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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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4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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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회를 거듭할수록 응모작이 늘어날뿐만 아니라 질적 수준도 더욱 높아지고 있어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제4차 공모 또한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이 많아 우열을 가리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응모자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창작콘테스트> 제4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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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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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Madness Summer
김진솔

 
 
“탓할 생각은 없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녀가 입에 담배를 물었다. 얼마 되지 않아 지하철 공기에 담배 연기가 섞였다. 그녀의 곁을 스쳐가던 사람 중 몇몇이 그녀를 돌아봤지만 그뿐이었다. 그녀의 행동을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런 거죠.”
 
스스로가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갈 줄만 아는 공간에서, 그녀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행동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점점 또렷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입에서 연신 흐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강렬한 냄새와 함께.
 
“우리에게 어린 꼬맹이들의 연애질이 사랑으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죠. ‘다 한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
 
담배 끝이 타오르고 재가 떨어졌다. 그녀가 무심하게 신발 코에 떨어진 담뱃재를 응시했다. 새빨간 하이힐 위에서 재가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신발 끝을 털어내고 불을 붙이는데 사용했던 지포라이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손짓 하나에 단단한 쇳덩어리의 입이 열렸다. 그녀는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 안을 활보했지만 그녀가 그곳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손가락에 힘을 줬다. 하이힐만큼이나 강렬한 붉은색이 라이터의 작은 심지에서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우린 그저 어린아이일 뿐인 거예요. 우리에겐 진지한 사랑도, 그들에겐 그저 비웃을 소재에 지나지 않은 거죠.”
 
지포라이터의 입이 닫혔다.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 탓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치고 지나간 중년 남성을 응시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쳤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듯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뜀박질을 하면서도, 비대한 몸에 맞지 않는 빠른 속도감에 헉헉대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인파 속으로 먹혀들어갈 때까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던 그녀가 다시금 지포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멀리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차차 크기를 더해갔다. 그녀가 끝없이 이어진 철로의 어둠에 시선을 뒀다. 그녀는 다시금 입을 열었지만, 이번에는 지하도 특유의 소음에 그녀의 소리가 제값을 하지 못 했다.
 
“…하지만 탓할 생각이 없다고 해서 그들이 원망스럽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덜컹거리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수차례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 소리가 어지럽게 섞인 와중에도 그녀의 날카로운 웃음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녀의 힘없는 발길질이 발치에 서 있던 낡은 페트병을 넘어뜨렸다. 이미 뚜껑이 열린 채 입을 벌리고 있던 그것에서 역한 냄새가 나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과도 같은 그 쓸쓸한 눈가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힘없이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떨어뜨렸다.
 
입을 벌린 채 바닥에 떨어진 지포라이터의 작은 불길이 바닥에 번진 액체 위로 옮겨갔다. 순식간에 타오른 불길의 한가운데에서, 그녀가 젖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마치 처음부터 물기를 머금고 있던 것 마냥 축축한 그녀의 몸뚱이가 뜨거운 불에 먹혀들어갔다. 사람들의 비명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가 오직 사건의 주요인이었던 그녀의 죽음 위로, 그녀가 내뱉었던 말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꽃샘추위가 기승이었다. 그것은 겨울이면서도 봄이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위를 맞이했다. 여전히 사람들의 옷은 두꺼웠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은 없었지만 그들보다 조금 더 그런 날씨에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유독 그런 날씨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던 그녀를.
 
“뭐?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미안해. 걔가 지금밖에 시간이 안 된다잖아. 대신에…]
 
“그런다고 내가 화 풀 것 같아? 됐어!”
 
내 말에 그가 앓는 소리를 냈다. 곤란할 때면 내는 소리였다. 나는 그가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한순간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모처럼의 외출이건만, 남자친구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해 버리는 탓에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때마침 지나가던 옷가게의 쇼윈도에 내 모습이 비쳤다. 세 시간이나 공들인 화장, 옷차림, 표정. 그럼 뭐 해, 이젠 다 필요 없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뒤늦게 후회가 됐다. 어차피 고의가 아니었을 텐데 너무 화를 냈나.
 
남자친구는 내가 단단히 화가 났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일이 어찌 됐든, 약속 장소에 계속 서 있다간 시간만 버릴 것이다. 온몸에 맥이 확 빠졌다. 힘없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놀라 눈을 깜빡였다. 뒤늦게 내가 지하도 입구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피하기엔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도 모르게 휩쓸려 뒷걸음질을 쳤다. 주말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배는 정신이 없었다. 이럴 때면 꼭 남자친구가 옆에서 길을 터주곤 했는데. 남자친구 생각에 가라앉은 기분을 추스를 새도 없이 몸이 휘청거렸다.
 
“아, 정말. 운도 안 좋지.”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대충 풀어내며 투덜거렸다. 옷과 마찬가지로 아침 내내 어르고 달래던 머리였는데, 지금은 기분처럼 엉망이 된 상태였다. 지친 다리를 풀 곳을 찾다가 지하도 근처 화단 모서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코앞으로 사람들이 바삐 지나갔다. 워낙 사람이 많았던 탓인지 인파에서 빠져나가는데 온갖 힘을 다 뺐다. 지금은 여기저기 엉킨 채 허리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손질하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약속이라곤 없었다. 그와의 약속도 파투 난 상황에서 굳이 예쁜 모양새를 유지해봤자 아무 소용없으리라.
 
“잠깐 앉아도 될까요?”
 
끝도 없이 기분이 가라앉으려던 찰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없어서 잘못 들은 것인가 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지나가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뒤늦게 인기척이 옆쪽에서 느껴진다는 것을 눈치 챘다. 단발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여자였다. 키가 크고 옷맵시가 좋은 사람이다. 나는 뒤늦게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자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가 내 옆에 걸터앉는 소리와 함께, 코끝을 간질이는 쓴 내가 신경을 건드렸다.
 
“날씨가 춥죠?”
 
말과는 달리 여자의 옷차림은 얇았다. 짧은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맨살이 무척이나 시려 보였다. 여자가 어깨에 메고 있던 베이지색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다시 한 번 지하도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쯤 그는 뭘 하고 있을까. 나는 신호에 걸려 다시금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차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하던 사람이 내일 결혼을 해요.”
 
코끝에 알싸한 향이 퍼졌다. 그녀가 내 곁에 앉을 때 났던 냄새와 비슷한 향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응시했다. 여자는 웃고 있었다. 붉은색의 립스틱을 바른 입 꼬리를 끌어당긴 채 부자연스럽게. 나는 그제야 그녀의 품에서 났던 향의 정체를 눈치 챘다. 담배였다. 그녀의 입에 물린 새하얀 담배. 그리고 나는 담배 냄새를 싫어했다. 그것도 엄청.
 
“얼마 전에 알았죠. 저한테 알리지 않고 하려던 걸 지인이 알려줬어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말릴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보고 인상 쓰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손에 쥐고 있던 지포라이터를 보기 위해서였다. 금박에 붉은 테두리. 나는 뜬금없게도 붉은색이 그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녀가 지포라이터를 가방에 우겨넣고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순식간에 매캐한 냄새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덕분에 한동안은 술에 찌들어 살았어요. 당연한 결과였죠. 그 사람이 하지 말라고 했던 건 전부 꺼내서 하기 시작했어요. 술, 담배… 뭐 그리고 이것저것. 믿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배신감이 컸던 것 같아요.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식으로 끝나서 상심이 컸나 봐요.”
 
‘누나는 모르잖아. 내가 어떤 기분인지.’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을 생각했어요. 복수라도 해야 하나, 우리 사이를 떠벌일까. 최소한 면상에 대고 욕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죠. 그래요. 원래 알고 있었어요. 알면서도 바보같이 기다리기만 했죠. 올 거야, 다시 돌아올 거야.”
 
‘원망스럽지 않냐고? 원망스럽지. 그런데 난 겁쟁이라서, 복수 같은 거 못 해. 아마 평생 그럴 거야.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럴걸. 우리도 사람이라고, 사랑 정도는 할 줄 안다고 말해봤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병신 같이.”
 
빌어먹을. 이 상황에서 왜 그놈 생각이 나는 거야. 나는 여자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칠게 돌렸다. 어느새 차들이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신호가 뒤바뀌고, 번호판을 새긴 커다란 버스 한 대가 천천히 속도를 늦춘다. 여전히 담배 연기가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담배를 싫어하면서도 그녀에게 담배를 끄라 할 수도,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다. 여자가 잠시 담배 맛을 음미하는 모양인지 침묵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알고 있었겠죠.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내면서, 단 한 번도 저에 대해 틀린 적이 없던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떠나도 내가 그냥 보고만 있을 거라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녀는 울음을 삼키는 듯, 혹은 무언가 중요한 말을 고르듯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잠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배 연기가 가라앉았다. 그녀가 담뱃불을 끈 모양이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도 알아요.”
 
여자가 다시금 말을 추슬렀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불안감이 미세하게 등을 간질였다.
 
“그 사람은, 그녀는…”
 
‘누나가 있어서 다행이야.’
 
“여린 사람이니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가 체념한 듯 힘 빠진 미소를 지었다. 이미 익숙하다는 태도였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을 말아 쥐며 눈을 깜빡였다. 아, 알겠다.
 
“내일 그녀의 결혼식에 갈 거예요.”
 
‘지켜볼 거야. 아마 한동안은.’
 
“가서 보란 듯이 박수 쳐주고 나올래요.”
 
‘얼마나 잘 사는지 보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잘 먹고 잘 살라지.”
 
‘복수야, 그게.’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나는 놀라 손끝을 움찔하면서도,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내게 인사했다. 어느새 담배 연기가 가셔 있었다. 그녀는 처음처럼 아주 느리게 미소 짓고는 몸을 돌렸다. 바람이 불어 찬 기운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다시금 지하도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왔고, 나는 그대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그녀를 잊었다. 아마 그 일이 있고 난 후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던 게 큰 몫을 했던 모양이다. 멍하니 있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두세 차례를 건너 사과했고,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대학 시절부터 연예를 시작해 5년간 함께 했던 나와 남자친구는 결혼을 약속했다. 양가 부모님은 생각보다 흔쾌히 우리의 사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로는 일이 더 바빠져 나는 그녀의 일을 새까맣게 잊을 수밖에 없었다. 봄이 지나고, 긴 여름이 비켜가고, 가을이 되자 결혼식이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속보입니다.]
 
혼수를 본답시고 전자 매장에 가자 예상대로 직원이 물건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는 굳이 TV를 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남자친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직원이 옆에서 뭐라 하자 남자친구가 혹하는 얼굴로 제품을 응시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남자친구에게 가려다 TV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최근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경찰은 다행히도 사고로 인한 피해자는 많지 않으며, 범인은…]
 
“자기야, 뭐 해!이리 와 봐.”
“잠시만…”
 
현장 중계를 한 모양인지 화면이 전환됐다.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빠르게 지하철역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도한 영상이었다. 나는 남자친구가 부르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 불길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새빨갛게 그을린 라이터였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것임에도 시야에 확 들어왔다. 반쯤 타버렸지만 확실했다. 금박에 붉은 테두리. 그 여자의 것이다.
 
“뭔데 그래?”
“…….”
 
[…경찰은 방화 사유를 원한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망자인 편 모 씨는 20대의 젊은 여성으로 경찰이 주변인을 중심으로 수사에…]
 
아냐 그런 게 아니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남자친구가 어깨를 움켜쥐는 것이 느껴졌으나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불길이 가라앉고 그 안에서 새까만 무언가가 들 것에 들려 빠져나왔다. 경찰이며 소방관이 고개를 젓고 그것을 새하얀 천으로 덮는다. 다른 정신없는 것들이 많은데, 나는 그것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여자다. 그때 그, 여자가…
 
“자기야, 세란아. 울어?”
“…맙소사.”
 
죽었어. 죽었다고. 또 한 명이 죽었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자, 누군가가 힘을 줘 일으킨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온몸이 것 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아무것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눈앞이 흐리다. 뜨겁고, 어지럽고. 아 그래, 나 울고 있구나. 그런데 왜?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그 사람과 닮았다고 해도 울면 안 되는 거잖아. 신경 쓸 이유 없고, 그냥 지나갔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세상이 미워.
 
손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아니면 눈가가 지나치게 뜨거운 걸지도 모른다. 쥐어짜듯 눈물을 닦아내자, 이번에는 머리가 아팠다.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는 걸까.
 
“세란아. 이세란!”
“…아.”
“너 왜 그래? 왜 우는데? 응?”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냐. 아냐…”
 
버럭 외치는 소리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전자제품을 구경하던 사람이며, 직원들이 전부 몰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 열이 확 몰렸다. 뭐라고 할까. 겨우 사람 죽은 뉴스 하나 봤다고 운 미친 사람이라고?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화장 다 번졌겠지. 하지만 그런 것보다 다른 것이 신경 쓰였다. 어쩌면 나보다 더 이런 시선을 많이 받았을. 그래, 예를 들어 그 여자라던가.
 
“집에 가자. 집에 가고 싶어.”
“…그래.”
 
남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집에 가면서도, 머릿속에는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머릿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빙빙 떠돌았다. 제 각각의 모습을 지니던 그것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하나로 몸을 합쳤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온 몸이 바싹 타오르는 기분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끝없는 어둠이 몸을 집어삼켰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상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끝없는 곡소리가 이어질 때, 나는 단상 앞에 주저앉아 멍하니 너를 응시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동시에 꿈처럼 멀었고. 너는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내가 늘 봐왔던,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너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바닥의 차디 찬 냉기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빛바랜 낡은 장판 아래로 투명한 물줄기가 둔탁하게 떨어졌다.
 
단순한 질병이라고 믿었다. 감기처럼 열이 내리면 금방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질겼던 모양이다. 잡아당기면 잡아당길수록 늘어지고, 끊어질 줄을 모른 채 보는 이를 애타게 만들었다. 손에 힘을 주자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그것이 마냥 낯설었다. 금방이라도 네가 다가와 말해줄 것만 같았다. 그런 건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이세란, 그냥 너답게 굴어.
 
처음에 네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 했다. 그저 그냥 해보는 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너는 아주 어렵사리 입을 뗐다. 남들과는 다른 사랑을 한다고 얘기하는 네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래, 당시에 나는 그런 너를 너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이건 너답지 않아 이세훈. 태어날 적부터 네가 죽기 전까지 내가 봐온 너는 조금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너다운 너’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렇게 얘기했다. 착각한 거야. 내일이면 금방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거잖아.”
“뭐가 말이 안 되는데?”
“…성별이 같은 사람이 사랑을 한다는 게 말이 돼? 더러운 거잖아.”
 
내 말에 너는 숨이 막힌다는 표정을 했다. 금방이라도 네 목을 감싸 쥘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너를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너는 몇 분 차이로 나와 다르게 태어난 나의 쌍둥이다. 그런 네가 그런 말을 하자 나는 나마저도 그렇게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솔직히 아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부정하고 싶었다.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네가 기꺼이 견딜 그 시선들을 감당할 자신이 나에게 없었을 뿐이다. 나는 차갑게 너에게 등을 돌렸다. 그래서는 안 됐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그래서는 안 됐던 거다.
 
“누나마저 그러지 마. 나 안 그래도 충분히 힘들어.”
“나는? 나는 안 그럴 것 같아?”
“…누나는 모르잖아. 내가 어떤 기분인지.”
“당연히 모르지.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러는 너는? 너는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
“…….”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뭐가 어려운데? 그러면 힘들 이유도 없잖아. 넌 널 고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고 싶니?”
 
너의 눈동자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그런 너의 사랑을, 너의 진심을 병으로 판단했다. 하룻밤이 지나면, 시간이 지나면 전부 다 나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너는 그 후로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너의 병’이 다 나았다고 판단했다. 너는 또래 아이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고, 나는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간 것이라 믿었다. 학교에서, 집에서, 그리고 다른 모든 곳에서. 너는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행동했고, 내 눈에 그런 너는 지극히 ‘정상’으로 보였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너의 속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얼마 뒤에 네가 죽었다.
 
자살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니 반기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부모님의 전화가 거짓처럼 느껴졌다. 남들은 네가 죽은 이유를 몰랐다. 나만, 오직 나만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방에서 혼자 목을 매고 죽은 널,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그 날 네가 학교에 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까. 나는 생각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너의 차가운 손이 거짓말처럼 아득했다. 발밑의 모든 땅이 동시에 함몰됐다. 진심이었다. 진심이었던 거다. 내가 부정하자 털어놓을 곳이 없어져 버린 넌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스스로가 미웠다. 왜 조금이라도 너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왜 나는…
 
너의 장례식이 끝난 후, 나는 계속 잠을 잤다. 눈을 뜨기가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네가 내게 찾아와 따질 것만 같았다. 잠시라도 깰 틈을 주지 않고 눈을 감았다. 나중에는 잠에 취해 깨어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끝없이 꿈을 꿨다. 처음에는 조금도 연관성이 없던 꿈이 나중에는 이야기처럼 죽 이어졌다. 꿈에서 너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너의 웃는 얼굴 뒤로 새파란 바다가 눈부시게 이어졌고, 소금기로 축축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여느 여름날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태양이 있었다. 발을 딛고 있는 모래사장이 이글거렸다. 나는 그것을 더 견디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갔고, 그런 나에게 너는 그런 말을 했다.
 
‘누나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그대로 뜀박질을 멈추고 너를 돌아봤다. 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꿈을 깨닫게 만들었다. 꿈이었지만, 그것이 악몽인지는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너는 나를 지나쳐 바다 속으로 몸을 들였다. 옅은 파도가 출렁이고, 갈매기가 끼룩거린다. 아주 먼 곳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죄여왔다. 그 순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거세졌다. 발바닥을 간질이던 모래는 따가울 정도로 퍼석해져 있었다. 땅을 내려다보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해일이 온 몸을 집어삼킬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너를 찾았지만, 너는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곤 해일이 나를 덮치려는 순간 늘 꿈에서 깼었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계속 반복되니 더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부모님은 너를 잃은 슬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질 않았다. 그저 무너질 듯 감정이 가슴 한 편을 꾹꾹 짓누를 뿐이었다. 네가 죽은 것이 너무나도 선명한 현실이 되어 있었다.
 
 
“정신이 들어?”
 
실로 오랜만에 꾼 꿈이었다. 어둠이 거둬진다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꿈에서 여전히 너는 웃고, 나는 꿈을 깨달았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침에는 안 그랬잖아 너.”
“…아무 것도 아냐.”
 
나는 걱정 가득한 남자친구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피곤하다고 하니, 알아서 나갈 채비를 했다. 남자친구가 눈치가 빠른 것이 여간 다행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남자친구가 집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 한 후 몸을 뒤척였다. 사람 하나 살기에 적합한, 온기 하나 없는 원룸이 바로 내가 사는 곳이었다. 그마저도 결혼이다 뭐다 준비하는 통에 썰렁해져 있었다. 몸을 누일 침대와 쌓아둔 짐들이 집에 자리한 것의 전부다. 나는 눈을 감았다. 몇 년 만에 꾼 꿈에 있던 사람은 너와 내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 여자, 바짝 타버린 라이터의 주인이 함께 있었다. 그것을 보자 비로소 그 꿈이 악몽처럼 느껴졌다. 뭐가 좋은지 꿈에서는 셋 다 행복해 보였다. 끔찍했다. 이 까마득한 기분이 꿈에서는 들뜬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탓해야 할까. 다르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이지, 어쩌면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이유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수년간 참아온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또 다시 악몽을 꾸더라도, 그 미친 여름 속으로 가라앉더라도 다시는 깨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파도를 다시 한 번이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을 것만 같았다.
 

 
         


********

소설부문
당선작 심사평


  제4차 <창작콘테스트> 소설부문에 이름을 올리게 된 작품은 김진솔 씨의「Madness Summer」이다. 
  김진솔 씨의 금상 당선을 축하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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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 우주궤도
   - 김기범 

    
어머니는 백만 광년을 헤아려도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아침마다 가족들의 얼굴을 빚어내는 명왕성,
빨간날은 우주의 유일한 휴일이다
행성과 소행성은 별자리에 바둑을 두고
명왕성은 부엌을 떠도는 중이다
거실의 궤도를 이탈해 식탁위로
저녁식사를 쏘아 올린다
쉬고 싶어도 발목을 붙잡는
사인용 식탁의 중력 때문일까?
명왕성은 혼수로 해온 TV앞에 앉아
이리저리 주파수를 맞춘다
먼 소행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일드라마의 블랙홀 속에 빠져든다
작고 왜소한 뒷모습을 본다
깊어진 주름살은 파인 홈처럼 돋아나있다
우주에서 소행성을 맴돌다 늙어버린 명왕성.
어질러진 우주의 구석구석,
먼지 같은 별들 쓸고 닦아낸다
태양계를 감싸려고 크게 궤도를 돌아왔던 곳,
차가워진 체온에 명왕성은 공전하지 않는다
더 이상 속옷에 붉은 꽃을 피우지 못하는,
태양계를 보듬다 떠난 명왕성은 어머니다.


 
■ 전구
   - 김기범 

 
까맣게 우주가 스며든 단칸방,
전깃줄에 위태롭게 매달린 태양은
낮과 밤을 바꿔가며 깜빡이던 알전구였다
맞지 않는 일자리 억지로 소켓에 끼워 맞춘
아버지처럼 전구는 앙상한 유리 몸으로
어두운 집안 안에서 제 스스로 빛을 뿜었다
고열한 몸으로 집안을 비출 때마다
맞지 않는 소켓은 아버지를 쓰러트렸다
차가운 수술대에 오른 알전구는
몇 촉의 빚을 머금고 살았나,
옷핀 같은 메스가 가르고 지나갈 때마다
소켓이 있던 자리로 시린 바람이 불었다
몸에 꼭 맞는 새 소켓이 있으리라
소행성처럼 떠돌던 식구들을 품고
또다시 태양계의 축을 지탱할 아버지,
전구의 심장박동을 기록하던 심파측정기가
늘어진 필라멘트 위로 타오른다
아버지도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다.
 


■ 흔적
   - 김기범 

 
어머니가 열 달 동안 나를 품는 동안
나는 하나의 섬이 되었다
 
비릿한 양수를 품은 섬 속에
임신선은 바다로 출항하는 수평선이 되었다
나는 갈매기의 울음소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첫 울음을 터트렸다
뭍에 공룡 발자국 같은 몽고반점은
섬을 지켜나가는 그늘이 되었다
 
파도 끝의 포말이 오랜 시간동안
몽고반점을 지워냈다 스스로 섬을 지킬 수 있듯이
어두운 동굴에 박혀있던 암모나이트 화석은
주름 진 화석이 되어 나의 배꼽에서 흔들렸다
외딴 섬에는 흔적들이 섬을 지켰고
섬은 화석을 품으며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았다
 
작은 섬의 야윈 등대는
탯줄이 어머니와 나를 연결했듯
캄캄한 바다와 섬 사이의 통로가 되었다
또 한 번 배꼽이 떨려온다.


 
■ 우렁각시
   - 김기범 

 
1.
빌딩 숲 곧게 뻗은 나무속엔
세월에 표백된 머리칼을
젖은 두건으로 단단하게 숨긴
우렁각시가 살고 있다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발자국의 흔적 좇아
마포걸레의 점액질로 발자국 지워나간다
우렁이가 지나간 길목마다 남은 흔적들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우렁이의 흔적이다
 
2.
아이들 웃음꽃이 만개한 학교
지린내가 자리 잡은 화장실에서
끝나지 않는 끝말잇기와 낙서들,
여기저기 흩뿌려진 오줌 자국 지우다 보면
코끝을 찌르던 지린내를
우렁이 등껍질이 머금었다
퀴퀴한 냄새 걸친 우렁이의 옷이
집안으로 유유히 기어가면 혹여 냄새를 들킬까
차가운 안방으로 몸을 숨기는 우렁이
 
3.
더러워진 흔적들을 갉아먹고 사는 우렁이
건물들의 틈에 달라붙어 누군가 모르게
지나간 자리로 하얀 그림자가 드리운다
등껍질처럼 단단하게 사는 법을 배우며
오늘도 젖은 바닥이 흥건한 자리로 유영한다.
 


■ 냉장고의 불면증
   - 김기범 

 
불 꺼진 부엌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내의 증세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어둠 속 짙게 깔린 고요함을 허물고
진물을 흘리며 뒤척이는 문짝들,
밤의 폐활량을 다잡으며 비닐 장판 위로
이젠 발자국을 찍었을 사각형의 계절
사내는 스스로 온도를 낮춰갈 때마다
성에 낀 잠꼬대를 하며 울어댔을지도 모른다
밑반찬들은 사각사각 사내의 내력을 엿듣고
소비자효율을 기억하는 새벽이 찾아오면
요란하게 뒤척였다 다시 잠잠해지는 반복을,
그것은 사내가 가진 마지막 심박동으로 들려왔다
사내의 몸속에서 쉰내가 짙어질수록
하얗던 피부는 어느새 점점 황달이 피어오르고
노년기 느슨해진 노인의 방광처럼
바닥에 물을 흘리던 사내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축축하게 건너야만 했다
달무리 지고 잠이 드는 사내
꿈속을 유영하는 가뿐한 숨소리가 울린다
불면증을 나누지 못하는 방 안 사람들이
하나 둘 집 밖을 나서면 홀로
부엌을 지키고 서있는다
늙은 사내의 체온이 서서히 식어가고
툭- 코드 뽑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

시(詩)부문
당선작 심사평


  제4차 <창작콘테스트> 시(詩)부문 수상자는 시공을 뛰어넘는 범 우주적 시어와 범상치 않은 스토리로 흥미를 유발케 하는 김기범 씨의「우주궤도」외 네 편의 시이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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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남편의 빚
이신영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나의 결혼생활은 대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이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평범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그런 생활을 재미없다고, 넌더리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통제된 삶이라고나 할까.. 나와 내 남편의 삶이 그러했다.

너무나 사랑해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날을 잡아 결혼을 하고, 모아둔 돈이 적었지만 그 돈으로 14평 낡고 오래된 빌라를 매매해서 처음부터 월세, 전세살이의 서러움을 몰랐고, 아기가 갖고 싶다고 생각하자마자 너무나 수월하게 아기가 우리에게 찾아와 주었다. 아기는 큰 병치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주어 예쁜 짓만 골라서 하고, 육아로 인해 외벌이 가정이 되었지만 남편의 월급은 조금씩 조금씩 올라서 어느 정도 저축도 하고 서로를 위해 가끔은 사치스러운 선물을 해 줄 수도 있을 만큼 모든 일이 그럭저럭 순탄하게 흘러갔다.

이 날도 역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아침 일찍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책을 읽고 있을 때 남편이 잠을 깼다. 오후에 출근하는 사람이라 낮 12시까지는 코골며 늘어져라 자던 사람인데 이제 겨우 아침 9시 즈음인데 일어나선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등을 어루만져준다. ‘새삼스럽게 이 사람이..’ 아직 이른 아침이니 다시 눈 좀 붙이라고 억지로 몸을 뉘여 주었건만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며 그저 내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겠단다. 남편이 평소 안하던 짓을 하면 여자는 촉이 바로 온다. 내가 그랬다. “커피 한 잔 타다줄까?”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나 하는 일 없이 나만 바라보고 있질 않나, 자진해서 커피 한 잔 타다주겠노라 부지런을 떨지 않나, 이 사람 행동이 자못 수상하게 느껴졌다. 표정에는 ‘나 할 말이 밤새도 모자랄 지경이오.’ 라는 메시지가 선명한데 끝까지 자기는 할 말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며 잡아뗀다. ‘차라리 귀신을 속여라 귀신을 속여.’ 내가 집요하게 나오니 남편이 결국 입을 열었다.

평온하고 잔잔하던 나의 생활이 찬장 속 모든 유리그릇이 와르르 쏟아져 깨지는 것처럼 깨지고 있었다. 남편의 말인즉슨 이랬다. 월급의 일부는 나에게 생활비로 주고 일부는 본인의 자동차 유지비와 용돈으로 써왔는데, ( 이 부분은 내가 신혼 때 제안한 이야기였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부분이다) 나와 아이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것, 외식시켜 주고 싶은 것, 구경시켜주고 싶은 것을 절제하지 않고 해주다 보니 본인 수중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써왔다는 것이다. 늘어난 소비는 카드로 돌려막고 그 달은 어찌어찌 겨우 해결하고 또 다음 달에 카드로 돌려 막는 식으로 자꾸 빚이 늘어났지만 나와 아이의 웃고 기뻐하는 얼굴이 너무 자신을 힘나게 해줘서 그 늘어나는 빚이 삼천만원이 될 때까지 버티고 버티었단다. 그런 와중에 농협 본사에서 전화가 와서 새로운 대출상환 방식을 통해 빚도 갚고 신용도도 높여 주겠다하기에, 그 직원이 시키는 대로 고리 대부업체를 통해 4천을 대출받아 그 쪽 계좌에 넣었는데 연락두절이라는..그러니까 요즘 유행한다던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4천 대출을 받기 위해 친한 친구한테서도 돈을 빌리고 했던지라 총 빚 규모는 7천만 원을 훨씬 넘는 금액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목구멍에 누가 주먹을 넣은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고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하지만 거인처럼 큰 덩치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흐느끼는 남편 앞에서 나까지 대성통곡을 할 수는 없었다. 이 시간, 이 순간에도 고액의 이자가 계속 할증되고 있을 텐데 주저앉아 울고 있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릎을 꿇고 목 놓아 울고 있는 남편을 껴안아주었다. “내가 곰이었네. 곰이었어. 당신이 여태껏 아이와 나한테 해주는 걸 받으면서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왔을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생각해보니..그래. 오빠 용돈만으로 우리한테 그렇게 맛난 거 사주고 나들이 시켜주고 선물도 사주고 할 수 없을 텐데.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미안해...”

나 스스로 놀라운 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사실에는 사실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가슴 아프고 절망스러웠던 것은 아내와 아이의 웃는 낯을 보기위해 아슬아슬한 빚의 외줄타기에서 중심을 잡고 서있느라 힘들었을 우리 집 가장의 힘겨움이었다. 그 힘겨움을 딸과 아내의 애교로 버텨왔는데 보이스피싱이란 놈이 큰 한방을 먹여 우리 집 가장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던 빚의 외줄타기에서 떨어뜨린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동안 얼마나 애가 타고 속이 끓었을까. 바보같이 외식시켜준다고, 봄맞이 옷 사준다고, 아이 장난감 사준다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던 내가 너무너무 미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울고 있는 남편을 달래 출근시키고 나는 곧장 은행으로 달려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어나고 있을 이자를 막지 않으면 우리 가정을 지켜낼 수 없다. 생활비 아껴서 저축해 둔 예적금을 해지해서 급한 불부터 껐다. 그래도 모자란 빚은 주택담보대출로 막았다. 빚을 해결하기 위해 또 빚을 낸 셈이지만, 폭리를 취하는 대부업체도 아니고 매달 내가 갚아나갈 수 있는 규모의 이자와 원금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단 이렇게 급한 불을 끄고 숨통을 죄어오는 듯한 보이지 않는 압박에서 조금은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 몇주 간은 남편과 나 둘 다 악몽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쳤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완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우리의 삶을 이전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만은 오히려 공고해진 느낌이었다. 아내와 아이에게 조금 더 맛난 것을 먹이고 싶고 좋은 곳을 구경 시켜 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빚. 사기로 인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으로 불어나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되었지만 누가 우리 집 가장을 비난할 수 있을까.

결혼 생활 5년차에 우리는 다시 무일푼에서 시작하게 되었지만 별로 두렵지 않다. 사랑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남편과 술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날이 오면 이 이야기가 모두 맛난 안주거리가 되어 웃을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런 날이 생각보다 일찍 오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

수필부문
당선작 심사평


  제4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작품은 이신영 씨의「남편의 빚」이란 작품으로 뜻하지 않은 남편의 사채 빚에 가정 해체로까지 치닫을 뻔한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

위 당선자들께서는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 운영자 메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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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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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풋사과 2015.04.15 11:32
    수상하신 분들께 축하드립니다
  • profile
    korean 2015.04.15 11:52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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