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제8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by korean posted Dec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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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8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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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8차를 맞았다. 이번 제8차 공모는 이전 공모에 비해 작품 편수는 조금 늘었다 하나, 작품의 수준은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이다. 다음 기회에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응모자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창작콘테스트> 제8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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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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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돌고래의 생존법
양서현

 
     1
 
 이 문제의 답은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다급한 목소리들이 혜선의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혜선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왜 지금 자신이 언제 한 번 봤었던 다큐멘터리 속 돌고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눈앞이 안보였을 때부터 돌고래의 울음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아니 울음소리보다는 비명에 가까웠다. 주파수를 넘나드는 높은 소리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처절했다. 혜선은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연필을 쥔 손이 허공을 휘휘 저어댄다. 혜선은 눈을 뜨고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 혜선의 눈은 초점을 잃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같이 움직인다. 지금 눈앞은 복잡한 수학 문제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손에 쥐어진 잘 깎인 연필은 막힘없이 문제 밑에 식을 써내려 간다. 시야를 꽉 채운 수학 문제 아래에 규칙적으로 수식이 늘어서 있다. 하나, 둘, 셋. 딱 삼초다. 풀어놓은 문제가 채점되기까지 시간은 딱 삼초가 걸린다. 문제에 커다랗게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다. 이 문제는 통과다. 눈 바로 앞에 서 있던 문제가 사라진다. 문제가 사라지자마자 잠시 시야가 트인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다시 다른 문제가 그 자리를 메꾼다. 혜선의 팔은 움직임이 정확하다. 딱, 딱, 각을 맞춰서 팔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을 따라 이번엔 왼쪽 눈앞에 있는 문제 아래에 식이 적힌다.
 
  1번 강혜선 나와.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 시간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안타깝게도 혜선은 1번이다. 이럴 때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강’이라는 성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손바닥에 A4 용지 한 장이 놓인다. 종이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가벼웠지만 돌덩이를 든 것처럼 무겁게만 느껴진다.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았지만 아직도 그 거대한 무게는 손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교실은 숨이 막힐 듯 고요하다. 그 고요한 분위기가 혜선은 너무도 차갑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덜덜 떨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혜선은 손가락으로 칸을 짚어가며 성적표를 내려다본다. 국어 등급 1, 영어 등급 1, 수학 등급 2, 한국 지리 등급 2, 사회 문화 등급 1. 대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혜선의 얼굴은 그늘이 진 듯 어두울 뿐이다. 굳은살이 배긴 손가락은 ‘2’라는 숫자가 새겨진 칸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벌써 몇 번째인지 저 두 과목만은 절대로 ‘1’로 바뀌지 않았다. 입술에서 알싸한 맛이 느껴진다. 혜선은 그제야 꽉 깨물고 있던 입술에서 피가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아챈다. 책상에는 너덜너덜해진 교과서들이 반듯하게 쌓여져 있다. 교과서의 매끄러운 듯 꺼끌꺼끌한 감촉이 혜선의 손을 휘감는다.
  혜선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확 든다. 눈앞에 한 영상이 떠오른다. 이틀 전 야간자율시간에 반 애들이 서로 속닥거리던 모습이다. 애들은 조용한 교실 분위긴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책상에 모여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약이라고 이름이 모다피넬, 모다피닐인가? 아무튼 뭐 그런 약이 있대. 돌고래들이 하는 뇌의 절반은 자고 나머지 절반은 깨어 있는 수면 방법을 이용해서 만든 거라는데 그거 먹으면 잠을 안잘 수 있대.
  진짜? 그것만 있으면 성적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그거 우리나라에서도 구할 수 있는 거래?
  내가 알기론 아마 구할 수 있을 거야. 근데 그거 안 구하는 게 좋을 걸? 효과는 좋은데 부작용이 장난 아니래. 정신 착란에 자살 충동, 조증 증상 이런 거 말고도 더 많이 있던데.
  뭐야, 그럼 있어봤자 필요가 없네. 부작용이 그렇게 심하다는데 그런 걸 누가 사? 무서워서라도 못 사겠다.
 
  혜선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무리 급하다지만 아무래도 그건 안 될 것 같다. 혜선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핀다.

 
     2
 
  온통 까만 공간에서 네모나게 각진 작은 불빛 하나만 새어나온다. 혜선은 컴퓨터 화면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다. 화면 속 검색창에는 ‘공부 잘하는 약’ 이라는 글씨가 입력되어 있다. 컴퓨터 옆에는 흰 바탕에 초록색 칸들이 새겨져 있는 종이가 놓여 있다. 6월 모의고사 성적표, 라고 적힌 종이의 칸들에는 중간고사 성적표에 새겨져 있는 숫자들과 똑같은 숫자들이 적혀 있다. 종이는 마우스를 잡고 있는 혜선의 손 바로 옆에 있어 살짝만 움직여도 차가운 촉감이 닿는다. 시선은 이제 온전히 화면에 박혀버린다.

 제품명: 모다피닐(Modafinil)
 가격: 114, 060원(기준 한 통당 30정)
 주의사항 1. 반드시 하루에 한 알 이상은 복용하지 않아야 한다.
              2. 약간의 부작용 증세가 보일 시 즉시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3. 기면증 치료가 아닌 다른 용도로는 복용을 삼가야 한다.
 부작용: 다음 제품에는 이 같은 부작용들이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피부발진, 혈관부종, 다기관 과민반응, 불안, 자살 충동, 정신 착란 등
 
  마우스는 결제 버튼을 가리키고 있다. 부작용 부분을 읽는 혜선의 눈이 조금씩 흔들린다. 혜선은 손을 쥐었다 편다. 얼마나 그걸 반복했는지 손바닥에는 땀으로 흥건하다. 진짜 부작용이 생기면 어쩌지. 거의 대부분은 다 부작용 발생한다던데. 혜선은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혜선의 머릿속은 작은 공간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다. 귀에 선명히 들려올 정도로 심장 소리는 커져 있었고 뛰는 속도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빨라져 있었다. 순간 중간고사 성적표 등급 칸과 모의고사 성적표 등급 칸이 겹쳐져 혜선의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땀으로 흠뻑 젖은 손이 마우스를 잡는다. 혜선은 눈을 꾹 감고 마우스를 누른다. 조심스레 눈이 떴을 때에는 화면에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창이 떠 있었다.
 

     3
 
  손바닥에는 작은 하얀색의 알약 하나가 놓여 있다. 식탁 위에는 겉면에 ‘Modafinil’ 이라고 적혀 있는 작은 원통이 있다. 혜선은 그 알약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한다. 이미 산 거 먹기는 해야겠지? 근데 진짜 부작용 생기면......, 입술을 깨물었다가 다시 놓는다. 거금을 들여서 산거라 먹기는 해야 될 것 같은데 쉽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걸 먹고 공부를 잘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부작용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정신 착란, 불안, 자살 충동. 솔직히 말하자면 저 세 가지가 제일 신경 쓰인다. 많은 부작용 중에 특히나 저 세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막막하기만 하다.
  혜선은 꽉 주먹을 쥔다. 단단한 약 알맹이는 부서지지 않는다. 온전히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알약을 보고 있으니 절로 한숨이 새어나온다. 어차피 먹기는 해야 되는 거니 혜선은 눈을 질끈 감고 입안에 약을 털어 넣는다. 뒤이어 넘어가는 물 한 모금에 입안을 맴돌던 알약이 완전히 식도를 넘어간다. 혜선은 잠시 몽롱해지는 느낌에 머리를 흔든다. 감았던 눈을 뜨자 잠시 흐릿하던 시야가 퍼즐이 맞춰지듯이 다시 뚜렷해진다.
  지끈거리는 느낌에 머리를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살짝 누른다. 혜선은 여느 때와 같이 책상에 수학 문제집을 펴놓는다. 성적표를 받고 나서부터 혜선은 쭉 수학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이걸 먹었다고 정말 집중이 잘 될까. 정말 성적이 오를까.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서 충동적으로 구입하긴 했지만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혜선은 특히나 수학에는 집중을 하질 못했다. 계속해서 집중이 안 되는 탓에 몇 번 연필을 집어던지기도 일쑤였다. 혜선은 기지개를 한 번 피고는 연필을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은 정적만이 가득하다.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만이 방안을 채운다. 바깥은 어둑해진지 오래건만 혜선의 눈에는 졸린 기색 하나 없다. 혜선은 새벽에 눈을 뜬 것처럼 머리가 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연필의 움직임이 아까보다 빨라져 있다. 벌써 10페이지 째 풀고 있는 중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다섯 페이지가 최대였는데 오늘은 쭉쭉 잘 풀린다. 문제 아래는 전부 수식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어서 빈 틈 하나 찾아보기가 어렵다. 연필을 놓지 않는 혜선의 눈이 반짝인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던지라 혜선은 잔뜩 신이 나 있다. 이대로라면 오늘 안에 이 문제집을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책꽂이 한 켠에는 아직 풀지 않은 문제집이 두 권 정도가 있다. 혜선은 마음이 급해진다. 어서 풀고 있는 문제집을 다 끝내고 빨리 다른 문제집들도 풀고 싶었다. 연필의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었다. 시계 초침은 점점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다.
 

     4
 
  모의고사 날은 시간이 느리게 갔다. 아이들은 전부 다 앞문만을 바라보고 있다. 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자 아이들의 시선이 담임선생님의 동선을 따라간다. 답지를 각 분단에 내려놓자 아이들은 빨리 넘기라고 앞자리에 앉은 애들을 재촉한다. 답지를 보는 혜선의 눈은 티가 나도 너무 날 정도로 심하게 흔들린다. 채점이 다 끝난 국어 시험지가 맨 밑으로 밀려나고 맨 위에는 수학 시험지가 놓인다.
  일 번을 가리키는 숫자 ‘1’ 위에 떠 있는 빨간 색연필을 쥔 손이 수전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부들부들 떨린다. 1번에 4번, 정답. 2번에 1번, 정답. 시험지에 붉은 동그라미가 하나하나 그려진다. 약은 진짜로 효과가 있긴 있는 것 같았다. 혜선의 입 꼬리가 조금씩 올라간다. 이러다 다 맞는 건 아닌지 기대치는 점점 높아져 간다. 마지막 장까지 넘어갔던 시험지는 다시 첫 장으로 돌아온다.
  수학이라고 굵게 쓰인 글씨 옆에 붉은 글씨로 ‘98’이라는 숫자가 써진다. 틀린 한 문제는 문제를 잘 못 봐서 틀린 문제다. 충분히 높은 점수지만 그래도 아쉽기는 하다. 난생 처음으로 수학을 백점 맞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날아가 버리니. 반 애들이 들으면 욕을 몇 번 하고도 남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계속 남았다. 그래도 이대로라면 다음에는 충분히 백점을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혜선은 숫자가 앞으로 보이게 시험지를 접어 가방에 넣는다.
  하얀 알맹이는 처음보다는 수월하게 식도를 넘어간다. 머리가 싸해지는 느낌은 이제 낯설지 않다. 혜선은 약통의 뚜껑을 닫고 다시 책상에 앉는다. 펼친 문제집은 벌써 두 권을 다 풀고 꺼낸 세 번째 수학 문제집이다. 혜선은 앞의 요약정리도 보지 않고 바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딱 1분 정도가 지나면 문제 풀이 하나가 끝난다. 소설책을 넘기듯이 문제집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해는 벌써 저편으로 진 지 오래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를 푸는 손놀림은 점점 빨라져 간다. 위로 흘러들어간 약은 위액에 녹아 서서히 혜선에게 스며들고 있다. 이 시간 때쯤이면 눈이 서서히 감겨 와야 하는데 오히려 더욱 머리가 맑아진다. 약의 성분이 뇌에 침투한 듯 하다. 바깥 풍경이 불을 켜 놓은 방과 똑같아질 때까지 혜선은 책상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5
 
  혜선의 눈 밑은 거뭇거뭇하다. 벌써 일주일 째 밤을 샌 상태다. 이제는 멀리서도 다크 서클이 보일 정도로 눈 아래는 까매져 있다. 펜을 그대로 놓고 책상에 얼굴을 파묻는다. 눈을 감아보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잠은 오지 않는다. 눈을 더 질끈 감아본다. 그래도 정신은 여전히 멀쩡히 깨어 있다. 혜선은 조금씩 미쳐갈 것만 같다. 딱 한 시간만이라도. 아니, 딱 삼십분이라도 잠들 수 있다면 그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정말 잠시라도 좋으니 잠들고 싶었다.
  텔레비전을 킨다. 잠은 못 잘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계속 문제집만 보고 있기는 싫었다. 아직 텔레비전에서는 예능 프로 같은 게 방영되고 있지 않았다. 화면에서는 푸른 배경이 펼쳐져 있다. 다큐멘터리인 듯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돌고래들의 모습이 화면에 가득 찬다. 돌고래들은 서로 모여 물 표면에 가깝게 헤엄치다가 수면 위로 뛰어 오른다. 혜선은 질서정연하게 수면 위로 뛰어 오르는 돌고래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한 다섯 번 정도 뛰던 돌고래들은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시속 60km를 넘나드는 탁월한 수영 솜씨를 가진 돌고래는 최대 8분 간, 280m까지 잠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8분 이내에 수면으로 올라와 숨을 쉬지 않으면 익사하지요. 돌고래는 평균 3분에 한 번씩 호흡하며 충분히 잠을 자야하고 숨도 쉬어야 하는 생존의 딜레마를 매일 겪습니다. 그런 돌고래가 선택한 게 바로 반구수면이지요. 반구수면은 뇌의 절반만 자고 나머지 절반은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수면법입니다. 그래서 돌고래는 자면서도 주변을 경계하고 헤엄치고 숨을 쉬는 일상생활이 가능하지요.
 
 나긋나긋한 내레이션의 설명이 혜선의 귀에 박힌다. 생각해 보니 모다피닐은 바로 저 돌고래의 반구수면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약이었다. 나는 지금 돌고래가 되어 가고 있는 건가.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을 덮는다. 돌고래는 잠을 자면서도 헤엄을 치고 숨을 쉰다지만 혜선은 잠을 전혀 잘 수가 없었다. 어쩌면 머릿속은 이미 검푸른 심해로 변해버려 강한 수압에 뇌가 눌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돌고래가 생존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면 나는 수면의 딜레마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 혜선은 하얀 알맹이가 이미 지나갔을 목울대를 만져본다. 이미 저만치 내려가 있는 알맹이는 몸속에서 수면이라는 세포를 녹이고 있었다. 아니 이미 다 녹였을 지도 몰랐다. 회색빛의 매끈한 몸통을 자랑하는 돌고래의 모습은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다.
 

     6
 
  혜선은 잠시 이마를 문제집에 대고 꾹 누른다. 머리가 어지러운 탓이었다. 약을 복용한 지 어느덧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효과가 떨어지기라도 하는 건지 약을 복용할수록 두통이 심해졌다. 복용 초기와는 확실히 약을 먹었을 때의 느낌이 달랐다. 머리가 맑아지기는커녕 어지러울 뿐이었다. 심해 깊숙이에 숨어 있던 성분이 점점 수면으로 올라오나 보다. 혜선은 문제집에 파묻었던 고개를 조심히 든다. 머리가 띵해지는 게 잠시 주위 풍경이 모두 엉켜 보인다.
  눈을 감고 삼십초를 센다. 이십팔, 이십구..., 삼십. 눈을 뜨자 시야는 온통 수학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혜선은 영문을 몰랐다.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떠보지만 마찬가지다. 혜선은 지금 자기가 눈을 뜨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문제집에 있던 문제들이 갑자기 살아 움직여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환영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혜선 자신이 뇌가 가라앉은 바다 속에 빠진 듯 했다. 환영이라면 곧 사라져야 하는 게 정상일 터인데 눈앞의 문제들은 도저히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 제품에는 이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피부발진, 혈관부종, 다기관 과민반응, 불안, 자살 충동, 정신 착란 등
 
  주문하기 전 모다피닐 설명서에 있던 부작용 안내 부분의 설명이 문득 생각난다. 이것도 부작용의 일종인가. 혜선은 순간적으로 몸이 떨려오는 듯 했다. 만약 이게 부작용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사라지기는 하는 걸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누비고 다녀 정신이 산만하다. 잠수병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뇌가 너무 오랫동안 심해에 머물러 있어서 더 이상 수면으로 올라올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들을 없애려고 허공에 팔을 휘저어 보아도, 고개를 마구 흔들어보아도 문제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한숨을 깊게 내쉬며 고개를 숙인다. 바닥까지 따라오는 문제들의 모습에 이제는 기가 찰 지경이다. 양손으로 얼굴을 박박 문지른다. 손을 떼면 여전히 앞을 채우고 있는 문제들이 보인다. 턱을 괸 채 시야를 빽빽하게 가린 문제들을 보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없애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혜선은 손에 쥔 연필을 한 바퀴 두 바퀴 연신 돌린다.
  혜선의 손이 잠시 멈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연필을 들어 문제 아래에 갖다 댄다. 문제 아래에 까만 점 하나가 생긴다. 혜선은 그대로 그 문제의 풀이를 적는다. 답이 나오자 혜선의 눈 바로 앞에 있던 문제가 서서히 사라진다. 문제가 사라진 칸에 여백이 생기고 자그마한 공간으로 바로 맞은편에 있던 의자가 보인다. 이렇게만 하면 이 문제들을 다 없앨 수 있는 건가. 혜선은 일말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잔뜩 신이 난 나머지 훨씬 빨라진 속도로 문제들을 막힘없이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 속도에 맞춰 문제들은 하나 둘 없어져 간다.
  어느새 시야는 환하게 트여 있다. 혜선의 얼굴은 곧바로 밝아진다. 그것도 잠시, 문제들은 다시 생겨나 시야를 채워나간다. 연필을 쥔 손에 힘이 가득 실린다. 계속 이대로라면 실명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연필이 부러질 듯 꽉 쥔 손이 경련이 생긴 듯 쉴 새 없이 떨린다. 그래도 아예 아무것도 안보고 사는 것보다야 잠시라도 볼 수 있는 게 낫겠지. 혜선은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연필을 든다.
 

     7
 
  혜선은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걸 넘어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혜선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집인지 학교인지 아니면 밖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저 애 왜 저래? 좀 이상한 사람 같지 않아? 무서워, 빨리 가자. 지나가는 사람들은 말없어 걸어가고 있는 혜선을 보며 수군댄다. 혜선은 그 수군거리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아무리 애를 써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문제만 풀 뿐이다. 혜선의 손에는 연필이 아닌 문구용 칼이 들려 있다. 하지만 혜선에게선 손에 들려 있는 건 연필이다. 혜선의 손이 허공을 휘휘 저어댄다. 눈을 뜨고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은 초점을 잃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같이 움직인다.
  눈앞은 복잡한 수학 문제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손에 쥐어진 잘 깎인 연필은 막힘없이 문제 밑에 식을 써내려 간다. 시야를 꽉 채운 수학 문제 아래에 규칙적으로 수식이 늘어서 있다. 하나, 둘, 셋. 딱 삼초다. 풀어놓은 문제가 채점되기까지 시간은 딱 삼초가 걸린다. 문제에 커다랗게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다. 이 문제는 통과다. 눈 바로 앞에 서 있던 문제가 사라진다.
  잠시 시야가 트인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다시 다른 문제가 그 자리를 메꾼다. 혜선의 팔은 움직임이 정확하다. 딱, 딱, 각을 맞춰서 팔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을 따라 이번엔 오른쪽 눈앞에 있는 문제 아래에 식이 적힌다. 사람들은 혜선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혜선은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지도 못한 채 수식만 빼곡히 써내려 간다. 그러면서도 혜선의 발은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그게 혜선의 의지로 움직이는 건지는 자신도 모르고 있다. 계속 문제를 풀어가던 혜선이 잠시 멈춰 선다.
  인간의 목소리보다 몇 배는 더 높다는 돌고래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유독 그 소리만큼은 귀에 쏙 들어왔다. 왜 이 소리에 멈춰 선지는 모르겠으나 혜선은 왠지 이 울음소리가 처절하게 들린다. 제대로 수면 밖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낑낑거리는 돌고래가 보이는 듯 했다. 사라지지 않은 수학 문제들이 돌고래의 회색 몸통 곳곳에 새겨져 있다. 왠지 그 문제들이 돌고래를 묶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돌고래는 당장 수면 밖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는 듯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돌고래의 울음소리가 한층 더 커진다. 그 울음소리에 이제는 가슴이 다 먹먹해진다. 혜선은 할 수만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돌고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주고 싶었다. 저러다 익사하는 건 아닐까. 돌고래는 8분 이내에 수면 밖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익사한다던데. 별의 별 생각들이 혜선을 옭아맨다. 방금까지는 멍하니 문제만 풀고 있다가 지금은 잠시라도 제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혜선은 돌고래에게로 손을 뻗다 다시 내린다. 왠지 돌고래에게 손을 뻗고 싶었지만 뻗을 수가 없었다. 저 돌고래에게서 뭔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지만 다가가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돌고래를 외면하고 돌아서는 건 더 힘들었다. 왠지 그 안에 같이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혜선은 잠시 돌아왔던 정신이 점점 다시 침식되어 가는 걸 느꼈다.
  누군가 잡아서 끌어당기는 것처럼 정신이 점차 검푸른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왠지 이대로 끌려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미 진이 다 빠져 거부할 수는 없었다. 혜선의 모든 세포는 이미 짠 바다 냄새가 배겨 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눈을 떴을 때 이미 그걸 인식했다. 그래서인지 더 몸에 힘을 뺐는지도 모른다. 상식을 벗어난 일이지만 혜선은 자신이 잠수병 걸린 돌고래라는 걸 알아챘다. 수압에 묶여 버린 돌고래는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없다. 고로 숨을 쉴 수가 없다.
  혜선은 녹아내린 성분이 숨구멍을 틀어막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잠시 정신을 잡았을 때 숨이 조여오는 걸 느꼈기 때문일 거다. 침식되어 있을 때는 모든 세포가 잠들어서 느끼지 못할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을 잘 수 없다면 잠을 잔 것처럼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게 차라리 나을 듯 했다. 돌고래가 하염없이 울다가 제풀에 지쳐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완전히 다시 침식 상태로 돌아갔을 때 문제들은 여전히 혜선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8
 
  그러니까 정확히 세 시간 전에 혜선은 이곳으로 끌려왔다. 왜 끌려왔는지는 모르겠다.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어렴풋이 들리는 대화 소리로 봐서는 경찰서인 것 같았다. 그 돌고래가 가라앉은 이후로는 앞은 계속 안보였지만 조금씩 소리는 들렸다. 세 시간 전에 혜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문제를 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문제들은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는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졌다. 그러니까 아무리 문제를 풀어봤자 제대로 앞을 볼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적게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에 오기 전에 혜선은 어딘지 모를 곳에서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곳이 확실히 집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분명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자신이 왜 여기에 끌려왔는지 도통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여자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혜선을 보고 있는 여자의 눈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구석진 골목이라 여자는 곧 막다른 길에 봉착했다. 어느새 거의 여자의 코앞까지 온 혜선은 눈에 초점이 없었고 무언가를 적는 듯 허공에 팔을 휘젓고 있었다. 여자의 침 삼키는 소리가 적막한 골목에 새겨졌다. 혜선의 얼굴에만 머물러 있던 여자의 시선이 혜선의 팔로 서서히 옮겨 갔다. 두려움이 가득 묻어 있는 그 시선이 혜선의 손에 다다랐을 때 여자는 번뜩이는 칼날을 볼 수 있었다. 칼은 작았지만 그 회색빛 살기는 여자를 충분히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었다. 팔이 높게 들렸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현란한 불빛과 함께 사이렌 소리가 골목에 퍼졌다. 차에서 내린 건장한 사내 두 명이 골목으로 급하게 뛰어 와 혜선의 양 팔목을 잡았다. 팔목에 은색 수갑이 채워졌고 시린 느낌에 잠시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사내들은 혜선을 우악스럽게 끌고 가 차에 태웠다. 혜선은 그때까지도 눈앞을 가린 문제들 때문에 미쳐갈 지경이었다. 돌고래가 가라앉은 이후로 이제 정신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차에 태워지자마자 허벅지에 닿는 푹신한 느낌에 잠시 눈을 감았다. 잠을 잘 수 없다는 건 이미 각인된 지 오래여서 그다지 잠을 자려고 눈을 감은 건 아니었다. 다만 잠깐이라도 눈앞을 채운 문제들을 잊고 싶었다. 다시 눈을 뜰 때까지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사내 둘은 혜선을 의자에 앉히고 맞은편에 앉았다. 혜선은 자신을 데려온 게 누군지 몰랐고 지금 앉아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다만 일분이라도 잘 수 있다면 자고 싶었다. 잘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미쳐갈 것 같은 거겠지만 그래도 자고 싶은 건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눈을 뜨기 싫었지만 떠야할 것 같아서 떴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제는 자신의 키만큼 문제가 쌓여갈 것 같았다. 이제는 앞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팔은 저절로 움직여 눈앞의 문제를 풀었다. 쾅, 하는 소리에 놀라 혜선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앞에는 사내 두 명이 있었지만 빽빽하게 자리를 잡은 문제들만 보일 뿐이다. 몸뚱이가 가라앉은 물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끔찍할 정도로 고요한 그 공간에는 오로지 혜선만 있었다. 적어도 혜선은 그렇게 느꼈다. 혜선은 다시 기계적으로 팔을 들어올린다. 문제를 풀려 하는데 사내가 팔을 잡는다.
 
  “남자 세 명과 여자 두 명. 이 다섯 명 전부 다 너랑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었어. 너한테 원한 살 일도 없는데다가 모든 면에서 너랑은 눈곱만큼도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그런데 이 사람들을 대체 왜 죽인 거지?”
 
  혜선은 사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을 죽였다니 누가? 내가? 도통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정신이 돌아왔다가 다시 가라앉았다가 하는 통에 모든 것이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는다. 혜선은 고개를 조금 들어 사내가 있을 법한 곳을 보았다. 그래도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문제들만 보일 뿐이었다. 혜선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문제들이 거슬린다. 눈앞의 문제들을 지울 수 없다면 지우개로 자신의 눈을 벅벅 지워서라도 저 문제들을 안보고 싶다. 당장이라도 이 문제들을 풀어 없애고 싶었지만 사내의 힘이 너무 세 잡힌 손을 움직일 수가 없다.
  혜선은 문득 가라앉은 돌고래가 생각났다. 돌고래가 선택한 반구수면. 혜선은 그 반구수면을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했다. 잠시 기다려줬던 수압은 혜선이 완전한 돌고래가 아니라는 걸 알아채자마자 혜선을 꾹 짓눌렀다. 혜선은 한 손으로 목을 잡고 쓸어내렸다. 켁, 막힌 숨이 힘겹게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정신이 잠시 돌아왔을 때는 어김없이 숨이 막혔다. 혜선은 자신이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돌고래인 것 같았다. 갑자기 모든 게 멍해지는 듯 했다.
  사라지지 않는 수학 문제들은 혜선을 더욱 미치게 했다. 소름 끼칠 정도로 까맣고 고요한 공간에서 무언가가 다시 정신을 움켜잡았다. 이제 다시 이 정신을 끌어당겨 그 안에 가둘 것이다. 혜선은 다시 숨이 막혀오는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라앉은 바다는 자신을 품어주지 않고 묶어버리는 것 같았다. 결국 스스로 모든 걸 놓아버렸다. 혜선은 여자를 봤을 때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며 맥 빠진 목소리로 말을 흘린다. 무슨 소리죠? 저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는데요. 저는 단지 제 눈앞을 가린 문제들을 풀고 있었을 뿐이에요. 이 손 좀 놔주실래요? 아직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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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당선작 심사평


  제8차 <창작콘테스트> 소설부문에 이름을 올리게 된 작품은 양서현 씨의 단편소설「돌고래의 생존법」이다. 
  양서현 씨의 금상 당선을 축하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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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네 개의 서랍장
- 김나은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엔 시간을 이야기하는 영화나 소설에 대해 감흥이 덜 했던 것 같다. 시간이란 것은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가질 수 있으며 때로는 버릴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어렸던, 늘 푸를 것 같았던 그 시절의 특권이자 오만이 아니었을까. 시간은 무한하게 존재하지만 개인에게는 유한하게 흐른다. 인간은 모두가 늙고 죽는다. 계속 될 것 같은 여름의 더위가 어느새 사그라지며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고,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의 추위가 눈이 녹으면서 봄을 불러오는 것처럼, 언제나 어리고 항상 빛날 것 같은 나의 ‘그것’도 그렇게 점점 없어져간다. 24살. 십년 전 14살의 나는 어땠을까, 십년 후 34살의 나는 어떨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됐다. 한 작가는 에세이의 시작 갈피에 ‘나도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될 줄 알았다면 스물 그 즈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라고 적어놓았다. 공감한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마냥 설레고 새 학기라는 기대감에 부풀던 소녀는 이제 불어오는 봄바람에 지난봄을 회상하고 다가올 봄을 걱정한다. 마치 4개로 나눠진 서랍장처럼, 각 계절마다 추억이 쌓이고 계절들의 추억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를 한 순간에 머물도록 한다. 그렇게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함께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 과거의 순간들과 함께 흐르는 현재는 여러 감정을 일으키고 언제고 돌아오는 계절은 새로운 경험들로 다시 한 때가 된다.

  봄은 살랑거리며 다가온다. 이제는 봄이 언제 왔다 가는지 인식하기도 힘들 정도로 짧아졌지만, 그럼에도 봄은 봄이다. 봄이 되면 식탁은 봄나물들로 가득 채워진다. 평범한 된장국에 냉이가 들어가 냉이된장국이 되고 달래 무침이 나오고 여러 나물을 뒤섞은 비빔밥을 먹는다. 봄기운을 받으며 파릇파릇 솟아난 새싹들의 여린 잎들을 먹으면서 봄을 음미한다. 여리고 푸른 것, 이것이 봄이구나. 이 싱그러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청춘을 봄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래서 몇몇의 청춘들은 가끔 자신의 여린 살들을 그 푸름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뜯어 씹히는 것일까.씁쓸함을 남기는 식탁을 뒤로 하고 창으로 시선을 돌리면 창가엔 따뜻한 봄 햇살이 가득하다. 창가에 앉아 가만히 그 햇살을 받고 있으면 문득 한 신화가 떠오른다. 탑에 갇힌 여자에게 빛이 내리고 여자는 그 빛을 받아 아이를 잉태했다는 그런 이야기. 빛에 생명을 잉태한 여인처럼 나는 봄 햇살을 받으며 긍정을 잉태한다. 따스한 햇살에 괜히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나른해진다. 나른해 지는 기분과 함께 해야 할 귀찮은 일이 생각날 쯤엔 다음 생에는 햇볕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며 하고 싶은 것만 하는, 한 가정집의 사랑받는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불어오는 바람에 습한 여름의 냄새가 실려 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옷도 점점 얇아진다. 여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초 여름밤의 바람이야 말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봄을 타거나 가을을 타는 게 아니라, 초 여름밤을 타고 사랑은 찾아온다. 쉬쉬- 불어오는 바람이 여자의 얇은 시폰 치마를 흔드는 것처럼, 그 설레는 바람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어 각자의 연애를 시작하게 만든다. 이 선선하고 약간은 습한 밤공기를 맡고 있으면 나는 문득 한 아이의 목덜미가 떠오른다. 꼿꼿한 성품과는 다르게 항상 소매를 접어 올려 입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1-2개 풀어 입던, 덕분에 하늘하게 풀린 그 옷깃 위로 보이던 그 아이의 목덜미를 말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약하고 강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각자의 분위기가 있다. 그 아이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손에 꼽히는 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난 늘 그 애와 조금 거리가 있는 대각선 뒤에 앉았다. 단추를 푼, 잘 다린 와이셔츠 깃 위로 보이는 옆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었다. 입을 다물고 앞을 응시하는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그 애의 주위에는 늘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시원한, 후덥지근한 등의 바람이 아닌 ‘선선한’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 그런 바람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 애의 뒷모습에서 항상 초여름 밤을 느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름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때면 여전히 그 아이의 뒤에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그 설레는 바람을 지나 더운 공기가 느껴질 때 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 여름은 여러모로 겨울과 정 반대이다. 내게 겨울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채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을 준다면 그와 반대로 여름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태양은 머리 바로 위에서 작렬하고 도로는 열기를 내뿜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땀이 흐른다. 샤워를 하고 에어컨으로 차가워진 방안에 가만히 누워 창밖을 보고 있으면 여름이란 것은 꼭 더위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란 생각도 든다. 아무리 시원한 방이라 해도 밖으로 보이는 열기에 나는 여름을 느낄 수 있다. 저 열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그 강렬함에 나는 지치고 낮에는 절대 나가고 싶지 않아져 모든 약속은 가능한 저녁으로 미룬다. 더운 여름 낮에는 가만히 누워 있거나 팥빙수를 하나 사들고 차가운 물을 받은 욕조에 들어앉아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게 최고다. 우유를 얼려 부드럽게 갈았다는 팥빙수의 달콤한 얼음과 아삭아삭 씹히는 과일들, 톡톡 터지는 팥을 음미하고 있으면 아무리 더워도 살만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하와이에서 태어났다면 여름에 대한 감정이 달랐을까. 푸르고 청명한 바다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나는 바다에 못 들어가니까 아마 해변에 앉아서 구경을 하겠지.그때 내 머리 위엔 파라솔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소용없다. 하와이에 태어났어도 여름의 뜨거운 태양은 싫어했을 것 같다. 새삼 20살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타오르는 태양에 맞서며 자전거 여행을 했던 그 시절의 내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절대 내려오지 않을 것 같은 이 고집스러운 여름의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고집을 접는다. 지구는 기운 채로 도니까.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환인가. 약해지는 햇빛을 따라 가을이 온다. 애국가의 한 소절처럼, 공활하고 높고 구름 없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가을이 왔구나싶다. 나에게 가을은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낸 계절이다. 가을에 여름 내 잘 익은 곡식을 베고, 열매를 따는 것처럼 주변의 많은 인생들이 죽음으로 인해 그들의 생이 꺾여 졌고, 높고 공활한 하늘 아래에서 영원한 이별에 대한 묵념이 공허하게 이뤄졌었다. 천고마비의 풍요로운 계절인 가을에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가을만 되면 나는 여름이 지났다는 평온함과 함께 장례식에서 맡던 향의 냄새와 장례식 문을 열고 나가던 순간의 한기가 생각난다. 때로는 어른들이 묻혀있는 산 앞에 위치해있던 양어장의 비린내가 코끝을 스치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나타나기도 한다. 양식장들 사이사이를 작은 발로 밟으며 가만히 그 안에 갇힌 생선들을 내려보던 순간의 처연함과 차분함이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걷는 내게 느껴진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나도 그 때의 어린아이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앞으로 몇 번의 혹은 몇 십번의 가을 길을 나와 함께 산책 할 것이다.
 
  이렇게 나를 한없이 쓸쓸하게 만드는 가을에는 막연히 떠돌고 싶어진다. 수많은 가을밤 나는 얼마나 많은 길을 헤매었던가. 가능한 밤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바퀴가 구를 수 있는 길이란 길을 모두 밟기도 하였고 때로는 무작정 마냥 걷기도 했다. 나갈 때마다 10km는 훌쩍 넘는 밤길을 걷거나 달렸었는데, 그 길 위에서 생긴 상처 때문에 아직도 내 발 뒤꿈치에는 까슬까슬한 흉이 남아있다. 여러 날 그 많은 길들을 거닐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었다. 죽음은 공기 속에 만연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거닐다보면 더욱더 그런 기분이 들었다.자전거를 타다 핸들을 잘못 조작하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을 수 있다. 그처럼 죽음은 한순간에 다가와 어두운 물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었다. 아직도 그 답은 명쾌하지 않지만 그 때 정의한 답은 갑작스럽게 죽음이 찾아와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는 것이었다. 미래에 펼쳐져있을 어떤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겠지만 어찌되었든 걸어온 길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내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후회가 남는 선택들을 한다. 그때 더 밀어붙일 걸, 그런 말은 하지 말걸 등등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나 담을 수 없는 언행에 대해 후회한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싶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건 그저 내가 가고자하는 방향의 큰 길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자 하는 뜻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길목 길목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음과 동시에 길 위에 자리 잡은 풀벌레들에게도 세세한 주의를 기울이는 삶을 살고 싶다.

  가을의 쓸쓸한 바람이 점차 차가워지면서 코트에 몸을 웅크리고 감상적인 척 거리를 거닐 수 있는 계절이 온다. 겨울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일생에서 오래 남을 기억들 대부분은 겨울에 이루어졌다. 가장먼저 겨울은 내가 태어난 계절이고, 하얀 눈을 밟으며 아버지의 차를 타고 내려 장갑을 선물하고 떠난 꼬마의 사랑이 있는 계절이며, 학창시절을 마무리 지은 계절이고, 영화 촬영을 위해 이곳저곳에 위치한 촬영장을 떠돌았던 계절이자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을 인정받고 원고료를 받은 계절이며 최근에는 눈 오는, 아니 폭설이 내리는 센트럴 파크를 혼자 걸었던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의 수납장엔 이처럼 많고 다양한 추억이 쌓여있지만 겨울 공기, 그 중에서도 특히 담배냄새가 풍기는 겨울 새벽길을 걷고 있으면 나는 촬영장 막내이던 22살의 그때로 돌아간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련하고 묘한 감정이다. 현재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지만 과거의 공기를 맡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시절의 무엇이 그렇게 강렬했고 서러웠던지, 겨울만 되면 나의 흐르는 시간들은 한 순간에 고이게 된다.

  수 없이 많은 일들을 다가올 겨울에 경험할 것이고, 나의 바람처럼 여러 촬영장을 거닐며 추억들을 쌓게 되겠지만 22살의 촬영장과 같은 감정을 갖게 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겨울을 멈추게 하고 한참 뒤로 밀린 먼 시점을 바라보게 하는 그 순간, 그 한때는 돌아오지 않고 재현되지도 않을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것이다. 순간에 고인 시간 속에서 나는 아련한 기분에 젖기도 하지만 더욱더 앞으로 나가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그 어떤 계절보다 아련하면서도 바쁘게 보내게 된다. 하루하루 더 나은 삶을 살라는 뜻의 ‘나은’이란 이름을 몇 번이고 되새기는 시기이다. 이렇게 겨울을 보내고, 겨울은 다시 봄이 된다.
 
  다시 봄이 되면, 나는 또 봄이 보여주는 과거의 서랍을 펼쳐보고 그곳에 지나가버리는 현재를 차곡차곡 쌓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든다. 현재의 나는 방향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으며 불안하기에 돌아오는 봄이 마냥 반갑지 않다. 오히려 나를 재촉하는 기분에 얄미운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불안한 시기가 지나면 계절이 돌아오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지 않으리라고 믿어본다.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는 계절과 경쟁하며 원망스러움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매 순간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계절들을 사랑하게 되리라. 돌아오지 않을 것들을 사랑하며 상처받는 인생에서 몇 번이고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을 사랑하고, 순간에서 위로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김나은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긍정이든 부정이든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들을 다루고 있다. 방법이 어떠하든, 한번 상처 입은 사람은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려한다. 상처는 질기고 질긴 것이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처가 아물 것이라 확신할 수도 없고, 상처의 흉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아픔까지 잊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치유하고자 할 때조차, 우리는 마음의 상처를 직면함으로써 상처 입을 때만큼의 아픔을 한 번 더 격어야 한다. 상처는, 상처 입는 순간뿐만 아니라 치유의 과정마저 고통스럽기에 우리는 상처를 바라보고 긍정하기보다 외면하고 부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상처는 그 아픔만큼 우리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직면한다.성숙해지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 고통의 과정을 통해 얻은 성숙이, 성숙이라는 이름아래 우리를 제한하는 ‘안전장치’로 왜곡 될 때가 있다. ‘성숙’이라 생각하면서 뜨겁게 부딪히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채 자신을 지키려 하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표현하지 않고 마음을 닫아버린다. 왜곡된 성숙은 한 걸음 나아가는 ‘성숙’이 아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기 방어적 태도를 갖게 한다. 자기 방어, ‘안전장치’는 순간적으로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를 외롭고 고립되게 만든다. 이런 허무한 성숙은 모르는 채로 살고 싶다. 상처입어 본적 없어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늘 열정적이고 솔직한 소녀처럼.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바라보고 그 본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처럼. 두려워하는 ‘성숙’이 아닌 두려워하지 않는 ‘순수’로 인생을 살고 싶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처받은 과거가 미래와 현실에 설치한 안전장치를 없애야 한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시인

  쉽게 읽히는 이 한 문장은 우리가 마음의 ‘상처’와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해 취해야 하는 이상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사랑앞에서 상처를 모르는,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어떤 안전장치도 설치하지 않고 ‘불안전한’ 사랑을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일반적인 의미인 연인간의 사랑으로 해석되어 ‘지나간 연인으로부터 한 번도 상처를 받지 않은 것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현재의 사랑을 대하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으로 해석되어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았어도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나의 반려자와 아이를 사랑하라’와 같은 사랑으로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 외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모두가 맞다. 중요한 것은 ‘어떤 관계에서도, 누구에게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쉽게 읽히는 것과 반대로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상처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모든 관계 곳곳에 안전장치를 설치한 ‘안전한 사랑’을 한다면 우리에게는 후회만 남을 것이다. 기름을 기름으로 녹일 수 있듯이, 사랑에서 상처받은 마음은 사랑으로 지워야한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고립하고 외롭게 만든다면 우리의 마음은 결국 짓물러버릴 것이다. 인생은 한번뿐이고,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러니 마음의 틀을 깨고 용기 내어 사랑하자.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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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당선작 심사평


  제8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작품은 
김나은 씨의「네 개의 서랍장」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두 편의 작품이다.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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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선자들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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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작가 여러분!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당선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매회 실시되는 <창작콘테스트>에 
끊임없이 도전만 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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