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제24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by korean posted Sep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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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24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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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24차 당선자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공모에서는 응모작품수도 지난 공모에 비해 크게 뒤졌을뿐더러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응모한 작품이 상당수였다.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이번 <창작콘테스트> 제24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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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눈 내리는 피아노
최효진



[네 엄마 쓰러졌어. 내려오지 않겠니.]

간만에 이모에게서 온 문자엔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향으로 내려와서 쓰러진 엄마 얼굴 좀 보고 가라는, 그런 뻔한 내용. 내게 전화를 걸 수 없어 조급해하며 문자를 써 내려갔을 이모가 눈에 그려졌다. 나는 한숨을 내뱉고는 귀마개를 뺐다. 순식간에 일상의 소리들이 눈앞에 어지러이 펼쳐졌다.

중학교를 졸업할 쯤 나는 내게 사소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소리의 파동들은 다양한 빛깔로 변해 내 눈앞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사소한 문제는 점차 사소하지 않게 변해갔다. 죽어가는 병은 아니었지만 나는 결코 색청을 앓기 전과 같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많은 소리가 넘쳐나는 서울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창문을 모두 열어 놓은 채 최신 유행가를 크게 틀며 지나가던 그 차, 그리고 흑백의 차도를 어지럽게 물들이던 총천연색의 색깔들.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마침내 엄마는 나를 데리고 서울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아빠는 서울에 남았다.

이사한 곳은 조용한 곳이었다. 번화가로 나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하는 한적한 시골 동네. 엄마의 어릴 적 고향이라고 했다. 온통 처음 보는 낯선 거리와 풍경들, 그리고 모르는 얼굴들뿐일 새 학교에 대한 공포감은 나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그런 나를 태우고 운전하던 엄마의 얼굴에도 그늘이 져 있었다.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나는 카시트에 얼굴을 묻고 웅크렸다. 눈앞이 짙은 검정빛으로 변했다. 엄마는 당신의 어릴 적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엄마는 외가와 거의 교류를 하지 않고 지냈다. 엄마의 고향에 와서야 외조부모님이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이모가 있었다는 사실도.


희정아, 얼마만이니. 이 애가 네 딸이구나.
뭐 하러 왔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엄마를 맞아준 건 처음 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내게 자신을 이모라고 소개한 여자는 쌀쌀맞은 엄마와 달리 활달한 목소리로 웃었다. 싸구려 귀마개의 틈을 비집고 밝은 주황빛 목소리가 통통 튀어 올랐다. 볼륨을 잔뜩 넣어 펌을 한 머리에 검정색 패딩점퍼를 입은 이모의 얼굴은 엄마와 닮아있었지만, 단정하게 짧게 잘라낸 머리에 갈색 코트를 걸친 엄마와 스타일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자매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이모에게 어물어물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숙여 귀에 꽂힌 귀마개가 보이지 않도록 머리카락으로 가렸다.

새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던 초등학교보다도 작았다. 그마저도 동네에서 학교를 가려면 버스로 한참은 가야했다. 간신히 학교의 외양을 한 낡아빠진 콘크리트 건물을 보고 나는 실망했다. 눈길이 닿는 어디든 낡지 않은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 중이었다. 아마도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게 듣기 싫어 교무실에서 나와 귀마개를 한 채로 건물 현관 앞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무척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답답했다. 이대로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다. 귓구멍에 꽂힌 귀마개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나는 서울에 있는 게 아닐까, 엄마랑 아빠랑 원래 살던 집에, 나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지는 않을까.

한 걸음 내딛으려는 찰나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놀라 돌아다보니 웬 남자애였다. 그 애가 내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뭐? 나는 되물었다. 남자애는 손가락으로 제 귀를 툭툭 치고는 나를 가리켰다. 그제야 귀마개를 꽂아 놓은 걸 깨닫고 귀마개를 뺐다. 순식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눈앞에 확 흩어졌다.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괜찮아? 어디 아파?

밝은 금색이었다. 어지러이 넘실대는 오색 빛깔들을 금빛의 목소리가 덮어주었다. 고개를 저었다.

비 오는데 우산도 없이 나가면 감기 걸려.

금빛 물결이 일렁였다. 나는 그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남자애는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난감하게 웃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가 버렸다. 그제야 뭐라도 말을 건넸어야 했나 하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금빛이 없어지자, 뒤엉킨 색깔들이 눈앞을 어지럽혀왔다. 다시 귀마개를 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교실에는 그 남자애가 앉아있었다. 그 애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에 쓰인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정여울. 창밖에 내리던 비가 어느새 진눈깨비가 되어 있었다.

고속버스 표를 끊었다. 명절도 아니고 휴일은 더더욱 아니어서 사람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곧 버스가 출발하는 소리가 보이고, 나는 눈을 감았다. 언젠가는 엄마를 다시 마주할 날이 올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엄마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던 어린 날과 비교도 안 되게 자랐지만, 여전히 엄마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애는 내 짝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짝지어 준 것 같았다. 그 애는 반장이었고, 공부도 잘했고, 무엇보다 착했다. 착한 짝꿍은 내가 불편해 할까봐 되도록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금빛 물결을 볼 일이 많지 않았다. 그 무렵 엄마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엄마는 나날이 신경이 곤두서갔다. 아빠와 통화하는 날이면 나는 귀마개를 낀 채로 방안에 웅크리고 있곤 했다. 그러나 방문과 귀마개도 엄마의 짜증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그 애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았다. 나는 엄마를 피하고 싶어 일찍 집을 나서곤 했다. 그 날은 평소보다 조금 늦은 날이었다. 시골 동네가 상당히 조용해서 나는 등교하는 시간만큼은 귀마개를 끼지 않았다. 일종의 해방이었다. 나밖에 타고 있지 않은 버스에 그 애가 올라탔다.

귀마개, 안 하고 있네.

내 옆에 앉은 그 애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어차피 버스 안에는 그 애와 나뿐인데.

응. 괜찮아. 크게 말해도 돼.
신기하다.

예의 그 금빛 물결이 눈앞에 나타났다. 예쁘다는 생각도 잠시 이 아이에겐 내 장애가 신기하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몸이 움츠려들었다.

뭐가?
너랑 얘기하는 게. 그래도 짝꿍인데, 여태껏 한마디도 안 해봤잖아, 우리.
조용할 때는 말해도 괜찮아.
그렇구나. 이 동네 살아? 늘 이 시간에 학교 가?
응.
나도 이 동네 살아. 앞으로 이 시간에 나와야겠네. 여기 사는 애 없거든. 같이 가...도 되나?

그 애가 말할 때마다 황금빛 물감이 여기저기 튀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예뻐서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신난 듯 말하던 그 애는 내가 거절의 의미로 대답하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얼버무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밝은 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웃음이 나왔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애와 함께 등교했다. 나는 집에서 일찍 나와서 그 애가 나올만한 시간에 맞춰 기다리다가 정류장으로 나갔다. 등교시간만큼은 귀마개 없이 그 애와 대화할 수 있었다. 털털대는 소음 외에는 조용한 버스에 잔잔히 퍼져가는 밝은 금빛 목소리를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모두가 나를 장애를 가진 아이로 바라보는데 여울과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나도 그냥 평범한 나 자신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여울은 종종 제 연습장에 글씨를 적어 불쑥 내게 보여주곤 했다. 귀마개를 의식했던 것이다. 가끔은 수업 중에도 선생님의 눈을 피해 그 애가 손을 뻗어 내 노트 한 귀퉁이에 몰래 낙서를 하는 일도 있었다.

-수업 재밌어? 난 심심한데

그럴 때면 나는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허공에 샤프를 멈추고 머뭇거리곤 했다. 그 애는 아무 의미 없이 내게 건네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늘 그런 한 마디에 수십 가지 대답이 동시에 입에서 맴돌았다. 모두가 좋아하는 그 애가 장애가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애가 즐겨 쓰는 짙은 푸른색 펜이, 점점 탁한 감색으로 변해가는 엄마의 목소리를 생각나게 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원래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한 붉은 색이었다. 그러나 내가 색청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점점 푸른빛이 되어갔다. 푸른빛이 다시 붉게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 푸른색은 아빠와 통화를 하고 나서는 한 뼘씩 짙어지곤 했다. 엄마는 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나는 싸늘한 거실을 바라보며 차라리 너무 바빠서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적던 서울에서의 엄마가 낫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귀마개를 굳이 끼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나는 일부러 귀마개를 끼고 다녔다. 내가 귀마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엄마가 말을 걸어주지 않는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내려가겠다는 얘기를 이모에게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켰다가 도로 화면을 꺼버렸다. 이모는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 구구절절 말해줄 게 뻔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마주하기 전까지 나는 내 나름대로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와 헤어지고 난 후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미뤄왔다. 엄마의 기억을, 내가 애써 묻어뒀던 지난날을 꺼내어 살펴보려 하는 지금, 일부러 동정심을 갖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는 꽤 매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엄마에 대해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나조차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 목소리의 색이 먼저 생각났다. 그 당시 엄마의 목소리는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우울한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차갑고, 어둡고, 탁한 색들. 그걸 보고 있노라면 그 색깔에 나까지 먹혀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잔잔한 황금빛 물결을 더욱 좋아했는지도 몰랐다. 눈과 함께 섞여 내리는 금빛 목소리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몇 달이 지나도록 그 애와 나는 여전히 짝꿍이었다. 모든 아이들의 편의를 위해서 선생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리라. 그 애는 반장이었고, 공부도 잘했고, 착했으니까. 장애를 가진 나의 짝꿍으로 그 아이는 제격이었을 것이다. 자리를 바꿀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칠판에 나란히 적혀 있는 이름을 보면서 나는 그 불편한 호의를 모른 척 했다. 그 애랑 같이 앉는다는 사실이, 다른 모든 걸 모른 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색청을 앓기 이전에,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전교 1등까지는 아니었어도 공부는 곧잘 했고, 친한 친구들도 있었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티비 프로그램을 챙겨 보기도 했고, 그리고, 또, 피아노도 쳤다. 엄마는 내가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엄마는 나를 동네에 있는 피아노학원에 보냈고, 슬슬 피아노에 익숙해지던 시기쯤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 그러듯이, 학원 선생님이 예의상 했던 칭찬에 엄마는 기대하기 시작했다.

나 어렸을 때는 이런 건 꿈도 못 꿨어.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있어야지. 운 좋은 줄 알아.

비록 엄마의 기대처럼 내가 그렇게까지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엄마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그러려면 사랑받을 만한 딸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엄마가 원하는 대로 계속 피아노를 쳤다. 재능이 없다는 걸 숨기기 위해 나는 끝없이 연습해야 했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학원에 가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거기서 내가 뭘 하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학원에 가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소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연주회장의 화장실 변기를 붙들고 토했다. 이사를 하면서 가져온 피아노의 뚜껑에는 먼지가 잔뜩 앉게 되었다.

여름이 되자 나는 장애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반년이 지났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혹시나 하고 시간을 내어 서울까지 올라가 만난 저명하신 교수님께서는 색청은 고칠 수 없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절망했다. 어두운 갈색 빛.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엄마가 아닐까. 엄마는 의사 선생님의 옷자락을 무슨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잡았다. 진료실 밖으로 밀려나와서는 내 어깨를 잡고 울었다. 나는 엄마가 우는 게 나를 위한 건지, 아니면 엄마 자신을 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병원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았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제 갈 길을 갔다. 죽어가는 것도, 죽을 만큼 고통이 있는 것도 아닌 단순히 소리가 보이는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한 나는 그들에게는 별 것 아닌 거였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너무나도 커다란 장애였다.

피아노도 다시 치고, 다시 공부도 할 수 있을 거야. 네가 이겨낼 수 있잖아. 마음먹기에 달린 거 아니야?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야, 다들 힘들어하면서 사는데 그깟 게 별거라고.

엄마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울었다. 나는 너 안 믿어... 넌 어렸을 때부터 엄살이 심했잖아. 회사에 있었을 때 네가 아프다고 해서 보면 꾀병이었지. 크니까 없어진 줄 알았는데. 좀 참아봐! 참아보라고 할 때 엄마의 중얼거림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서울에 온 김에 아빠를 만났다. 회사에서 잠깐 시간을 내 나왔다던 아빠는, 같이 살던 때와 별 다를 것 없어보였다. 그러나 귀마개를 한 내 귀에 가닿는 아빠의 시선에는 확실히, 측은함을 넘어선 그 어떤 감정이 담겨있었다. 본인이 아니기에 혹은 본인이 상관하지 않을 일이기에 가질 수 있는, 철저한 타인의 동정어린 시선. 아빠의 눈은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른들의 대화를 듣지 못하게 했다. 나는 차에 혼자 남아 엄마를 기다렸다. 내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 사이가 이상하게 된 건 아닐까. 여름날의 햇살을 받아 차 안이 찌는 듯이 더웠지만, 되레 소름이 돋았다. 나는 처음으로 조금 울었다. 다시 집으로 내려가는 동안 엄마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처음 서울을 도망치듯 벗어나던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리실 승객은 안녕히 가십시오..]

깜빡, 잠이 들었다가 버스를 울리는 기사 아저씨의 안내 소리에 놀라 깼다. 이미 다른 승객들은 다 버스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황급히 가방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짐을 들고 엉거주춤 일어난 와중에도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거슬려서 귀마개를 꺼내들었다. 꺼내든 줄 알았는데, 귀마개 한쪽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허리를 숙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려서 간이 귀마개를 샀다. 고속터미널에서 아쉬운 대로 구입한 귀마개는 색청이 처음 생겼던 때 끼던 말랑한 노란 고무 재질이었다. 이모에게 병원이 어디인지 묻는 문자를 보내곤 택시를 잡기 위해 승강장으로 향했다.

엄마가 무슨 병인지는 끝내 묻지 않았다. 엄마와 떨어진 이후 일부러 소식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에, 나는 엄마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감했다. 엄마를 떠올리면 늘 좋지 않은 기억밖에 없었는데, 아픈 엄마에게 내가 과연 슬픈 감정을 품을 수 있을까. 나는 정말 냉정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병실 문 앞에 이르러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고리에 손을 얹고서야, 그래도 자식 된 도리를 하려면 뭐라도 사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문이 열린 후였다. 조용한 6인실에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 중 창가에 누운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쪽을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왜인지 내게 옆얼굴을 보이며 누워 있는 저 사람이 엄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마개를 낀 채로 엄마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귀마개를 뺐다.

엄마.

한참 만에 겨우 흘러나온 말이 고작 엄마를 부르는 것이었다. 엄마가 눈을 떠서 나를 바라봤다. 엄마와 시선이 교차하는 짧은 몇 초가 몇 분 같이 느껴졌다. 엄마로부터 벗어나 달아나버린 딸이, 당신이 아프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기대와 걱정이 섞인 감정이었다.

왜 왔어.

아. 맥이 탁 풀렸다.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는 예전보다는 밝지만 그래도 여전히 푸른색이었다.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그때의 17살짜리가 아닌 어른인데.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엄마 아프다고 해서. 이모가...
여길 네가 왜 와, 가. 올 필요 없어.

엄마의 말은 바늘처럼 내 목구멍 어딘가를 콕콕 찔러왔다. 손에 들린 귀마개가 잔뜩 찌그러졌다.

괜찮아 보이네. 나도 올 생각 없었어.

목소리가 꽉 막혀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정신없이 몸을 돌려 병실을 빠져나왔다. 정도 없다고,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내 뒤를 따라붙었다. 복도를 막 돌 때쯤 누가 내 팔뚝을 잡았다. 이모였다.

유진아. 잠깐만 이모 말 듣고 가.
싫어. 안 궁금해. 내가 왜, 이만큼 했으면 된 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싫다는데, 내가 그거 참으면서 엄마 옆에 꾸역꾸역 있어야 해?

나도 모르게 이모에게 소리를 질렀다. 사실 엄마에게 해야 할 말이었는데 애꿎은 이모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몸이 떨려왔다.

그래도 너 지금 가면 어디에서 자려고 그래.

이모가 준 열쇠를 받아들고 어릴 적 살던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맨 뒤의 좌석 구석에 몸을 구겨 넣곤 잔뜩 뭉개진 귀마개 대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아무 음악이나 재생시켰다. 창가에 고개를 기대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잘 살고 있었는데, 잘 묻어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 앞에서는 똑같았다. 한참을 소리 없이 울다 문득 조용해진 버스 안에 고개를 드니, 어느새 예전 살던 동네에 들어서 있었다. 옆에 앉은 여자가 휴지를 내게 내밀곤 내렸다.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하고 얼굴을 황급히 닦았다. 나 밖에 타고 있지 않은 버스에 누군가가 올라탔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놀라 울음이 멎었다. 여울이었다. 키도 더 크고 얼굴선도 굵어졌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여울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여 목도리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나를 봤을까.

한 곡 반복 해놓은 피아노곡의 멜로디와 여울의 얼굴은 나를 순식간에 17살의 여름으로 끌어당겼다. 여울이는 피아노를 칠 줄 알았다. 방과 후 아무도 찾지 않는 음악실에 남아 혼자 피아노를 치고는 했다. 그걸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피아노를 치는 여울을 발견했을 때, 그 애가 연주를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귀마개 때문에 얼마나 큰 소리를 냈는지 알 수 없어 놀라 굳어진 나에게 그 애는 처음 만난 그 날처럼 씩 웃었다. 그 애는 성큼성큼 걸어와 날 피아노 앞으로 이끌었다.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아 그 애의 연주를 귀마개를 뺀 채로 다시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한여름에 눈송이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 애가 연주하는 피아노로부터 하얀 눈송이가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피아노 주변에 흰 눈송이들이 쌓이고, 우리가 앉은 주변이 하얗게 물들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태어나고 처음 보았다.

소리가 눈에 보이는 거야.
어떤 식으로? 음표가 떠다녀?
아니, 색깔이 보여.
색깔? 내 목소리는 어떤 색이야?
노을빛이야. 황금빛. 그래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
와아... 예쁘다. 특별한 재주네.

내 장애가 이상하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예쁘다고 말해준 건 그 애가 처음이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여울이와 함께라면 색청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

그 애를 따라 방과 후에는 음악실에서 살았다. 귀마개를 끼지 않고도 행복한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루는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 어디 갔다가 이렇게 늦었냐고 감정 없이 묻는 엄마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음악실이라고 대답하니 엄마가 무얼 했냐고 재차 물었다. 거짓말을 할 줄 몰랐던 17살의 나는 피아노 치는 걸 구경했다고 사실대로 대답했고 엄마는 내게 손을 올렸다. 그 후부터 엄마는 종종 손을 올렸다. 아무런 맥락도 없는 손찌검이었다. 나는 그냥 엄마가 나를 때리는 것을 가만히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맞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폭언과 구타를 견뎌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엄마의 구타에 못 이겨 학교를 무단결석했다. 엄마는 나를 두고 밖으로 나가버렸고, 나는 도저히 학교를 갈 힘이 생기지 않았다. 학교를 가지 않은 지 이틀되던 날 옆 도시에 살던 이모가 나를 찾아왔다. 이모는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힘없이 이모의 품에 안겨 나도 목 놓아 울었다. 엄마도 이제 불러주지 않는 내 이름을 이모가 하염없이 부르며 우는 모습이 서러웠다. 유진이... 불쌍한 것. 내가 왜 불쌍한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이모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 도망친 것이다. 내가 떠나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그 애는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학교를 빠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지만 도망치듯 집을 떠나는 나를 배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곳에 왔다. 17살 때처럼 단정한 여울의 뒤통수가 눈앞에 있었고 귓가에서는 그 때 그 피아노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울이 나를 봤는지 알 수 없었다. 여울에게 아는 척 할까 하다가도, 오래 전 나를 찾아오지 않았던 그 애가 떠올라 감히 그럴 할 수 없었다. 섭섭한 건 아니었다. 굳이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자면 그건 자격지심이었다. 나는 언제나 여울의 친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애 때문이었다. 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나는 엄마와 끝없이 멀어졌다. 그랬기에 그 애가 내게 베푸는 친절이 무엇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늘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동정인지, 혹은 다른 어떤 것이었는지. 그건 지금도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내가 그 애를 많이 의지했다는 거다. 결국 여울은 그렇게 버스에서 내렸다. 여울이 문득 고개를 돌려, 어쩐지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다. 나는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이모가 계속 다녀갔던 걸까. 집은 아주 깨끗했다. 꼭 내가 떠나던 날로부터 하나도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가 쓰던 가구들도 그대로 있었다. 짐을 침대위에 던지듯이 내려놓고 옛 물건들을 좀 챙겨갈 요량으로 서랍을 열었다. 떠나올 때는 너무 도망치듯 집을 나섰었다. 종이 뭉치들 위에 엄마의 수첩이 들어있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전화번호부터 시작해서 엄마의 전 직장에 관한 것들, 그리고 색청과 병원에 대해서 적혀 있는 몇 장들을 의미 없이 넘겼다. 이후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마지막 장에 쓰인 이혼이라는 글씨가 눈에 박혔다.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나를 때릴 권리는 없었다. 이것을 보았다고 한들, 나는 쉽사리 엄마를 한 순간에 용서할 만큼 속 좋은 인간은 못 되었다. 오래 전 엄마는 날 방치하고 나가버렸다. 이제 쓰러진 엄마를 내가 용서해주어야 하는 걸까. 엄마라는 이유로?

다른 공책을 집어 들었다. 이상한 필체로 엄마의 이름이 씌어져 있었다. 서툴게 쓰인 글씨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안에는 의미 없는 내용들과 엉망으로 그려진 그림이 있어서 마치 어린 아이의 일기 같았다. 내 이름도 간혹 보였다. 한참 주인을 알 수 없는 공책을 살펴보던 그 때 종이 뭉치 하나가 떨어졌다. 엄마의 우울증에 관한 기록이었다. 거기엔 엄마가 집을 나간 날,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었다. 엄마는 오랫동안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누구도 내게 해준 적 없는 이야기였다.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 나 이모네 집으로 가던 날 있잖아. 그 날 엄마는 대체 어디에 있던 거야?

대답을 망설이는 이모의 반응은 눈앞의 종이들이 진실을 담고 있음을 반증해주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울음이 터졌다. 수화기 너머로 이모는 내가 우는 것을 말없이 들어주고 있었다.

-나는 평생을 엄마를 미워하면서 살아왔는데. 근데 이모, 사실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해줬으면 했어. 엄마가 날 때려도, 이유를 몰라도, 나한텐 엄마밖에 없으니까. 근데 엄마가 나를 미워해서... 죽으려고 했던 거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유진아.
-나는 엄마가, 내가 피아노를 못 쳐도, 장애가 생겨도, 언젠가는 유진아 하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엄마가 나 때문에 죽으려고 했다는데, 나는 어떻게 해...
-유진아. 만나서 얘기하자. 내일 바로 병원으로 와.

전화를 끊고 오래 전 그날처럼, 목 놓아 울었다. 엄마가 불쌍하고, 그 엄마의 딸인 내가 불쌍했다. 나는 내가 평생 엄마를 미워하며 살기를 바랐다. 실제로 그러진 못했지만 그러는 척이라도 해야 내 사춘기의 상처들을 억지로 덮어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이모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데, 눈이 쌓여있는 우편함에 메모가 꽂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 전까지는 없던 것이었다.

[정여울 010-xxxx-xxxx]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자마자 후회했다. 바로 끊으려던 찰나, 황금빛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눈앞에 그려졌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정여울 씨, 핸드폰 맞나요?

사실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 황금빛은 그 애 목소리에서밖에 본 적이 없었으니까.

-....유진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그래, 나야. 라든가 오랜만이지. 같은 말들을 새삼스럽게 건넬 용기는 없었다. 물론 여울이 나를 단지 옛 동창 정도로 생각한다면 저런 인사가 당연한 거겠지만. 적어도 나한테 여울은 그렇지 않았기에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유진아. 잘... 지냈어?
-...응.
-우리. 만날 수 있을까? ......학교에서 기다릴게.

날 찾으러 오지도 않았던 주제에, 여울이의 목소리는 17살 때처럼 내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나는 대답 없이 그냥 전화를 끊었다. 황금빛이 일렁이던 핸드폰이 곧 빛을 잃고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울을 만나는 것 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었다. 병원으로 향했다.

네 엄마는 어렸을 때 항상 서울을 동경했어. 그래서 대학도 서울로 갔지.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 희정이가 서울 남자랑 결혼하고 소식이 끊겼었는데 널 데리고 다시 돌아오더구나. 그렇게 시골을 싫어했는데.
......

희정이는 자존심이 강한 애였지. 그래서 직장도 잃고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게 큰 충격이었을 거야. 그리고 네 아빠 되는 사람이 외도를 해서 이혼까지 하게 되니 우울증에 걸리고도 남지 않았을까.
......

유진아. 네 엄마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야. 내가 그렇듯이, 또 네가 그렇듯이 네 엄마도 결핍이 있는 사람이야. 어딘가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네 엄마는 그 부분이 너무 약해져버린 거야. 그래서 그 구멍이 엄마를 잠식해버린 거고. 비록 지나쳐서 너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지만, 여울아. 네게 희정이를 무조건 이해하고 용서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그래도, 남은 시간 동안 네 엄마를 미워하는 방법만이 최선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그래.
......

희정이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이제 알츠하이머로 이어져서, 온전히 맑은 정신이 아니야.

이모의 입에서 나온 알츠하이머라는 단어는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다.

말 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을 분간 못할 때도 많고. 그래서 한 번이라도 보고 가라고 했던 거야. 이모도 염치가 있으니까 너한테 이제 와서 딸 도리 하라고 할 생각은 없어.

이모의 말들을 곱씹으며 병실로 올라왔다. 엄마가 어딘가로 가려는 듯 혼자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간병인은 어디로 갔는지,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 엄마를 향해 달음박질 쳤다. 쇠약해진 엄마가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찰나 내가 엄마를 받아내었다. 품에 안긴 엄마는 지나치게 가볍고 또 작았다. 늘 세련된 스타일을 유지했던 엄마는 몇 년 새 많이 늙고 약해져 있었다. 저번에 병실에 왔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누구세요?
유진이...요.
유진이. 이름이 예쁘네. 내 딸도 이름이 유진인데.
......

유진이는 어디 있지. 유진이가 보고 싶어.
보고 싶어요?
응. 미안해. 우리 유진이

중얼거리듯 말하는 엄마를 조금 더 세게 안았다. 엄마의 어깨는 마른 장작처럼 말라 볼품없었다.

엄마, 내가 유진이에요.
우리 유진이는 피아노를 잘 쳐.
엄마, 내가 유진이잖아...

엄마의 목소리는 어느새 예전 같은 흐린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소리 죽여 울었다. 눈물은 대체 무엇 때문에 나오는 걸까. 동정심? 슬픔? 확실한 건 지금에서야 엄마를 안아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는 엄마의 약해진 모습을 견딜 수 없어 엄마를 다시 침대에 눕혀주고는 병실을 나와 버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모와 마주쳤다.

이제 서울로 다시 올라갈 거니?
응. 근데 만나자는 사람이 있어서.
누구?
고등학교 때 친구... 정여울이라고.
정여울?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아마 이모는 모를 텐데.
아냐. 잠시만, 아 생각났다.

핸드폰을 꺼내어 내용을 뒤지던 이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희정이 저수지에서 구해준 게 걔잖아. 정여울. 이름이 예뻐서 기억해.

달렸다.

그 애가 희정이 구하고 같이 입원했었을 거야. 유진이 친구였어?

이모 말을 듣자마자 병원에서 뛰쳐나왔다. 여울이 기다린다던 곳이 우리가 다니던 고등학교였다. 지금은 폐교되었다고 들었는데. 무작정 길가로 뛰어나와 택시를 잡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눈이 쌓인 운동장에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발자국이 건물 앞에서 서성이다가 음악실로 향했다. 텅 빈 복도에 그 옛날의 피아노곡이 보였다. 이미 귀마개는 어딘가로 대충 던져 버린 지 오래였다. 음악실 안이 온통 하얀 눈으로 가득했다.  함박눈이었다.

창밖에도 어느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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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24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소설부문 최효진 씨의 「눈 내리는 피아노」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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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 폐차장 근처
   - 최병규

죽은 속도들이 야적장에 포개져있다

얼마나 밟았으면 속력이 너덜너덜 해졌을까

비명은 중앙 분리대에 납작하고

찌그러진 웃음들은 코를 꿰어 끌려 왔다

시트에 배냇짓이 구겨진 채 말라 가고

분해된 차체가 벌건 각질을 흘린다

선혈 자국 선명한 골절이 일그러져 있고

크레인은 압사된 사채위로 코를 박고

고목 은행이 한 겹 두 겹 옷을 벗어

바람의 사체를 덥어주는 늦가을 오후

노오란 장례식장은 곡소리도 없이

볕뉘는 등 뒤에서 통곡하고

무당거미가 상주자리에 은장막을 칠 때

유영하는 은행잎이 황금 염을 한다

참새가 조객으로 문상하는 폐차장 근처

갈바람에 철판이 추도사를 읽는 동안

또 객사한 한 생의 속도가 끌려 들어왔다



■ 초인종
   - 최병규

까마귀의 날개에 그으름이 필 때

나를 잃어버린 순백의 *손길이

급기야 그으름을 털어 내고요

털어 낼 수록 검어지는 손과

예사롭지 않은 벨소리가 불길에 울고요

마침내 백로떼, 높이 날아 오르면

하늘에 하얀 융단이 깔려 있었죠

초인종 소리에 손을 굽는 까마귀가

홀로 비상구에 애절히 지저귀고요

매연 속에서 검은 음성이 꾸역꾸역 피어날 때

그의 손은 그으름을 뚝뚝 흘리고 있었죠

순수가 갈증에 까맣게 타는 소리

연막속 백로떼 벨소리로 울어대면

하늘위 까만 융단이 슬픔을 글썽였죠

 

* 불속에서 초인종을 누르며 생명을 구한 안치범씨의 손



■ 빨간 복어
   - 최병규

복어같은 빨간 동전지갑을 선물로 드렸다

바짓주머니를 바다로 흔쾌히 내어 준 어머니

과거를 반쯤 잃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더는 잃지 않으려는 애잔한 몸짓들

과거의 패보다 현실의 패가 더 화려하다

굽이치는 생도 어차피 가다가 서는 것

고go를 외칠 때마다 태양같이 밝은 복어

주린 시간을 걸신처럼 먹어 치운다

쓰리고에 지갑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면

날치알같이 산란지로 날아오는 굽은 허리

슬며시 뭍에다 빨간 태양 하나 꺼내 놓고

장패를 붙이듯 매운 손으로 해를 가른다

산란하듯 촤르르 쏟아져 나오는 황금알들

언젠가 매출액을 간주하던 버릇이 남아

십층 금탑에다 허기대신 녹슨 기억을 쌓는다

무수히 무너지고 다시 쌓은 무심한 첨탑에

생의 옹이마다 주린 기억들이 달그락 거린다

복어는 기억을 갉아먹고 스톱을 외친다

그리고 금탑 속으로 걸어 들어간 후

비문의 장막에서 나오지 않았다



■ 양말은 계절을 모른다
   - 최병규

남자의 바느질은 계절이 없다

출근 시간에 양말을 신다보면

맹맹해진 계절이 불쑥 튀어 나온다

대지가 꽃잎을 밀어내 듯

봄이 불쑥 발가락을 내 민다

새 양말을 신을 때마다 걷어 차이는 계절

여름이 비대해져 울타리를 넘는 넝쿨들

발톱이 양말의 경계를 허문다

숭고한 경전 앞에서 벌을 내리는 중이라

꿰맨 계절이 툭 튀어나오는 버릇을 고칠 수 없다

여름을 갉아 먹으면 발가락이 나온다

유난히도 사내는 계절을 갉아 먹었다

면사의 재질엔 욱하는 성질이 숨어있어

아침마다 불쑥 내미는 버릇이 되어버린 건지

계절은 바느질 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출근 전쟁으로 봉쇄된 발을 꿰매는 아침

걷어차이는 계절의 코가 또 맹맹해진다



■ 청자의 빛
   - 최병규

저 말알간 어께로 눈물이 쏟아진다면

몇 말의 빛으로 담아 낼 수있을까

성좌에서 발아한 한 줌의 눈물일까

우아한 자태로 펴는 학의 날개 만큼이나

청아한 숨을 고르고 있는 푸른 수정이다

잘룩한 허리를 끼고 통과하는 실바람과

박산의 놀이 바위 위

한 그루의 청솔이 구름을 이고

가마 속에서 신열을 앓아야만

저리도 영롱한 빛으로 글썽일 수있다

솔 숲을 지나면 사슴의 무리

눈길이 닿는 하늘과 땅이 합일된 점토는

솔잎이 불빛을 찍어 넣어서 인지

눈물방울이 빛으로 스며 들고

어께와 열정의 가슴이 마주한 이슬은

도공의 혼이 녹아든 땀일 것이다

저 말알간 눈시울에 뚝뚝지는 설움을 보면

청초한 빛 한 자루 쏟아낸 학골에

전설이 끌밋하게 흘러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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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24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시(詩)부문 최병규 씨의「폐차장 근처외 네 편의 시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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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선자들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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