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제34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by korean posted May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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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34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34차 당선자를 발표한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이번 <창작콘테스트> 제34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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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 매핵기(梅核氣)
   - 이승혜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 오늘을 건넨다
말없이 차가워져
당신의 어제가 밟힌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볼 수 없어
매일 밤 당신은 얼굴을 지웠다
목에 매화나무 열매가 열렸다
인간은 12쌍의 늑골을 가지고 있다
6쌍의 들숨과 6쌍의 날숨이 가쁜
쇠약한 가로막을 빚내어 사는 하루살이
하루쯤 살고
또 하루쯤 죽는다
그것은 유리벽이 철벽이고
철벽이 하루인 외딴곳 아니 어떤 곳
당신은 떨어지기 직전의 열매를 기다려본 적이 없다
시큼털털한 맛이 날개를 적시기라도 할까
안간힘을 다해 젖지 않는다
얇아진 얼굴은 느닷없이 표정을 찾고
기웃기웃 매우 낯설게
하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표정을 굴리고
냉가슴이 며칠쯤 밟혀도
미끄덩한 고깃덩어리가 쑤셔와 박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바람의 냄새와
숨의 향기
공기의 질곡
내일의 기후를 잊는 법만을 배운다
하루를 닫고 또 닫을 뿐이다 오늘도



■ 노린재나무
   - 이승혜


어둠의 아가리를 찢고 나오렴
곰팡이 핀 바이올린의 울림을 들으렴
무서워하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겠니
오렌지 향기를 맡으며 춤을 춰봐
코끝을 찡그리면서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네 안의 우울을 껴안는 거야
풍선껌을 씹으면 세상이 부풀어 진댔지
설움마저 으스러진 풍경도
잠깐의 매서움마저도 사라질 거야
유리 물병을 떠올리며
'카라페'라고 읊조리는 네가 살가워
차가운 미지의 결을 마시는 기분이야
다정도 병인 사람이 있다면
그이의 우물은 글쎄, 얼어서 글썽이겠지
노란 잠수함이 거대한 방귀를 끼고 지나가는 거겠지
시계의 하품이 늘어지고
세계의 초침이 분침을 벌컥 삼킨대도
관속에 누워 새그러운 오렌지 향을 맡는 거지
관속의 목소리가 들리니
너울대는 관목 노린재나무 잎을 곰곰 따면서
낫는 거야 어둠을 낳는 거야



■ 데칼코마니
   - 이승혜


가슴에 핀 열꽃 식히러
그대가 지난밤 다녀갔는지
누운 자리 반을 접어보니
그대가 앉았다

접힌 밤을 쪼개고 쪼개어
발등에 펼쳐보니

그대가 다녀갔던 무수한 밤들이
눈송이를 안고서
이불 속에서 곡소리를 핥는다

휘움한 그대의
갈비뼈 하나를 안고서
잠자코 안부를 묻는 밤

그대는 참빗을 물고
헝클어진 내 머리칼을
외로운 손가락으로 빗어 넘긴다

울다 만 자장가를 부르는 그대
'내내코 코코자'

새벽 별을 마주 안고
마주 웅크려 자자

잠자코 뜬 눈으로
그대 이마 위에 첫눈을 기다린다

지난밤 그대가
무심코 다녀갔는지

발등 위로
열꽃 하나 가지런한 비밀을 피운다

설피를 신고 그대 맞으러
눈을 핥는 밤

뼈를 안은 품속에 그대를 품고
'내내코 코코자'
호두알처럼 웅크리고 잠이 든다



■ 나무의 눈
   - 이승혜


나무의 무릎을 열어보면 나이테가 숨어있다
무릎의 소리는 빙그르르
고요한 멜로디에 취해 몸을 흔든다
유난히 무릎에 멍이 자주 들던 아이
살굿빛 멍이 들면서 한 살을 먹고
멍이 빠지면서 또 한 살을 먹었다
어색함을 간직한 발목과 한 쌍인
선홍빛 복숭아 뼈
구부린 자세로 앉아
매번 끝을 생각해 보지만
나무의 눈은
사라지는 게 살아지는 거라고 말할 뿐
무릎에 이어폰을 꽂고 차분히 들어본다
새근새근 숨 쉬는 소리 가냘픈데
무릎의 뚜껑을 열었다 닫는다
한 숟갈의 오명도
두 숟갈의 연명도
모포로 감싸 안아 뜨듯한 아랫목에 묵혀두면
말린 혀를 도르르 풀면서 안내를 한다
처음으로 침샘의 분비가 왕성해질 때
최초의 기억이 분명해질 때
맞부딪히는 소리 더욱 가볍다
나이테의 굵기가 점점 가늘어진다
숨어 있을 곳이 더는 없다는 듯 안으로 천착한다



■ 달리다굼
   - 이승혜


시침질이 희미하게 남은 오래된 일기장을 보았느냐고
보풀진 안감에게 물었다
안감은 예각만이 살아있는 빗각으로
조각가를 닮은 손놀림으로
청동기시대를 산다 했다

호주머니에는
장미가시로 만든 단추들을 넣어두었다

밤마다 단추들을 똑딱
따는 일로 셈을 마치는 하루
후미가 간지러운지 뒤통수를 긁적이는 낮의 기운과 함께
흔들리는 안감에게
구멍의 구명에 대해
땜통의 심오한 세계에 대해 물었다

그럴 때면 대답은
황량한 빈자리로, 황무지의 노래로 돌아왔다

푸른 잔디가 돋아났으면
땜통이 마르지 않기를 구름의 문장은 빌고 있다

비로소 가봉을 시작한다
잔잔한 물결무늬 치마에 연꽃으로 수를 놓는다

풀잎이 내린다
이쯤에서 등장하는 번개의 역할은
천둥이거나 우르릉 쾅쾅 이거나
상대역으로 둔갑한 번개가 어느 틈에 풀잎들을 끊어놓는다

청동 열차 속으로 구름의 문장은 흘러간다
아로새겨진 시침질의 흔적을 비워내면서

문과 손잡이가 하나 될 수 없는
토르소의 춤으로 일어선다






********
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34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시(詩)부문 이승혜 씨의「매핵기(梅核氣)외 네 편의 시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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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 어떤 물음
   - 최유미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중학교 수업 시간 때였을 거다. 글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상관이 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라고, 그 말에 위안을 얻는 한편으로 생각했다.

 독도가 한국 땅이야, 일본 땅이야?

 이 물음의 의도를 나는 알고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 생각이 정말로 궁금한 것도 아니다. 동반되는 엷은 미소가 무얼 말하는지, 왜 유독 내게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오래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비정상적인’ 출생으로부터 기인한다.

 1910년부터 1945년 광복절까지 약 35년에 걸친 일제의 식민통치는 비정하고 잔혹했다,라는 것을 나는 배움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나를 미워했던 것은 아마도 그 시절의 아픈 기억을 가졌거나 아주 가까이에서 전해 들은 분들이 그 아이들 집에 있었기 때문일 거다. 이따금 “일본 놈아, 한국한테 사과해.” 따위의 소리를 들을 때면 “나 일본 놈 아니거든!”하며 맞섰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같은 대답을 두 번 세 번 반복할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불안이 점점 커져갔다.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하던 그것은 이윽고 의식의 영역으로 침범하여, 어떤 물음의 형태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정말 천하의 나쁜 일본 놈일까?

 집에 돌아가면 나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어로 대화를 했다. 한국인 어머니와는 한국어를 썼다. 방에 들어가면 책상 위에 놓인 액자 속에서 일본인 할머니가 웃고 있었다. 할머니는 정말로 좋은 분이었다.
 나는 종종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에게 일본어로 말을 걸었고 무언가 생각할 때에도 일본어를 사용하곤 했다. 그렇다고 한국어가 늦진 않았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한국어로 수업을 듣고, 한국어로 시험을 봤다. 성적은 늘 좋은 편이었다.
 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했다. 약간 나이가 많고, 조금 자존심이 세고, 다소 가부장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는 가족에게 헌신적이며 지나칠 정도로 성실했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썰렁한 농담을 하나씩 덧붙이고는 반응이 없으면 섭섭해하는 점은 조금 귀찮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정말로 웃긴 이야기를 해주었다. 키가 조금 작다는 것과 일본어로 말하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 없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아버지였다.

 집 밖에서는 어딜 가나 일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했다. 일본에 큰 지진이 났을 적에는 이번 기회에 일본인들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길 가다가도 들었다. 중학교 때 사회 시간에는 누군가 일본이 쓰나미로 떠내려가거나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겨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아이들은 모두 깔깔거렸고 선생님도 별말 없이 웃어넘겼다. 나는 일본에 있는 큰아버지와 고모, 고모부의 얼굴이 떠올라 웃음보다는 울음이 나왔지만 숨을 죽였다. 무서웠다. 모두가 퍼붓는 저주가, 손가락질이 나를 향할까 봐. 물 위에 떨어진 기름 한 방울처럼 그 속에서 나는 철저히 외톨이였다. 누군가 던진 돌멩이에 간지럼 타듯 동심원을 그리며 출렁이는 물결에도, 그저 동동 떠다니는 기름 한 방울.

 고등학교 때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다. 특히 한국사가 재밌었다. 마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일대기를 체험하는 것처럼 그 삶에 들어가 가슴을 뛰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근현대사 수업에 접어들면서, 일제강점기에 대해 자세히 배웠다. 어떤 방식으로 일제의 국정 간섭이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외교권을 빼앗기고 국권을 찬탈당하기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계속되는 비인간적인 수탈과 통치… 지독했다. 매시간마다 “나쁜 놈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문득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기 전까지 나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다. 누군가 비웃을 것만 같다. 네가 왜? 넌 한국인도 아니잖아-하고.

 혼혈. 하프 블러드 (half-blood). 말 그대로 반쪽짜리인 것이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반쪽짜리 한국인, 반쪽짜리 일본인, 반쪽짜리 인간…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직접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게 죄스럽게 느껴졌다. 모임 자리에서도 한일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숙였다. 스쳐가는 말 한마디가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스물두 살 먹은 지금도 그렇다.
 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불안감을 숨기려고 오히려 악을 쓰며 누가 뭐래도 나는 한국인이라고 오기를 부린 적도 있다. 어엿한 한 사람 몫을 하는, 그보다 더 뛰어난 한국인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독하게 공부했던 적도 있었다. ‘토종’과의 경쟁은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싸움과도 같았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내가 태어난 땅은 이웃한 섬나라이며 그곳에 나와 피가 섞인 사람들이 있고, 그곳에서 나고 자란 남자가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또, 내가 그들을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러나 나는 내가 발 디디고 서 있는 땅 위의 많은 것들 역시 사랑하고야 말았다. 새카만 머리칼에 나보다도 키가 작은 나의 어머니, 오랜 시간 나를 품어준 집, 집을 품은 작고 낡은 동네, 새벽녘의 분주함과 늦은 밤의 왁자지껄함, 한강을 따라 난 산책로, 그곳을 걸으며 맡는 봄바람의 포근함, 여름의 비릿함, 가을의 헛헛함, 겨울의 무정함. 그리고 이십 년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쌓은 소중한 인연들, 그들과 나눈 사랑의 말, 나눈 진심, 삶의 한 조각.
 두 나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날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오지 않으리라. 매번 고민하고 아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의문이 드는 날이 오면, 이제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묻는 대신에 다른 물음을 던져 보려 한다.

너는 한국을 사랑해?
라고.



■ 하아얀 배꽃같이 아름다운 그대에게
   - 최유미


“벌써 사십몇 년 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다닐 적에 말야, 면목동에는 복숭아밭, 포도밭, 배 밭이 쫙 펼쳐져 있었단다. 봄이 되면 새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는데, 그 하얀 꽃이 퍽 예쁘게도 보이고, 나도 저렇게 하아얀 꽃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뭐, 그랬었지.”

 그래서 엄마는 최 리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냈더랬다. 배나무 리(梨) 자를 써서 “최 리”. 고작 스물 한두 살 먹은 최 리의 첫 음반 제목은 “산새”였다. 참으로 지고지순한 사람이다.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딱 한 번 본 일이 있었다. 막내 이모 집에 갔을 때였다. 앨범 속 엄마는 나팔 바지에 청자켓을 걸치고 연한 색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와 새까만 머리는 지금과도 다르지 않지만, 청춘의 싱그러움과 불안을 양 볼에 한 모금씩 머금은 듯 묘한 미소를 짓는 젊은 날의 엄마는 정말이지 예뻤다.

 내가 나 이외의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무렵 엄마는 이미 많이 아픈 상태였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엄마의 세상이 기울어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나 또한 기울어만 갔고,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의 세상 속 나는 존재 자체로 당신에게 해가 되는 나쁜 아이였다. 나를 선두로 한 나쁜 사람들이 공격한다며 종일 허공에 대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병은 점점 깊어져 갔고 밤마다 들려오는 부모님의 대화는 말소리로 시작해 물건 부서지는 소리로 끝이 났다. 나와 언니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인 채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가 병원에서 약을 타왔다. 약을 먹은 엄마는 하루 종일 잠을 깨지 못하고 힘없이 늘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싸우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꿀 먹은 벙어리마냥 조용했다. 목소리는 작아지고 말을 더듬었으며 가만히 서있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아마도 그것은 약물 부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원망의 대상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후로 엄마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약해진 엄마를 보호해야 할 대상 정도로 인식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엄마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장만 보고 집안일만 했다. 병원에 가는 횟수와 먹는 약의 개수는 점차 줄었지만 말려들어간 엄마의 어깨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엄마와 말을 튼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집을 나간 뒤였다. 사랑에 대한 결핍과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마음의 병이 곯아, 통보하다시피 자취 선언을 하고 집을 나왔다. 일이 주에 한 번쯤 집에 드나들었는데, 하루는 엄마와 단둘이 있게 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같이 사는 친구들이 어떤지, 집안일하고 밥 차려 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따위의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가족들과 고양이 두 마리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집을 나간 이유에 대해 많은 것을 묻지는 않았다.

 “엄마가 그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너희가 이렇게 살진 않았을 텐데...”

 엄마는 멋쩍게 웃었다. 사과에 서툰 분이지만 분명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아니야, 나는 지금이 좋아. 지금의 내가 좋아. 그런 말 하지 마요.”



 그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평생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과를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못한 내가 못나서일까.

 그 뒤로 집에 갈 때마다 종종 엄마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곤 했다. 노래를 좋아해서 음반을 냈던 일, 이모들과 함께 버거 가게를 차렸다가 말아먹은 일, 글 쓰는 모임에 가서 소설을 썼던 일, 대학에 가고 싶어 하루에 케이에프씨 비스켓을 하나씩 먹으며 돈을 모았던 일, 그러다가 폐결핵에 걸린 일, 심지어는 모은 돈마저 친오빠에게 사기를 당해 잃었던 일 등등...
 누군가의 엄마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최종란의 삶은 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롭고 무모했으며 잔혹하고 아팠다. 엄마에게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주 지독한 병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지내던 엄마는 돌연 서른 중반에 결혼을 결심하고 생판 모르는 일본인 아버지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아버지는 엄마와 정 반대의 사람이다. 한 가지 일만 우직하게 파고들어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어떤 부분에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고집과 자존심이 있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엄마와는 달리 고지식하며 보수적인 분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이기에 모진 풍파 속에도 묵묵히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붙들고 견뎌낸 것이리라. 엄마 또한 그걸 알기에 매일같이 아버지의 밥상을 차리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두 사람은 부부인 것이리라.

 아무것도 모르고 하얗게 피어난 꽃 같은 시절이 엄마의 삶에 얼마나 존재했을까. 지독하게 앓았던 억겁의 세월 끝에 남은 친구라곤 고양이 두 마리와 바보상자뿐이다.
 그러나 오뉴월의 싱그러운 꽃잎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배꽃처럼 하얗게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다. 떨어진 꽃잎이 스러지더라도 꽃이 진 자리에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거라고. 그 열매는 이내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 당신의 자취를 마음껏 세상에 뽐낼 거라고.

 그러니까 당신은, '최 리'의 삶을 충분히 잘 살아 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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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34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수필부문 최유미 씨의 「어떤 물음외 한 편의 수필을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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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선자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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