 자기보다 큰 짐을 양 손에 들고 지나가고 있었다. 이 더운 날 참 고생하시네- 하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짐 좀 들어 드리지. 이렇게 보고만 있어요?”

  나한테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하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내 등을 쿡쿡 찔러댔다. 누군가 하고 돌아봤더니 내가 살고 있는 원룸 건물의 주인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닌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한 번 내게 짐 좀 들어드리라 명령했다. 내가 왜요 하는 표정을 짓자,

  “왜긴, 그게 다 사람 사는 인정이니까 그렇지. 게다가 저분은 얼마 전에 그쪽 앞집으로 이사 오신 분이잖아요. 어머, 몰라요? 쯧쯧. 젊은 사람이 그렇게 무심해서야.”

  하며 기분 나쁘게 혀를 찼다. 주인아주머니는 말마다 ‘젊은 사람’ 타령을 해가며 내가 젊다는 걸 강조했다. 젊으면 뭐. 모르는 사람 짐도 들어줘야 하나. 자기도 젊었을 때 안 그랬으면서 안 봐도 훤하다 뭐. 쳇. 그렇게 신경 쓰이면 말로만 그럴게 아니라 자기가 가서 들어주면 되잖아. 노부인보다 훨씬 젊으면서. 쳇. 왜 나를 시켜. 지가 뭔데. 내가 지 말을 들을 것 같나. 쳇.

하지만 난 속마음과는 다르게 재빨리 노부인에게로 달려갔다. 세입자로써 집주인에게 밉보이기 싫었으니까. 

  저기요, 짐 좀 들어 드릴게요. 노부인의 손에서 짐을 낚아채자 그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진정하세요. 전 앞집 사람인데요. 무거워 보이셔서 들어 드리려고 그랬던 거예요. 그러니 제발 진정하세요. 차근히 설명하자 그제야 노부인은 입을 다물었다. 미안해요 내가 귀가 좀 어두워서… 앞집에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사는 줄은 몰랐네요.

  짐을 들고 5층까지 올라가자 겨드랑이에 땀이 흥건히 찼다. 나이도 많으신 분이 엘리베이터도 없는 이곳으로 왜 왔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 보지는 않았다. 

  노부인의 현관문에 다다르자 그녀는 짐 속에 손을 넣어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내 손에 쥐어줬다. 신문으로 둘둘 싼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어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햇김이에요. 아주 맛이 좋을 거예요. 내가 직접 만든 거라 장담할 수 있어요. 고마워서 주는 거니까 사양 말아요- 하며 환하게 웃는 노부인을 보자마자 난 생선가게에서 본 아귀가 떠올라 등골이 서늘했다. 그 후로 아귀는 나를 보면 친한 척 말을 걸었지만 난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그 입이 두려워 아귀를 피해 다녔다.


  딩동- 거침없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정확히 8시였다.

  휴대폰엔 아귀의 사진은 언제 찍어 보낼 건지, 왜 아직도 깜깜 무소식인건지, 혼자 해외토픽에 제보하려고 꼼수를 쓰는 건 아닌지 등을 묻는 박군의 문자들이 빽빽이 들어와 있었다.

  딩동- 또 한 번 초인종이 울렸다. 아휴, 귀찮아. 없는 척하면 그냥 가겠지. 잠에 더 취하고 싶어 이불속에서 꼼짝을 안했다. 두어 번 더 초인종 소리가 나더니 조용해 졌다. 갔나 싶어 마음이 편해지려는 찰나에 아직 자요? 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왔다.

  아귀는 그런 식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내 집의 문을 두드렸다. 나는 할 수 없이 잠옷위에 카디건을 걸쳐 입고 현관문을 열었다. 자는데 깨운 건 아니죠? 아귀찜이에요. 탕으로 할까 하다가 젊은 사람들 입맛엔 찜이 더 좋을 것 같아서 겸사겸사 찜으로 만들어 봤어요. 식기 전에 꼭 들어요. 어이구, 눈이 부었네. 정말 내가 깨운 건 아니죠? 아귀는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처음에 가져온 음식은 찐 옥수수였다. 그 다음엔 찐 고구마와 감자였다. 그 다다음엔 김치부침개였다. 그 다다다음엔 잡채였고, 불고기였고, 낙지찜에 해물탕까지 많은 음식들을 쉬지 않고 일요일마다 제 집에서 내 집으로 날라 왔다. 찐 감자까지는 그런 대로 이해가 갔다. 불고기와 낙지찜, 해물탕, 순대볶음등등등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아침 8시부터 이 음식들을 만드는 걸까. 정확히 8시면 가져왔으니까 음식은 그 전부터 만들었다는 소리인데 대체 재료를 언제 다듬고 언제 양념하고 언제 익혔을까. 전날 미리 모든 걸 손질해 놨다고 쳐도 일어나자마자 이것들을 만든다는 건 좀 납득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아침은 언제나 식빵 한 조각이었고 엄마 밥을 얻어먹었던 지난 24년 동안의 아침도 겨우 식빵 한 조각이었으니까.

  아귀가 아귀찜을 만들다니. 아귀가 아귀를 다듬는 장면을 상상하다 피식하고 웃음이 번졌다. 웃는 걸 보니 아귀찜을 좋아하는 모양이네요 다행이다. 아귀는 그 웃음을 오해하고 돌아섰다. 쟁반을 싱크대에 올려놓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일어난 나는 아귀찜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라면을 끓였다. 라면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려다 싱크대에 놓인 그것을 발견하곤 뚜껑을 살짝 들쳤다. 푹 익은 미나리가 엉겨있는 식은 아귀찜은 참 흉물스러웠다. 오랜만에 친했던 과 동기들을 만나기로 했기에 서둘러 그것을 처리하고 집을 나왔다.

  3년 만에 다 모인 십여 명의 동기들은 각자의 삶을 자랑하느라 바빴다. 나는 한 번도 못간 해외여행을 서너 번씩 다녀 온 동기도, 애인이 사준 명품 백을 자랑하는 동기도, 다이어트에 성공해 뼈다귀뿐인 동기도 부럽지 않았다. 부러운 건 오직 다음 달에 시집을 간다며 청첩장을 돌리는 동기였다. 그것도 제일 안 예뻤던, 미팅에 나가면 거침없이 폭탄으로 격리됐던, 내가 유일하게 기를 펼 수 있었던 그 동기가 다 제치고 가장 먼저 시집을 간다니… 난 재재취업도 얼마 전에 겨우 했는데… 문득 서러움과 불만이 마음에 넘쳐흘러 앞에 놓인 술을 닥치는 대로 입에 부었다. 계집애들은 내가 병째 들이부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서러웠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은 내 집과 구조가 똑같았지만 한 쪽 벽면이 책으로 가득 채워진 걸로 보아 분명 내 집은 아니었다. 낯선 곳이었다.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술집 다음의 기억들은 하나도 없었다.

  여기는 어디인가 싶었을 때, 아귀가 밥상을 들고 곁으로 왔다. 일어났어요? 잘 됐네요. 안 그래도 깨우려고 했는데… 이거 북엇국인데 호로록 마시고 다시 자요. 속이 편할 거예요. 내가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자 아귀는 가까이 다가와 손에 수저를 쥐어줬다. 괜찮아요 젊었을 땐 다 그러는 거니까. 그리고 젊었을 때 그래보지, 늙어서 그러면 주책이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해요.

  속이 많이 쓰린 나는 북엇국을 한 술 떴다. 시원하고 맑은 국물이 가슴께까지 밀고 들어와 쓰린 속을 달래주었다. 북엇국을 먹으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아귀는 입을 귀까지 활짝 벌리고 껄껄 웃는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게… 새벽에 어디선가 쿵쿵대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자세히 들어보니 앞집에서 나더라고요. 혹시 도둑이 든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삐삐삐삐삑하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잖아요. 슬쩍 내다보니까 아가씨가 아가씨 집 문을 발로 차고 있더라고요. 제가요? 네. 계속 그러고 있으면 누군가가 신고할까봐 우리 집으로 데리고 들어 왔어요. 잠들기 전까지 계속 나한테 집 비밀번호에 대해 묻더라고요. 번호가 안 눌린다면서. 민망해진 나는 그릇째 들고 북엇국을 마셨다.

  그런데 아가씨. 이렇게 차려 입으니까 참 예뻐요. 아귀는 동기들을 만나기 위해 차려입었던 -간밤에 술에 취해 망가질 때로 망가진 모습인데도- 모습을 보고 예쁘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맨날 추리닝만 입고 머리도 아무렇게나 동여매기에 좀 안타까웠는데. 물론 그것도 예뻤지만요. 재재취업을 했으니 이젠 맨날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재재취업이 쪽팔려 입을 꽉 다물었다.

  참 아귀찜 맛은 어땠어요? 이상하지 않았어요? 아뇨 맛이 아주 좋았어요. ‘아주’에서 뜸을 한 번 들였다. 젊은 사람이라 단걸 좋아하나봐요. 소금을 넣는다는 걸 그만 설탕을 넣었지 뭐예요. 늙으면 다 이런다니까요. 단맛의 아귀찜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지만 장단을 맞추기 위해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집으로 건너온 나는 새벽의 흔적들을 보며 -문 앞에 선명히 찍혀 있는 신발자국과 열려 있는 번호 키의 뚜껑, 더러운 침- 기억에 없는 새벽이 오히려 고마웠다. 삑삑삑삑삑삑 띠리링. 문은 잘 열리는데… 어제도 잘 열렸다면 아귀의 집에서 잘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 그래도 북엇국은 참 맛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박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는 박군의 목소리는 아직 잠에 취해 있었다. 아귀의 집에서 잔 사실과 아귀의 방엔 한자로 된 책들이 가득했다는 이야길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간간히 박군은 그래? 하는 추임새를 넣어 듣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나는 문득, 일요일 아침부터 전화를 건 내가 일요일 아침부터 초인종을 누르는 아귀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쉬는 날에 귀찮게 해서 미안해- 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자 박군이 물었다.

  “근데 왜 그렇게 그분을 싫어해? 해외토픽에까지 나갈 수 있는 멋진 분인데.”

  “날 귀찮게 하니까. 난 혼자 있고 싶은데 자꾸 나를 건드려.”

  그 말을 하며 아귀를 떠올린 나는 또 다시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외로워서 그러시는 게 아닐까.”

  할 말이 있다며 나를 갈빗집으로 불러낸 박군은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그랬잖아.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남편도 자식도 형제도 하물며 친구도 없는 것 같다고 그랬잖아.”

  내가 그런 말까지 했던가. 하긴, 아귀를 찾아오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박군은 나에게 갈비를 밀어 주었다.

  “그러니 잘해드려.”

  “어떻게?”

  “음. 그냥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말동무도 해드리고 일요일 아침에 문 두드리면 웃으면서 맞이하고 가끔 들여다보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나는 푸른 상추에 살짝 탄 고기를 얹고 마늘을 넣을까 말까 고민을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에이, 귀찮게. 우리 엄마한테도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할까 말깐데.”

  “너도 나중에 그럴 수 있어.”

  그 말에 화가 났다. 내가 왜? 남편도 자식도 친구도 아무도 찾지 않는 외톨이가 왜 돼.

  “내가 왜. 좀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할 순 없어?”

  상추의 꼭지를 따던 박군이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다소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잘 들어봐. 넌 여태껏 연애를 한 번도 못해봤으니 노처녀로 늙을 확률이 아주 높다. 대부분의 모태솔로들이 그 길을 걷고 있으니까. 운 좋아서 결혼한다 치자, 청상과부가 될 수도 있고 자식을 못 낳을 수도 있고 아님 남편과 자식을 앞서 보낼 수도 있는 일이고. 당연히 부모님은 너보다 먼저 가시지, 게다가 넌 형제도 없잖아. 그럼 넌 혼자가 되는 거야. 끔찍하지 않냐?”

  그런 끔찍한 상황들이 나한테도 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두려움에 아랫니가 덜덜 떨렸다. 나는 애써 두려움을 감추고 박군의 얼굴에 삿대질을 했다.

  “잡소리 좀 하지마. 난 절대 그렇게 안 돼. 나한텐 네가 있잖아. 평. 생. 친. 구. 박. 흥. 민.”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맞아 내가 있잖아 걱정마- 할 줄 알았다. 적어도 지금까진 그랬으니까. 하지만 박군은 어두운 낯빛으로 다소 무겁게 말했다.

  “얌마. 난 결혼 안 하냐?”

  결혼이란 단어가 박군 입에서 나오자 이상하게 섭섭했다. 박군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박군과 결혼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혼하면 나 안 만날 거야?”

  “부인이 싫어하면 그래야지.”

  그 말에 나는 욱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참았다. 미래의 부인을 질투하는 것도 우습게 느껴졌고 왠지 이 상황에서 욱하는 모습을 박군에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치사한 놈. 벌써부터 있지도 않은 부인 치마폭에 싸여 있다니. 이 누나는 가슴이 아프다. 근데 할 말이란 게 뭐야?”

  “뭐?”

  “할 말이 있다고 만나자고 한 거였잖아.”

  “내가? 아, 내가 그랬구나. 아냐, 나중에 할게.”

  학교를 졸업하고 국산 브랜드를 입고 진짜 산악인이 된 박군은 건강에 좋지 않다며 술을 멀리했다. 그랬던 그가 이상하게 술을 마구 마셨다. 무슨 일인지 물어도 그저 나중에 이야기 해주겠다고만 할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박군의 그 말이 생각나 두려웠다.

  ‘혼자 죽는 거 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을 거야. 너도 그럴지도 몰라.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친구 좀 사귀고 연애도 하고 그래.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어때? 아… 넌 동물도 안 좋아하지. 그러지 말고 금붕어라도 키워 보는 건 어때? 그거 키우는 재미도 나름 쏠쏠한데.’

  아귀네 집에 슬쩍 노크를 했다. 똑. 똑. 똑. 계세요-, 똑. 똑. 똑 저기요-, 똑. 똑. 똑. 아귀씨 계시나요-,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크 소리가 너무 작았나 싶어 쾅하고 발로 세게 문을 찼다. 하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초인종을 눌러 볼까하다 아귀의 웃는 모습이 떠올라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갔다.

  

  일요일이 돼도 아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8시를 10분이나 넘기자 나는 문을 열고 얼굴을 빠끔히 내밀었다. 아귀네 집 앞에 전단지가 수북이 쌓인 걸로 봐선 아귀는 집 밖을 배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됐다. 혹시 제주도까지 내려간 건 아닐까. 혹시나 전단지를 보고 도둑이 들까 싶어 모조리 뗐다. 아귀를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그게 앞집의 도리 같았으니까.

며칠 뒤, 나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아래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라고 밝힌 사내는 옥상에 가려고 지나가다가 5층에서 이상한 악취를 맡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이번엔 집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찾아 왔다. 사람들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자꾸 항의를 한다며 나에게 청소 좀 하고 살라고 했다. 무슨 냄새요? 하며 반문하는 내게 아주머니는 눈썹을 찡긋댔다.

  “지금 이 냄새가 안 나요?”

  “제가 요즘 코감기에 걸려서요. 그렇게 심해요?”

  “어휴, 생선 썩은 내 보다 더 한 것 같아.”

  나는 심하게 찡그리는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고서 그 냄새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냄새가 아귀의 집에서 난다는 걸 깨닫고는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문득, 난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머니도 나와 같았는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과 함께 문을 따고 들어가자 악취는 더 진동을 했다. 경찰은 우리에게 나가 있으라고 했다.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휴대폰이 주머니에서 울리지 않았다면 나는 꼼짝없이 아귀의 마지막을 확인 할 뻔했다.

  “왜 이렇게 목소리가 처져 있어.”

  박군의 목소리가 가슴께를 후볐다. 전혀 다정스러운 목소리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지… 지금 나올 수 있어? 나 너무 무서워.”

  “왜 무슨 일인데.”

  “아귀가… 아니 앞집 노부인이 돌아가셨어. 그것도 혼자 비참하게……. 난 앞집에 살면서도 몰랐어. 며칠 안 보이시는 것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고, 일요일에 안 찾아와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 며칠 어디 갔나보다했지, 누가 집에 죽어있을 줄 알았겠어? 내가 사는 층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대. 그 냄새가 아니었다면 아귀가 죽었을 줄은 평생 몰랐을 거야. 그렇지? 끔찍해. 정말 끔찍하다고.”

  “진정해. 진정하고……”

  박군이 차분히 나를 달래려고 애썼지만 내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지금 여행 가셨어. 그래서 지금 함께 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네 말대로 내 주변엔 너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빨리 와. 나 너무 무섭단 말이야.”

  내 목소리에 점점 울음이 번졌다.

  “어쩌지. 나도 지금 멀리 나와 있어.”

  “그래봤자 서울 안 일거 아냐.”

  “아냐.”

  “그럼?”

  수화기 너머에서 박군의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네팔이야.”

  “뭐? 거긴 왜 갔어?”

  “히말라야에 오르려고. 내가 말했잖아. 올해엔 꼭 가고 싶다고.”

  그게 왜 하필 지금이냐고 화를 내려다 참았다.

  “언제 오는데?”

  “아직 계획에 없어.”

  “너 정말 이러기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말하려고 했는데… 미안. 왠지 말하면 너한테 붙잡혀서 나올 수가 없을 것 같았어.”

  내가 쓸쓸히 혼자 죽으면 다 네 책임이다- 버럭 소리를 치고 전화를 끊었다. 박군에게서 바로 연락이 없자 약간은 두려웠다. 이젠 박군마저 떠나버린 걸까.


  이불 속에 누웠다. 한기가 느껴져 절로 이가 떨렸다. 지난 5년 동안은 홀로 누워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휴대폰을 들어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아무 용건 없이 만나자고 하면 두 말 없이 나올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귀의 웃음이 떠올랐다. 등골이 서늘하지 않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 문득,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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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하나 

이메일: bluemoon4416@hanmail.net

  • profile
    korean 2014.12.10 23:46
    아귀가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부산엔 아귀찜이 유명하지요.
    못생겨가지고 맛은 왜 그리 좋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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