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제16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by korean posted Apr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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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16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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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16차 당선자를 맞았다. 이번 제16차 공모 또한 응모자들의 의욕을 고취하겠다는 의미로 금,은,동상의 당선작을 모두 냈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응모자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이번 <창작콘테스트> 제16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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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 농아(聾啞) 물고기가 부르는 노래
   - 김수진


틈 사이에서 세상의 소란과 공기가 파열음을 일으킨다
그리고 한 줌의 짙은 빗물
바람은 가끔은 물고기의 집이 된다
물고기의 정갈한 비늘이 어둠의 밑바닥까지 침투한다
밤하늘을 자맥질하며 사력을 다해 바람을 거슬러 오른다
바람은 자꾸만 물고기를 뒤쫓았고
물고기의 울대엔 나른한 바닷소리가 났다
노랗게 휘청이는 소리였다
심해(深海)를 헤엄치는 오랜 갈증의 소리,
작은 포효로 기억될 물고기의 소리,
길을 잃은 참새들이 젖은 몸을 말리고
계절은 모두들 힘 있게 주저앉았다
물고기는 그렇게 소리 없는 풍경을 뻐끔거렸고
한참만에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한껏 늘어진 바람뿐이었다
쉽게 허물어지는 바람과 푸짐하지 못한 햇볕,
물고기는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심해(深海)를 노래했다
크고 작은 크기로 뭉개지던 소리는
벚꽃처럼 투망질되고,
누군가는 낡은 비닐을 향해 손을 뻗기도 했다
물고기는 허물어진 바람의 윤곽이
자신의 속살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노래 속으로 끝없이 헤엄쳤다
 
 
 
■ 달을 품은 등대
   - 김수진

 
아버지는 오래도록 등대였고
밤을 이끌며 섬이 되도록 살았대요
촘촘히 그물망 마다 걸려있는 아버지의 생은
언제나 조각달을 쥐고 있어요
수면을 달리며 빈 배가 되어 흘러가는 밤에도
노 저어 온 길은 죄다 낡고 낮은 집들이었어요
아기의 깊은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새벽의 달들에게
아버진 기꺼이 제일가는 외딴집이 되어주었지요
시시때때로 전복되는 파도에 빈 집이 된 바다,
오랜 결박과 어둠은 언제나 길을 잃었어요
눈꺼풀을 치뜬 바람,
그 밑엔 항상 아버지가 덧칠해져있고
바람을 거스를 줄 알아야한다는 말만
뭉게뭉게 피어났답니다
그렇게 애기 업은 동상처럼 달이 휜 허리에 걸릴 때까지
아버지는 등대가 되었어요
이따금 밤이 너무 쉽게 찾아오면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알몸으로 떨었구요
꽃잎들이 모여 울 땐, 나도 등대가 되었어요
집채만 한 크기의 파도가 몰려올 때면
아버지는 바다와 같이 살라고 했지요
나는 물러서야 할 자리에서
순종(順從)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하류에서 상류로
바람의 말을 계절 사이사이 띄워 보내며
아버지의 생을 고이 접어 보냈답니다
목덜미를 쓸고 지나가는 오랜 염원들은
새의 날개가 되어 쉼 없이 바다를 떠돌았어요

 
 
 
■ 바람의 꿈을 거닐다
   - 김수진

 
간판 없는 슈퍼, 다대포 해수욕장을 홀로 지키고 섰다
사람들은 허물어져가는 이곳을 모두 행복슈퍼라고 불렀고,
허리가 파도만큼 굽은 노파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은 모두 노파를 동백꽃 할머니라고 불렀다
여름바다의 축제가 시작되면 노파가 피워낸 이야기는
모두 모래 위를 거닐었다
조개의 꿈을 하늘 높이 전해주기도 하고
흰 포말로 해초들의 집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일출과 일몰의 꽃, 발길 닿는 곳마다
바람과 아이들은
서로를 다대포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젖 냄새와 물러진 세월은 모두 바다와 함께했다
노파는 틈만나면 바람의 꿈을 키웠고
바람이 밤잠을 설쳐가며 하늘 높이 쌓은 모래성은
누군가의 안식처와 보금자리,
돋보기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밤은
뱃고동을 울리지 않아도 별이 가득했다
어제 오늘의 순간들을 하늘 높이 실타래로 감으면
어떤 이는 떨어진 유년을 줍기도 하고,
바람이 스치는 옷깃에 자갈들의 발자취가 새겨지기도 했다
붉은 몸뚱어리로 쓰는 생,
바다는 바람의 꿈을 등에 이고 긴 여행을 떠났다
행복 슈퍼는 언제나처럼 아이들이 뛰어놀았고
오랜 잉태의 순간이
다대포의 노을 위로 자라기 시작했다

 
 
 
■ 여자의 내부엔 섬의 흔적이 흐르고 있다
   - 김수진

 
덜커덩 덜커덩, 머리를 질끈 동여 맨 여자
풍경들이 줄지어 선 곳에서
이끼처럼 붙어있다
종착역엔 등걸잠 자던 플라타너스 몇몇만 마중나와
여자를 질겅질겅 씹어댔다
꽃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떠나온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여자를 삼켰다
뜬 눈으로 지내온 시간 동안
여자의 내부엔 섬의 흔적이 흐르고 있었다
한 번도 부푼 적이 없었던 꿈,
여자의 숲의 가장 안쪽자리에서부터
섬은 발자국을 새기고 있다
대합실 칸은 또다시 적막이라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여자에게 종착역은 늘 가파른 곳이었다
바다는 여자의 숨을 따라
바람의 집으로 간다
바다의 내음이 나라는 마당을 만드는 곳,
섬은 여자를 지탱하며 언젠가 올 막차를 기다린다
어둠은 길게 늘어진 개밥바라기를 씹고
구름은 여전히 레일 위를 달리는 중이다
 
 
 
■ 비곱등이 삼촌 
   - 김수진

 
이리로 오세요. 한 층 더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행복백화점 지하주차장엔
비좁은 밤을 껴입은 우리 삼촌이 살아요
‘光’자 돌림 이름인 삼촌은 햇빛을 싫어했어요
세상의 모든 풍경들은 어둠에 차단된 지 오래라서
이곳엔 춥고 낮은 배경음만 웅장하지요
사이렌을 울리는 백일홍 꽃잎은 한 달 치 봉급처럼 가볍고
키가 작은 삼촌은 언제나 땅과 가까웠어요
볼록거울에 반사되는 아침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않을게요
구석진 곳에 주차된 삼촌의 가지런한 모습은
깃털처럼 가벼웠고요
삼촌은 자꾸만 급정거하는 하루를 바라보며
차 뒤에서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질근질근 씹었어요
꼭꼭 숨어라, 꼭꼭 숨어라
브레이크를 밟는 게 습관인 사람들은 삼촌에게
따끈하고 푸짐한 연중무휴의 아침을 건네주고
CCTV 속 삼촌은 언제나 구부정한 뒷모습이었지요
삼촌은 사람들의 말소리를 귀담아 듣는 걸 좋아했어요
무전기는 여전히 통신불능,
후진하고 있을지도 모를 허기진 바람만 앉았다가요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삼촌의 생은 비상할 수 있을까요
언제쯤 삼촌에게도 알맞게 자리 잡을 곳이 생길까요
주차선 칸마다 별자리가 앉았다가요
어두운 입구엔 종달새가 어둠을 한 입 베어 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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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당선작 심사평


  제16차 <창작콘테스트> 금상은 시(詩)부문 김수진 씨의「농아(聾啞) 물고기가 부르는 노래」외 네 편의 시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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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에케 호모
이 언

 


  장기수는 물이 말라버린 어정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복역하기 전까지 물이 고여 있었다던 어정의 밑바닥은 마른 혓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나는 취재용 카메라로 솔기가 터진 장기수의 낡은 양복과 시커먼 우물 안을 번갈아 찍었다.  

  예전에는 이곳을 더운 우물 골이라고 불렀습니다. 

  장기수가 말했다. 나는 뷰파인더를 통해 그를 바라보았다. 장기수는 어정의 모서리에 몸을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있었다. 금세라도 어정이 혀를 내밀어 그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장기수(長期囚)라고해서 풍채도 좋고 흉포한 사람일 줄 알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그는 키가 작고 왜소했다. 여러모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우물 안을 걷고 있는 겁니다. 

  뜻 모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장기수는 훈정동(薰井洞)이라 적힌 도로 표지판을 가리키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고문 후유증으로 마비된 입꼬리는 웃을 때마다 일그러져 그는 웃어도 우는 것처럼 보였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었다. 거리는 오염된 물속처럼 뿌옇게 흐려 있었다. 황사용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함께 훈정동 일대를 걷는 내내 장기수는 두 걸음을 못가고 멈춰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는 오른 다리를 조금 절면서 걸었다. 걸음이 느린 사람이었다. 나는 그와 보폭을 맞추며 걷다가도 점차 빨라졌고, 한참 뒤에 보면 그는 나와 다섯 걸음은 떨어진 곳에서 걷고 있었다. 그는 처음 땅을 밟은 사람처럼 여기저기 기웃대고, 걸음을 멈추고 어딘가를 한참 바라보았다. 자꾸 멈칫대기는 했지만 장기수는 길눈이 어두워 방금 지나쳤던 곳도 헤매는 나와는 다르게 훈정동의 길목을 훤히 꿰고 있었다. 

  바뀐 게 많군요. 

  개량한복을 입고 셀프 카메라를 찍는 학생들을 보며 그는 우는 듯 우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얼떨결에 시작된 동행이었다. 장기수는 수습기자인 내게 훈정동에 함께 가주길 청했다. 

  이곳이 내가 나서 헤엄치던 곳입니다. 

  비전향 장기수로 35년간 복역한 그는 훈정동을 감옥 이전의 고향이라고 했다. 

  여긴 비포장 도로였는데…….

  귀금속거리를 지나며 그는 말했다. 그는 큰 건물이 없는 쪽으로 걸어갔다.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사람도 줄고 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장기수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장기수는 오가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자기, 취재력 시험 본다며. 

  오는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입사 2년차인 오는 항상 나를 자기라 불렀다. 내 노트북 모니터 창에는 지난주에 오에게서 받은 100분 스피치 예상 질문이 띄워져 있었다. 입사 이후 오는 줄곧 내게만 수습기자 실무평가에 도움이 되는 ‘족보’를 건네주곤 했다. 직속 선배가 아닌데도 그랬다. 

  자긴 데이비드 보위랑 닮았거든. 

  오는 말했다. 나는 검색 창에 데이비드 보위를 쳐보았다. 성별이 같다는 걸 빼면 보위는 얼굴이 둥글고, 코볼은 유난히 넓은 나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도와줄까?

  오의 손이 내 가슴팍으로 서서히 내려왔다. 잘 다듬어진 오의 콧수염이 내 볼에 닿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교도관이 있어. 그 사람이 일하는 교도소에 삼십 오년간 복역한 장기수가 있대. 간첩 혐의를 받아서 장기복역 했다던데 전향도 하지 않고 송환기회도 놓쳤다고 하더라구. 지금은 석방돼서 대전에서 같이 석방된 장기수들이랑 살고 있데. 그 사람 융통성도 없고, 사회성이 부족하긴 한데 흥미로운 취재거리라고 하더라. 나한테 취재하라는 걸 특별히 자기한테 알려주는 거야. 시험에서 좋은 점수 받아야지. 

  근데 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한테……. 전 선배 직속도 아닌데.  

  자긴 보위랑 닮았잖아.  

  오가 속삭였다. 오의 손은 어느새 허벅지로 내려와 있었다. 수습기간은 2개월이나 남아 있었고, 실무평가는 바로 다음 주였다. 오의 손은 뜨겁고 축축했다.  

  

  어정이 있는 종묘에서 나온 이후로 장기수와의 대화는 뜨문뜨문 이어지다 곧 끊기곤 했다.

  선생님은 지금 어디서 지내고 계세요?

  나는 취재수첩을 뒤적이며 미리 생각해온 질문들을 장기수에게 늘어놓았다. 장기수가 녹음을 거부해서 애써 가져온 녹음기는 가방 안에 넣어두어야 했다.  

  대전 교구에서 작은 쉼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가족도 없고,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은 다 그곳에 머물도록 해주더군요. 

  장기수는 취재 내내 깍듯한 경어를 사용했다. 편하게 말을 놓으라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 방에서 지내던 습관이 아직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장기수는 교도소를 ‘방’이라 불렀다. 

  취재전화에 긴장되지는 않았나? 삼십 오년 만에 출소하셨는데 심경은 어떠신가? 나와서 무얼 가장 먼저 하고 싶었나? 나는 그를 향해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침착하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어떤 질문에는 짧게, 어떤 질문에는 길게. 

  그런 질문 말고 다른 질문은 없습니까?

  한참 질문에 답을 하던 장기수가 돌연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조금 놀라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나는 기자 양반의 질문이 듣고 싶습니다. 

  지금 했던 질문이 다 제 질문인데요?

  내 말에 장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기자 양반의 질문이 듣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궁금한 것이 없습니까? 

  장기수가 말했다. 오의 말처럼 고집이 센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나는 수첩을 뒤적였다. 동시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통증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다시 한 번 송환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수첩에 적어온 다른 질문들을 장기수에게 던져보았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걷기만 했다. 장기수는 다시 종묘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피가 나는군요.

  한참 걷다 장기수는 내 손을 가리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새끼손톱 거스러미가 벗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공채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 나는 습관처럼 손톱을 뜯었다. 취재력 시험은 수습 공채 전형 중 가장 중요한 시험이었다. 실무과정을 평가하는 박 팀장은 이번 시험을 통해 심사의 당락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동기들은 시험을 준비하며 적성을 의심하게 되었다고 볼멘소리를 하곤 했지만, 나는 그들이 임용시험 합격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임원 중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고, 매주 실시하는 자기PR시간에는 높은 토익점수나 스펙을 언급했다. 아홉 명의 수습사원 중 지방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이렇게 끝내면 안 돼. 장기수와 종묘를 거슬러 올라가며 나는 그럴싸한 질문을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거스러미를 뜯으며 할 말을 고르는 내게 장기수는 난데없이 말했다. 

  인간으로 죽기위해선 인간으로 살아야합니다. 

  그의 말을 수첩에 재빨리 받아 적은 뒤 나는 그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전향을 거부하고 고문을 견디며 내가 되뇌던 말입니다. 

  장기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그는 뭔가를 더 말하려 입술을 달싹대다 어딘가를 쳐다보며 말을 삼켰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에 검은 헬멧에 방패를 든 전경들이 일렬종대로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가 조금 지나있었다. 

  선생님 배고프지 않으세요? 

  전 괜찮습니다.

  장기수는 수감기간동안 하루에 한 끼만 먹던 습관을 출소 후에도 지켜오고 있다고 했다.  

  돈반을 하게 되면 육체도, 정신도 둔해지는 법입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신문사에서 매일 이 시간에 점심을 먹었다. 수습사원들의 점심시간은 한 시부터 한시 반까지 삼십 분 동안 허용되었다. 수습사원들은 함께 점심을 먹기보다는 각자 해결하는 편이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비스킷을 먹거나, 아예 굶거나. 점심을 먹는 삼십 분까지도 평가에 반영되었기에 모두들 빠르게 먹고 삼켰다. 출근을 한 이래로 파블로프의 개처럼 한시만 되면 자동으로 허기가 졌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곧바로 신문사에 들어가 봐야했다. 오가 부탁했던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내일 저녁까지 보내야할 르포 과제를 완성시켜야 했다. 식사를 할 시간은 지금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배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장기수는 내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조금 시장한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식당을 찾기 위해 창덕궁 삼거리로 나와 조금 걸었다. 근처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모양인지 기동대 버스가 거리에 일렬로 늘어서 가드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내게는 익숙한 광경이라 별 감흥 없이 지나쳤지만, 장기수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부산스럽게 차 안을 기웃거리고, 차벽을 두드리고, 심지어 전경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불러도 대답조차하지 않고 무언가를 골몰히 응시하고 있는 장기수를 보자니 슬슬 화가 치밀었다. 이제 그는 점점 차도 쪽으로 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손목을 세게 부여잡고 보도로 끌었다. 순간 그가 놀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 죄송합니다. 

  보도로 돌아가자 장기수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꽉 잡은 손목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리를 걸었다. 장기수는 호기심을 가지고 가게를 구경하지도, 도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저건 뭡니까, 묻지도 않았다. 괜히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나는 그와 두 걸음정도 떨어져 뒤에서 걸었다. 카메라로 그의 뒷모습을 연달아 찍었다. 키가 작은 그는 바지를 접어 입었는데 오른쪽 바짓단이 땅에 끌려 너덜너덜했다. 

  선생님 바지가 끌리는데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말에 그는 작게 웃었다. 웃을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내게 손짓을 한 다음 도보 한쪽으로 가 통이 넓은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오른쪽 무릎에 철심을 여러 개 박은 흔적이 있었다. 

  나는 하지부동을 앓고 있습니다. 오른쪽 다리가 삼 센티 정도 짧지요. 

  고문 기술자가 망치로 무릎을 내리쳤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한 탓에 관절이 어긋나버렸다고 그는 말했다. 후두염, 폐렴과 폐결핵, PTSD……. 장기수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고문으로 생긴 후유증을 나열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병명을 줄줄이 언급하는 장기수를 보며 나는 흠칫 놀랐다. 

  이젠 괜찮습니다. 익숙해졌거든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덧붙여 말했다. 

  위험한 일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우리는 삼거리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근처 한정식집이나 레스토랑에 가고 싶었지만, 무급 인턴으로 일하는 나에겐 칠천 원 정도하는 백반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회사에서 인턴비가 지급되긴 했지만 한 달 버스비 정도의 소액이었다. 회사에서도 나는 야채 크래커나, 삼각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곤 했다. 장기수도 딱히 배고파보이진 않으니까. 핑계를 둘러대며 나는 카페 문을 열었다. 

  카페에 들어선 순간부터 장기수는 상자에 갇힌 쥐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내 손목을 잡고 입구에 멈춰 섰다. 그의 손에서 땀이 나고 있었다. 카페 조명은 광도가 낮았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구석 자리에 앉으려 하는 나를 보며 장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어두운 곳이 싫습니다. 

  카페 안은 점심시간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길을 막고 엉거주춤 서 있는 나와 장기수를 한 번씩 흘낏대며 지나쳤다. 할 수 없이 음료와 샌드위치를 포장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메뉴를 고를 때도 장기수는 오랜 시간을 들였다. 그는 카운터 메뉴판을 가리키며 종업원에게 이건 뭡니까, 그렇다면 저건 뭡니까, 끊임없이 물었다. 종업원은 처음에는 음료의 제조과정이나 재료에 대해 침착하게 설명하다 후에는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제가 대신 골라 드릴까요?

  잠깐만, 잠깐만요. 

  선생님 뒤에 주문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어서요. 

  내 말에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우리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은 팔짱을 낀 채 우리 쪽을 쏘아보거나 빨리 나오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초조하게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오 분 째 카운터에 서 있었다. 장기수는 여전히 메뉴판을 가리키며 저건 뭡니까, 묻고 있었다. 냉담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종업원에게 인사를 한 다음 그를 데리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나는 편의점에서 사온 샌드위치와 캔 커피를 장기수에게 건넸다. 우리는 창경궁 앞에 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그것을 먹었다. 샌드위치를 씹을 때마다 시들어버린 양상추의 식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장기수는 샌드위치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커피만 조금 마셨다. 율곡로 부근에서 추모집회가 벌어지고 있어 주변이 소란했다. 차벽을 치고 있는 경찰들과 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나는 괜히 수첩만 뒤적였다. 소득 없는 인터뷰였다. 답을 받은 질문보다 받지 못한 질문이 더 많았다. 그나마 답을 받은 질문도 녹취 없이 진행되다보니 수첩에 적지 못한 부분이 숱했다. 

  인간으로 죽기 위해선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제대로 적은 것은 그 문장이 유일했다. 취재보고서를 제출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기수는 캔 커피를 손에 쥔 채 고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샌드위치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피곤한 사람이야. 생각하며 시계를 보았다. 벌써 두 시 반이었다. 네 시까지는 신문사에 들어가 봐야했다.  

  저곳이 한때는 동물원이었다는 것 알고 계셨습니까? 

  그는 창경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네?

  내가 형무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창경궁이 아니라 창경원이었습니다. 코끼리도 있었고, 호랑이도 있었죠. 봄이면 다들 창경원에 동물구경 하러가고 꽃구경도 했습니다. 그곳이 한때는 궁이었다는 사실은 잊고서 비단 구렁이가 든 수조 앞에서 사진도 찍고 도시락도 먹었습니다. 모두가 익숙해진 거죠.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개량 한복을 입은 여학생 몇이 돈화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여학생들의 머리 위로 햇살이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감옥에 들어간 이후 처음 십이 년간을 독방에서 지냈습니다. 한 평 정도 되는 작은 방이었죠. 서향으로 난 벽에 작은 들창이 뚫려 있었습니다. 하루 중 내가 가장 기다렸던 시간은 해가 들어오는 시간이었습니다. 무릎에 책받침만한 햇빛을 올려놓고 앉아 있을 때면 그제야 조금 살만해졌습니다. 그 방에서 삶과 죽음 사이는 말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내밀었다. 희고 얇은 머리칼이었다. 

  딱 머리카락 한 올의 틈 밖에는 없습니다. 나의 동료 몇몇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끌려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독방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밥이 들어오는 구멍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구멍으로는 사람의 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끌려갈 때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고문실로 끌려가는 동료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얼굴은 희미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눈만큼은 또렷이 기억납니다. 작고 둥근 눈이었죠. 그 사람은 나를 보고 나는 그 사람을 봤습니다. 찰나지만 그런 순간은 평생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곳에 있으면 말입니다. 겁이 많아집니다. 밤이 오는 게 두렵고, 비명소리가 두렵고, 좁은 곳에 있으면 숨이 막힙니다. 음식도 함부로 못 먹게 되죠. 늘 의심하고 경계합니다. 그리고…… 곧 익숙해집니다. 그 방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게 그겁니다. 본능을 이기며 단식을 감행하고, 교도관들 앞에서 알몸으로 고문을 당하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견딜 만 했습니다. 진정 견딜 수 없는 건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죠. 그 방에서 지내다보면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는 독방에서 잠을 자고, 때가 되면 고문 받는 것을 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엔 공포도 고통도 모두 사라지죠. 

  장기수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어느 날 독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내 무르팍으로 햇살이 내려앉더군요. 신문지를 두 번 접어놓은 것처럼 네모난 햇살이었죠. 따뜻했습니다. 따뜻해서 나는 간만에 낮잠에 들었습니다. 혼몽한 꿈속에서 나는 언젠가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사람을 봤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의 눈을 봤죠. 작고 둥근 눈이요. 그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의 눈 속에 갈고리에 걸린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게 뭔지 몰라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건 나였습니다. 갈고리에 걸린 채 간신히 숨만 내쉬는 고깃덩어리가 나였죠. 나라는 인간은 사라지고 무력한 고깃덩이만 그 방에 남아 있었습니다. 

  장기수는 도중 숨을 골랐다. 길 건너편에서 집회를 하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원남동 사거리 쪽으로 천천히 내려가며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간으로 죽기 위해선 인간으로 살아야한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향을 거부하고 고문을 버틴 것도 다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냈습니다.    

  대단하네요.

  수첩에 그의 말을 받아 적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는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닙니다. 그저……. 

  종로서 경비과장입니다. 해산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불법집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집회를 종료하시기 바랍니다. 불법 행위를 정밀 채집하겠습니다.

  장기수가 무슨 말인가 중얼거렸지만, 그의 목소리는 기동대 버스에서 들리는 집회금지 통고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에 출발했던 훈정동으로 내려갔다. 장기수는 잠자코 걷기만 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훈정동 일대는 소란스러웠다. 무장한 기동대가 피켓을 든 사람들을 막고 기동대 버스는 도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나는 나보다 다섯 걸음정도 뒤처지는 장기수를 기다리며 수첩을 뒤적였다.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해. 자기도 알잖아.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내 어깨를 주무르며 오는 말했다. 자극적인 소재. 나는 중얼댔다. 확실히 지금까지 나온 취재물로는 부족했다. 신문사에 들어가기 전에 심사위원의 구미를 당길만한 소재를 찾아야했다. 나는 뒤를 돌아 장기수를 찾았다. 

  선생님. 

  장기수는 사거리 카페 앞에 멀거니 서 있었다. 선생님. 나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귀를 얼얼하게 할 만큼 큰 비명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음이 소거되었다면 그것은 유쾌한 카니발처럼 보였을 것이다. 색소를 섞은 물줄기가 도로에 쏟아졌고, 사람들은 꼬리를 너울대는 열대어처럼 알록달록한 우비를 입고 뛰어다녔다. 모두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빤히 지켜보았다. 

  그것은 축제가 아니었다. 살수차가 쏘는 물줄기가 시위대를 덮칠 때마다 그들은 폐사 직전의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였다. 전경차 밑바닥에 숨는 사람들과 그들이 뱉어내는 비명이 눅눅한 공기 속을 떠돌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어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초점이 어긋나고 흔들린 사진들. 그런 것들을 지워버릴 새도 없이 물대포가 쏟아졌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도로는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뒤늦게 장기수가 생각났다. 선생님. 나는 사람들 틈을 헤집으며 그를 찾았다. 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 서 있던 노인 하나가 경찰 버스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경찰차에 매인 밧줄을 홀로 당겼다. 그가 밧줄을 당기기 시작하자 물대포가 그에게 조준되어 고스란히 쏟아졌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 위로 색색의 물대포가 쏟아졌다. 노인은 팔로 물대포를 막다 곧 강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함께 시위를 하던 사람 몇이 쓰러진 노인을 보도로 옮겼다. 

  쏘지 마. 물 대포 쏘지 마. 여기 사람 있잖아. 

  사람들의 외침에도 물줄기는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거세졌다. 노인은 둥글게 몸을 만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장기수를 찾았다. 선생님. 장기수는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바짓단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전경들이 시위대를 전부 연행하고, 노인이 응급차에 호송된 후에도 장기수는 푹 젖은 도로를 바라보며 그곳에 서 있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내 물음에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서둘러 수첩을 꺼냈다. 입술만 깨물던 장기수가 울음을 터트린 건 그때였다. 오래간 말라 있던 우물이 고이듯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웃는 것도,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얼굴로 그는 울음을 토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수첩만 뒤적이다 나는 수첩에 갈겨 쓴 그의 말을 발견했다.

  인간으로 죽기 위해선 인간으로 살아야한다.

  주머니에 넣은 수첩까지 물에 젖어 잉크가 제멋대로 번져 있었다. 인간으로 죽기 위해선 인간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말을 중얼대며 나는 훈정동의 낯선 거리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그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물비린내가 밀려왔다. 우물 속에 가둬두었던 물이 차올랐다 터진 것처럼 내 몸을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


  몸이 축축했다. 양말도, 구두도, 첫 취재라는 명분으로 애써 입고 온 양복도 모조리 젖어 있었다. 장기수의 바짓단도 젖어 있어 땅에 끌릴 때마다 마찰음이 크게 났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훈정동을 걸었다. 집회가 정리되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종묘도 다시 이전의 고적한 고궁으로 돌아가 있었다. 한참 걷다 장기수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어정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처음처럼 어정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합니까?

  장기수의 목소리가 어정 안에서 크게 울렸다. 나는 대답 없이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는 지금 우물 안을 걷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곳의 지명이 더운 우물골이니까요. 한데 이곳을 나간다고 해서 우리가 우물 안을 벗어났다 할 수 있을까요? 한 평짜리 우리에서만 살던 원숭이는 우리를 벗어나서도 한 평 남짓한 공간만 배회합니다. 익숙해진 거죠. 아직까지 나에게는 그 방에서 살던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습관들은 늘 나를 괴롭게 하지요. 나는 아마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죽을 때까지 그때의 기억 안에서 배회하며 살 겁니다. 난 이미 늙고 지쳤어요. 하지만 당신들은 다릅니다. 당신은 달라요. 우물 안에서 사느냐 모험을 감수하면서 그 밖으로 나가느냐는 오직 나 자신만이 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네 시가 되자 종묘 안에서 모현례를 재현하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외국인 관광객과 견학을 오거나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둥글게 서서 전통 예복을 입고 거둥행렬을 하는 무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나와 장기수도 잠시 길 한편에서 서서 그것을 구경했다. 풍악이 연주되고, 왕과 왕비 역을 맡은 배우들이 가마를 타고 나타났다. 화려한 참배식을 보며 장기수는 우는 듯 우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기자 양반. 

  장기수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나의 질문이 듣고 싶다던 장기수의 말이 떠올랐다. 습관처럼 수첩을 뒤적이다 덮었다. 나는 장기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도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기수의 눈 속에 한 사람이 들어 있었다. 고깃덩어리처럼 일그러져 보이는 사람. 나는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풍악이 고조에 이르자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장기수와 헤어지고 신문사로 천천히 걸어갔다. 옷과 머리는 젖어 있었고, 몸에서는 매캐한 최루액 냄새까지 났다. 돌아가며 장기수 생각을 조금 했다. 긴 낮잠에서 깬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보낸 하루는 희미하고 어렴풋했다. 장기수는 앞으로도 남들보다 다섯 보정도 느리게 걸으면서 세상을 구경할까.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구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지을까. 무엇보다.   

  그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신문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오를 만났다. 오는 외근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취재는 어땠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말없이 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자기, 근데 뭔가 바뀐 것 같은데. 다른 사람 같아. 

  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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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당선작 심사평


  제16차 <창작콘테스트> 은상은 소설부문에 주어졌으며, 수상 영예를 안은 작품은 이 언 씨의 단편소설「에케 호모」이다. 
  이 언 씨의 은상 당선을 축하한다.
이 언 씨는 제15차 <창작콘테스트>에서도 단편소설 화이트 아웃」으로 이미 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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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 첫 사랑의 기억은 새록새록하다
   - 한관식


  사춘기로 접어든, 열세 살쯤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여자애를 찾아 나선 적이 있다. 그다지 말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정류장 먼발치에서 잠깐 잠깐 보는 정도였다. 어느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문득 나섰다. 목적이나 운명으로 덧칠하기엔 참으로 부족하지만 잠자코 있기엔 강렬한 그 무엇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지금 찾아가서 만나지 못하면 시간이 반으로 뚝 분질러져 여자애와 나는, 과거와 현재이거나 낮과 밤이거나 천당과 지옥이거나 겹쳐지지 않는 평행선으로 살아갈 것만 같았다. 주위는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옷깃을 세웠던 추위가 한결 누그러지고 새순이 돋아 봄 향기가 솔솔 했다. 걸음도 가벼웠다. 잘 정돈된 산과 들과 강이 어우러져 세상을 향한 속력을 내고 있었다. 그만큼의 보폭으로 언저리엔 휘파람이 묻어났다.
  한시간정도 걸어갔을까.
  어느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시골동네가 거기에서 거기로, 강을 낀 마을이 만들어 지면 당산나무며 정자가 입구에 자리하고 밥술께나 뜨는 집들이 앞으로 포진해 있는 정도, 어디에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적어도 내 눈엔 꿈꾸는 마을 같았다. 버드나무며 감나무며 대추나무가 받침대처럼 탄탄하게 마을을 결속시켜주고 있었다. 여자애의 이름으로 집을 물었다. 골목의 후미진 곳에는 채 녹지 않은 잔설이 보였다. 그 날, 눈이 내리면 세상 가득 하얀 그리움이 쌓인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하늘 송이로 내리는 지상을 향한 끝없는 착륙은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두 팔을 벌려도, 머리를 젖히고 입을 열며 고스란히 느껴지는 겨울 맛을 음미하면서 인생의 선로를 내려서고 싶지 않는 메시지를 눈 속에서 읽고 있었다. 그러면서 잔설을 밟으며 뽀드득 소리를 귀에 담았다. 처음이고 순결하다면 언제든 들려줄 수 있는 뽀드득 소리를 누구나 준비하고 있을게다. 아니 호감과 관심이 가는 신호로 조심스레 눈을 밟듯 그 소리를 듣기위해 귀를 기울이듯, 안에서 공명되어지는 울림처럼 세상은 여기저기에서 뽀드득 소리를 내야하는 것이 양심이고 예의지 않을까.
  여자애의 집은 언덕배기에 있었다. 탱자나무 담벼락으로 길에서도 집안이 훤히 보였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숨김없이 누구에게나 채집되는 여자애의 일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잠복에 들어갔다. 문제는 장점이 단점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탱자나무 틈새로 쉽게 관찰되지만 집안에 있는 여자애 쪽에서도 내 존재를 알아차릴 위험성이 있기에 은닉하기 좋은 공간을 찾기에 노력을 기울였다. 비루한 강아지 꼴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세월의 훈장을 달고 있는 실한 느티나무를 봤다. 가운데가 비집고 들어가면 안성맞춤인 공간이 만들어져 움푹 패여 있었다. 꼭 그렇게 해야만 될 것처럼 힘겹게 나무속을 파고들어 나무와 한 몸이 되었다. 삼월의 기온은 누그려졌지만 새삼 한기가 몰려들었다. 최대한 몸을 접어 순조로운 호흡에, 가려우면 긁을 수 있는 해소解消 공간까지 밀착확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최대한 몸을 낮추어 여자애의 일거수일투족이 시야視野의 포로로 만들기 위해 좀 더 허술한 탱자나무 틈새를 찾아 제법 시간을 할애했다. 기다린다는 것은 팽팽한 긴장과 순한 구름 한 조각 담는 구심점이라 생각한다. 수액이 오른 나무 둥치 안에서 큰 애벌레처럼 뿔을 꿈꾸고 날개를 꿈꾸는 사슴벌레를 잠깐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졸음이 밀려왔다. 잠들면 안돼! 졸음은 용기를 내어 한 시간을 걸어와 나무속을 채울 내가 있기까지, 동기도 과정도 결과도 무색하게 일순간 무너져 내리게 했다. 골목 어귀에서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 급히 뛰어가는 발자국, 동굴 속에 들어오면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에도 민감해지듯 나는 그 느낌으로 두려움을 감지했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나갈 수 있으련만. 실눈을 치켜뜨고 여자애의 집을 보았을 때 어둠이 그만큼씩 쌓이고 있었다. 동전만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 집엔 과연 여자애가 있을까. 자신을 찾아 온 누가, 한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모습만 보고 간다는 일념으로 애벌레처럼 꿈틀거린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이대로 나무 화석이 되어도 좋다고 어둠에 엉켜있는 나를 묵인하는 숨죽인 열세 살을 알고 있을까.
  부산한 움직임과 거친 흔들림, 걱정하는 탄식들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눈을 뜨게 했다. 달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얼굴로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과 마주했다. 처음엔 거지애로, 곧 미친 거지애로 결론이 나있었다. 허긴 그럴만한 것이 멀쩡한 정신으로 생면부지의 마을로 찾아와 나무속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는 상황이 딱 들어맞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릴 때 거기, 사람들 속에서 여자애가 보였다. 간절한 기다림에 맞닥뜨리는 눈부신 빛 한 점을 본 듯 잠깐 미간을 찡그렸다. 여자애를 기다렸던 시간들은 헛바퀴처럼 겉돌며 애간장을 녹였지만 그러다가 지쳐 비록 잠들었지만, 주위를 에워싼 사람들 안에 민망함도, 뭐라고 변명하고 싶은 서러움도 수습되는듯했다. 그렇지만 내 꼴은 말이 아니었다. 시궁창에서 금방 나온 생쥐 꼴로 그보다 고양이의 추적을 벗어나기 위해 전속력으로 살기위한 달음박질이 시작됐다. 달아나면서 하늘을 봤다. 하늘엔 먹지 조각들이 조각천 마냥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뒤꼍에서 바라보던 달빛도 격이 다른 우아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갔던 길을 돌아올 뿐인데도 그 길에선 꽃망울이 맺히는 엄숙하고 경건한 생生의 시작을 본 듯도 했다. 또한 사춘기의 시작이었다. 어떻게 왔을까. 기적처럼 집에 왔을 때 눈물범벅 흙 범벅으로 꼬질꼬질한 모습이 거울 앞에 선 기막힌 대면對面이었다. 그제야 달려오며 흘렀던 눈물과는 별개別個로 뚝뚝 손등으로 맺히는 방울을 훔쳐내었다. 사람들 속에서 여자애의 생소하고 멀뚱한 눈망울이 자꾸만 기억났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생고생이었는데.
  이것이 첫사랑으로 꼽아야 옳을까. 그날의 새벽은 옅어지면서 한 겹씩 빛을 층층이 쌓기에 바빴다. 나는 이후에도 여자애를 정류장에서 보았지만 여전히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각인 된 기억은 세포를 송두리째 깨우듯 우당탕탕 내안에서 뛰어다닌다. 층간소음도 뒷전인 채, 열세 살의 치기는 무슨 똥고집에서 시작 되었는지 사십 사년이 지난 지금도 종아리에 흙 범벅이 만져진다. 그리고 그 날로 돌아가 여자애집을 찾기에 나선다면 나는 그 선택이 옳았음에 한 표를 던진다. 다만 단도리를 하듯 신발 끈의 매듭을 불끈 맬 것이다.  



■ 검둥이와 흰둥이
   - 한관식


  추석 연휴가 끝날 즈음 태풍 매미가 장대비를 몰고 왔다. 굵은 빗줄기가 집 앞 도로를 때리는 소리는, 감히 밖을 나가려는 생각을 접게 했다. 방안에서 뒤척거리며 티비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강아지 울음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환청이거나 집중하지 못한 티비 속 볼륨안의 소리라고 간과했다. 티비 채널을 여기저기 틀어보고 무료한 시간을 메꿀 대안이 없을까 궁리 중에 오늘이 토요일인 것을 깨달았다. 일요일 약속이 생각났고 미장원에서 머리 손질을 하고 간다는 생각까지 났다. 미장원은 정기적으로 일요일 휴무를 하고 있는 터라 마음이 급해졌다. 이 장대비에도 다녀오는 것이 내일 약속에 대한 예의라고 결론을 내렸다.
  막상 미장원에 간다고 대문을 열어보니 뒷걸음치기 알맞게 비는 퍼붓고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우산을 펼쳐 집 앞 도로에 주차해둔 차를 향해 뛰어갔다. 신속한 동작으로 차문을 열고 닫고, 내안에 이토록 기민한 동작이 숨어 있었던가. 차안에서 시동을 켜면서 신기해했다. 마치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무사히 착지한 느낌을 은근히 누렸다. 농가 주택 앞에는 경운기가 정차해 있기 마련이다. 집 주위에도 농사짓는 이웃들이 있어 세워 둔 경운기를 피해 차를 빼내었다. 강아지 울음소리가 또 들렸다. 누구네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 들여놓았을 게다.
비는 잦아지지 않았다. 미장원에 다녀와 경운기 뒤에 주차하기 위해 차를 조금씩 전진하고 있을 때 빈 종이상자가 눈에 띄었다. 경운기 밑에 그래도 비 피할 만한 공간을 확보한 종이상자 안에서 꼼지락 거리는 생물체가 감지되었다. 차창 밖은 이미 빗물이 흥건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다녀가는 윈도우 브로시 사이로 그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움직이는 물체에 시선을 고정하자 울음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바닥에 고인 빗물은 종이상자 밑을 흥건히 적셔 이미 물을 한 움큼 뒤집어 쓴 꼴을 한 강아지 두 마리가 어쩔 줄 몰라 원을 그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종이상자를 벗어나면 쏟아지는 빗줄기에 자신들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감지한 이유일까. 생과사의 경계선이 종이상자를 지키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 이유일까. 강아지 두 마리는 낑낑 거리며 전의를 상실한 듯 맴을 돌다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짐승의 털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차안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전해지는 두 마리 강아지의 일정한 리듬이 내 마음을 쿵쿵 때리고 있었다. 종이상자안과 차안에 느껴지는 연결고리가 쉼 없이 철컥 채워졌다가 눈을 질끈 감으면 다시 멀어지고 눈을 뜨면 다시 채워지기를 몇 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용기가 필요했다.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차에서 내렸다. 한 마리씩 안아들고 무조건 집안으로 뛰어 들어와 보일러실에 옮겨 놓았다. 강아지 두 마리의 불안함과 긴장감이 내손에는 여전히 떨림으로 남아 있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나를 보며 강아지들은 목청껏 소리 높여 울부짖기 시작했다. 난감했다. 마른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아주며 괜한 일을 한 것이 아닐까 후회하기 시작했다. 눈과 귀를 한번쯤 감아도 될 법한 상황에서 그리 잘나지 못한 양심을 내세울 일은 뭔가.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먹을 것을 챙겨주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왔다. 개들은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이빨이 빠진다는, 누군가에게 들었을 말을 떠올리며 후후 불어 밥을 식히고 멸치를 넣어 제법 그럴싸하게 개밥처럼 만들었다. 혹시나 밥의 온기는 적당한가, 개처럼 개밥에 먼저 혀를 디밀었다. 그다지 자극적인 온도는 아니었다. 강아지를 버린 주인을 탓해야하나.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저 일갈하는 빗줄기를 탓해야하나. 일 그램 남은 내 양심을 탓해야하나.
지금 나는 개밥을 맛보았다. 보일러실로 걸음을 옮기며 비만 그치면 강아지가 들어오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일 그램 남은 양심도 용서할거라 생각했다. 우리 집과 떨어진 어느 곳에 나도 종이상자 안에 실어 보내리라. 적어도 맑은 날을 택해, 강아지 두 마리는 버려진 줄 모르고 마음껏 뛰어다니게. 그러다가 눈 밝고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나 마당 안에 구르기도 하고 뛰기도 할 검둥이와 흰둥이 그 참한 이름까지 불러지며.
  찬장에 쟁여둔 그릇중 하나에 개밥을 담아 강아지들 앞에 놓자 미친 듯이 달려들어 살자고 먹어댔다. 저 왕성한 식욕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먹는 것조차 비실거린다면 데려온 것에 대한 후회가 배가 되었을 것이다. 숨죽이며 지켜보면서 무언지 모를 울컥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두 생명을 살려내었다. 기세 좋은 빗속에서 헤매다가 서서히 죽어 갈 강아지 두 마리가 내 눈과 귀를 향해 울부짖었다. 망설임 끝에 안아들었지만 밥그릇을 핥는, 빛나는 생명이 저기 있지 않는가. 내 임무는 계속 되어야한다.
  다행이다. 배고픔에 울어댔고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에 더 크게 울어댔구나. 평정을 찾은 강아지들은 가장 적당한 보일러 구석을 찾아 이리 눕고 저리 누워 세상 속으로 한 칸 발을 들여놓는 모습이 나를 기분 좋게 하였다. 그렇지만 정들면 안 된다는 금을 그어놓고.
여덟 다리 뻗고 자는 모습에서 비 그치면 내놓겠다는 생각을 멈추게 했다. 먼저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제외하고 마당 넓은 친구 셋을 물망에 올렸다. 보험으로 한 친구를 남겨두고 두 친구에게 강아지 데려가라고 떼를 썼다. 마누라에게 물어 본다는 두 친구 다 응답이 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한 마리씩 데려갔다. 으르렁 대며 주둥이를 박고 먹던 빈 그릇과 바닥에 깔아준 잔뜩 털 묻은 스웨트셔츠를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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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16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에 이름을 올리게 된 작품은 한관식 씨의 수필「첫 사랑의 기억은 새록새록하다」외 1편이다. 
  한관식 씨의 동상 당선을 축하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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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선자들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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