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굵은 뼈마디와 통통하고 짧은 손가락이 극심한 콤플렉스였다. 한국에서 성형 수술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중학생이었던 내 또래들의 큰 관심사중 하나는‘이 다음에 커서 어디를 고칠 것인지’였는데,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너는 나중에 커서 어디 성형 하고 싶어?”
같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나? 글쎄…”
얼굴에 고치고 싶은 부분이 없다기보다 내 관심은 오로지 못난 손에 쏠려있었다. 성형 열풍에 힘입어 손가락 성형 수술도 빨리 유행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인터넷에 손가락 성형 수술을 검색해 보았지만 손가락 마디는 작고 정교한 관절이라 성형이 힘들다는 말들뿐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스스로 손가락 마디를 줄일 방법을 고안해내었다.
먼저 가장 굵은 오른손 검지에 시도해보기로 했다. 샤프심 통 두 개를 준비해 검지 양 옆에 대놓고 샤프심 통이 뼈마디를 누를 수 있도록 고무줄을 칭칭 감아 꽉 매어놓았다. 몇 분 뒤 고무줄을 풀자 뼈마디의 너비가 조금 줄어있었다.
‘성공했다!’
혼자서 손가락을 성형하는 데에 성공했다. 내로라하는 성형외과 의사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해낸 것이다. 신이 나서는 고무줄을 더 꽉 조여매고 다시 몇 분을 두었다 풀어보았다. 아까보다 효과가 좋다! 그러나 기쁜 것도 잠시, 잠깐 줄어든 것처럼 보였던 뼈마디는 이내 원래대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이전보다 더 부풀어 올라 양 옆으로 불룩해진 것이다. 검지는 가운데가 뚱뚱하게 튀어나온 항아리 같은 모양이 되었다.
당황한 나머지 다시 한 번 강하게 손가락을 조여 맸지만 그럴수록 뼈마디는 더 심하게 옆으로 옆으로 커질 뿐이었다. 큰일이다. 혼자 손가락 성형을 해보겠다고 설치다가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내 욕심만큼이나 부풀어 오른 손가락을 바라보자 눈물이 날 것 만 같았다. 그런데 뼈마디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묘하게 아려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글쎄 관절에 염증이 생겼단다. 심하게 손가락을 쓸 일이 있었냐는 의사의 물음에 뜨끔 했다.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약을 며칠 먹으니 조금씩 나아지는 듯싶었다. 그러나 처방받은 약을 다 먹은 후에도 손가락 모양이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아야지. 전문지식 없이 시행하는 민간요법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 뒤로 남에게 손을 펼쳐 보이는 일을 더욱 꺼리게 되었다. 부득이 손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닥칠 때면 “나 손 진짜 못생겼어.”하고 미리 나를 한 것 깎아내린다.
그 애는 반지를 참 좋아했다. 반지 같은 건 평생 끼워본 적 없던 나에게 처음 반지를 끼워준 것이 그 아이였다.
“예쁘네. 잘 어울려.”
야시장에서 산 그 반지는 작은 꽃이 나란히 붙어있는 모양이었고 둘레를 조절 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운 은으로 된 꽃반지. 신기하다. 보기 흉할 줄로만 알았는데 새끼손가락에 끼우니 아주 못 봐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종종 그 반지를 끼우곤 했다.
커플링이라는 것도 그 애와 처음 맞춰보았다. 아무리 새끼손가락에 시도해보았다고 해도 약지에까지 반지를 끼우는 것은 낯설고 두려웠다. 내 호수가 일반적인 여성들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일도,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이런 방식으로 드러내고 다니는 것도 내게는 조금 버거운 일이었다. 손에 끼운 반지와 함께 못난 손을 남들에게 보이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 애의 극성스러움 덕택에 꽤 오랫동안 어울리지도 않는 예쁜 은반지를 끼우고 다녔다. 반지를 끼던 마지막 날까지 “돼지 목에 진주”라는 말이 가슴 한 켠에서 떠나지 않았다.
“충분히 예쁘고 귀여워. 너라서 다 좋은 것 같아.”
나의 모든 것을 오로지 ‘나‘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내 작고 투박한 손 위에 크고 따뜻한 손을 포개어왔다.
그는 내 못난 손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려하지 않는다.
“네 손은 이미 충분히 예쁘지만, 네가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내 손을 내가 스스로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보채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지그시 나를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내게는 콤플렉스가 있다. 그것도 꽤 많이. 굵고 짧은 손가락도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제는 거울을 보는 일이 이전만큼 싫지 않다. 펼친 손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그래. 이게 나인걸. 이 손이 다른 누구의 손도 아닌 내 손이라는 사실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지만, 더 이상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가만히 옆을 지키는 일.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말이 공기를 타고 피부에 스며들어, 수많은 혈관을 지나 심장 깊숙한 곳에 닿아 울릴 때 까지, 다만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일.
이제는 나를 바꿔 사랑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지만,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저 ‘나’이기 때문에.
저에게도 글은 저의 꿈들을 이루어주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_^
저는 검정색과 하얀색의 조화를 즐기는데 만화도 잘그리고 바둑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