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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16:42

현충원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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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 가는 날


나는 107번 버스에서 내려 현충원 정문을 향해 걸었다. 남자친구가 죽은 지 벌써 5년이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입구에 우뚝 선 문을 통과할 때, 나는 얼마나 추하게 울부짖었던가. 아름다운 눈물이라는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나는 울었다. 그러나 해가 가며 눈물은 점점 잦아들었다. 오늘에 와서는 담담히 이곳의 인도를 밟을 수 있을 정도로. 이제 아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애써 새살로 덮인 상처를 1년마다 헤집어 놓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이코도 아니었다. 이유를 굳이 설명한다면, 그것은 촌스럽게도 사랑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허무한 일이다. 나는 허위허위 세상을 등진 망자의 바짓가랑이를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정문을 지나 바지런히 그가 묻힌 묘를 쫓아갔다. 사병3묘역 306. 이제는 표지판도 필요 없는 길이다. 나는 수많은 묘비를 지나 남자친구의 무덤 앞에 섰다.

[ 김 재 원 ]

따끔거리는 눈물샘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소개할 것은 이름밖에 없었다. 나는 가져온 꽃 한 송이를 그 앞에 두며 쪼그려 앉았다. 1년 만에 찾은 묘지가 멋쩍어 그 옆의 풀도 괜스레 뜯어보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의 얼굴을 머릿속에 다시 그렸다. 남자친구는 특별해서 그를 생각하는 행위조차 이름이 붙었다.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그는 죽자 호국영령이 되었다. 내가 살아서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말이다. 학교 조회시간에 무얼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눈만 감고 기다렸던 그 시간이 남자친구의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에 전국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남자친구를 생각했다. 그들은 그의 이름도 모르는데. 우스웠다. 김재, 이 땅에는 너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네 생각을 한단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아니,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생각을 그의 입으로 전해들을 수 없었다. 지겨운 말이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매일 통감하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묘비 위를 쓸었다. 부드러운 흙먼지가 손에 묻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죽음은 떠나간 그네들의 것인데 그것을 감내해야하는 것은 남은 이들의 몫이었다. 내던져진 그의 죽음 앞에서 남겨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남자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였다. 삶이란 왜 이토록 버거운 것인가. 삶은 왜 죽음까지 짊어져야 하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곧 참담해졌다. 왜 죽었냐고 원망할 수도 없었다. 남자친구가 왜 죽었는지는 온 세상이 모르는 일이었다. 뉴스에서 그 이유를 밝혔지만 못 믿는 사람 반, 믿는 사람이 반. 나는 그 속에서 그의 죽음조차 믿을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이 죽고 남은 것은 이데올로기였다. 그 곳에 처음부터 무엇이 있었는가는 까맣게 잊혀졌다. 사상과 이념이 다 무어냐. 그 소용돌이 안에서 남자친구는 조난당했다. 나는 묘비에 SOS를 그렸다. 남자친구는 살려 달라 외치지도 못하고 사라졌겠지. 누군가는 호국했다 하는 죽음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거대한 묘지에 묻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싫었다. 직급과 서열에 따라 정리된 묘지가 싫었다. 남자친구는 왜 군인으로 죽었나. 태어나기를 어떤 부모님의 아기로 태어났는데 죽은 것은 군인이었다. 나는 그가 부모님의 아들로 죽길 바랐다. 나의 남자친구로 죽길 바랐다울음을 참기 위해 주먹을 쥐었으나 구멍을 비집고 나온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한 것은 나와의 약속이었다. 나는 한참을 묘비 앞에서 서성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근처에 호수가 하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충혼지(忠魂池). 멋들어진 이름이었다. 이곳에 묻힌 남자친구의 혼()은 충()으로 장식되는 것이다. 이 이상 생각해서 무엇 하랴. 나는 돈도 안 드는 생각을 아꼈다. 몇 분 걸어 도착한 충혼지는 파랬다. 물이니까 파랗지. 시시껄렁하게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중요한 생각은 아끼고 쓸모없는 생각은 코푸는 양 쉽게 뱉는 습관이 생겼다. 호수의 잔물결에 빛 따위가 날아와 부딪히고 있었다. 난간에 기대어 비산하는 호수의 반짝임을 바라보았다. 나는 남자친구가 해군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부터 싫었다. 해군은, 지가 무슨 해군이야. 코끝이 시큰거렸다. 수영도 못하는 해군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나. 남자친구는 정말로 수영을 못했다. 하지만 바다는 좋아했다. 아마 이제는 싫어졌을 것이다. 바다가 자기를 죽였으니까. 복잡한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남자친구는 바다에 빠져죽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고요하게 흐르던 의식을 깨뜨리는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의 수신인을 확인했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동기 박미혜였다. 326. 그녀는 5년이 흐르는 동안 오늘을 잊지도 않고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와도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녀 또한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두고 정이 많다고 하기도, 오지랖이 넓다 평하기도 하였다. 미혜는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 하는 친구였다. 오늘 같은 날은 그런 그녀의 전화가 반갑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외줄이 성기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날이 있었다.

수연아, 너 또 대전이야?”

전화를 받자마자 미혜의 목소리가 귓구멍을 갈랐다. 남자친구를 보러 왔음을 질책하는 말이었다. 나는 단박에 인상을 구겼다. 대꾸가 없음에도 미혜는 주절주절 잘도 말을 뱉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나도 몰라. 욕과 함께 내던지고 싶은 말이었지만 참았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미혜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 아직 살아 있는데.”

나는 죽고자 해서 매년 이 곳에 걸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살기 위해서 그리한다는 것이 더욱 옳았다.

너 이제 나이도 있으니 다시 연애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라는 단어의 뜻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긍정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난 이대로도 괜찮아. 미혜야, 그만하자.”

미혜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전화기 사이에 잠시 전파와 침묵만이 흘렀다. 미혜가 나를 괴롭히려고 전화하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미혜를 달랬다.

나 진짜 괜찮아. 걱정하지 마.”

미혜는 풀이 죽어 전화를 끊었다. 나는 헛헛한 마음에 호수만 바라보았다. 눈앞에 어슴푸레한 안개가 끼었다. 소매로 대충 문질러 닦고 충혼지를 떠났다.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왼쪽으로 무수히 많은 묘비가 늘어서 있는 모양을 구경했다. 가장 효율적인 배열로 구획을 나누고 그들만이 아는 카테고리에 따라 분류한 무덤들이었다. 깔끔하고 정숙했다. 그 앞에는 저마다 꽃다발이 하나씩 놓여있었다. 나라 차원에서 호국영령에 대한 존중을 표한 것이리라. 남자친구의 묘비 앞에도 그러한 꽃다발이 하나 있었음을 떠올렸다. 언제 두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꽃다발은 시들지도 않았다. 매일 밤 꽃다발이 시들면 수거하고, 아침에 새 것을 놓아두는 것일까. 알록달록한 꽃다발들이 산 사람들 보기에는 좋았다. 무덤 밖에 없는 이곳이 내가 사는 골목의 색깔보다 아름답다 생각하며 길을 거닐었다. 순간, 제 몸을 부르르 떠는 휴대전화의 진동을 느꼈다. 의아함에 수신자를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였다. 받지 않았더니 또 한 번 전화가 몸을 떨었다.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광고전화라면 한바탕 욕을 해줄 요량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연이니? “

그러나 나는 휴대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온 내 이름에 적잖이 당황했다. 또한 내 이름을 부른 목소리가 나이 지긋한 여성의 목소리라는 점이 더욱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누구세요?”

재원이 엄마인데.”

나는 가던 길을 우뚝 멈춰 섰다.

혹시 대전이면 밥이라도 한 끼 같이 하는 게 어떠니?”

갑자기 혀를 잃은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하는 대답은 무조건 긍정의 대답이었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대답을 망설이는 3초가 영겁과 같이 느껴졌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굳어버린 혀를 깨물었다. 간신히 알았다는 대답을 입 밖으로 차낼 수 있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기쁜 듯이 약속장소로 오는 길을 읊어주었다. 나는 그녀가 불러주는 음식점 이름과 위치를 메모했다.

[ 정문 지나 덕송 초등학교 옆 방일 해장국]

 

충혼지 근처에서 정문까지 가려면 꽤 걸어야 했다. 느긋한 일정이 사소한 폭풍에 휘말리게 되었다. 바쁘게 움직여 여러 개의 장식물을 지났다. 큰 길을 따라 현충문과 분수탑을 지나자 야생화가 수북이 핀 공원이 나왔다. 야생화인데 야생에서 피지 않는구나. 시답지 않게 생각하며 그 앞을 지나쳤다. 왼쪽에 보이는 이름 모를 조형물 또한 감상할 새 없이 지나왔다. 길을 따라 쭉 걷자 드디어 정문이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들 중 하나였지만 이미 불편한 관계를 더 불편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5년 전 남자친구가 죽었을 때 처음 만났던 것이 일면식의 전부였다. 그 때 그녀와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치고는 꽤나 끈끈한 감정을 나누었다. 얼싸안고 통곡하던 그 날의 오후는 다시 생각해보아도 팔뚝에 소름이 오르는 것이었다. 첫 대면의 꺼림칙한 기억 때문인지 그녀와 나는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서로 느끼고 있었다. 사실 가까워야 할 이유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그녀의 아들이 연애 걸던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좋은 추억은 없는 그녀가 밥을 먹자고 하니 먹지도 않은 점심이 벌써 얹히는 것 같았다. 나는 차라리 내가 길을 잃길 바랐다. 하지만 해장국 집은 너무나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행여나 지나칠까 요란하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커다란 간판이 야속했다. 나는 생각보다 큰 가게의 규모에 쓸데없이 놀라며 출입문을 몸통으로 밀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 자리에 앉아 있던 그의 어머니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옆에는 그의 아버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사람이 두 명. 늘어난 부담감은 제곱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물수건으로 손을 닦는 동안 그의 어머니는 메뉴를 해장국으로 통일하여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바짝 마른 입안을 물로 축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의 아버지였다.

" 괜히 불러서는, 사람 불편하게."

나를 힐끔 쳐다보고 바로 고개를 돌리며 한 말이었다.

" 이이는 사람을 앞에 두고 이상한 말을 해."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바로 핀잔을 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자리가 불편한 듯 엉덩이를 자꾸만 들썩거렸다. 반가운 자리가 아닌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에게서 가벼운 동질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어색한 기류를 깨뜨리며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 수연아, 나는 그래. 네가 너무 고마워."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내게 무엇을 고마워하는 것일까. 내가 남자친구를 아직도 사랑하는 것을? 아니면 그녀와 똑같이 남자친구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그녀의 말의 의도가 어느 쪽이든 그리 유쾌한 감사는 아니었다. 나는 내색하지 않으며 거짓으로 웃었다.

" 아니에요."

고마워하지 마세요. 가까스로 혀 밑에 문장을 삼켰다. 그녀가 온화하게 웃으며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내 손을 잡으려 하는 움직임을 보고 옆에 있던 물 컵을 쥐었다. 컵 또한 불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녀의 따뜻하고 축축한 손바닥이 내 손등을 덮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을 맞잡는 행동으로 변화에 대처하였다.

" 오늘도 이렇게 재원이 찾아와주고."

그녀는 금세 배어나온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찍어냈다. 그녀의 남편이 못마땅한 듯 두어 번 헛기침을 뱉었다.

" 아직 많이 힘들지?"

그녀는 연민이 듬뿍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눈빛에 당황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은 힘들지 않다는 듯 나를 가여워하고 있었다.

" 수연이를 이렇게 부른 건 수연이한테도 좋은 말씀 전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 , . 여편네가……."

그의 아버지가 기어코 한마디를 꺼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그에게 침묵을 권했다.

" 당신은 좀 조용히 하고 있어요."

그녀는 다시 상냥한 얼굴로 돌아왔다.

" 수연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란다."

나는 순간 내 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몇 초 사이에 돌아버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눈을 껌뻑였다. 식탁 맞은편에는 가련한 어린 양을 굽어보는 성자의 눈을 한 그의 어머니가 앉아있었다. , 내가 드디어 미친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인상을 구긴 채 물만 들이키고 있었다.

"아직은 실감이 안 나겠지만 아줌마랑 같이 공부하다 보면 하나님이 다 뜻이 있어서 그러셨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잘 못 들은 것이길 바라며 되물었다.

" 재원 오빠가 죽은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요?"

" 그래.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가는 법이란 걸 성경을 공부하면은 다 깨칠 수가 있어."

" 그만 좀 하지 못 해!"

결국 큰소리가 났다.

시간이 쨍 얼어붙었다. 살얼음판 같은 식탁 위에 때마침 해장국 세 그릇이 도착했다. 검은색 뚝배기가 각자 앞에 배달되고 그 안에 담긴 벌건 국물은 뜨거운 김만 모락모락 피워냈다. 나는 먼저 국을 뜰 용기가 없어 그릇에 붙은 고춧가루만 멀뚱히 쳐다보았다. 민망한 분위기 속에서 첫 술을 뜬 것은 남자친구의 아버지였다. 그 다음은 내가 국물을 떴다. 남편의 호통에 몸이 굳은 그녀는 내가 국물을 다섯 번쯤 삼켰을 때 즈음 숟갈을 들었다.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식탁 위의 침묵 가운데서 연주되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깍두기를 집어먹기 위해 젓가락을 뻗자 그녀가 깍두기 그릇을 슬쩍 밀어주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뭉근해졌다. 깍두기를 한 입 베어 먹고 눈동자만 그릇 위로 힐끔 움직였다. 끝도 없이 떠들 것만 같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해장국을 목구멍으로 넘기기만 하였다. 식사는 조용하고 빠르게 끝났다. 식사를 가장 먼저 마친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누군가에 쫓기는 양 후닥닥 계산대로 향했다. 7000원짜리 해장국이 세 그릇. 그의 아버지는 적지도 많지도 않은 돈을 지불하고 가게를 빠져나갔다. 나와 그의 어머니는 계산대 위의 박하사탕을 한 개씩 집어먹고 가게를 나왔다. 밖으로 나가자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가게 주차장 구석지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나와 그의 어머니는 연기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담배가 다 타기를 기다렸다.

저 양반 담배를 끊는다는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의 어머니가 한숨처럼 한탄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버지 덕에 재원 오빠가 담배를 안 피웠잖아요.”

그래, 담배 몸에 좋지도 않은 거.”

그녀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녀의 눈에 알 수 없는 감정이 깔렸다.

수연아, 미안하다. 미안해…….”

그녀가 대뜸 사과를 건넸다. 이번에는 무엇이 미안한 것일까. 나는 그녀의 고마움도, 미안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에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것 뿐이었다.

나라고 답답하지 않겠니. 나는 이게 내 최선이야.”

그녀의 대꾸는 나보다는 그 자신에게 말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귀신에 홀린 듯이 신의 뜻을 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이 그녀의 최선이라 했다. 신이 그녀의 아들을 익사해 죽는 운명으로 점지했다고 믿는 것. 적어도 그녀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신의 뜻이 진실이었다. 나는 신에게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그녀와 달리 신도, 운명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최선에 모래를 뿌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를 다 태운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대전역까지 동승을 권했다. 107번은 배차간격이 넓어 무작정 정류장으로 향하기에는 막막했다. 나는 후회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정신보다는 육체의 편안함을 택했다.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몸을 찌그러뜨렸다. 십자가가 달린 묵주가 백미러에 감긴 채로 흔들거렸다. 그 밑에는 남자친구의 사진이 두개. 서로 같은 두개의 액자가 작은 경첩으로 이어져있었다. 왼쪽은 어린 시절 사진, 오른쪽은 입소식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부모님 사이에 서서 어색한 군복을 입고 웃음 짓고 있는 남자친구의 사진을 몇 초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렸다. 액자는 곧 나의 시선을 의식한 남자친구의 아버지에 의해 접혔다. 대전역으로 가는 동안 차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낮게 울리는 차체의 엔진 소음과 묵주가 흔들려 나는 잘그락 소리만이 차 안의 정적을 메꾸었다.

 

대전역에 도착하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의 부모님은 군산으로 갔다. 남자친구가 방학 때마다 군산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 내려갔던 것이 기억났다. 남들은 방학을 기다렸지만 우리는 개학을 기다렸었다. 나는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배웅하고 열차시간 중 가장 빠른 것을 골라 표를 샀다. 평일이라 좌석표가 남아있어 다행이었다. 기차 출발 시간은 1658. 곧 출발할 시간이었다. 나는 바쁘게 기차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58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등받이에 편안히 몸을 묻으며 의자의 각도를 조절했다. 몸이 노곤하니 정신까지 물렁해졌다. 떠다니는 상념들이 의식의 바닥에 깔렸다. 나는 눈을 감고 남자친구를 생각했다. 남자친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일 년에 한 번, 서울에서 대전까지 한 시간이다. 그리 멀고 힘든 길은 아니었다. 숱하게 찾지 않아 엄청난 정성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이마저도 수고스럽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알게 뭐람. 나는 애써 냉정하게 굴었다. 그가 이해하지 못해도 좋았다. 나는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해 차라리 제자리에서 걷기로 한 것이다. 주위에서는 흔히들 말하였다. 내가 굳이 찾아가는 현충원에는 그의 죽은 몸뚱이만 묻혀있다고. 이제는 그 무덤에 나마저 묻으려 하지 말고 그와의 추억을 가슴에 묻으라 하였다. 나는 그들을 못내 비웃었다. 그들은 시작부터 잘못 하였다. 애초에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도 모자라서, 튀어나올 것을 염려한 듯이 단단히 못질한 관짝을 땅 속 깊숙이 묻어놓았다. 그 속에 갇힌 시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허파의 깊은 울림을 의식하며 몸을 뒤척였다.

그때 주머니에서 잠자고 있던 휴대폰이 부산스럽게 몸을 떨었다. 오늘따라 나를 찾는 사람이 많아 바쁜 모양이었다. 나는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진동을 느끼며 화면을 확인했다. 엄마였다. 오늘만큼은 반갑지 않은 이름들 중 단연 으뜸인 글자였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엄마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어디야.”

엄마는 다 알면서도 5년째 똑같은 대답을 요구했다. 말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대전에서 올라오는 길이거든, 들어오지 말어라.”

엄마의 단호한 태도에 조금 억지를 부렸다.

집 가고 있어. 금방 가.”

그 놈 죽은 지가 언젠데 아직두 묘지 가서 질질 짜고 와?”

엄마의 날 선 목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울렸다.

나 죽어서두 그렇게 하나 보자. 아서라, 제사상만 차려줘도 다행이지.”

엄마는 내 욕인지, 한탄인지 모를 말들을 속사포로 쏟아 부었다. 처음부터 나의 대답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작업이었다. 폭포수에 귀가 잠겼다. 나는 휴대전화의 송화구멍에서 귀를 뗐다. 아무도 듣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가 전파 위에서 왕왕 맴돌았다.

“ 이게 다 민주당 놈들이 북에 돈이고 쌀이고 다 갖다 바치니까 북한 놈들이 기세등등해서는 미사일이나 쏘고 했든거 아니야.”

, 엄마!”

나의 고음이 조용한 기차 안의 공기를 세로로 찢었다. 아차 싶어 주위를 살피자 건너편 좌석에 앉은 아저씨가 혀를 차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입을 힘주어 닫았다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만 좀 해, 엄마. 제발 좀.”

나는 거의 애원했다. 엄마는 내게 들리도록 일부러 한숨을 쉬었다.

민주당 놈들이 내 딸 인생 다 망치네. 아이고, 내 팔자야…….”

더 이상 엄마의 신세한탄을 들을 기력이 없어 전화를 끊었다. 집에 들어가면 잔소리가 폭탄처럼 날아들 것이다. 건너편 좌석에 앉은 아저씨는 내가 대꾸도 없이 전화를 끊는 것을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열통이 터졌지만 굳이 변명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엄마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의 죽음에 낀 불순물들이 혐오스러웠다. 차라리 남자친구가 병으로 죽었다면 어땠을까. 뉴스에서 그의 죽음을 고래고래 떠들지 않는, 군인이 아닌 평범한 대학생으로 죽었더라면. 나는 진이 빠져 의자에 더욱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이대로 의자에 묻혀 땅 밑으로 꺼졌으면 했다. 의자가 점점 기차바닥에 녹아들어가 바깥으로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의자가 철길 위에 나동그라지고 수많은 바퀴가 나의 몸뚱이 위를 내달렸다.

 

나는 강아지가 젖은 털을 터는 마냥 파드득 고개를 흔들었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승객들이 내릴 채비를 하는 듯 주변이 분주했다. 가방을 열어 물건이 모두 제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닫았다. 얼마나 왔는지 창밖을 보니 금세 지하터널로 들어와 컴컴해졌다. 대신 열차 칸 앞에 붙은 안내 전광판이 다음 정류장은 서울역이라며 번쩍번쩍 광고하였다. 나는 안심하고 기차의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 잠시 정차를 기다리는 동안 또 한 번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한번 짧게 울린 것으로 보아 전화가 아닌 메시지인 듯 했다.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켜니 바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서울 다 왔지? 낙꼴에서 한 잔 하자. ]

미혜의 메시지였다. 얄미운 것. 미혜는 내가 '낙꼴'이라면 언제든 오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끼며 답장을 보냈다.

[ . ]

미혜와 나는 사는 동네가 가까웠고, 만날 때는 그 중간인 낙꼴이 가장 좋았다. 졸업 후에도 이어진 미혜와의 우정은 낙꼴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오전에 내 속을 뒤집었던 박미혜는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낙꼴은 이름대로 낙지볶음과 꼴뚜기볶음이 맵고 맛있었다. 오늘은 무슨 메뉴를 고를까 생각하며 기차에서 내렸다. 서울역은 언제나 복잡했다. 인파를 헤치며 4호선의 하늘색 표지를 따라갔다. 어지럽게 얽힌 색색의 표지들을 지나쳐 집으로 가는 지하철의 플랫폼에 들어섰다. 곧 지하철이 도착하고 나는 그 속에 몸을 실었다. 퇴근 시간에 겹친 덕에 잠시나마 엉덩이를 붙일 자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네모난 박스는 덜컹거리며 여느 때와 같은 행선지로 향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모르는 사람의 무릎 앞에 섰다. 터널이 비치는 창문에 초점 없는 시선을 고정했다. 자잘한 걱정거리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하철은 부지런히 달려 혜화에 다다랐다. 나는 미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곧 도착. 어디야? ]

전송버튼을 누린 뒤 얼마 되지 않아 답신이 도착했다.

[ 나도 거의 다 와 가. 메뉴 뭘로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결정했다.

[ 꼴뚜기 볶음.]

그 후, 지하철 출입구가 열렸다가 닫히는 것을 정확히 다섯 번 세었다. 다음은 내가 내릴 수유역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남자는 서울역부터 여태 꾸벅꾸벅 고개를 세로로 흔들고 있었다. 다음 역의 방송이 들리자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남자가 번뜩 눈을 떴다. 분명 귀에 이어폰이 꽂혀있건만. 신기한 일이었다. 출입문이 열리고 나는 지하철에서 나왔다. 바쁜 걸음으로 3번 출구 계단을 올라가자 미혜가 보였다.

수연아!”

미혜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 진짜 힘들었어.”

빨리 가서 먹자. 나도 배고파.”

우리는 익숙한 골목을 돌아서 먹자골목으로 들어왔다. 대로변에는 번쩍거리는 조명을 앞세운 음식점들이 즐비해있었다. 상점골목의 두 블록을 지나 망설임 없이 똑같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조금 후미진 곳에 위치한 낙꼴은 장사가 되기는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을 받는 테이블은 우리 말고 하나가 있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들이었다. 식탁에는 벌써 빈 소주병이 두 개 올라와 있었다. 우리는 스텐리스로 만들어진 원형 테이블에 앉으며 꼴뚜기 볶음 2인분과 참이슬 후레시 한 병을 외쳤다. 그리고 남는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자 아이고소리가 절로 나는 것이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미혜의 말에 나는 짐짓 모르는 채 어깨를 으쓱였다.

너야 말로.”

우리는 실없이 웃고서 저마다의 근황을 식탁위에 늘어놓았다.

재원 오빠는 매운 거 진짜 못 먹었는데.”

미혜가 뜬금없이 남자친구의 얘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허구한 날 너랑 온 거 아니겠냐.”

조잘거리는 수다소리가 가게의 천장까지 닿았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꼴뚜기 볶음과 소주가 상에 내어졌다. 그릇에 빨간색 양념을 뒤집어 쓴 꼴뚜기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나는 군침을 꼴딱 삼키며 소주의 초록색 뚜껑을 돌렸다. 병 주둥이를 기울여 미혜의 잔에 소주를 흘려 넣었다. 미혜도 나의 손에서 병을 넘겨받아 똑같이 그리했다. 우리는 잔을 부딪치고 그 안에 담긴 술을 목구멍에 부었다. 그리고 죽은 꼴뚜기를 하나 집어 입안으로 넣었다. 빨갛고 매운 양념이 입안에서 얼굴까지 퍼져나갔다.

 

술은 술술 들어가서 술이라고 했던가. 테이블 위의 소주는 무성생식이라도 한 것인지 벌써 두 병이 되었다. 반면에 그릇에 누워 있던 꼴뚜기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많던 꼴뚜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꼴뚜기는 오징어 새끼야?”

몰라 나두.”

그러면 왜 새끼 오징어라고 안하고 꼴뚜기라 그러냐?”

몰라 꼴뚜기야.”

미혜가 짜증을 냈다. 나는 물어보는 것도 못하냐며 꼬장을 부렸다.

꼴뚜기는 왜 꼴뚜기냐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 이어졌다. 술이 쓰지 않아 있는 대로 삼켰다. 기억하지 못하는 한 두 마디가 식탁 위를 기어 다니며 맴돌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대화가 열 마디, 스무 마디 쯤 되었을 때는 의미 없는 소음만이 가게 안을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울고 있었다.

죽기는 그 새끼가 죽었는데 왜 내가 힘들어야 돼?”

내가 뱉은 말에 퍼뜩 놀랐다. 그러나 입은 아직 제 정신이 아니 모양이었다.

나도 데려가라!”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미혜가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았다.

동네 창피해서 진짜.”

미혜는 내 가방까지 챙겨들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정신은 말짱한데 눈앞이 비틀거렸다.

오늘이니까 봐준다.”

미혜가 술값을 계산하며 말했다. 나는 의미 없이 소리 내어 웃고 밖으로 나갔다. 봄이지만 밤공기는 아직 서늘했다. 뇌가 청량해지는 느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술이 깨는 것 같다. 바람이 불자 말라붙은 눈물자국에 얼굴가죽이 당겼다. 밤이 꽤 깊었는데도 상점가의 조명은 아직도 번쩍거렸다. 인공조명에서 새어나온 빛 무리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나는 앞에서 걷는 미혜를 따라 다리를 옮겼다.

바닥이 왜 이렇게 가만있지를 않냐.”

미혜가 나를 보며 입 꼬리를 한쪽만 씰룩 거렸다. 휘적휘적 밤거리를 걸었다. 먹자골목을 빠져나와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넜다. 도로 중간에 자리 잡은 버스 정류장이 나의 목적지였다. 반대쪽으로 가야하는 미혜는 횡단보도를 하나 더 건너야했다. 미혜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잘 들어가.”

너도.”

미혜는 반대편 인도로 사라졌다. 나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집으로 가는 110번 버스를 기다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정류장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회사원, 대학생, 엄마, 선생님. 이 조그만 정류장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삶이 있는 것일까. 110번 버스는 배차 간격이 좁아서 금방 내가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110번 버스에 차례대로 올랐다. 운 좋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그 안에 앉아 있는 나를 집으로 운반했다. 덜컹거리는 머리로 이 버스 안에 실린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5년 전에 남자친구가 죽은 사람, 집에 치매 노인이 있는 사람, 3개월 전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사람……. 버스 안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직 죽은 사람만 없었다.

손바닥으로 두 뺨을 가볍게 쳤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금방 부정적인 생각의 골에 투신하고 마는 것이다. 잡념을 떨치며 버스가 흔들리는 대로 몸을 맡기었다. 역에서 집까지 버스로 금방이었다. 나는 문의 개폐를 몇 번 바라보다가, 컴컴한 창문 밖을 멀리 보다가 하였다. 얼마 안가 안내 음성이 집 앞 정류장의 이름을 말하고 나는 때 맞춰 정지 벨을 눌렀다. 멋대로 춤추는 몸을 억지로 붙잡아 매며 버스의 출입문 앞에 섰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턱이 높은 계단을 한 발씩 내려가 버스에서 완전히 내렸다. 내가 땅에 두 발을 내리자마자 버스는 미련 없이 가던 길을 재촉했다. 나는 도로 위에 툭 뱉어진 듯하였다. 무거운 엔진소리를 내며 떠나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발광하는 110번 버스의 파란 표지판이 아슴아슴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대원 아파트 정문을 향해 기운 없이 걸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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