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제29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by korean posted Jun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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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29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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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29차 당선자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공모 역시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응모한 작품이 상당수였다.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아쉽게도 이번 공모에서는 금상을 뽑지 못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이번 <창작콘테스트> 제29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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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 솟대가 되어
   - 최교빈


심장이 가렵다 솟대가 자라나려나 봐
슬픈 날에 장대비를 너무 많이 마셔서
마음의 둥치에서 기둥이 솟아난 거야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해줄래
생리적 반응이니까 / 비판할 이유는 뭐니

우산 없이 거닌 여행은 초라했지만
부당한 속죄 – 기도가 닿을 곳은 어디에

숱한 의문들이 맞물린 하늘의 끝에서
내 生이 나그네를 위한 이정표가 된다면
단 한 번 퍼덕임 없이 울음 머금을 텐데

갈바람 불어올 때 옆모습만 내보여주어
위태한 솟대 위 청동의 피사체로 남아야지
 
중심에서 아슬히, 가슴이 간지러워, 지독한
사랑에 지쳤을 때 마침 솟대가 자라났다

내가 울적할 땐 누가 우뚝 솟아줄까
풍향에 저항하다 보면 비는 언젠가 그칠 거야
그런 날엔 맑게 갠 지평선을 응시하면서
횡으로 속삭이는 동류의식에 젖어 봐야지

꼭대기까지 비상할 새들의 대화를 엿듣고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말하련다



■ 갱년기를 잡아라
   - 최교빈


내가 태어난 날 발간한 조간신문 7면*을 읽었다
살 빼려면 오리처럼 걸어라 「에어로빅 워킹」 美서 선풍
술에 취한 타조처럼 뒤뚱대며 고수부지 산책하다가
가스 불을 끄지 않았거나 현관문 열고 나왔단 기분이 들어
엉덩이 좌우로 씰룩대며, 지나가는 미국인에게 괜스레 인사 건넨다
오늘은 영국식 억양으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싶은 날인데
한강에 괴물이 살지 않는단 사실 - 봉준호 감독만 모르고
극장에서 디워를 봐야 진정한 애국주의자다 – 그건 영구 씨만 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리무기 출연 - LA 출신, 함경북도 사투리를 쓴다
둘 중 한 놈이 수컷이라면, 역겨운 외형을 무릅쓰고 성교할 게 분명한데
나는 1987년 5월 30일 조간신문을 편다, 타임지에서 발췌한 「에어로빅 워킹」
풋- 하고 헛웃음이 나올 뻔하다가, 미진한 부분 補講, 불미스러운 사건
턱 치니 억 죽은 사내의 연대기, 손바닥보다 더 작은 크기의 단면으로
살 빼려면 오리처럼 걸으란 기사 보다 더 앙증맞은, 한자로 남발되어
적에게 알을 빼앗기고 만취한 타조의 얼굴로, 둔치에 안아 한강을 바라보다가
지나가는 흑인에게 일부러 친한 척한다, 외국인은 내 인사를 받아줄 것 같았는데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 다이어트가 더 중요한지, 무시하고 그냥



■ 편지 1
   - 최교빈


아들아, 그해 오월은 여름이 빨리 왔단다
우리의 청춘은 식지 않아 화가 잔뜩 났고
서툴도록 과열된 패기가 눈의 실핏줄 터트렸지

아들아, 그해 오월엔 땀이 마르지 않았단다
더운 계절에도 감기에 들 수 있음을 깨달았지
크게 심호흡하면 울음도 꿀꺽 삼켰는데 말이야

아들아, 우리의 젊음은 은사시나무를 닮았다
적절한 상징으로 환유 되진 않아도 상관없고, 그저
그해 오월은 유난히도 더웠지만, 누구 하나 말이야
찌는 열기를 향하여 짜증 내는 사람 없었다고

아들아, 답장을 부탁한다



■ 편지 2
   - 최교빈


아버지, 올해 여름도 짓궂게 일찍 찾아왔습니다
서울, 이곳의 오월은 유난히 길어, 206 강의실의 공기는
오늘따라 칙칙한 모노톤입니다, 사실 잿빛에 가까워요

아버지, 누군가를 부리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죠
좋은 경영인은 기업의 발판을 닮았다고, 교수님이 말합니다
경영학 개론 수업은 지리해서, 저는 성긴 하품 짓이겨요

아버지, 삼십 년 전 오월 이 강의실에서도 큰 일렁임
그리고 무언가가 되려고 뭔가를 부르짖는 젊음들이
환호성 지르며 캠퍼스를 활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의 눈빛은 전부 잿빛, 불이 다 꺼졌나 봐요

아버지,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 보이어리즘
   - 최교빈


  계절이 끝을 축복하고 싶어도, 낙엽 더미엔 섣불리 뛰어들지는 마 흙에는 거미나 오염물질이 있을지 모르니까, 혹은 탄저균 덩어리가 꿈틀거릴 수도 있어 고독은 갈바람 형태로 불어오겠지 졸음이 새벽의 유성 빛처럼 쏟아져도, 양팔 벌려 누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해 秋와 冬의 층계참에 서서, 비현실적으로 눈동자를 굴리는 거 어때, 너의 동공 속엔 타인이 자리 잡아, 몰래 훔쳐보는 건 위법일까, 아니야 애정이 깃든 관찰의 범주에 속하겠지

  그것은 관음증의 이음동의어다 단순히, 다른 언어 기호로 표현한 변태적 행위일 뿐이다, 오래된 한영사전을 펼칠게 누가 여기 가을을 박제했을까, 누대의 것도 아닌, 고작 천 구백 팔십년대의 흔적이, 제멋대로, 숱한 과거인 척 흥성거린다 하필 V 장에 남아 있는 오래된 낙서들 – 옆집 그 사람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았다 – 사랑해, 너도 같은 마음일 게 뻔해 – 두통이 날 만큼 어지러운 성욕을 묵도하다가, 손샅이 뜨거워진 건 비단 착각 아니겠지

  화형식을 거행한다, 죽은 잎사귀들을 전부 끌어모아, 지나간 연인을 위한 詩를 전부 집어넣을게 이곳, 밤의 夜산엔 산소가 부족한가 봐 숨결을 불어넣는다, 카니발리즘을 일삼는 인디언들의 축제처럼, 어설픈 민속적 춤사위를 펼치고, 마음이 맞는 이성과는 재빠르게 섹스를 서슴지 않아, 그러다 목이 마르면 누군가의 타액을 들이켜도 좋아, 모든 희망이 연소하는 하늘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계절을 찬미하며 고개 끄덕여 – 유려한 나선형으로

  옷자락에 불씨가 들러붙는다, 겨드랑이가 뜨거워서, 강물에 뛰어들고 바닥까지 잠수해야지 맨손으로 구멍을 파는 건 조금 지난하지만 – 우리에게는 아가미나 물갈퀴가 없으니까 – 호흡이 부족할 땐 신속히 대가리를 들이밀어야 해, 숨비소리 아니, 관음의 대상이 된 피사체의 죽비소리,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귀하라고, 그건 뜨거워서 싫어 – 내뱉는 불만은 버블거려 듣기 거북하지만 – 대지엔 전염병이 득실거리니까 – 차라리 미세 먼지를 들이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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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당선작 심사평


  제29차 <창작콘테스트> 은상은 시(詩)부문 최교빈 씨의「솟대가 되어외 네 편의 시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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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 콤플렉스 부제: 나를 사랑하는 법
   - 최유미


  어릴 적부터 굵은 뼈마디와 통통하고 짧은 손가락이 극심한 콤플렉스였다. 한국에서 성형 수술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중학생이었던 내 또래들의 큰 관심사중 하나는‘이 다음에 커서 어디를 고칠 것인지’였는데,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너는 나중에 커서 어디 성형 하고 싶어?”

같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나? 글쎄…”

  얼굴에 고치고 싶은 부분이 없다기보다 내 관심은 오로지 못난 손에 쏠려있었다. 성형 열풍에 힘입어 손가락 성형 수술도 빨리 유행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인터넷에 손가락 성형 수술을 검색해 보았지만 손가락 마디는 작고 정교한 관절이라 성형이 힘들다는 말들뿐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스스로 손가락 마디를 줄일 방법을 고안해내었다.
  먼저 가장 굵은 오른손 검지에 시도해보기로 했다. 샤프심 통 두 개를 준비해 검지 양 옆에 대놓고 샤프심 통이 뼈마디를 누를 수 있도록 고무줄을 칭칭 감아 꽉 매어놓았다. 몇 분 뒤 고무줄을 풀자 뼈마디의 너비가 조금 줄어있었다.

 ‘성공했다!’

  혼자서 손가락을 성형하는 데에 성공했다. 내로라하는 성형외과 의사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해낸 것이다. 신이 나서는 고무줄을 더 꽉 조여매고 다시 몇 분을 두었다 풀어보았다. 아까보다 효과가 좋다! 그러나 기쁜 것도 잠시, 잠깐 줄어든 것처럼 보였던 뼈마디는 이내 원래대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이전보다 더 부풀어 올라 양 옆으로 불룩해진 것이다. 검지는 가운데가 뚱뚱하게 튀어나온 항아리 같은 모양이 되었다.
  당황한 나머지 다시 한 번 강하게 손가락을 조여 맸지만 그럴수록 뼈마디는 더 심하게 옆으로 옆으로 커질 뿐이었다. 큰일이다. 혼자 손가락 성형을 해보겠다고 설치다가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내 욕심만큼이나 부풀어 오른 손가락을 바라보자 눈물이 날 것 만 같았다. 그런데 뼈마디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묘하게 아려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글쎄 관절에 염증이 생겼단다. 심하게 손가락을 쓸 일이 있었냐는 의사의 물음에 뜨끔 했다.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약을 며칠 먹으니 조금씩 나아지는 듯싶었다. 그러나 처방받은 약을 다 먹은 후에도 손가락 모양이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아야지. 전문지식 없이 시행하는 민간요법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 뒤로 남에게 손을 펼쳐 보이는 일을 더욱 꺼리게 되었다. 부득이 손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닥칠 때면 “나 손 진짜 못생겼어.”하고 미리 나를 한 것 깎아내린다.

  그 애는 반지를 참 좋아했다. 반지 같은 건 평생 끼워본 적 없던 나에게 처음 반지를 끼워준 것이 그 아이였다.

 “예쁘네. 잘 어울려.”

  야시장에서 산 그 반지는 작은 꽃이 나란히 붙어있는 모양이었고 둘레를 조절 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운 은으로 된 꽃반지. 신기하다. 보기 흉할 줄로만 알았는데 새끼손가락에 끼우니 아주 못 봐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종종 그 반지를 끼우곤 했다.

  커플링이라는 것도 그 애와 처음 맞춰보았다. 아무리 새끼손가락에 시도해보았다고 해도 약지에까지 반지를 끼우는 것은 낯설고 두려웠다. 내 호수가 일반적인 여성들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일도,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이런 방식으로 드러내고 다니는 것도 내게는 조금 버거운 일이었다. 손에 끼운 반지와 함께 못난 손을 남들에게 보이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 애의 극성스러움 덕택에 꽤 오랫동안 어울리지도 않는 예쁜 은반지를 끼우고 다녔다. 반지를 끼던 마지막 날까지 “돼지 목에 진주”라는 말이 가슴 한 켠에서 떠나지 않았다.

 “충분히 예쁘고 귀여워. 너라서 다 좋은 것 같아.”

 나의 모든 것을 오로지 ‘나‘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내 작고 투박한 손 위에 크고 따뜻한 손을 포개어왔다.
그는 내 못난 손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려하지 않는다.

 “네 손은 이미 충분히 예쁘지만, 네가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내 손을 내가 스스로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보채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지그시 나를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내게는 콤플렉스가 있다. 그것도 꽤 많이. 굵고 짧은 손가락도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제는 거울을 보는 일이 이전만큼 싫지 않다. 펼친 손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그래. 이게 나인걸. 이 손이 다른 누구의 손도 아닌 내 손이라는 사실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지만, 더 이상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가만히 옆을 지키는 일.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말이 공기를 타고 피부에 스며들어, 수많은 혈관을 지나 심장 깊숙한 곳에 닿아 울릴 때 까지, 다만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일.
이제는 나를 바꿔 사랑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지만,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저 ‘나’이기 때문에. 



■ 생존을 위한 글쓰기 | 부제: 나를 사랑하는 법 두 번째 이야기
   - 최유미


  어릴 적 나는 눈물을 가득 품은 폭탄 같았다. 살짝만 톡 건드려도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화가 나도 울고 슬퍼도 울고 억울해도 울었다.
  감정을 알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삼시 세끼 챙겨먹듯 눈칫밥만 먹어서는 남들 눈치만 살폈다.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과 반응 무조건적인 우선순위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제 때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할 감정들은 해소되지 못한 채 응어리져 뒤엉켜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오롯이 홀로 마주하고 감당해야만 했다.

  글을 처음 쓴 것은 더 어릴 때였지만 글을 통해 내 감정을 마주하기 시작한 것은 열네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을 죽도록 괴롭게 했던 엄마의 병을 약으로 억누른 직후의 일이었다. 너무 많은 생채기가 난 어린 마음은 들끓는 분노와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나는 화 낼 대상을 잃었다. 엄마는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 늘상 축 처져서는 반만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열등감에 휩싸여 있었으며 폭력적이고 불안정했다. 그런 스스로를 어찌할 바 몰랐다.
  하루는 답답한 심정에 종이와 펜을 꺼내들었다. 죄 없는 흰 종이에 까만 글자를 마구 쏟아내었다. 미친 듯이, 쉴 새 없이 시꺼먼 것들을 퍼부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다 뒤엎어내듯이. 그리고 끅끅거리며 울었다. 그렇게 종이 위에 쏟아 부은 내 감정들을 처음 마주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을 같은 짓을 반복했다. 말주변이 없어 어느 누구에게 털어놓을 생각도 못했던 나에게 글은 유일한 소통 창구가 되어주었다. 글을 보는 이는 나 밖에 없었고, 그렇게라도 나는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글을 쓰는 게 좋았다. 손이 움직이는 대로, 글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 멋대로 글을 쓰는 게 좋았다. 그랬던 내가 열여섯 되던 해, 글보다도 좋아하는 게 생겨버렸다.

  사람이 좋아졌다. 사람에게 털어놓고, 기대고, 의지하는 게 좋아졌다. 그래서 단 하나뿐인 소통 창구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글을 미루게 되었다.
  글은 ‘나’를 마주하게 해주었지만, 사람은 ‘사랑’을 맛보게 해 주었다. 어릴 적 받지 못했던 사랑이라는 녀석은 내게 지나치게 달콤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 받기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들이 좋아하는 내가 되기 위해 애썼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보다 완벽한 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욕심을 내었다. 엄격한 기준을 세워 불가능한 틀에 나를 끼워 맞췄다. 완벽한 내가 아니면 불안했다. 사람들이 떠나는 게 무서웠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말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타인이 중심이 된 삶은 오래지 못해 한계에 부딪히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 더욱 발버둥 쳤다. 그럴수록 나는 더 빠르고 확실하게 무너져 내렸다. 끝내 욕심을 버리지 못했던 나는 수없이 많은 실패와 절망을 마주하다 결국 아프고 말았다.

  극심한 병에 시달려 나는 아주 많이 아프고 아팠다. 병은 또 다른 병을 낳았고 나는 점점 위태로워져만 갔다. 그런 나를 견딜 수 없어 스스로를 더 아프게 했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서있단 걸 느끼던 날, 다시 펜을 들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그 날처럼 내 안에 가득 찬 검은 것들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마구 쏟아내었다. 꾹꾹 눌러 담아 왔던 감정들이 울음과 함께 솟구쳐 나왔다.

  글이란 건 참 신기하다. 새하얀 종이를 검은 글씨로 까맣게 채워나가는 것은 머릿속을 가득 채운 문제들을 털어내는 일과 같다. 내 머릿속 내용물을 종이 위에 부어놓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다시 나를 마주했다.

  죽을 것 같을 때면 칼 대신 펜을 쥐었다. 살기위해, 남아있는 온 힘을 쥐어짜 글을 썼다.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을 때에도 누워서 글을 썼다. 손끝에 준 힘으로 펜을 움직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럴 때면 글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나’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얕은 숨을 쉬었다. 얕은 숨이 차츰 깊어져 자리를 털고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글은 나와 함께 해주었다.

  글쓰기는 나의 생존 수단이 되었다. 충분히 괜찮아 진 지금에도 종종 글을 쓴다. 아직 마주하지 못한 수많은 나를 만나기 위해, 지금껏 알아주지 못한 나를 배워가기 위해.
  아직도 나는 내 감정을 잘 모른다. 알아차리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고 그걸 표현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든다.
하지만 괜찮다. 더 이상은 타인의 사랑에 목매 내 감정을 제쳐두지 않을 것이니. 나를 알아주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일의 첫 걸음임을 알았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일만이, 행복을 향한 유일하고 틀림없는 길임을 배웠다.

  조금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앞을 향해 나아간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나는 여정 안에 있다. 오늘은 또 어떤 나를 만날 수 있을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종이와 펜을 벗 삼아 또 다시 낯선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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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29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수필부문 최유미 씨의 「콤플렉스외 한 편의 수필을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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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선자들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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