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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21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koreancontest-21.jpg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21차 당선자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제21차 공모는 이전 공모에 비해 양적으로는 꽤 늘었으나 질적으로는 별로 나아진 바가 없다 하겠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응모자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이번 <창작콘테스트> 제21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금상
*******************************************************************

시(詩)부문



■ 탐라(耽羅)의 한(恨)
   - 안현준

기원전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디딜 때
세상을 호령할 위풍당당 국가가 되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사방팔방 푸른 바다의 거친 출렁임에
몸을 가누기도 힘든 기나긴 세월을 보내고
더 비상할 기회를 엿보던 찰나의 순간
조선 태종의 거친 손이 바다 건너 당도하니
망국이 될 운명을 어찌 거스를 수 있으랴?
외딴곳에 자리 잡은 을라왕(乙那王)의 선택이
이토록 모진 아픔을 가져올 줄 알았으랴?
 
이제는 망국이 되어 버린 비운의 제국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
빛을 볼 수 없었던 과거의 한(恨)을 뒤로하고
시황제의 불로초에 버금가는
멸할 수 없는 영혼을 후대에 남긴다.

검은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누워 있는 소를 향해 비운의 노래를 부르니
탐라국 터전의 한 맺힌 숨소리가
애매랄드 빛 한라산 위로 반짝반짝 빛 눈 되어 내린다.


■ 팽목항(彭木港)
   - 안현준

기억 저편에 고요히 잠들어 있던 그 날의 비극은
갈매기 울음소리 들리는 진도 팽목항(彭木港)에 다다르면
가슴을 적시는 빗물이 되어 한 방울씩 떨어진다.
 
맹골수도(孟骨水道)의 거친 물살과 쓰디쓴 바닷물이
모든 것을 집어삼켜 흔적조차 말라버린 그곳
새싹부터 푸릇한 청춘까지,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곳
 
햇빛조차 다다르지 못하고 뒤돌아서야만 하는 미지의 땅은
누군가가 애타게 찾고 있는 멋진 그 사람을 붙잡아 둔 채
시커먼 적막감을 자랑이라도 하듯 나를 노려보고 있다.
 
슬픔과 분노는 출렁이는 맹골수도(孟骨水道)의 파도가 되어
숨 막히는 고통과 절규 속에 몸부림치던 아픔을
팽목항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토해내고 있다.
 
삶을 지키기 위해 목 터지라 부르짖었던 4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가슴 깊이 울부짖었던 16일
서해는 그대의 쓸쓸함을 머금고 유유히 흘러간다.


■ 찔레꽃
   - 안현준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 소록도
가슴에 맺힌 검붉은 어혈(瘀血)을 토해내듯
한센인 한 명, 두 명, 세 명, 꽃이 되었다.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한없이 벗어나고 싶었던
빛조차 없는 역경의 가시밭 터널을
흩날리는 가을빛 낙엽이 볼세라
찔레꽃 핀 소록도를 가슴에 안고 떠난 그대여
멸시와 증오의 굴레를 탈곡(脫穀)하듯 벗어던진 그대여
 
이젠, 찔레꽃이 되어 펄럭펄럭 날갯짓하고
이젠, 찔레꽃이 되어 방긋방긋 눈웃음을 지으며
소록도의 영혼을 다섯 꽃잎에 살포시 담아서
드넓은 남해바다 구석구석 달콤한 향기를 흩날린다.
 
따사로운 봄 햇살 가득한 소록도
가슴에 맺힌 검붉은 어혈을 토해낸
한센인 한 명, 두 명, 세 명의 혼이
반짝반짝 빛나는 달콤함을 속삭인다.


■ 참회(慙悔)
   - 안현준

깨어있는 국민의 조직된 의식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 하지 않았던가?
 
촛불로 하나 되어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광화문 광장의 따뜻한 가슴에서
조직된 의식을 아낌없이 발산하는
당신들의 살아있는 영혼이 눈부시다.
 
하지만, 거울 속 비친 부끄럽고 나약한 한 남자
두려워서, 귀찮아서, 조그만 다락방에 누워있다.
 
한들한들 불어오는 자유와 민주의 가을바람은
다락방을 넘어 남자의 볼에 쓰디쓰게 스친다.
 
가을바람 맞는 지금이 이토록 부끄러운 것임을
한 남자는 한 없이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국민을 믿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그대에게
한 남자는 부끄러운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 탈곡(脫穀)
   - 안현준

농부의 웃음이 가득한 가을의 들녘
무르익은 콩이 고개를 숙이고 추수를 기다린다.
 
비바람 맞으며 버텨온 지난날의 추억은
산기슭 너머 내려앉는 붉은 노을에 실린다.
 
내년을 기약하며 한둘씩 탈곡되어
풍요의 콧노래를 부르며 자루 속으로 떨어진다.
 
제 일을 다 한 콩깍지는 진눈깨비 되어
유유히 가을 하늘로 흩날린다.
 
한 자루, 두 자루, 세 자루
곳간은 그렇게 채워져 갔다.

********
금상
당선작 심사평


  제21차 <창작콘테스트> 금상은 시(詩)부문 안현준 씨의「탐라(耽羅)의 한(恨)외 네 편의 시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은상
*******************************************************************

소설부문



타로텔러
장미영


  붉은 천이 깔린 탁자 위에 카드 한 세트가 놓여 있다. 여자는 카드를 집어 탁자 바닥에 한 장씩 떨어뜨린다. 손바닥 안에서도 얼마든지 덱을 셔플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카드가 흠집이라도 날까 바닥에 떨어뜨리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덱을 셔플한다는 건 한 세트의 카드를 섞는다는 뜻이다. 오른 쪽으로 두세 번 원을 그리며 카드가 휘거나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덱을 셔플한다. 셔플은 명상을 하는 것만큼 집중을 요한다. 서둘러서도 안 된다. 여자는 타로로 사람들의 운세나 연애운을 봐준다. 사람들이 자신을 카드로 점을 치는 서양식 점쟁이쯤으로 생각한다는 걸 안다. 가끔 손님들 중에는 고민을 상담하려는 사람도 있다.
  셔플한 카드가 탁자 중앙에 놓이는 순간 문 앞에 달아놓은 종이 딸랑거렸다. 문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여자는 의자에 앉은 남자의 어두운 얼굴 빛을 보고 놀랐다. 남자의 얼굴 위로 마치 사진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이 한 장 한 장 여자 눈에 박혔다.
  “건강 문제로 타로를 좀 볼까 해서요.”
  “오늘은 타로를 보지 않습니다.”
  “왜죠? 팻말이 걸려 있는 걸 보고 들어왔는데요.”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갑자기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요.”
  “그렇다고 손님을 막 쫓아내도 되는 겁니까? 사람 가려가며 점 보는 것도 아니구.”
  “죄송합니다.”
  여자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 남자는 타로방이 여기밖에 없냐며 바닥에 침을 뱉고 나가버렸다. 여자는 나가는 남자의 뒷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남자 말처럼 사람 가려가며 점을 보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타로를 못 볼만큼 급한 사정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남자가 들어오는 순간 여자는 남자의 운명을 보고 말았다. 남자의 죽은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남자가 차에 치여 피를 흘린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가 쓰러진 남자를 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자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는 카드를 상자 안에 넣고 열쇠를 채운 뒤 선반 위에 있는 향을 가져와 피웠다. 향을 피우는 건 여자의 오랜 습관이었다. 여자는 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 달 안에 죽을 운명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 역시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었다. 조심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방법이라도 가르쳐 주겠지만 인간이 죽고 사는 문제는 여자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다.
  여자는 오늘 하루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아들이 면접에 붙을지 궁금해 하는 아주머니, 애인을 사귀고 싶어하는 아가씨, 자신이 부를 노래를 직접 들려주며 오디션에 합격할지 물어보는 가수 지망생, 애정운을 보러 오는 남자까지. 매일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여자의 타로방을 다녀갔다. 그런데 간혹 지금처럼 타로를 보기도 전에 앞일이 보이는 손님이 있다. 그럴때면 여자는 타로점을 접었다. 그런 사람은 타로점에도 나쁜 패가 나왔다. 여자는 자신이 타로텔러일 뿐 점치는 무속인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다짐한다. 환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명상과 책 읽는 걸 빠뜨리지 않았고 매일 타로 연습을 했다. 하지만 여자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운명이 보였다. 용하다는 소문까지 났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다.
  엄마 역시 사람들의 운명을 봤다. 여자는 어렸을 때 접신하는 엄마 모습을 보다가 무서워 이불에 오줌을 잘 지렸다. 엄마는 산 기도를 다니느라 집을 자주 비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여자는 귀신 딸이라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신들린 채 굿을 하는 엄마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여자도 커가면서 무병을 앓았다. 이유 없이 어깨, 허리, 무릎, 머리까지 바늘로 찌르듯 아팠다. 어깨 위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 마냥 움직이지 못했고 두통이 심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용하다는 스님에게 제령을 받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눈을 감으면 방울 소리가 들렸고 언제부턴가 자신이 엄마처럼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린다는 걸 알았다. 여자는 과거에 사는 것인지, 미래에 사는 것인지 종종 자신을 잊어버렸다. 무병을 앓을 때면 엄마는 여자에게 신굿을 해주려고 했다. 무당 같은 건 되기 싫단 말이야. 여자는 눈에 보이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다. 이 방에서 달아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여자는 신령님이니 뭐니 하는 엄마의 말 따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여자를 보며 엄마는 손에 들고 있던 방울부채로 여자의 온 몸을 후려쳤다. 여자는 방울 부채로 맞은 곳이 아파 소리를 질렀다. 온몸이 떨렸고 점점 공포가 느껴졌다. 여자 눈에 엄마는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한참 지나자 여자 몸을 후려치던 엄마가 방바닥에 퍼질러 앉더니 울기 시작했다. 난들 이 일이 좋아서 하는 줄 알아. 다, 너를 위해서야. 이것아! 엄마는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여자 곁으로 다가왔다. 두 손을 벌려 여자를 끌어안았다. 여자는 신의 뜻이 뭔지, 왜 자신이 신의 뜻에 따라 무당이 돼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됐다. 여자는 엄마를 향해 소리 지르고, 엄마는 여자의 몸을 후려치다 하소연 하고,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엄마도, 여자도 둘 다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일어나 타로방 문을 열었다. 맞은편 ‘재미삼아’ 타로방에 사람들이 북적댔다. 커플과 아줌마, 학생들이 미니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 들어 계속 타로방이 늘어났다. 궁합 전문 타로방, 별자리 타로방, 색깔 타로방, 여자가 있는 근방에도 줄줄이 타로방이 들어섰다. 타로방이 생겨나고 타로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여자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타로방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오천 원으로 자신의 앞날도 알 수있고 점꽤가 맞으면 맞는 대로,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깊이 고민 할 필요가 없었다. 점집에서 캐캐묵은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 타로방이나 타로 카페에서 시간도 때울 겸 재미로 타로 보는 걸 더 좋아하는 듯 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타로도 하나의 즐거운 놀이문화였다. 여자는 재미도 재미지만 타로를 보는 순간만이라도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다. 여자는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었다. 하지만 조금 전 찾아온 남자에게는 희망과 위로를 주기는커녕 앞으로 닥칠 자신의 운명조차 알려주지 못했다. 도와주지 못한 미안함에 여자는 어깨가 움츠려졌다. 되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자는 문을 닫고 탁자 앞에 다시 앉았다. 책을 펼쳤다. 좁은 타로 방에 향냄새가 가득 퍼졌다.
  출근길 여자는 여느 때처럼 가판대에서 조간신문을 뽑아들었다. 값을 치르고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화덕에서 만두를 굽던 지호가 아는 척을 했다. 여자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내렸다. 지호와는 손님으로 만났다. 처음 지호가 타로를 보러 왔을 때 손재주가 있어 손으로 하는 걸 하면 성공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먹는 것 중, 동그랗게 생긴 도넛이나 만두가 좋다고 했더니 친구와 창업을 한 게 왕만두 가게였다. 가게를 넓히지 말 것과 낡을수록 돈이 잘 붙는다는 여자의 말을 믿어서인지 지호는 낡고 좁은 만두가게에 손님이 넘쳐나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자는 신문을 펼쳤다. 작고한 어느 화가의 소개와 추모 개인전 일정이 실린 기사에 눈길이 갔다. 내용 끝에 예의 그의 이름이다. 그가 쓴 기사였다. 그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해온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지방에 간다고 한 게 마지막 말이었다. 간간히 걸려오던 전화조차 오지 않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후배기자와 함께 타로방 취재차 찾아왔을 때였다. 인터뷰 장면과 셔플하는 장면을 몇 컷 찍었다. 찰영이 끝나고 그와 후배의 점을 봐주었다. 그에게 큰 건수를 하나 잡게 될 거라 알려주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넘겼다. 며칠이 지나 그는 취재를 맡게 되었다며 소주를 사들고 찾아왔다. 우연도 그런 기막힌 우연이 없다고 했다. 그는 퇴근 시간에 맞춰 한두 번씩 찾아왔고 가끔 타로방 문을 닫아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타로 치는 걸 탐탁해 하지 않았다. 앞일을 맞추는 것도 우연의 일치일 뿐 미신이며, 카드 몇 장으로 운명을 본다는 건 비과학적인 태도라고 했다. 타로는 서양 점쟁이들이 하는 것이고 처음에는 재미삼아 타로를 보지만 점점 타로에 의지하게 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타로방에 오는 걸 불편해 하지 않았지만 만날 때 마다 타로를 그만두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그는 점점 만남이 길어질수록 뭔가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며칠 뒤 타로방을 찾아온 그는 많이 취해 있었다. 우린 너무 달라. 난 네가 평범한 여자였으면 좋겠다. 그는 이 년의 시간을 청소기로 밀듯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했다.
 여자는 스스로 타로를 쳐 본 적이 없다. 자신의 마음은 어떤지 궁금했다. 여자는 카드를 셔플 한 뒤 5장을 뽑았다. 5장의 카드 중 하나를 맨 위에, 2 장은 옆에 2장은 밑에 스프레드 했다. 배열순서가 1, 2, 5, 3, 4순이었다. 1번 카드는 법 또는 규칙, 2번 카드는 전차 또는 전쟁, 3번 카드는 힘 또는 권력, 4번 카드는 고위 여사제, 5번 카드는 매달린 남자였다. 당신은 자신이 결정한대로, 원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해왔고 재능, 능력, 명예를 중시하는 현실적인 사람인 동시에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연애는 늘 뒷전으로 미뤄났다. 그러나 당신은 연애와 미래를 위한 자기 발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여있다.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사랑보다 자신 발전을 선택한다면 연애는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 지금 당신은 당신 앞에 다가온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한 자기 발전을 선택을 할 것인가. 이미 당신은 스스로 선택을 했다. 라는 내용이었다. 여자는 어쩌면 그렇게 잘 맞는지 타로를 치는 자신도 놀랐다. 그와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것, 그 또한 운명이라는 걸 알았다.
  여자는 신문을 접어 한 귀퉁이에 놓았다. 상자 안의 카드를 꺼내 조심스럽게 셔플했다.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여자는 이마가 살짝 찡그려졌다. 시끄러운 소리는 가끔 집중 하는 데 방해가 됐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문 앞에 달아 놓은 종이 딸랑거렸다. 50대로 보이는 중년 여자 손님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자는 그녀를 보자 문득 엄마 나이도 저쯤 됐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무얼 알아보고 싶으세요?”
  “요 앞에서 계모임을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났지 뭐야. 심심해서 애정운이나 한 번 볼까 해서. 공부도 많이 하고 잘 맞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손님은 동생한테 말하듯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세요. 남편 분을 생각하면서 왼손으로 3장 뽑으세요.”
  여자는 카드를 부채꼴 모양으로 펼쳤다. 우주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손님은 자기 앞에 있는 카드를 3장 뽑아 여자에게 건넸다. 손에 끼고 있는, 알이 박힌 반지가 반짝였다.
  “과거, 현재, 미래.”
  여자는 카드를 설명한 뒤 탁자 위에 배열했다.
  “첫 번째는 고위여사제, 두 번째는 황제, 마지막은 광대군요.”
  여자는 석 장의 카드를 이미지리딩 하고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했다. 타로 카드 한 장에도 수많은 상징체계가 있다. 똑같은 카드, 똑같은 스프레드가 나왔다고 해도 그 사람이 겪은 경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고 그때 그때 변화하는, 아카식레코드 개념을 접목시켜야 한다. 게다가 타로카드 이미지리딩에서는 타로텔러의 한 마디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이 컸다. 이왕이면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주는 게 타로텔러의 노하우였다. 카드를 해석하려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여자는 두어 번 목덜미를 문질렀다.
  “이봐 아가씨?”
  “언니, 아주 나빠!”
  여자는 자신의 눈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러고는 연이어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뭐….”
  “새파랗게 젊은 놈하고 바람이 났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계모임 했다고 거짓말이나 하구. 누가 모를 줄 알고…. 좀 전까지도 그 놈하고 같이 있었네 뭐. 대낮부터 좋은 델 갔구나. 어라! 남편도 냄새가 나”
  여자는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웃음이 났다. 하지만 다시 화가 치솟는 듯 했다. 손님을 향해 마음껏 비웃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 혼쭐을 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야! 심심해서 시간이나 때울까 해서 왔는데 이 년 완전히 미친년 아니야.”
  “그 놈하고 노니까 좋아? 근데 어떻게 해? 그 놈하고 오래 가지 못하는데. 이제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 했거든. 가슴만 된통 크고 몸매는 꽝이라서 언니 싫대. 남편한테 들키게 되는데?”
  여자는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손님은 놀란 듯 주춤거렸다. 조심해! 이혼 하자고 할지도 몰라. 여자는 손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년이 정말......”
  손님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여자의 머리채를 잡은 채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러더니잠시 문 쪽을 흘끔거렸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한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나 머리채를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여자는 손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팔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여자는 머리채를 잡힌 채 밖으로 질질 끌려나왔다. 순식간에 골목 안이 떠들썩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타로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여자는 재미삼아 타로방 여자와 궁합 타로방 아줌마 시선과 마주쳤다.
  “오천 원짜리 카드점이나 보는 주제에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이 년 알고 보니 멀쩡한 사람을 잡을 년 아냐?”
  “……”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 거짓말 하는 네 년 팔자도 참 딱하네.”
  손님은 여자의 머리며 어깨, 등, 팔을 마구 때렸다. 여자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여자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만두를 굽고 있던 지호가 헐레벌떡 뛰어 왔다.
  “누나?”
  지호가 여자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아줌마 미쳤어요?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이건 또 뭐야? 네 년 기둥 서방인가 보네. 아주 꼴깝을 떨어요. 정신 차릴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네 년이야. 재수 없어.”
  오물이 묻기라도 한 듯 손님은 온 몸을 툭툭 털었다. 남들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가버렸다.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그냥 재미삼아 봐주면 될 걸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소리를 했대?”
  재미삼아 타로방 여자의 목소리였다.
  “오천 원짜리 점치면서 저 여자처럼 솔직하게 말해주는 사람도 없잖여. 공부도 많이 해서 정확하게 맞춘다던데?”
궁합 타로방 아줌마의 목소리가 걸걸했다.
  “저런 점쟁이 여자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까지 욕 먹는 거에요. 여긴 젊은이들의 문화 공간이지 점쟁이가 설치는 무당집이 아니라구요. 저 여자는 이 골목에 안 어울려요.”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어. 불쌍하잖여.”
  여자는 걸음조차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누나, 저 여자들 말 신경 쓰지 말아요.”
  여자는 지호의 도움으로 겨우 타로 방으로 들어왔다. 지호는 여자를 의자에 앉혀 놓은 채 약국에 갔다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여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가는 벌겋게 부어 올랐다. 입술에서 비린 맛이 느껴졌다. 방울 부채를 흔들며 정신 나간 듯 굿을 하는 엄마 모습이 거기 있었다. 여자는 마음속 무의식을 드러내어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나 상처를 들어주고 상담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신은 어김없이 여자가 타로를 치지 못하게 찾아와 방해했다. 요즘 들어 자주 사람들의 앞일이 보였고 누군가 여자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마저 들렸다. 여자는 눈을 감았다.
  유치원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여자는 아이가 다치는 환상에 자주 시달렸다. 꿈에 어떤 아이가 겁에 질린 듯 여자를 안으려고 뛰어왔다. 아이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여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점심을 먹은 뒤 여자는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로 향했다. 미끄럼틀 쪽에서 어떤 아이가 뛰어왔고 여자는 얼떨결에 아이를 안았다. 아이의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꿈에서 본 그 아이였다. 또 소풍 전날 여자는 옆 반 아이가 병원에 실려 가는 꿈을 꾼 뒤 담임 교사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여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사가 과속을 하는 바람에 차가 굴러 떨어졌고 꿈에 나온 그 아이만 병원으로 실려갔다.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 뒤로 여자는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자는 아이들을 사랑했고 그 일을 오래 하고 싶었다. 아이들의 눈빛을 볼 때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자는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여자를 보는 교사들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하루 하루 견디기가 힘들었다. 여자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여자는 학원강사며 방문교사, 베이비시터 까지 했고 조그마한 회사에도 취직을 했다. 그러나 하는 일마다 다 엉망이 되고 말았다. 여자는 직장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다. 여자는 사람들의 미래가 계속 보이는 걸 보면 엄마나, 자신이나 사람들의 운명을 보는 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엄마 같은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인간과 함께 살지만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적인 공간, 그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귀신의 존재, 그것도 구천이 아닌, 낮은 곳에 살며 인간 몸을 상하게 하는 존재를 몸 안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라고는 없는 무아의 상태에서 귀신을 통해 귀신의 말을 전달하는 엄마의 삶, 다 싫었다. 그건 온전한 삶이 아니었다. 여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분명 어떤 법칙이 있으리라 여겼다. 그 법칙의 변화를 알고 근원을 밝혀내고 싶었다. 귀신이 아닌,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삶의 이치를 알고 싶었다.
  여자는 지호가 사다 준 약을 얼굴에 발랐다. 시큰거렸다.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지켜왔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는 오후가 돼서야 타로방에 도착했다. 어제 일 때문인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재미삼아 타로방 여자가 문을 열어 놓은 채 밖에 나와 있었다. 붓기가 남아 있는 여자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저런 꼴로 잘도 나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듯 했다. 여자는 시선을 피한 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타로 골목에서 타로를 친 지 3년, 여자는 주변 타로방 주인들과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타로에 대한 정보도 나누며 서로 가깝게 지내고 싶었지만 은근히 자신을 경계하는 것 같은 느낌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여자가 점쟁이처럼 사람들의 앞날을 잘 맞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여자가 정말 앞날을 볼 수 있는지 타로방 앞을 서성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타로를 치면 그만이라고 다독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자가 타로거리를 점집거리로 만들기라도 할까봐 여자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여자 때문에 젊은 손님들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여자는 한 동안 타로 읽기를 접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엄마처럼 여자도 타로를 그만두지 못했다. 여자는 신이 자신을 방해 못하게 하기위해서라도 타로 연습에 더 열중을 했다. 여자는 타로의 원형인 비스콘티스포르자 카드, 음양의 원리를 타로 카드에 응용한 모던타로 등 한 세트의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그림을 보며 카드 한 장 한 장의 의미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카드의 의미를 알게 되자 여자는 손에서 타로를 놓을 수가 없었다. 여자의 타로방만이 밤 늦도록 불이 커져있었다. 여자에게 타로는 세상을 향해 난 유일한 창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느꼈다. 3년 동안 숱한 일이 있었지만 어제 일은 여자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손님의 사생활을 들추어내서 머리채까지 잡혔다. 여자는 자신이 타로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다던 재미삼아 타로방 여자의 말을 떠올렸다. 은근히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느낌은 말 그대로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도 여자는 알고 있었다. 한 달 전 색깔 타로방 손님 중 한 사람이 이제부터는 시시한 색깔 타로 따위는 보지 않겠다며 여자의 타로방을 자주 찾아왔고 결국 단골손님이 되어 버린 일이 있었다. 한 동안 색깔 타로방 주인은 손님을 빼앗아 간 못된 점쟁이년 이라고 여자 욕을 하고 다녔다. 문을 닫고 싶을 정도로 여자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여자는 이상하게 엄마 생각이 나는 날이 많아졌다.
  여자는 타로 치는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 것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타로 골목에서 조차 오래 있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스쳤다.
  지호가 문을 열고 얼굴을 빼곰 내밀었다. 아직 점심 전이죠? 포장 만두 2개를 여자 손에 올려놓았다. 여자는 어제 일도 있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지호는 가게를 비워 놓을 수가 없다며 금방 가버렸다. 여자는 만두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오늘은 여간해서 손님이 오지 않을 듯 했다. 여자는 카드를 섞었다. 카드 한 장이 튕겨 나왔다. 타로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였다. 카드가 손에 익지 않을 때 카드가 튕겨 나오기도 한다. 여자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향을 가져와 피웠다. 여자는 두 손을 배 위에 편하게 올려놓은 채 눈을 감았다.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버리고 우주의 맑은 기운을 몸 안에 채우기 위해서다. 우주의 기운으로 자신 몸의 기운을 다스려야 한다. 30분이 지났을까 눈이 뜨였다. 여자는 일찍 문을 닫으려고 일어섰다. 향을 끄고 카드를 집는 찰나 누군가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자는 하마터면 손에 든 카드를 땅에 떨어뜨릴 뻔 했다. 나이는 조금 들어보이긴 했지만 똑똑하고, 비과학적인 태도를 경멸하던 예전의 그가 서 있었다. 여자는 너, 아직도 타로 보냐? 그의 입에서 행여 나무라는 소리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말이었다.
  “너, 예뻐졌다.”
  “그래요? 근데…무슨 일로?”
  “오랜만에 만났는데 고작 할 말이 그거야? 나, 결혼한다. 생각보다 결혼이 좀 늦어졌어. 기자도 그만 뒀다. 그래서…말인데. 궁합 좀 볼까해서. 너 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자는 그가 자신을 찾아왔던 그 날처럼 술에 취해서는 미안하다 한 마디 사과라도 할 줄 알았다. 여자는 콩트 한 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지금의 이 현실이 콩트 같이 느껴졌다.
  “궁합은 내 전문이 아니에요.”
  “정말? 그럼 잘 못 찾아왔네.”
  “재미 삼아 타로 방 옆 건물에 보면 천생연분 이라는 궁합 전문 타로방이 있어요. 그곳으로 가면 되요.”
  여자는 간단한 애정운이나 결혼운은 배열은 물론이고 이미지 리딩조차 할 필요 없이 다 외울 지경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주는 점괘를 말 해 주는 건 여자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여자는 그와 그의 아내가 될 여자의 궁합 따윈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 대신 여자는 궁합 전문 타로방을 가르쳐 주었다.
  “고마워. 참! 네게 줄 게 있는데…….”
  양복 안쪽을 더듬던 그가 여자에게 봉투 하나를 내 밀었다. 두 사람의 사진이 박힌, 청첩장이었다.
  “결혼식 날 보자.”
  그는 여자가 뭐라고 한 마디 꺼내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나갔다. 종소리가 한참 딸랑거렸다. 여자는 그에게 받은 청첩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재킷 주머니에 카드를 넣었다. 만두 가게를 지나자 지호가 웬일로 일찍 퇴근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왔다. 거리는 어둠의 기운으로 가득찼다. 퇴근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버스 정류장은 부쩍 댔다. 네온사인의 휘황찬란한 불빛 속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는 조급하거나 혹은 황홀한 사람들 모습이 마치 타로 속 광대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광대의 키워드인 흥분, 어리석음, 광란, 무관심, 인간의 모습들이었다. 그가 느닷없이 타로방을 찾아 올 줄 몰랐다. 여자는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어둠이 뿌려진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천상선녀’, 엄마가 하는 점집 문 앞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점집을 차렸다는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여자는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간판은 금방이라도 바람에 흔들려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여자는 반쯤 열려 있는 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늦은 시각인데도 손님 한 사람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이건 무슨 부적이에요?”
  손님은 엄마에게 부적에 대해 물었다.
  엄마는 붉은 물감 같은 걸 붓에 묻혀 종이에 뭔가를 그렸다.
  “오동자 부적일세. 다섯 동자를 부르는 부적을 그리고 있는 게야. 이 부적은 삽살방은 피하고 복덕방위에 붙이는 게 중요해. 그러니까 살이 낀 방향은 피하고 복이 있는 방향에 붙이라는 말이지.”
  “그 부적만 붙이면 만사형통할까요?”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
  흥분을 하는 손님에게 호통을 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그런 엄마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무당이라고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던 엄마였다. 젊은 사람이 무당이라니, 혀를 차는 사람 앞에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여자가 학교에 갔다 올 때마다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물건을 쌓아 둔 조그마한 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청소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쓰레기들이 하나씩 없어지고 있었다. 물건이 정리된 자리에 과자와 꽃, 음식이 차려졌다. 방에 있는 것이 신단이라는 걸 6학년이 된 그때 알았다. 곱게 화장을 한 엄마가 신단 앞에서 부채 같은 걸 들고 쿵쿵 뛰기 시작했다. 새벽녘, 잠이 깬 채로 엄마를 훔쳐보던 여자는 이불에 실수를 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신단에서 시간을 보내는 엄마를 못견뎌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고매를 맞을 때면 엄마는 숨소리 한 번 내쉬지 못할 정도로 쩔쩔맸다.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아버지 앞에서 몇 시간을 빌고 나서야 아버지는 때리는 걸 그만뒀다. 동그랗게 몸을 만 엄마는 허공에 눈을 둔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일은 매일 같이 반복됐다. 부채를 들고 쿵쿵거리는 엄마, 술에 취해 엄마를 때리는 아빠. 오줌을 싼 채 우는 아이, 집안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매 맞은 다음 날, 엄마는 무엇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일으켜 다시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했다.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신을 부르기 위해 신단으로 갔다. 여자는 때리는 아버지보다 무당인 엄마를, 평범하지 않은 엄마를 더 미워했다. 엄마는 여자에게 한 마디 말없이 여자와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여자가 첫 직장을 얻었을 때 아버지마저 연락 없이 집을 나갔다. 여자가 스무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여자는 엄마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접신하는 것과 맞는 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공을 들여 부적을 그리고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치고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입에서 술술 뱉어 내는 엄마의 모습은 매를 맞고 쩔쩔매던 예전 엄마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변한 엄마의 모습이 여자는 낯설었다.
  “천위부 지위모….”
  “뭐하시는 건데요?”
  뭐가 그리 궁금한지 손님은 계속 엄마에게 물어댔다.
  여자는 방 안을 살펴보았다. 신단을 겨우 차릴 만큼 방은 좁고 허름했다. 마치 여자의 좁은 타로 방을 보는 것 같았다. 좁은 방에서 엄마는 부적을 그리고, 여자는 덱을 셔플했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 속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거참. 입 좀 다물고 있어.”
 여자는 또 한 번 호통을 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여자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여자는 새벽녘, 엄마를 훔쳐보던 그 날처럼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주문을 외우면서 그려야 정성이 하늘에 닿아 신을 만날 수 있지. 그래야 신이 길흉화복을 알려 주실 게 아닌감. 천위부 지위모 인어기간 구이명물 귀신자 무형유적 혼야회정 운기소정….”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린다. 주문을 외우며 부적을 그리던 엄마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문 쪽을 쳐다보았다. 여자는 엄마의 시선과 마주쳤다. 엄마는 여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던 일을 계속했다. 여자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여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재킷 속 카드 한 장이 손에 잡혔다. The High Priestess 라고 적혀있는, 점성술 책을 든 고위여사제 카드였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주변 상황에 의지하기 보다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따르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자는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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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당선작 심사평


  제21차 <창작콘테스트> 은상은 소설부문 장미영 씨의 「타로텔러」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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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 엄마 캐스팅
   - 유다은

“안녕하시유~ 저 다은이아빠 유서기예유~ 허허, 안그려두 내일.......” 커다란 창문에 검은 물감을 바른 듯 깜깜해진 가을날의 이른 저녁, 곤히 잠든 말썽꾸러기 세 자매의 엉킨 몸 위로 아빠 방의 작은 불빛이 얼굴을 배꼼 내밀었다. 불빛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 굴러온 아빠의 멋쩍은 웃음소리가 내 귀를 자꾸 간질여 단단히 고정되었던 속눈썹을 살짝 풀어 트렷다. 귀속에 들어온 아빠의 웃음소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긁어 털어내며 몸을 틀이니 손끝에 곱게 접힌 하얀 반팔을 보고서야 나는 아빠의 사글사글한 전화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내일이 운동회였지.......’ 엄마의 자리가 비어있는 세 자매를 위해 아빠는 매년 운동회 전날 ‘엄마 캐스팅’을 한다. 대형 소속사처럼 캐스팅 당하기 위해 부푼 마음을 갖고 직접 찾아와 솜씨를 뽐내는 엄마는 없지만 아빠의 전화캐스팅은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이번 가을운동회 전날에도 아빠의 캐스팅소리를 들으며 나는 안도되는 마음으로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다.
이른 아침, 그릇들의 요란한 박수 소리에 눈을 비비고 부엌을 보니 얼룩진 앞치마를 입은 아빠가 마른 김에 따듯한 밥을 올려 김밥을 만들고 있었다. 깊은 잠에서 깬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다가가 특별한 재료 없는 가장 기본중의 기본인 아빠의 김밥을 입에 하나 넣으니 새콤한 단무지만이 아삭아삭 씹혔다. “오늘 지원리 준철이네 아줌마한테 말해 뒀으니까 가서 부탁 하면 되.” 중요한 요리경연의 마지막 데커레이션을 하듯 음식에 집중해 내 눈을 보지 않고 말하는 아빠에게 나는 크게 걱정 안했다는 듯이 무심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아빠가 만들어준 작은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들어서니 색색의 다양한 나라 국기가 하늘 위에서 춤을 추고 하얀 분필가루 트랙으로 단장된 운동장은 더욱 마음을 콩닥콩닥하게 하였다. 교문 앞에서 부모님이 커다란 도시락을 들고 오기만을 기다리는 다른 친구들과 같은 설렘은 없었지만 들뜬 마음에 혹시나 하고 교문 앞을 조심히 서성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곧 운동회를 시작한다는 방송안내와 함께 조용해진 교문입구는 다시 한 번 어린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6학년 1반 엄마와 징검다리 입장준비해주세요.”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작은 의자 두 개를 이용하여 징검다리 건너듯 엄마에게 길을 만들어 운동장 중앙까지 와서 찹쌀떡을 입에 물고 돌아오면 되는 게임이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아빠의 캐스팅을 통해 최종 선발된 준철이네 아줌마를 찾으러 갔다.
‘어디에 계신거지?’ 전 게임까지 미리 아줌마의 위치를 찾아놓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덩그러니 빈 의자만 있었고 어디에도 아줌마의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엄마와의 숨바꼭질을 끝내고 입장 석에 서서 두 손을 꼭 잡으며 둘만의 각오를 속삭이고 있었다.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눈썹이 파르르 조금씩 떨려왔다. ‘아빠도 캐스팅을 하는데 이번엔 내가 하면 되지!’ 아빠가 했던 캐스팅 방법을 생각하면서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차분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저, 안녕하세요. 아줌마! 저랑 같이 게임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어머, 미안해 아줌마가 방금 게임을 하고 와서 다리가 너무 아파”
“저, 아주머니! 혹시 제가 지금 게임을 해야 하는데.......”
“아줌마가 애기가 있어서 나가질 못해 미안해. 다른 아줌마한테 부탁해 볼래?”
그 순간이었다. 주의를 둘러보니 어느새 새벽안개가 내린 듯 가을하늘에서 춤을 추던 국기들도 넓디넓은 운동장도 청색 백색 시원하게 펄럭이는 깃발들도 내 하얀 운동화도 모두 뿌옇게 흐려졌다. 단단하게 쇠사슬로 꽁꽁 묶어 두었던 내 마음속 울음통이 그만 터져버린 것이었다. 운동장 바로 앞에 서서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놀라서 다가오는 선생님과 친구들, 내 울음에 의아해 하면서 쳐다보는 사람들 그날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겨웠던 운동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을의 황금 벼처럼 누렇게 변해버린 양말을 신은 채 동생과 텔레비전 만화를 보고 있었다. ‘부웅’ 마당에서 아빠의 자동차 주차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부스럭부스럭’ 맛있는 과자가 한가득 들은 검은 봉지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다양한 가지각색의 과자들과 빵 봉지를 하나하나 모두 뜯어 내 앞으로 건네주었다. 살짝 부은 눈을 반달로 뜨며 해맑게 양손 가득 과자와 빵을 들고 먹던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아빠는 갑자기 큰 웃음을 터뜨리면서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다은이, 너 오늘 운동장 한가운데서 울었다면서? 하하 울긴 왜 울었데! 애기였을 때도 잘 울더니 커서도 잘 우네?” 그렇게 넓고 넓은 가을 운동장에 아빠는 함께 있지 않았지만 내가 어디서 울었는지 마법구슬을 통해 본 듯이 다 알고 있었다.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고 더욱 속상해지는 마음에 깔깔거리고 웃으며 나를 놀리는 아빠를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웃지 마!” 입이 빼쭉 나와 투덜거리는 나에게 아빠는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던 알사탕을 꺼내주면서 싱글벙글 웃으셨다. 아빠의 품속에 지니고 있어 살짝 녹아있던 사탕은 너무나 달았지만 그때의 어린 나는 아빠가 너무나 미웠다.
시간이 흘러 아빠가 푸르고 푸른 하늘로 떠난 지 1년이 넘어가는 지금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소리 내어 울었던 가을 운동회의 그날 그 누구보다 마음이 쓰렸을 사람이 아빠란 걸. ‘미안해 아빠, 내가 그날 울어서 너무나 미안해.......’


■ 네가 하늘을 사랑하는 만큼 나는 너를 사랑한다.
   - 유다은

짧고 검은머리, 짙은 눈썹에 푸른 바다보다 깊던 눈동자. 근육으로 가득 차여있어 딱딱하지만 나에게만은 별 다섯 개의 매트리스 보다 포근한 어깨와 가슴을 가진 너. 알싸한 알코올만 입에 대면 붉게 홍조 오르던 내 양 볼을 잘 익은 체리 집듯 조심스럽게 꼬집던 그 큰 손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너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공군 ‘파일럿’이다. 183CM의 큰 키에 딱 맞게 입혀진 짙은 녹색의 조종복은 남자의 상징인 블랙슈트보다 더 잘 어울렸고 평범하지 않은 하얀 테의 검고 큰 선글라스를 살며시 폼 내며 쓰는 너의 모습은 나를 웃게 만들기도 하면서 내심 조금은 떨리게 하였다.
네가 처음 너의 직업을 말했을 때 솔직히 내 눈이 두 번 반짝였던 것 같다. 영화 속이나 책 속에서 아니면 텔레비전에서만 듣고 보았던 ‘파일럿’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한 번. 엄마에게 거짓말을 고백하듯 그 깊고 검은 눈동자를 흔들거리며 몇 번의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오물거리던 입술을 보고 한 번. 군 보안의 의무로 직업과 하는 일에 대해서 당당히 말하기 힘들었던 너는 그래도 나에게만은 양치기 소년으로 남기 싫어 깊이 또 깊이 고민하다 이야기를 꺼내 놓는 그 당황스러우면서도 귀여운 모습에 나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두근거림을 느꼈던 거 같다.
“뭐? 파일럿? 이야~ 축하한다! 결혼하면 인생 피겠네. 남자친구 꼭 잡아라!”
너를 만나고 내 귀에 가장 많이 들려오던 소리다.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직업 군인으로서 주어지는 여러 가지의 복지 혜택과 사회에서는 내가 잡은 줄이 썩은 동아줄인지 단단한 동아줄인지도 모른 체 끙끙거리면서 어떤 줄이든 매달리려고 할 때 너는 전역날짜를 손가락으로 쉽게 접고 피는 안정적인 위치와 진급을 갖고 있었고 극소수의 기술과 능력을 지니고 있어 전역 후에도 걱정 없는 미래가 있다는 점에 내 주의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눈으로 너를 바라보며 평가하고 있더구나.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특별하게 내세울 거 없는 작은 중소기업의 그저 평범한 경리사원인 나 또한 너와는 조금 다른 눈으로 평가받고 있었지.
억울했다. 나는 네가 좋은 미래를 보장하는 ‘파일럿’이기에 좋아했던 것이 아니다. 잠깐의 손부채질에도 시원한 생수를 두병이나 들고 달려와 주는 너를 좋아했고 내 곁을 일찍 떠난 아버지 이야기에 나보다 더 서럽게 눈물, 콧물 부끄럼 없이 흘려가며 울어주더니 다음날 바로 우리 아버지가 계신 납골당에 찾아가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앞으로는 자기가 잘 지켜 주겠다며 인사하는 그런 너이기에 나는 너를 좋아했다.
“방금 오전브리핑 끝내고 왔어. 오늘 오후 디오여서 바쁠 거 같아. 아, 그리고 저녁에 비상대기도 있네! 야간비행 있는데 힘들겠군. 이번 주말에 태풍전개가 있을 수도 있어서 못보는 건 아닌지 걱정이야. 곧 새로운 기종 입과 인데 바쁘겠지”
물론 가끔씩 네가 핸드폰 너머로 무심하게 내뱉는 내가 알지 못하는 비행관련 용어들은 나를 조금 주눅 들게 그리고 조금은 먼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 해 줄 수 없는 내가 너의 옆에 이렇게 서 있어도 되는 건지 걱정이 앞섰고 비슷한 항공직의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다는 너의 동기 이야기를 들을 때는 괜스레 마음 한편이 쿡쿡 찔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평가에 너와 나를 점차 맞춰 가기 시작했고 앞선 걱정과 괜한 불안감에 스스로 자존감을 낮춰 너에게 말도 안 되는 심통을 부렸던 거 같다.
하늘이 얼마나 푸르고 푸른지 세상 맑은 눈으로 해맑게 이야기 하는 너를 보면서 회사에서 처리해야 될 쌓여있는 서류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덥석 화를 내기도 하였고 다음날의 사고 없는 비행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며 비행준비를 하는 너를 다독이고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네가 하는 야근은 사회의 회사사람들이 밤새워 일하는 야근과 다르다며 오히려 무시하기 까지도 하였다. ‘공군의 날’ 행사로 여러 가지 부대의 프로그램을 바쁘게 준비해야 하고 대대 막내이기에 남들과는 다르게 앞장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너에게 그냥 하루 노는 행사일 뿐인데 꼭 네가 있어야만 처리되는 일이 있냐며 예쁘지도 않은 말들을 내 작은 입에서 참 많이도 내 뱉었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너에게 남자답지 않게 보일까봐 걱정되는데, 오늘만 하는 내 애교라고 생각하고 들어줘.”
늘어나는 나의 이기심과 질투를 묵묵히 옆에서 다 받아 주던 너는 어느 날 나에게 조심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내 두 눈을 반짝이게 했던 그 오물거리는 입술로. 손잡을 때 마다 까끌까끌 거리던 너의 오른손 검지 첫 번째 마디에 남겨진 바늘로 찔러도아프지 않을 딱딱한 굳은살은 네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하늘의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연필을 잡았는지 말해줬고 시력이 조금 낮아 혹여나 신체검사에서 떨어질까 수십, 수백 개의 당근을 먹어대던 탓에 밥을 먹을 때 마다 당근을 골라낸다며 핀잔주는 나의 잔소리에 웃어넘기던 너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가슴 깊이 하늘만을 품고 들어간 공군사관학교에서의 절제와 인내의 생도생활 이야기는 내 귀를 타고 들어와 마음을 더욱 쓰리게 하였다.
20살, 가족의 품에서 대학 입학을 축하받으며 미성년자라는 딱지를 떼어 냈다고 우스운 자신감을 부리던 아직 어린 나이에 너는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가족의 품을 떠났고 내가 교복을 벗어 던지고 온갖 독특한 스타일의 옷들과 알록달록 화장품으로 방안을 어지럽힐 때 너는 신발과 옷, 모자, 이불까지 정해진 각도와 센티미터를 맞춰 매일 검열을 받고 있었다. 늦잠을 자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수업을 빼먹고 캠퍼스를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 다닐 때 너는 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나 열을 맞춰 걷고 어린 ‘메추리’가 되어 하루에도 수 천, 수만 번의 팔굽혀 펴기를 했어야만 했다. 벌점으로 또는 자진 퇴소로 떠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 악물고 버텨야 했고 선배의 위치에 올랐을 때는 네 뒷걸음을 열심히 따라오는 어린 ‘메추리’후배들을 위해 하지도 못하는 쓴 소리를 마음 아파하며 냈어야 했다. 4년간의 고된 생활로 조종사의 기본자질을 갖춘 너는 당당히 비행장교가 되었고 초등, 중등, 고등과정의 수많은 비행 훈련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쉴 틈 없이 더 많은 공부와 더 많은 신체단련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기나긴 시간을 끝없이 달려 ‘파일럿’이란 단어를 달고 네가 올라간 푸르고 푸른 하늘, 너의 꿈이 있는 그곳에서 너는 하늘을 달리는 기쁨과행복 그리고 설레는 긴장과 떨림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에 따르는 위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늘 같이 체감하고 있어야만 했다. 지금까지도.
오물거리는 너의 입이 멈췄을 때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들과 똑같이 너의 현재 만을 바라보고 평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너무나 부끄러워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고마웠다 내가 더 큰 실수를 너에게 저지르기 전에 나를 잡아주어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그동안의 못된 행동들을 울먹이며 되새기는 나를 꽉 감싸 안으며 네가 속삭였던 마지막 말 한마디는 내 가슴을 얼마나 아리게 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늘을 사랑해. 그리고 너도 사랑하고.”
너는 하늘 과 같이 참 맑은 아이다. 하늘과 같이 맑기에 하늘을 동경했고 하늘의 품에서 날았을 것이다. 그런 네가 나는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보통의 눈이 아닌 더 깊은 눈으로 너를 바라보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바라 볼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하늘을 바라보는 그 깊고 검은 눈동자처럼. 네가 하늘을 사랑하는 만큼, 나는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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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21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수필부문 유다은 씨의 「엄마 캐스팅외 한 편의 수필을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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