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과 짠 음식은 드시면 안됩니다 술과 담배도 안 됩니다 눈동자에 진탕도 왔고 혈압 수치도 낮고 어지러움증... 음... 일단 재발로 봐야겠네요 우선 증상이 완화되도록 며칠 입원 치료하면서 지켜보도록 하죠”
무표정한 얼굴로 차트를 살피던 의사는 인희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오늘 아침 눈을 뜬 인희는 침대에서 내려오다 한쪽으로 당기는 어떤 힘에 끌리 듯 속절없이 나뒹굴었다. 연이어 오는 회전성 어지러움증은 인희를 깊은 낭떠러지로 끌고 가고 있었다. 화장대 다리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작은 몸은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 차례 찾아온 구토로 기어서 화장실로 간 민희는 변기통에 토악질을 해대고 나서야 지친 몸을 겨우 가누며 소파에 누웠다. 누구라도 와 줬으면... 아무도 없었다. 상비약을 찾은 그녀는 마지막 남은 한 줌의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병원을 찾았다.
병원 천정이 흰색이 아니라 초록이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던 인희는 의사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김인희 씨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멍한 인희에게 걱정스럽게 묻는다.
“아니오 저는 지금 입원할 수 없어요 시골 엄마한테 보낼 김치도 베란다에 그대로 있고요 맞아요 낼은 하나노인복지관 배식봉사도 가야 하거든요”
도망가고 싶었다. 아귀를 벌리고 삼킬 듯한 병원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인희가 원하는 건 얼마간의 비상약이 필요했을 뿐..
“김인희 씨는 환자입니다. 지금 당장 메니에르 치료도 받아야 하고요 이대로 나가다 바로 또 쓰러질 수도 있어요”
“아뇨 이젠 괜찮아졌어요. 아마 그럴 거예요”
독백처럼 중얼거린 인희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어머님 정 그러시면 우선 수액이라도 맞고 가세요 그대로 나가시면 위험합니다 ”
간호사는 인희의 팔을 부축하며 회복실로 안내한다.
인희는 손바닥 크기의 수액이 바닥을 보일 때 즘 어지러움증이 진정된 듯 눈 앞이 환해졌다. 인희는 보름간의 약을 처방받아서 병원을 나섰다. 사각에 갇혀 매시간마다 항정신성 약의 몽롱함에 영혼을 저당 잡히고 싶진 않았다 이뇨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저혈압 쇼크, 저염식 식사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어차피 변변한 치료약이 없다지 않는가.
‘메니에르 증후군’ 병명조차도 생소한 이놈이 나랑 친구 하잖다. 정말 재수 없는 놈이다. 조금만 관심을 안 주면 인정사정없이 수천 길 낭떠러지로 끌어내리고 그도 부족한 듯 저녁 내내 사물놀이로 귓전을 울려낸다 귀신 실려서 그런다며 굿판 벌리자던 선녀보살 문희년 말도 이 정도면 헛 말은 아닌 듯하다.
한 주먹의 알약을 삼키며 인희는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그래 올 테면 와봐라...”
연초록의 싱그러움이 거리에 가득하다. 연두색의 새순이 이토록 서럽게 와 닿았던 적은 없었다. 눈부신 햇살에 눈을 감았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내 지르는 비명 속 내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아...
인희는 물에 젖은 솜뭉치 같은 작은 몸 동아리를 애마의 쿠션에 깊이 몸을 묻었다. 절대 운전은 안된다는 의사의 충고에 도전장이라도 내 듯 천천히 시동을 건다. 존바에즈의 슬픈음색이 스피커를 타고 흐른다.
Oh, Mary was a maiden When the birds began to sing
She was sweeter than the blooming rose so early in the spring
한 장의 서류가 그림자처럼 누워있는 식탁 한 모퉁이에 있다.
‘합의이혼신고서’
냉정 하리만큼 또박또박 쓰인 글씨에 인희는 한기를 느낀다 쉬고 싶다. 아무것도 생각 않고 아프지 않게... 수면제 세알을 먹다 남은 커피에 삼키며 인희는 소파에 누웠다.거실 테이블엔 쓰다 만 원고지들이 커서 처럼 나 살아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식탁 위 핸드폰은 애타게 울고 있다 멜로디가 감미롭다 작년 겨울 집에 왔던 아들 윤이 바꿔준 핸드폰 멜로디, 한동안은 그 소랠 듣고 싶어서 일부러 전화를 늦게 받았던 인희였다..
거실 밖엔 이팝꽃 두어 송이 낙화한다. 아니 눈이 오는 걸지도 몰라? 여긴 어디지? 눈이 감긴다. 블랙홀에 흡입된 몽롱한 영혼이 정처 없는 방황에 떠돌고 있다.
거품 방울이 떠 다닌다. 거품 방울 끝에 매달린 얼굴 하나 잘 보이질 않아 누굴까? 반복된 그림 속 그 얼굴 어디서 본 듯한 실루엣이다 누구세요?
“인희야 정신 좀 차려봐야~
멀리서 혹은 가까이 들려오는 목소리.
해 질 녘, 종일 쏘아 다닌 시커먼 얼굴을 부르던 목소리가 골목길을 달리고 있다. 엄마~ 엄마...
이마에 전해진 찬 기운에 눈을 떴다. 선녀보살이라고 불리는 무녀 내 친구 기숙이다 마흔이 넘도록 독신을 고집한 그녀는 밤무대 무명가수였다. 목포에서 광주권 까지 제법 인지도 있는 밤무대 가수였는데 운명처럼 찾아온 신병 앞에 죽음의 목전에서 신을 받아들인 것이다. 교회 장로이신 아버지와 권사님이신 어머니께서 인정할 수 없는 무녀의 길을 걷는 기숙과 인희는 여중고 동창 이면서 가장 친한 친구이다. 인희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귀신같이 집어내 준다 인희는 돌팔이라고 놀리면서도 그녀의 신기에 놀라울 뿐이었다. 멀리서 까지 찾아온 손님들로 예약을 하지 않고는 상담하기 힘들다. 작두를 타지 않는 무녀지만, 상담을 하며 방법만을 공수해 준다며 그 방면에선 제법 유명세를 탄 그녀다. 그런 그녀가 이 시간에 인희의 집을 찾았다.
“어제부터 전화해도 연결이 안 되어 걱정돼서 왔는데 이것아 무슨 일이냐 어서 일어나 나랑 응급실로 가서 수액이라도 한 대 맞고 오자 니 몰골 보니 반송장 같구먼 에고 이 땀 좀 봐 ”
기숙은 인희의 이마를 닦아주며 오지랖을 떤다.
“아냐 병원에 갔다 왔어 괜찮아 약타왔어 좀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언제 병원에 갔다는 거야 오늘 일요일인데?”
꼬박 하룰 앓았나 보다 인희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그 인간의 흔적이 없다. 허깨비라도 민식의 체취가 그립다.
독백처럼 중얼거리는 인희의 끊어질 듯 힘없는 하소연.
“ 기숙아 사람이 얼마나 아프면 죽을까? 나 아파 진짜 많이 아파... 여기가... 너무 아파서 숨이 쉬어지질 않아 우리 살고 죽는 거 관장하는 신이 정말 있다면 나 이제 그만 살고 싶으니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
우는 힘마저 저당 잡힌 그녀가 내뱉은 속울음에 기숙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니가 그럴 것 같아 요즘 며칠 째 계속 내 가슴이 이렇게 미어질 듯 아픈데 아픈 영혼은 달래서 보내는 게 산 사람의 도리란다. 윤이 아빠가 밖으로 도는 이유도 니가 아픈 이유도 한 가지야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영혼 건져서 보내줘야 혀 그래야 니도 풀린다, 내 말 헛으로 듣지 말거라”
매년 여름이면 니가 아플 수밖에 없어, 많이 아프고 많이 울어, 나는 보인다. 아버지 모신 선산에 나랑 같이 가서 밥 한 그릇 차리고 옷 한 벌 태우고 오자. ”
“미친년”
인희는 곁에서 헛소리라도 좋으니 참견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며 기숙에게 눈을 흘겨본다.
“예약 펑크 내고 왔어야 맘이 걸신 거려서 일이 손에 안 잡혀 왔는디 니 욕 해 댄거 보니 죽진 않긋다야 ”
“니 그 헛소리 안 들으려면 내가 이살 가든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든 해야것다 ”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니만 무탈하면 난 아무 상관없어야 가시내야~ 눈먼 돈 들어왔어야 우리 몸보신이나 하러 가게 폴딱 인나 거라 니 삼계탕이나 한 그릇 먹여야겠다 인희야 윤이 아브지 아직 안 들어왔냐? 집안 공기가 이리 냉랭한 게 어디 이게 사람 사는 집이냐”
반복되는 신호는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뚜뚜뚜뚜
생명을 다한 파란불이 재촉한다 빨리 가라고 한다. 난 어디로 가지? 이 많은 사람들은 갈 곳이 정해져 있을까? 낯설다 이 거리가, 바삐 움직이는 발걸음이, 이 모든 걸 낯설어하는 나 자신이 더 낯설다.
‘애야 길을 잃어버렸을 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아비가 널 찾아갈 수 있단다’
잔병치레 한번 없이 주무시다 그대로 돌아가신 아버지, 대대로 환갑 넘긴 어르신이 없는데 아버지만 유일하게 환갑잔치하겠다며 식구들 모두 좋아했는데 육십을 두 달 남기고 주무시다 돌연사를 하셨다.
아버지의 너른 등이 그립다. 걷지 않겠다고 투정 부리면 언제든 너른 등을 펴 주셨던 아버지의 등이 그립다. 그래 바다로 가자 내 고향 같은 바다 잊고 지냈던 바다, 아버지가 계시는 곳, 그곳으로 가자
인희는 무작정 떠나기로 작정하고 짐을 꾸렸다. 보름치 약과 노트북, 그리고 서너 벌의 여분 옷가지를 케리어에 담고 현관을 나서려다 보니 식탁 위의 서류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인희는 뒷장에 메모를 남기고 냉소를 흘리며 현관을 나섰다.
‘합의이혼은 절대 해줄 수 없어요 한 보름 시골에 다니러 갑니다 ’
여객선 터미널
하의도 배표를 샀다. 결핵 완치와 함께 찾아온 남자, 민식 인희는 열한 살 연상의 삼촌 친구 민식에게 처녀를 강간당하고 윤을 임신했다. 목포 유지의 장남이라서 딸 고생시키진 않겠다 판단한 부모님은 서둘러 결혼을 시켰고 삼대독자 윤을 낳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민식은 평범한 가정생활을 거부하였다. 한 달 서너 번 집에 들어 올때면 인희는 민식의 욕정의 마네킹이 되어 영혼을 팔아먹은 허수아비처럼 민식에게 길들여지면서도 오르가즘에 미쳐가는 자신의 육체에 저주를 퍼붓고 싶었었다. 굳이 말하자면 잡놈 민식이 어떠한 생활을 하는지 궁금하지도 안했고, 한 밤중 술 취한 여자에게 걸려온 민식을 돌려달라는 전화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들 윤이 있었고,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이 주는 매월 들어오는 민식의 보상금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민식이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
“니가 원하는 건 뭐든 해줄 테니 우리 그만 끝내자”
“이유가 뭔데요? 내가 아들을 못 낳아줬나요? 살림을 못 하나요? 아니면 어디 가서 서방질을 했나요? 왜 내가 이혼을 당해야 하는데? 우리 윤은 어떡하고 아무리 니들이 좋아 죽고 못 살아도 이혼만을 못해줘 지금처럼 당신들 멋대로 하고 살아 누가 뭐라나요?”
“우리 현경이 임신했어 이번만큼은 이 아이 지켜주고 싶어, 아이 출생신고 해야하는데 니가 이혼을 해줘야 혼인신고할거 아니야?”
기가 막혔다. 가정 있는 남녀가 만나 불륜 속에 아이를 가졌고, 자기들의 새로운 가정을 합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두 가정을 해체하자고 한다.
“현경이라는 여자 언제부터 만난 건데?”
“당신과 결혼하기 전부터 사랑했던 여자야, 고등학교 때부터 내 아이를 세 번이나 중절했고, 그 문제로 학교도 퇴학당했어. 불쌍한 여자야... 아버지의 결혼 반대로 잠시 방황하면서 당신을 만났고, 그 와중에 윤이가 생기면서 모든 걸 잊고 새 출발하려고 했는데, 운명처럼 다시 우린 만났어 이 여자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그래 윤이 엄마야 나 좀 봐주라 엉? 나 좀 보내줘 니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해줄게~”
민식은 무릎을 꿇었다. 고개 숙이며 울고 있는 이 남자, 자기의 사랑을 지켜달라며 나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있다.
“여보 나 당신 아내고 우리에겐 윤이가 있어 당신 나 사랑한다고 나 아니면 안 된다고 당신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건 다 잊은 거야? 우리 윤이 절대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울 순 없어, 당신이 정 마음 못 잡고 그러면 아버님께 모든 걸 다 말씀드릴 거야, 어떻게 사람이 그러니? 그 여자만 불쌍하고 나는? 윤이는? 안 불쌍해? 그런 거야?”
민식은 눈물의 고해성사가 인희 에게 통하지 않자, 화장대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문을 거칠게 닫으며 나간다.
“이번 달부터 생활비 없어 윤이 학비도 당신이 알아서 해”
뱃고동 소리 울리며 씨 호스가 들어온다. 어렸을 적 하의도를 갈려면 반나절 이상을 여객선에서 배 멀미를 해야 했는데 쾌속선이 생겨서 두 시간이면 시아바다 건너 하의도를 갈 수 있다 인희는 케리어를 끌고 승선하였다.
‘이젠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
인희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뱃머리에 섰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는 내 아들 윤이를 낳아 키우던 곳 목포, 목포가 항구임을 망각하며 살아왔다. 비릿한 갯내음, 항구에 살면서도 나는 늘 갯내음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유달산은 액자의 그림처럼 걸려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목포 항 망울망울 피어오르는 지나간 추억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내 유년시절의 이야기가 어떤 원형의 별지 안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저 건너, 여객선 대합실 한편에 열한 살 아이의 손에 배표를 쥐어주며 눈물을 훔치는 여인네, 그 곁에 동상처럼 서있는 그림자 아 내 아버지가 보인다.
총총한 저녁별 상현달 쏟아지는 여름밤.
널찍한 마당 한편에 멍석이 깔려있고, 흙 담 곁에는 모깃불 건초가 타들어 가고 있다. 인희는 할머니께서 깔아주신 멍석에서 동생과 나란히 누워 별을 헤어 본다.
“ 대영아, 저기 보이는 별 있지 저 별이 북두칠성이란다”
“ 언니야 북두칠성이 왜 할머니 집 하늘에 있어 우리 집 옥상에서 봤던 별 아냐?”
“ 응 맞아 북두칠성은 아이들의 여행길을 비춰주는 길잡이 별이란다. 우리 대영이가 어딜 가든 하늘에서 널 지켜 준단다.”
“ 진짜로 북두칠성이 가 언제나 나를 따라다닌 거 맞아? 내가 목포 가면 나 따라서 목포로 오는 거지? 언니야 우리 그림일기에 저 하늘을 그리자”
“그럴까? ”
인희는 네 살 아래 동생과 멍석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금방이라도 뚝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영롱한 별빛에 스르르 눈이 감겨왔다. 부모님이 일 하러 가시면 어린 동생 혼자 둘 순 없어서 어린 동생 손을 잡고 함께 등교하곤 했었다. 지금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한시름 놓은 터지만, 그런 대영인 인희 에게 각별한 동생이었다. 인희를 언니라고 부르는 대영은 무엇이든지 인희 하는 건 무조건 따라 한다. 사내아이가 머리핀 꼽는다고 아버진 나무라시지만, 늘 둘은 함께 모든 걸 나누었다. 아버지께서는 엄마와 시골마을로 다니시면서 젓갈 장사를 하신다. 그래서 방학이면 늘 상 인희와 대영은 시골집에 맡겨지곤 한다.
“인희야 스무 밤만 자면 엄마 아빠가 데리러 갈게 작은엄마 말씀 잘 듣고 할머니 일 도와드리면서 동생과 잘 지내야 한다. 그라고 밥 묵고 나면 약 잘 챙겨서 먹어야 한다. 잘할 수 있제 인희야”
“안 가면 안 돼?”
“안 가믄? 엄마 아빠도 없는디 그럼 니가 대영이랑 밥 해묵고 살 수 있것냐?”
배표를 손에 쥐어주는 엄마의 눈엔 금세 눈물이 가득하다. 그 뒤엔 말없이 지켜보시는 아버지
어쩌면 엄마 아빠가 우린 안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낮에 배 멀미로 힘들었던 기억도 배에서 내려 이십 리 자갈길을 걸어온 노곤함도 별빛에 담아 두고 싶었다.
무심코 손을 넣은 주머니에 사탕이 잡힌다. 인희는 불현듯 일어나 책가방에서 봉투를 꺼낸다.
“ 할머니, 아버지께서 이거 할머니 드리래요”
하의도 배 타기 전 아버지께서 인희의 가방에 흰 봉투 하나를 넣어주시며
“ 인희야 잊어버리지 말고 이거 할머니께 드려야 한다”
아버지께서 당부하셨던 걸 이제 사 생각이 난 것이다.
“ 아이고 느그 아브지도 힘들 텐디 뭐한다고 이렇게 챙겼다냐 안 주면 내가 지그 새끼들 밥 안줄까 봐 이렇콤 보냈다냐 ”
하시면서 봉투 안에 든 지폐를 꺼내시곤 속바지 주머니 속에 단단히 넣으시고는 옷핀으로 고정하신다. 할머니를 마을에선 용산댁이라고 부른다 무안 용산에서 시집오셔 용산댁이라고 한다 큰 자식이 목포로 나가 사업한다고 가산마저 처분하고 남은 땅에 작은 아들 가족들과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용산댁은 옥수수 한 솥 삶아서 소쿠리에 받쳐 들고 멍석 위에 누워있는 손주들에게 다가간다.
온종일 산 너머 밭에 심어놓은 고추밭 지심 맨다고 굽혀진 허리 펼 틈도 없이 용산댁은 저녁식사 후 멍석에 누워 있는 손주들 에게 간식을 먹일 양으로 분주하기만 하다.
“체한다 인 나서 묵그라 아이고 이놈의 모구들이 내 새끼들 다 뜯어 묵겠네~”
머리에 두른 수건을 벗어 모기떼를 쫓아내시며 당신 손주들 혹여나 물릴까 봐 노심초사시다
“성님 계시오~ 목포에서 애기손님들 왔다면서라 ”
옆집 점순네 바구니에 완두콩을 들고 사내 아이 손을 잡고 싸리문을 제치고 들어온다
“ 어여 와서 옥수수 한 볼테기 하소”
용산댁은 옥수수 한 개를 내밀며 점순네를 반긴다
“아짐네 옥수수는 여간 잘 여물었소 종자받으면 좀 얻어가야겠소 우리야는 우짠일 인가 맹탕이어라”
점순네는 남편을 잃고 성치 않은 막내아들과 이곳 오림에서 참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점순네를 따라온 소년은 도시에서 놀러온 낯선 아이들을 신기한 듯 처다 보며 보고 아이들이 있는 멍석 곁으로 다가섰다
“ 어기 힝 허허헝”
등 굽은 꼽추소년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선다 인희와 대영은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망태 귀신을 연상케 하는 소년의 등장으로 손에 들고 있던 옥수수를 떨어뜨리며 울어 버렸다 순간 용산댁은 모기떼들 쫒을 때 사용했던 수건을 던지시며 달려오신다
“오야오야 워째 따고 내 강아지를 울린데 얼릉 느그 엄마한테 가그라 어여 어여~”
점순네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아들의 옷소매를 다짜고짜 끌 듯이 사립문을 나서고 난 뒤 한 차례 멍멍이는 짖어대고 모깃불이 꺼질 즈음 하늘엔 별똥별 긴 꼬리를 뽐내며 오림리 저수지로 자맥질한다
다음 날 아침 마을 아이들의 야유회가 있는 날이다
마을 아이들은 5리 떨어진 언동 뒷동산으로 소풍을 가기로 했는데 목포에서 온 인희와 대영도 초대해 주었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인희와 대영의 초대 뒷이야기엔 용산댁의 사탕 협찬이 있었단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손주들 심심할까 봐 용산댁의 배려 덕에 인희와 대영은 사촌동생을 따라 마을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갔다
“ 너 몇 학년이야”
방앗간 집 아들 인희에게 물었다
“ 엉 4학년 3반”
“ 하하 누가 몇 반이냐고 물었냐? 나하고 같은 학년이네 ~ 너 이름이 뭐야? 난 지섭이라고 해”
“엉 난 김인희 애는 내 동생 김대영 1학년이야”
“그런데 우릴 따라올 수 있겠어? 가다가 못 가겠다고 울면 안 된다”
지섭은 유독 작은 인희가 걱정스러웠는지 재차 확인하였다
“ 나 작년 가을 운동회 때 달리기 해서 2등 났어 그리고 할머니 집 올 때도 선착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왔는걸”
인희는 걱정 말라며 큰 소리로 말했지만 인희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정말 달리기 해서 2등 하는 게 소원이었다 운동회 때면 뛰지 못하고 그늘에서 구경만 했었다 저 쪽 편에 어제 보았던 점순네 과 함께 왔던 그 소년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따라오고 있다
마을 아이들은 손을 저으며 따라오지 말라며 소년을 향해 나뭇가지를 던지며 소리쳤다
“아수라백작이다~ 도망가자 와~”
“ 어정 기어 어어어”
그러건 말건 그 소년은 웃으면서 꽂개 걸음으로 옆으로 뛰어 따라온다 뒤에 처진 인희를 따라잡은 소년의 휘청거리는 풀 꽃다발이 인희 앞에 떨고 있다 소년은 벌게진 얼굴로 히히 웃으며 인희에게 풀꽃을 건넨다 배짱이 우지 짖는 이른 아침 인희는 풀꽃 다발을 엉겁결에 받아 들고 두 손으로 꼭 안았다
이슬 머금은 강아지풀과 보라색의 작은 꽃 그리고 노란 달맞이꽃이 소년의 손과 함께 파르르 떨리고 있다
“ 야~ 따라오지 말라고 니 오기만 해봐라 나무에 묶어 둘 거여~”
방앗간 집 아들 지섭은 따라오지 마라고 긴 나뭇가지를 소년에게 휘 두른다 튀어나간 나뭇가지는 순간 그 소년의 얼굴을 할퀴었다
“아어 어어”
“그러지마 아프잖아”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지섭과 아이들은 인희와 소년의 주위를 빙 돌면서 서로 좋아한다고 놀리며 있었다 인희는 그 소년에게 다가가 울면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었다 땀과 범벅된 핏자국은 인희의 손수건에 붉은 꽃그림을 만들며 물들었다 순간 소년은 인희의 손에 있던 손수건을 낚아채듯 빼앗고는 손수건을 돌린다 소년은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알 수 없는 노래를 하며 뒤 따라온다 푸른 콩밭에선 한 무더기의 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른다
며칠 전 온 비로 인해 개울물이 제법 불어났다 인희와 대영은 손을 잡고 울퉁불퉁한 돌을 밟으며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을 옮겼다 순간 개구리 한 마리 팔딱 뛰어 대영의 발등 위로 오르자 놀란 대영은 몸의 중심을 잃고 개울 속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손 잡고 있던 인희도 함께 개울 속으로 넘어진다 미처 건너지 못한 애들은 모두 개울 속으로 들어와 물 장구를 치며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특별한 장난감도 없던 시골의 개울가는 여름 풀장이다 머리 위론 따사로운 햇살 드리우고 바람은 솔숲 사이를 가로질러 아이들의 땀방울을 식혀주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여름 아침을 헤집는다
“까르르르......”
뚝뚝 젖은 옷을 입고 도착한 언동에 있는 뒷동산은 아이들이 놀기엔 안성맞춤인 들판이 있었다 큰아이들은 장기자랑 상품으로 가지고 온 노트와 머리핀 면도날 모기향 그리고 용산댁이 주신 나비 꽃자수가 들어간 손수건등을 가운데 진열하곤 둘러앉아서 제일 먼저 인희에게 노래를 시킨다
“ 니 노래 한곡 해보거라”
“ 무슨 노래를 하라고?”
머뭇거리며 나서지 못한 나를 대영이 바보라고 놀리자 무슨 용기가 났는지 일어서서 구구단을 장단 맞춰 외워나갔다
“칠팔에 오십육~......”
내 장단에 맞추어 소년은 우리 원둘레를 손수건을 돌리며 빙빙빙 돈다
“ 무슨 그게 노래여~ 바보 아니여 그건 구구단 인디 내가 한번 해볼라네~”
대영은 의기양양하게 일어나 노래를 한다
“마징가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누나 보란 듯이 요즘 최고의 히트곡인 마징가제트 주제곡을 대영은 끝까지 부른다 아이들은 노래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함께 합창을 하며 호응해 준다 인희는 도루코 면도날을 상으로 받았고 대영은 마징가제트 주제가를 불러 빨간 소쿠리를 상으로 받았다 아이들은 수건 돌리기와 닭 씨름 마지막으로 보물 찾기를 하면서 놀았고 간식으로 가지고 온 감자와 삶은 계란 옥수수를 먹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러던 사이 여름 태양 아래 저만치 풀 꽃다발은 힘없이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손으로 세워 보고 입김을 불어보았지만 그 풀꽃 다시 주저앉는다 소년은 시들어 버린 풀꽃을 가져와 인희 앞에 내민다
“ 어떡해 꽃들이 죽었나 봐~”
대영은 물병에 있는 물을 풀꽃에게 부어보지만 축 처진 꽃들은 대답이 없다
“내가 더 이쁜 꽃으로 만들어 줄게 버리고 가자” 지켜보던 지섭이 끼어들었다
“ 싫어 여기에 묻어주고 갈래”
인희는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작은 돌무덤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시골의 아침은 분주하였다 이른 아침 작은아버지 작은 엄마께서는 밭에 나가시고 할머니께서 우리 아침 준비를 해주셨다 그 당시 계란은 최고의 반찬거리였다 암탉이 갓 낳은 달걀을 밥 위에 얹어서 찜을 해주셨다 식성이 좋은 남자아이들에게 밀쳐서 못 먹을까 봐 용산댁은 한 주저 크게 떠서 인희 밥 위에 올려 주신다 식사 후 할머니께서는 손바닥을 펴게 하시고 그 위에 소금을 주시곤 그걸로 양치를 하라신다 짭짭한 소금을 입안에 넣으니 짠맛 때문에 역겨웠다
양치후 토방에 앉아 경대 거울을 두시곤 참빗으로 내 머리를 곱게 빗겨주시는데 불쑥 참외 한 개가 툭 하니 굴러 온다
“종호야~ 니 이노무 자식 ” 할머니께서는 큰 호통을 치시며 그 소년의 뒤통수에 대고 나무라신다 ”우리 얘기들한테 가까이 오지 말그라 엉?‘
그 소년의 이름이 종호란 걸 인희는 처음 알았다 모두들 그를 아수라라고 불렀기에 그에게 이름이 있다는 게 새로웠다 처음 다가왔을 때 느꼈던 두려움은 해제되었다 개울에서 함께 물장구치며 놀 때도 언동 뒷동산에서 놀 때도 그의 존재에 어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그는 늘 무리의 일부였고 함께였다 간식시간에도 인희에게 배당된 삶은 계란 한 개를 그 소년의 손에 쥐어준 건 인희뿐이었다 풀꽃 다발을 건네주며 꽃게 걸음으로 사라졌을 때 그 풀꽃 못 지켜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도 소년은 늘 웃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도 함께 웃고 있다
그 소년이 참외를 토방에 던진 건 공격적이 아니라 친근감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기에 더는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정 타서 저렇게 됐지 지 아비가 종호 뱃속에 있을 때 집에 들어온 구렁이를 잡아서 저런 애가 나왔어 그려 벌 받은 거지 그려~내 집 들어온 구랭이는 건드는 게 아니여 그려 천벌이여,, 하루 종일 뒷 산에 올라가 혼자 뭘 하는지 뒷 따라 가봤는디 참새도 쫓고 달려 다니며 놀다가 해가 어둑해져야 내려 온디 뭔 일인가 요즘은 산에 안 가고 우리 집에 서성인가 모르것다야 참 별일이여~” 할머니께서는 혀를 끌끌 차시며 이내 정지간으로 들어가신다
인희는 사촌동생과 함께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참외서리를 계획했다 사촌동생 경주는 인희와 대영을 대리고 점순네 참외밭으로 향했다 한 달에 한번씩 점순네 아짐이 종호 데리고 목포 병원에 약 타러 나가고 없다는 걸 아는 경주는 인희와 대영을 데리고 참외밭을 접수하였다
“많이 건드리지 말고 두 개씩만 가져 오그라 누나야 니 먼저 들어가라”
“싫어 난 여기 있을래”
인희는 사촌동생이 시키는 대로 동생 손을 잡고 참외밭에 들어갔다 파릇한 참외 노란 참외가 두렁마다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노란 꽃이 너무 예뻐서 앉아 한참을 들어다 보니 참외 꽃 아래로 둥근 초록의 알맹이가 달려 있었다 노란 꽃에 달린 작은 알맹이가 너무 귀여워 공기놀이할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한 아름 땄다 참외 두 개 따오라던 사촌동생 말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목적을 달성한 그들은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와 따온 작은 참외 열매로 소꿉놀이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놀았다 마당 가득 노란 참외꽃이 피어났다 허공 중에 날아다닌다 서걱대던 댓잎마저 잠들은 고요하기만 하는 여름날 늦은 오후 산 비둘기 한 번씩 울어 대고 당산나무 긴 그림자 우물에 갇힐 고 해는 뉘어 뉘어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 성님 계시오~”
목포 나갔다 들어온 점순네 아짐 사리 문을 박차고 들어오신다
“오메오메 성님네 야들이 우리 참외밭 난리를 내놨소 우짤까요~”
지금 생각해 보니 경주 말대로 참외만 두 개 따왔으면 별일이 없었을 텐데 참외밭 꽃을 도랑마다 헤집고 다니며 따면서 넘어지고 달리고 하면서 참외밭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터라 점순네 아짐이 노발대발한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참외밭에서 애들이 뛰어놀더란 제보로 찾아온 것이다 한 차례 야단을 맞은 아이들을 마당에 뒹구는 작은 참외 방울들 까르르 웃으며 쌤통이다 한다
오림 골의 여름날은 그렇게 흘러가고 어느덧 개학을 앞두고 목포로 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 질적 그날도 마을 아이들이 모두 방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집 앞 방죽이 있는데 마을 아이들이 물놀이할 요량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비료포대에 바람을 넣어 끈으로 묶고는 그걸 잡고 개구리 수영하는 아이도 있었고 날쌘 수영 솜씨를 뽐내며 잠수하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물에 들어가는 건 무서워서 방죽 부근 앉아서 구경만 할 뿐이었다
저만치 종호라는 소년이 오고 있었다 인희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소년 비틀거리며 달린다 그 소년은 인희에게 메뚜기도 잡아 주고 방학숙제로 식물채집을 해야 하는데 도와주었다 인희하고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을 본 다른 마을 아이들도 자기들 대열에 끼워 주진 않았지만 이젠 종호를 따돌리거나 오지마라고 하진 않게 되었다 그 소년은 아수라에서 종호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학교를 다닌다면 6학년이라지만 지능은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그와 어느 순간부턴가 우린 함께 어울리고 그 소년이 다가와도 쫓아내지 않게 된 것이다 종호는 인희가 참외 알맹이를 좋아하는 줄 알고 그 후로도 익지 않은 파란 참외와 노란 참외 꽃을 따와서는 대청에 몰래 두고 가곤 하였다 아마도 그 해 점순네 참외농사는 정말 망치지 않았을까 싶다
“인희야 아버지 내일 느그들 데리러 온다고 기별 왔다”
작은엄마는 마당에 뛰 놀던 닭들의 간식으로 밭에서 잡아온 메뚜기를 뿌려주시며 말씀하신다
“엄니 야들 옷이라도 한 벌 입혀서 보내야 되지 않겠소 언동 나갔다 올게 소죽 쑤어놨으니 퍼 주실라요”
“오따오따 그래 잘한다 성재 지간에 우애있게 지내야재 걱정말고 당겨오그라”
할머니께서는 내심 좋으신 모양이다 아껴두신 동백기름을 손바닥에 바르시곤 내 머리를 곱게 빗겨주신다
“내 새끼는 머리빡도 이뻐야 머릿속까지 허연 것이 이렇콤 이쁜 것이 어디서 왔을거나”
오후 배로 들어오신 아버지는 늦게 도착하셨다 하룻밤 주무시고 낼 아침 일찍 첫배로 목포로 나갈참이었다
“엄니 이번 참에 같이 목포로 가십시다 우리가 장사 나가고 없으면 애들끼리 두기도 걱정되고 엄니가 좀 와계시면 안 될까요 인희가 독한 약을 먹은디 먹은 것도 시원찮아서 얼굴색이 안 나요”
“사람 구실이라도 하고 살런가 모르겠다 내가 인희 저것 생각하면 짠해 죽것어야 우째서 내 새끼한테 그런 빙이 와서... 요즘은 약 좋은 게 낫지 않것냐”
“결핵이 얼른 잘 안 낫는다고 안하요”
어슴프레 자는척하고 있던 인희는 자꾸 기침하고 툭하면 쓰러지는 것이 결핵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매일 먹는 약이 영양제라고 하셨는데 그게 아니나 보다 숭숭 빠진 머리와 멀건 얼굴색이 그 때문이었나 보다 절대 눈을 뜨면 안 돼 난 자고 있는 거야 인희는 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아침 일찍 아버지는 오리 한 마리를 잡으셨고 사발에는 빨간 오리 피가 들어있었다 슬픔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어 아버지는 한 손엔 오리피 또 한 손엔 회초리를 들고 인희에게 다가선다
“인희야 약 먹자”
“싫어요 먹지 않을 거예요 난 그게 뭔지 알아요 아버지 나 먹지 않을래요”
“이 자식아 안 먹으면 죽어 빨리 나아야지 이리 오렴”
아버지는 인희 대답을 기다려주시진 않았다 큰손으로 인희를 무릎에 앉히고 빨간약을 먹이고 있었다 비릿한 역함에 구역질이 나온 순간 아버지는 코를 잡고 삼키도록 하였다
인희는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댁을 나와서 선창가로 길을 나섰다 종호... 돌담 넘어 지푸라기를 던지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어저저저”
“ 종호야 안녕~ 나 우리 집에 간다 방학하면 또 놀러 올게”
“우아 어엉 저정어어....”
“누구냐?”
“네 여기서 알게 된 친구예요 식물 채집 하는 거랑 도와줬어요 ”
아버지는 종호의 외모를 보며 놀란 기색이다 아버지의 호통에 종호는 흔들던 손을 내리며 흙담만 손으로 긁고 있었다 그 아이와의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린 짧은 시간 내가 가지고 있는 크레파스라도 주고 올걸 그럼 그 소년은 어쩌면 풀꽃 찾아 저수지를 배회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또다시 보건소 치료를 받으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유년시절의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고 참외가 지천인 계절이 되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몇 해가 지나고 중학생이 된 후 시골에 갔을 땐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다
“ 아니 신 새벽에 뭐한다고 저수지로 나가서 살려달란 소리 한번 못 내고... 쯧쯧 아침에 주검으로 돌아왔단다 느그들 간 뒤로 산에서 참새 쫓던 야가 산으로는 안 가고 저수지에서 종일 돌아다니더니 이 험한 꼴 당해 브렀다야 징한놈의 시상”
저수지가 보이는 언덕 위 작은 무덤을 바라보시며 곰방대 불을 지피시는 용산댁의 눈 언저리가 빨갛게 상기된다
자식 저수지에 바친 점순네 서울 아들네로 가고 빈집 담장 너머로 능소화 긴 목 뻗어 행길가로 뻗어있고 댓돌 위엔 주인 없는 검정고무신 한 짝만이 드려 누워 세월의 똬리를 틀고 있다
멀리 산우는 소리 들리고 저수지 풀꽃들 맑간 얼굴 하나 그려 낸다
종이배 만들어 방죽에 띄웠어
일렁이는 물결에 자꾸만 자꾸만 멀어져 가
너무 멀리 가진 마
돌아오는 길 잃어버리잖아
풀숲에 주저앉아 손 내밀어 잡아 보려 했지만
멀어져 가는 종이배
사랑해요
바람이 전해준 전언
사랑하지 마
어떡하죠 이미 사랑해 버린 걸
선창 대합실 구멍가게에서 인희는 소주 두병과 쥐포 몇 마리를 샀다. 낯선 여자의 방문에 궁금증을 못 참은 아낙은 인희를 쳐다보면서 묻는다
“뉘 집 찾아오신 거요? 못 보던 얼굴 인디?”
“네, 오림골 찾아가는 길입니다”
“오림골? 뉘 집이요? 나도 오림 사람인데 ”
“네 오림 저수지 옆 대추나무집 손녀입니다 ”
“오메오메 우짜스까,저 뭐냐 뭐냐, 그때 방학 때면 놀러 온 목포 인희 아니요? 우리 같이 놀러도 댕기고 같이 소꿉놀이도 했는디 나 모르겠소 내가 인희 다리 아프다고 하니 업어도 주고 했는디...가만히 보니 어릴 때 얼굴이 남아 있구먼 그래, 우리 집 양반 저 짝에서 불 때고 있는디 방앗간 집 아들 말이요”
인희를 업어도 줬다는 그 여자, 미순의 너스레가 싫지 않았다. 마치 몇 년전부터 쭈욱 함께 지내온 지인처럼 미순은 인희를 반겼다. 그도 그럴 일이 없다 매일 바다만 바라보며 사는 미순은 똑 같은 생활의 무료함중에 있다 또래의 인희의 등장이 반가운것이리라
방앗간 집 막내아들과 결혼한 그녀는 대합실 구멍가게와 그 옆 식당과 낚시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행기 아버지 이리 좀 와볼라 거시기 있소 용산댁 손녀 인희씨 왔어라 싸게 와보소”
검게 그을린 남자, 풍만한 그녀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브래지어도 안 하고 축 처진 가슴에 불거진 유두가 배꼽까지 내려온 그녀와 대조적으로 가냘프다 인희는 순간 두 사람의 정사를 상상하며 실소를 머금어 본다
“인희? 맞네 애기 때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네 우째 하나도 안 변하고 그대로 이당가 아고 진짜로 반갑네 ”
종호를 쫓아내던 까칠했던 방앗간 집 아들 지섭, 서울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하다가 직장암 3기 수술받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상처입은 고래가 미역 숲에 들어가 치유하듯 고향 바다로 돌아왔다나 똥주머니 차고.
“며칠 쉬어 갈 수 있는 마땅한 거처 혹시 있을까요?”
“ 여기는 여관이나 호텔은 없고 우리 집에서 민박도 하지라~ 젤 깨끗하고 바다 잘 보이는 곳으로 치워 드릴 란게 걱정 마슈”
미순이라는 그녀는 인희의 가방을 덥석 들고 따라 오라며 앞장선다 파도횟집 이층 다닥다닥 붙은 표정 없는 방들 앞에 붙은 이름표 203호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잽싸게 탈출을 시도하려다 미순이 뿌리는 싸구려 방향제에 갇히고 만다 인희는 미순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와 텔레비전이 무심한 듯 있었고 거울 걸린 벽 위로 동그란 시계가 있다
“인희 씨 시장하시지라 식당으로 내려와서 우리랑 밥 한술 같이 뜹시다 찬은 없지만”
미순은 큰 몸뚱이를 흔들며 앞서 내려갔고 인희는 산소 갈 채비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잔뜩 흐린 하늘은 솔가지가 건드리기만 하여도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만 같은 얼굴이다, 인희는 미순이 끓여준 정체모를 탕을 뜨는 둥 마는 둥 바다식당을 나와서 더운 여름날 구슬 나무 아래 그림처럼 서있는 코란도 개인택시를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가 계시는 산소는 선착장에서 걸어서 족히 이십 리가 넘는 길이다 예전엔 차가 없어서 걷거나 운 좋은 날엔 경운기도 얻어 타고 가곤 했는데 지금은 마을 택시가 한 대 있어서 발품 팔일은 없어도 될 것 같다 코란도 택시기사는 룸 미러로 힐끔힐끔 인희를 쳐다보았다. 일 년이면 한 두어 번 낚시꾼들이 찾을 뿐 외지인은 보기 드물다. 인희는 애써 눈 초리를 피하였다. 적어도 이 남자한테 내가 누군지 왜 이곳에 왔는지 일일이 설명하기 싫어 애써 외면하며 창밖 풍경에 눈을 던지고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만 하는 벌초 탓에 무성히 자란 풀들, 우리들 어렸을 적 하루면 몇 번씩 오르던 곳이었다 아이들 걸음에 풀 돋을 새 없었건만 지금은 고스란히 모든 추억을 묻고 산의 일부인양 시치미 떼고 있다 기숙이 입버릇처럼 중얼거린 “참말로 느그 아버지 계신 곳이 명당이어야”
한 번도 와보지도 않은 기숙이 마치 눈앞에 보고 있는 양 세세히 선산 풍경을 이야기할 때면 정말 기숙과 한 몸 쓰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 하긴 하나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굳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선산에 올라오면 한 눈에 펼쳐지는 바다와 아치형 굴곡을 이루며 형성된 모래사장 그리고 소나무가 우거진 섬속의 섬 외진도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선산을 감싸 안고 있는 형상이다 산에 오르며 흘렸던 땀방울도 거침없이 불어오는 산바람에 맥을 못 추리고 사라진다.
인희는 아버지께서 생전 좋아하셨던 참외와 마른오징어를 접시에 담아 두고 소주 한 컵 가득 따라 산소앞에 올리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아버지 인희 왔어요 죄송해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버지 근심 보따리 인희가 아버지 보고 싶어서 왔어요 죄송해요 아버지 계신 곳은 편안하신지요 아버지~ 오림 점순네 아들 종호 혹시 만났나요? 그곳에 왔던가요? 아버지 그 아이 보시거든 잘 보살펴주셔요 물에 젖어서 많이 추울 거예요 따뜻한 차도 좋아요 그리고 그 아이 몸도 고쳐주셔요 다시는 놀림 받지 않게, 외롭지 않게요 그리고 인희가 종호 많이 보고 싶다고 전해주셔요.”
후드둑 두두두둑
아침부터 잔뜩 찡그린 하늘이 소나기를 몰고 왔다. 아버지 싸늘히 식어버린 시신을 모시고 독선 빌려 이곳 선산에 왔을 때 갑작스러운 겨울 소낙비에 슬퍼할 겨를 없이 안장하고 내려왔었는데 또 비가 내린다. 더는 울지 말라고 아버지께서 또 비를 주시나 보다
‘아가 어서 내려가거라 모든 게 다 잘 될 풀릴 거야 아가 걱정 말고 내려가거라’
아버지의 걱정인 양 내리는 소낙비에 인희는 주섬주섬 산을 내려왔다.
산 입구엔 경운기 한 대가 시동이 걸린 요란한 소리를 질러댄다. 지섭이다
“비 올 것 같은디 산에 갔다고 집사람이 그러기에 나와 봤어 비에 다 젖었네~”
지섭은 파리하게 떨고 있는 인희의 어깨에 농협마크가 새겨진 노란 우의를 걸쳐주며 수건을 건네주었다
“풀이 많이 자랐을 텐디 어떻게 올라갔단가? 구정 때 동생들이 와서 벌초하러 왔든디 여름 풀은 금방 자라블드라고”
지섭은 사람 좋은 너스레를 떨며 인희를 경운기 조수석에 앉도록 하며 경운기를 몰았다
“그대로야 마을길도 산도”
“뭐라고?”
경운기 소리에 묻힌 인희의 작은 목소리를 재차 확인하고픈 지섭은 인희에게 얼굴을 들이 민다.
비에 젖은 지섭에게 개구리 냄새가 났다. 오림 골에서 논두렁 개구리를 젤 많이 잡았던 지섭이었다. 마른 콩 가지를 불에 지펴 꼬챙이에 개구리를 꿰어서 구워 먹었던 기억에 인희의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푸른 콩밭을 지나고 개울을 지나니 소낙비가 그치고 저 건너 방죽으로 무지개다리가 생겼다.
“무지개다~ 지섭 씨 잠깐만 멈춰봐요 보이나요? 무지개 떴어요”
인희는 경운기에서 내려 폴짝 뛰며 비에 젖은 생머리를 나폴 거리며 뛰었다.
“쌍 무지개구먼”
지섭은 농민후계자 모자를 벗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두가 떠나 버린 오림리 시끌벅적했던 오림 골은 적막 하다. 용산댁이 돌아가시고 작은 집도 서울로 이사 갔다. 폐허가 되어버린 집을 뒤로하고 경운기가 교회 앞을 지나가는데 또르르 공 하나 글러온다.
지섭은 경운기를 멈추고 내려서 공을 주워 들었다.
“아저씨 이 쪽 이예요 던져주세요”
교회 옆 영애원 담 넘어 까만 머리를 내밀며 한 아이가 손을 흔들고 있다. 지섭은 공을 힘껏 던졌다.
“ 저긴 어디예요?
“네 영애원이라고 장애인복지관이에요”
인희는 시야에서 멀어지는 영애원의 담장에 피어있는 능소화의 주홍빛이 낯설지 않았다. 왠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은 듯했다.
꿈을 꿨어.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좁은 길 막다른 골목길로 접어든 거야. 나는 차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웬 남자 맨 발로 걸어와서 내 차를 번쩍 들어서 뒤 바꿔 놓고 유유히 사라지는 거야... 내가 다시 나갈 수 있게...
“창밖에 속삭이는 별과 같이 반짝이는 마음들이 모여 삽니다~ 오순도순 속삭이며 살아갑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영애원 마당에 들어선 인희는 비어있는 피아노에 앉았다. 아이들의 노래에 맞추어 피아노를 연주했다.
“ 아줌마 누구세요?”
한 아이가 물었다.
“안녕 합창소리에 이끌려서 나도 모르게... 아줌마가 방해했네요 미안해요”
“아녜요 아줌마 피아노 또 연주해 주세요 네?”
아이들의 환호에 인희는 활짝 웃으며 전주를 시작하려던 그때 굵은 남자 목소리가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
“ 잠시만요, 선생님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순간 인희의 피아노에 얹혀 있는 양손이 순간 땅으로 떨어졌다. 인희는 순간 벌떡 일어섰다.
“종호?”
굽은 등을 움츠린 남자는 인희를 한번 쳐다보면서 따라올 것을 신호를 줬지만 인희는 그 자리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종호.... 살아있었던 거야?”
인희는 비틀거리며 그 남자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섰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곳은 상처 많은 아이들이 있는 곳이랍니다. 섣부른 친절은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답니다. 선생님이 계속 옆에 있어주지 못할 거면 아이들에게 다가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자는 또박또박 조리 있게 인희를 향해 말하고 있다. 인희는 그 남자를 가까이에서 만져보고 싶었다.
‘종호와 비슷한 외모인데 이 남자는 말을 너무 잘한다. 하지만 눈빛이,,, 아~ 나를 외면하고 피하기만 했던 종호의 그 눈빛이 지금의 이 남자한테는 없다. 나를 너무나 똑똑히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인희의 집요한 눈빛에 남자는 당황한 듯 뒤로 주춤 물러섰다.
“상처 투성인 저를 아이들이 받아준다면 사랑스러운 이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요.”
휘청 거린다, 모든 것들이,자욱한 물안개가 걷힌다 여기였던 거야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불면증과 메니에르,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인연들 속에서 내가 꿋꿋이 이겨낼 수 있도록 나를 지켜준 곳이, 아버지가 계시고 물안개 핀 방죽이 있는 곳 여기 지금 여기인 것이다.
남자는 차 한잔을 인희에게 권한다.
“ 이 곳은 안개가 자주 끼어요. 차 한잔 드시면 좀 괜찮아질 겁니다”
“감사해요”
인희는 찻잔을 받아 들면서 남자를 바라다보았다. 플 꽃다발을 건네주며 달아났던 그 소년 종호
단지 등이 굽은 꼽추여서 이런 느낌이 드는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인희는 좀처럼 그 남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만약 종호에게 기적이 일어나서 말할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비대칭얼굴도 얼마든지 현대의학으론 성형으로 새로워질 수도 있을 테고...
“아까 종호라고 부르신 것 같은데 종호가 누구신데요?”인희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인사가 늦었어요 전 김인희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네 전 민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오셨나요?”
“선착장 바다식당 민박에서 묵고 있어요 아직 적당한 거처를 못 구했어요 가능하다면 영애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아이들과 노래만 하고 지낼 수는 없어요 아이들 숙식에서 생활지도까지 손길이 많이 필요합니다. 지원이 열악하다 보니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케어하고 있어요, 여기는 보호자 없는 장애아동들이 있는 곳이 랍니다 물론 신원이 확실해야 저희와 함께 할수 있구요”
민권은 인희에게 영해원을 구석구석 보여주었다. 영해원 뒷 길은 바다와 연결이 되어서 넓은 모래사장은 아이들의 운동장이 되어주고 있었다. 남자아이 3명 여자아이 2명 민권 6명이 지내는 이곳은 민권의 아버지의 후원과 정부의 지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인희는 바다식당에서 짐을 챙겨서 나왔다.
갈 곳이 있다는 거, 어느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 준다는 것이 이토록 가슴 떨리는 일인 줄 모르고 살아왔다. 현정에게 돌아간 민식이 이해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부평초였던 것이리라 회귀본능이 있는 모든 것들은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다.
방죽 가득 수초를 기를 거예요
매일 한 뼘씩 커지는 넝쿨 따라
몸을 불리는 종이배
그믐달 뜨는 야윈 밤 샛별이 사라지기 전 돌아가야 해
날 잊지 말아요
바람이 전해준 전언
날 찾지 말아요
어쩌죠 그대 이미 내 안에 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