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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3 00:37

훈련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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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된 우리




깃털이 빠진 공작의 가느다란 꼬리털은 뼈처럼 불거졌다. 그 수컷 공작도 아름다웠던 적이 있었다. 꼬리깃털을 펼치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환호를 자아내던 때가 있던 것이다. 나는 민우에게 물었다.

저 공작은 왜 저래?”

글쎄. 나도 모르지. 자해라도 하는 거 아닐까? 먹고 사는 걸 포기한 거지 뭐.”

변한 것은 공작만이 아니다. 코끼리는 몸집이 작아졌다. 송고했던 엄니는 어금니마냥 조잡해져 있었다. 기린은 무늬가 흐리다. 불과 십 년 만의 일이다. 그렇게 민우가 말했다.

그럴 수밖에.” 민우가 상추를 내뻗으며 말했다. 기린이 친구의 손을 핥으며 상추를 먹는다. “인간이 진화를 했듯 동물도 진화하는 거야. 다윈인지 뭔지 하는 그 과학자의 말대로 말이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야.”

진화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동물은 점점 소형화 되고 있어. 불과 몇십년 사이에 나타난 현상이지. 큰 동물들은 다 사냥이 된 거야. 좋은 유전자의 씨가 마른 거지. 사자는 갈기털이 적어지고, 코끼리는 상아가 작아지고, 기린은 목이 짧아지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끄덕였다. , 그렇지. 그런 표정이다.

 

그날 저녁도 텔레비전을 봤다. 언제나 나는 밥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본다. 밥이 목구멍에 걸린다는 느낌이 없이, 술술 넘어가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속 사자는 드넓은 들판을 뛰어다니고 있다. 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사자가 황색 풀 뒤에 숨더니 얼룩말을 덮쳤다. 얼룩말은 보호색을 가지기 때문에, 흑백만을 구분하는 사자가 얼룩말을 잡는 것은 힘들다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사자가 얼룩말의 옆구리를 뜯어 먹는 것을 보면서, 나는 밥 한 숟갈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저 정도는 해야지 사자지. 그렇게 생각했다.

텔레비전에서 새끼 사자들을 보여줄 무렵, 밥을 다 먹은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창밖을 보니 날은 어느새 어둡다. 나는 잠에 드려 침대로 향했다. 하지만 오늘도 마찬가지다. 늘 그렇다. 또 그놈이다. 불면증이다. 나는 도통 잠을 잘 수가 없다. 나는 침대에 누워 시계를 바라봤다.

똑깍 똑깍 똑깍-

시계바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한참을 뒤척이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을 마시고 거울을 봤다. 갈비뼈가 철장마냥 도드라졌다. 철장의 형상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신문을 들고 침대에 앉아 신문을 본다. 일자리가 있을까 없을까. 오늘도 나는 왜소해져 갔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무리를 이끌려면 큰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자도 마찬가지다. 무리를 이끌려면 큰 힘, 큰 몸집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데 동물원의 사자는 도무지 큰 몸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어릴 적 내가 동경하는 사자의 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동물원의 사자는 드넓은 들판을, 사냥을 모르는 나태함의 표본일 뿐이다.

수컷 사자는 도무지 다른 수컷 사자와 어울리는 법이 없다. 그런 유전자를 가진 것이다. 민우가 했던 좋은 유전자라는 단어가 생각이 난다. 그 반대는 무언가.

나쁜 유전자.

갈기가 크고 풍성한 사자는 품위가 있다. 몸집 또한 크게 보인다. 그것이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자일 것이다. 그런데 동물원의 사자는 갈기가 적다. 가까이서 보기 전까지는 암사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나쁜 유전자 가졌을 뿐인 수컷 사자였다.

 

나는 편의점의 효용을 도통 모르겠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따위에 면접이 필요하다니. 불평과 불안에 가득 가진 나는, 그럼에도 합격을 했다.

나 편의점에서 일하기로 했어.”

그럼 앞으로 동물원에 못 오겠네?”

.”

그래도 가끔 와, 너 사자 좋아했잖아.”

. 알았어.”

동물원의 그 수컷 사자는 사람도 아닌 것이 제법 사람 흉내를 낸다. 마치 서커스단의 동물마냥 앉아! 하면 엉덩이를 내리깔고, ! 하면 두 다리로 섰다. 그럴 때면 사자는 포상으로 고기를 받았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사자에게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좋은 일인가? 좋은 일이겠지.

어떤 사건을 마무리시키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 뭔지 알아?” 내가 물었다. 인터넷에서 본 시시콜콜한, 어디에도 적용 될 수 없는 이야기다.

적을 만드는 거야. 모두들 그 적을 미워하게 만드는 거지. 그러면 사람들이 다른 문제에는 신경도 쓰지 않게 될 걸?”

 

나는 특출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째서 면접, 무려 면접에서 선택된 것일까. 그런 의문은 일을 시작하고 삼일 뒤에 풀리게 되었다. 장미꽃은 예쁜 것이구나. 길거리에 핀 장미를 보며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난 뒤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장미꽃을 귀에 꽂은 그녀의 등장은 1999년도에 지구에 내려오신다던 앙골모아 대왕님과 같이 웅장했다. 실상은 없지만, 느낌이 너무 강렬한 것이다. 이미지의 배반이다.

그녀는 항상 가게를 찾아왔다. 찾아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항상 6시에 가게를 나갔다. 저녁식사라도 하러 가는 모양이다. 그녀가 하는 말은 어처구니없는 말들뿐이었다. 인류, 사랑, 경제 그 모든 장르의 질문을 그녀는 했다. “넌 일이 좋아? ? ? 돈이 좋아?” 그 여자가 했던 말이다. 내가 대답을 하려 입을 여는 순간 그녀는 그래 돈, 돈 좋지 돈. 응 응.”라며 자답을 했었다. 그리고 한참을 낄낄댔다. 그 미친 여자는 매일 가게를 찾아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예뻤다. 그녀와 함께 있는 편의점에서의 시간은, 하지만 악몽과도 같았다. 그녀의 발악에 내 체력은 바닥이 나 버린다. 그녀는 마치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고 산다는 서큐버스 같았다.

 

다음날 나는 스쳐지나가듯 물었다.

점장님, 손님을 때리면 어떻게 되죠?”

점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끼눈을 하고 날 노려볼 뿐이다. 나는 오늘도 난 왜소해졌다.

그럼 손님 말고 미친 여자를 때리면 어떻게 되죠?”

점장은 휴, 한숨을 쉬고, 다시 공기를 마시고, 말을 툭, 뱉었다.

딴 생각 말고 월급 받아먹으면서 일이나 해. 괜히 일 저지르지 말고. 진상 손님은 늘 있는 법이야.”

점장도 알 텐데, 그 여자는 진상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것을. 점장은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그 여자, 꽤 예쁘니까. 손님들이 보려고 찾아오는 눈치야. 우리 가게의 마스코트 같은 거라고 생각해. 그럼 되잖아.”

 

어느 해가 낮게 깔린 낮이었다. 구름이 잠잠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공작이, 털이 빠져 효용이 없어진 공작이 사라졌다. 공작의 우리 속에는 정적만이 활개를 쳤다.

깃털이 빠진 것 스트레스 때문일 거야.” 민우가 말했다.

그렇담 공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내 질문에 민우는 살짝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산책을 하기로 계획하고 실천한 것이 삼일이 지났다. 나와 여자친구는 밤 9시가 되면 만나서, 시시콜콜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이 산책에서 기분 좋은 시점은 두 군데가 있다. 우선 첫 번째는 여자친구를 만날 때이다. 두 번째는 걷기 시작한지 이십 분이 넘어가서, 땀이 비실비실 나오기 시작할 때이다. 오늘도 우리는 어김없이 걸었다. 이십분이 지났다. 그런데 웬일이지? 기분이 좋기는커녕 나빠졌다.

너 왜 또 여기에 있니. ? 가서 일해. . 편의점에 가. 갇힌 거야, 너는. ? .”

허깨비다, 라고 생각한 나는 양 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봤다. 붉은 가디건이 눈에 도드라져 보인다. 그보다 더, 더더욱 눈에 띄어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그녀의 귀에 꽂힌 붉은 장미다. 여자친구가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그녀의 표정을 흉내 내며 미친 여자에게 곁눈질을 했다. 그러다 문득, 한순간, 나는 피를 보았다. 그녀의 귀는 장미가시에 찔려 옅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난 그녀의 귀에, 장미에 손을 뻗었다. 그녀는 온몸을 비틀며 빽빽, 소리를 내질렀다. 고막이 울렸다. 나는 장미를 땅에 내친 후 짓밟았다. 빨간 장미 즙이, 어쩌면 그녀의 피와 함께 섞여서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녀는 또 빽빽 소리친다.

돈이나 벌어! 이 원숭이야!”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온 나는 거울을 본다. 가슴팍에 철장이 더욱 도드라졌다.

다음날 편의점에서 본 그녀의 귀에는 장미가 걸려 있었다. 내가 산책을 하는 곳에는 장미가 많다. 그곳에서 장미를 꺾어 귀에 꽂는 모양이다. 거 참 우스운 일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 한 후, 동물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목이 짧아지고 있다는 기린의 끈적끈적한 혀의 느낌이 그립다. 나는 오늘 오랜만에 동물원을 방문했다. “기린은 목이 짧아지는 거야.”라고 했던 민우의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기린을 올려다봐야 했고, 기린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거짓말 치지 마. 나는 친구를 비웃었다. 내 불신에 민우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한 적이 있다.

거짓말이 아니야. 기린은 정말 목이 짧아졌어. 기린은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먹기 위해 목이 길게 진화를 한 거거든, 그런데 월급쟁이마냥 날름날름,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데 목이 길 필요가 뭐 있겠어.”

아하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했다,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월급날이 되었다. 종이봉지에는 점장님이 말한 그대로의 액수가 들어 있었다. 점장은 자랑스러운 듯 것 봐, 그냥 일만하면 다 챙겨 준다니까.”하며 으쓱해했다. 월급,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런 말을 뱉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다.

오후 무렵에는 먹구름이 몰려왔다. 무겁게 어둠이 깔린다. 그리고 그 미친 여자가 왔다. 그녀에게서 나는 장미향기, 익숙한 냄새다. 산책을 할 때마다 나는 냄새이다. 그리고 그 향은 민우에게서도 났다. 동물원에는 장미가 만개해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나에게 다가와 손가락질을 했다. 그녀의 하얀 팔에는 다섯 개 남짓한 팔찌가 걸려있었다.

또 있네. 있네. 그럴 줄 알았지. 히히. 넌 갇혔어.”

갇힌 게 아니라 내가 있는 거야.”

그래, 넌 갇혔어. 갇힌 거야. ? ?”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나는 시계를 봤다. 여섯시다. 그녀가 돌아갈 시간이다.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내 곁으로 다가온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머리를 흔들흔들. 무엇을 하는 걸까.

내일 또 올게. 또 보러 올게. 내일도 넌 여기 있어. 있어야해. ? 또 있어. ? ?”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가게에서 나갔다. 시간은 오늘도 정확히 여섯시였다. 일분의 오차도 없다.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내 주머니가 묵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엇일까, 하고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놀라서 손을 빼냈다. 손에는 장미 즙과 피가 한데 섞여 흐르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는 가시 돋은 장미가 가득했다.

장미, 아아, 장미냄새.

정신이 아득했다. 나는 장미향이 사라지도록 몇 차례나 손을 씻어내야 했다. 먹구름이 새까맣게 무거워 보이는 것이, 비가 내릴 모양이다.

 

그날 저녁, 산책길에 나는 장미꽃 화단에 손을 넣고 이리 저리 휘젓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귀는 여전히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피가 나잖아.”

내 말이 들리는지 마는지, 그 여자는 하던 일을 계속 할 뿐이다. 나는 화단 속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그녀의 손은 장미 가시에 찔린 피로 가득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피를 닦았다. 그녀가 온 몸을 비틀며 저항을 했다. 나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고, 귀에 있던 장미를 빼앗았다. 여자는 또 빽빽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장미 가시를 하나하나 땐 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장미를 몇 번인가 손으로 돌려보더니, 귀에 걸고, 멀리 떠나갔다.

 

나는 다음 시험에서도 낙방을 했다. 나는 점장님에게 물었다.

점장님 저는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까요.”

일이나 해.”

 

나는 민우에게 물었다.

민우, 나는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까?”

글쎄, 어떤 인간이 나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고 어떤 인간이 좋은 유전자를 가진 인간일까?”

상대방을 깎아 내릴 수 있는 인간이 좋은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겠지.”

그렇담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없지 않아? 상대를 깎아 내릴 수 있는 인간이 없듯이. 그래, 넌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아. 우리 모두의 유전자는 동일해. 그래, 그래.”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말이야 넌 네 일이 좋아?”

내 일? 동물들 똥 치우는 고 밥 먹여 주는 거 말이야?”

, 동물원 일 말이야.”

끔찍해. 가끔 똥에 파묻혀서 죽는 꿈도 꿔. 저번에도 말했듯이 난 그럴 때마다 드넓은 들판을 동경하곤 해. 매우 넓어서 동물들이 아무리 똥을 싸놔도 괜찮은 그런 들판 말이야.”

그렇구나.”

나는 전화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잘 지내세요?”

어째선지 엄마에게는 내가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있나하는 질문을 꺼내지 못했다. 엄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통장에 가뭄이 드나 늘 하는 대답을 이번에도 했다.

, 잘 지내. 넌 건강하니?”

 

그리고 산책을 하는 길에 여자친구에게도 물었다.

나는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까?”

그날, 산책길에 장미가 도드라져 보이는 곳에서, 나는 그녀와 이별을 했다. 그녀와 산책을 할 때 입었던 옷에는, 땀 냄새 대신 장미꽃 향기가 깊게 배었다.

 

장미, 아아, 장미냄새.

나는 오늘 밤도 뜬눈으로 신문을 읽으며 보냈다. 불면증, 이 녀석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이러다 덜컥 죽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듯이 죽는 것 또한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새벽 4시가 돼서야 짧게 잠이 들었다.

눈 아픈 아침 해는 오늘도 밝아왔다. 잠에든지 한 시간정도가 지났다. 잠에 깬 나는 다시 잠에 드려 침대에서 뒤척거리지만, 잠은 결코 다시 오는 법이 없다. 나는 피로한 채로 일어났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침의 커피는 유난히 싱겁다. 혀는 나를 배신하고 잠에 드는 모양이다.

8층에서 7층으로 향하는 계단 사이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민우를 만났다. 그의 집 문이 열리는 순간 장미향이 무겁게 배어나왔다. 그 냄새는 그의 옷에서, 아니 어쩌면 그의 몸에서 도저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날 보면서 살며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일터인 동물원으로 떠나는 모양이다. 나는 피곤에 절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저 앵무새처럼 그를 흉내 낼 뿐인 것이다.

내가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어느 날,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 일 끝나면, 밥이 잘 넘어가? 동물 냄새가 심하게 배잖아.”

, 고약해서 밥이 잘 안 넘어가기는 하지. 그래도 요즘 동물원에 장미나무를 가득 심었거든, 곧 꽃이 피어나면 동물 냄새도 많이 없어질 거라고 해.”

장미구나. 넌 동물을 좋아해서 그 일을 하는 거지?”

딱히 잘 모르겠어.” 그는 한숨을 쉬고, “철장 안 동물이 죽지 않게 하는 게 내 일이니까.” 떫게 웃었다.

넓은 들판이라면, 좋을 텐데.”

마음이 편치 못한 아침은 지나갔다. 이렇게 시간을 버릴 바에는 취미활동이라도 시작해볼까, 라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며 아침을 보냈지만, 다만 생각뿐이다. 실재로 내게 취미가 생기는 법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얼마 전, 산책을 시작했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편의점으로 갔다. 그곳에서 2시간이 지나니, 미친 여자가 비둘기 제 집 찾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더니, 나를 토끼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온 머리카락이 흩날리도록 배꼽 세 차례 한다. 그녀는 가끔 그랬다. 첫 번째 인사는 나를 향해, 두 번째는 전면거울을 향해, 세 번째는 세상을 향해하는 것이다. 나는 넋을 놓고 그 얼빠진 장면을 바라 볼 뿐이다. 그러자 여자의 표정이 뾰로통하다. 볼을 부풀리더니, 숨이 차는지 헐떡인다. 그리고 다시 볼을 부풀리더니, 눈을 치켜뜨고 난 인사를 했는데 안 해 넌 왜 원숭이야! 인사 해!”라며 나를 호통한다. 또 저 눈빛.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르겠다는 눈빛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입 꼬리를 슬며시 올리고, 오른손을 흔들었다. , 건방져 보이고 성의도 없어 보이지만 이번만은 봐주지. 그런 표정이 여자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비췄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다시 한 번 외친다.

안녕하세요!”

으응, 안녕.”

아니 너 말고!” 여자는 다시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안녕하세요!” 내가 세상을 대신해서 인사를 해주는 건 불가능 한가보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없어서, 무한히 고독한 공간은, 그녀의 인사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기가 벌써 오 분이다. 그녀는 아직도 쉴 세 없이 안녕하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메아리라도 친다면 좋으련만, 메아리는커녕 지나가는 손님의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저 여자가 이런 짓을 하는 것도 이걸로 네 번째다. 첫 번째 인사는 나에게, 두 번째 인사는 자신에게 세 번째 인사는 세상을 향해. 처음 이 짓을 했을 때, 그녀가 내게 설명 했던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세상뿐이다.

그만해. 조용히 해.”

통할 리가 없는 부탁을 했다. 이를테면 돌탑을 쌓고 소원을 비는 심정인 것이다.

네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해졌다. 소원 이렇게나 쉽게 이루어지다니, 허무함마저 든다. 원래 원하는 것을 이루면 이토록 허무한 것인가? 무언가를 이룬 적 없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하던 인사를 멈추더니, 치마를 툭툭 털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6시가 되었구나, 하고 느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 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시계가 잘못 됐거나, 여자가 잘못된 것일 거다.

평생 믿으며 살아온 시계와, 6시에 떠나는 여자 중에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그런 쓸 대 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동그란, 바퀴가 달린 의자를 들고 돌아왔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내 솜털 하나하나가 비쭉 서는 것을 느꼈다. 올 것이 왔다. 이 미친 여자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나는 의자에 맞아 머리통에 구멍이 나는 상상을 하며, 겁먹은 본성을 대신해 이성으로 생각을 했다. 병원은 ***병원이 적당하다, 라고.

원숭이야, , 앉을 거야. ? 앉는다. ?”

여자는 의자를 계산대 옆에 두더니,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가드자세를 풀었다. 이제 그녀는 무얼 하나, 봤더니 하는 짓이 참 가관이다. 몸을 뒤로 젖혀, 무게 중심을 한 곳에 두더니, 땅을 힘차게 차며 의자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그 사이 손님이 몇 번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이 난리 속에서 그들은 쇼핑을 했다. 이런 상황이 그들에게 별 감흥이 없는 것인지, 익숙한 것인지 모르겠다. 여자가 내 앞을 지나갈 때 나는 말했다.

가만히 좀 있어.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이런 미친 여자의 어디가 좋다는 거야.”

그러자 그녀는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가만히, 입만 뻥긋거리며 의자를 타고 와, 내 옆에 앉았다.

내 말 들어 준 거야?”

. 응 응 응 응 응.”

만날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소리를 지르더니, 왜 오늘은 말을 잘 들어.”

귀가 안 아파져서 말이 잘 들리나봐. 응 응 그런 건가봐.”

그녀가 귀를 접더니, 귀의 뒷면을 보여주었다. 늘 피가 맺혀 있던 그 자리에는 새빨간 딱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봐봐, 이제 안 아프다? 인거지? 응응?”

. 그렇구나.”

그녀가 귀를 접을 때 떨어진 장미를 주워들었다. 붉은 장미다. 장미를 들어 올린 그녀의 손은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럴 일은 없었다. 장미의 가시가 모두 뽑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시를 빼고 돌려주었던 그 장미다. 그녀는 장미를 귀에 꽂고는, 뭐가 좋은지 실실 웃었다.

손님이 몇 번 몇 번 들어왔다가, 물건을 사고, 여자를 보고는 신기하다는 얼굴을 하며 나간다. 그녀가 가만히 있는 것이 신기한 것일까, 조각상마냥 미동도 없는 것에 놀란 것일까. 나는 그녀가 미동이 없는 것이 놀랍다. 5시다. 여자는 여전히 움직임과 말이 없다. 건드려 볼까, 하고 손을 내뻗다 흠칫, 하고는 손을 거둬들였다. 안 된다. 다시 시끄러워진다면 감당 할 수가 없다.

얼마 후 그녀가 말 한마디를 건넸다.

어떻게 안 아프게 했어? 장미가 안 아파? . 안 아파.” 그녀가 귀에서 장미를 뽑아서 내게 보였다. “나도 안 아프게 하고 싶어. 장미든 뭐든. 안 아파야 해.”

그냥 가시를 뽑은 거야. 가시 때문에 안 아팠던 거니까. 그것만 없어지면 되는 거잖아.”

! 그렇군.” 그리고 또 우리는 말이 없다.

 

시계는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다른 무엇도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6시다. 그녀가 떠나갈 시간이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임이 없다. 나도 그녀를 따라 미동 없이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가 입은 연분홍빛 한복의 어깨선이 참 곱다. 일 분이 지났다. 이제 61분이다. 큰일이다. 정확히 6시에 떠난다는 것은 그녀의 절대적인 진리일 터인데, 그것이 깨어지고 있다. 나는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여섯 시 지났는데, 안 갈 거야? 밥 먹으러 가야지.”

.” 그녀가 정면을 바라 본 채, 입만을 움직여 대답했다.

그래. .”

. 같이 가자. 원숭이야, 너도 나랑 같이 가. ? ?”

난 못가. 너나 가.”

것 봐. 넌 갇힌 거야. 갇혔어. 원숭이야. ? 우리 속 원숭이구나? 역시 그렇구나? 큰일이네. 원숭이는 여기 없어야하는데. 히히히, 가자. 안 아프게 해줄게. 너도. 너도 안 아프게 하자. ?”

…….”

. 원숭이. 원숭이야.”

시간은 64분을 넘어서고 있다.

난 원숭이가 아니라니까. 원숭이는 동물원에 사는 애들이고, 난 동물원에 살지 않잖아.”

아냐. 아닌 거야. 원숭이는 동물원에 안 살아. 원숭이는 나무에 살아. 빨간 사과를 따먹으면서 살아.”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게.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노래를 그만두더니,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원숭이야, 너 원숭이 아니야? 그럼 원숭이 보러 가자. 그럼 원숭이라고 안할게. ? 가자. ? 꼭 꼭 가자.”

그녀가 내 멱살을 꼭 부여잡고 흔들며 부탁을 했다. 내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미친 여자가 내 멱살을 잡고 있다. 기분이 묘하다. 몸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다잡으니, 자연스레 그녀의 손을 감싸 안게 되었다. 나도 미치게 되려나.

지금은 안 돼.”

그럼 또 올게. 내일도 또 올게. 다음에 만나면 그때 가자. 그때 가. ? 그때 가.”

그녀가 의자를 들고 천방지축으로 뛰어가다, 유리문에 머리를 박고, 다시 일어나 문을 열고 떠나갔다.

 

해가 산 뒤로 넘어갔다. 오늘도 산책은 계속된다. 나와 걷던 철진이 내게 말했다.

민우 말이야 내일부터는 같이 산책을 하지 못할 거라고 하던데.”

민우가? ?”

철진의 옆에 있던 한비가 고개를 삐쭉 내밀고 대답을 했다.

동물원에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더라고. 이전이라고 했던가. 없어진다고 했던가.”

그래? 그런데 만약 동물원이 없어진다면 동물들은 다른 동물원으로 가나? 만약 곧 죽을 것 같은 동물들은?”

정상적인 동물들은 다른 동물원으로 가겠지. 그런데 곧 죽을 것 같은 동물들은 모르겠어. 다른 동물원으로 가겠지 뭐. 설마 안락사라도 시키겠어? 윤리적 문제라는 것이 있잖아. 만약 죽이기라도 한다면 일이 커질걸?”

내가 말한 곧 죽을 것 같은 동물은 공작을 뜻하는 것이었다. 공작, 몇 달 전 갑자기 우리에서 사라졌던 그 공작의 행방을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죽지 않았다면, 다른 동물원에서 볼 수가 있겠지.

원숭이야, 원숭이야, 원숭이 보러 가자 원숭이야. ? ?”

우리가 만나고 삼십분 가량이 지난 뒤, 장미가 지천에 깔린 곳을 지날 때, 미친 여자가 귀에 꽃을 꽂고 나타났다. 나와 산책을 하던 넷 중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산책을 하면 두 번에 한번 꼴로 나타나는 그녀에게 익숙해진 탓이리라.

지금은 안 돼. 다음에.”

미친 여자는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응, 이라고 세 번을 말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그동안 신지 않던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다. 그 모습이 저승사자 같기도 하다. 혹은 저승사자에게 쫒기거나.

그녀가 내 곁에 오더니, 낑낑대었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가 왼쪽 귀에 꽂은 장미가 강렬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색이 점점 진해지는 것이, 금방이라도 썩어서 떨어질 것만 같다.

꽃을 잃어버렸다는 제목의 실화(失花)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멋쩍게 웃으며, 친구들을 바라 볼 뿐이었다. 여자의 손이 내 바지 쪽에서 주춤거리더니, 곧 내 머리까지 올라왔다. 내 귀에 무언가를 꽂고는, 원래 있던 자리로 참새처럼 쫑쫑거리며 돌아갔다. 내 귀에는 장미 꽃 한 송이가 걸려 있었다.

안 아프지? 안 아프지? ? ? 이제 나도 안 아프게 할 수 있어.”

그러더니 그녀는 떠나갔다. 누구도 그녀에 대해서 내게 묻지 않았다. 늘 있던 일이라 익숙하다는 것이다. 물론, 내게 그녀에 대해서 묻는다면 내가 할 대답은 나도 전혀 몰라, 이겠지만 말이다.

집에 온 나는 내 가슴팍을 바라봤다. 오늘도 철장이 있다. 나는 귀에 꽂힌 장미를 뽑아 냄새를 맡았다.

장미, 아아, 장미향기.

이제 좋을 법도 하건만, 이 지독함을 무일까. 나는 장미를 그저 바라 볼 뿐이었다. 향기만 나지 않는다면, 곱게 봐줄 텐데. 나는 슬며시 웃었다.

 

 

며칠 뒤 나는 정우를 만나 동물원에 대한 좌초지종을 들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존재하던, 그리고 정우가 일하는 그 동물원은 사라질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정우에게 일자리를 잃지는 않겠느냐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너나 잘해.”였다.

네가 남 걱정 할 때가 아니야. 난 그래도 내가 되고 싶어서 된 직업인데, 넌 아니잖아. 공무원도 네가 되고 싶어서 되려고 하는 게 아니고 말이야. 내가 볼 때 너는 무언가에 묶여 있는 것 같아.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사는 건 나뿐만이 아니잖아.”

 

여자는 오늘도 찾아왔다. 그것을 어기는 법은 없다. 그녀는 내게 양 손을 과하게 흔들며, 의자를 발로 차면서 내 옆까지 옮기더니, 내 곁에 앉았다. 그리고 새끼 새처럼 시끄럽게 쫑알거린다. 길거리에서 만난 할머니 이야기부터, 강아지 이야기 까지. 모두 두서가 없는 말이다. 나는 가끔 응, , 그렇구나, 하며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이 대답을 해 줄 뿐이다.

이소영이라는 소녀가 있었어! ! 그랬어.”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게? 몰라! 히히. 난 몰라. 다른 건 다 알아도 그건 몰라. 생각해 보면, 응 나도 생각을 할 줄 알아. , 생각해 보면 넌 이소영하고 비슷해. 소영이가 뭔지 모르지만, 네가 소영이하고 비슷하단 거는 알아. 그런가봐. 내가 그래서 원숭이라고 했나봐. 그랬나봐. .” 나는 또 대답했다. “그렇구나.”라고, 성의 없이.

, 그랬어. 그런데 사실 소영이하고 닮은 원숭이가 엄청 많아. 원숭이야. 봐봐.” 손님이 고등학생 둘이 삼각 김밥과 라면 두 개를 계산한다. 먹고 갈 모양이다. 그녀가 고등학생들을 번갈아가며 손가락질 한다. “여기도 원숭이가 있어. 응응!”

머리가 짧은 고등학생 하나가 다른 학생에게 귓속말을 하더니, 여자를 보고는 웃는다. 일 초, 이 초, 삼 초, 사 초 얼마나 여자를 바라보나 했더니, 육 초를 바라보다가 둘이서 중얼거린다. 나무젓가락을 꺼낸다. 확실히 먹고 갈 모양이다.

얼마 후, 그들이 나가고 난 걸레로 음식물을 닦는다. 그리고 손님이 다시 들어온다.

얼마 전에는 고양이가 개구리를 물고 가는 것도 봤어.”

다해서 오천 육백 원입니다.” 나는 손님에게 말했다. 여자 손님이다.

빨대는 어디에 있어요?”

겨울이었어. 정말? . 겨울이었어. 그런데도 고양이가 개구리를 물고 있었다? 신기하지? ? 겨울잠을 자는 걸 꺼내서 물었나봐. 겨울잠을 자도 큰 동물한태는 어쩔 수 없나봐. . 그런가봐. 피할 수 없나봐.”

나는 오른쪽의 통에서 빨대를 하나 꺼내서 봉투에 넣었다. 미친 여자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다. 나는 봉투에 빨대를 넣으며 . 그렇구나.”하고 대답을 했다. 손님이 코를 킁킁거리며, 장미향을 맡더니, 여자를 위 아래로 훑는다. 시선이 귀에 걸린 장미로 향하더니 묻는다.

이 애가 그 애에요?”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가슴이 죄여오는 기분으로, 슬쩍 이를 보였다. 웃는 걸로 보이기를 바라면서.

저 원숭이가 날 계속 내려다봐. 나도 원숭이인가 봐. . ? 아닌데, 아닌데. 난 이제 원숭이 아닐 건데.”

 

그 주의 토요일, 나는 미친 여자와 함께 동물원에 오게 되었다. 다른 마음은 없다. 그저 동물원이 사라지기 전에, 한번 대려 와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진짜 원숭이를 보고서, 나를 원숭이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말이다. 다른 마음은 없다.

철장 속에는 여전히 공작이 없었다. 공작을 보지 못한 그녀는, 하지만 기뻐했다. 우리 속이 아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우와, 원숭이들이 엄청 많다. 다 우리에 갇혀 있구나. 네 말이 맞았어. 응 응.”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저건 원숭이가 아니라 사람들이야.” 나는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따라와 원숭이를 보여줄 태니까.”

나는 잠시 돌고래가 있는 곳에 들려, 정우에게 인사를 한 후, 정우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뒤로 한 채, 원숭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원숭이만을 부르짖던 이 여자가 원숭이를 보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감도 오지 않았다.

다람쥐원숭이 세 마리가 우리 속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볼리비아에 산다는 녀석이다. 녀석들을 본 여자의 표정은, 웬일인지 덤덤했다. 마치 흔하디흔한 소나무를 바라보는 표정이다. 나는 실망했다. 동물원에는 장미향기가 가득했다. 동물이 있는 곳 어디든지 그 향이 났다. 고기를 먹든 밥을 먹든, 그곳에서 장미냄새가 날 것만 같다.

기린 우리 앞에는 놀랍게도 푸른 장미가 피어 있었다. 푸른 장미, 꽃말은 불가능, 이뤄 질 수 없는 사랑, 이룰 수 없는 꿈. 장미를 보자 여자는 눈이 뒤집힌 것처럼, 그것을 꺾기 시작했다.

이 장미 가지고 다닐 거야.”

당연하지만, 그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나는 여자를 대신해서 장미를 몇 송이 꺾었다. 그리고 여자의 귀를 바라봤다. 가시가 없는 붉은 장미가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강한 바람이 분다면, 금세라도 떨어질 것 같다.

거기! 꽃 꺾지 말아요!” 동물원을 관리하는 걸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꽃을 꺾으시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나와 여자의 손에 있는 푸른 장미를 빼앗았다. 나는 장미를 꺾던 것이 멋쩍어서, 딴소리를 했다.

그런데, 어떻게 파란 장미가 있는 겁니까? 파란 장미는 불가능 한 거 아닌가요?”

내 물음에 관리자는 귀찮은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개종이 된 거죠. 좋은 유전자라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 꽃말도 바뀌었어요. 가능이나 기적? , 이뤄지는 사랑이라던가? 그런 걸로 말이죠.”

좋은 유전자.

그 말을 한 뒤 그는 떠났다. 그의 말을 들은 여자의 눈빛이 빛났다. 그러더니 파란 장미에 손을 뻗었다. 나는 그것을 말렸다. 한참을 실랑이 한 끝에 그녀는 포기했다.

사자 우리로 갔다. 동물원을 정리중인지 사자 우리는 자못 위험해보였다. 위쪽에 구멍이 뚫린 것이, 마음만 먹고 철장을 넘는다면 떨어질 것도 같다. 사자는 오늘도 왜소하게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렇게 가둬놓고 키우니까 사자 같지도 않네. 크기도 조그맣고.” 사자는 내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두 다리로 서서 재롱을 부리고 먹이를 받아먹었다. 여자가 나를 올려다봤다.

사자, 작아? ? 왜 작아? 큰데? ?”

나는 어린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는 심정으로 말했다.

인간이 진화를 했듯 동물도 진화하는 거야. 다윈인지 뭔지 하는 그 과학자의 말대로 말이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야.” 나는 언젠가 친구가 내게 해 준 말을 똑같이 따라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작구나. 작아지는 거구나. 크려면 어떻게 해야 해? ? 우유를 먹어야지. 그렇구나.”

어느새 온 세상이 주황빛이다.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솜사탕을 뜯던 그녀가 말했다.

, 파란 장미 가질래. ?”

안 돼.”

? 꽃말도 바뀌었다고 하잖아.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 그러니까 가능해. 내가 가지는 거 가능해. 기적이잖아. 기적이라잖아!”

가능이든 기적이든지, 얻을 수 없는 게 있는 거야. 기적은 불가능해.”

그녀는 볼을 부풀렸다. 그녀의 귀에 걸린 장미가 위태롭게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다음날이다. 나는 조용히 일을 하고 집으로 왔다. 여자가 가게로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동물원을 데려갔기 때문인 모양이다. 잘 된 일이다. 나는 산책을 갔다. 어느덧 장미 향기가 온 사방으로 퍼졌다. 그럼에도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잘 된 일이다. 집에 온 나는 물병에 꽂힌 장미를 바라봤다. 피를 연상시킬 만큼 유난히 붉었다.

그리고 정우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동물원이 곧 사라진다고 한다. 나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방금 동물원에서 사람이 사자우리에 떨어져 크게 다쳤다고 한다. 확인 결과 이름은 이소영.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 사자에게 물리거나 머리로 떨어졌다면 무사하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사자를 마취시키느라, 병원으로 옮기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그리고 이상하게도 우유를 가지고 있었다고.

 

그 순간, 나는 덜컹 덜컹, 가슴팍의 철장을 내려쳤다. 쿵쾅대는 심장이 철장에 짓눌려, 터져버릴 것만 같다.

덜컹 덜컹.

나는 동물원으로 달려갔다. 문이 막혀있다. 나는 담을 뛰어넘고 사자 우리로 뛰어갔다. 몇몇 사람이 몰려있고, 경찰이 그들을 통제하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웅성거린다.

좋은 구경이라도 났냐!

소리치고 싶다. 나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하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천 덮인 무언가를 실어 나르고 있다. 나는 나를 막는 모든 것을 뿌리치고 몸을 날려서, 천을 벗겼다. 그리고 훑었다, 그녀의 토끼 모양 핀이 꽂힌 긴 머리, 하얀 목, 초록색의 윗저고리, 짧은 치마저고리, 그 아래의 검은 스타킹까지. 어깨선이 고운 저고리에는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다만 짓이겨진 장미의 즙이, 흥건히 묻어서, 피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눈물이, 가녀린 눈물샘을 비집고 나오더니, 툭 하고 떨어진다. 누군가 나를 강하게 밀친다. 장미를 못 꺾게 했던 관리자다. 나는 힘없이 널브러진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진다. 장미향기가 무겁게 깔려있다.

장미, 아아, 장미향기.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장미는 이렇게나 많이 피었는데, 단지 하나의 꽃을 잃어버린 것만으로, 이렇게나 눈물이 난다.

 

시간은 열두시다. 이리저리 떠밀리더니, 어느새 집이다. 나는 그저 넝마가 된 유기체에 불과하다. 그러다 문득, 꽃병에 꽂아놓은 장미가 보인다. 나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쳤다. 그리고 철장을 비추는 거울을 깨버렸다. 뉴스가 흘러나왔다. 제목은 살인 사자. 동물원에서 한 여성이 사자에게 물려, 사망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피가 한 방울 없던 그녀의 몸은 사자에게 물린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어떤 사건을 마무리시키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 뭔지 알아? 적을 만드는 거야. 모두들 그 적을 미워하게 만드는 거지. 그러면 사람들이 다른 문제에는 신경도 쓰지 않게 될 걸?” 어디에도 적용 될 수 없다고 생각 했던 시시콜콜한, 잔인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적용이 되고 있다. 사람들의 적은, 묘기를 부리며 사람들의 흥을 북돋던, 한 없이 왜소한 사자가 되었다.

 

나는 전화를 해서 거친 숨을 내쉬며,

열쇠. .”

하게?”

했어야 할 일이야.”

미쳤구나.”

, 나도 미쳤어.”

 

계단을 타고 달려 내려갔다. 정우가 문을 반쯤 열고 있었다. 나는 열쇠를 받고 동물원으로 달려갔다. 동물원의 한 쓰레기통에는 나와 소영이 땄던 세 개의 파란 장미가 버려져 있었다. 사자 우리로 갔다. 사자 우리의 위쪽에는 웃자란 장미의 가지가 장미 한 송이를 피워내고 있었다. 기적. 이루어 질 수 있는 사랑. 그런 꽃말의 파란 장미다. 그녀는 분명 저 장미를 손에 넣으려다, 떨어져 죽은 것이리라. 나도 그녀를 따라 장미에 손을 뻗었다. 내 몸이 휘청거리다가, 사자 우리로 떨어질 것 같더니, 장미의 줄기가 손에 잡혀,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장미를 꺾었다. 그런데 웬일이지.

가시가 가득해야 할 장미의 줄기에는, 오로지 한 개의 가시만을 남기고, 모든 가시가 뽑혀 있었다. 그 순간 그녀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나도 안 아프게 하고 싶어. 장미든 뭐든. 안 아파야 해.”

나는 남은 하나의 가시를 뽑아버렸다. 그 순간, 가슴이 벅차며, 머리가 울렸다. 파란 장미도 손에 넣을 수 있구나. 나는 그 장미를 귀에 꽂았다. 이제부터다. 나는 갈기가 볼품없는 사자, 수가 줄고 있는 원숭이, 살이 찐 타조, 목이 짧아진다는 기린 등, 동물원의 동물우리를 하나하나 열쇠로 열었다. 우리 속에는 장미향이 진동을 했다. 그 냄새가 눈물과 한데 섞여 흘러내렸다. 지독했던, 끔찍한 냄새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쁨이 되더니, 이제는 닿을 수 없이, 아득한 사람이 되어 있다.

동물들이 우리 밖으로 뛰쳐나왔다.

우린 너무 길들여졌어.”

나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동물을 이리저리 내쫒았다.

가자. 가자. 가자. 이제는 가자.

철장 속에서 나와, 장미 냄새가 나지 않는 드넓은 들판으로, 이제는 정말 되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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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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