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제3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by korean posted Feb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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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3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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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 제3차 공모에 제1차 공모는 물론 제2차 공모보다 훨씬 많은 작품들이 선을 보여 그만큼 기쁨이 배가 되었으며,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이 많아 우열을 가리는데 어려움도 많았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응모자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창작콘테스트> 제3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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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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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나와 당신의 파리
김보경

 
 
   왜 하필, 그 모양으로 내 앞에 앉아있어?
 
   스무 살 이후로 오랫동안 내 몸 어딘가 숨어있던 용기가 쿨럭, 하고 올라왔다.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다. 그녀와 나 사이에 오고가는 것이라곤 낮은 시계초침 소리뿐이었다. 흔한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새벽녘, 수명이 거의 다해 끝이 어두운 형광등이 오직 우리를 위해 마지막 힘을 모두 쏟고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게 눈뜨면 사라질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얇은 눈꺼풀 위로 온갖 생각들이 달라붙었다. 지난 십 년 간의 위태롭던 평화와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기억들. 그러다가 마음 저만치 밀려나 있던, 찌그러진 옛 기억이 생각났다.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눈꺼풀, 그 위로 가벼운 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내 눈 위를 맴돌며 바짝 날이 선 손톱으로 칠판을 긁어내리는 것 같은 소리로 울었다. 그것은 정민의 특기였다, 그녀만이 낼 수 있는.
 
   정말, 정말, 정민이 돌아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대로 피할 수만은 없다. 그게 내가 눈을 다시 뜬 이유였다. 십 여분 정도 흘렀을까, 싶었던 시간은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동이 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면서 눈물을 찔끔 흘린 모양인지, 마른 눈물에 눈이 자꾸만 간지러웠다.
눈을 비비자 세상이 환히 보였다. 사실 세상이랄 것도 없는, 좁고 낯익은 원룸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지만, 벽 한 켠에 바짝 달라붙어 앉은 정민을 보자 세상이 달라보였다. 분명 정민은 다시 살아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이 얼마나 바라고, 꿈꾸고, 기도했던 일이던가.
   나는 천천히 미끄러운 방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초여름의 아침은 일찍 밝았고, 조금 습했다. 내가 일어나자 정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아주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훌쩍 날아올랐다. 깊은 새벽 사이, 깜박임이 더욱 심해진 형광등을 향해 정민은 빠르게 날개를 움직였다. 아무리 꺼져가는 불빛이라지만,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 뜨거운 게 아닐까.
   나는 손을 휘휘 내저어 그녀의 진로를 막으려 했다. 비교적 큰 키 덕에 뒤꿈치만 살짝 들어 손을 올리면 정민에게 닿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을 뻗으면 뻗을수록 그녀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이리저리 도망을 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연거푸 허공에 헛손질을 하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좁은 원룸의 바닥은 습하고, 환기 되지 않은 공기는 탁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느슨하게 두 다리를 뻗고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흰 벽지를 바탕으로 정민은 검은 점이 되어 보기 좋게 날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일어나길 포기하고 정민을 따라, 그 검은 점을 따라, 눈을 굴렸다. 그러자 스르르 다시 잠이 쏟아졌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해볼까.
 
   나는 가수면 상태에 접어든 것 같았다. 감은 눈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생각지도 못한 옛 골목길로 나를 데려갔다.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저녁의 골목길,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시각이다. 낡은 다세대주택이 빽빽이 들어찬 골목길에 어둠이 내린다. 잔돌이 많이 섞인 아스팔트길에 빗물들이 고여 있고, 내 눈 앞에는 그 고인 빗물을 질척이며 걸어가는 정민이 보인다.
   비닐우산을 쓰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뒷모습이 마치 점처럼 보인다. 정민의 등이 저렇게 작았었나. 나는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깜짝 놀라게 만들 생각으로 천천히 숨죽여 뒤따른다, 살금살금. 그러다가 고장 난 CD마냥 점점 걸음이 느려진다. 한없이. 나는 정민에게 달려간다. 정민은 제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지나 몇 걸음 더 걸어가더니 골목길에 주저앉아버린다. 그녀가 앉은 곳은 그녀 집 바로 옆에 위치한 우리 집이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나는 걱정스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어깨도 만져본다. 고개도 돌려본다.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다. 쭈그려 앉은 정민의 비닐우산 위로 비가 더 굵어진다. 정민이 날 올려다본다. 아무 말 없이 올려다본다. 계속, 그렇게 올려다본다. 그리고 묻는다. 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고개를 젓는다. 비오는 날, 흙을 뚫고나온 지렁이마냥 그녀의 속내를 읽을 수 없다. 정민이 웃는지 우는지 모를 일그러진 입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 한다. 뭐라구? 나는 되물어본다. 골목길은 조용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빗소리 탓일까. 정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힘주어 말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역시나 두 귀는 먹먹할 뿐이다. 나는 온 몸의 신경을 동원해 귀를 열어본다.

   제발, 제발 들려라. 뭐라…구?
   그 순간, 귓바퀴에 훅 하고 바람이 통하는가 싶더니 투박하고 거친 마찰음 소리가 귀를 찢고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니 이미 날이 다 밝아 있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끌어 현관으로 갔다. 주먹 크기의 현관 손잡이를 잡자 냉기가 돌아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왜 그래, 많이 아파?”
   문을 열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양 손에 마트 상표가 붙은 봉지를 바리바리 들고,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건, 수아였다. 멀뚱멀뚱 서 있는 나를 밀치고 수아는 성큼성큼 원룸으로 들어섰다. 오래 전 생일선물로 내가 사줬던 파란 에나멜 구두가 아무렇게나 벗겨져 나뒹굴었다. 굽이 닳은 구두를 바라보다가 불쑥 재채기가 나와 코가 시큰거렸다.
   “열이 심하잖아. 며칠 째 결근에 연락도 안 되니까, 걱정 많이 했어.”
   내 재채기 소리를 듣고 다가온 수아가 제 이마와 내 이마를 번갈아 만져 보며 말했다. 나는 가만히 수아의 손을 잡아 내리곤 식탁에 걸터앉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정오가 넘었다. 마트 봉지 사이를 비집고 나온 죽 재료들을 보자, 배에서 꾸르륵 하고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이 원룸에 정민과 함께 들어온 그 며칠 전부터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침도 삼킬 수 없을 만큼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은 거야?”
   물 한 컵을 단숨에 비우자 냄비를 달그락거리던 수아가 물었다. 나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괜찮은 건가, 나는. 어떤 것이 괜찮은 상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수아는 30분도 안 걸려 뜨거운 죽 한 그릇을 뚝딱 식탁 위에 올렸다. 수아의 인맥으로 다니게 된 작은 무역회사는 나 없이도 괜찮을 것이다. 무단결근을 며칠 째 해도 연락 한 번 없는 걸 보니, 이참에 근질근질하던 뾰루지를 짜버린 것 마냥 기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고소한 냄새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채소죽이 식욕을 자극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내 말에 맞은편에 앉은 수아가 턱을 괴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수아는 엄마같은 여자였다. 진짜 나의 엄마에게서도 느껴본 지 오래인 태아의 기분을, 나는 수아와 마주할 때마다 느꼈다. 수아는 끊임없이 나에게 탯줄로 연결된 영양분을 나눠주었다. 수아에게는 이따금 따뜻하지만 축축하고, 부드럽지만 비릿한 향내가 났다.
   “청소 좀 하지 이게 뭐야.”
   나는 다 먹은 죽 그릇을 싱크대에 넣기 위해 일어서다 우뚝 제 자리에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자, 수아가 콘센트에 진공청소기를 꽂고 있었다. 수아는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서 청소기의 전원 버튼을 올렸다. 곧 진공청소기 특유의 굉음이 원룸에 울려 퍼졌다. 청소기에서는 엄청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수아는 규칙적이고 빠르게 청소기를 몰았다. 나는 죽 그릇을 내려두고 급히 사방을 둘러봤다.
까맣고 작은 날개! 정민은 구석진 귀퉁이에서 바보같이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두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불안함에 떨고 있으면서도 그저, 제 자리에 앉아 묵묵히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쓰레기통에 단 게 묻어 있으니까 벌레가 들끓지.”
수아는 구석의 쓰레기통에서 초콜렛 부스러기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청소기의 세기를 더욱 높였다.
   “이놈의 파리.”
   수아의 중얼거림과 함께 청소기의 주둥이가 허공을 향해 들렸다. 강력한 바람이 정민을 빨아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댔다. 나는 좁은 원룸을 가로질러 미친 듯이 달려갔다. 머리가 아프고 삼킨 죽 알갱이가 거꾸로 솟았다. 이건,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 마.”
   나는 벽으로 온 몸을 던졌다. 둥글게 만 등 위로 점차 청소기의 바람이 잦아들었다. 웅크리고 앉아 정민을 바라봤다. 내가 만든 그늘 안에는, 손톱보다 작은 파리 한 마리가 벽을 향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수아가 뭐라 말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 작은 정민의 등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정민은 변한 게 없었다. 너무 놀라거나 두려운 일이 생기면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숨만 고르는 모습 또한 예전 그대로였다. 나는 가만히 1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가만히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정민을 떠올렸다.
 
 
   지은 지 오래된 낡은 다세대 주택은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늘 어두웠다. 바래고 뜯어진 벽지 위에 겹겹이 새 벽지를 덧댄, 그 차가운 벽에 몸을 의지한 채 정민은 계속 나에게 전화를 했다. 아마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해서 통화키를 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핸드폰을 꺼둔 뒤였고, 정민은 그 뒤로도 1주일을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냉랭한 소리를 되들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찾은 정민의 집에서, 나는 무릎에 얼굴을 푹 묻고 그 오래된 벽에 기대 앉은 정민을 만났다. 나는 그때 어떤 말을 늘어놓았던 걸까. 주절주절, 또 주절주절.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지도 못한 채 미안해, 하지만, 따위의 말을 읊조렸던 것 같다. 그때 만약 정민이 온 힘을 다해 나를 때렸다거나, 왜 혼자 도망가느냐며 욕을 했다면 마음이 더 후련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민은 그저 끽끽거리며 울기만 했다. 적막한 집에 정민이 내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그 소리에 속이 울렁거려 나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아 버렸다. 내가 더 이상 할 말을 못 찾고 우두커니 서 있자, 그제야 정민이 입을 열었다.
끝이지?
그게 내가 들은 정민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정민과 나 사이로 수아의 악 받힌 소리가 들어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아는 맨발로 복도에 서 있었고, 나는 열린 현관문을 잡고 있었다. 흰 복도 타일 위에 버려진 수아의 파란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수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와 함께한 3년의 시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눈빛이었다. 끝이 야물어 가끔 나를 기죽게 하기도 했던, 그 눈꼬리가 심하게 흔들려 작아지고 있었다.
   나도 지금의 상황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아는 눈물을 훔치며 구두를 찾아 신었다. 그리고는 이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또각또각, 수아의 구두소리가 힘을 잃을 때까지 기다리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넘어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멍하니 앉은 내 옆으로 작게 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정민이 다가왔다. 그리고 내 곁을 지그재그로 부드럽게 날았다. 그 비행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문득, 파노라마처럼 방금 전 일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기억나기 시작했다. 내가 몸을 감싸 정민을 지키던 것, 수아 손에 들려 있던 청소기를 빼앗아 집어 던진 것, 청소기 파편이 바닥을 뒹굴던 것, 당장 꺼지라고 욕지거리를 하며 거칠게 수아의 팔목을 잡고 복도로 내쫒던 것,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수아의 어지러운 눈빛.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당장 수아의 뒤를 쫒아가 사과하고 그녀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테니 뛰어가면 수아를 만날 수 있었다. 제대로 이야기를 한다면,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녀라면 엄마처럼 나를 품에 안고 달래줄지도 몰라. 하지만 그 뿐, 나는 더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정민이 다시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수아가 떠난 원룸은 다시 고요해졌다. 창을 활짝 열어 두었지만, 정민은 창문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내 주위만 뱅글뱅글 돌았다. 나는 물끄러미 정민의 비행을 구경했다. 그녀는 튕기듯 날아올랐다가 꼬불꼬불 원을 그리며 수직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아찔해 더는 쳐다볼 수 없었다. 정민은 다시 살아나서도 지난 생을 잊지 못하고 있어 보였다. 가슴 한 구석이 우릿해졌다. 정민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자꾸만 간신히 잊고 있었던 옛 일들이 머릿속에서 튀어 오르고 있었다. 누르고 또 눌러도 한 번 떠오른 기억들은 계속 내 머리를 뒤집어 놨다.
 
 
   그  날은 정민이 가출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사흘 째 되던 날이었다. 정민의 부모님은 계속 내가 가출한 정민을 만나고 있다고 의심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정민은 나에게도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았다. 나는 정민이 걱정됐지만 정작 그녀를 찾을 마음은 단 1%도 없었다. 두려웠다. 그녀가 내뱉을지도 모르는 어떤 말들이 너무나, 너무나 무서웠다. 그것은 그녀가 혹시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나, 그녀에 대한 죄책감, 비겁한 나에 대한 짜증 따위의 모든 감정을 손쉽게 이길 공포였다. 그즈음 나는 다시 깨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여러 날 동안 잠들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대학 정보를 알아본다는 핑계를 대며 하루 종일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어쩔 수 없었어, 모든 걸 따져볼 때 이게 최선의 선택이야, 따위의 말들을 되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예쁘게 진분홍색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였고, 전화벨 소리는 경박할 정도로 경쾌했다. 나는 정민이 날아올랐다는 말을 들었다, 몸속에서 넉 달을 함께한 아기와 같이.
 
 
   나는 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정리가 필요했다. 우리가 함께 살 집을 고르기 위해 찾았던 그 동네 어딘가에서 불쑥 정민이 나타났는데, 요즘 내가 미친놈처럼 얼이 빠져서 이상하게 굴었던 건, 그러니까 정민이 누구냐면, 우리가 함께 잘 침대를 고르던 그 가구점에서 너도 마주쳤던, 그래서 수아 네가 실내에 웬 파리가 들끓어, 했던 그 파리인데, 사실 정민은 파리가 아니라…….

   전화벨은 얼마 가지 않아 끊어졌다. 그리고 이내 수아의 문자가 왔다. 수아는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 눈물이 툭, 바닥을 두드리며 떨어졌다.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수아는 받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핸드폰을 내렸다. 어느새 곁에 온 정민이 내 어깨에 가만히 앉았다. 그리고 마치 잘했다는 듯 또는 힘내라는 듯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해가 저물어 어두워졌다. 나는 꺼둔 형광등을 다시 켜기 위해 버튼을 달칵였다. 하지만 여러 번 움직여도 불이 켜지지 않았다. 결국 형광등이 수명을 다했다.
   나는 식탁 위에 자리한 보조 등을 대신 켜두었다. 음식을 더욱 맛있어 보이게 한다는 누런 조명이 정민을 비추고 있었다. 정민은 식탁 위에 말라붙은 밥풀을 뜯고 있었다. 수아가 쒀준 죽의 흔적이었다. 나는 내려둔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잠시 망설이다 수아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완전히 어두워진 원룸에 식탁 위만이 핀 조명을 내린 것처럼 선명하게 밝았다. 정민은 늦은 식사에 완전히 몰두한 듯 밥풀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았다. 누런 식탁에 누런 밥풀, 그 위에 까만 점이 된 정민.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싫었다.

   내가 다 잊고 사려는 게 못마땅해서, 도저히 지켜볼 수 없어서 이러는 거면 제발 그만해줘.

   나는 정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서 진심으로 정민에게 말했다.
난 겁도 많고 어렵고 복잡한 건 딱 질색인 그런 새끼야. 너도 알잖아. 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네가 무섭고 미안해서 마주보기 불편해. 제발, 떠나 줘. 용서해줘.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오로지 밥풀 하나만을 탐할 뿐이었다. 야금야금 제 몸 크기 같은 밥풀을 뜯어 먹던 정민은 배가 불렀는지 다시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녀를 보려면 나는 이제 고개를 뒤로 훌쩍 꺾어야 되었다. 정민의 뒤를 계속 쫒다 보니 고개가 아파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순간, 나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도망가기 바쁜 정민의 행동에 주체할 수 없이 짜증이 솟구쳤다.
   정민을 쫒길 포기하고 앉은 식탁 위에 달력이 눈에 들었다. 6월 19일. 빨간 동그라미가 삐뚤어짐 하나 없이 완벽했다. 내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아와 같이 후보로 몇 개 골라둔 예식장을 둘러보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수아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를 해도 답이 없었다. 나는 자정이 넘어서도, 새벽이 깊어서도, 다음날 아침이 밝아서도 계속계속 수아를 찾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집에 직접 찾아가거나 회사 앞에서 만나주기를 기다려도 쉽지 않았다.
   수아와 연락이 끊긴 지 보름이 지났다. 수아와 나를 아는 사람들은 돌아가며 우리 사이를 궁금해 했고 걱정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는 이미 은혜도 모르고 수아에게 상처를 준 철부지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찾아간 수아의 집에서 나는 그녀의 부모에게서 퇴짜를 맞았고, 다시 출근한 회사에는 이미 수아와 나의 이별이 식사 후의 껌처럼 사무실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수아와 먼 친척이라며 나를 챙겨주던 인사팀 부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이직을 권유했다.

   수아와의 연결고리가 사라지자,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더 이상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정민은 자기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하루종일 변기와 식탁과 더러운 매트 위를 왔다 갔다 했다. 수아가 없어도, 직장을 잃었어도, 친구들과 멀어졌어도 허기는 돌았고, 홀로 밥을 차릴 때마다 정민은 어김없이 내 곁으로 날아들었다. 내가 똥을 눈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쉬다가 밥 냄새가 나자 식탁 곁으로 다가와 손을 비벼대는, 정말 파리가 되어버린 정민......
   나는 밥 한 술을 뜨다 말고 숟가락을 집어 던지기 일쑤였고,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정민은 부리나케 천장으로, 화장실로 도망을 갔다. 허공을 향해 나는 숟가락을, 젓가락을, 두루마리 휴지를, 밥그릇을, 그리고 심지어는 이성을 집어 던지고 악다구니를 쓰며 발악하길, 하루에도 여러 차례였다. 그때마다 정민은 이내 다시 내 곁으로 날아와 어깨를 어루만졌다. 마치 왜 그래? 하고 어린 아이를 어르듯이.
   오래 전, 정민이 그렇게 내 어깨를 만져주면, 나는 항상 조금 기분이 누그러져 아니 그게 말이야, 하고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아마 그걸 기억하고 있어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던 모양이었지만, 그 터치 한번에 마침내,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당장 지갑을 챙겨 원룸을 나와 근처 약국으로 향했다. 뿌리는 종류, 끈끈이 종류 할 것 없이 온갖 약들을 몽땅 사 모았다. 간간이 살충제를 한 아름 든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약사나 사람들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원룸으로 돌아온 나를 정민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갑게 구는 정민이가 잠시 가여워 보이며 마음이 안 좋긴 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나는 분무기형 제품 하나를 뜯어 흔들었다. 붉은 바탕에 까맣게 뒤집어 죽은 파리와 바퀴벌레가 살벌하게 그려져 있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벽에 바짝 붙은 정민을 향해 분무기 끝을 조준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민이 사고사한 직후,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하루하루 괴로웠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나만 정민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이나 친척, 친구들 모두 손가락질 하고 혀를 차도 나만 조금 더 책임감 있었더라면, 하는 식의 후회였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이 툭 맡기고 떠난 짐처럼 느껴졌던 정민과 나의 아기에 대한 미안함으로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때가 분명 있었다. 시간을 돌려 정민이 다시 살아난다면 좀 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여기던 그런 시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쓰레기같이 비겁한 놈일 뿐이고,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게 태어난 모양이었다. 나는 파리가 된 정민에게 내 몫의 밥을 나누며, 그녀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수아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야. 가볍게 검지만 한 번 움직이면 모든 것은 끝난다. 하나, 두울, 세…에…ㅅ.
바람 빠지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재빨리 바닥을 확인했다. 하지만 방바닥 그 어디에도 정민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내 눈 앞으로 정민이 나타났다. 정민은 허공을 유유히 가르며 새로운 먹이를 찾고 있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근처 공원의 공중 화장실로 갔다. 이른 아침이라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 한산한 이곳이 최적의 장소였다. 물먹은 오징어, 생선 대가리, 달달한 식혜 등 평소 파리가 잘 꼬인다고 느꼈던 음식들을 담은 플라스틱 통을 화장실 바닥에 펼쳐 놓기 시작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초여름의 날씨에 냄새가 비교적 강한 음식들은 파리를 아주 잘 유인했고 모여든 파리는 곧바로 내가 잠그는 플라스틱 채집통에 갇혔다. 그렇게 몇 군데의 화장실이며 쓰레기통 등 후미진 곳을 다녔을까. 점심 무렵에는 어느새 준비해 간 세 개의 플라스틱 통에 파리가 바글바글해 얼핏 봐도 백 여 마리는 넘을 만큼의 수가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파리를 보는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원룸의 문을 잠갔다. 지금 내 품 안에는 백 여 마리의 정민이 있다. 지난 번 어설프게 실패했던 전철은 되밟지 않을 것이다. 꼭 그래야만 했다. 식탁 위에 파리를 담은 통을 올리고 정민을 찾았다. 정민은 오래 전 방바닥에 떨어진 바나나 껍질 위에서 입을 축이고 있었다.
   조용히 창문을 모두 닫았다. 그리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모든 틈새를 테이프로 칭칭 동여맸다. 여러 곳의 천장과 벽에 접착력이 우수한 끈끈이를 붙이고, 한 손에는 분무기 형 살충제, 또 다른 한 손에는 전기 파리채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바라본 정민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즐거워보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파리가 든 통의 뚜껑을 열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소음과 함께 파리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파리들은 밀폐된 좁은 원룸을 가로 뚫을 것처럼 강렬하게 흔들었다. 놀란 건 나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파리 떼에 정민은 재빨리 가장 높은 천장으로 몸을 피했다.

   이제 내 눈에는 누가 정민이고, 누가 공중화장실에서 잡혀 온 희생양인지 알 수 없어질 만큼 거대한 파리 떼가 비행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함께 날아올랐고, 뱅글뱅글 원을 그리다가 일제히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기회는 이때였다. 나는 살충제를 무차별적으로 뿌려대기 시작했다. 왼쪽, 오른쪽, 위, 아래, 옆 할 것 없이. 약에 취해 떨어지는 파리가 정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가정용 살충제는 금방 동이 났다. 파리들은 죽지는 않고 약에 취해 이리저리 곡예비행을 했다. 분명, 저 사이 어딘가에 정민이 있을 거였다. 나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전자 파리채를 집어 던지고는 가장 독이 강력하다는 살충제들을 봉지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파리 떼는 아직 열 마리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발을 움직이며 약을 뿌려대는 내 모습이 꼭 약에 절은 파리 같다고 느껴질 즈음, 드디어 온 몸을 비틀며 추락하는 파리가 배로 불어남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죽어!

   어느새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필사적으로 분무기를 누르고 있었다. 우수수 검은 파리 떼가 내 주위로 떨어졌고, 이제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정민이 남았다. 이제, 이제, 끝이 보이고 있었다. 슬슬 속이 뒤집히는 역겨움에 머리가 아파왔다. 식도를 타고 시큼한 위액이 넘어오면서, 나는 연신 방바닥에 침을 뱉으며 파리들을 죽이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듯 아파왔다. 어지러움에 휘청대는 걸음을 주체 못하고 구석진 벽에 몸을 기댔다. 독한 약 냄새에 숨이 막히고 점점 가슴이 답답해졌다. 수천 개의 길쭉한 벌레들이 목구멍을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느낌에 나는 토악질을 시작했다. 검은 정민들 사이로 소화 덜 된 음식물들이 투두둑, 쏟아졌다.
   아직 숨이 붙은 파리 몇 마리가 비틀거리며 나의 토사물로 모여들었다. 나는 점점 감기는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그 광경을 노려보았다. 바로 그 곳에 찢어질 듯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내가 뱉은 밥풀을 탐하는 정민이 있었다. 힘이 빠져 더는 움직일 수 없는 내 귓가로 정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막을 힘도 없어 그저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은 점점 손쓸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해져갔다. 그대로 쓰러지는 나에게로 정민이 다가왔다.
정민은 언제나처럼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따뜻하고 말캉했다. 완전히 닫혀가는 귓가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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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당선작 심사평


  제3차 <창작콘테스트> 소설부문에 이름을 올리게 된 작품은 김보경 씨의「나와 당신의 파리」이다. 이 작품은 연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그녀에 대한 애착은 결국 그녀와 파리를 동일시하는 메타포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하게 된다. 내용 전반은 다소 장황하게 전개되는 구성으로 긴장감이 느슨한 점을 보강할 필요가 있겠다. 
  김보경 씨의 당선을 축하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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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할머니와 양말
- 김소라
 
 
우리 집 옷장 서랍, 첫번째 칸에는 나의 보물이 잔뜩 들어있다. 보물이라고 해봐야 1000원, 2000원짜리들이다. 바로 흔하디 흔한 양말. 서랍장은 양말창고다. 헌 양말이 아닌 새 양말이 서랍 가득 채워져 있다. 양말을 모으는 취미가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랍장의 양말들은 내가 간직할 것들이 아니라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떠나보내어야 할 것들이다. 양말을 사고 모으고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습성은 나의 할머니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 연휴가 되면 어김없이 화성 조암에 사시는 친가 댁에 서른 명이 넘는 친척들로 북적북적했다. 사촌이 모두 모이면 열 둘은 되었고 다같이 일렬로 서서 고운 한복입고 어른들께 새배하고 새뱃돈 받는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 집안만 특별한 명절풍습이랄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특별한 명절 준비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해마다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 손주들을 위하여 조암 장에 나가서 양말을 사오셨다. 색색의 고운 양말을 검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사갖고 와서는 나눠주셨다. 새배를 하면 새뱃돈 대신 양말을 한 켤레씩 주셨다. 며느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절날 작은 엄마 여섯이 모두 시어머니가 주시는 양말 한 켤레에 아이처럼 좋아하던 얼굴이 떠오른다.
 
어릴 때는 할머니가 명절날 주시는 양말이 그토록 소중했다. 할머니가 사주신 보송보송한 새 양말을 신을 때의 보드라운 감촉이란… 하지만 머리가 커지고, 10대가 되고 부터는 흔해 빠진 양말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는 명절에도 할머니 댁에 가지 않았고, 결혼 후에는 더더욱 명절 날 친가를 가는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나를 비롯하여 사촌들이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 후 3대가 함께 명절을 보내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할머니가 설날 주시던 양말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갔을 무렵 어느 해였던가. 결혼하고 3년 만에 아이를 낳고 오랜만에 할머니 댁을 찾았다. 증손주를 처음 보여드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할머니의 첫 손녀딸이었고, 내 아이는 할머니의 첫 증손자다. 할머니와 손녀과 증손자가 만나게 된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서랍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온 나를 반기며 서랍에서 주섬주섬 양말을 챙겨주셨다. 갖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였다. 서랍 가득 웬 양말이 그렇게나 많은지, “할머니, 왜이렇게 양말이 많아?” 여쭈었다. 그랬더니 “너네들 언제 올지 몰라서 매년 명절마다 장에 가서 샀더니 이렇게 쌓였다. 너 아들 낳았다고 해서 애기 양말도 샀다.” 라고 하신다. 그 순간 나는 얼음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문을 열 수도 없었다. 잠시 가만히 할머니의 서랍장에 담긴 양말을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줄 수 있을까 오지도 않을 손주들의 양말까지, 심지어는 얼굴도 보지 못한 증손자의 양말까지 사가지고 서랍에 쟁여 두셨던 거다. 할머니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었을까? 십 년 넘게 받지 못했던 할머니의 양말을 그날 한 봉지 가득 받아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할머니의 양말 서랍을 보게 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양말 세일하는 코너에 가면 500원, 1000원짜리 양말을 사곤 했다. 겨울에 신는 수면양말 여름용 덧신까지 종류별로 생각날 적마다 사왔다. 그리고 언제 누구에게 줄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양말을 모았다. 그리고는 모임이 있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 누군가에게 간단히 선물하고 싶을 때 양말을 들고 가서 나눠준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낡은 팬티 한 장 입고 떠난 엄마
- 김소라

 
한 인터넷 육아 카페에 중고 벼룩시장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게시판이 있다. 지역 엄마들의 커뮤니티이며, 쓰지 않는 물건들을 사고 파는 장이기 때문에 나도 곧잘 이용하는 편이다. 사진을 찍어 올린 후 연락처를 적어 두면, 직거래 혹은 택배로 물건을 교환한다. 나도 가끔씩 누군가 나의 물건을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어 글을 올린다. 며칠 전에는 수 년 된 인켈 중고 cd 카세트 플레이어를 올려놓았다. 짐만 차지하는 물건이라는 생각에 7-8만원 주고 샀던 제품이지만 세월의 흐름도 있고 하여 12000원 가격을 책정하여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카세트 플레이어를 <팝니다> 게시판에 올린지 10분도 안되어 여러 분이 댓글로 문의사항을 남겼다. 수고스럽지만 일일이 답변을 달아드린 후 하겠다는 사람이 정확히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 분이 문자로 조심스럽게, ‘혹시 내일 찾으러 가도 될까요? 돈은 그 때 드릴께요...’ 라고 보내왔다. 나는 즉시 좋다고 답변을 남기고, 다음 날 12시에 약속을 정했다.
 
12시에 물건을 가지러 온다는 약속을 했는데, 30분이 지나도록 산다는 사람이 오지 않았다. 조금 기분이 나빠질 무렵에 문자를 다시 한 번 보내어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을 했다. 그랬더니 ‘아침부터 아이 둘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조금 더 기다려 주시면 1시까지 갈께요’ 라고 말한다. 어차피 일요일 오후 별다른 약속이 없기에 기다리겠다고 했다. 시간이 되었을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601동 앞에 와 있다고 말이다. 카세트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멀리서 한 아이 엄마가 보인다. 등에 업은 남자 아이가 하나 있고, 한 손으로 딸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남은 한 손엔 기저귀 가방을 들고서 말이다. 당연히 엄마의 얼굴은 초라한 민낯이고, 아이 둘 챙겨가지고 나오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주대학교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갑자기 가슴이 찡해왔다. 12000원짜리 중고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기 위해 아이 둘을 업고 안고, 버스를 타고 뜨거운 여름 한 낮 집을 나선 아이 엄마의 모습. 택배비 몇 천원이 아까와서 직접 찾으러 온 것일 수도 있고, 아이와 외출하고 바람쐴 겸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몇 만원하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저렴하게 샀다는 마음에서인지 아이 엄마는 흡족한 표정으로 12000원을 건냈다. cd플레이어가 고장이 나서 싼 것을 찾고 있었는데 벼룩시장에서 저렴히 구입하게 되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괜시리 미안했다. 집에 들어와서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이라도 대접할껄 하는 마음도 들고, 두 아이까지 데리고 왔는데 덤으로 물건 몇 개 정도 더 챙겨주면 좋았을껄 후회도 했다. 돈만 덥석 받아들고, 인사만 하고 뒤돌아서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그 엄마의 모습에서 오래 전 ‘친엄마’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낡아서 구멍이 날 정도로 삶고 또 삶아댄 엄마의 팬티만 기억이 난다. 엄마는 그 팬티 한 장 입고,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하도 빨고, 삶아서 후들후들 낡은 팬티 한 장 입고 세상 떠난 엄마. 공장에 불이 나고,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 장의 사진처럼 정지되어 있다.
 
세 아이를 위해 아빠와 공장에서 죽도록 일만 하다가 삼십대 초반 생을 마감한 억울한 엄마의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는 걸까? 엄마를 지독히 그리워하지만, 엄마처럼 살다가 죽고 싶지 않은 두 마음이 내 속에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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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당선작 심사평


  제3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에서 당당하게 당선작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은 김소라 씨의「할머니와 양말」, 그리고 함께 접수한 「낡은 팬티 한 장 입고 떠난 엄마」두 편이다. 요즘은 옛 향수를 자극하는 문화콘텐트가 대세이다. 가정이 해체되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각박한 현실에서 감상적으로 옛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늘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위 두 작품은 대가족 제도의 해체로 예전과 같지 않은 친족과의 관계를, 또 자식을 위해 죽을 때까지 억척같은 삶의 모습을 보여왔던 옛 어머니들의 모성을 잘 그려냈다.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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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 상현달
   - 남지혜 
 
 
그 어느 것 하나에도
결정을 보지 못하고
가루들만 푸석푸석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린다.
 
저 가루들을 모아서
결정을 만들고 싶다 하여도
가루들은 뭉쳐져도
가루 뭉텅이만 될 뿐
 
견고하게 빛이 나는
결정은 되지를 못하니
나는 오늘도
이 길 저 길을 어중이떠중이처럼
스쳐서 지나갈 뿐이다.
 
나는 너무도 춥다.
나는 마주 보지도 못하고
차지 못한 달이 되어
매일 아침 죽어 버린다.
 
다시 편안한 어둠이 깔리어도
나는 여전히 편치 못한 채
이 곳에서도, 저 곳에서도 보이는
여전히 차지 못한 달이다.
 
조각조각 부서지지 않는,
아기의 배꼽과 같은,
한 모금의 숨을 주는 태양처럼
나는 차오르는 달이 되어
 
저 산을 넘고,
저 바다를 넘고,
저 수평선의 끝을 넘어
끝내는 넘어가고 싶다.



■ 단풍꽃
   - 남지혜 
 
 
아직 죽을 수가 없음에도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환자마냥 매달려서
그저 누워만 있다.
 
밤에는 언제나
단풍꽃이 피건만
너무도 찬란하건만
그렇게 죽어있다.
 
너는 그렇게
죽지는 않는다.
떨어지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다.
 
떨어지는 것은
곧 심어지는 것
너는 아래로, 아래로
다시 심어지고
 
태양의 꽃보다도
깊은 떨림을 주는
마지막 모습처럼, 너는
온 땅을 전부 위로한다.



■ 그만하면 되었다.
   - 남지혜 
 
 
나는 네가 불행하지 않기를
나는 네가 보란 듯이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잊혀 질 모든 것들의 대변인이다.
 
나는 네가
때로는 진정한 친구 하나와
진실 된 술잔을 기울이고
 
때로는 갈 곳을 모두 잃어도
너만을 받아주는 이를 만나, 그 품안에서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속삭이고
 
때로는 지난 인연들에
후회대신 감사함의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지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은
너를, 너희를, 우리를
생각하고는 한다.
 
짧은 교복치마는 불편하여 벗어두고
우리는 체육복 바지를 입고서
몇 백 원짜리 슬러시를 사먹고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육교를 걸으며
그렇게 보냈던 그 여름을,
나는 가끔 생각한다.
 
늦은 저녁에 공부는 하지 않고
넓은 창문으로, 벽으로 부딪혀 들어오던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곧 잊혀질 모든 것들의
잔상정도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저 네가 불행하지 않기를,
나는 그저 네가 보란 듯이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잊혀 질 모든 것들의 대변인이다.



■ 12월 25일
   - 남지혜 
 
 
언제나 찬바람과 함께
나는 길을 얼르며 걷고
중심 잡기가 버겁다.
 
이 밤, 이 얼음길 위에서 만난 너의
눈을 마주 보지 않았던 이유는
내 눈에 있을 외로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목도리에 턱을 밀어 넣고
바닥만 보며 걷지만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나는 앞도 보지 않고
중심만 잡으며 걷기에도 힘에 부쳐
주머니에 있던 손을 꺼내서
자빠질 준비도 한다.
 
자빠지지도 않는다.
 
네모난 방안의 앉은 자리, 너의 눈에서
내 눈을 떼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비루함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연신 무릎을 꿇리는
너와, 너의 나날이
나에게도 찾아올까.
 
가끔은 속도 없는 농담마저도
나는 진심인줄로만 알고
한참을 생각하고는 한다.
 
옷깃을 단단히 여민다.



■ 사랑의 인사
   - 남지혜 
 
 
그리운 이별
달가운 이별은
다시 만날 것임을 알기에
 
너와 하는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다섯 번째 이별은
언제나 따뜻한 다시 만남의 기약과도 같다.
하여 나는 이를 그립다, 달갑다, 그리 말한다.
 
이 이별은 만남을 위한 것이니
다시 만날 너를 위한 설렘을 위한 것이니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세상을 보고 올 너일지
얼마나 더 성숙한 네가 되어 있을지
그런 너를 위해서 이 헤어짐에 나는 꽃다발을 바친다.
 
이 작은 정원에 나는
괴상하지만 또 그만큼 네가 좋아하는
노란색 무궁화를, 이름 모를 너와 나의 꽃을 심는다.
 
많은 것을 보고 겪어도
내 체온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언제나 따뜻하기를 바라면서
 
흔하디 흔한 편지 한 장을 위하여
나의 꽃다발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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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당선작 심사평


  제3차 <창작콘테스트> 시(詩)부문에서 당당하게 당선작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은 남지혜 씨의「상현달」외 네 편의 시이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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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선자들께서는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 운영자 메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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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메일 : sahachanc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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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작가 여러분!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당선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매회 실시되는 <창작콘테스트>에 
끊임없이 도전만 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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