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제23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23차 당선자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공모에서는 응모작품수도 지난 공모에 비해 크게 뒤졌을뿐더러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응모한 작품이 상당수였다.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이번 <창작콘테스트> 제23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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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낮 그리고 도시
- 이분도
[밤은 사라진다. 빛은 드리울 뿐이다. 낮뿐인 도시를 이룬다.]
나는 2년 전 ‘낮뿐인 도시’ 시민권을 취득하여 이민을 왔다. 여느 때처럼 오늘 아침도 눈이 부시고, 새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전자석과 코일이 내는 멧새 소리, 7시 정각을 알리는 알람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게 예정대로 흘러간다. 새소리를 들으며 잘 구워진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문다. 와작-
드론이 배달한 ‘오늘의 드레스’가 도착했다. 울과 실크를 반 씩 섞은 진청색 계열 정장이다. 서비스를 신청할 때 든 생각이지만 어떤 사람이 날 위해 매일 정장을 고를까. 코디네이터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면서 옷을 고르고 있을까? 그런 자질구레한 생각을 할 때, 드론에 달린 카메라가 ‘오늘의 드레스’를 입은 나를 카메라로 찍고 있다. 저 맨들맨들한 렌즈 아래 내 모습이 담긴다. 영상은 바로 코디네이터에게 배달될 것이다. 그 혹은 그녀는 영상을 보고 ‘내일의 드레스’를 준비할 것이다. 그것이 그 또는 그녀의 일과일 것이다. 어쩌면 코디네이터가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코디네이터를 위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로 가는 통근버스를 타려면 지금 집을 나서야 한다. 출입문을 열자, 더 강렬한 도시의 빛 덕분에 눈이 다시 부셨다. 바닥과 고층 빌딩 시멘트벽 움직이는 모든 공간 위로 얇게 썬 베이컨 같은 조명이 반짝이고 있다. 도시로 온지 2년이 지났지만 적응되지 않는다. 베이컨 조명이 달린 통근버스는 나를 태우고 공장으로 향했다. 창밖에 비친 낮뿐인 도시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실 나같이 다른 도시에서 이민을 와 정착한 사람들은 0세대로 불린다. 0세대는 어둠을 경험해본 이민자 그룹이다. 50년 전 도시와 함께 태어나 입주한 세대는 1세대라 불리고, 1세대의 자손들은 2세대. 2세대의 자손들은 3세대로 불린다. 1세대와 2세대 사이, 2세대와 3세대 사이에 태어난 즉, 중간 세대는 0.5를 더하여 1.5세대와 2.5세대로 불린다. 세대 간 보이지 않은 차별은 언제나 존재했다. 특히 어둠을 경험한 0세대에 대한 차별은 일상이었다. 그들에게 0세대는 미지의 수이자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잠시 버스에서 눈을 붙였다. 눈을 감아도 스며든 빛 때문에 완전히 쉴 수 없다. 내가 자리에서 뒤척이자, 노트북을 만지던 케이가 내 눈꺼풀 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래도 여전히 눈동자 안은 잠들기엔 밝았다. 어쩌면 전혀 어두워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케이는 조용히 내게 물었다.
“어때, 도시 밖에 있던 어둠과 비슷해?”
케이는 어둠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2세대이다. 나는 그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었다.
“전혀.”
케이는 나의 짧고 단호한 대답에 크게 실망한 듯 했다. 케이는 다시 조용히 속삭였다.
“나 요즘 불순한 모임에 참석하고 있어.”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케이는 재밌는 듯 킥킥거렸다. 케이가 참석하는 모임은 글자 그 자체로 ‘불순한 모임’이었다. 뉴스에도 자주 이름을 보였던 모임이다.
“불순한 모임, 역시 케이다워. 그런데 말이야, 그 불순한 행동이 대체 뭐야? 뉴스에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잖아. 그저 불순한 모임 회원들이 도시에 반하는 이러저러한 불순한 행동들을 하고 있다 말하고...”
케이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커진 동공으로 내 표정을 이리저리 살피는 듯 했다. 2세대인 케이 입장에선 불순한 행동이 상당한 중범죄에 해당되므로 나는 케이 행동이 이해됐다. 케이는 나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케이가 입을 때는 순간, 통근 버스의 천장이 열리며 벽면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버스 사면이 열리자, 케이는 속삭였다.
“29일 낮 00시에 경관들 눈 피해서 ‘성산’으로 혼자 오도록 해.”
29일이면 앞으로 4일 뒤다. ‘낮뿐인 도시’에서 사용하는 LMT 표준시인 낮 00시는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으로 새벽 2시쯤이었다. 케이는 그 말만 한 채, 재빨리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날부터 29일이 되기까지 케이 뒤를 몰래 따라다녔다. 불순한 모임에 참석은 분명한 범죄행위이다. 만약 내가 케이와 함께 범죄 조직에 가담한 것을 경관이 알기라도 한다면 회사는 물론 이 도시 자체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케이가 나를 절벽 아래로 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또한 절벽 너머 감춘 불순한 행동들을 알기 위해 낭떠러지를 향해 걷고 있다. 그간 케이와 지내면서 그의 사고방식에 물들고 있었다. 케이는 위험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케이는 나의 의심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겁 많고 소심한 성격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애정이 묻어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끝까지 의심했고, 당일 29일까지 성산으로 갈 것인지 정하지 못했다. 케이는 29일 당일까지 조용히 공장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통근 버스에 앉아서 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케이의 집 안은 여전히 빛났다. 그는 빛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곳엔 그림자가 없었다. 버스는 그의 집을 떠나 얼마 안가 타란 사거리에 멈췄다. 5분 거리에 내가 사는 복층 주택이 있었다. 버스 단말기에 사원증을 찍으며 버스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버스기사는 나와 같은 0세대였다.
“기사님은 주말인데 고향 한번 안내려가세요?”
버스기사는 내가 재밌는 농담이라도 한 듯이 과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 참 웃긴 말이네, 푸하하하.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남아 있어야 고향이지. 땅만 덩그러니 있으면 고향인가.”
나는 멋쩍게 미소를 띠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시겠네요. 저는 0세대라시길래...”
기사는 일부러 큰 소리로 웃으며 손 인사를 했다. 인사하는 버스기사의 눈이 붉어졌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는 땅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0세대가 겪는 설움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서로 간에 알았다. 0세대 간 가슴속의 그 무언가 덕분에 나는 고향으로 떠났다고 증언해줄 알리바이를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장벽을 넘는 519번 버스를 타고 고향땅으로 떠난 사람이 된 것이다. 케이와 약속한 시간까진 아직 넉넉했다. 고향땅은 지금 쯤 어두컴컴해졌을 것이다. 고향의 밤은 시민들의 밤이기도 했지만 범죄자들의 것이기도 했다. 경찰이 보지 못하는 구석엔 쓰레기가 쌓이고 자질구레한 범죄자들이 모였다. 간혹 운이 나쁘다면 그곳을 점거한 불량배에게 끌려가 현금을 빼앗기고 뺨을 맞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공권력의 무능력함을 저주하고 그곳을 지옥이라 불렀다. 지금 살고 있는 ‘낮뿐인 도시’엔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는 소녀도, 각만 잡은 채 서있는 무능력한 경관도 없다. 시민들은 일을 하고 경관은 도시를 지킨다. 깨끗한 개울물이 흘렀던 자리처럼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적당한 수준의 행복과 기준에 만족하며 살아갔다. 발걸음은 주어진 일을 수행하기 위해 빠르고 가벼웠으며 표정에 단호함이 묻어나 귀족 같은 분위기도 풍겼다. 0세대 입장에서는 빛의 도시에 태어나 자란 1세대를 우러러 보기에 그들은 충분히 기품이 넘쳤다. 그들은 0세대를 받아주고 일자리를 제공해주었다.
나는 ‘낮뿐인 도시’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일종의 신앙심 같은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가 나의 도시에 대한 완벽한 신앙심을 부수지 않을 까 걱정됐다. 걱정 때문에 눈부신 도시가 부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나는 시외로 나가는 버스표를 끊고 단말기에 시민권번호를 입력했다. 이로써 나는 이제 도시를 떠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떠난 사람이 되었다. 케이가 불순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경찰은 나를 그와 친한 동료라는 이유로 연행하거나 쇠창살 아래서 조사할 수 없다.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나는 버스 안에서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쓴 뒤 정류장을 빠져나왔다. 시계는 벌써 낮2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약속된 00시까지 성산에 어림잡아 알맞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성산으로 향했다. 잠을 못잔 탓인지 도시의 빛에 눈이 더욱 부셨다. 출신이 0세대인 나도 때로 어둠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0세대 중에는 이민 온 뒤 얼마 못가 어둠이 그리워서 도시를 떠난 세대도 있다. 도시사람들은 그들을 ‘뒤쳐진 세대’라고 불렀다. 물론 나는 그들을 ‘뒤쳐진 세대’ 라고 부르지 않는다. 범죄자라 부른다. 그들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땅 어둠에 물들어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정의는 정확할 때 더 큰 함의를 갖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약속된 00시를 10분쯤 지나서 겨우 성산에 도착했다. 시골 출신인 나는 발걸음도 ‘낮뿐인 도시’ 사람들보다 느렸다. 미련하고 느린 발동작. 느린 발동작을 조종하는 게으른 나의 뇌도 문제다. 그곳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촌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약속 시간에 늦어 어쩔 수 없이 성산 뒤편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사이로 대화소리와 바닥을 끄는 쇳덩이 소리가 들렸다. 대나무를 헤쳐 소리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벌써 20분 지났어. 케이, 그 녀석은 잊어버리고 빨리 시작하자.”
케이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꼭 그 그룹의 리더인 것처럼 말했다.
“3분만 더 기다려보자. 분명 다 왔을 거야. 0세대가 한명이라도 더 있어야 우리 계획에 명분이 확실해질 수 있어.”
나는 대나무 사이로 얼굴을 숨긴 채 모임의 수를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서른 둘... 서른 여섯’
그들 소매엔 시민권과 함께 세대표시가 적혀있었다. 대부분은 내가 알지 못하는 2세대가 주를 이뤘고 드물게 2.5세대 1세대도 섞여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기 전 불순한 모임이 가진 정보와 불순한 의도를 파악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새벽에 그들을 보러온 이유다. 나는 케이를 도와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단순하게 호기심뿐이었다.
“알았어. 그 녀석은 안 올 건가보네. 워낙 겁이 많아서 그런 걸 거야.”
케이는 실망한 듯 힘없이 무리에게 중얼거렸다. 나는 케이가 나를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내가 처음 공장에 왔을 때부터 편견 없이 대해 준 유일한 2세대였다.
“그럼 먼저 중심 시가지부터 공격한다. 지금쯤 먼저 간 선발팀이 계획대로 경관들을 가뒀을 거야.”
케이는 내게 선발그룹에 대해 일러주지 않았다. 케이가 이미 경관들을 납치했다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번 불순한 행동은 큰 계획인 것 같다. 그들은 여섯 명씩 나누어 작은 버스에 탔다. 나는 그들이 떠나고 남겨진 버스 한 대를 타고 케이가 탄 버스를 쫓았다.
케이의 버스는 제한 속도를 가볍게 넘기고 도심을 질주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속버스를 본 시민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케이가 도시에 끔찍한 일을 벌이는 것이 분명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케이의 행동을 말리지 못한 내게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그가 경관들과 시민들을 헤치는 것은 오직 나만이 막을 수 있다. 버스들은 사냥개처럼 큰 소리로 짖으며 도시를 부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낮의 사령탑’이 있는 곳에 버스는 멈췄다. 버스는 담배 피는 것 마냥 바퀴에서 연기가 솟았다. 케이는 양손에 아이머리만한 쇠망치를 들고 상기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양 팔에 곤두 선 핏줄들이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알던 케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혁명가의 얼굴처럼 일부는 맹수 같은 야성이 다른 면은 서러운 표정의 불상 같이 엄숙했다. 케이는 고개를 들고 도시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들은 지금부터 도시의 진실을 마주봐야 합니다.”
케이가 쇠망치를 들자, 도시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움츠렸다.
“우리가 숨긴 어두운 진실을 말입니다. 언제까지 괴롭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하실 것입니까?”
케이의 쇠망치가 낮의 사령탑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밝은 도시 때문에 희생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빛을 파괴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 도시의 시작일 것입니다!”
케이가 쇠망치를 사령탑으로 내리꽂았다. 쇳덩이가 사령탑의 유리면을 가르며 파열음을 냈다. 불순한 모임 일행이 케이를 기점으로 조명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조명을 보호하던 강화유리는 쇠망치질에 속수무책이었다. 먼지구름이 바람을 타고 일어나 도시가 뿌옇게 변했다. 도시의 탄생 이래 처음으로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유리 파편은 불순한 회원들의 살갗을 긁으며 튕겨나갔다. 연쇄적으로 도심 곳곳에서 파열음들이 들렸다. 케이 일행 말고도 더 많은 불순한 회원들이 일을 벌이는 것 같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고향 마을을 파괴하는 시민이라니. 나름 교양인이라 자부하던 케이가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인 줄 몰랐었다. 나는 케이와 불쌍한 ‘불순한 모임’ 회원들을 실컷 비웃었다. 그들은 거짓을 파괴한다더니 정작 자신들이 케이의 위선과 거짓에 선동되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 도시 조명의 모든 파괴행위는 단지 비틀어진 2세대 케이의 그릇된 욕망에서 생겨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보지 못했던 어둠을 보기 원했다. 눈꺼풀을 손바닥으로 가려봐도 이 도시에서 어둠은 볼 수 없다. 그것이 케이에게 불편한 진실이다. 그가 알아야 할 진실이다. 그는 신화 속 유니콘을 쫒는 망상가에 불가했다. 이 도시엔 그림자도 없고, 암흑도 없다. 발주부터 오직 빛만 존재하기로 계획된 도시다. 역시, 불순한 망치질은 얼마못가 멈췄다. 하나 둘 회원들은 쇠망치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공허한 침묵이 먼지에 날려 그들 주위를 감쌌다. 사령탑의 조명들은 모조리 깨져있었다. 시가지 바닥과 빌딩 벽에 깔린 조명들도 깨졌다. 시각은 새벽4시를 가리키고 조명은 모두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빛은 살아있었다. 조명은 설계자들이 꾸민 장식품에 불과했다. 빛을 내는 건 조명이 아니라 도시이자 공간이다. 도시는 말 그대로 ‘낮뿐인 도시’인 것이다. 케이는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진실을 맞본 충격이 꽤나 클 것이다. 불쌍한 2세대의 민낯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그의 용기에 박수를 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그의 파괴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쓰러진 케이와 불순한 모임 회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반딧불이가 꼬랑지 불 끄고 날면 짝짓기에 실패하는 법이야... 멍청한 개똥벌레들 같으니.”
케이의 혁명이 있고 난 뒤 일주일이 지난 날, 나는 러그너 맥주를 들고 부르거를 뜯으며 소파에 기대 티비를 보고 있었다. 뉴스가 시작되고 짧게 케이와 회원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사진 아래에는 ‘테러리스트’라고 적혀있었다. 아나운서는 시민의 비명과 쇠망치 소리가 정신없이 들리는 제보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아나운서가 흘리는 눈물을 보며 어느새 누구보다도 케이를 혐오하고 있었다.
“역시 케이다워. 멍청한 케이 같으니.”
잠시 뒤, 낮뿐인 도시의 시장이 케이가 부순 사령탑위에 서서 장황한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배웠습니다. 나의 도시엔 어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검은 까마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은빛비둘기만이 도시의 하늘 위로 날고 있습니다. 선의를 품은 나의 숭고한 시민 여러분. 당신은 빛을 따를 것입니까. 어둠을 따를 것입니까? 선택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의 시민 여러분이 시장과 함께 빛의 추종자, 선의의 노동자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커져가는 도시를 위해 일하십시오. 밝은 전구를 위해 땀 흘리십시오. 여러분의 노동은 영원한 빛의 사령탑 아래 기록 될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성실히 일하십시오. 빛의 도시는 언제나 여러분에게 수십 배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땀 흘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시장을 보자 생각이 들었다.
‘개똥벌레 위로 새로운 똥 덩어리가 자리 잡았군.’
나는 저 뻔뻔한 얼굴을 한 시장에게 화가 치밀었다. 티비를 부수고 싶었다. 티비 몸체는 여전히 환한 빛을 뿜고 있었다. 케이가 잡힌 뒤로 빛에 의한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간헐적인 불면증도 앓고 있다. 스트레스가 화산처럼 혈관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케이 생각을 하면 머리통이 지끈거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케이와 불순한 모임 회원들. 빛없는 조명들과 ‘낮뿐인 도시’. 새벽 일찍 통근 버스를 모는, 갑자기 죽어도 아무도 모를 버스 기사. 도시를 점령한 걸어 다니는 개똥벌레들.....
그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로 가자. 오늘만 지하계단으로 내려가자.’
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고, 티비를 옆으로 밀고 바닥에 깔린 덮개를 들어올렸다. 덮개 아래에 감춰진 나무문 손잡이가 보였다. 손잡이를 들어 올리자 녹슨 못에 헐겁게 지탱하던 문이 괴상한 소리를 냈다. 나는 문을 열고 아래로 한발 한발 내려갔다. 내 몸뚱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형체가 사라져갔다. 텅- 텅- 철제 손잡이에 구두 부딪히는 소리만 울렸다. 지하갱도에 마지막으로 내려간 것은 정확히 한 달 전이었다. 도시 사람들에게 들키면 영원히 추방되므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케이는 이 도시의 2세대, 나는 0세대. 당연히 차이와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낮뿐인 도시처럼 이 사실은 당연하다. 그는 말 그대로 지상에 사는 사람이고 1세대부모의 돈과 땅으로 부를 쉽게 물려받는 세대다. 반면에 0세대인 내가 먹고 사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이건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과 사의 문제이다. 공장에서 버는 푼돈으론 제대로 사는 것조차 어렵다. 감옥에 있는 케이도 내 이야기를 듣는다면 날 안아줄 것이다. 내가 그의 가장 베스트 프렌드였으니까.
내가 ‘낮뿐인 도시’의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밤’이란 물질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블랙 이코노미. 나 같은 0세대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언더그라운드다. ‘낮뿐인 도시’ 정부는 시민들이 ‘밤’을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부는 ‘밤’과 ‘검은 것’을 진정으로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밤’은 배설물과 같은 것이어서 0세대 사람들에게 시민권과 돈을 주고 처리하게 한다. 나도 그들이 ‘밤’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십 미터 쯤 내려가자 ‘밤’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은 지하 깊은 곳에 담가두어도 멈추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제자리에서 출렁거린다. ‘밤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빛에 피곤할 때면 지하갱도에 내려와 잠시 눈을 붙인다. 깨어나면 옷을 벗고 ‘밤’ 위로 풍덩 빠져 눕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숨 쉬는 소리만 나도록 고요하게 말이다. 오늘도 ‘밤’은 파도처럼 철제 수조관 위로 넘실거린다. 이렇게 고요한 ‘밤’ 속에선 이따금씩 희미한 생명체들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환상이 보인다. 나는 다시 ‘밤들’ 사이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그리고 케이가 꿈속에서 희미한 생명체처럼 튀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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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당선작 심사평
제23차 <창작콘테스트> 금상은 소설부문 이분도 씨의 「낮 그리고 도시」을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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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빈 역
- 허 원
무늬 없는 흰색 반팔 티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단발머리에 야구 모자를 눈썹 위까지 푹 눌러쓴 채, 그녀는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아메리카노를 젓고 있었다. 모자 창 아래로 언뜻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크고 예쁜 눈의 모양과는 달리 불투명하고 초점이 없었다.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까딱까딱 흔들릴 때면 샌들에 삐져나온 발가락에 빨간색으로 칠해진 에나멜이 작고 붉은 모조 플라스틱 보석처럼 반짝였다. 번지거나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색칠되어있었다. 그녀는 아마 십 평 남짓한 자신의 원룸에서, 낡은 소파에 앉아 붉은 색으로 물든 조그마한 붓을 들고 집중해 엄지발톱을 정성껏 칠했을 테다. 삐져나가서도 안되고 모자라서도 안 된다. 완벽한 모조 보석이어야만 한다. 낡은 선풍기가‘탁’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때 알겠더라고요. 날이 정말 덥구나.”
카페에 마주 앉은 김서현은 빛이 꺼진 눈을 들어 나를 본다.
“스물 아홉살 때 결혼하지 않으면 영원히 결혼 못 하겠다 그런 생각했었어요. 여자들이 갖는 위기감이라고 할 까. 누구나 그런 때가 있잖아요. 해야만 해. 지금 아니면 안 돼. 두렵고 걱정되고. 그렇다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 그런 불안감이요.”
“남편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나요?”
“전혀요. 우리는 친구처럼 잘 지냈어요. 오늘 하려는 얘기도 남편 얘기는 아니고……. 불가사의한 얘기를 찾는다고요.”
“네. 여름 기획이죠. 자극적인 얘기 없이는 사람들이 도통 클릭하지 않아요. 저희 상주 신문이 극악범죄 사건을 시리즈로 연재해서 큰 호응을 얻었죠. 주로 해외 연쇄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긴 하지만……, 최근에는 존스타운 사건을 다뤘었죠.”
“어머. 저도 그거 봤어요. 천 명 가까운 종교 집단 사람들이 교주에 따라 집단 자살한.”
“네. 그때 반향이 엄청났죠. 근데 대중은 더 큰 자극을 원하잖아요. 여름이기도 하고요. 편집장이 미스터리하고 불가사의한 일화를 특별 기획하자고 하더라고요. 어쩝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죠.”
잠시 멈췄던 발가락이 다시 까딱거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는다.
“제 친구 얘긴데… 경희라고, 고등학교 동창이었어요. 아버지가 선박 무역사업을 했었고 집이 잘 살았죠. 당시에는 보기 드문 고급 승용차를 타고 귀가 하곤 했는데 그 때면 우리들은 부러운 마음에 서로 뒷얘기를 하느라 바빴어요. 부자라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기중심적이다 라는 등 말을 지어냈죠. 근데 경희는 나쁜 애가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순수한 애죠. 불쌍하기도 하고.”
“불쌍하다니요?”
“호황이 있으면 불황도 있잖아요. IMF 터지고 180만 명의 실업자가 생기고. 매일 발생했던 8천 여 명 신용불량자 중에 경희 아버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죠. 바람 한 점 없는 아주 더운 여름 오후에, 경희는 전학을 갔어요. 먼지만 자욱이 날리는 뙤약볕 아래로 사라졌어요.”
그녀는 지루해 볼펜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내 손가락을 보았다.
“물론 그때는 다 어려웠으니까. 저 사실 경희하고 친했어요.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 그녀가 나를 그랜저에 태워주면 63빌딩 꼭대기에서 개미들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태워주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과 뒷얘기에 성실이 참여했죠. 태워주면 내 친구 아니면 적. 그런데요. 웃긴 건, 걔네 집이 망한 뒤에는 친구도 적도 아니더라고요. 그냥 잊어버렸다고나 할까……. 그러다 10년 뒤에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남편이 치과의사고 대대로 명망 있는 정치가 집안의 장남이라는. 어떻게 알았냐고요? 갑자기 동창회에 나오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녀는 기사가 딸린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10년 만에 동창회에 나타났죠. 만삭이었어요. 그때 동창들의 표정을 보셨어야 하는데. 도마 위의 생선이라고 토막 낼 생각만 하고 있다가 알고 봤더니 자기네들이 경희 도마 위의 생선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의 그 자괴감.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녀가 조그맣게 킥킥 거리며 웃었다.
“어떻게 남편을 선택했냐고 물었을 때 경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글쎄요.”
“소금꽃이 폈기 때문이래요. 남편 등짝에 땀이 말라 폴로셔츠에 소금꽃이 폈다고.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넋이 나갔다고.”
서현은 잠시 번뜩이던 눈빛을 그전처럼 모자챙에 가린 채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호사다마라고. 몇 년 뒤에 나쁜 소식을 들었어요.”
“어떤?”
“죽었어요. 아이가.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다 이안류에 휩쓸렸어요. 구명조끼를 입은 채 둥둥 떠다녔죠. 남편은 경희를 도우려고 했지만 걷잡을 수 없는 망상에 빠졌어요. 염전에 산같이 쌓인 소금 속에 파묻힌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부러진 삽으로 파헤치는 꿈을 꾸거나 맥주잔에 따른 물에 소금이 보일정도로 계속 집어넣고 마시는 꿈. 소금에 절인 생선이 살아나 펄떡이는 상상을 하게 됐어요. 누구의 위로도 소용없었죠. 그러다 경희는 남편 등에 허옇게 핀 소금꽃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남편 탓이라고. 이혼하기를 바랐죠. 아니 이혼 뿐 아니라 남아있는 모든 기억을 삭제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회귀 열차를 찾았고.”
“회귀 열차요?”
“네. 그렇게 불린데요.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지울 수 있게 측두엽 아래 해마를 조금 삭제하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느 병원에서 어떤 의사가 어떻게 수술하는지는 아는 바는 없어요. 저도 들은 얘기니까.”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더니 커피 잔을 이리저리 돌린다.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해마를 덜어낼수록 열차가 출발해요. 어둑하고 축축한 터널을 통과해서 조금씩 나쁜 기억을 ‘필요 없는 역’에 남겨두고 천천히 과거로 돌진하는 거죠. 경희는 그것을 회귀열차라고 했어요.”
***
역장이 표를 확인하고는 경희를 열차로 들여보냈다. 역장은 서글픈 눈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듯 치아를 모두 보이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라미네이트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의 표정은 이질적이고 인공적이었다.
경희는 F2열 창가 쪽에 앉았다. 창 밖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비는 텅 빈 역사를 곧 무너뜨리겠다는 기세다. 차가운 손이 그녀의 손을 잡는다. 경희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비틀어 손을 빼냈다. 준석은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쳐다본다. 경희는 서둘러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냥 내리자.”
“…….”
“어떻게 좋은 추억만 갖고 살아.”
경희는 무릎에 모은 두 손을 맞잡아 깍지를 낀다. 손가락을 세워 각각의 손톱이 살을 파고들게 해 뼈를 부러뜨리고 파괴하려 한다. 지구를 압축해 손아귀에 넣고 쥐어 터트릴 셈이다. 준석은 경희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한 숨을 쉬며 의자에 누워 눈을 감았다. 열차가 움직인다. 길게 늘어진 레일을 따라 속력을 더해갔다. 경희는 자신이 망가진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략 2만개의 유전자 중 12992 번째 유전자가 변이를 거쳐 어떤 흐름을 가로막고는 절벽 끝으로 자신을 몰고 가려 한다고 여겼다. 그녀의 바람과 생각대로 가지 못하게 숙주를 감염시켜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고는, 이번 세대에도 자기 역할을 끝냈다고 만족해하며 에어컨 아래서 숙면을 취하는 기이한 유전자를 떠올렸던 것이다. 사실 그랬다. 그녀가 태어나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녀가 성장 할수록 가세가 기울었으며 그녀와 절친했던 친구는 반드시 다쳐야만했다. -한번은 연필을 깎기 위해 커터 칼을 빌리다가 칼날에 친구의 엄지손가락 마디를 긋기도 했다. 진작 자신의 몸 어느 세포에 있는 잘못된 유전자를 찾아 절단했어야만 했다.
가세가 기울고 차례로 병들어 시들어가던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경희는 절벽 끝으로 기어오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 사학과를 나와서 교직 이수를 했고. 교원 임용시험에 두 차례 떨어진 끝에 합격 후 사립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냈던가. 준석과 결혼 후 비로소 그녀는 지긋지긋한 유전자의 결박을 해제했고 승리자의 영광의 징표로 새 생명까지 잉태했다. 그리고는 만삭의 몸으로 자신의 불안한 유전자를 향해 끊임없이 질타와 조롱을 일삼던 무리들에게 그녀가 건재함을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물론 비이상적인 자신의 세포가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괴상한 작용이 있다 해도 그녀는 이미 쟁취한 승리처럼 재차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돌연변이 세포들은 손 쓸 틈도 없이 바닷물을 빨아들여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의 튜브를 뒤집어버렸다. 아이는 엉덩이가 튜브에 낀 채, 분식집 돈가스 접시만한 구멍을 탈출하지 못하고 바다위에 뒤뚱뒤뚱 오리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완전한 패배였다. 저주였다. 죽음이었다. 처절한 비명이 속안에서 곪아터졌는데도 입 밖으로는 어떤 소리조차 기어 나오지 못했다. 준석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등을 두들기고 부둥켜안고 몰락해 쪼그라든 그녀의 심장을 주물럭거렸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이 정복한 유전자가 완전한 변이를 일으킨 건 준석의 멀쩡하고 건강한 유전자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그녀가 품고 있던 괴물에게 창피를 줬고 자괴감을 주었고 폭주하도록 부추겼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는 등에 땀이 많았고. 여름이면 늘 허옇게 소금 자국을 남겼는데 경희는‘그것’을 꽃으로 불렀다. 경희가 눅눅하고 초라한 늪을 빠져나와 절벽을 기어오를 때 경험했던 그 치열함을 그는 등에서 꽃으로 피우고 있었다. 황홀했고 아름다웠던 그 소금꽃이 이제는 퀴퀴한 땀 냄새가 밴 끈적끈적하고 바싹 말라 갈라진 논두렁같이 역겨웠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그녀는 지옥 같은 석 달의 밤낮을 보내고 회귀열차에 탑승하기로 결정했다.
‘이 열차 곧 터널을 지납니다.’
잡음 섞인 스피커의 음성은 깜깜한 터널 속을 부유하다 금세 사라졌다. 덜컥 거리더니 기차가 움직인다. 열차 내 전등이 소멸됐다가 다시 빛을 발했다.
창밖을 보고 있던 경희는 차가운 손의 감촉을 느꼈다. 준석의 손이다. 다행히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그의 손에 깍지를 낀다. 준석은 치과의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울퉁불퉁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다. 화산 속에서 튀어나와 굴러다니는 현무암처럼 자연스럽다. 경희는 무의식적으로 따라 웃는다.
“이도 중요하지만 잇몸이나 혀, 입천장도 칫솔질 해줘야하거든. 사람들은 칫솔질이라고 하면 치아만 닦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버릇을 어떻게 들이냐가 중요하다니까.”
“좋은 아빠 되겠네.”
준석은 경희의 불거져 나온 만삭의 배를 보며 바보처럼 웃었다. 열차는 곧 그녀를 몰락시킨 그 불운한 유전자의 잔상을 지우며 수목이 푸르게 우거진 숲을 통과하는 중이다. 친정으로 가는 길이다. 출산 직전 엄마를 꼭 보고 싶었다. 고단한 삶이 인이 박힌 그 얼굴에 잠시라도 위안을 주고 싶었다. 기차는 레일을 따라 불안하게 덜컹거렸다. 그러나 그 어떤 굉음도 소음도 곧 담배 연기처럼 사라질 테다. 준석이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떴다. 덜컹 덜컹 소리가 요란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경희는 일본 신혼여행을 떠올렸다.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신주쿠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하코네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프린스 호텔에 짐을 풀고 준석과 시내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두통이 왔다. 지끈거리며 관자놀이가 조였다. 서둘러 근처 파친코에 들어섰다. 좁은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화려한 기계들이 늘어서 있었고 이미 대부분의 좌석에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경희는 무심하게 1엔 파친코 기계에 앉아 구술을 넣고 손잡이를 돌렸다. 구슬이 구멍에 들어가고 세 개의 슬롯에 숫자와 그림이 돌아갔다. 구술을 넣고 손잡이를 돌린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 넘치던 구술은 바닥을 드러냈다. 두통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구술을 재구매해 기계에 넣고 손잡이를 돌린다. 천 엔을 썼다. 이 천 엔을 썼다. 빠져든다. 비가 그친 뒤에도 계획했던 일정은 잊어버린 채 기계에 구술을 넣었다. 시시덕거리며 준석과 경희는 게임에 몰입했다. 그들은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지구에서 우주로 떠났고 모든 잡념은 깨끗이 세탁 되었다.
자정쯤 호텔로 돌아왔다. 슬립 가운을 입고 침대에 앉아 TV를 켰는데 난리도 아니었다. 아나운서는 진도5의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렸고 낡은 화장품 창고는 일부 무너졌으며 전철도 일시 운행 중지 되었다고 다급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경희는 그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귓속 달팽이관에서조차 균형감각을 상실했거나 어쩌면 정말 다른 세계로 아주 짧은 시간동안 순간 이동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다시 머리가 찌근거린다.
하늘이 무너질 듯 비가 내린다. 경희는 열차 밖의 회색빛 풍경이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준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그가 침을 넘긴다. 목젖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우리 돌아가자. 이번 역에서 내려서 반대편 열차타고 서울로 올라가자.”
“갑자기 왜?”
“지금은 기억 못해. 말해도 이해 못하고. 다음 터널이 오기까지 시간이 있어. 그러니까 날 믿고 지금 내리자.”
“엄마는? 엄마 봐야 되는데.”
“다음에 또 오면 되지.”
그가 간절하게 설득했지만 경희는 망설였다. 이번 역에 내리면 ‘뭔가’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치밀어 오른다. 준석의 거뭇하게 자란 수염 자국이 보였다. 오늘 아침에 면도를 했는데도 6시간 만에 이미 거친 피부를 뚫고 올라왔다. 차가운 손도 보인다. 창백하다 못해 붉어진 피부가 빨간 수채 물감을 손바닥에 묻히고 온 벽에 손바닥 도장을 찍고는 천진난만하게 웃는 다섯 살 아이의 어린 손과 같았다. 그는 손이 작고 손가락이 짧았는데, 손톱은 바투 깎아 동전 같이 납작한 물건을 집거나 캔 뚜껑을 따는데 불편해했다.
'손톱을 좀 기르는 건 어때'라고 물으면 그는 손을 아무리 씻어도 손톱 안까지는 씻기 어렵다며 차디찬 손으로 그녀에게 들고 있던 사이다 캔을 내미는 것이다. 경희는 그저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준석은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다시 눈을 감을 뿐이다. 그녀는 내릴 생각이 없다. 열차는 곧 짙은 어둠 속의 터널을 향해 들어선다.
잠시 뒤 열차는 단풍이 만연한 산을 끼며 돌고 있었다. 유난히도 붉고 노란 원색에 가까운 나뭇잎에 경희는 잠시 넋을 놓고 말았다. 매년 지나는 가을이었고. 매번 봄에 이어 여름을 건너 단풍을 지나 겨울을 보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그냥 시간에 따라 지나는 계절이며 풍경일 뿐 어떤 의미라던가 무엇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경희는 그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경이로움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고 몰두했다.
괴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점심시간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시야에 검은 물감이 칠해진 것처럼 부분적으로만 보인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황반변성이라고 했다. 망막과 망막아래에 불필요한 찌꺼기들이 쌓여서 혈액공급을 방해해 황반부를 손상하는 희귀병이라고 했다. 지금의 시력을 유지하거나 변성을 늦추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경희는 눈을 감았다. 답답했다. 눈을 떴다. 보이는데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아름다운 단풍은 매년의 봄처럼 무의미해졌다. 입술이 자꾸 말랐다. 연한 핑크빛 립스틱을 칠했었는데 모두 먹어버렸다. 낡은 흰색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 바른다. 거울에 비춰봤다. 완벽했다. 완벽한 모양으로 빈곳이 없이 빼곡하게 차있다. 립스틱을 가방에 넣으려다 떨어뜨렸다. 자리를 비웠던 옆 좌석의 남자가 립스틱을 주어준다. 남자는 수더분한 외모에 작은 키에 작고 여린 손을 갖고 있었다. 손을 줬다 폈다 반복하고 있다.
“내리자. 부탁이야.”
준석이 경희에게 말했을 때, 경희는 한동안 준석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무례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열차에서 처음 본 남자가 반말로 내리자고 말한다. 게다가 눈가에는 눈물까지 어렸다. 남자가 진심으로 애원하고 있다.
경희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그녀의 발가락이 되어 움직이다 사라진 꼬리가 되고 곧 손을 생성해 피부를 파고들어 심장에 뭉툭하게 자란 그 손톱을 꽂아대는 상상을 했다. 서둘러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가방을 부술 듯 움켜쥐고 있었다. 경희는 준석이 잡은 가방을 당겨 빼 냈다. 칸막이 문을 열고 도망치듯 나갔다. 터질듯이 펌프질하는 심장이 쉬 진정되지 않는다. 다음 열차 칸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준석이 서 있었다. 경희는 신경이 곤두섰다. 다시 문을 닫고 이전 칸으로 돌아왔다. 준석은 그곳에도 서 있었다. 그가 경희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경희는 황반변성이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물은 선명하고 또렷이 보일 뿐이다.
“내가 내려야 된다고 했잖아.”
“…….”
경희는 놀라다 못해 공포에 질려 말문이 막힌다. 그는 얘기를 이어갔다. 그녀가 병원에 누워 있고 그는 내 옆에서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며 삭제된 측두엽의 일부분이 빈공간이 되어 회복되도록 조제된 약물이 내 몸속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오롯이 지워진 뇌 조각에만 남아있지 않는다며 지금이라도 습하고 답답한 병실을 걸어 나가자는 것이었다. 경희는 마른 입술을 혀로 훔친다. 립스틱을 또다시 먹어 버렸다.
“당신 누구에요?”
“나… 몰라?”
그녀는 준석의 붉어진 눈을 본다. 아파 보였다. 그는 자기가 남편이라고 했다.
경희가 고개를 저었다. 준석은 시선을 먼 곳으로 옮겼다.
“지금이라도 내리자,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기억 못하게 돼”
경희는 한동안 그를 보다 말없이 다시 좌석에 앉았다. 눈물이 난다. 이상한 눈물.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었던 것만 같은 바람, 스산하고 후덥지근한 공기, 어둡고 밝은 태양….
기차가 덜컥덜컥 거렸다. 두 사람은 각자 말없이 눈을 훔쳤다. 경희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낙엽이 바람에 날린다.
“그럼, 내 미래를 알겠네요?”
“알지.”
“어땠어요?”
“좋았지.”
“우리 가난했어요?”
“아니. 풍족했어.”
“가족들은 건강하고요?”
“그럼 건강하지. 아버님 황반변성 치료제도 나왔고. 매달 주사 맞아야하지만.”
“다행이네요.”
“다행이야.”
“우리 행복했어요?”
“행복했지.”
“사람들이 욕하지는 않고요?”
“아무도. 다들 부러워했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언제든.”
“입고 싶은 거 다 입고?”
“그럼.”
“근데 왜… 내가 기억을 지워요?”
“…….”
“혹시, 우리 아이 있어요?”
경희는 의심스럽게 준석을 본다. 준석은 그런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아이… 있어. 남자 아이”
“착해요?”
“극성스럽지.”
경희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애들이 다 그렇죠.”
“…….”
“지금 내리면… 만날 수 있어요?”
준석은 경희의 희망을 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석은 열차를 내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열차가 정차한 적은 없었고 ‘터널을 지날 때마다 기억이 소멸되었다’ 정도 밖에는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다. 탈출로가 필요했다. 그들은 ‘필요 없는 역’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두 사람은 무턱대고 열차 칸을 나와 통로에 섰다. 통로에 들어서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비가 거세게 내리고 세상은 온 통 회색빛이다. 열차 칸 안에서 스피커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곧 터널에 도착한다고 말한다. 더는 시간이 없었다. 준석과 경희는 차례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잔디밭이었다. 한참을 구른 뒤 멈췄다. 다친 곳은 없었다. 흠뻑 젖은 몰골로 일어나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털어내는 만큼 흙탕물이 튀겼다. 그들은 철도를 따라 터널로 들어섰다.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높이는 일반 터널의 두 배 이상으로 거의 20m는 되어 보였다. 천장에는 그만큼 거대한 환풍기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일반 터널에 있을 법한 오렌지 빛 전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비가 거센 바깥에 비하면 공기는 탁했지만 아늑했다. 나선형 무늬가 바닥에서 천장까지 돋을새김 되어 있었는데 곧 어마어마한 크기의 총알이 발사돼 두 사람을 휩쓸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쉭쉭 거리는 바람소리도 그러한 상상을 부추겼다. 준석과 경희는 정처 없이 걸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 까. 출구도 입구도 보이지 않는 점이 되어버렸다. 경희는 쓰러지듯 땅에 앉는다.
“괜찮아?”
“괜찮아요. 발뒤축이 까졌어요. 새 구두라서 발에 맞지를 않네요. 지금은 헌 구두 됐지만.”
경희는 신발을 벗어 바닥으로 탁탁 쳤다. 진흙물이 주르르 흐른다. 그러더니 뒤축을 꾸겨 신고는 일어섰다. 그때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일었다. 준석이 주변을 살펴본다. 경희가 손가락으로 천장의 전등을 가리키고 있다. 깜빡 깜빡 불빛이 흐려지고 있다. 한 참을 걷는다, 걷고 또 걷는데 불이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다. 준석은 주머니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라이터를 꺼내 켰다. 경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준석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라이터도 곧 꺼졌다. 그들은 벽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갔다. 돌이나 철로에 걸려 수차례 넘어졌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더듬더듬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때 준석의 손에 차가운 손잡이가 걸렸다. 철문이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접이문경첩이 녹이 슬어 움직이지 않았다. 준석이 어깨로 문을 밀쳤다. 경희와 합세해 밀자 그때서야 기괴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터널갱이다.
벽을 쓸어 스위치를 찾았다. 불을 켰다. 곧 사그라질 것 같은 자색 불빛이 마치 난롯불을 켜놓은 듯하다. 20평되는 정방형의 공간에 한 200미터는 되어 보이는 천장까지 철제 계단이 지그재그로 놓여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계단을 올랐다. 공기는 서늘했고, 젖은 옷은 몸에 달라붙어 걸음을 올릴 때 마다 마찰음을 냈다. 그들은 지치고 피곤했다.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발소리만 엇박자로 공동을 울린다. 하나의 소리가 멀어지면 또 하나의 소리가 이어진다. 누군가 천장 끝에서 천천히 북을 치고 있는 듯하다.
한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꼭대기에는 ‘ㄷ’자 사다리가 벽에 박혀있었고 천장에는 남자 어깨가 간신히 빠져나갈만한 해치가 달려있었다. 손잡이를 돌려서 해치를 열고 준석이 먼저 올랐다. 손을 내밀어 경희를 끌어당겼다.
그들이 올라온 곳은 지하철로 옆의 한 평 남짓한 네모난 공간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걷다보니 희미하게 형광등 불빛이 어른 거렸다. 준석은 허리를 굽혀 숨을 내쉬는 경희를 기다린다. 곧 두 사람은 불빛을 향해 걸었다.
낡고 방치된 지하철역이었다. ‘신설동 11-3’이라고 적혀 있다.
“이런 역이 있어요?”
“그러게. 그래도 신설동에 있다는 얘기니까. 길이 있겠지.”
“애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집에 있어.”
“내가 알아 볼 수 있을까요?”
“그럼, 자기 자식인데.”
준석이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굵고 낮은 음성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돌아보자, 역무원이 서 있었다. 명찰에는 이진수라고 적혀있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 오셨어요. 폐쇄된 역인데.”
준석이 화제를 돌릴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더 그가 반가웠다. 경희는 그런 준석의 시선을 따라 역무원을 본다. 낯이 익었다. 그녀가 처음 열차를 탔던 역장과 동일한 인물이었다. 진수는 라미네이트를 한 흰 치아를 보이며 웃는다.
“얘기가 길어요.”
“그래요? 그럼 표부터 검사할게요.”
“표요?”
“없어요? 무임승차 하셨네. 이거 곤란한데. 요금의 30배 지불 하셔야 합니다. 어디서 타셨는지요?”
“저희는 걸어서. 그리고 폐쇄된 역이라면서요.”
“아. 내 정신 좀 봐. 그렇죠. 폐쇄됐죠. 오랜만에 손님이 오니까 반가워서 그만 깜빡 했네요.”
그러더니 그는 시간을 죽이게 되어 기쁘다는 듯이 역사 설명에 몰두했다. 서울 지하철 개통 당시에 이 역이 임시 차량정비 공간으로 쓰이다가 5호선 역사 개발이 무산되면서 계획이 수정됐고, 결국 폐쇄됐다는 것이다.
“맞다. 요금은 안 내셔도 됩니다.”
그는 한꺼번에 많은 말을 쏟아냈고, 준석과 경희는 일일이 맞장구쳐 줄 기력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지상으로 나갈 수 있어요?”
“저쪽 출구로 올라가면 2호선 신설동역으로 갈 수 있죠.”
그는 자주색 철문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그럼.”
준석과 경희가 출구 쪽으로 가려고 하자 진수가 부른다.
“나갈 준비는 됐어요? 경희씨.”
“네? 제 이름을 어떻게…”
그는 옆구리에 낀 차트를 툭툭 두들겨보인다.
“여기 다 기록되어 있죠. 뭐 이름은 중요한 건 아니고. 나가서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을 까요? 물론 준석씨가 경희씨 기억을 잃지 않도록 조언해 줄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경희씨 몫이죠.”
“저는 어쨌든 밖에 나가야 돼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누구요? 아이? 이런……, 거짓말은 최악인데.”
“네?”
“남편이 거짓말 했다고요.”
경희가 준석을 쳐다본다. 준석은 물에 젖은 구두코만 바라 볼 뿐이다.
“무슨 소리예요?”
“…….”
“애는 죽었어요. 바닷가에서 놀다가 이안류에 휩쓸려서 익사했어요.” 진수가 말한다.
“아니야. 안 죽었어!” 준석이 소리 지른다.
“그래서 당신은 회귀 열차에 탑승했고, 무단이탈 했죠.”
“자기야. 저 사람 말 믿지 마. 다 거짓말이니까. 듣지 마! 아니야”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죠. 어차피 끝 난 일 아닙니까?”
경희가 털썩 주저앉는다. 준석은 할 말을 잃었다. 천장에서 먼지가 흩날렸다. 그러자 곧 두 사람이 탔던 회귀열차가 역내로 들어섰다. 끼익 제동이 걸리더니 문이 열렸다. 빛이 쏟아진다. 역무원은 준석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러게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거 아닙니다. 본인의 기억을 지우겠다는데... 열차 기다리게 하지 말고 승차하세요. 경희씨. 모든 고통을 싹 지워 드릴 테니까. 망설이지 마시고. 경…경희씨?”
진수가 보면 경희는 비틀대며 일어나 2호선역으로 오르는 문고리를 잡고 있다.
“그 문 열면 안돼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우면 됩니다. 그러면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어요. 다시 살 수 있다고. 경희씨, 경희씨!”
준석이 따라 나갔고 자주색 문이 쿵하니 닫힌다. 11-3 신설동역은 낡고 자욱한 먼지만 흩날렸다. 열차도 없고, 역무원도 없다. 애초부터 텅 빈 역이였다.
자주색 철문을 열고 2호선 역으로 나왔다. 역내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그 중 몇몇은 준석과 경희의 비에 젖은 몰골을 보고는 눈길을 주기도 했지만 이윽고 핸드폰을 보는데 집중했다. 두 사람은 노랑, 빨강, 녹색으로 칠해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경희는 한동안 눈을 감더니 마른입을 뗀다.
“…어렸을 때 친구집 정원에 연못이 있었는데... 비단 잉어를 키웠거든. 어른 슬리퍼를 신고 먹이 주겠다고 사료를 뿌리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물에 빠진 거야. 깊지 않아서 일어서면 얼마든지 걸어 나올 수 있었는데 나올 수 없었어. 비단 잉어들이 사료 범벅이 된 내 몸을 쪼아대고 있었거든.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바윗돌을 잡고 어찌어찌 기어 올라왔던 것 같아... 울면서 집에 뛰어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는 거야. 정말 다행이지 싶더라. 정성들여 몸 구석구석을 씻고, 젖은 옷은 빨아서 빨랫줄에 널고 숙제를 했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준석이 손으로 얼굴을 비빈다.
“ 그런데 잊혀 지지 않더라고. 잉어의 붉은 색깔과 뻐끔대는 두툼한 입술과 미끈한 감촉. 펄떡대는 그 느낌. 아마도 친구 아빠는 돌아갈 때 과자를 사먹으라고 천원짜리 몇 장을 쥐어줬던 것 같아. 전과 다르지 않다고 속으로 되뇌였지만 연못에 가기 전의 나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는 걸 알았어. 그렇잖아. 어떻게 잊어. 잊을 수가 없지. 그래서 열차에 탔을 거야. 같은 이유겠지. 단지 더 고통스럽고 더 힘들어서… 그래서 당신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 우리 같은 실수 반복하지 말자.”
“…….”
“잘 있어. 잘 살고.”
준석은 의자에 앉은 채 허리를 굽혔다. 흐느낀다. 경희는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하나, 둘 천천히 계단을 누르듯 밟고 오른다. 계단 꼭대기에 도달했다. 그때 ‘끼이익’ 열차가 급정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생각에 계단을 뛰어 내려간 경희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스크린 도어가 반쯤 열려 있었고, 전차는 승강장 반쯤 들어선 채 멈춰 있다. 준석이 앉았던 플라스틱 의자는 텅 비어있었다. 그대로 털썩 앉은 경희는 목이 따끔거렸다. 소리가 속 깊은 곳에 터져 나온다. 처참한 비명 소리가 역내를 가득 메웠다.
그때 열린 스크린 도어 아래서 혼절한, 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를 누군가 올리고 있다. 준석이다.스크린 도어 오작동으로 선로로 떨어진 아이를 준석이 구하려고 뛰어들었고, 사람들이 열차를 가까스로 세웠던 것이다. 경희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 준석의 등이 펑 젖었다. 마른 옷에 젖은 땀이 또 젖었다. 소금꽃이다. 하얗게 핀 소금꽃이다.
***
날이 어두워졌다. 저녁 식사 때문이지 카페에는 몇몇 사람들만 남아있었다.
서현은 넋을 놓고 텅 빈 유리잔을 바라본다. 유령이라도 본 듯 했다.
“어때요? 불가사의하죠.”
“좋은데요. 궁금하기도 하고.”
서현은 모자챙을 조금 들어올렸다.
“죄송한데 지금 뭐라고 하셨죠?”
“궁금하다고요. 두 사람이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요.”
서현은 다시 눈빛을 숨긴다.
“뒷얘기는 잘 모르겠네요. 경희와는 연락이 두절 돼서... 지금 몇 시쯤 됐죠?”
“7시 10분전이에요.”
“그만 일어나봐야겠네요. 그럼.”
그녀가 떠나자마자 그녀와 그녀의 얘기가 머릿속에서 하나로 꿰매졌다. 나는 혹시나 그녀를 놓칠까봐 뛰어 나갔고 반대편 교차로에서 서 있는 그녀를 찾아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발끝만 보고 있다. 나는 큰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저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저는요! 제 생각에는 요! 경희가 준석과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열차를 타고 이번에는 미래로 가는 겁니다. 어렵겠지만 두렵겠지만 무섭기도 하겠지만… 분명히, 분명히……”
그녀가 웃었다. 야구 모자를 벗는다. 그녀는 서현이자 경희이다. 그녀는 불가사의한 사고를 넘어 열차를 탄다. 불안하지만 희망을 실은 열차를 탄다. 소금꽃이 핀 열차를 탄다. 그녀가 웃는다. 손을 흔든다. 그리고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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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23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소설부문 허원 씨의 「빈 역」을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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