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제11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by korean posted Jun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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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11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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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11차를 맞았다. 이번 제11차 공모에선 금상에 해당하는 작품을 선정할 수 없었음에 유감을 표한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응모자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이번 <창작콘테스트> 제11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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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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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마을을 위하여
신선혜

 


1. 

버거빅은 매 달 수익금의 1%를 마을을 위해 기부했다.

2. 

2015년 8월 23일. 석빈도에 위치한 버거빅은 가게 마감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은 한산했고 에어컨 소리만이 그곳을 채웠다. 반면 바로 뒷골목 위치한 고시원에선 열대야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앓는 소리들이 늘어갔다. 그들은 버거빅의 에어컨 바람을 조금이라도 기대했지만, 앞 건물에서 돌아오는 건 환풍기 속 더운 바람뿐이었다.
커다란 빵에 두꺼운 패티, 신선한 양상추와 토마토. 버거빅의 아르바이트생들은 오늘도 조그만 손으로 커다란 버거를 만들었다. 버거 1개를 만드는 데 걸리는, 아니 걸려야 할 시간은 15초였다. 15초. 잠시라도 손이 버벅대 소스통을 놓친다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런 틈에서 불가능한 몸놀림으로 10초의 기적을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똑같은 갈색 반팔 유니폼 속에 유일하게 별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 부점장은 방금 들어온 주문지 속 버거를 12초 만에 만들고, 어느새 위생장갑을 벗으며 카운터로 향했다.
“고객님 주문하신 버거 단품 나왔습니다. 치즈 2장 추가하신 것 맞죠?”
34초. 고객이 주문을 하고 버거를 손에 넣을 때 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만약 치즈 2장이 없었다면 32초 만에도 가능했을 터였다.
“오늘도 마을을 위한 선택, 감사드립니다 고객님.”
부점장은 잔뜩 올린 입 꼬리로 멀어지는 고객의 뒤통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고객은 힘겨운 발걸음만을 옮기고 있었다. 점장은 그 모습을 억지로 외면하며 카운터에 모아둔 만 원짜리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최대한 천천히 지폐를 세기 시작했다.
정산이 끝난다면 부점장에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그 일이 남아있었다. 부점장의 손은 점점 느려졌지만, 그러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달 전에 비해 월등히 줄어든 만 원짜리는 그 시간이 다가옴을 빠르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잠시 손을 멈추고 유리 넘어 위치한 배달 오토바이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오늘 아침 사장은 부점장에게 배달부를 한명 자르라고 지시했다. 부점장의 고개가 저절로 가로저어졌다. 사장은 경제학을 들먹이며 말했다. 이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버거빅이 운영되는 방식입니다. 버거빅은 석빈도 전체의 경제를 살리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정해진 룰에 맞게 운영되어야 합니다. 부점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랬다. 그는 버거빅을, 이 마을을 지켜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동혁 한 사람 쯤 잘리더라도 괜찮을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동혁의 숭고한 희생을 거두어야 했다. 그는 지금 대의를 추구하고 있었다.
부점장은 만 원짜리 지폐를 들고 가게 뒤 금고로 결연하게 걸어갔다. 금고에 돈을 넣고는 전화기를 들고 동혁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다이얼을 누르려는 순간, 부점장의 귀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부점장은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버거빅 마크가 적힌 배달 오토바이 하나가 멀어지고 있었다.
“도둑이야! 도둑.”
부점장은 다급하게 오토바이를 향해 외쳤지만, 그의 말에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 

밖에서 부점장이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나와 K는 가게 뒤 휴게실에서 야간 교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K는 팬티 차림으로 유니폼 바지에 한 쪽 다리를 끼다가, 급하게 휴게실로 들어온 부점장과 마주쳤다. K의 표정은 일그러졌으나, 부점장이 근무표를 가지고 밖으로 나갈 때 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이 닫힌 걸 확인한 뒤에야 K가 투덜거렸다.
나는 슬쩍 K가 신고 온 신발을 훔쳐봤다. K의 신발 바닥엔 아무런 무늬가 없었다. 밑창을 아예 떼고 온 듯도 보였다.
“동혁이 신발을 두고 간 것 같은데, 그걸 신는 게 어때?”
나는 옆에 고무 쿠션으로 된 동혁의 운동화를 가리켰다.
“이게 좋아. 멋있으니까.”
K가 바지 벨트를 채우며 대답했다.
그리고 K의 대답은 일은 나 혼자 하라는 일종의 선고처럼 들렸다. 오늘은 24시간 오픈하는 버거빅이 한 달에 한 번 문을 닫고 야간 청소를 하는 날이다. 매장 안에 있는 모든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고는 대걸레로 구석 구석 닦아야 했다. 말 그대로 팔이 빠지는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K는 금방 미끄러져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신발을 신고는 거울을 보며 머리 정돈만 하고 있었다.
“지금 부점장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어서 나가자.”
나는 바닥에 뿌릴 윤활유를 챙기며 휴게실 문을 열었다.
“아직 10시가 되려면 좀 남았어. 더 쉬다 가도 괜찮아.”
나는 K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윤활유 통을 들고 매장으로 나왔다. K의 얼굴을 더 보느니 일을 먼저 시작하는 게 속이 편했다. 가게 문 앞의 팻말을 CLOSE로 바꾸고, 우선은 테이블을 한쪽으로 밀고 있는데, 저기 멀리 카운터에 황 매니저가 뚱뚱한 배를 들이밀며 등장했다. 그의 배는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튀김 존을 통과하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감자를 튀기던 바스켓 손잡이에 걸려버렸다. 바스켓이 튀어 올라 안에 있던 200도씨의 기름이 황 매니저의 배에 튀겼다. 황 매니저는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려다, 바로 옆 부점장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오늘 오후에 배달했던 애가 누구였죠?”
부점장이 근무표를 급하게 넘기며 물었다.
오늘 오후 근무는 동혁이었다. 그의 신발장에 있는 퇴근 도장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즉석에서 바뀐 거라 부점장의 손에 들린 근무표엔 적혀있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버거빅에서 6개월 간 일을 하며 배운 게 있다면, 시키지 않은 일에 나서지 말라는 것이었다. 괜히 나섰다가는 덤터기만 쓰일 뿐이다. 나는 그저 그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매장 바닥에 윤활유를 부었다.
“모르겠는데요.”
황 매니저는 여전히 기름이 뜨거운지 배를 쓰다듬었다.
“왜 가만히 서게십니까? 지금 야간시간 담당자죠? 빨리 알아봐요.”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황 매니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자마자 나를 향해 외쳤다. “감자 다 튀겼으면 이런 건 빨리 치워버려. 왜 쌓아둬?”
위험하다. 불똥이 나에게로 튀고 있다. 나는 재빨리 튀김 존으로 가 바스켓을 들고는 싱크대로 가져다 놨다. 매장도 이미 닫았는데 식용유까지 치울까 생각했지만, 역시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일만 해라. 그게 버거빅에서 배운 유일한 교훈이었다.

4. 

잠시 뒤 어느새 매장에는 경찰이 와있었다. 부점장은 오토바이에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부점장의 말대로라면 동혁이 잘못했다는 뜻이었다. 부점장의 말을 받아 적던 경찰이 구석에 있던 나를 쳐다봤다. 나는 열심히 대걸레질을 하는 척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려버렸다.
창문 밖으로 고시원이 눈에 들어왔다. 저 조그만 창문들 중 하나엔 동혁이 있을 것이다. 동혁은 지금 자고 있을까? 까딱 하단 그가 오토바이 값을 덮어 쓸지도 몰랐다. 아무리 나서지 말아야 한다지만 동혁에게 지금 사태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복잡해진 마음으로 한참을 생각하고 있는데 발바닥이 싸늘했다. 어느새 윤활유가 엎어져서 온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아직도 K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미 10시 하고도 10분이나 지난 상황이었다. 나는 휴게실 앞으로 달려가 문을 퉁퉁 쳐서 K를 불러냈다. 잠시 뒤 K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분배해서 닦으면 될 거야.”
K가 내가 엎어놓은 윤활유 바닥을 보더니 말했다. 마치 남 일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조금 도와주는 게 어때?”
“그러고 싶은 데 오늘 신발이 조금 그러네. 들어가서 싱크대나 청소하고 있을게.”
나는 대걸레를 K의 발 옆에 갖다 대고는 꾹 한 번 눌렀다. K의 발쪽으로 윤활유가 흐르고 있었다. 곧이어 K는 걸음을 옮겼고, 윤활유와 만난 그의 신발 바닥은 일자로 미끄러졌다. K는 중심을 잡느라 양팔을 흔들어 댔는데 마치 탭댄스를 추는 것 같은 우스운 꼴이 되었다.
움직임이 멎었을 때 K는 자기 발밑에 윤활유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도 좀 제대로 닦아야겠다.”

5.

버거빅에서 동혁이 처음 일하게 된 건 6개월 전이었다. 그 때 나와 K가 낮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손님 줄이 너무 길어 우리는 차마 동혁에게 까지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동혁은 손님이 다 사라질 때를 가만히 기다리더니, 마침내 매장이 조용해 졌을 때 꾀죄죄한 모자를 벗으며,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봤다고 말했다. 그런 동혁을 향해 황 매니저가 팔짱을 끼며 다가갔다.
“아르바이트? 아 배달부 말하는 건가? 어디 살아요? 가까운 데 사네. 그런데 그런 차림으로 일할 수 있겠어? 아시다시피 버거빅은 최고만을 만드니까. 아무래도 손님이 내신 돈만큼의 대우는 해드려야 하잖아.
시급? 5580원이야. 그런데 우리는 주휴 수당도 맞춰주니까. 일은 좀 해봤나? 주휴 수당이 뭔지는 알지? 그래. 그런데 다시 봐도 차림이 좀 심각하네. 메뉴판을 봐봐. 당신이 2시간 일해야 겨우 사먹을 수 있는 버거야. 그걸 사는 손님들을 생각해봐. 그에 맞는 서비스를 원하신다고. 게다가 버거빅이 또 우리 마을의 이미지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배달부라도 좀 깔끔한 인상을 원하거든. 남자라도 화장도 했으면 좋겠고....”
동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차피 유니폼이 다 나올 텐데요. 마스크도 쓸 거고.”
보다 못한 내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다행히 동혁은 채용됐지만 나는 그날 가게의 모든 바스켓을 닦아야만 했다.
그 이후로 동혁은 배달이 없을 때 나의 일을 도와주었다. 콜라를 대신 따라주고, 케첩도 채워주었다. 그런 동혁에게 나는 항상 한 가지의 당부의 말을 했었다.
“안 힘들어?”
동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땐 적당히 눈치 보며 쉬어도 돼.”
K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가 퍼와야 할 얼음 통을 동혁에게 내밀었다. 나는 통을 다시 뺏어다가 K에게 주고는 동혁에게 귓속말을 했다.
“잘 들어. 이곳에선 절대 나서면 안 돼. 일만 더 하게 될 뿐이야. 적당히. 가만히. 시간만 채우면 되는 거야.”
동혁은 내말을 듣고는 소리 내어 웃더니 일을 더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받아쳤다. 그게 일주일 전이었다.
그런 동혁이 지금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위기에 처했다. 동혁은 열쇠를 꽂아놓고 내릴 사람이 아니었다. 동혁의 오토바이는 3번이었는데, 사라진 오토바이가 2번인 것만 봐도 이 것은 동혁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부점장은 서류만 넘겨보았고, 동혁이 오후 근무 대타를 섰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부점장은 매장 안으로 사라지더니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빼고 부점장의 말을 훔쳐 들었다.
“자고 있었나? 미안해요. 그런데 아까 오후에 근무했었죠? 살짝 문제가 있는데, 오토바이를 도둑맞았거든요. 아니 동혁씨가 도둑이라는 말은 아니고. 동혁씨가 항상 열심히 일해 줬다는 사실은 알지만… 사람은 실수할 수 있어요. 다만 책임을 져야죠. 잠시 와 줄래요?”
나서야한다. 동혁의 잘못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해야한다.
그러나 차마 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부점장이 전화를 끊고 카운터로 나오는 순간, 나는 고개를 묻고 다시 대걸레질을 시작했다.

6.

에어컨의 바람이 부는 버거빅은 싸늘했다. 황 매니저는 부점장 옆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사실 동혁의 문제는 아니지. 황 매니저가 팔리고 남은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며 생각했다. 이건 담당자가 체크를 했어야지. 버거는 차가웠고, 황 매니저는 한 입 먹은 햄버거를 전자레인지 속에 넣었다.
황 매니저는 조금 전 오후 배달 담당자가 사장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오늘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전자레인지의 벨이 울렸고, 황 매니저는 버거를 꺼내 먹으며 매장 전체의 눈치를 살폈다.
카운터에 선 부점장은 한숨을 쉬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까부터 자신을 뚫어질 듯 쳐다보는 황 매니저의 강렬한 시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손엔 동혁이 서명해야 할 종이가 들려있었다. 한 번의 서명으로 동혁은 100만 원 정도를 물어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아직 그가 잘렸다는 통보도 하지 못했다.
부점장은 처음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할 때를 떠올렸다. 그가 처음 자른 아르바이트생은 주부 였다. 버거빅은 사회봉사의 일환으로 주부 회원을 뽑았다. 그러나 매출이 떨어졌을 때 버거빅은 그녀의 느린 손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 때 생계를 잃은 주부의 눈빛을 부점장은 아직도 머리에서 지워낼 수 없었다.
분명 버거빅이 석빈도에 처음 세워지던 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버거빅을 좋아했다. 버거빅은 마을의 희망이었다. 오래된 판잣집들 사이에 생긴 네모난 시멘트 건물. 사장은 버거빅이 마을의 미래가 될 거라고 말했다. 마을에 수익금의 1%를 기부한다고 선언했다. 사장의 말처럼 함께 경제를 활성화 하며 다음 단계로 도약했어야 했다.
그러나 손님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매출은 떨어졌으며, 아르바이트생들도 하나 둘 사라져갔다. 부점장은 분명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한 번도 본인이 틀렸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짙은 그늘의 얼굴들은 들어났고, 그들과 마주하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오늘 동혁에게 또 심한 짓을 해야 한다. 부점장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7

나는 동혁이 화를 내거나 아니면 격하게 부인하거나, 최소한 부점장을 한 대 때릴 것이라 생각했다. 버거빅에서 쫓겨난다면 고시원에서도 나가야 한다는 말이며, 그건 동혁이 공원의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동혁이 혹시나 금고를 훔치지 않을까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그는 나의 모든 예상을 깨버렸다.
동혁은 순순히 부점장이 들이 민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운동화를 챙겨서 버거빅을 떠날 채비를 했다.
“지금 100만원을 덮어 쓴 거 알아?”
나는 문 앞에서 동혁의 팔을 잡아챘다. 
“…….”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는데 오히려 그의 얼굴은 평온하게 느껴졌다. 아마 항의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했다.
“이러다 해고당할지도 몰라!”
동혁은 자신이 이미 잘렸다 말했다. 그리고 부점장이 100만원을 천천히 나눠 갚아도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했다. 오늘 따라 동혁의 모자가 더욱 꾀죄죄해 보였다.
부점장은 나가는 동혁에게 만 원짜리 지폐를 쥐어주었다. 속 채우고 힘내라며. 나는 동혁의 떠나는 뒷모습을 그대로 지켜봤다. 동혁의 다리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같았다. 더 이상 그 터덜터덜한 발놀림이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 나는 매장 뒤쪽 창문을 열고는 동혁의 고시원을 바라봤다. 동혁이 저기서 떨어질까. 동혁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은 동혁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었다.
잠시 뒤 3층 방 하나에 불이 켜지고 창문이 열렸다. 오래된 형광등 때문에 어두운 방에, 더욱 어두운 동혁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혹시나 동혁이 잘못된 마음을 먹을까 그 쪽으로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동혁이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기다란 막대를 하나 꺼냈다.
동혁의 손에 형광 포장지를 감은 막대 폭죽이 하나 들려있었다. 동혁은 폭죽을 마치 총처럼 들고는 버거빅을 향해 불을 붙였다.
동혁은 버거빅을 날려버리는 상상을 하고 있을 거다. 폭죽 사용법을 무시하고 쾅쾅쾅 하고 쏴대니 말이다. 나는 최대한 버거빅의 창문을 열어줬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였다. 폭죽은 버거빅과 고시원 사이에서 화려하게 하늘을 갈랐다. 펑.펑.펑. 나는 갑자기 시작된 한 밤의 불꽃놀이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폭죽의 작은 불빛 하나가 버거빅의 창문 안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불빛은 내가 엎은 윤활유에 붙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기세가 커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나 이외의 아무도 창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버거빅에서 배운 교훈을 상기 시켰다. 시키지 않은 일엔 굳이 나서지 말 것. 오늘 동혁도 근무를 바꿔달라는 부탁을 들어줬다가 봉변을 당한 거였다. 역시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 나는 불꽃을 꺼트리는 대신 내가 맡은 청소나 하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 동혁의 의지는 내 발 빝에서 점점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윤활유에 붙어 빠르게 매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기다란 불길은 K가 남겼던 발자국 따라서, 감자튀김의 식용유까지 도달했고, 펑하는 폭발소리를 냈다. 어느새 연기가 깔리기 시작했고, 나는 소방 알람을 누르고 건물을 빠져 나오려다, 다시 창가 쪽으로 가 동혁이 보이는 창문을 닫고는 잠가버렸다.
수없이 기침을 하며 겨우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황 매니저가 같은 모양새로 나를 맞이했다. 안에서 K가 비틀거리며 뛰어 나오다 발바닥에 불이 붙자 신발을 벗어던지고 양말 차림으로 우리 옆에 합류했다. 부점장은 금고에서 돈을 꺼내 마지막으로 건물 밖으로 탈출 했으며, 야간 시간 담당자인 황 매니저만이 119에 신고를 하고 있었다.
버거빅은 활활 타올랐다. 마을 사람들도 간만에 벌어진 불놀이에 모두 나와 구경을 했다. 동혁도 이 모습을 보고 있을까? 석빈도의 한 여름 밤. 제대로 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8

부점장의 시선은 불타는 버거빅 건물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의 두 눈은 마을 공원의 불탑을 보고 있었다. 3개월 전 마을에 공원을 개장했을 때가 떠올랐던 것이다. 딸아이의 여섯 번째 생일날이었다. 부점장은 딸아이를 데리고 자랑스럽게 공원 입구에 가 양각으로 장식된 글자를 읽어 주었다. ‘2015년 5월. 버거빅이 마을을 위해 기부하다.’
“기부가 무슨 말이야?”
 
딸의 질문에 부점장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도와줘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딸은 공원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공원의 중심엔 거대한 탑이 있었는데, 탑 위에 가짜 불 모형의 조명이 올려져있어 모두들 불탑이라 불렀다. 사장은 불탑이 이 마을의 상징이 될 것이며, 석빈도를 프랑스 같이 만들 거라 했다.
그러나 사장이 연설을 했던 공원 기념식을 보러오는 마을 주민은 없었다. 쇼를 볼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석빈도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공원에 모인 건 노숙자뿐이었다.

“그러면 행복은 뭐야? 저 사람들이 행복한 거야?”
딸아이는 공원에 가득 찬 노숙자들을 가리켰다.
그 때부터 부점장은 마음의 불편함을 느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마을을 위해 만 원이나 하는 비싼 버거를 사먹었고, 공원을 얻었다. 그러나 마을엔 가난한 사람만 늘어갔다. 이 마을에서 웃고 있는 건 사장밖에 없었다.
“오늘도 마을을 위한 선택 감사드립니다.”
그 이후로 부점장이 버거빅에서 인사할 때마다, 그는 차마 고객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지금 부점장은 불길이 더욱 치솟은 버거빅을 마주하고 있었다. 사장에게 보고해야 했지만,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다. 부점장은 버거빅이 이 마을에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의 손엔 마지막으로 챙겨온 돈다발이 들려있었는데, 이 것은 결국 사장이 가져갈 것이었다. 마을의 모든 돈을 사장이 가져갔다. 더 이상 석빈도엔 비싼 버거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게 과연 마을을 위한 길일까. 버거빅이 사라지는 것도 괜찮을 지도 몰른다. 부점장이 고민하는 동안 석빈도의 불꽃놀이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고시원 문 앞에서 동혁의 이름을 외쳤다. 동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버거빅은 눈앞에서 요란하게 타올랐다. 나는 동혁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너의 의지가 결국 성공했으며, 우리는 버거빅을 이 마을에서 없애 버렸고, 마을은 이제 서서히 원래의 모습을 찾을 거라는 것. 그러나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엉뚱하게도 이 것 뿐이었다.
“전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대. 소방대원들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더라.”
소방차가 불을 다 꺼가고 있을 때 쯤, 부점장이 고시원 앞으로 나타났다. 나는 나의 방관이 걸린 게 아닐까 긴장한 채로 눈치를 살폈다. 옆의 동혁도 같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부점장은 손을 들더니 그 손에 있는 돈다발을 동혁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홀랑 타버렸습니다. 버거빅 말이에요. 아마 낮에 쌓아놨던 식용유가 문제가 됐나봅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홀랑 타버렸다. 동혁의 계약서도, 사장의 금고도, 마을과 어울리지 않았던 메뉴판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불은 마을에서 버거빅을 없애 버렸다.
“어떻게 할거야?”
나는 동혁의 손에 있는 돈다발을 쳐다보며 물었다.
“폭죽을 쏴야겠어.”
그는 공원으로 달려갔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어디로 가는 거야?”
“이제 사람들한테 밥 사먹을 돈은 줘야 하지 않겠어?”
공원엔 더욱 늘어난 노숙자들로 가득했고, 동혁은 돈다발을 들고는 불탑 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조금 도와주지 않을래? 사람들을 주위로 모아줘.”
나는 그렇게 했다. 지폐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하나의 지폐를 잡은 사람들은 김밥 집으로, 슈퍼로, 짜장면 집으로 달려갔다. 최소한 이 돈은 마을 안에서 사용될 터였다.
종이 폭죽을 뿌리는 동혁의 얼굴이 불탑 위에서 환하게 빛났다. 동혁처럼 살아도 재밌겠다 싶었다. 나도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주워 다시 하늘로 던져 보냈다. 하늘이 어찌나 밝은지 눈이 부셨다. 어느새 석빈도에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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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당선작 심사평


  제11차 <창작콘테스트> 은상에 이름을 올리게 된 작품은 신선혜 씨의 단편소설「마을을 위하여」이다. 
  신선혜 씨의 은상 당선을 축하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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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 꽃이 피다
   - 강수화 


저기,
꽁꽁 얼어 서늘한 겨울이 막차에 실려 가는 순간
개나리 꽃들이 봄볕을 맡이 할 순간
달의 끝자락이 반사되는 저녁

북풍을 몰고 봄이 오는 소리에 
땅속에서는 봄들이 여물어가지요

웅크리는 건 누구일까요?
두더지처럼 보이지 않는 눈동자를 움직여
봄 향기를 맡아
새벽을 불러오지요

겨울이 봄에게 작별 인사를 하듯
심장 고동소리가 두근두근 하듯

냇가에는 아지랑이들이 한가득

봄이 오는 소리.

 

■ 비행기
   - 강수화
 
 
하얀 종이를 접는다
종이는 구겨져있다
그 구김으로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깨뜨려도 들어갈 수 없는 벽,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상
그리움 앞에서는 
부끄러움도 쉽게 풍화되어 사라지고

구김을 바라본다.
숨바꼭질을 하기에는 작은 곳
들어가 숨기 답답한 공간
비행기는 날고 싶다

비행기는 번번이,
제자리를 돈다.
무슨 사연일까?

구김이 너무 깊어져
어깨가 무거웠나 싶어
다리미로 구김을 곱게
하늘 높이 날린다.

자유롭게 멀리 멀리 날아가라고

     
      
■ 나를 잊지 말아요
   - 강수화 
 
 
당신이 돌아 오신다기에
기다렸어요.
한 해 두 해 
시간은 흘러 세월이 갔지만 
요 앞에 잠깐 다녀오리라 했던 말 기억하며
수십 년을 부둥켜 지새웠어요.
그렇게 당신이 가고 돌아오지 않는걸 알았어요.
10년, 20년 지나니
야속도 했지만 
이제는 알 거 같아
목이 멥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갈 수 없는 마음이 아니라
철조망이 있다는 걸 그래서 올 수도 울 수도 없다는 걸 
이제 배웁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
북녘에 해가 지고 노을이 내리면
흰 눈처럼 고운 머리카락 가진
당신의 새 신부가 여기 살고 있다는 걸

나를 기억하세요.
 
 
    
■ 씨앗이 움트면
   - 강수화
 
    
어느 날인가부터 내가 살고 있는 반 지하에 작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씨앗은 누구의 종인지 몰라 내가 키우기로 했다. 창문을 반쯤 열어 공기도 주고, 날마다 사랑과 시간을 들여 찬찬히 쳐다보았더니 엄지손톱만큼 싹이 자랐다. 

오가는 이 없는 오후 한적한 그림자가 먼저 내려앉는 깊어지는 하루 눈치 없는 비는 반겨 주는 이도 없이 내려앉는다. 

당신은 별이 되었을 거야

여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못박혀있다

발은 이미 땅 아래 씨앗을 잉태시킨다

싹들이 자라 서로의 몸을 기둥삼아 의지하는 모습은 내가 해를 보러 나가는 일과 비슷하다 살아가는 것은 너와 내가 반짝이는 별처럼 마냥 빛을 낼 수는 없어도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옹색하고 쓸쓸해도 살아가는 일이다 어둠이 창문가로 먼지처럼 내려앉는다. 너는 풍성한 열매를 맺어


 
■ 나비
   - 강수화 
 
 
가만히 마주본다.

1령 2령 3령 4령 5령 
인고의 시간을 참아
번데기가 되어
여린 속살 같은 날개를 펼럭인다.

비에 젖은 듯 축축한 날개를 
봄 햇살 아래 서서히 말리고
푸른 세상 
너 
우리들
사는 세상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다

다시,
그리하여 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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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11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시(詩)부문 강수화 씨의「꽃이 피다」외 네 편의 시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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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 멀어진 날들
   - 박근석


  능구렁이처럼 능글능글 얄밉게 웃는 원수 같은 살을 꼬집어 비틀었다. ‘초롱 엄마 뱃살이 내 똥배로 놀러 왔나?’ 오늘따라 허리 구분 없이 볼록한 배가 더 빵빵했다.
  치마허리 단 위로 삐져나오는 옆구리 살을 만지며 옷장 문을 열었다. 언제든 살이 빠지면 입을 생각으로 장롱에 모셔 든 옷을 이제는 추려야 할듯하다.
  눈살 찌푸릴 만큼 거슬리는 것들이다. 암만 살이 빠져도 50대가 입기에는 모호한 옷이 있다. 오래되었어도 새것 같은, 새것 같으면서도 유행을 빗겨가 좋게 봐 줄 수 없는 것들 사이로 상앗빛 코트의 넉넉한 등에 업혀 곤히 자는, 봄을 안은 꽃무늬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삶에 양념이 지금보다 더 진했던 40대 초반에 즐겨 입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리지 않고 채워야 했기에 무서움 없던 시절이었다. 능력 부족한 줄 알면서도, 주위에서 ”이거 해볼래?” 하면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40살 여름이다. 그 당시도 개인택시 호출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회원 중 한 분이 사무실로 왔다. 청주 MBC 여성시대에서 옥천 라디오 통신원을 구하고 있으니 한번 해 보라는 것이었다. 직업상 옥천지리는 꿰고 있었지만, 옥천의 인물이나 행사에 대해서는 깜깜하였기에 선뜻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염려는 마음뿐이었고 머리로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후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4주에 한 번씩 옥천을 알리는 라디오방송을 할 수 있었다. 전화 연결로 옥천 소식을 알리는 녹음 방송이었지만 자신을 다독이는 차원으로 큰맘 먹고 장만했던 잔 꽃무늬 원피스였다.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꽃이 만발하던 늦봄, 방송자료는 지역신문과 인터넷정보로 충분히 준비했지만 나의 감각을 보태려 금강 유원지로 갔었다. 잘록한 허리를 유난히 강조하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서 말이다. 이제는 이곳저곳 갈 곳이 많아 자주 찾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경치 하면 금강 유원지 주변을 최고로 손꼽았었다.
  빨간 경차를 타고 동이면 조령리로 갔다. 입구와 출구가 하나씩인 금강 요금소를 거쳐 금강 휴게소로 들어갔다. 승용차보다도 더 많아 보이는 관광버스와 고속버스가 뿜어내는 갈증이 주차장 목을 조르고 있었다. 긴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눈 어두워 아차! 하고 길을 잘못 들여도 유턴 할 수 있는, 상행선과 하행선 차량이 주차 가능한 휴게소였기에 더 번잡한 듯하였다.
  강가 쪽의 싱싱한 풍경을 가슴에 담으려 안내소 옆의 계단을 올라 금강의 물줄기가 펼쳐진 야외 테라스 쪽으로 갔다. 정면으로 오리배 탄 연인이 힘차게 페달 구르는 모습은 미소를 머금게 하였고 라바댐 아래로 시간이 벗인 양, 강둑에서 물을 낚는 듯 낚시질하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 모습 또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지금도 나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지만, 그때는 정말 냉수 마시듯 입에 달고 살았었다. 과하게 쓰지도 달지도 않은 것이 입맛에 착착 감겼다. 유리병에 가득 채워 온 커피를 다 마신 탓인지 오줌보가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묵 호떡 감자튀김 판매장을 거치니 화장실이 있었다. 급하게 일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통유리 넘어 강줄기를 보듬은 골짜기가 나를 확 끌어안았다. 옷매무새를 다독이며 ‘좋다, 너무 좋다! 진~~짜로 좋다!’ 보는 사람 없어 눈치 볼 것도 없기에 양껏 감정표현을 하였다.
  첫 녹음방송에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금강의 경치와 유원지 안동네 먹거리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금강 요금소의 이상한 광경을 연출하는, 휴게소 안동네 주민소유의 경운기가 요금소 출구로 통행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진행자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금강 휴게소를 알려달라는 물음에,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금강 휴게소 화장실은 생리현상만 해결하면 안 됩니다. 통유리 너머의 경치가 일품이니 꼭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라고 했었다.
  정리를 목적으로 장롱에서 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많기도 많다. 버릴 수도 없고 보관할 수도 없는 것이 골치가 아파졌다. 버리자니 제각기 하나하나 추억의 향이 담겨 있고 보관하자니 짐이었다. 오늘 같은 마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마음 가벼운 날 정리하기로 하고 도로 옷장으로 주섬주섬 넣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것도 나에게는 재산일 수 있는데.......’
 
 
 
■ 아쉬운 삶
   - 박근석

 
 각설이 옷을 벗겨 입은 듯, 미세먼지로 뿌연 봄날 출근길. 겨울 끝자락부터 기다리던 벚꽃이 피었다. 브레이크를 밟고 창밖 풍경에 호들갑을 떨어야 나다운데, 그냥 지나쳤다. 긴 터널의 깜깜함을 이겨낸 꽃을 반기지도 않으며......
  사무실로 들어서니 접시에 시들시들한 사과껍질 위로 축 처진 알맹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 목 탄다.” 어제의 찌꺼기인 사과껍질이 짜증에서 갈증으로 확 밀려왔다.
  한 컵의 냉수를 들이켜고 창문 열어 ‘후~~~’ 거칠게 숨을 쏟아냈다.
  7시 40분 아침이 활짝 열린 시각. 직장으로 출근하는 성인보다는 등교하는 학생들이 주 고객인 택시 호출 사무실. 정신없이 울어대는 전화기다.
  “따르릉! 따르릉!”
  “네, 감사합니다. 개인 콜 입니다.”
  “거기 택시죠? 여기는 도립 대 기숙사 편의점인데요. 빨리빨리 오세요! 늦으면 안 돼요!”
  “네, 우리 차 꼭 확인하시고 타세요.”
  “교통! 도립 대 기숙사 편의점.”
  “29호 차 이동!”
  얼마 후 기사님의 음성이 거칠게 무전기를 탄다.
  “손님 확인요. 아무도 없어요.”
  나는 재다이얼을 눌러 통화를 시도했다. 다른 차를 탔나? 손님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29호 차! 회차하세요.” 한 건의 호출업무가 매듭 되었다.
  종종 약속 개념 없는 학생들은 호출해놓고도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 차, 타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빈 차 타고 가 버릴 거면서 호출을 왜 하는 것인지 이해 안 되는 행동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많이도 변했다. 예전 같으면 돈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택시를 학생이나 제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주 고객이 되었으니 말이다. 집집이 승용차가 거의 다 있으니 내국인 직장인이 택시 타고 출근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따르릉! 따르릉!”
  “안녕하세요, 개인 콜입니다.”
  “상고 아래 편의점으로 빨리빨리 차 좀 보내주세요! 빨리빨리요!”
  “네, 감사합니다.”
  “문주! 상고, 아래 편의점”
  “74호 차 이동”
  잠시 후 기사님의 목소리가 ‘삑삑’ 기계음 뒤로 흐른다. 차에 외투가 있으니 학생에게 연락해 달란다. 나는 학생 휴대전화 문자로 ‘겉옷 보관하고 있으니 연락 필요 함.’ 과 함께 기사님 연락처를 남겨 놓았다. 바쁜 아침이라 정신도 없겠지만 요즘 학생들은 물자가 풍부한 세상에서 팔자가 늘어져라 산다. 신주머니나 체육복을 잃어버려도 찾을 생각도 않으니 말이다. 전화번호를 역추적하여 잃은 물건을 찾아주려고 하면 그거 없어도 된다고 끊어버린다. 새것으로 바꿀 핑계가 생긴 것처럼 좋아하기도 한다.
  전화벨이 잠자는 시간. 허리를 좌우로 흔드니 의자가 돈다. 의자 따라, 돌고 도는 기억이 빛바랜 과거사진 한 장을 끄집어내었다. 바지 입은 아들 같은 딸과 어깨동무한 노란빛 외투를 입은 딸 같은 아들 모습이다. 너나없이 모두가 아껴 살았던 그 시절. 딸 옷을 사게 되면 아들인 동생에게 물려 입히려고 치마 한번 맘 놓고 사지 못하고 바지를 샀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그렇게 키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딸은 남편처럼 듬직하고, 아들은 딸보다도 더 예쁜 짓을 하며 성장했다. 정리하자면 아들 같은 딸, 딸 같은 아들이다.
  일과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려 나서는데 대로변에 활짝 핀 벚꽃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나보다도 성질 급한 풍성한 벚꽃을 머리에 담으려 어부동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소문 없이 혼자 가는 꽃길도 괜찮다 싶다. “와! 아~~”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꽃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어서 오시라 하트모양으로 팔 벌려 반기는 꽃길을 보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혼자 보다니...... ‘지난 일요일 딸이 집에 왔었을 때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뒤에서 빵빵거린다. 룸미러로 보니 차 꼬리가 10대도 넘는 것 같다.
  ‘아이큐나!’ 꿀벌 한 마리 없는 벚꽃길에 취해 정차하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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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11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작품은 
박근석 씨의「멀어진 날들」과 「아쉬운 삶」 두 편의 작품이다.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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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선자들께서는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 운영자 메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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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거주지 주소(상장 우편발송용), 은행 및 온라인계좌번호(상금 입금용)를 
신속하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상금 입금 및 상장 우편발송은 15일 이내에 처리됩니다.

운영자 메일 : sahachanc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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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작가 여러분!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당선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매회 실시되는 <창작콘테스트>에 
끊임없이 도전만 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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