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제1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by korean posted Oct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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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1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 제1차 공모가 홍보 부족 등의 이유로 응모 편수가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품들은 신선한 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응모자 모두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여겨지지만, 정작 진지한 사유를 통해 현실을 특색 있게 표현한 두드러진 작품보다는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묘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일상을 보다 내밀한 사유를 통해 제대로 해석하고 제대로 표현하였는지 묻고 싶다. 현실을 비틀듯 풍자화한 작품도 눈에 띄었지만, 작품으로 승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엿보였다.
  특히 비문, 오문이 많은 경우도, 장황한 설명으로 문장을 지루하게 열거하거나 생경한 표현을 억지로 짜깁기하듯 갖다 붙인 문장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창작콘테스트> 제1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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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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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 채석강
   - 김규석 


간조로 드러난
붉은 노을이
물기 머금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격포해수욕장 아랫길 닭이봉에서
책을 읽는다
 
젊은 아이들이 폴짝폴짝
흩어진 책장을 걸어 다니며
셔터 소리를 남기고
 
갈피 속에 묻힌 바람이
동굴을 만들어 놓고 파도를 기다린다
 
돌아앉은 인어의 어깨 사이로
흰 거품 내 뿜으며
읽어가는 세상 이야기
 
칠천만년의 세월을 품고 쌓아 온
읽지 못한 수많은 책들
빈속에 서 있어도
배가 부른


 
■ 낙엽
   - 김규석


자동차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등에 업은 바람 타고
쥐 떼들이
흙 속으로 달려가는 소리
촤르르
촤르르
 
두 눈 반짝이며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골목 안이 시끄러운 것은 멸망이 아니다
 
태양을 마시고
바람 속을 걸어 다니며
바쁜 생을 일궈오다
세월에 밀려
약삭빠른 동작으로
 
촤르르 촤르르
쥐 떼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소리
기쁜 윤회의 아우성 같아


 
■ 기부의 행복
   - 김규석


지금은 오그라드는 몸뚱이
악바리처럼 살아 온
조막손을 펴
수중에 끼어있는 귀한 시간을 사회를 위해 던지고 나니
마음이 이토록 편할 수가 없다
 
한때의 목숨을
고달픈 세상에 풀어 두었다가
넉넉한 결실은 아니지만
알차게 모은 시간
 
굽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귀한 마음이
새롭게 피어나는 싹들의 희망이 되어준다면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탁 트인 하늘만큼
후련해지는 마음


 
■ 제비꽃
   - 김규석


솔가리가 재잘거리는 사잇길을 걷다가
내 마음의 틈바구니에 낀
작은 거인들을 보았네
 
키가 크면 늘어난 창자 때문에
속병이 많아
수명이 짧아진다는데
 
작은 가슴으로
태양을 껴안고
별을 노래하며
 
마음 설레는
보랏빛 꿈을 꿔본 일 있느냐고
자랑을 하더니
아무도 찾지 않는 외길만을 걷고 있구나
 
강남의 3월이
9월을 물고 가는 전설을 안고
녹색 투구를 쓴 채 우주의 존재를 밝히듯
 
작은 거인의 노래를
소리 없이 부르고 있네


 
■ 이팝나무
   - 김규석


아득히 먼 하늘 속으로
어머니의 미소가
하얗게 피었네
 
꽁보리밥
곤피밥
시래기 경죽
눈물로 버무린 가난한 손길
 
이팝이
어디 있었나
 
풍성한 이팝나무
그늘에 앉았으니
 
하얀 어머니의 눈물이
뚝뚝
가슴으로 떨어지네
 
         


********

시(詩)부문
당선작 심사평


  [월간문학 한국인]에 정성 깃든 원고를 보내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이번 응모된 백여 편의 작품 중 마지막까지 남은 김규석 씨의 「채석강」외 4편을 1차에서 3차까지의 심사과정을 거쳐 <창작콘테스트> 시부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올곧은 자기성찰과 나무와 숲을 꿰뚫어보는 창작인의 자세를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詩 「채석강」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무거움 속에 유년의 기억을 반추케 하는 가벼움을 대비시켜 표현하였으나 제목과 내용이 설익은 감이 없지를 않습니다. 詩語와 연의 선택에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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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술과 합격 사이의 하루
     - 강가흔


  전날 친구들과 속상하고 졸이는 마음들을 나누면서 한바탕 마신 술 때문에 온 몸이 욱신거리는 고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를 벌하는 마음으로 마시는 술이라고 생각하며 들이 킨 술잔들의 개수를 어렴풋이 떠올리면서 나는 또 자책을 한다. 
  오전 한 가운데에서 일어나 물 한잔 마실 새도 없이 컴퓨터를 켜고 오늘 날짜가 잡힌 발표를 확인하러 내 수험번호를 빈 칸에 채운다. 순간 다음 페이지에 뭐라고 뭐라고 적힌 많은 안내 내용이 뜬다. 뭐가 이렇게 많아, 하면서 흔들리는 초점을 다시 잡고 눈을 찌푸려 확인을 하는데, 그 맨 윗줄에 적힌 글이 날아와 박힌다.
  - 합격을 축하합니다.
  순간 주변 공기마저 다 주목할 것 같은 전율이 온몸을 스쳐지나가고 나는 토해내듯이 소리를 내쉬며 방방 뛰었다. 보상이랄까 성취랄까 하는 것을 매겨볼 겨를도 없이 그저 살았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서 붙었다, 한 마디를 하는데 아, 응, 붙었냐. 엄마 바꿔줄게, 하면서 아빠는 수줍게 놀라움을 나타냈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빠는 그날 나보다 먼저 일어나 합격자 발표를 확인할까 말까 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어서길 몇 번을 했었다고 한다. 엄마는 한 번도 어딜 가라, 뭘 반드시 해라, 하고 주문을 넣은 적도 없었지만 내 합격 소식을 듣고 울고 있었다. 
  그런 희소식이, 어렵게 얻어진 소식이라 하더라도 우리 가족에게 어떤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토록 기뻐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만해도 된다는 무슨 형벌의 마침표처럼 느껴지고 함께 견딘 시간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날 나는 친구들을 만났다가 혼자 빠져나와 창덕궁엘 갔다. 겨울 창덕궁 후원을 거닐면서 나무를 보고 기와를 보고 꽃담을 보면서 좀 멍한 상태였던 것 같다. 믿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무덤덤한 상태. 
  창덕궁을 한참 돌다가 나올 때쯤에는 손이 얼어서 보랏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는데, 나는 그 손에 입김을 불 생각도 못하고 이제는 폐관할 채비를 하는 경비원들을 넌지시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내 앞으로 한 늙은 거지가 지나가다가 서서 떨어진 낙엽을 주워 낡은 외투 안으로 한 장씩 넣는 것을 무감동하게 바라보았다. 
  문득 합격에 대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다시 떠올리자 몸에는 피가 새롭게 돌면서 어디든 가자고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무작정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돌기 시작했다. 
  쓸쓸한 겨울의 서막, 거리는 텅 비어 쌩쌩 달리는 차들, 잠시 멈춘 버스 안의 우글거리는 사람들에 대해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목도리를 풀고, 외투를 열어젖힌 버스 안 사람들을 보면서, 여긴 추운데 거긴 더운가, 생각을 한다. 여긴 어두운데 거긴 밝은가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다가, 나는 너희가 보이는데 너희는 내가 안 보이는가 하는 생각이 돌담보다 더 높이 나를 고립시킨다. 걸어도 걸어도 나는 새로이 갈 곳이 없다.

  한밤중이 못 되었을 때에 나는 고시원으로 돌아와 좁은 침대에 누웠다. 성취는 달콤한 상상의 확장일 줄 알았는데 그런 욕심이 겁을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생각이 자라기 전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똑바로 누워 바라보는 천장은 창 밖 가로등 빛을 받아서 기이하게 주황색, 아니 검은색, 아니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끝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건네 보았다. 아, 하면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끝이다. 아, 아, 하면서 갑자기 어깨 뒤에서부터 몸통 앞으로 허한 것이 위장을 훑고 나가는 것 같았다. 
  끝이다. 아, 아, 아 그것들이 빠져나가면서 여기는 빈 공간이라고, 이곳은 텅 비었다고, 너는 허무로 지어졌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아기처럼 양 주먹을 쥐고 몸을 돌려 모로 누워 몸을 잔뜩 웅크렸다. 내가 꿈을 꿨나? 떠오르는 장면, 장면, 가슴을 할퀴고 간 일상, 일상 들이 어지럽게 스쳐가는 것 같았다. 그게 다 꿈이었나? 감상하는 나의 감정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응, 꿈, 너 이제 그런 데서 벗어난 거다, 너는 이긴 거다, 무덤덤하게 나의 공을 치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생각들이 엉켜서 나는 기력이 떨어져 가다가, 툭 끊기듯이 스스로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여기까지 오는데 그 많은 상처들이 남았어야 했나.

  침묵, 침묵이었다. 외롭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다. 발 뗀 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발붙인 곳에서 섞일 수도 없는 나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다. 나는 왜 오늘 같이 더 놀자던 친구들을 보내놓고 혼자서 창덕궁엔 갔는가? 눈물이 철철 흘러 돌아누운 한쪽 귀 구멍을 막고 서러운 느낌을 더한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봤던 높은 담벼락, 창덕궁과 창경궁을 연결한 그 다리에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어. 그 높은 꽃 담벼락, 그 나무고 청기와가 너무 좋아서 거기 나도 들어가고 싶었는데 할 일이 있었지 뭐야. 그래서 언젠가 저기 들어갈 거라고, 저기 가서 저 다리 나도 오고갈 거라고……. 그래, 그래서 갔구먼. 거기에. 그럼 만족스러울 일인데 왜 나는 울어? 다리를 공사 중이더라고. 그리고 이젠 사람들 못 지나게 한다네. 영영 막혔어. 영영. 영영 막혀버렸더라고. 그럼 왜 거길 일부러 찾아갔어? 그냥. 그래도 한 번 보고 싶어서……. 찾는 게 있던가? 아니, 정말 없었어. 
  생각은 약한 신호들이 간헐적으로 흔적을 남기다가 끊어지는 것처럼 정적을 만들어낸다. 시간은 지나가고 만신창이가 된 나만 이리 지쳐서 남았네, 하는 마음이 결코 포기나 허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추운 날씨에 낙엽 한 장 주워서 옷 안에 넣을 용기도 없는 나는 이제 더 큰 일 났다, 하면서 아까 봤던 늙은 거지의 행색만큼이나 내 마음은 초라해진다. 
  이제 침묵해야 해, 그때완 달라. 달라……. 

  그토록 바라던 합격통지서를 옆에 두고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술을 진탕 마셨던 어제를 생각해본다. 너는 노예야. 술을 마시면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나와서 화장실 거울을 보고 왠지 좀 화가 났던 생각도 든다. 그리고 오늘, 합격통지서를 받고는 문득 내가 무척이나 가치 있는 인간이 된 것처럼 생각했던 것도 다시 떠올려본다. 
  너는 노예야. 종이 한 장으로 너는 달라졌느냐?
  스스로를 경멸하는 말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내 키만 한 침대에서 나는 다리도 뻗지 못하고 스스로의 자의식에 몸을 사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멈추지를 못하고 시간이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시비를 걸 듯 계속 던져보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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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당선작 심사평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에 이름을 올리게 된 작품은 이순 씨의「술과 합격 사이의 하루」이다. 
  젊은 날의 고민과 방황은 지나고 나면 가슴에 달리는 훈장이 된다. 친구가 권하는 술에도 취해보며, 어렴풋이 나만이 가야 할 길을 찾아가는 나는 도시의 고독한 이방인이 된다.
  멈출 수 없는 젊음이 있기에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고 그들과 더불어 호흡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가슴 한 켠으로 밀물처럼 다가오는 이 지독한 젊은 날의 존재감을 나 혼자 추스르기에는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들지만, 나를 둘러싼 풍경들이 이야기를 건네고 꿈에서도 그리운 가족을 만난다면 나의 젊은 날은 결코 외롭지 않으리라.
  이순 씨의 당선을 축하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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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난적지도(亂賊之道)
- 신승민

 
  재 너머 고을 뒷산 기슭의 협로에선 서슬 퍼런 총포소리가 콩 볶듯이 이어졌고, 장정들의 장대한 몸뚱이가 베어진 짚단처럼 계곡에 나뒹굴기 일쑤였다. 토호가(土豪家)의 힘깨나 쓴다는 머슴들이 모조리 산까마귀 밥이 된 것이었다. 최후의 저지선이 뚫리자 쏜살같이 준령을 넘어서 마을로 하산하는 적들의 수는 자그마치 수백에 달했다. 하나같이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선두에는 예도(銳刀)를 든 보병이, 중간에는 화승총(火繩銃) 부대가, 그리고 전체의 7할에 달하는 농민들이 뒤를 잇고 있었다. 
  그들의 하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아래 고래등같은 기와집에선 괭이와 쇠스랑이 솟을대문을 찍고 악다구니 함성이 광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릴없이 열린 대문으론 온몸에 피칠갑을 한 농군들이 벌떼처럼 들이닥쳤다.
 
  “무위도식(無爲徒食)의 탕건쟁이들을 척결하라!”
  앞선 농군 하나가 선창하자 낫을 든 무리들이 이어서 규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천하대본(天下大本)의 막중한 업(業)을 어찌 알리오. 땀 흘려 일구는 노동의 가치를 어찌 알리오. 허황된 사변에 도취하여 세 치 혓바닥으로 백성을 미혹하고 해괴한 요설로 양민을 유린한 흑립(黑笠)의 도당(徒黨)을 당장 처단하자!”
  “흑립의 도당을 죽이자!”
  “탕건쟁이들과 흑립의 도당은 공리공론(空理空論)으로 백성과 민중을 도탄에 빠지게 한 죄를 받아라! 모두 끌어내 죽이고 문갑의 서책들을 모조리 불태워라!”
  진천동지(振天動地)하는 고함소리와 낭자한 비명소리는 여러 곳에 달하는 고을 유지들의 저택에서 흘러나와 하나로 어울려 피의 화음을 이루었다. 관아와 동헌(東軒)엔 불길이 치솟았고 사대부 집의 기와는 가루가 됐다. 애초부터 진압을 포기한 수령방백(守令方伯)들이 벌써 도망친 지 오래였으니 갓과 도포로 의관을 정제한 선비들은 물론 정자관을 쓴 토호들은 말할 것도 없이 농군의 죽창에 어육으로 남게 되었다.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리고 이슥한 밤이 되었지만 살육의 향연은 그칠 줄 몰랐다. 단말마의 절규는 한없이 드높아져만 갔다.
  고을 전체가 초토열화(焦土熱火)의 생지옥으로 변하던 그 시각, 다행히도 구사일생한 몇몇의 선비들과 유지들은 남쪽 개천 인근의 폐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림(儒林)과 부호(富豪)들의 씨를 말리려는 농투성이들의 수작이오.”
  “우리 고을 자락에 뿌리를 박은 토호들과 유지들은 이미 모두가 낮에 천참만륙(千斬萬戮)을 당했소이다. 역겨운 피비린내가 온 고을에 진동하고 있어요. 이거, 명백한 농군들의 반란 봉기가 아니겠소이까?”
  “관군도 도망친 마당에 봉기인들 어찌 하겠소? 그래도 재물과 세도가 좀 있다 싶은 실력자들은 음으로 양으로 힘을 써 대개 목숨은 건져서 도망쳤소이다. 문제는 유림의 형편이에요. 모두가 다 꼼짝없이 배 꿰인 고기 신세가 되지 않았소이까?”
  “우리 고을 뿐 만이 아니랍니다. 경도(京都) 인근에까지 선비들이 죽는답니다.”
 
  농민 봉기의 기운은 바람 부는 벌판의 불길처럼 위세를 더해갔다. 도읍과 요충지를 제외한 삼남(三南)의 모든 고을에선 관군도 토벌이 불가할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기세가 커졌고 심지어는 북변(北邊)과 도서(島嶼) 지역에서도 자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농군들이 관아를 점령하고 농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기실 그동안 중앙 조정과 지방 관부들의 추렴과 횡포는 참으로 심한 것이었다. 양민 중에서도 농민에게 가하는 세금은 형언할 수 없이 혹독했고 가렴주구(苛斂誅求)에 가까운 징발과 부역 역시 그들의 원망을 키우는데 한몫을 단단히 했었다. 지방 고을마다 고리대를 비롯하여 온갖 부정(不正)으로 축재한 부호들은 부패한 관부와 결탁하여 비리 은폐를 일삼고 있었고 중앙 조정은 아랑곳없이 수수관망(袖手觀望)만 할 뿐이었다. 조정 관부에겐 오로지 백성에게 무언가 앗을 생각만 있었다.
  그렇게 적도(賊徒)나 다를 것 없는 무리들이 세도를 남용하고 학정을 일삼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원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지만 세상의 누구도 그들의 사정을 살펴주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민초들의 고혈로 호의호식을 하는 구중궁궐의 왕실 속 임금은 비열해 보이기만 했고 백성의 세금으로 녹봉을 받는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은 역겨워 보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하나같이 부정비리와 부패로 칠갑한 수령방백들이 빈농(貧農)의 초가에까지 나타나 오른손으론 우악스런 오랏줄과 방망이를 쥐고 왼손으론 과한 세곡을 받아내기 위해 빈 손바닥을 보여주는, 그런 일련의 폭정과 압제를 비로소 농군들은 좌시할 수 없게 되었다. 살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농민들이 먼저 들고 일어서자 뒤이어 공상(工商)에 종사하는 이들도 나름의 불만을 내세우며 가세했다. 나중에는 노비들까지 합세했으나 여전히 봉기의 중심은 대다수의 농군들이었다. 천노(賤奴) 못지않게 이 땅 이 나라에서 힘겨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바로 농민이기 때문이었다. 말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지위를 정하였지만 실제론 중간층의 신분이라 나라 안팎의 가혹한 부담을 가장 많이 져야 했기에 없는 것이 더 나은 껍질 뿐 인 신분제인 것이었다.
  더욱이 입으로만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 일컬으며 농업과 농민의 삶을 치켜세워주면서 뒤로는 궁핍한 민초들에 대한 가학을 방관하는 중앙 조정의 양반 사대부들과 지방 사림(士林)의 이중성도 마침내 들고 일어선 농민들의 들끓는 노염(怒炎)에 불쏘시개가 되었다. 진실로 농민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척결대상은 양반을 비롯한 유자(儒者)들인지도 몰랐다. 
  입조하여 권세를 잡은 사대부는 물론이거니와 사림의 선비들 모두가 유학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내세우며 백성과 농본(農本)의 중요성을 강조한 금과옥조(金科玉條)의 격언들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실질의 의미로서는 한없이 미약했고 형편없기 때문이었다.
  매번 선비들은 유학에 정통하여 도저한 충직(忠直)과 간언(諫言)으로 임금과 백성에게 정치의 도리와 인간의 본분을 설파했지만 왕실과 조정의 기강을 다잡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는 데는 뚜렷한 효과가 없었다. 유도(儒道)의 충심(忠心)도 직접적인 현실의 개선이나 부패의 일소에는 그저 공리공론으로밖에 작용하지 못했다. 
  실천은 요원했으며 뜬구름 잡는 소리만 조정과 서원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오히려 인의(仁義)의 덕목을 강론하고 민심이 천명(天命)이라는 도리를 설파하면 할수록 느는 것은 조정의 붕당(朋黨)과 이전투구(泥田鬪狗)의 권력 다툼 뿐이었다. 
  조정의 대신(大臣)들은 겉으로는 경전 구절 또는 글자의 해석이나 예법의 유래와 시행을 놓고 이견(異見)으로써 정적과 맞섰지만 실은 정계에서의 세도를 잡기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았다. 유학은 사람의 길을 말했지만 사람은 유학의 길을 악용했다.
  바른 정치를 염원했던 공맹(孔孟)의 학설에서부터 신비한 인간의 심성(心性)과 심오한 우주의 원리를 논한 성리학(性理學)과 한때 사문난적(斯文亂賊)의 논란이 있었던 심학(心學―陽明學)으로 이어지기까지 유학은 수많은 세월 중원의 대국들과 더불어 이 땅 반도의 국가들에게 학문의 근본이 되었고 신묘한 이치가 되었다. 
  그러나 폐단이 극심한 작금의 세태와 실정에 이르기까지 유도(儒道)가 실현되어 국리민복(國利民福)과 태평치세(太平治世)를 이뤘던 때는 손으로 꼽기도 민망할 정도로 극소(極小)했다. 그저 사대부들은 권세 다툼과 국정을 농단하는 수단으로, 선비 유림들은 실질의 땀방울을 흘리지 않고 명망과 재물을 얻어 무위도식하는 공허한 변설의 기반으로 삼을 뿐이었다. 현실이 그러한데 왕도덕치(王道德治)가 존재할 리 만무했다.

  농군들은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의 노여움과 울분은 하늘도 사를 만큼 깊고 강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학은 유서 깊게 이어진 오랜 세월만큼이나 쓸모가 없었다. 농민과 장사꾼, 장인(匠人)들은 폭염과 혹한을 마다않고 뼈를 깎는 노동을 지속하는데 비해 선비들은 오로지 방구석에 앉아 편히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자들이었다. 더군다나 세상은 그런 선비 사대부들을 존경해마지 않았고 농공상의 민초들은 불학무식(不學無識)한 어리석은 중생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피땀 흘려 땅을 일군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세곡을 독촉하는 관부, 고혈을 추렴하는 부호, 자못 위엄 어린 설교를 늘어놓는 선비, 백안시하는 세상, 고역 같은 삶일 따름이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농군들은 논밭에 엎어져 망연자실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리하여 너무도 억울하고 원통했던 농군들은 마침내 머리띠와 칼을 집을 수밖에 없었고 하다못해 흙먼지 뒤집어쓴 농구(農具)라도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지난날의 삐뚤어지고 구부러진 세상의 이치를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장군(將軍), 자고로 혁명의 대업과 일대거사(一大擧事)에는 운용할 자금이 필요하기 마련이옵니다. 별 것 아니지만 대업에 뜻을 같이하는 것이라 여기시어 쾌히 받아주시옵소서. 이것을 이 노구(老軀)의 늙은이가 백성의 세상과 농민의 시대를 여는 이번 혁명에 동참하는 징표라 여기시옵소서. 부탁이옵니다. 받아주시옵소서.”
  “허어. 장군이라니요, 또 이것이 다 무엇입니까. 이런….”
  “바야흐로 장군께서 농민의 세상을 여시는 것이옵니다. 바깥에 시립한 농군들 다수가 장군의 혁명 대의(大義)에 감복하여 이번 거사에 동참한 것이옵니다. 비록 이 늙은이가 한 때 공허하고 요사스러운 유도에만 치중하여 농업의 진면목과 피땀 흘려 일하는 참된 노동의 정신을 받잡지 못했사오나, 지금부터라도 정진하여 천하대본의 혁명에 여생을 바칠까 하옵니다. 부디 허락해주시옵소서.”
  부복한 최 영감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서슬 퍼런 농민군의 수장 앞이었다. 그가 비록 경북(慶北) 일대의 최대 부호라지만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위세를 떨 수 있겠는가. 바닥에 잔뜩 엎드린 최 영감의 등에선 식은땀이 한줄기 흐르고 있었다.
  “허어. 아니 되는 것이건만, 허어 글쎄….”
  농군 수장의 얕은 탄식소리와 재물의 정도를 살피는 간교한 눈초리가 이 모두가 그렇고 그런 의례(儀禮)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장은 마지못해하는 듯 투박하게 서탁(書卓)에 놓인 자개 보석함을 집어 품속으로 넣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황소 등을 두드리며 쟁기로 밭을 갈던 거친 손이 나름 호사를 하는 것이었다. 
  보석함을 집어 드는 소리에 최 영감이 살포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수장의 얼굴엔 난처한 기색이 역력히 있었지만 그 속에 화색이 깃드는 낌새가 분명히 엿보였다. 최 영감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품을 크게 써서 마련한 재물이었지만 앞으로 닥칠 환란에 대비하는 용도로서는 결코 아까운 정도가 아니었다. 

  과연 수장의 이어지는 음성은 한 귀로 듣기에도 부드러워져 있었다. 눈도 앞서 경계했던 그것이 아니었다.
  “듣자하니 최 영감께선 평소 핍박받는 농민들의 고충을 정성껏 들어주시고 힘껏 돌봐주셨다지요? 잘 하셨습니다. 영감께서 하신 일이 진실로 우리 혁명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하여 농민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신 영감의 뜻이 워낙 깊고 갸륵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아두겠습니다. 장차 이 재물은 백성이 사람대접을 받는 세상, 농업의 역행(力行)이 존중받는 시대를 열기 위한 자본이 될 것입니다. 영감께선 우리의 혁명에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신 겁니다.”
  이번엔 최 영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노회하고 교활한 웃음은 만면에 가득했다.
  “아니옵니다. 이 미천한 늙은이가 무엇으로 농군들의 위대한 노력에 조력할 수 있었겠사옵니까. 장군, 부디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과 농민이 우뚝 서는 그날을 위해 끊임없이 힘써 주시옵소서. 그때까지 이 늙은이는 물심양면으로 장군과 농군들의 혁명을 돕겠사옵니다. 그동안 못 다한 충력(忠力)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 늙은이는 물러가보겠사옵니다.”
  “잠깐, 잠깐. 영감 이리 와보십시오.”
  부정과 비리를 경멸하는 농군의 우두머리에게도 재물이 통했다는 기쁜 마음에 자리를 털고 바삐 걸어 나가는 최 영감의 뒷덜미에 수장의 목소리가 화살처럼 박힌 것은 금방이었다. 
  최 영감은 가던 발길을 멈추고 황급히 뒤돌아 부복하며 받잡았다.
  “하명하십시오.”
  수장은 가늘게 고리눈을 한 채 최 영감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영감께서 거처하며 세력을 쌓은 경북도(慶北道)에 아직도 농군의 혁명에 항거하는 자가 있다고 들었소이다만. 그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겉으론 진위를 물어보는 투였으나 실상은 당장 끌고 오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대뜸 서늘해진 방 안 기운에 철렁하며 최 영감은 사시나무 벌벌 떨듯 답했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시옵니다. 어찌 감히 하늘같은 백성의 뜻을 받잡고 농업을 근본으로 세우는 거룩한 혁명에 반항하는 자가 있겠사옵니까?”
  수장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언가 확실히 들은 바가 있다는 뜻이었다. 수장이 의심하는 눈초리로 입을 다물고 한참을 기다리자 돌연한 침묵에 모골이 송연해진 최 영감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실대로 토로하기 시작했다.
  “실은 안동(安東)에서 퇴계(退溪)를 사숙(私淑)한 유자 하나가 아직 있사옵니다만 그저 정통의 학맥을 이은 것은 아니고 보통의 유림과 마찬가지로 유학에 뜻을 두어 쓸모없이 허황된 경전과 학설에만 조예가 깊은 보잘 것 없는 선비일 뿐이옵니다. 이 늙은이가 앞서 말씀을 드리지 않은 이유는 공사가 다망하신 장군께서 굳이 신경 쓰실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리한 것이옵니다. 그저 벌레 보시듯 무시하시옵소서.”
  최 영감이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히 말했음에도 수장의 눈에는 금세라도 타오를 듯 노기(怒氣)의 불꽃이 어리고 있었다. 수장은 주먹으로 서탁을 내리치며 분기탱천(憤氣撐天)하여 소리쳤다. 사대부와 고을 유지들의 집을 들쑤실 때의 고함과 같았다.
  “당치 않은 소리 집어치우시구려. 영감께선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하는 게요? 설마하니 나에게 고작해야 푼돈을 쥐어주면서 그런 역적의 분자(分子)를 애써 감추려 하신 것이오? 유자의 발본색원도 우리 농군 혁명의 목적임을 잊으셨소이까?”
  “아니옵니다. 이 늙은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작자를 숨기려 하겠사옵니까. 단연코 그런 일은 없사옵니다. 이 늙은인 그저 장군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일이라….”
  “나의 심기를 어지럽힐 정도의 일이라면 당연히 보고를 했어야 옳았소이다! 영감께선 어찌 이번 사안의 중대함을 모르시오. 단 하나의 반동분자(反動分子)라도 그의 사상에 동조하여 부화뇌동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혁명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법. 더군다나 범용한 삶과 참된 노동의 가치를 모르고 오로지 현학적인 경전에만 매달려 불순한 언동으로 요행을 바라는 유자의 족속이라면 당장 색출하여 엄단해야하는 것이 순리요. 
  영감도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여는 농군의 혁명에 뜻을 같이 하겠다고 했으면서 뒤로는 살아남은 유자를 감싸고돈다면 우리의 거사를 지지하는 그 진정성에 흠집이 날지 모르는 일이외다. 설마하니 과거처럼 아직도 유학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젠 아예 강압에 가까운 추궁조였다. 수장의 대노에 황황망조(遑遑罔措)해진 최 영감은 몸을 세워 무릎을 꿇고 간곡히 빌기까지 했다. 수장의 말 한마디면 간신히 지킨 재산과 세력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것은 물론이요 당장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내걸릴 판이었으니 통사정을 다하는 것이었다. 
  최 영감은 세차게 도리질을 치며 강하게 부인(否認)의 뜻을 밝혔고 간절히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결단코 아니옵니다. 이 늙은 몸이 비록 한때 유도에 뜻을 두고 과거(科擧)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바로 오래전 약관(弱冠) 때 청운(靑雲)의 꿈일 뿐이었습니다. 또한 경전공부를 한 적이 있고 유자들과 어울린 적이 있다하나 이것은 모두가 축재(蓄財)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옵니다. 사림과 같이 학맥을 이었다든지 또는 명유(名儒)의 길에 들어선 적도 없사옵니다. 신의 이력은 경북 일대의 모든 이들이 증명할 수 있사옵니다. 
  죄가 있다면 이재(理財)에만 눈이 밝아 농민의 어려움과 백성의 고단함을 깊게 살피지 못한 것일 뿐이옵니다. 그 죄를 씻기 위해 오늘 비로소 장군의 혁명에 자금을 대고 동참하려 한 것이옵니다. 부디 살펴보아 주시옵소서.”
  그제야 수장의 노기는 잠시 주춤하며 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북에 아직 유자가 남았다는 사실은 최 영감의 통절한 읍소에도 결코 그냥 두고 볼 일만은 아니었다. 

  수장은 최 영감과 같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고택(古宅) 안채를 나서 내아(內衙)의 군영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장은 의구(疑懼)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들의 대대적인 봉기로 말미암아 삼남의 사림이 모조리 어육이 난 마당에 어찌 또 숨은 선비가 있을 수 있었단 말인가. 산천을 넘어 모두 죽이고 가두었건만 무위도식의 유자가 또다시 나타나다니 이는 참으로 지독한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안동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향교와 서원은 아군들의 점령으로 철폐한지 오래건만 어디서 학문을 연마한단 말인가.”
  최 영감이 수장의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아니 이제는 자기가 답하지 않는다면 그 유자와 함께 같은 족속으로 몰려 멸문의 화를 당할지 몰랐기에 어쩔 수 없었다.
  “실은 그자가 안동 외곽에 거처하며 유도에 뜻을 두었는데 본래 이 늙은이와 안면이 있던 자였사옵니다.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사오나 간간히 서찰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곤 하였는데 그자가 얼마 전 농민 혁명군이 경북으로 진격하기 전에 피신하여 변방 험지의 초가에 의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인편으로 전해 들었사옵니다. 이 늙은이가 향도가 되어 그곳으로 장군을 뫼시겠사옵니다.”
  그러자 수장의 안광은 금세 노기등등해지며 한껏 요기를 뿜는 듯 했다. 자신이 미리 손을 써서 정탐을 하지 않았더라면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신이 알고 있던 유자 하나를 영원히 감추어버렸을 영감이었다. 
  수장은 이런 작자가 자신에게 재물을 써서 달라붙었다는 것이 내심 괘씸했지만 어차피 그 죄목을 들어 최 영감을 내칠 수도 없었다. 그만큼이나 최 영감의 재물과 위세는 그의 말대로 장차 농민의 세상을 만드는 천지개벽의 대업에 요긴하게 쓰일 터이기 때문이었다.
  “좋소, 영감께서 안내하시오. 이번에야말로 사대부 양반과 선비를 도려내겠소.”
  수장과 최 영감이 노린 유자의 초가삼간은 경북 영덕, 그것도 태백산맥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서쪽의 경계 중 험준한 독경산(讀經山) 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루한 봉건(封建)을 지지하고 사변에 도취한 반동분자를 색출하라!”
  수장의 명과 함께 일지군마(一枝軍馬)를 거느린 총병(銃兵)들이 화승총을 꼬나들고 거칠게 초가를 뒤졌지만 대청부터 정주까지 유자는 온데간데없었다. 마상(馬上)에서 황건(黃巾)을 질끈 두른 수장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농병(農兵)들의 보고를 받았다.
  “없사옵니다. 허나 쓰던 식기와 뒤적이던 서책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어디로 출타를 한 것 같사옵니다.”
  행적이 묘연한 유자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독경산 자락 일대를 수색하다보니 그는 초가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외딴 암자(庵子)에 홀로이 머물고 있던 것이었다. 
  수장은 농민군이 경상도 일대를 점령한 지 오래인 지금까지 아직도 유학에 심취한 이가 있다는 것이 불쾌했지만 이제야말로 반동의 싹을 자르고 경북에서 유림의 잔존을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흡족해했다.
 
  고적한 산사(山寺)에 수장의 명으로 농군들이 들이닥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대의 사변을 탐닉한 죄가 극심하여 하늘과 백성을 노하게 하였다. 오늘 하늘과 백성을 대신해 나 농군의 수장이 무위도식하는 반동분자를 척결하노라.”
  스님들과 몇몇 불자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친 가운데 암자엔 청아한 독경소리가 태연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홀로 정좌(正坐)한 유자는 결곡한 얼굴로 오로지 경전에만 몰두할 뿐 농군 수장의 살기등등한 엄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청송(靑松)에 둥지를 튼 고아한 백로의 모습과도 같았다. 
  수장은 발끈하여 소리쳤다.
  “독경산의 독경소리라. 태평세월(太平歲月)이 좋다하여도 홀로이 읊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웃 백성들은 탐욕스러운 관부의 학정과 드센 토호들의 핍박에 오늘 내일하며 신음하고 죽어가는 마당에 공맹의 사상과 정주의 학설이 다 무슨 소용이냐. 사변에 몰입한들 오늘의 백성 하나 구제할 수 없거늘.”
  그러자 순간 독경소리가 멈추고 유자는 서책에 고정된 눈을 들어 허리에 찬 검을 매만지는 수장을 준절히 바라보았다. 수장은 안광을 번뜩여 응대하였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으로 얽혀 들어갔다. 
  유자는 입을 다문 채 수장을 쳐다보더니 해사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우활하도다. 어찌 궤격한 억설로 민초들을 현혹하는가?”
  평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저 세치 혓바닥의 입만 살은 선비놈을 단칼에 쳐 죽이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수장은 오히려 몸을 우뚝 세우며 앙천대소를 터트렸다. 여러 갈래로 찢어 죽여도 시원찮았지만 이참에 농민혁명의 대의가 어디에 있는지 하는 일 없이 백성의 피땀을 먹고 사는 유학자들에게 똑똑히 가르쳐주고 그들의 만사무석(萬死無惜)한 대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주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입을 연 것이었다. 
  한참을 허허롭게 웃은 수장은 화살 맞은 범처럼 격노하여 소리쳤다.
  “우활하다? 또 억설이라 했는가? 그 말인즉 백성이 사람대접을 받는 세상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농군의 혁명이 사리에 맞지 않다 이 말인가? 그렇다면 언동이 항상 사리에 맞고 도덕과 윤리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그대 유자들의 실정은 어떠한가? 그대들은 하는 일도 없으면서 농업을 비롯하여 공상(工商)에 땀 흘려 일생을 바치며 종사하는 이 땅의 모든 민초들이 일궈내는 곡식과 산물(産物)로 연명하지 않는가? 
  사시사철 품과 정성이 쉴 새 없이 들어가는 농사의 고됨을 모르고, 하나의 물품을 만들기 위해 등촉(燈燭)으로 밤을 밝혀 어둠 속에서 눈을 비비는 공업의 노력을 모르고, 한 푼의 이문을 남기기 위해 발 벗고 종횡천하(縱橫天下)하는 상업의 수고를 모르는 그대들이 서책의 몇 구절을 읊으며 입으로만 바른 정치와 인간의 도리를 떠들어댄다 하여 그것이 얼마나 진정한 의미를 담고 있겠으며 얼마나 현재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말로만 공맹을 논하며 왕도덕치를 주장하는 그대들에게 고관을 제수하고 권세를 실어주는 왕실과 조정은 부정과 비리로 썩어 문드러진 지가 오래되었고 그에 따라 아첨과 비굴로 일관하는 먹물쟁이들의 적폐는 심히 말로 다하기 어렵도다. 도탄에 빠진 민생 속에서 백성은 당장 관부와 토호의 횡포에 갈가리 찢겨 죽어나가는 마당인데 허황된 변설과 공허한 탁론으로 나라의 앞길과 민초들을 위한 정치 따위를 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게 본다면 농공상(農工商)이 일군 것은 하나의 유용한 실질이고 그대와 같은 사림(士林) 선비들이 평생을 바쳐 고매하게 외친 것은 결국 무용한 허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더욱이 오늘날 가까스로 경세제민(經世濟民)하는 실천 역행의 학문(實學)이 도래하기까지 얼마나 쓸모없는 공맹의 학설과 정주(程朱)와 양명(陽明)의 사상이 조정과 민간에 판을 치고 혹세무민하였던가. 공론의 분열과 권세 다툼을 일삼았던 붕당정치의 수단이 되고, 민초들을 유린하고 억압하는 경직된 신분제의 폐단을 낳는 원인이 될 뿐 유학(儒學)이 우리의 반도 땅과 이 나라에 가져온 덕목이란 사상누각의 허무한 말장난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러한 적폐의 원흉을 감싸고도는 그대 유자들의 언동이야말로 간독(奸毒)한 요설이자 도리에 어긋난 준동(蠢動)이 아니던가. 그러고도 유자들이 우리 농군의 혁명 대의를 궤언과 억설이라 치부할 수 있는가.”
  청산유수(靑山流水)와 같은 수장의 일장연설에 시립해 있던 모든 농군의 장졸들은 숙연한 얼굴이 되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같이 물기가 어려 있었다. 모두가 원통했던 마음 한 구석이 시원히 뚫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감격해 마지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좌정한 유자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하는 기색이나 일순의 불안한 낯빛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평정을 찾아 옥호빙심(玉壺氷心)을 다스리는 듯 차분하고 담담한 모습이었다. 

  유자는 눈을 허공으로 하여 나직한 탄식을 내뱉더니 아예 작심한 듯 절도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조정의 고관을 차지하면서 변설로는 시화연풍(時和年豐)을 읊고 문장으론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외치며 시위소찬(尸位素餐)하는 사대부 정승들의 씻지 못할 죄는 유학을 받드는 선비들이 통절히 느껴야 할 부끄러움이다. 실제로 하는 일 없이 얼마나 많은 유자들이 백성을 추렴하는 관부의 압제를 방관하고 있었던가. 그런 관망 속에서 간간이 떨어지는 떡고물을 주워 먹고자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유림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어느새 고명한 유학의 이치는 땅에 떨어졌다.
  부단히 호학역행(好學力行)하지만 정작 실천궁행(實踐躬行)하지 않는 거짓 유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무너진 유학의 도리는 점차 동양의 인간세(人間世)에서 실력자들과 세도가들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어갔다. 세상의 모든 바른 이치를 담고 있던 경전들은 그대와 같은 농군들이 지탄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무위도식하는 사변(思辨)을 담은 범박한 처세서로 격하되었고 백성을 위한 왕도덕치와 인간 본분의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외치던 유자들은 권력 앞에 복종하였다. 결백한 유자들과 곧은 선비들이 자기 수양과 바른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던 동양정신(東洋精神)의 성화(聖化)인 유학이 썩은 시류에 처박힌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민초들이 받고 있는 신음 어린 고통과 지옥도(地獄道) 같은 하루하루에 유도를 받드는 선비들과 유학에 따라 집정하는 위정자들의 잘못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어떠한 미명과 치장으로도 덮을 수 없는 명백한 잘못이다. 악취가 풍기는 폐해의 상존(尙存)이다. 물론 나 역시도 한평생 유도에 뜻을 두고 살았으나 그 실천과 현실의 개혁에 전심(專心)하여 앞장서지 못했으니 그러한 잘못의 축에 한 부분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 역시 초가의 문약한 선비로서 이웃의 백성들이 겪는 고초와 피땀으로 땅을 일구는 농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기는커녕 책상물림으로만 일관했던 방관자일 따름이다. 그저 면목이 없다.”
 
  그때였다. 유자가 하릴없이 일부 선비들의 잘못과 그동안 유학을 악용한 폐단을 토로하여 말을 그친 것으로 안 농군들이 기세가 충천해져 창검을 들고 대청마루로 사납게 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유자의 말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일정 부분의 잘못을 인정한 유자의 본심(本心)이 담긴 말은 지금부터 장황히 시작되고 있었다. 그의 음성은 자못 어린아이를 엄히 타이르듯 장중한 음색에 준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부 유자들의 잘못이 있다하여 학문 자체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동의(同意)의 여하에 상관없이 유학은 문성(文聖)이신 공맹(孔孟)으로부터 발원하였고 정주(程朱)와 양명(陽明)에게서 변모·발전하면서 자그마치 2천 년을 흘러 중원과 이 땅의 여러 왕조들 그리고 그 속의 인간들에게 학문의 근본으로 영향을 끼쳤다. 
  수신제가(修身齊家)의 덕목과 백성을 하늘같이 여기는 학문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임금의 통치에 있어서 근본이 되었고 각자의 본분을 다하는 바른 정치와 백성을 도덕으로 교화하는 어진 정치를 주장함에 따라 조정의 다스림에 지침이 되었다. 또한 고명한 유학의 이치는 바야흐로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충효의리(忠孝義理), 인의도덕(仁義道德)을 설파하여 인간 세상의 풍속과 관계를 바로 잡는 데까지 쓰이게 되었고 나라 전체의 기율과 강상을 곧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나아가 우주 만물의 원리와 인간 심성의 본질을 꿰뚫는 성리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거경궁리(居敬窮理)는 실질의 문물을 발달시키는 과학의 발전을 이룩하였고 왕양명(王陽明)의 심학(心學)은 인간 본성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함과 천의무봉(天衣無縫)함을 세상 사람들에게 일깨워줘 그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가지게 한 동시에 나태를 경계하는 수양과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쳐주었다. 그대들이 그나마 학문 중에서 실질적인 것이라 높게 여기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實學)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모두가 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심오한 사변과 더불어 그에 못지않게 현실의 개선과 실질의 실천을 중시하기 때문에 작금의 실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유학은 백성을 진실로 사랑하며 민심을 중히 여기는 임금, 충언(忠言)과 직간(直諫)으로 군주를 보필하고 덕치로 바른 정치를 실천하는 신하,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도리를 지키고 마땅한 권리와 사람다운 삶을 주장할 줄 아는 계몽된 선민(善民)을 우선으로 여겼다. 
  만약 그러한 유학의 본질을 당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도저한 해악의 근원이자 악원(惡原)으로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자 견강부회(牽强附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부당한 대접과 가혹한 핍박으로 지쳐 마침내 복수의 칼날과 반격의 열화를 품에 안은 그대 농민들이여. 부디 절제와 경계의 눈으로 사리를 분별하길 바라오. 학문은 죄가 없소이다. 그리고 그 학문을 정성껏 제대로 받드는 유자(儒者)들에게도 죄가 없소이다. 
  죄는 그 학문을 현실의 도탄을 조장하는 데 악용하고 부정한 권력의 유지에 수단으로 삼는 일부 간악한 무리들에게 있소이다. 그들을 명명백백히 안율치죄(按律治罪)하는 일이 마땅한 것이지 그저 유학의 신봉자라 하여 척결하고, 단순히 유도라는 학문과 사상 자체에 적의(敵意)를 두고 무참한 살육을 일삼는다면 그대들이 과연 유학의 도리를 어긋나게 악용한 난신적자(亂臣賊子)의 무리들과 무엇이 다르겠소이까? 더군다나 유학의 깊은 이치를 받들어 실천궁행하는 곧은 선비들과 청렴한 관리들에게 죄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소이까?
  그런데 어찌하여 앞뒤 없는 칼부림과 맹목(盲目)의 광기(狂氣)에 젖어 도륙의 심판을 자행하는 것이오? 부디 마음을 고쳐 잡고 생각의 여유를 잠시 가지시오. 분별 있는 엄벌만이 백성들의 뜻을 받들 수 있고 신상필벌(信賞必罰)하는 바른 다스림만이 공명정대한 치세를 이룩할 수 있소. 정녕 그대들이 백성을 신음하게 만든 탐욕스럽고도 비정한 권력자들의 흉내를 내는 것이오? 진정 민심을 팔아서 우리 동양정신(東洋精神)과 문물발전(文物發展)의 권화(權化)인 유학을 불살라 조상을 죽이는 무도한 적자(賊子)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오?”
  유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탁을 냅다 걷어찬 농군 한 명이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잡아 뒤틀기 시작했다. 유자는 숨이 턱 막혀 금세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저 입만 살았지. 네놈이 한번이라도 서책을 덮고 나와서 고된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기라도 하였느냐. 피땀 흘린 노동으로 밥벌이를 해봤느냐 이 말이다! 안락한 방구석에 묻혀 유림의 서책만을 후벼 파서 나라가 어떻고 백성이 어떻고를 연발하는 네놈이 한번만이라도 이웃 백성들이 힘겨워하는 진정한 육체노동의 고단함과 가치를 생각이나 해봤느냐! 네놈같이 요사스런 혓바닥만 놀려대는 선비놈들은 아예 산 채로 태워야 할 것이야. 불을 질러라!”

  암자의 불길은 이내 맹렬하게 타올랐다. 
  치솟는 화염을 유유히 바라보는 농군 수장의 눈동자에 언뜻 사념(思念)에 잠긴 유자의 비통한 낯빛이 비쳤다. 이어 살이 타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결가부좌를 튼 유자는 서책을 두 손에 말아 쥐며 꼿꼿이 앉은 채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질 않는 불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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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당선작 심사평


  <창작콘테스트> 소설부문에서 당선작으로 추천한 작품은 신승민 씨의「난적지도(亂賊之道)」로 단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분량이며, 조선시대 부패한 조정과 탐관오리의 학정에 시달려온 농민들의 광기어린 봉기에 맞춰져있다. 
  이 소설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도 있고, 역사소설로서 갖춰야 할 장중한 문체와 풍부한 어휘력을 두루 갖췄다. 특히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농민 수장의 대의와 이에 맞서는 유자의 통렬한 반론은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작가의 연배에 어울리지 않게 역사와 관련된 지식의 습득은 물론 엄청난 습작과정을 거쳤을 작가정신을 높게 평가할 수 있겠다.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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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선자들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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